100만 도시 지척의 심심산길 100리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광덕산 임도. 각흘고개 방면으로 가면 된다
아산과 천안 경계에 솟은 광덕산(699m)은 충남 내륙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산체를 자랑한다. 저지대에서 솟아 비고가 대단하고, 도시와 가까워 접근도 편하다. 임도가 많아 오래 전부터 산악자전거 코스로 알려져 한동안 산악자전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정상 남쪽 기슭에 자리한 광덕사를 기점으로 광덕산을 한 바퀴 돌아본다. 산은 높고 골은 깊으며 숲도 울창하지만 간간이 보이는 도시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만일의 경우 도움을 받기 쉽다는 안심감을 준다.
아산으로 넘어가는 넓티고개 정상. 이름 그대로 주위가 널찍한 고개다. 왼쪽 급사면은 광덕산 북봉에 해당하는 망경산(600m)
광덕사 아래에는 넓은 주차장이 갖춰진 휴게소가 있다. 절은 크지 않은데 사하촌이 이렇게 번성한 것은 역시 도시 근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 66만, 아산 34만 도합 100만 대도시가 코앞이니 당연한 번화다.
629번 지방도를 따라 천안 방면으로 내려가다 623번 지방도로 좌회전, 아산 방면의 넓티고개를 오른다. 넓티는 ‘넙치’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광치(廣峙)인데 이름처럼 고개 턱밑까지 넓은 계곡이 펼쳐지고 경사도 심하지 않다.
왼쪽으로 망경산(600m)이 아주 가파르게 치솟아 고도감이 과장된다. 고개를 넘으면 왼쪽으로 임도가 시작되는데 사유지 안내문과 함께 철문이 막고 있다. 철문 옆 묘지를 통해 진입하면 되지만 사유지 건물 쪽으로 가지 말고 임도로 곧장 들어서야 한다.
무인지경이라도 이정표가 있으면 친절한 안내자를 만난 듯 반갑다
임도에서 바라본 아산시 일부. 왼쪽 봉우리는 설화산(448m)
평일의 가을 산속, 인적은 없고 짙은 숲에는 조금씩 단풍의 기미가 익어간다. 길은 완만하나마 꾸준한 오르막이고 망경산 북쪽을 돌아가면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온다. 광덕산 서편의 임도에는 총 4개의 삼거리가 있는데 모두 좌회전하면 되고, 오른쪽 길은 인근 마을로 이어지는 하산로다.
조망이 트이니 천안과 아산이 함께 보인다. 천안은 언제 저렇게 커졌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도시규모를 자랑한다. 무인지경의 산속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안심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탈속의 괴리를 허물기도 한다. 여기 산에 계속 머물면 ‘자연인’이 되고, 도시로 돌아가면 ‘세속인’이 되겠지만 우리는 결국 하산할 수밖에 없다.
장고개 북쪽 능선이 해발 450m로 임도 중 최고지점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내내 다운힐은 아니고 완만하게 내려갔다가 다시 업힐이 이어진다.
길가에는 작은 계곡수가 흐르거나 마른 너덜과 암괴, 수목이 뒤엉켜 심산의 면모를 보여준다. 앞서 넓티고개에서 각흘고개까지 광덕산 허리를 감싸는 임도만 21km나 되어 산의 정기와 숲의 내음은 질리도록 맛볼 수 있다.
인구 66만의 천안은 대도시의 면모다
이 산길에서 울트라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두 바퀴도 쉽지 않은데 달리기라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임도에는 4곳의 삼거리가 나오고 모두 각흘고개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너덜과 바위 기괴한 나무가 뒤엉켜 심산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을의 심도는 단풍 빛으로 알 수 있다
자동차도 진입이 가능해 고지에 주차하고 트레킹 하는 사람들을 간혹 마주친다. 산이 높고 숲이 이리 깊지만 하산로가 많고 도시가 가까우니 부담 없이 걷기도 좋겠다.
조망이 거의 트이지 않고 길은 끝없이 상하좌우로 일렁대 무념무상으로 숲길을 질주한다. 앞뒤 서스펜션은 거친 노면의 요철을 따라 요동치고 멧돼지 퇴치를 위해 달고 다니는 종은 쉴 틈 없이 딸랑거린다. 2.8인치 광폭 타이어는 자갈이든 돌길이든 무시하고 탱크처럼 꿰뚫고 나가고 전후 160㎜의 풍성한 트래블은 이런 숲길에서 과욕을 부려도 넉넉하게 받쳐준다.
그렇게 라이딩을 만끽하는 사이 짧은 가을볕은 천천히 힘을 잃어간다. 광덕산 임도는 서쪽 기슭에 나 있어서 오후에 지나면 햇살이 잘 들어 더 좋다. 마지막 임도삼거리를 지나면 각흘고개까지는 거의 다운힐이다.
각흘고개 도착 전에 아산시공설봉안당과 추모공원이 있다. 납골이든 매장이든 최장 30년이 한도이니 이 좁은 땅에서 영원한 안식처는 이제 없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지나는 시간이고, 어떤 인연이든 망각에 충분한 세월일지도 모른다.
각흘고개 옆으로 내려서면서 임도는 끝난다. 왼쪽으로 아산시공설봉안당이 살짝 보인다
각흘고개에서 4차로의 39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다 618번 지방도로 우회전, 문금리로 들어선다. 이제 광덕산 남동안으로 행정구역도 천안에 든다. 천안은 광덕산 동쪽을 반분하고 있으나 임도는 대부분 아산 쪽에 있고 정상도 아산에 포함되어 여기서는 ‘아산 광덕산’으로 표기한다.
문금2리를 지나면 본격적인 갈재고개 업힐이 시작된다. 갈재고개는 450m가 넘어 이번 코스에서 최고지점이다. 포장이 되긴 했지만 업힐이 3km나 되고 일부 구간은 경사도가 18도에 이르는 난코스다.
문금리 초입의 느티나무 고목. 수령 320년이라는데 훨씬 더 들어보인다
한때는 일가족이 정겹게 일상을 보냈을 집은 이제 속절없이 낡아간다. 시골지역 빈 집이 너무 많아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오지의 민가는 비어가도 고지에 자리잡은 카페는 성업중이다
경사도 18도의 갈재고개 업힐. 이제 고갯마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차량 통행은 거의 없지만 해발 330m 숲속에 자리 잡은 카페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18도 경사를 올라 고갯마루에 서면 광덕사까지는 오직 다운힐이다. 근교 계곡이 다 그렇듯이 즐비한 ‘가든’과 펜션을 통과하면 이윽고 광덕사 입구에 닿는다. 광덕사는 652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전까지는 3층 법당, 8 종루, 9 범각, 80칸 장경각을 갖춘 거찰이었고 산내에는 89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광덕산이 넓기는 하나 89 암자는 좀 과장인 듯하다. 지금은 중간 규모이고 아늑한 분위기가 각별하다. 절 입구에는 1290년 원나라에 다녀온 류청신이 묘목을 가져와 심은 호두나무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로 무려 730살을 헤아리며 높이는 18.2m이다. 천안 호두의 원류가 바로 이 고목이다.
광덕산이 높으니 해가 진 지는 이미 오래, 정적어린 산사에는 창건 후 50만 번이나 반복됐을 그 황혼이 다시 어리고 있다.
1300년 고찰 광덕사.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730살 호두나무. 천안의 명물 호두는 여기서 비롯됐다
tip
광덕사 아래에는 두 곳의 대형 공영주차장(무료)이 있다. 주차장 주변에는 식당과 카페가 모여 있어 편리하다. 다만 광덕사를 벗어나면 식당과 가게가 없으므로 행동식을 잘 챙긴다.
아산 광덕산 일주 38km
100만 도시 지척의 심심산길 100리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광덕산 임도. 각흘고개 방면으로 가면 된다
아산과 천안 경계에 솟은 광덕산(699m)은 충남 내륙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산체를 자랑한다. 저지대에서 솟아 비고가 대단하고, 도시와 가까워 접근도 편하다. 임도가 많아 오래 전부터 산악자전거 코스로 알려져 한동안 산악자전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정상 남쪽 기슭에 자리한 광덕사를 기점으로 광덕산을 한 바퀴 돌아본다. 산은 높고 골은 깊으며 숲도 울창하지만 간간이 보이는 도시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만일의 경우 도움을 받기 쉽다는 안심감을 준다.
아산으로 넘어가는 넓티고개 정상. 이름 그대로 주위가 널찍한 고개다. 왼쪽 급사면은 광덕산 북봉에 해당하는 망경산(600m)
광덕사 아래에는 넓은 주차장이 갖춰진 휴게소가 있다. 절은 크지 않은데 사하촌이 이렇게 번성한 것은 역시 도시 근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 66만, 아산 34만 도합 100만 대도시가 코앞이니 당연한 번화다.
629번 지방도를 따라 천안 방면으로 내려가다 623번 지방도로 좌회전, 아산 방면의 넓티고개를 오른다. 넓티는 ‘넙치’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광치(廣峙)인데 이름처럼 고개 턱밑까지 넓은 계곡이 펼쳐지고 경사도 심하지 않다.
왼쪽으로 망경산(600m)이 아주 가파르게 치솟아 고도감이 과장된다. 고개를 넘으면 왼쪽으로 임도가 시작되는데 사유지 안내문과 함께 철문이 막고 있다. 철문 옆 묘지를 통해 진입하면 되지만 사유지 건물 쪽으로 가지 말고 임도로 곧장 들어서야 한다.
무인지경이라도 이정표가 있으면 친절한 안내자를 만난 듯 반갑다
임도에서 바라본 아산시 일부. 왼쪽 봉우리는 설화산(448m)
평일의 가을 산속, 인적은 없고 짙은 숲에는 조금씩 단풍의 기미가 익어간다. 길은 완만하나마 꾸준한 오르막이고 망경산 북쪽을 돌아가면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온다. 광덕산 서편의 임도에는 총 4개의 삼거리가 있는데 모두 좌회전하면 되고, 오른쪽 길은 인근 마을로 이어지는 하산로다.
조망이 트이니 천안과 아산이 함께 보인다. 천안은 언제 저렇게 커졌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도시규모를 자랑한다. 무인지경의 산속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안심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탈속의 괴리를 허물기도 한다. 여기 산에 계속 머물면 ‘자연인’이 되고, 도시로 돌아가면 ‘세속인’이 되겠지만 우리는 결국 하산할 수밖에 없다.
장고개 북쪽 능선이 해발 450m로 임도 중 최고지점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내내 다운힐은 아니고 완만하게 내려갔다가 다시 업힐이 이어진다.
길가에는 작은 계곡수가 흐르거나 마른 너덜과 암괴, 수목이 뒤엉켜 심산의 면모를 보여준다. 앞서 넓티고개에서 각흘고개까지 광덕산 허리를 감싸는 임도만 21km나 되어 산의 정기와 숲의 내음은 질리도록 맛볼 수 있다.
인구 66만의 천안은 대도시의 면모다
이 산길에서 울트라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두 바퀴도 쉽지 않은데 달리기라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임도에는 4곳의 삼거리가 나오고 모두 각흘고개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너덜과 바위 기괴한 나무가 뒤엉켜 심산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을의 심도는 단풍 빛으로 알 수 있다
자동차도 진입이 가능해 고지에 주차하고 트레킹 하는 사람들을 간혹 마주친다. 산이 높고 숲이 이리 깊지만 하산로가 많고 도시가 가까우니 부담 없이 걷기도 좋겠다.
조망이 거의 트이지 않고 길은 끝없이 상하좌우로 일렁대 무념무상으로 숲길을 질주한다. 앞뒤 서스펜션은 거친 노면의 요철을 따라 요동치고 멧돼지 퇴치를 위해 달고 다니는 종은 쉴 틈 없이 딸랑거린다. 2.8인치 광폭 타이어는 자갈이든 돌길이든 무시하고 탱크처럼 꿰뚫고 나가고 전후 160㎜의 풍성한 트래블은 이런 숲길에서 과욕을 부려도 넉넉하게 받쳐준다.
그렇게 라이딩을 만끽하는 사이 짧은 가을볕은 천천히 힘을 잃어간다. 광덕산 임도는 서쪽 기슭에 나 있어서 오후에 지나면 햇살이 잘 들어 더 좋다. 마지막 임도삼거리를 지나면 각흘고개까지는 거의 다운힐이다.
각흘고개 도착 전에 아산시공설봉안당과 추모공원이 있다. 납골이든 매장이든 최장 30년이 한도이니 이 좁은 땅에서 영원한 안식처는 이제 없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지나는 시간이고, 어떤 인연이든 망각에 충분한 세월일지도 모른다.
각흘고개 옆으로 내려서면서 임도는 끝난다. 왼쪽으로 아산시공설봉안당이 살짝 보인다
각흘고개에서 4차로의 39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다 618번 지방도로 우회전, 문금리로 들어선다. 이제 광덕산 남동안으로 행정구역도 천안에 든다. 천안은 광덕산 동쪽을 반분하고 있으나 임도는 대부분 아산 쪽에 있고 정상도 아산에 포함되어 여기서는 ‘아산 광덕산’으로 표기한다.
문금2리를 지나면 본격적인 갈재고개 업힐이 시작된다. 갈재고개는 450m가 넘어 이번 코스에서 최고지점이다. 포장이 되긴 했지만 업힐이 3km나 되고 일부 구간은 경사도가 18도에 이르는 난코스다.
문금리 초입의 느티나무 고목. 수령 320년이라는데 훨씬 더 들어보인다
한때는 일가족이 정겹게 일상을 보냈을 집은 이제 속절없이 낡아간다. 시골지역 빈 집이 너무 많아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오지의 민가는 비어가도 고지에 자리잡은 카페는 성업중이다
경사도 18도의 갈재고개 업힐. 이제 고갯마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차량 통행은 거의 없지만 해발 330m 숲속에 자리 잡은 카페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18도 경사를 올라 고갯마루에 서면 광덕사까지는 오직 다운힐이다. 근교 계곡이 다 그렇듯이 즐비한 ‘가든’과 펜션을 통과하면 이윽고 광덕사 입구에 닿는다. 광덕사는 652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전까지는 3층 법당, 8 종루, 9 범각, 80칸 장경각을 갖춘 거찰이었고 산내에는 89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광덕산이 넓기는 하나 89 암자는 좀 과장인 듯하다. 지금은 중간 규모이고 아늑한 분위기가 각별하다. 절 입구에는 1290년 원나라에 다녀온 류청신이 묘목을 가져와 심은 호두나무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로 무려 730살을 헤아리며 높이는 18.2m이다. 천안 호두의 원류가 바로 이 고목이다.
광덕산이 높으니 해가 진 지는 이미 오래, 정적어린 산사에는 창건 후 50만 번이나 반복됐을 그 황혼이 다시 어리고 있다.
1300년 고찰 광덕사.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730살 호두나무. 천안의 명물 호두는 여기서 비롯됐다
tip
광덕사 아래에는 두 곳의 대형 공영주차장(무료)이 있다. 주차장 주변에는 식당과 카페가 모여 있어 편리하다. 다만 광덕사를 벗어나면 식당과 가게가 없으므로 행동식을 잘 챙긴다.
아산 광덕산 일주 3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