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절정의 심심산골, 산길은 끝도 없이
성주산을 높이로만 재단하면 큰코 다친다. 600m급 산이 이렇게 깊을 수 있다는 데 경악하고 감탄할 뿐이다. 드넓게 퍼진 산줄기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패어 있고 겹겹의 능선은 강원도 오지를 능가하는 심산의 굴곡을 이룬다. 성주산은 1980년대까지 석탄광이 많았고 이를 기념해 국내최초의 석탄박물관까지 있다. ‘보령’을 해안지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주산을 보고 나면, 게다가 오서산의 절반이 보령에 드니 산악지대 비중이 더 큰 것을 깨닫게 된다. 골짜기마다 탄광이 있던 시절, 산허리를 가르던 운탄로는 임도와 더불어 멋진 산악코스로 되살아났다(22년 10월)
왕자봉고개를 넘으면 시각적 첩첩산중, 청각적 적막강산, 심리적 격오지가 펼쳐진다. 오른쪽 맨뒤 희미한 봉우리가 성주산 정상
충남 서해안을 따라 특별한 산 세 곳이 마치 수문장처럼 나란히 솟아 있다. 북쪽부터 가야산(678m), 오서산(791m) 그리고 성주산(678m)이다. 해안 저지대에 자리해 세 산 모두 해발에 비해 비고가 커서 위용과 덩치가 대단하다. 높이와 산체의 규모에서는 오서산이 단연 앞서지만 가야산의 위세도 엄청나다. 기이하게도 가야산과 높이가 같은 보령 성주산은 높이보다는 넓게 퍼진 산세와 깊은 골짜기가 특징이다.
성주산 속으로 접어들면 해안과 도시가 지척인데 이렇게 깊을 수가 있을까 싶다. 1980년대까지 석탄 광산이 많았고 당시의 운탄로는 산악체험로가 되었다. 운탄로 외에 임도까지 많이 조성되어서 성주산 일대를 거미줄처럼 누빈다.
보령시내로 넘어가는 옛길인 바래기고갯길. 지금은 산책로가 되었다. 골짜기를 지나는 고갯길 최상류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왕자봉고개(445m) 정상. 이 고개를 넘으면 깊은 산간오지 풍광으로 돌변한다

왕자봉고개를 넘어가면 마주치게 되는 첩첩산중. 정면의 510m봉 뒤로 장군봉(583m)과 성주산(678m)이 차례로 겹친다
검은빛 산길
시멘트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오면 어딘가 감도는 검은 빛. 탄광지대의 흔적은 폐광된 지 수십년이 지나도 흔연하다.
성주면사무소를 출발해 보령무궁화수목원을 지나 시내로 넘어가는 바래기고개 옛길 중간쯤에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왕자봉(511m) 아래 고개(445m)까지 급경사이고 남향인데도 골이 깊고 능선이 우왕좌왕이라 응달이다. 고갯마루에서는 보령의 진산인 옥마산(599m)의 철탑이 잘 보인다. 복잡한 산악지형이지만 이후에도 옥마산은 가끔씩 얼굴을 비춰준다.

산허리를 날카롭게 베고 지나는 장군봉 임도. 희미하나마 보령의 진산인 옥마산(599m)이 오른쪽 멀리 보인다
성주산 남릉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맨왼쪽 510m봉을 거쳐 산 중턱을 가르는 길이 선명하고, 벌목지는 육산의 풍만함을 과시한다
고요의 라이딩
왕자봉고개를 넘자말자 세상과 동떨어진 오지다. 무인지경에 처절한 적막까지… 너무나 고요해서 멧돼지가 나와도 반가울 것만 같다. 타이어에 밟히는 자갈과 낙엽만이 불청객의 내방을 숲에 알리고 있을 뿐.
조망이 막힌 숲속이면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틈도 없이 무작정 달리게 된다. 산기슭을 따라가지만 업다운이 혼재해 라이딩은 고역과 환희를 오락가락 한다. 가끔씩 등장하는 벌목지는 조망을 틔워주면서 산체의 풍성한 육덕을 슬쩍 드러낸다.
마침내 저쪽으로 성주산 정상이 보인다. 산사태가 난 건지, 채굴 흔적인지 정상부는 계단식 사방공사가 되어 있어 알아보기 쉽다. 길은 성주산 남쪽 능선 해발 570m까지 올라간다. 성주산 남쪽으로는 만수산(575m)이 골짜기 멀리 마주하고 있다.
마침내 근경을 드러낸 성주산. 계단식 사방공사가 되어 있어 정상부를 알아보기 쉽다

민가와 인공물은 아예 보이지 않는 심심산골. 성주산 동록에서 남쪽으로 본 모습으로, 맨 뒤 왼쪽의 둔중한 봉우리가 만수산(575m)이다
벌목지를 만나면 조망이 트이고 주위가 환해서 좋다. 대신 길 바로 옆 절벽의 아찔함을 감내해야 한다
문봉산을 지나면
성주산 남록을 지나 급사면 벌목지가 나오면 문봉산(632m) 기슭으로 접어든 것이다. 새로 조림을 했거나 사방공사 흔적이 있는 곳은 탄광의 흔적이다. 보령석탄박물관에 가면 말 그대로 ‘막장’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시설이 있는데, 목숨을 건 광부들의 노고와 애환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라면 과연 몇 시간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 싶은 그런 환경이다. 그들의 채굴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나고 음식을 조리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광부들의 피땀이 어렸을 폐탄광지대를 한가롭게 지나노라니 미안함과 감사함이 겹친다.
민가는 아예 보이지 않는 심심산골이지만 군데군데 하산로가 있어 산을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봉산 남릉에 올라서면 임도사거리 고갯마루가 나온다. 원래는 여기서 동쪽의 성태산(632m, 문봉산과 높이가 같다)까지 일주하려고 했으나 체력과 배터리 사정으로 생략하기로 한다. 성태산을 돌아오면 16km 정도 더 늘어난다. 널찍한 광장을 이룬 사거리에는 쉼터 조성공사로 인부들이 무표정하게 작업 중이다. 어쨌든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니 반갑다.

문봉산 남쪽의 임도사거리. 임도망 지도가 오석에 새겨져 있다
임도사거리 중간에는 로터리처럼 단풍나무가 있고, 주변에는 인부들이 쉼터 공사 중이다

문봉산 남릉에서 바라본 성주산(가운데 절개지 있는 부분이 정상)
만수산을 돌아 하산
임도사거리에서 남하하면 이제는 만수산 자락이다. 길은 최대한 등고선을 따라가려 노력하지만 업다운이 적지 않고 대체로 업힐이 많다. 심원계곡 상류는 북향에 숲이 짙어 한낮인데도 어둑하다.
만수산 북서편 심원계곡 상류를 돌아나가면 이윽고 주능선 위로 올라선다. 해발 525m 지점의 광장고개다. 인근 봉우리에는 팔각정 전망대가 있으며 성주산자연휴양림 외곽을 이룬다. 광장 한켠에는 뜬금없이 ‘성주산 560m’ 표지석이 서 있다. 현재 고도는 525m이고 성주산은 다른 데 있으며, 높이도 생뚱맞아 왜 여기에 표지석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휴양림 관광객을 위한 ‘인증샷’ 소품일까.
이제는 출발지까지 내리 다운힐이다. 짙은 숲과 계류에 냉기가 감돌아 다운힐 도중 팔이 시리다. 휴양림을 관통해 산을 벗어나면 바로 성주면소재지다. 여기서는 또 터널만 지나면 곧장 보령시내니 갑작스레 너무 바뀐 환경에 잠시 어리둥절이다. 이 기묘한 산악지대를 뒤돌아보며, 허~ 감탄인지 탄식인지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해발 525m의 광장고개에 뜬금 없이 서 있는 성주산 표지석. 마치 정상인 듯한 느낌을 주는데, 휴양림 관광객을 위한 소품인 듯

팔각정과 벤치가 있는 광장고개. 휴양림 이용객이 산책으로 올라오는 곳이다. 여기서 출발지인 성주면사무소까지는 4km가 넘는 내리 다운힐이다
tip
성주면사무소 부근에 식당 몇 곳과 편의점이 있다. 일단 코스에 진입하면 민가도, 물도 구할 수 없으므로 행동식과 펑크키트, 휴대용 공구를 잘 챙긴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보령석탄박물관과 유물이 많은 절터인 성주사지를 찾아보길 권한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은거했던 무량사도 만수산 남쪽에 있다.
보령 성주산 31km


적막 절정의 심심산골, 산길은 끝도 없이
성주산을 높이로만 재단하면 큰코 다친다. 600m급 산이 이렇게 깊을 수 있다는 데 경악하고 감탄할 뿐이다. 드넓게 퍼진 산줄기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패어 있고 겹겹의 능선은 강원도 오지를 능가하는 심산의 굴곡을 이룬다. 성주산은 1980년대까지 석탄광이 많았고 이를 기념해 국내최초의 석탄박물관까지 있다. ‘보령’을 해안지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주산을 보고 나면, 게다가 오서산의 절반이 보령에 드니 산악지대 비중이 더 큰 것을 깨닫게 된다. 골짜기마다 탄광이 있던 시절, 산허리를 가르던 운탄로는 임도와 더불어 멋진 산악코스로 되살아났다(22년 10월)
충남 서해안을 따라 특별한 산 세 곳이 마치 수문장처럼 나란히 솟아 있다. 북쪽부터 가야산(678m), 오서산(791m) 그리고 성주산(678m)이다. 해안 저지대에 자리해 세 산 모두 해발에 비해 비고가 커서 위용과 덩치가 대단하다. 높이와 산체의 규모에서는 오서산이 단연 앞서지만 가야산의 위세도 엄청나다. 기이하게도 가야산과 높이가 같은 보령 성주산은 높이보다는 넓게 퍼진 산세와 깊은 골짜기가 특징이다.
성주산 속으로 접어들면 해안과 도시가 지척인데 이렇게 깊을 수가 있을까 싶다. 1980년대까지 석탄 광산이 많았고 당시의 운탄로는 산악체험로가 되었다. 운탄로 외에 임도까지 많이 조성되어서 성주산 일대를 거미줄처럼 누빈다.
왕자봉고개(445m) 정상. 이 고개를 넘으면 깊은 산간오지 풍광으로 돌변한다
왕자봉고개를 넘어가면 마주치게 되는 첩첩산중. 정면의 510m봉 뒤로 장군봉(583m)과 성주산(678m)이 차례로 겹친다
검은빛 산길
시멘트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오면 어딘가 감도는 검은 빛. 탄광지대의 흔적은 폐광된 지 수십년이 지나도 흔연하다.
성주면사무소를 출발해 보령무궁화수목원을 지나 시내로 넘어가는 바래기고개 옛길 중간쯤에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왕자봉(511m) 아래 고개(445m)까지 급경사이고 남향인데도 골이 깊고 능선이 우왕좌왕이라 응달이다. 고갯마루에서는 보령의 진산인 옥마산(599m)의 철탑이 잘 보인다. 복잡한 산악지형이지만 이후에도 옥마산은 가끔씩 얼굴을 비춰준다.
산허리를 날카롭게 베고 지나는 장군봉 임도. 희미하나마 보령의 진산인 옥마산(599m)이 오른쪽 멀리 보인다
고요의 라이딩
왕자봉고개를 넘자말자 세상과 동떨어진 오지다. 무인지경에 처절한 적막까지… 너무나 고요해서 멧돼지가 나와도 반가울 것만 같다. 타이어에 밟히는 자갈과 낙엽만이 불청객의 내방을 숲에 알리고 있을 뿐.
조망이 막힌 숲속이면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틈도 없이 무작정 달리게 된다. 산기슭을 따라가지만 업다운이 혼재해 라이딩은 고역과 환희를 오락가락 한다. 가끔씩 등장하는 벌목지는 조망을 틔워주면서 산체의 풍성한 육덕을 슬쩍 드러낸다.
마침내 저쪽으로 성주산 정상이 보인다. 산사태가 난 건지, 채굴 흔적인지 정상부는 계단식 사방공사가 되어 있어 알아보기 쉽다. 길은 성주산 남쪽 능선 해발 570m까지 올라간다. 성주산 남쪽으로는 만수산(575m)이 골짜기 멀리 마주하고 있다.
민가와 인공물은 아예 보이지 않는 심심산골. 성주산 동록에서 남쪽으로 본 모습으로, 맨 뒤 왼쪽의 둔중한 봉우리가 만수산(575m)이다
벌목지를 만나면 조망이 트이고 주위가 환해서 좋다. 대신 길 바로 옆 절벽의 아찔함을 감내해야 한다
문봉산을 지나면
성주산 남록을 지나 급사면 벌목지가 나오면 문봉산(632m) 기슭으로 접어든 것이다. 새로 조림을 했거나 사방공사 흔적이 있는 곳은 탄광의 흔적이다. 보령석탄박물관에 가면 말 그대로 ‘막장’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시설이 있는데, 목숨을 건 광부들의 노고와 애환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라면 과연 몇 시간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 싶은 그런 환경이다. 그들의 채굴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나고 음식을 조리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광부들의 피땀이 어렸을 폐탄광지대를 한가롭게 지나노라니 미안함과 감사함이 겹친다.
민가는 아예 보이지 않는 심심산골이지만 군데군데 하산로가 있어 산을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봉산 남릉에 올라서면 임도사거리 고갯마루가 나온다. 원래는 여기서 동쪽의 성태산(632m, 문봉산과 높이가 같다)까지 일주하려고 했으나 체력과 배터리 사정으로 생략하기로 한다. 성태산을 돌아오면 16km 정도 더 늘어난다. 널찍한 광장을 이룬 사거리에는 쉼터 조성공사로 인부들이 무표정하게 작업 중이다. 어쨌든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니 반갑다.
문봉산 남쪽의 임도사거리. 임도망 지도가 오석에 새겨져 있다
문봉산 남릉에서 바라본 성주산(가운데 절개지 있는 부분이 정상)
만수산을 돌아 하산
임도사거리에서 남하하면 이제는 만수산 자락이다. 길은 최대한 등고선을 따라가려 노력하지만 업다운이 적지 않고 대체로 업힐이 많다. 심원계곡 상류는 북향에 숲이 짙어 한낮인데도 어둑하다.
만수산 북서편 심원계곡 상류를 돌아나가면 이윽고 주능선 위로 올라선다. 해발 525m 지점의 광장고개다. 인근 봉우리에는 팔각정 전망대가 있으며 성주산자연휴양림 외곽을 이룬다. 광장 한켠에는 뜬금없이 ‘성주산 560m’ 표지석이 서 있다. 현재 고도는 525m이고 성주산은 다른 데 있으며, 높이도 생뚱맞아 왜 여기에 표지석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휴양림 관광객을 위한 ‘인증샷’ 소품일까.
이제는 출발지까지 내리 다운힐이다. 짙은 숲과 계류에 냉기가 감돌아 다운힐 도중 팔이 시리다. 휴양림을 관통해 산을 벗어나면 바로 성주면소재지다. 여기서는 또 터널만 지나면 곧장 보령시내니 갑작스레 너무 바뀐 환경에 잠시 어리둥절이다. 이 기묘한 산악지대를 뒤돌아보며, 허~ 감탄인지 탄식인지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팔각정과 벤치가 있는 광장고개. 휴양림 이용객이 산책으로 올라오는 곳이다. 여기서 출발지인 성주면사무소까지는 4km가 넘는 내리 다운힐이다
tip
성주면사무소 부근에 식당 몇 곳과 편의점이 있다. 일단 코스에 진입하면 민가도, 물도 구할 수 없으므로 행동식과 펑크키트, 휴대용 공구를 잘 챙긴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보령석탄박물관과 유물이 많은 절터인 성주사지를 찾아보길 권한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은거했던 무량사도 만수산 남쪽에 있다.
보령 성주산 3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