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산악 조망, 라이딩 재미 탁월
새덕산(462m)과 봉화산(526m) 사이 주능선을 넘는 한치령(380m). 1972년 군부대가 길을 냈다는 기념비가 쓸쓸하다
‘경춘가도’ ‘강촌’ ‘남이섬’… 이런 지명에는 낭만과 자유 그리고 청춘의 향기가 묻어난다. 한때 대학생 MT의 성지였고 서울 교외의 휴양지이자 작은 여행의 설렘이었으니 여정의 종점 춘천은 여전히 낭만의 감흥을 일으킨다.
경춘가도 길목에 자리한 강촌(江村)은 이름부터 소박하고 정겨운 강변마을이고, 지금도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이 강촌의 뒷산을 이루는 봉화산(526m)은 산악자전거 문화가 도입된 초창기부터 라이딩의 명소였다. 서울에서 가깝고 코스가 아름다우면서 스릴 넘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부터 열린 MTB 대회(강촌챌린저)는 가장 많은 동호인이 참가하고 또 동호인이라면 반드시 넘어야할 관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도 베테랑 MTB 동호인이라면 강촌과 관련된 추억이 있을 것이다.
20년만에 다시 강촌으로 향하는 나 역시 아련한 추억에 젖는다. 지독하게 길고 험한 업힐에 고역을 치렀던 기억이 선명하고, 너무 힘들어 풍경을 감상하고 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추억의 코스를 다시 달려본다.
산악코스가 시작되는 도치골 입구. 대회 코스 입간판이 서 있다
출발지는 대회 때의 기점이 되는 강촌역(창촌중)이 아니라 가평에 가까운 굴봉산역으로 잡는다. 강촌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돌면 초반에 북한강 자전거길을 8km 정도 경유하는데, 굴봉산역에서 시작하면 곧장 산길로 들어서고, 체력이 떨어진 귀로에 북한강 자전거길을 타게 되어 부담 작기 때문이다.
한적한 골짜기에 자리한 굴봉산역은 행인을 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하다. 초겨울 아침이라 쌀쌀하지만 하늘은 쨍 하니 맑고 공기는 폐부 깊숙이 청량감을 불어 넣는다.
봉화산은 500m급 산이지만 검봉산(530m)과 더불어 상당히 넓게 퍼져 있어 수많은 능선과 골짜기가 중첩되어 심산(深山)의 면모다. 첩첩산중이라 어디가 주능선이고 어느 방향인지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일단 산에 들어 주위가 보일 정도로 고도를 높이는 것이 첩경이다.
역에서 900m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도치골이 패어 있다. 갈림길 입구에 강촌챌린지 코스지도가 대형 입간판으로 서 있어 알아보기 쉽다.
코스 도중에는 간간이 거리표가 서 있다. 왼쪽이 대회코스 이정표이며, 10km를 빼면 굴봉산역 기준이 된다. 오른쪽은 달리기대회 이정표로 굴봉산역 기준으로 2.9km 왔다는 뜻이다
조망이 트이는 곳이 많아 멋진 산악미를 감상할 수 있다. 새덕산(462m) 임도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 가까운 첨봉은 굴봉산(385m)이고 그 뒤로 계관산(665m), 북배산(870m)이 차례로 겹친다. 왼쪽 나뭇가지 뒤의 삼각봉은 월두봉(460m)
급경사에 거친 노면도 간혹 있어 라이딩 재미도 더해준다
도치골은 민가가 띄엄띄엄 있는 작은 골짜기다. 민가가 끝나면 곧 경사가 급해지면서 산기슭으로 올라붙는다. 이제부터 새덕산(462m) 동쪽 기슭을 주파해야 하는데, 숱한 지능선을 돌고 도는 등고선으로 따라가니 직선거리 3km가 무려 10km나 된다.
진갈색으로 물든 낙엽송이 울창한 숲길은 원시미가 느껴지고, 응달진 북사면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간간이 조망이 트이면서 북한강 저편의 고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68m)과 응봉(1436m)이 웅장한 덩치로 시선의 끝을 가로막고, 명지산(1267m)과 연인산(1068m)도 수많은 산줄기 저편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가까이는 춘천의 수문장격인 삼악산(654m)과 등선봉(632m)이 첨봉으로 하늘을 찌른다.
인공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 장쾌한 산악 조망에 도시에서 아주 동떨어진 강원도 내륙의 고산에 오른 것만 같다. 가까이는 굴봉산역과 강촌cc 사이에 솟은 굴봉산(385m)이 바늘끝 같은 첨봉을 이뤄 지형의 입체감을 더해준다. 조망이 트일 때마다 펼쳐지는 장관에 가다서다를 반복해 진행은 느리지만 시청각적 쾌감은 대단하다.
경기도 최고봉 화악산(1468m, 뒤 왼쪽)과 응봉(1436m, 뒤 오른쪽)의 웅장한 전모가 드러났다. 오른쪽 아래 삼각봉은 월두봉
낙엽송 사이로 햇살이 번지는 길목이번에는 경기도 2위봉인 명지산(1267m)이 보인다. 첩첩산중이 대단하다
새덕산 허리를 돌아나가면 새덕산~봉화산을 잇는 주능선 안부의 한치령을 향해 업힐이다. 고개 높이가 해발 380m나 되어 산체에 비해 매우 높다. 고갯마루에는 한치령 비석이 서 있고 1972년 군부대가 개설한 것을 새겨놓았다. 당시는 공병부대가 작전도로를 겸해 오지에 도로를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험지에 길을 닦느라 장병들의 고생이 극심했을 것이다. 고역에 찌든 병사처럼 검게 그을리고 초라한 비석 때문인지 한치령이 ‘한(恨) 치’로 읽히지만 옛지도에는 한안치(寒雁峙)로 되어 있다. 한겨울, 기러기도 힘겹게 넘던 고개라는 뜻일까.
코스 도중에는 강촌챌린지 주최측에서 세워놓은 이정표가 간간이 있다. 강촌역 기준이라 수치에 10km를 빼면 굴봉산역 기준 거리가 된다.
고개를 넘으니 밝고 따스한 남사면이라 체감온도와 분위기가 일변한다. 널찍한 길을 따라 능선을 돌아 다운힐 하면 두 계곡이 모여드는 합수점에 작은 저류지로 내려서게 된다. 미나리폭포 방면 갈림길을 막고 선 녹색 철문에 놀랐으나 빗장이 열려 있다. 알고 보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를 막기 위해 멧돼지가 물가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로, 길가에는 멧돼지 포획장치도 보인다.
아직 눈은 오지 않았지만 북사면에는 하얀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춘천의 수문장인 삼악산(654m, 오른쪽 뒤)과 등선봉(632m)이 날카롭고, 근경의 무던한 봉화산 줄기와 대비된다
봉화산과 함께 일대 산줄기를 거느리고 있는 검봉(530m, 근경의 오른쪽). 능선과 계곡, 숲이 깊어 강원내륙의 심산 같다
저류지는 해발 150m로 뚝 떨어져 코스 중 가장 높은 문배고개(420m)를 오르려니 눈과 마음이 먼저 지친다.
저류지에서 500m 남짓 가면 왼쪽으로 거대한 암벽이 나오고 그 옆으로 가느다란 미나리폭포가 떨어진다.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미나리 줄기처럼 가늘다는 뜻 같다. 높이는 10m가 채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문배고개 저편의 구곡폭포를 문폭(文瀑), 미나리폭포를 무폭(武瀑)이라 불렀다는데 무보다 문을 숭상해 큰 폭포가 문폭이 되고 작은 폭포가 무폭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미나리폭포 옆의 거암이 마치 칼을 쥔 장군 같다고 해서 무폭이 되지 않았나 싶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오르막도 한발 한발 고도를 높여가니 어느새 고개 정상이다. 봉화산 정상이 400m 거리여서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된다면 도보로 다녀오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배고개에서는 구곡폭포 주차장까지 고도차 300m, 갈이 4.5km의 긴 다운힐이다. 이 구간은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을 돌아보는 보행자와 자동차 간혹 있어서 과속과 코너링에 주의해야 한다.
한치령에서 철문 건너 맞은편으로 내려왔다. 철문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를 막기 위해 멧돼지가 물가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이다. 빗장을 열고 통과한 다음 다시 잠궈놓아야 한다길가에 설치된 멧돼지 포획시설
장군바위 옆으로 가늘게 떨어지는 미나리폭포
코스에서 가장 높은 문배고개(420m) 정상
다운힐 도중 문배마을로 좌회전한다. 예전에 두 번이나 그냥 지나쳤다가 이제야 가보는 신비의 마을이다. 높이 50m나 되는 수직의 거폭인 구곡폭포 상류이면서 깊고 험한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는 문배마을은 천혜의 은둔지다. 해발 350m 깊은 산속에 2만평 남짓한 고원이 숨어 있을 줄이야. 일반 배보다 작은 문배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마을이 길쭉해 배를 닮았다고 해서 문배마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옛지도에 ‘문포(文浦)’로 표기된 것을 보면 배 모양 마을에서 유래했거나, 문폭(文瀑)으로 불린 구곡폭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지독한 은둔지였겠지만 지금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이색 맛집 마을로 변신했다. 주인 성씨를 딴 9군데 식당이 마을과 주민의 전부다. 하기야 이 작은 땅으로 자급농이 불가능하니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겠다.
마을 하류에는 길이 150m 정도의 생태연못이 호젓하다. 둘레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고 수중 분수도 솟구쳐 경관이 특이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생명수일 것이다. 이 물이 흘러내려 봉화산의 최고 명승인 구곡폭포로 떨어지니 폭포를 만드는 원류이기도 하다.
문배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길이 능선을 겨우 파고든 것을 보면 문배마을이 얼마나 깊이 감춰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만평 남짓한 고원분지에 자리한 문배마을은 주인 성씨를 딴 식당 9군데가 주민의 전부다 수중 분수가 치솟는 문배마을 하류의 생태연못. 맞은편으로 빠져나간 물이 구곡폭포로 떨어진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구곡폭포를 향해 걸어간다(자전거 진입불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입장료를 받는데(2000원), 같은 금액의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주니 근처에서 뭐라도 사거나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얄팍한 수지만 효과적이다. 폭포까지는 800m이며 8분 정도면 닿는다.
구곡폭포는 수도권과 춘천 일원을 포함해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자연 거폭이다. 수직의 폭포는 높이가 50m나 되고 주변에는 100m 절벽이 둘러싸고 있어 위압적인 신비감이 감돈다. 전망대는 폭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도 상부를 보려면 고개를 한참 꺾어야 한다.
나는 자연 경관 중 폭포를 아주 좋아한다. 구곡폭포만 해도 지난 20여 년 간 6~7번은 찾은 것 같다. 폭포는, 아주 기이한 현상이다. 본질적으로 수평과 안정을 갈구하는 물이 가장 극적이고 박력 있으며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이는 곳이 바로 폭포다. 낙차가 클수록, 경사가 심할수록 물은 급전직하 쏟아지며, 높이가 아주 높으면 낙하 도중에 수증기가 되어 비말로 흘어지기도 한다. 겨울이면 빙폭이 되어 하얀 얼음기둥으로 남으니 액체와 기체, 고체의 물리적 급변을 상온의 현실에서 구현해낸다.높이 50m의 거폭인 구곡폭포. 주위는 100m 절벽이 에워싸고 있다
사람 크기를 보면 구곡폭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안내소 사진)
폭포수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바위를 깎아내고 땅을 뚫어 섬뜩한 깊이의 소(沼)를 만들어 내니, 그릇 속에 잔잔한 한 줌 액체가 만들어내는 천변만화의 표정에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 옛사람들도 이런 폭포의 특별함에 매료되어 산수화에서 선경(仙境)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소재로 활용했고, 폭포를 바라보는 선인의 모습은 ‘관폭도(觀瀑圖)’라고 하나의 장르를 이루기도 했다. 폭포가 곧 선경이고 도인이 살 것 같은 장소이니 신선이 폭포를 바라보는 모습은 궁극적인 신선경이다.
500m급 산에 이런 거폭이 생겨난 것은 아주 특이하다. 거대한 절벽이 형성된 협곡이 있고, 그 상류에 문배마을 같은 기이한 고원이 수원지가 되어 주니 가능한 일이다. 봉화산은 무던하고 넓은 육산이지만 구곡폭포와 미나리폭포 같은 협곡지대도 품고 있어 사람으로 치면 외유내강 형이다.
구곡폭포의 구곡(九曲)은 산 아래에서 아홉 구비를 돌아들어가야 나온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북한강으로 내려섰다. 앞은 강촌대교, 뒤는 46번 국도 경춘가도가 지나는 등선교
구곡폭포 주차장은 아직 해발 120m나 되어서 북한강까지는 꾸준한 내리막이다. 강변에는 긴 피암터널을 이룬 옛 강촌역이 하염없이 낡아간다. 그나마 카페가 들어서서 사람 손을 타고 있으니 노화는 느리게 진행될 것 같다.
이제 북한강 자전거길이다. 하류 방면이니 아주 완만한 내리막이라 페달링이 가볍고 갈수록 산간풍경도 유연해진다. 길가에는 억새가 흐드러지건만 만져주는 이 없으니 흔들리는 가녀린 몸으로 외로움의 아우성을 친다. 억새여, 너무 서러워 마라, 결국은 누구나 외롭단다.
강물은 깊푸르고 산은 높으며 길은 반듯한데 내내 무인지경이다. 백양리역을 지나 강 건너로 월두봉을 스쳐 가면 출발지인 굴봉산역이 멀지 않다.
보기 안쓰럽게 낡아가고 있는 옛 강촌역
백양리역을 지나는 북한강 자전거길 옆으로 억새가 활짝 폈다. 오른쪽 강 건너로는 월두봉이 우뚝하다
tip
굴봉산역 길목에 있는 강촌레일파크 인근에 편의점과 식당, 펜션이 있다. 구곡폭포 주차장과 강촌역 주변에도 식당과 편의점, 카페, 펜션 등이 다수 있다. 겨울철에는 북사면에 빙판이 형성되기 쉬우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춘천 봉화산 44km
웅장한 산악 조망, 라이딩 재미 탁월
새덕산(462m)과 봉화산(526m) 사이 주능선을 넘는 한치령(380m). 1972년 군부대가 길을 냈다는 기념비가 쓸쓸하다
‘경춘가도’ ‘강촌’ ‘남이섬’… 이런 지명에는 낭만과 자유 그리고 청춘의 향기가 묻어난다. 한때 대학생 MT의 성지였고 서울 교외의 휴양지이자 작은 여행의 설렘이었으니 여정의 종점 춘천은 여전히 낭만의 감흥을 일으킨다.
경춘가도 길목에 자리한 강촌(江村)은 이름부터 소박하고 정겨운 강변마을이고, 지금도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이 강촌의 뒷산을 이루는 봉화산(526m)은 산악자전거 문화가 도입된 초창기부터 라이딩의 명소였다. 서울에서 가깝고 코스가 아름다우면서 스릴 넘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부터 열린 MTB 대회(강촌챌린저)는 가장 많은 동호인이 참가하고 또 동호인이라면 반드시 넘어야할 관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도 베테랑 MTB 동호인이라면 강촌과 관련된 추억이 있을 것이다.
20년만에 다시 강촌으로 향하는 나 역시 아련한 추억에 젖는다. 지독하게 길고 험한 업힐에 고역을 치렀던 기억이 선명하고, 너무 힘들어 풍경을 감상하고 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추억의 코스를 다시 달려본다.
산악코스가 시작되는 도치골 입구. 대회 코스 입간판이 서 있다
출발지는 대회 때의 기점이 되는 강촌역(창촌중)이 아니라 가평에 가까운 굴봉산역으로 잡는다. 강촌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돌면 초반에 북한강 자전거길을 8km 정도 경유하는데, 굴봉산역에서 시작하면 곧장 산길로 들어서고, 체력이 떨어진 귀로에 북한강 자전거길을 타게 되어 부담 작기 때문이다.
한적한 골짜기에 자리한 굴봉산역은 행인을 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하다. 초겨울 아침이라 쌀쌀하지만 하늘은 쨍 하니 맑고 공기는 폐부 깊숙이 청량감을 불어 넣는다.
봉화산은 500m급 산이지만 검봉산(530m)과 더불어 상당히 넓게 퍼져 있어 수많은 능선과 골짜기가 중첩되어 심산(深山)의 면모다. 첩첩산중이라 어디가 주능선이고 어느 방향인지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일단 산에 들어 주위가 보일 정도로 고도를 높이는 것이 첩경이다.
역에서 900m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도치골이 패어 있다. 갈림길 입구에 강촌챌린지 코스지도가 대형 입간판으로 서 있어 알아보기 쉽다.
코스 도중에는 간간이 거리표가 서 있다. 왼쪽이 대회코스 이정표이며, 10km를 빼면 굴봉산역 기준이 된다. 오른쪽은 달리기대회 이정표로 굴봉산역 기준으로 2.9km 왔다는 뜻이다
조망이 트이는 곳이 많아 멋진 산악미를 감상할 수 있다. 새덕산(462m) 임도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 가까운 첨봉은 굴봉산(385m)이고 그 뒤로 계관산(665m), 북배산(870m)이 차례로 겹친다. 왼쪽 나뭇가지 뒤의 삼각봉은 월두봉(460m)
급경사에 거친 노면도 간혹 있어 라이딩 재미도 더해준다
도치골은 민가가 띄엄띄엄 있는 작은 골짜기다. 민가가 끝나면 곧 경사가 급해지면서 산기슭으로 올라붙는다. 이제부터 새덕산(462m) 동쪽 기슭을 주파해야 하는데, 숱한 지능선을 돌고 도는 등고선으로 따라가니 직선거리 3km가 무려 10km나 된다.
진갈색으로 물든 낙엽송이 울창한 숲길은 원시미가 느껴지고, 응달진 북사면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간간이 조망이 트이면서 북한강 저편의 고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68m)과 응봉(1436m)이 웅장한 덩치로 시선의 끝을 가로막고, 명지산(1267m)과 연인산(1068m)도 수많은 산줄기 저편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가까이는 춘천의 수문장격인 삼악산(654m)과 등선봉(632m)이 첨봉으로 하늘을 찌른다.
인공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 장쾌한 산악 조망에 도시에서 아주 동떨어진 강원도 내륙의 고산에 오른 것만 같다. 가까이는 굴봉산역과 강촌cc 사이에 솟은 굴봉산(385m)이 바늘끝 같은 첨봉을 이뤄 지형의 입체감을 더해준다. 조망이 트일 때마다 펼쳐지는 장관에 가다서다를 반복해 진행은 느리지만 시청각적 쾌감은 대단하다.
경기도 최고봉 화악산(1468m, 뒤 왼쪽)과 응봉(1436m, 뒤 오른쪽)의 웅장한 전모가 드러났다. 오른쪽 아래 삼각봉은 월두봉
낙엽송 사이로 햇살이 번지는 길목이번에는 경기도 2위봉인 명지산(1267m)이 보인다. 첩첩산중이 대단하다
새덕산 허리를 돌아나가면 새덕산~봉화산을 잇는 주능선 안부의 한치령을 향해 업힐이다. 고개 높이가 해발 380m나 되어 산체에 비해 매우 높다. 고갯마루에는 한치령 비석이 서 있고 1972년 군부대가 개설한 것을 새겨놓았다. 당시는 공병부대가 작전도로를 겸해 오지에 도로를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험지에 길을 닦느라 장병들의 고생이 극심했을 것이다. 고역에 찌든 병사처럼 검게 그을리고 초라한 비석 때문인지 한치령이 ‘한(恨) 치’로 읽히지만 옛지도에는 한안치(寒雁峙)로 되어 있다. 한겨울, 기러기도 힘겹게 넘던 고개라는 뜻일까.
코스 도중에는 강촌챌린지 주최측에서 세워놓은 이정표가 간간이 있다. 강촌역 기준이라 수치에 10km를 빼면 굴봉산역 기준 거리가 된다.
고개를 넘으니 밝고 따스한 남사면이라 체감온도와 분위기가 일변한다. 널찍한 길을 따라 능선을 돌아 다운힐 하면 두 계곡이 모여드는 합수점에 작은 저류지로 내려서게 된다. 미나리폭포 방면 갈림길을 막고 선 녹색 철문에 놀랐으나 빗장이 열려 있다. 알고 보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를 막기 위해 멧돼지가 물가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로, 길가에는 멧돼지 포획장치도 보인다.
아직 눈은 오지 않았지만 북사면에는 하얀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춘천의 수문장인 삼악산(654m, 오른쪽 뒤)과 등선봉(632m)이 날카롭고, 근경의 무던한 봉화산 줄기와 대비된다
봉화산과 함께 일대 산줄기를 거느리고 있는 검봉(530m, 근경의 오른쪽). 능선과 계곡, 숲이 깊어 강원내륙의 심산 같다
저류지는 해발 150m로 뚝 떨어져 코스 중 가장 높은 문배고개(420m)를 오르려니 눈과 마음이 먼저 지친다.
저류지에서 500m 남짓 가면 왼쪽으로 거대한 암벽이 나오고 그 옆으로 가느다란 미나리폭포가 떨어진다.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미나리 줄기처럼 가늘다는 뜻 같다. 높이는 10m가 채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문배고개 저편의 구곡폭포를 문폭(文瀑), 미나리폭포를 무폭(武瀑)이라 불렀다는데 무보다 문을 숭상해 큰 폭포가 문폭이 되고 작은 폭포가 무폭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미나리폭포 옆의 거암이 마치 칼을 쥔 장군 같다고 해서 무폭이 되지 않았나 싶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오르막도 한발 한발 고도를 높여가니 어느새 고개 정상이다. 봉화산 정상이 400m 거리여서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된다면 도보로 다녀오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배고개에서는 구곡폭포 주차장까지 고도차 300m, 갈이 4.5km의 긴 다운힐이다. 이 구간은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을 돌아보는 보행자와 자동차 간혹 있어서 과속과 코너링에 주의해야 한다.
한치령에서 철문 건너 맞은편으로 내려왔다. 철문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를 막기 위해 멧돼지가 물가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이다. 빗장을 열고 통과한 다음 다시 잠궈놓아야 한다길가에 설치된 멧돼지 포획시설
장군바위 옆으로 가늘게 떨어지는 미나리폭포
코스에서 가장 높은 문배고개(420m) 정상
다운힐 도중 문배마을로 좌회전한다. 예전에 두 번이나 그냥 지나쳤다가 이제야 가보는 신비의 마을이다. 높이 50m나 되는 수직의 거폭인 구곡폭포 상류이면서 깊고 험한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는 문배마을은 천혜의 은둔지다. 해발 350m 깊은 산속에 2만평 남짓한 고원이 숨어 있을 줄이야. 일반 배보다 작은 문배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마을이 길쭉해 배를 닮았다고 해서 문배마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옛지도에 ‘문포(文浦)’로 표기된 것을 보면 배 모양 마을에서 유래했거나, 문폭(文瀑)으로 불린 구곡폭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지독한 은둔지였겠지만 지금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이색 맛집 마을로 변신했다. 주인 성씨를 딴 9군데 식당이 마을과 주민의 전부다. 하기야 이 작은 땅으로 자급농이 불가능하니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겠다.
마을 하류에는 길이 150m 정도의 생태연못이 호젓하다. 둘레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고 수중 분수도 솟구쳐 경관이 특이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생명수일 것이다. 이 물이 흘러내려 봉화산의 최고 명승인 구곡폭포로 떨어지니 폭포를 만드는 원류이기도 하다.
문배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길이 능선을 겨우 파고든 것을 보면 문배마을이 얼마나 깊이 감춰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만평 남짓한 고원분지에 자리한 문배마을은 주인 성씨를 딴 식당 9군데가 주민의 전부다 수중 분수가 치솟는 문배마을 하류의 생태연못. 맞은편으로 빠져나간 물이 구곡폭포로 떨어진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구곡폭포를 향해 걸어간다(자전거 진입불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입장료를 받는데(2000원), 같은 금액의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주니 근처에서 뭐라도 사거나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얄팍한 수지만 효과적이다. 폭포까지는 800m이며 8분 정도면 닿는다.
구곡폭포는 수도권과 춘천 일원을 포함해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자연 거폭이다. 수직의 폭포는 높이가 50m나 되고 주변에는 100m 절벽이 둘러싸고 있어 위압적인 신비감이 감돈다. 전망대는 폭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도 상부를 보려면 고개를 한참 꺾어야 한다.
나는 자연 경관 중 폭포를 아주 좋아한다. 구곡폭포만 해도 지난 20여 년 간 6~7번은 찾은 것 같다. 폭포는, 아주 기이한 현상이다. 본질적으로 수평과 안정을 갈구하는 물이 가장 극적이고 박력 있으며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이는 곳이 바로 폭포다. 낙차가 클수록, 경사가 심할수록 물은 급전직하 쏟아지며, 높이가 아주 높으면 낙하 도중에 수증기가 되어 비말로 흘어지기도 한다. 겨울이면 빙폭이 되어 하얀 얼음기둥으로 남으니 액체와 기체, 고체의 물리적 급변을 상온의 현실에서 구현해낸다.높이 50m의 거폭인 구곡폭포. 주위는 100m 절벽이 에워싸고 있다
사람 크기를 보면 구곡폭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안내소 사진)
폭포수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바위를 깎아내고 땅을 뚫어 섬뜩한 깊이의 소(沼)를 만들어 내니, 그릇 속에 잔잔한 한 줌 액체가 만들어내는 천변만화의 표정에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 옛사람들도 이런 폭포의 특별함에 매료되어 산수화에서 선경(仙境)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소재로 활용했고, 폭포를 바라보는 선인의 모습은 ‘관폭도(觀瀑圖)’라고 하나의 장르를 이루기도 했다. 폭포가 곧 선경이고 도인이 살 것 같은 장소이니 신선이 폭포를 바라보는 모습은 궁극적인 신선경이다.
500m급 산에 이런 거폭이 생겨난 것은 아주 특이하다. 거대한 절벽이 형성된 협곡이 있고, 그 상류에 문배마을 같은 기이한 고원이 수원지가 되어 주니 가능한 일이다. 봉화산은 무던하고 넓은 육산이지만 구곡폭포와 미나리폭포 같은 협곡지대도 품고 있어 사람으로 치면 외유내강 형이다.
구곡폭포의 구곡(九曲)은 산 아래에서 아홉 구비를 돌아들어가야 나온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북한강으로 내려섰다. 앞은 강촌대교, 뒤는 46번 국도 경춘가도가 지나는 등선교
구곡폭포 주차장은 아직 해발 120m나 되어서 북한강까지는 꾸준한 내리막이다. 강변에는 긴 피암터널을 이룬 옛 강촌역이 하염없이 낡아간다. 그나마 카페가 들어서서 사람 손을 타고 있으니 노화는 느리게 진행될 것 같다.
이제 북한강 자전거길이다. 하류 방면이니 아주 완만한 내리막이라 페달링이 가볍고 갈수록 산간풍경도 유연해진다. 길가에는 억새가 흐드러지건만 만져주는 이 없으니 흔들리는 가녀린 몸으로 외로움의 아우성을 친다. 억새여, 너무 서러워 마라, 결국은 누구나 외롭단다.
강물은 깊푸르고 산은 높으며 길은 반듯한데 내내 무인지경이다. 백양리역을 지나 강 건너로 월두봉을 스쳐 가면 출발지인 굴봉산역이 멀지 않다.
보기 안쓰럽게 낡아가고 있는 옛 강촌역
백양리역을 지나는 북한강 자전거길 옆으로 억새가 활짝 폈다. 오른쪽 강 건너로는 월두봉이 우뚝하다
tip
굴봉산역 길목에 있는 강촌레일파크 인근에 편의점과 식당, 펜션이 있다. 구곡폭포 주차장과 강촌역 주변에도 식당과 편의점, 카페, 펜션 등이 다수 있다. 겨울철에는 북사면에 빙판이 형성되기 쉬우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춘천 봉화산 4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