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권강릉 경포대~대관령, 그랜드 시투스카이

자생투어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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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 강릉을 하루에 돌아드니

해발 832m, 대관령 정상은 3월 말에도 눈밭이다. 멀리 강릉시가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내게 강릉은 그리움과 매혹의 온상이다. 딱히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형부터 특별하다. 산과 바다가 거칠게 만나는 동해안에서 넓은 들판이 중간에 끼어 산과 바다, 들 모두가 유연하게 접한다. 북한에는 원산, 함흥, 청진 같은 비슷한 곳이 있지만 남쪽에서는 강릉이 가장 두드러지는 해안평야다.

‘강릉(江陵)’이라는 지명은 아마도 중국 지명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중에 ‘아침 일찍 백제성을 떠나며(早發白帝城)’에 강릉이 등장해서 나는 강릉(국내)을 가보지 않았을 때부터 ‘강릉’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동경과 그리움에 젖곤 했다. 잠시 이백의 시를 보자.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아침 오색구름 속에 백제성을 떠나네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천리 강릉을 하루에 가는 길

兩岸猿聲啼不住(양안원성제부주) 강변에는 원숭이 울음 그치지 않고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가벼운 배는 벌써 만겹의 산을 지났구나

 

이 시에서 2구 ‘천리강릉일일환’과 4구 ‘경주이과만중산’은 당시 중의 최고 절창(絶唱) 중 하나로 꼽힌다. 이백다운 기개와 호탕함, 스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명구다.

양자강 중류에 있는 백제성에서 강릉(현재의 후베이성 징저우)까지는 강 따라 약 360km로 근 천리에 달한다. 백제성과 강릉 사이에는 삼협(三峽)이라는 대협곡지대가 이어지고 급류가 흐르기는 하지만 동력이 없는 일반 배로 하루에 가기는 무리일 것이다. 이백다운 과장법 정도로 봐주자.

하여튼 중국의 강릉은 江陵地區와 沙市地區를 94년에 통합해 징사시(荊沙市)가 되었다가 97년 징저우시(荊州市)로 개명했고 지금은 징저우시에 속한 장링현(江陵縣)으로 겨우 이름이 남았으니 강릉은 한반도에서 더 큰 위세와 존재감을 갖는다.

강릉은 삼국시대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였고 고려 때는 명주(溟州)였다가 1263년(고려 원종 4년) 강릉도(江陵道)가 되었다. 고려말에서 조선 중기까지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로 원산~울진 간 동해안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였다. 지금도 시내에는 대도호부 관아터가 남아 있다.

경포호 남쪽 숲속에 자리한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의 생가 터. 사대부 주거로는 드물게 평지에 자리하며, 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다시 설렘을 안고 강릉에 섰다. 중국 강릉과 달리 강릉에는 큰 강이 없고(남대천이 있긴 하지만) 바다가 질펀하다. 오늘은 해수면과 거의 같은 경포호를 출발해 대관령을 지나 강릉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국사성황사까지, 장대한 시투스카이(sea to sky) 코스를 답파한다. 국사성황사가 해발 920m이니 고도차 900m가 넘는 아득한 업힐이기도 하다.

출발지는 강릉 출신의 남매 허난설헌(1563~1589)과 허균(1569~1618)의 생가터로 잡는다. 생가터는 경포호 남쪽 평지숲에 자리하고 있어 그윽한 운치가 감돈다. 조선조 명문 사대부 집터는 대개 산이나 구릉에 의지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매우 특이한 입지다.

허난설헌은 뛰어난 문재로 여성 최초의 문집을 남겼고, 동생 허균은 시대를 앞서간 사상으로 조정을 뒤흔든 풍운아였다. 누나는 26세로 요절했고, 동생은 49세에 처형당했으니 운명은 가혹했다. 짧은 시간을 살다 갔지만 두 사람이 남긴 유산과 여파는 지금껏 출렁이고 이렇게 생가가 보존되니 사후복락은 크다고 할까.

허난설헌 허균 생가터 주변 솔밭은 아름답고 분위기 있다 

경포호 호반길에 웬 홍길동? 허균의 생가가 근처에 있으니 강릉은 홍길동과도 인연이 있는 셈이다  

생가터 주변은 두부요리로 유명한 초당마을로 평일에도 북적인다. 생가터에서 경포호로 나가 잠시 호반길을 달린다. 둘레 4.5km의 경포호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호수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연호수가 매우 드물어서, 현재 있는 호수와 저수지는 대부분 댐 축조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경포호는 해안의 만(灣)이 모래톱(砂洲)으로 갇혀 생겨난 석호(潟湖)이며, 석호는 속초 영랑호, 고성 화진포 등 동해안에 다수 분포한다. 경포호는 호반을 따라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잘 나 있고, 왠지 혼자보다는 연인과 함께 타는 2인승 탠덤자전거나 가족이 같이 타는 4인승 자전거가 잘 어울린다. 이 아름다운 호반에서는 시속 20km도 너무 빠르다.

경포호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 송정해변 솔밭을 지나 이윽고 남대천변으로 나선다. 기이하게도 남대천(南大川)은 전국 곳곳에 있어서 양양, 무주, 철원, 의성 등지에도 같은 이름의 하천이 흐른다.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마을 남쪽에 흐르는 큰 강’ 정도로 편하게 부른 보통명사 가 ‘남산’처럼 고유명사로 정착한 것 같다. 지금은 남대천이 강릉 시가지를 동서로 관통하지만 원래는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시가지가 북쪽에 있었으니 남대천으로 불렀을 것이다.

남대천 둔치 양안에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어 여유롭게 달리기 좋다. 시내 중심부인 중앙시장 인근은 차들이 빼곡하다. 강릉시내는 길이 좁고 건물이 밀집해 있어 주차난과 교통난이 상당해서 둔치 주차장과 남대천 옆 도로까지 자동차로 뒤덮여 다소 살풍경하다.

강릉시내를 관통하는 남대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양안에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한가롭지만 노면이 좋은 남대천 자전거길

강릉 중심가인 중앙시장 인근은 자동차와 사람이 북적인다 

시내를 벗어나 회산동 방면으로 내륙으로 우회하는 구간. 도로변에 자전거길이 있고, 길가 보리밭이 푸르다  

북적이는 시내를 벗어나 잠시 내륙으로 돌아 여전교를 건너면 대관령 초입인 성산면소재지다.

대관령을 우회하는 영동고속도로가 새로 뚫린 후 옛도로를 활용한 힐클라임대회를 구상한 것이 월간 <자전거생활> 창간 직후인 2002년 말이었다. 국내최초의 힐클라임대회이고, 막상 개최를 하자니 원점회귀 하는 다른 대회와 달리 진행과정이 대단히 복잡했고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일본에서는 이미 힐클라임대회가 성행하고 있어 나라현의 오오다이가하라 힐클라임대회 주최측의 협조로 현장을 보고 많은 도움을 받아 2003년 제1회 대관령 힐클라임대회를 열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도차 800m 길이 18km의 엄청난 업힐이었다.  

성산면에 마땅한 집결지가 없어 영동대학교를 출발지로 삼았는데(지금은 강릉종합운동장이 기점), 첫대회 때 나는 골인지점인 대관령 정상에서 상황을 챙기고 있었다. 아침에 미리 올라갔는데 계측기 작동을 위해 전기를 끌어와야 할 대관령 휴게소 문이 잠겨 있어 평창에서 열쇠수리공을 부르는 소동부터 시작해 진땀을 뺐다. 정상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버스에 타고, 자전거는 트럭으로 내려가기로 했지만 스탭의 제지를 뿌리치고 그냥 타고 하산하는 등 대혼란이 빚어졌다. 트럭이 너무 늦게 도착해 지나는 빈 트럭을 잡고 현금을 주며 즉석에서 하산용으로 투입한 것도 기억난다. 그나마 2회째는 좀 더 완숙해졌고 3회째부터는 강릉에 주최권을 넘겼다. 지금은 전국적인 유명 대회로 자리 잡았지만 코로나 이후 재개되지 않는다니 안타깝다. 어쨌든 대관령 힐클라임대회를 처음 기획한 입장에서 그 길을 다시 가니 감회가 새롭다.

성산면소재지를 지나면 오르막이 본격화되고, 선자령(1157m)과 곤신봉(1131m) 일대 백두대간이 성큼 다가선다. 앞쪽의 사람들은 자동차에 치인 노루를 돌보는 중이다  

대관령박물관을 지나 어흘리 즈음부터 오르막이 완연해진다. 통행 차량이 간혹 있으나 업힐은 2차로여서 큰 부담이 없다.

해발 기준으로 대관령보다 더 높은 고개가 지천이지만 육안으로 볼 때 대관령이 가장 높고 웅장해 보이는 것은, 해수면 근처에서 고갯길이 시작되고 고개와 인접한 선자령(1157m)과 능경봉(1122m)의 거대한 산세와 고도감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이루는 산마루에서 바다로 뻗어 내린 산줄기와 계곡은 길이와 높이 등 스케일에서 내륙의 1500m급산을 능가한다.

산록 경사가 심해 고갯길은 북에서 남으로 비스듬히 기슭을 가르며 상승하는데, 해발 400m쯤에서 영동고속도로 성산1교와 만난다. 계곡 위를 건너는 교량이 아찔하고 그 뒤로는 선자령 방면 백두대간이 웅장하다.

영동고속도로 성산1교가 하늘 높이 지난다. 대관령의 절반 정도인 해발 400m 지점이다 

내가 찾은 때는 3월말인데도 폭설의 여파가 남아 길가에 쌓인 눈이 대단하고, 눈 녹은 물이 도로로 흘러내려 곳곳에 노면이 젖어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길가의 눈은 더 깊어져 대관령옛길 휴게소(720m)는 눈에 묻혀 전망대까지 겨우 들어갔다. 강릉 벌과 해안선은 벌써 아득히 멀어져 가물거린다.

대관령옛길은 대관령박물관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와 이곳을 거쳐 국사성황사로 이어진다. 그러면 해발 950m의 KT중계소를 지나야 하는데, 해발 832m로 훨씬 낮은 현재의 대관령이 아니라 이곳으로 백두대간을 넘은 것은 국사성황사를 들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대관령을 넘을 때는 안전을 위해 국사성황사에 인사를 하는 것이 통과의례 아니었을까.

성산1교를 지나자 길가에 눈이 가득하다. 눈 고장 대관령 답다 

대관령옛길 휴게소(720m). 강릉 시내가 아득히 바라보인다  

대관령옛길 휴게소에서 마주 보이는 제왕산(840m)은 겨울 산 그대로다  


신사임당이 친정인 강릉을 떠나 서울로 가면서 고향마을을 뒤돌아보며 읊었다는 시비는 해발 770m 지점에 있다. 역시 눈에 파묻혀 시의 일부만 드러나 있다. 고개를 넘던 신사임당은 연로한 친정어머니를 언제 다시 볼지 기약 없는 이별이 참으로 애통했을 것이다.


踰大關嶺望親庭(유대관령망친정) 대관령에서 친정을 돌아보며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늙은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외로이 서울로 떠나는 마음

回首北村時一望(회수북촌시일망) 고개 돌려 때때로 북촌을 돌아보니

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저문 청산에 흰 구름만 날아 내리네

 

마지막 구, 자신의 애절한 심사와는 관계없이 무심히 흐르는 흰 구름은 한편 자연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야속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은 나의 고통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우리가 자연에서 기대하고 배우는 것은 바로 무심함의 섭리다.

신사임당 사친시비. 눈에 파묻혀 싯귀 일부만 보인다해발 800m 가까운 지점의 설벽. 높이가 5m를 넘는 곳도 있다  

신사임당시비에서 고갯마루까지는 1km 남짓. 고도차도 얼마 되지 않아 무난하게 정상에 선다. 길가의 ‘大關嶺’ 비는 눈밭 속이고 강릉시내와 해안선은 이제 아스라하다.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 울창한 숲길을 1.2km 오르면 국사성황사다. 일대가 눈밭이고 기온도 서늘해 아직 한겨울 분위기다. 성황사(城隍祠)는 무속풍의 사당인데, 신라말 고승인 범일국사(810~889)를 모시고 있다. 범일국사는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의 수호신으로 강릉단오제의 제향 대상이다. 강릉 출신으로 왕건의 고려 건국을 도운 범일국사는 후세에 병마와 재해를 막아주는 성황신으로 받들어진 것이다. 성황사 옆 산신각은 김유신 장군을 모시고 있다. 김유신 장군은 말갈족의 강릉 침입을 막아낸 적이 있어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대관령 휴게소는 제설 전쟁 중이다대관령휴게소에서 국사성황사 가는 산길이 시작된다. 오른쪽은 선자령 방면 등산로  

해발 920m, 눈밭에 자리한 국사성황사. 왼쪽이 범일국사를 모신 성황사, 오른쪽이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산신각

강릉의 대표 축제이자 전국적으로 유명한 단오제는 바로 여기 국사성황사에서 시작된다. 음력 4월 15일 산신각에서 산신제를 올린 다음, 성황사에서 국사성황제를 지내고 뒷산에서 신목(神木) 단풍나무를 베어 강릉으로 행차한다. 신목은 강릉시내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 봉안했다가 음력 5월 3일 영신제를 지내고 시내를 도는 영신 행차를 한 후 남대천 단오장 제단에 봉안하고 단오제를 치른다.

마침 산신각에서는 무속인들이 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신각은 호랑이의 호위를 받는 신선풍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성황사에는 호랑이 두 마리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활을 든 인물의 화상이 모셔져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범일국사일텐데 무속인에게 물어보니, 김유신 장군과 범일국사를 혼동한 듯 반대로 알고 있다. 활을 든 무인의 모습이라 그런 것 같다.

역사적 인물이 무속적 제의대상이 되는 경우는 적지 않은데, 주로 지역의 외적을 물리쳐준 장군이 대상이 된다. 최영 장군과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곳도 더러 있어서 김유신 장군이 대관령신이 된 것은 이상하지 않다.

성황사 관리자는 내 자전거를 보더니 자신이 제2회 대관령힐클라임 대회에 참가했다며 당시 얘기를 해줘 반가웠다.


말갈족의 침입을 물리친 김유신 장군은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

국사성황사에 모셔신 범일국사. 활을 든 무장의 모습이라 무속인들도 김유신 장군과 혼동했다 

기온이 뚝 떨어져 잘 갖춰 입은 다음 기나긴 다운힐을 시작한다. 노면이 젖은 곳에서는 물이 튀어 불편하지만 그래도 순식간에 고개를 내려섰다. 보광리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다시 산간지대로 들어선다. 지금부터는 백두대간의 맨 아랫자락에 펼쳐진 낮은 산악지대로, 봉우리는 몽글몽글 부드럽고 계곡은 널찍널찍 물이 풍성하며 마을은 점점이 흩어져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과 분위기여서 이동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백두대간과 강릉 사이에 있는 일종의 점이지대인데 이 공간이 상당히 넓다.

아무리 높고 긴 대관령이지만 다운힐은 금방이다. 다만 눈 녹은 물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하산 길 대관령7터널 위에서 바라본 상행 방면 영동고속도로. 왼쪽 능경봉(1122m)과 오른쪽 철탑이 선 KT중계소 사이에 대관령이 있다

보광리에서 동쪽으로 내려가 동해고속도로를 지나면 시내가 멀지 않다. 위촌리 개울가 작은 동산에 정자가 있어 잠시 쉬는데, 설명을 보니 흥미롭다. 남녀 생식기를 닮은 바위가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노골적인 이름을 붙이지 못해 신암(腎巖)이라고 한다. 자연이 이뤄낸 우연의 일치가 묘하다.

신암에서 위촌천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경포지(경포저수지) 상류가 나온다. 인적 없는 산간 저수지 옆으로 실낱같은 길이 뻗어나는, 멋진 풍경이다. 경포저수지는 길쭉한 형태인데, 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로 자연호수인 경포호와는 다르며, 경포호의 상류에 해당한다. 낮은 산줄기 속에 길게 이어지는 특이한 산중 호수는 신비로움마저 발산한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말단 구릉지를 두런두런 돌아보는 길목. 트레킹코스인 강릉바우길도 곳곳에서 마주친다 아늑한 구릉지 사이에 자리한 망월이마을. 왼쪽 멀리 칠성산(952m)이 흰 눈을 이고 있다 

노골적으로 생긴 신암(가운데). 다리 저편에는 여성 생식기를 닮은 바위가 있어 신기하다

그윽한 정취가 일품인 경포지 호반길   

황혼이 어리는 경포지 

경포지 댐을 내려와 위촌천을 따라 1km여 가면 신사임당과 이율곡의 생가인 오죽헌이다. 오죽헌은 낮은 구릉에 의지하고 있어 완전한 평지인 허난설헌, 허균 생가터보다 안정감을 준다. 입구에는 ‘세계 최초 母子 화폐 인물 탄생지’라며 5만원과 5천원 권을 모은 조형물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각각 화폐 인물이 된 것은 ‘세계 최초’라고 할 정도로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 두 사람이 위인이기는 하지만 몇 장 되지 않는 화폐에 각각 들어간 것은 좀 지나치다. 게다가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화폐 아닌가. 현행 화폐의 인물은 세종대왕, 이순신, 이퇴계 등 모두 조선조 인물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두 사람을 한 화면에 도안하고, 고액권은 고려 이전의 위인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경포지 댐 아래에는 '효사상 세계화의 발원지'라는 테마로 시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유래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다 오죽헌 입구의 ‘세계 최초 母子 화폐 인물 탄생지’ 조형물. 몇 장 되지 않는 지폐에 어머니와 아들이 각각 들어간, 정말 희귀하고 특별한 사례다경포천을 따라 경포호 가는 길에 뒤를 돌아 보았다. 멀리 백두대간이 희미한 하늘금을 그린다 

경포호 상류에 자리한 경포가시연습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오죽헌 옆에는 습지 공원으로 조성된 경포생태저류지가 있고 둘레에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저류지를 거쳐 경포천 하류로 내려가면 경포가시연습지에 이어 경포호가 나온다. 경포호 주변은 꽤 넓은 들이 펼쳐져 탁 트인 개방감이 좋다. 그러고 보니 강릉에는 바다, 호수, 들판, 고개, 산이 다 있다. 그것도 그냥 바다, 호수, 고개가 아니라 국내 굴지의 경관과 스케일을 자랑하니 강릉행은 언제나 동경과 설렘을 동반한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경포대~대관령 6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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