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권대관령고원 일주

자생투어
2024-07-31
조회수 116

폭염에도 시원한 해발 800m 고지대

 

초원 능선 따라 하얀 풍력발전기가 도열하고 그 사이를 잇는 길도 하얗다. 뒤편으로 대관령고원 중심부가 펼쳐져 있다. 오른쪽 뒤는 일대에서 가장 높은 발왕산(1458m), 왼쪽 풍력발전기 뒤는 고랭지채소밭 안반데기를 품고 있는 고루포기산(1238m)    


매번 그렇지만 ‘올해 여름’이 가장 덥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사람들은 ‘피서’를 빌미로 바다와 계곡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다와 계곡은 물에 몸을 넣어야 시원하니 사전사후 과정이 번거롭다. 이럴 때 좋은 대안은 아주 높은 고지대로 가는 것이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한여름에도 20도를 잘 넘지 않는 백두산과 관모봉(2541m) 사이 개마고원이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을 것이다. 그나마 남한에서 평지보다 4~5도 기온이 낮은 고원지대는 대관령과 태백시가 대표적이다. 산간내륙에 자리한 태백은 접근 과정에서 고도가 천천히 올라가 고지대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면, 대관령은 해안이 가까워 강릉 쪽에서 접근할 경우 엄청난 고개를 올라야 하고 시각적으로도 고도감이 압도적이다.

대관령 고원전지훈련장이 출발점이다. 사진은 훈련장 입구의 조형물.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기념관도 이곳에 있다  

대관령은 단순히 고개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명이 되었다. 원래는 평창군 도암면이었으나 2007년 대관령면으로 바뀌었다. 대관령(832m)은 평창과 강릉 사이에 있으며 고개 서쪽에는 지름 8km 남짓한 고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 고원지대가 곧 대관령면이다. 때문에 ‘대관령고원’이라는, 지리명칭 고개와 고원이 겹치는 기이한 지명이 통용된다. 예전에는 중심 마을 이름을 따서 ‘횡계고원’이라고도 했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 시원하고 건조한 공기를 찾아 나는 이 높은 고원으로 향했다. 그날 강릉 평지가 33도였는데 고원에 도착하니 28도로 뚝 떨어졌다. 면사무소가 있는 횡계리 일대가 고원의 중심이면서 지대가 가장 낮은데도 해발 740m나 되고 주변의 웬만한 산줄기에 오르면 1000m를 쉽게 넘어선다. 해발 1000m만 올라가도 기온은 25~6도로 더 떨어지고 바람까지 분다면 시원함을 넘어 서늘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목가풍이 물씬한 초원과 하얀 풍력발전기 그 사이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주무대이기도 했던 대관령고원은 곳곳에 올림픽의 흔적과 여파가 남아 있으나 퇴색 분위기도 완연하다. 올림픽 덕분에 지역이 새롭게 단장되고 많은 경기장과 시설이 들어섰으나 올림픽이 끝나면서 남은 시설들이 방향성을 잃은 느낌도 든다.

마을 외곽에 자리한 ‘대관령 고원전지훈련장’을 기점으로 잡는다. ‘대관령고원 전지훈련장’이 아니라 ‘대관령 고원전지훈련장’으로 띄어쓰기 하나가 의미를 확연히 바꾼다. 폭염을 피해 여름 전지훈련장으로 인기가 높은 듯 이미 전국에서 많은 축구팀이 모여들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송천은 황병산(1408m)에서 발원해 대관령목장을 거쳐 오는 물길이다. 송천을 따라 대관령목장 방면으로 북상하다 하늘목장을 조금 지난 곳에서 임도로 진입한다. 임도 차단기에는 하늘목장 소유의 사유지임을 알리는 글이 붙어 있다.

건너편으로 마주보이는 대관령 삼양목장. 왼쪽이 관광객이 오를 수 있는 최고지점인 동해전망대(1140m)이고 오른쪽 봉우리는 곤신봉(1132m)  

대관령고원 북쪽에서 가장 높은 황병산(1408m). 군시설이 있어 접근할 수 없다. 오른쪽에 삼양목장에서 가장 높고 초지를 이룬 소황병산(1329m)이 보인다

주능선에는 금방 올라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파른 업힐이 2km나 이어진다. 임도 초입이 해발 800m 정도이고 주능선은 근 1000m에 달하니 당연한 오르막이다. 해발 950m선을 넘어서자 갑자기 바람이 시원해지고 1000m를 넘어서는 과연,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한여름에 맛보는 이 서늘함이란… 역시 까마득히 높은 고지구나 싶다.

초지로 개간된 주능선 일대에는 하얀 풍력발전기가 도열해 있고 능선 기복을 따라 일렁이는 시멘트길도 하얗다. 초록색과 하얀색 그리고 하늘색만 있으면 완성할 수 있는 풍경화 속이다.

동쪽 골짜기 저편에는 대관령 삼양목장 초지와 풍력발전기들이 가깝고, 북서쪽 멀리는 일대에서 가장 높은 황병산(1408m)이 장중하다. 황병산 정상 일원은 군부대와 훈련장이 있어 출입할 수 없다. 남쪽으로는 대관령고원이 고산에 둘러싸여 별격의 고지대 풍광을 그려낸다. 배경을 이루는 산자락에는 스키장 슬로프가 흘러내리고 먼 능선 위에는 풍력발전기가 하얗다.

백두대간 상의 선자령(1157m)이 수많은 풍력발전기를 거느리고 있다. 가히 '폭풍의 언덕' 답다   

가만히 보니 풍력발전기 날개를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풍력발전기는 한번 설치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유지 관리에도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 능선에서 가장 높은 풍력발전기는 해발 1140m에 있고 나머지 발전기들도 해발 1050~1100m 지대에 분포한다. 초지만 유지하고 방목은 않는 것으로 봐서 목장으로 활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황병산에서 흘러내린 완만한 능선을 활용한 초지는 조망이 탁 트이고 고도감이 헌칠하지만 바람을 많이 맞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 목장보다는 풍력발전에 최적일 것 같다. 바람이 심하지 않은 지금도 발전기 바람개비는 기계와 바람이 엇박자로 얽히는 굉음을 내며 쉼 없이 돌아간다. 바람개비가 바다쪽이 아니라 내륙방향, 서쪽을 보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주로 서풍이 부는 편서풍지대이기 때문이다. 바람개비 방향은 조정이 가능하다.

완만한 구릉을 넘어가며 상하좌우로 살짝 요동치는 길이 예쁘다. 왼쪽 발전기는 바람개비 교체작업 중이다  고산준령에 에워싸인 대관령고원. 스키 슬로프가 흘러내리는 발왕산이 진산처럼 내려다보는 듯

길과 풍경이 아까워 달릴 수가 없구나....

초지를 내려와 의아지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고랭지밭과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농로가 구릉지를 넘어간다. 평야지대의 농로가 바둑판처럼 직선과 수직의 교차점으로 이뤄진다면, 대관령고원의 농로는 각자 흩어져 있는 산촌과 구릉지를 따라 무한 불규칙이다. 고랭지밭에는 배추와 감자, 당근이 농담의 차이를 두고 초록의 향연을 펼친다. 부드럽게 만곡하는 지면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줄지은 작물을 시선을 낮춰 바라보면 마치 대군이 집결한 듯 장관이다.

대관령초등학교 부근 ‘대관령산채백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북향하면 대관령고원지대에서 상대적으로 외지고 특별한 차항리 고랭지밭 지대로 들어선다. 길이 2.5km 폭 1km 정도이며 다른 지역과 동떨어져 별도의 분지처럼 느껴진다.

차항리 고랭지밭 가는 길. 지형도 풍경도 이국풍이 진하다여린 연두빛으로 밭두렁을 가득 메운 당근.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위세가 대단하다

집들은 한 가구씩 동떨어져 있다

산자락 높은 곳까지 개간했다 

초원 같은 고랭지밭 사이로 뻗어나는 하얀 길은 상하좌우로 변화가 심해 조금만 가도 새로운 경관이 나오고 독립적으로 있는 집도 예쁘다. 강원도 외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자못 이국적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한 풍경이지만 처음 개간할 때는 엄청난 공역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내가 지나칠 때 부럽게 바라보는 눈빛이 애처롭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면서 큰돈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가 성공하길 바란다. 나의 바로 윗세대만 해도 저들처럼 해외 부국으로 돈 벌러 다녔으니 참 격세지감이다.

고랭지밭은 완만한 골짜기 안에 갇힌 지형이라 바람이 잘 불지 않고 아늑하다. 안반데기가 산꼭대기 경사면에 있어 조망이 좋고 지형도 극적인 것과 대비된다.

비탈진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진초록 색깔도, 부드러운 능선도 고혹적이어서 이곳이 밭이란 것을 잊는다옥수수 밭에 파묻혀 지붕만 보이는 농가

차항리 고랭지밭을 벗어나 남쪽으로 투구봉~칼산 능선을 넘어가면 지금까지와는 딴판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리조트 지대로 들어선다. 평창올림픽 때의 경기장이 곳곳에 보이고 일대의 분위기도 올림픽 여운이 물씬하다. 알펜시아 리조트는 스키장과 골프장, 각종 놀이기구까지 시설이 굉장하고 이용객도 적지 않다. 산과 바다로만 피서 가는 것은 아니구나 싶다.

저쪽으로 스키점프대가 야산 위에 까마득하다. 오늘 여정의 마침표는 스키점프대다. 스카이다이빙이나 패러글라이딩처럼 낙하산을 이용해 체공시간을 늘이는 것과 달리 ‘점프’ 방식으로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하늘을 나는 것이 스키점프다. 점프거리는 무려 120m를 넘는다. 실전이나 경기장을 본 적이 없어 항상 궁금했다.

고원 남쪽은 세련되고 고급스런 리조트 분위기로 일변한다

스키점프대와 전망대는 6천원을 내면 점프대 출발대까지 가서 안내원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점프 착지 지점이자 관중석이 있는 알펜시아 스타디움에서 매표를 하고 모노레일로 4분 올라가면 점프대 전망대 입구다. 점프 출발지점은 도약대의 길이와 높이에 따라 두 곳으로 나뉘며, 노멀힐 K-98은 지상 24.4m, 라지힐 K-125는 지상 46.6m에 출발점이 있다. 착지면과의 높이 차는 K-98 104m, K-125 127m이다. 아무리 대단한 자전거 점프대라고 해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K는 비행 기준거리를 뜻하며 K-98은 도약대에서 98m 지점에 K포인트가 표시되어 선수가 이 기준선을 넘기면 기본점수 60점을 획득한다. K-125는 도약대에서 K포인트 선까지 125m나 된다. 점수는 비행거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행, 도약, 비행, 착지 4가지로 채점한다.

뒤쪽에서 바라본 스키점프대. 전망타워는 높이가 93m이다  스키점프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펜시아 리조트스키점프대 전망대에서 본 알펜시아 리조트. 오랜만에 왔더니 언제 이런 거대한 리조트가 생겼는지 놀랍다. 올림픽의 힘이다

전망대에서 본 대관령고원의 중심지 횡계리. 맨뒤 능선 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대관령(832m)이고 그 오른쪽 봉우리는 능경봉(1123m)

안내에 따라 K-98 출발점을 가보았다. 전망타워에서 출발대까지 접근하는 구간은 바닥이 구멍이 뚫린 철판이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한발도 떼기 어려울 정도다. 40도 경사면을 따라 선수들이 출발 전에 앉는 가로대가 걸려 있다. 아무리 선수라고 해도 최초로 시도할 때는 얼마나 긴장되고 떨릴까. 점프 후에도 계속 자세를 잡아야 하니 스카이다이빙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안내원이 국내 스키점프 선수가 총 5명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래도 1년에 두 번 5명이 출전하는 대회가 열린단다. 올림픽이 열리긴 했지만 5명의 선수를 위해 이런 거창한 시설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래쪽에서 바라본 스키점프대. 왼쪽이 K-98, 오른쪽이 K-125 점프대다. K-125 점프대는 착지면에서 정상부까지 높이가 127m나 된다

K-98 점프대 출발점에서 내려다본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관중석 뒤로 선수들의 단계적 적응 훈련을 위해 길이와 난이도가 차례로 높아지는 3개의 점프대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다 

스키점프대를 나와 도로로 들어서니 스키 대신 롤러를 단 장비를 타고 청소년 선수들이 도로 훈련을 하고 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듯, 아무리 고원이라지만 뙤약볕인데 내가 지쳐서인지 선수들이 더 힘들어 보인다. 길가에서 러닝 훈련 중인 선수들도 적지 않다. 역시 이 고원은 여름 전지훈련장으로 인기가 높은가 보다.

귀가길, 마침 금요일 오후여서 강릉행 고속도로가 꽉 막혔다. 옛 도로를 이용해 대관령을 내려가는데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온도계가 쑥쑥 올라가고 있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대관령고원 일주 42km


1 0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6로 21, 508호

고객센터 : 010-7667-6726(문자전용)

EMAIL : bicycle_life@naver.com

업무시간 : 10:00 ~ 16:00| 점심시간 : 12:30 ~ 13:30 

(토/일/공휴일 휴무)

사업자등록번호 : 851-41-00134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2017-서울강서-0690호

대표자 : 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