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허리춤 돌고 돌아 80리
계속 가야하나, 돌아서야 하나... 실로 진퇴양난이다. 대궁산 북사면으로 접어들어 대간을 향해 깊숙이 진입하면 인적이 끊어져 길은 잡초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온 길이 아까워 일단 가보기로 한다
어디로 갈까? 시계방향, 반시계방향? 출발지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아직도 진행 방향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해발 1100m를 넘는 백두대간을 향해 가는 지금의 목표는 내게 숙적으로 남아 있던 ‘사기막 임도’ 바로 그곳이다.
‘사기막 임도’는 강릉에서 요양을 시작한 이후 넘어야 할 목표 중 하나였다. 편도 길이만 29km이고 고도차가 600m에 달하는 이 임도를 완주할 정도면 거의 정상 컨디션이 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처음에는 시계방향을 생각했다가 다가설수록 반시계방향도 그럴 듯하게 느껴져 고민하고 있다. 어디로 가든 원점회귀이긴 하지만 노면 상황이나 분위기, 조망, 업다운의 길이와 난이도도 감안해야 한다.
출발지로 잡은 곳은 사기막 마을회관. 작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옛날식 매점도 있다. 아직도 어디로 갈까 주저하고 있는데 자전거는 속절 없이 출발했고 방향이 갈리는 사기막교차로에서 핸들은 왼쪽으로 돌아갔다. 코스 최고점까지 전체적으로 업힐이지만 업다운이 다소 뒤섞인 방향으로 올라 일률적인 다운힐을 즐기기로 했다. 전반적인 업힐 20km, 다운힐 10km에 달하는 거창한 코스다.
사기막 마을회관 옆 정자 쉼터. 높직한 터에 일대가 작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마을회관에서 올려다본 백두대간. 구름이 닿은 오른쪽 봉우리는 매봉(1173m), 왼쪽 봉우리는 삼양목장 동해전망대(1140m) 일원이다. 용연계곡은 두 산 사이에서 발원해 사기막저수지까지 이어지고, 임도는 산줄기 허리를 돌아나온다. 갈 길이 아득하구나
원래 사기막 임도는 사기막 마을에서 용연계곡을 따라 매봉(1173m) 아래까지 갔다가 계곡 상류를 돌아 곤신봉(1135m)~대궁산(1008m) 헐히를 돌아 보현사 근처 보광리까지 이어진다. 여기서는 사기막마을을 기점으로 원점회귀 코스를 꾸미다 보니 보현사 방면 9km 구간 대신 명주군왕릉 방면 9km 임도로 대신했다.
사기막 마을에서 성산면으로 넘어가는 멍어재(305m)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임도가 시작된다. 이 길은 300m급 지능선을 좌우로 에워싸며 대궁산(1008m) 방면으로 올라가다 사기막 임도와 합류하며, 도중에 명주군왕릉 근처를 지난다. 강릉시가 조성한 트레킹 코스인 ‘강릉바우길’도 상당부분 겹치지만 인적이 드물어 잡초를 대비해 긴팔 긴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멍어재 오르는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임도가 시작된다. 처음부터 가파른 업힐이고 트레킹코스 강릉바우길과도 겹친다
초입부터 가파른 업힐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장장 5km나 이어지고 조망이 트이는 곳도 별로 없어 라이딩에만 집중하게 된다. 출발 후 1.2km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나중에 서로 만나는 길이지만 왼편이 업힐이 조금 짧고 명주군왕릉을 들리기도 좋다.
강릉시내와 들판이 멀지 않은데도 인적이 없으니 심심산골 적막강산이다. 한때 벌목지였던 곳에서 잠시 조망이 트여 저 멀리 동해안이 보인다. 고도는 300m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완만하게 경사진데다 해안 옆이라 훨씬 높고 멀게 느껴진다.
이윽고 길은 능선 위로 올라서고 명주군왕릉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으로 400여m 내려가면 명주군왕릉이 있으며, 다시 돌아 나와야 하지만 잠시 들러보는 것도 의미 있다. 무덤의 주인공 김주원은 8세기 신라 왕족으로 홍수 때문에 길이 막혀 왕위에 오르지 못한, 우리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왕위쟁탈전의 피해자이다.
업힐 도중 전망이 트인 벌목지 모퉁이에 누군가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멀리 동해안과 사천진 일원이 보인다. 현재 고도가 300m 밖에 되지 않으나 더 높고 멀게 느껴지는 것은 해안에서 곧장 솟은 산인데다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이다
왕위쟁탈전에서 밀린 김주원은 외가가 있던 강릉으로 내려와 칩거하고 있는 동안 김주원의 동태가 불안했던 원성왕은 그를 견제하고 달랠 겸 강릉과 주변 동해안 일원을 식읍(食邑, 자체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영지)으로 내리고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했다. 당시는 봉건제가 아닌 중앙집권체제였는데 마치 봉건영주처럼 지방의 왕으로 봉(封)한 것은 지역 세력을 가진 김주원을 견제, 위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주원은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어 강릉의 위인으로 섬겨지고 있다.
8세기 신라의 무덤이지만 조선조 왕릉처럼 부드러운 산줄기에 둘러싸인, 높직한 언덕에 터 잡고 있고 왕의 무덤을 칭하는 릉(陵)과 신하 이하에 쓰는 묘(墓) 표기가 혼재하는데서 주인공 김주원의 단순치 않은 삶과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명주군왕릉은 8세기 신라 왕위쟁탈전에서 밀린 김주원의 무덤이다. 그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직계로 강릉김씨의 시조가 된다
용연계곡을 감싸는 사기막임도 20km 구간 주변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임도는 이 관리를 위해 개설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명주군왕릉을 돌아 나와 600m 정도 완만한 업힐을 하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길이 앞서 임도 초입에서 만난 갈림길이 합류하는 것이고 사기막임도는 왼쪽 급경사 언덕으로 가야 한다. 이정표가 있는 송명골 삼거리에서 우회전 900m를 가면 임도차단기가 있는 삼거리인데 이제부터가 사기막 임도 본류다. 어느새 고도는 해발 540m에 달하고 왼쪽 길은 보현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9km의 지선 코스다.
삼거리에서 사기막 방면은 ‘공사중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으나 일단 진행해보기로 한다. 한참을 가다 조우한 공사장은 폭우에 길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궁산 북사면의 작은 골짜기마다 길 밑으로 배수관을 설치하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 중인 사람들은 대부분 연로했는데 “수고 많으십니다”하고 인사하니 산중에서 만난 자전거도 격려해 준다. 인적 없는 깊은 산중이라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해진다. 때로 타인은 악몽일 수 있지만 오지에서 마주친, 적의 없는 사람은 의지처가 된다.
명주군왕릉을 나와 능선 따라 가면 사기막 마을에서 올라오는 다른 길(오른쪽)과 합류한다. 직진이 사기막 임도 방향이다
사기막 임도 안내도. '현위치' 표시는 보현사 방면 9km 코스의 분기점으로 나는 사기막저수지 동쪽 사기막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간혹 조망이 트이면 장쾌한 경관을 보여준다. 앞 왼쪽은 눈높이가 된 운계봉(529m), 오른쪽 멀리 보이는 시가지는 주문진 남쪽 연곡면 일대다
한동안 길은 북사면이라 한낮인데도 어둑하고 음습하다. 공사 현장에서 얼마 가지 않아 길바닥에 남은 인적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잡초가 길을 뒤덮었다. 계속 가야하나 돌아서야 하나 난감할 정도인데 길이 완전히 묻힌 것은 아니어서 전진은 가능하다. 이런 구간이 잠깐이면 괜찮은데 계속 이렇다면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온 것이 아까워 ‘조금만 더’ 하는 심정으로 진행했더니 길이 북사면을 벗어나자 잡초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풍력발전기 날개도 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곤신봉과 매봉 사이 어디쯤이니 삼양목장 동해전망대 근처일 것이다. 저곳은 관광버스를 타고 편하게 오를 수 있고 평상복 차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백두대간 허리춤에 올라붙었다는 것은 사기막 임도의 최고지점에 근접했다는 뜻이다. 삼양목장 동해전망대(1140m)에서 흘러내린 능선 북사면에서 해발 630m에 이르러 최고점에 이르고, 용연계곡 최상류를 지나 길이 북사면으로 접어들면 서서히 다운힐이 시작된다. 무려 10km의 내리막이다.
북사면 깊숙이 들어왔다. 용연계곡 건너편으로 나중에 내려갈 길이 보인다. 왼쪽 멀리 소금강계곡을 낀 천마봉(1014m)이 톱날 능선을 드러내고 있다 대궁산 북사면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 숲이 짙어서 원시미가 물씬하다
대궁산 북사면을 벗어나자 길이 좋아졌다. 정면 뒤편으로 동해전망대 부근의 풍력발전기 날개 두 개가 보인다. 업힐이 거의 끝나고 대간 허리에 근접했다는 신호여서 반가운 모습이다
해안선이 한층 멀어지고 시점은 높아졌다. 대간 허리춤에서 바라본 동해고속도로 사천교가 높직하고, 그 뒤로 맨 왼쪽은 강릉 아산병원, 오른쪽은 경포호 주변의 랜드마크인 스카이베이호텔이 뚜렷하다
브레이크를 잡은 손가락이 아파 쉬기는 참 오랜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내리막... 여기 구간은 관리 차량이 자주 다니는 듯 노면은 마사토가 깔려 있고 길을 침범한 잡초가 거의 없다. 인공미가 강해진 대신 야생미는 줄어들었고 코너링에서는 마사토의 미끄러짐을 조심해야 한다. 2.8인치 초광폭 머드 타이어도 한 순간에 미끄덩이다.
아무리 길다 해도 내리막은 공간도 시간도 휙휙 지나가기 마련. 예전에 시험 삼아 올랐던 목재 야적장이 나타났다. 그득했던 목재는 크게 줄었고 백두대간과 오똑한 매봉은 다시 저 멀리 물러났다. 대신 길옆으로는 어느새 물이 콸콸 흐르는 큰 계곡이 나란하다. 이윽고 계곡수는 점점 물이 불어나 사기막저수지로 모여들고, 차단기와 함께 길고 길었던 임도도 끝이 난다. 갈수기에 물이 졸아든 저수지를 지나면 마침내 마을이 나타나면서 산에서 벗어나 인간계로 들어서고 출발지인 사기막 마을이 금방이다. 두 바퀴 위에서 잠시나마 ‘자연인’과 ‘출가’를 경험한 시간이다.
사기막 임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면, 왼쪽은 경사면 오른쪽은 경사가 엄청난 절벽 지대가 많다
사기막 임도 북단에서 분기하는, 신왕리 방면 지선 임도(2km) 초입에서 바라본 대궁산(1008m, 가운데 평탄한 정상부)과 곤신봉(1135m, 오른쪽 풍력발전기 있는 봉우리)
신왕리 임도에서 본 강릉시가지. 오른쪽 끝에 보이는 긴 방파제는 한국남동발전 영동에코발전본부 전용부두 보호용이다
예전에 시험삼아 사기막마을에서 여기까지 올랐을 때는 목재가 가득했는데... 목재가 크게 줄어든 야적장. 이제 사기막 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도가 낮아지만 임도는 용연계곡과 나란히 달린다
장마철 이후 8월 중순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사기막 저수지 수위가 크게 내려갔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강릉 사기막 임도 일주 33km
백두대간 허리춤 돌고 돌아 80리
계속 가야하나, 돌아서야 하나... 실로 진퇴양난이다. 대궁산 북사면으로 접어들어 대간을 향해 깊숙이 진입하면 인적이 끊어져 길은 잡초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온 길이 아까워 일단 가보기로 한다
어디로 갈까? 시계방향, 반시계방향? 출발지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아직도 진행 방향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해발 1100m를 넘는 백두대간을 향해 가는 지금의 목표는 내게 숙적으로 남아 있던 ‘사기막 임도’ 바로 그곳이다.
‘사기막 임도’는 강릉에서 요양을 시작한 이후 넘어야 할 목표 중 하나였다. 편도 길이만 29km이고 고도차가 600m에 달하는 이 임도를 완주할 정도면 거의 정상 컨디션이 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처음에는 시계방향을 생각했다가 다가설수록 반시계방향도 그럴 듯하게 느껴져 고민하고 있다. 어디로 가든 원점회귀이긴 하지만 노면 상황이나 분위기, 조망, 업다운의 길이와 난이도도 감안해야 한다.
출발지로 잡은 곳은 사기막 마을회관. 작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옛날식 매점도 있다. 아직도 어디로 갈까 주저하고 있는데 자전거는 속절 없이 출발했고 방향이 갈리는 사기막교차로에서 핸들은 왼쪽으로 돌아갔다. 코스 최고점까지 전체적으로 업힐이지만 업다운이 다소 뒤섞인 방향으로 올라 일률적인 다운힐을 즐기기로 했다. 전반적인 업힐 20km, 다운힐 10km에 달하는 거창한 코스다.
사기막 마을회관 옆 정자 쉼터. 높직한 터에 일대가 작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마을회관에서 올려다본 백두대간. 구름이 닿은 오른쪽 봉우리는 매봉(1173m), 왼쪽 봉우리는 삼양목장 동해전망대(1140m) 일원이다. 용연계곡은 두 산 사이에서 발원해 사기막저수지까지 이어지고, 임도는 산줄기 허리를 돌아나온다. 갈 길이 아득하구나
원래 사기막 임도는 사기막 마을에서 용연계곡을 따라 매봉(1173m) 아래까지 갔다가 계곡 상류를 돌아 곤신봉(1135m)~대궁산(1008m) 헐히를 돌아 보현사 근처 보광리까지 이어진다. 여기서는 사기막마을을 기점으로 원점회귀 코스를 꾸미다 보니 보현사 방면 9km 구간 대신 명주군왕릉 방면 9km 임도로 대신했다.
사기막 마을에서 성산면으로 넘어가는 멍어재(305m)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임도가 시작된다. 이 길은 300m급 지능선을 좌우로 에워싸며 대궁산(1008m) 방면으로 올라가다 사기막 임도와 합류하며, 도중에 명주군왕릉 근처를 지난다. 강릉시가 조성한 트레킹 코스인 ‘강릉바우길’도 상당부분 겹치지만 인적이 드물어 잡초를 대비해 긴팔 긴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멍어재 오르는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임도가 시작된다. 처음부터 가파른 업힐이고 트레킹코스 강릉바우길과도 겹친다
초입부터 가파른 업힐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장장 5km나 이어지고 조망이 트이는 곳도 별로 없어 라이딩에만 집중하게 된다. 출발 후 1.2km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나중에 서로 만나는 길이지만 왼편이 업힐이 조금 짧고 명주군왕릉을 들리기도 좋다.
강릉시내와 들판이 멀지 않은데도 인적이 없으니 심심산골 적막강산이다. 한때 벌목지였던 곳에서 잠시 조망이 트여 저 멀리 동해안이 보인다. 고도는 300m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완만하게 경사진데다 해안 옆이라 훨씬 높고 멀게 느껴진다.
이윽고 길은 능선 위로 올라서고 명주군왕릉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으로 400여m 내려가면 명주군왕릉이 있으며, 다시 돌아 나와야 하지만 잠시 들러보는 것도 의미 있다. 무덤의 주인공 김주원은 8세기 신라 왕족으로 홍수 때문에 길이 막혀 왕위에 오르지 못한, 우리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왕위쟁탈전의 피해자이다.
업힐 도중 전망이 트인 벌목지 모퉁이에 누군가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멀리 동해안과 사천진 일원이 보인다. 현재 고도가 300m 밖에 되지 않으나 더 높고 멀게 느껴지는 것은 해안에서 곧장 솟은 산인데다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이다
왕위쟁탈전에서 밀린 김주원은 외가가 있던 강릉으로 내려와 칩거하고 있는 동안 김주원의 동태가 불안했던 원성왕은 그를 견제하고 달랠 겸 강릉과 주변 동해안 일원을 식읍(食邑, 자체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영지)으로 내리고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했다. 당시는 봉건제가 아닌 중앙집권체제였는데 마치 봉건영주처럼 지방의 왕으로 봉(封)한 것은 지역 세력을 가진 김주원을 견제, 위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주원은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어 강릉의 위인으로 섬겨지고 있다.
8세기 신라의 무덤이지만 조선조 왕릉처럼 부드러운 산줄기에 둘러싸인, 높직한 언덕에 터 잡고 있고 왕의 무덤을 칭하는 릉(陵)과 신하 이하에 쓰는 묘(墓) 표기가 혼재하는데서 주인공 김주원의 단순치 않은 삶과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명주군왕릉은 8세기 신라 왕위쟁탈전에서 밀린 김주원의 무덤이다. 그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직계로 강릉김씨의 시조가 된다
용연계곡을 감싸는 사기막임도 20km 구간 주변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임도는 이 관리를 위해 개설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명주군왕릉을 돌아 나와 600m 정도 완만한 업힐을 하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길이 앞서 임도 초입에서 만난 갈림길이 합류하는 것이고 사기막임도는 왼쪽 급경사 언덕으로 가야 한다. 이정표가 있는 송명골 삼거리에서 우회전 900m를 가면 임도차단기가 있는 삼거리인데 이제부터가 사기막 임도 본류다. 어느새 고도는 해발 540m에 달하고 왼쪽 길은 보현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9km의 지선 코스다.
삼거리에서 사기막 방면은 ‘공사중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으나 일단 진행해보기로 한다. 한참을 가다 조우한 공사장은 폭우에 길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궁산 북사면의 작은 골짜기마다 길 밑으로 배수관을 설치하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 중인 사람들은 대부분 연로했는데 “수고 많으십니다”하고 인사하니 산중에서 만난 자전거도 격려해 준다. 인적 없는 깊은 산중이라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해진다. 때로 타인은 악몽일 수 있지만 오지에서 마주친, 적의 없는 사람은 의지처가 된다.
명주군왕릉을 나와 능선 따라 가면 사기막 마을에서 올라오는 다른 길(오른쪽)과 합류한다. 직진이 사기막 임도 방향이다
사기막 임도 안내도. '현위치' 표시는 보현사 방면 9km 코스의 분기점으로 나는 사기막저수지 동쪽 사기막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간혹 조망이 트이면 장쾌한 경관을 보여준다. 앞 왼쪽은 눈높이가 된 운계봉(529m), 오른쪽 멀리 보이는 시가지는 주문진 남쪽 연곡면 일대다
한동안 길은 북사면이라 한낮인데도 어둑하고 음습하다. 공사 현장에서 얼마 가지 않아 길바닥에 남은 인적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잡초가 길을 뒤덮었다. 계속 가야하나 돌아서야 하나 난감할 정도인데 길이 완전히 묻힌 것은 아니어서 전진은 가능하다. 이런 구간이 잠깐이면 괜찮은데 계속 이렇다면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온 것이 아까워 ‘조금만 더’ 하는 심정으로 진행했더니 길이 북사면을 벗어나자 잡초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풍력발전기 날개도 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곤신봉과 매봉 사이 어디쯤이니 삼양목장 동해전망대 근처일 것이다. 저곳은 관광버스를 타고 편하게 오를 수 있고 평상복 차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백두대간 허리춤에 올라붙었다는 것은 사기막 임도의 최고지점에 근접했다는 뜻이다. 삼양목장 동해전망대(1140m)에서 흘러내린 능선 북사면에서 해발 630m에 이르러 최고점에 이르고, 용연계곡 최상류를 지나 길이 북사면으로 접어들면 서서히 다운힐이 시작된다. 무려 10km의 내리막이다.
북사면 깊숙이 들어왔다. 용연계곡 건너편으로 나중에 내려갈 길이 보인다. 왼쪽 멀리 소금강계곡을 낀 천마봉(1014m)이 톱날 능선을 드러내고 있다 대궁산 북사면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 숲이 짙어서 원시미가 물씬하다
대궁산 북사면을 벗어나자 길이 좋아졌다. 정면 뒤편으로 동해전망대 부근의 풍력발전기 날개 두 개가 보인다. 업힐이 거의 끝나고 대간 허리에 근접했다는 신호여서 반가운 모습이다
해안선이 한층 멀어지고 시점은 높아졌다. 대간 허리춤에서 바라본 동해고속도로 사천교가 높직하고, 그 뒤로 맨 왼쪽은 강릉 아산병원, 오른쪽은 경포호 주변의 랜드마크인 스카이베이호텔이 뚜렷하다
브레이크를 잡은 손가락이 아파 쉬기는 참 오랜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내리막... 여기 구간은 관리 차량이 자주 다니는 듯 노면은 마사토가 깔려 있고 길을 침범한 잡초가 거의 없다. 인공미가 강해진 대신 야생미는 줄어들었고 코너링에서는 마사토의 미끄러짐을 조심해야 한다. 2.8인치 초광폭 머드 타이어도 한 순간에 미끄덩이다.
아무리 길다 해도 내리막은 공간도 시간도 휙휙 지나가기 마련. 예전에 시험 삼아 올랐던 목재 야적장이 나타났다. 그득했던 목재는 크게 줄었고 백두대간과 오똑한 매봉은 다시 저 멀리 물러났다. 대신 길옆으로는 어느새 물이 콸콸 흐르는 큰 계곡이 나란하다. 이윽고 계곡수는 점점 물이 불어나 사기막저수지로 모여들고, 차단기와 함께 길고 길었던 임도도 끝이 난다. 갈수기에 물이 졸아든 저수지를 지나면 마침내 마을이 나타나면서 산에서 벗어나 인간계로 들어서고 출발지인 사기막 마을이 금방이다. 두 바퀴 위에서 잠시나마 ‘자연인’과 ‘출가’를 경험한 시간이다.
사기막 임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면, 왼쪽은 경사면 오른쪽은 경사가 엄청난 절벽 지대가 많다
사기막 임도 북단에서 분기하는, 신왕리 방면 지선 임도(2km) 초입에서 바라본 대궁산(1008m, 가운데 평탄한 정상부)과 곤신봉(1135m, 오른쪽 풍력발전기 있는 봉우리)
신왕리 임도에서 본 강릉시가지. 오른쪽 끝에 보이는 긴 방파제는 한국남동발전 영동에코발전본부 전용부두 보호용이다
예전에 시험삼아 사기막마을에서 여기까지 올랐을 때는 목재가 가득했는데... 목재가 크게 줄어든 야적장. 이제 사기막 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도가 낮아지만 임도는 용연계곡과 나란히 달린다
장마철 이후 8월 중순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사기막 저수지 수위가 크게 내려갔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강릉 사기막 임도 일주 3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