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는 짐승 울음소리와 브레이크 소리뿐
두번 째 벌목지는 해발 660m까지 올라가 코스의 최고점을 이루고 조망도 시원하다. 정면으로 빗금 같은 임도가 나 있는 철갑령(1012m)이 가깝다. 철갑령 왼쪽으로 오대산 노인봉(1338m, 왼쪽 뒤)과 동대산(1434m 오른쪽 뒤)이 구름을 붙잡고 있다. 노인봉과 동대산 사이 오목한 곳은 진고개(950m)다
동해안의 유명한 어항인 주문진은 백두대간 본줄기와 거리가 있어 서쪽으로는 기나긴 골짜기와 능선이 백두대간을 향해 뻗어나고 있다. 가장 큰 골짜기는 연곡천을 따라 오대산 주능선을 넘는 진고개(950m)로 이어지고, 그 북쪽에는 신리천이 철갑령(1012m)에서부터 흘러내린다. 철갑령은 사방이 갇힌 특이한 협곡지형인 부연동의 동쪽 장벽이면서 바다를 향해서는 두 줄기 능선을 길게 뻗어 내리고 있다. 이름은 ‘고개 령’이지만 고갯길이 무의미해지면서 인근 봉우리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철갑령에서 흘러내린 신리천 중상류에 자리한 마을이 삼교리(三橋里)인데 예로부터 다리가 셋이어서 삼교리인지 유래는 분명치 않다. 삼교리는 복숭아 재배로 유명한 복사골이기도 하며, 기이하게도 마을 뒤에는 삼형제봉(701m)이 솟아 있어 석 삼(三)이 중복된다. 삼형제봉은 이름처럼 비슷한 높이의 세 봉우리가 연이어 있고, 2봉과 3봉은 하얀 화강암 슬랩이 드러나 멀리서도 잘 보인다. 삼형제봉을 등대산으로 부르는 것도 바다 멀리에서도 하얗게 드러난 봉우리를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인데, 주변의 산들이 모두 바위가 드러나지 않은 육산(肉山) 일색이어서 하얀 슬랩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제 신리천을 중심으로 삼형제봉 아래를 지나 철갑령 밑을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대부분 산악임도 구간이며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인적 없고 조용한 심심산골이다.
800살 먹은 장덕리 은행나무. 밑둥 둘레 10m, 높이 26m의 노거수다
출발지는 주문진 읍내에서 삼교리 골짜기로 진입하는 초입에 서 있는 장덕리 은행나무로 잡는다. 마을 입구에 선 노거수는 수령이 800년에 달하고 밑둥 둘레 10m, 높이 26m의 웅장한 규모다. 지상 2.5m 높이에서 8개로 갈라진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나 수형이 넓게 퍼져 있다. 국내 최대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둘레 14m, 높이 41m인데 수형이 좁으면서 높게 솟구친 형태여서 분위기가 다르다.
국내 노거수 은행나무는 대개 암나무인데 비해 이 나무는 수나무여서 은행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 800년 전이면 대략 13세기 초 고려시대로 몽골군의 침입이 있기 전이다. 8세기 동안 수많은 천재지변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명력 앞에 경외감을 감출 수 없다. 아직도 싱싱한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살 테니 내가 떠난 다음에도 건재할 것이다. 분명 세포가 분열하고 재생하는 생명이지만 은행나무가 이토록 오래 사는 것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며’ 시간을 미분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나무가 지켜본 숱한 생명들의 일생은 셀 수도 없겠지만 스쳐간 인생들만 해도 대단할 것이다. 나무가 지켜본 인연들은 어쩌면 저 거대한 몸통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목은 그늘 이상의 뭔가를 우리에게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상 2.5m에서 여덟 갈래로 가지가 뻗어나 널찍한 수형을 이룬다. 나무가 펼쳐진 지름도 높이와 비슷한 25m 정도다
신리천 주변은 온통 복숭아밭이다. 은행나무 옆 마을 입구에는 ‘70년 전통 복사꽃마을’ 간판이 크게 붙어 있다. 복숭아가 강릉 특산물 중 하나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길가에는 복숭아좌판이 적지 않다. 덕분에 이번 여름 이후 복숭아 맛에 푹 빠져 나의 최애 과일로 떠올랐다.
삼교리 특산물이라기에는 그렇지만 막국수도 이름이 높다. 이 골짜기 안에만 각기 명성이 높은 세 집이 있고 ‘삼교리’는 전국적인 막국수 브랜드로도 알려져 있다.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동치미 국물과 녹듯이 씹히는 수육의 조합은 일품이다.
삼교저수지 아래 궁궁동에서 산으로 진입하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지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작은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은 펜션과 절(대안사)을 거쳐 급경사로 고도를 높여간다. 마지막 농가는 해발 290m 지점에 있는데 사람이 상주하지는 않고 주말에만 들리는 듯 비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 헤어핀으로 꺾어들면 삼형제봉 안내판과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임도에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자동차는 더 이상 갈 수 없다. 차단기를 통과하려고 하는데 마침 임도 저편에서 임산물 채취 등을 단속하는 관리 트럭이 내려오고 있다. 관리인은 자전거 탄 나를 보더니 “임도 진입은 곤란한데…”하고 경계하는 표정이다. 내가 “산불조심 기간 아니면 상관없지 않느냐. 골짜기를 돌아 삼교리로 다시 내려 갈 것”이라고 하자 “물골이 많고 잡초도 자라 길이 좋지 않다”면서 걱정하듯 차단기를 열어주었다.
궁궁동에서 삼형제봉 방면으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는 길목에는 펜션 몇 곳과 대안사가 있다
길은 꾸준한 오르막이어서 계속 고도가 높아간다. 숲 때문에 조망은 거의 트이지 않는데 갑자기 계곡을 통과하는 송전선과 철탑이 하늘 위를 지나면서 엄청난 위용을 발한다. 에펠탑을 축소한 듯한, 거대철탑이 산기슭을 따라 수백미터 간격으로 도열해 있고 철탑에 걸린 전선은 아래로 축 늘어지면서도 자음 철탑을 지나 끝없이 이어진다. 강릉화력발전소(강릉에코파워)에서 만든 전기를 내륙으로 전달하는 선로인데 마을을 피해 산간을 따라 구불구불 송전선을 가설한 공역이 대단하다. 전기를 펑펑 쓰면서도 이런 시설이 있음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송전은 외진 곳에서 은근하게 이뤄지고 있다.
송전선을 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근처 숲속에서 기이한 짐승 울음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졌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여서 뭐라고 표현하기 힘드나 꽤 덩치가 있는 짐승이 내는 것 같은 괴성이다. 인적 없는 깊은 산 속에서 홀로 듣는 야생 짐승의 울음소리… 순간 소름이 끼치면서 바로 하산해야 하나 계속 가야하나 멈칫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아깝고 코스 최고점이 멀지 않아 전진 페달링을 계속 이어나갔다. 울음소리는 한동안 계속 됐는데 아무래도 멧돼지 같아 이윤기 이사처럼 나도 고함을 질러 맞대응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울음은 멈췄고 나는 코스 최고점에 도착했다. 코스 최고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부터 다운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합천 오도산에서 그랬듯이 멧돼지를 만나도 더 빨리 달릴 자신이 있었다.
나중에 귀가해서 비슷한 울음소리를 찾아보니 노루나 고라니 같아 실소했지만, 원래 노루와 고라니 울음소리도 산속에서 들으면 큰 짐승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대안사를 지난 민가 근처에서 바라본 삼형제봉. 사진에는 가장 높은 1봉이 가렸고 2봉과 3봉만 보인다
첫번째 조림지를 통과하는 송전선과 거대 철탑. 가까이서 보니 골짜기를 한번에는 건너는 규모감이 굉장하다
첫번째 조림지 근처의 자작나무 길
조림지 뒤로 보이는 첩첩산중
송전선을 지나면 길은 해발 500m를 넘어서고 왼쪽 아래로 벌목조림지가 나오면서 조망이 열린다. 가까이는 주문진이 훤하고, 멀리는 강릉시내와 괘방산(345m)~망덕봉(781m)~칠성산(954m)에 이르는 강릉 남부 산줄기가 시야의 끝을 이룬다.
조림지는 산불이 아니라 인위적인 벌목 후에 조성된 것 같다. 강릉 백두대간 일원은 숲이 울창하고 잘 보존되어 국가 차원에서 산림자원을 관리하는 곳이 많다.
이제 정면으로 철갑령이 가깝고 그 너머로 오대산 노인봉(1338m)~동대산(1434m)이 흰 구름을 붙잡고 있다. 길은 해발 660m까지 올라가면서 두 번째 조림지를 지나간다. 해안에서는 이 정도 높이만 해도 매우 고지여서 해안선은 멀리 뻗어 내려간 산줄기 끝자락에 아스라하다.
이제 기나긴 다운힐 시작이다. 이처럼 특별하고 깊은 숲길이 무인지경인 것은 자전거로서는 다행이고 사회적으로는 아까운 일이다. 사면을 따라 횡단하는 이 길을 등산객이 올 리 없고 하이킹하기에는 너무 멀고 지루할 것이다. 차단기가 내려져 있으니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들어올 수도 없다.
적당히 거친 노면은 풀서스펜션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쾌속으로 질주하니 신리천 상류 계곡에 금방 내려선다.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음습한 골짜기는 원시적인 생기가 감돈다. 계곡을 조금 지나 철갑령으로 가는 임도가 분기하는데 해발 920m까지 올라가는 저 길은 다음 기회로 아껴둔다.
두번째 조림지에서 바라본 동해안. 왼쪽 철탑 뒤 주문진에서 경포대와 안인항까지 일목요연하다
철갑령 갈림길의 이정표. 오른쪽 철갑령 방면 이정목은 글씨가 지워질 정도로 낡았다신리천 최상류, 철갑령에서 흘러내리는 원시풍의 협곡. 저 폭포수는 산삼과 온갖 약초 성분을 다 함유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철갑령 남부능선의 북사면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왼쪽 아래로 신리천 상류를 따라 들어선 민가가 하나둘 보이면서 인간계 복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래도 아직 해발 400m가 넘어서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한다.
다운힐이 끝나고 주능선에 오르면 널찍한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원불교 우인훈련원~구월사를 거쳐 오대산 소금강 입구나 주문진 방면으로 이어지는 6번 국도에 합류하게 된다. 왼쪽 길로 들어서면 다시 거친 노면이 계속되면서 한동안 업힐이 이어진다. 길은 능선 북쪽으로 돌아 해발 460m에서 주능선과 다시 만난다. 이제 업힐 고행은 끝나고 장덕고개까지 7km 다운힐이 시작될 참이다. 장덕고개에서 출발지인 은행나무까지도 내리막이거나 평지여서 마음이 가볍다. 대신 중간의 조림지에서 잠시 조망이 트일 뿐 내내 숲길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딱히 유지비가 들지 않지만 나는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를 자주 가는 편이다. 무거운 e바이크로 이처럼 긴 다운힐을 자주 하다 보니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가 매우 빨리 닳는다. 지금도 브레이크가 열을 받아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갈 때가 다 된 모양이다. 딸랑딸랑 방울소리와 함께 삑삑 대는 브레이크 소리는 이 무인지경 숲길을 내가 달리고 있고 무사하다는 신호음이기도 하다.
철갑령 남부능선 북사면에서 내려다본 신리천 상류의 마을. 왼쪽 뒤로 삼형제봉이 보인다철갑령 남부능선 길은 노면 상태가 좋고 완만한 다운힐이라 달리기 편하다
이제야 삼형제봉이 제대로 보인다. 왼쪽부터 1, 2, 3봉이며 2봉과 3봉의 하얀 슬랩 때문에 멀리서도 알아보기 쉽다
남부능선 다운힐 도중 유일하게 조망이 트이는 조림지의 장관. 바로 아래는 진고개로 이어지는 연곡천 계곡이고 맨뒤 산줄기는 왼쪽부터 곤신봉(1131m)~매봉(1173m)~소황병산(1329m)의 백두대간이다
장덕고개를 거쳐 신리천에 도착해서 바라본 삼형제봉(오른쪽)과 점점 높아지는 철갑령(왼쪽 끝에 있으나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음) 주능선
글/사진 김병훈 대표
주문진 삼형제봉 35km
산중에는 짐승 울음소리와 브레이크 소리뿐
두번 째 벌목지는 해발 660m까지 올라가 코스의 최고점을 이루고 조망도 시원하다. 정면으로 빗금 같은 임도가 나 있는 철갑령(1012m)이 가깝다. 철갑령 왼쪽으로 오대산 노인봉(1338m, 왼쪽 뒤)과 동대산(1434m 오른쪽 뒤)이 구름을 붙잡고 있다. 노인봉과 동대산 사이 오목한 곳은 진고개(950m)다
동해안의 유명한 어항인 주문진은 백두대간 본줄기와 거리가 있어 서쪽으로는 기나긴 골짜기와 능선이 백두대간을 향해 뻗어나고 있다. 가장 큰 골짜기는 연곡천을 따라 오대산 주능선을 넘는 진고개(950m)로 이어지고, 그 북쪽에는 신리천이 철갑령(1012m)에서부터 흘러내린다. 철갑령은 사방이 갇힌 특이한 협곡지형인 부연동의 동쪽 장벽이면서 바다를 향해서는 두 줄기 능선을 길게 뻗어 내리고 있다. 이름은 ‘고개 령’이지만 고갯길이 무의미해지면서 인근 봉우리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철갑령에서 흘러내린 신리천 중상류에 자리한 마을이 삼교리(三橋里)인데 예로부터 다리가 셋이어서 삼교리인지 유래는 분명치 않다. 삼교리는 복숭아 재배로 유명한 복사골이기도 하며, 기이하게도 마을 뒤에는 삼형제봉(701m)이 솟아 있어 석 삼(三)이 중복된다. 삼형제봉은 이름처럼 비슷한 높이의 세 봉우리가 연이어 있고, 2봉과 3봉은 하얀 화강암 슬랩이 드러나 멀리서도 잘 보인다. 삼형제봉을 등대산으로 부르는 것도 바다 멀리에서도 하얗게 드러난 봉우리를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인데, 주변의 산들이 모두 바위가 드러나지 않은 육산(肉山) 일색이어서 하얀 슬랩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제 신리천을 중심으로 삼형제봉 아래를 지나 철갑령 밑을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대부분 산악임도 구간이며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인적 없고 조용한 심심산골이다.
800살 먹은 장덕리 은행나무. 밑둥 둘레 10m, 높이 26m의 노거수다
출발지는 주문진 읍내에서 삼교리 골짜기로 진입하는 초입에 서 있는 장덕리 은행나무로 잡는다. 마을 입구에 선 노거수는 수령이 800년에 달하고 밑둥 둘레 10m, 높이 26m의 웅장한 규모다. 지상 2.5m 높이에서 8개로 갈라진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나 수형이 넓게 퍼져 있다. 국내 최대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둘레 14m, 높이 41m인데 수형이 좁으면서 높게 솟구친 형태여서 분위기가 다르다.
국내 노거수 은행나무는 대개 암나무인데 비해 이 나무는 수나무여서 은행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 800년 전이면 대략 13세기 초 고려시대로 몽골군의 침입이 있기 전이다. 8세기 동안 수많은 천재지변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명력 앞에 경외감을 감출 수 없다. 아직도 싱싱한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살 테니 내가 떠난 다음에도 건재할 것이다. 분명 세포가 분열하고 재생하는 생명이지만 은행나무가 이토록 오래 사는 것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며’ 시간을 미분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나무가 지켜본 숱한 생명들의 일생은 셀 수도 없겠지만 스쳐간 인생들만 해도 대단할 것이다. 나무가 지켜본 인연들은 어쩌면 저 거대한 몸통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목은 그늘 이상의 뭔가를 우리에게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상 2.5m에서 여덟 갈래로 가지가 뻗어나 널찍한 수형을 이룬다. 나무가 펼쳐진 지름도 높이와 비슷한 25m 정도다
신리천 주변은 온통 복숭아밭이다. 은행나무 옆 마을 입구에는 ‘70년 전통 복사꽃마을’ 간판이 크게 붙어 있다. 복숭아가 강릉 특산물 중 하나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길가에는 복숭아좌판이 적지 않다. 덕분에 이번 여름 이후 복숭아 맛에 푹 빠져 나의 최애 과일로 떠올랐다.
삼교리 특산물이라기에는 그렇지만 막국수도 이름이 높다. 이 골짜기 안에만 각기 명성이 높은 세 집이 있고 ‘삼교리’는 전국적인 막국수 브랜드로도 알려져 있다.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동치미 국물과 녹듯이 씹히는 수육의 조합은 일품이다.
삼교저수지 아래 궁궁동에서 산으로 진입하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지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작은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은 펜션과 절(대안사)을 거쳐 급경사로 고도를 높여간다. 마지막 농가는 해발 290m 지점에 있는데 사람이 상주하지는 않고 주말에만 들리는 듯 비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 헤어핀으로 꺾어들면 삼형제봉 안내판과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임도에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자동차는 더 이상 갈 수 없다. 차단기를 통과하려고 하는데 마침 임도 저편에서 임산물 채취 등을 단속하는 관리 트럭이 내려오고 있다. 관리인은 자전거 탄 나를 보더니 “임도 진입은 곤란한데…”하고 경계하는 표정이다. 내가 “산불조심 기간 아니면 상관없지 않느냐. 골짜기를 돌아 삼교리로 다시 내려 갈 것”이라고 하자 “물골이 많고 잡초도 자라 길이 좋지 않다”면서 걱정하듯 차단기를 열어주었다.
궁궁동에서 삼형제봉 방면으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는 길목에는 펜션 몇 곳과 대안사가 있다
길은 꾸준한 오르막이어서 계속 고도가 높아간다. 숲 때문에 조망은 거의 트이지 않는데 갑자기 계곡을 통과하는 송전선과 철탑이 하늘 위를 지나면서 엄청난 위용을 발한다. 에펠탑을 축소한 듯한, 거대철탑이 산기슭을 따라 수백미터 간격으로 도열해 있고 철탑에 걸린 전선은 아래로 축 늘어지면서도 자음 철탑을 지나 끝없이 이어진다. 강릉화력발전소(강릉에코파워)에서 만든 전기를 내륙으로 전달하는 선로인데 마을을 피해 산간을 따라 구불구불 송전선을 가설한 공역이 대단하다. 전기를 펑펑 쓰면서도 이런 시설이 있음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송전은 외진 곳에서 은근하게 이뤄지고 있다.
송전선을 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근처 숲속에서 기이한 짐승 울음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졌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여서 뭐라고 표현하기 힘드나 꽤 덩치가 있는 짐승이 내는 것 같은 괴성이다. 인적 없는 깊은 산 속에서 홀로 듣는 야생 짐승의 울음소리… 순간 소름이 끼치면서 바로 하산해야 하나 계속 가야하나 멈칫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아깝고 코스 최고점이 멀지 않아 전진 페달링을 계속 이어나갔다. 울음소리는 한동안 계속 됐는데 아무래도 멧돼지 같아 이윤기 이사처럼 나도 고함을 질러 맞대응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울음은 멈췄고 나는 코스 최고점에 도착했다. 코스 최고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부터 다운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합천 오도산에서 그랬듯이 멧돼지를 만나도 더 빨리 달릴 자신이 있었다.
나중에 귀가해서 비슷한 울음소리를 찾아보니 노루나 고라니 같아 실소했지만, 원래 노루와 고라니 울음소리도 산속에서 들으면 큰 짐승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대안사를 지난 민가 근처에서 바라본 삼형제봉. 사진에는 가장 높은 1봉이 가렸고 2봉과 3봉만 보인다
첫번째 조림지를 통과하는 송전선과 거대 철탑. 가까이서 보니 골짜기를 한번에는 건너는 규모감이 굉장하다
첫번째 조림지 근처의 자작나무 길
조림지 뒤로 보이는 첩첩산중
송전선을 지나면 길은 해발 500m를 넘어서고 왼쪽 아래로 벌목조림지가 나오면서 조망이 열린다. 가까이는 주문진이 훤하고, 멀리는 강릉시내와 괘방산(345m)~망덕봉(781m)~칠성산(954m)에 이르는 강릉 남부 산줄기가 시야의 끝을 이룬다.
조림지는 산불이 아니라 인위적인 벌목 후에 조성된 것 같다. 강릉 백두대간 일원은 숲이 울창하고 잘 보존되어 국가 차원에서 산림자원을 관리하는 곳이 많다.
이제 정면으로 철갑령이 가깝고 그 너머로 오대산 노인봉(1338m)~동대산(1434m)이 흰 구름을 붙잡고 있다. 길은 해발 660m까지 올라가면서 두 번째 조림지를 지나간다. 해안에서는 이 정도 높이만 해도 매우 고지여서 해안선은 멀리 뻗어 내려간 산줄기 끝자락에 아스라하다.
이제 기나긴 다운힐 시작이다. 이처럼 특별하고 깊은 숲길이 무인지경인 것은 자전거로서는 다행이고 사회적으로는 아까운 일이다. 사면을 따라 횡단하는 이 길을 등산객이 올 리 없고 하이킹하기에는 너무 멀고 지루할 것이다. 차단기가 내려져 있으니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들어올 수도 없다.
적당히 거친 노면은 풀서스펜션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쾌속으로 질주하니 신리천 상류 계곡에 금방 내려선다.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음습한 골짜기는 원시적인 생기가 감돈다. 계곡을 조금 지나 철갑령으로 가는 임도가 분기하는데 해발 920m까지 올라가는 저 길은 다음 기회로 아껴둔다.
두번째 조림지에서 바라본 동해안. 왼쪽 철탑 뒤 주문진에서 경포대와 안인항까지 일목요연하다
철갑령 갈림길의 이정표. 오른쪽 철갑령 방면 이정목은 글씨가 지워질 정도로 낡았다신리천 최상류, 철갑령에서 흘러내리는 원시풍의 협곡. 저 폭포수는 산삼과 온갖 약초 성분을 다 함유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철갑령 남부능선의 북사면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왼쪽 아래로 신리천 상류를 따라 들어선 민가가 하나둘 보이면서 인간계 복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래도 아직 해발 400m가 넘어서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한다.
다운힐이 끝나고 주능선에 오르면 널찍한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원불교 우인훈련원~구월사를 거쳐 오대산 소금강 입구나 주문진 방면으로 이어지는 6번 국도에 합류하게 된다. 왼쪽 길로 들어서면 다시 거친 노면이 계속되면서 한동안 업힐이 이어진다. 길은 능선 북쪽으로 돌아 해발 460m에서 주능선과 다시 만난다. 이제 업힐 고행은 끝나고 장덕고개까지 7km 다운힐이 시작될 참이다. 장덕고개에서 출발지인 은행나무까지도 내리막이거나 평지여서 마음이 가볍다. 대신 중간의 조림지에서 잠시 조망이 트일 뿐 내내 숲길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딱히 유지비가 들지 않지만 나는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를 자주 가는 편이다. 무거운 e바이크로 이처럼 긴 다운힐을 자주 하다 보니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가 매우 빨리 닳는다. 지금도 브레이크가 열을 받아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갈 때가 다 된 모양이다. 딸랑딸랑 방울소리와 함께 삑삑 대는 브레이크 소리는 이 무인지경 숲길을 내가 달리고 있고 무사하다는 신호음이기도 하다.
철갑령 남부능선 북사면에서 내려다본 신리천 상류의 마을. 왼쪽 뒤로 삼형제봉이 보인다철갑령 남부능선 길은 노면 상태가 좋고 완만한 다운힐이라 달리기 편하다
이제야 삼형제봉이 제대로 보인다. 왼쪽부터 1, 2, 3봉이며 2봉과 3봉의 하얀 슬랩 때문에 멀리서도 알아보기 쉽다
남부능선 다운힐 도중 유일하게 조망이 트이는 조림지의 장관. 바로 아래는 진고개로 이어지는 연곡천 계곡이고 맨뒤 산줄기는 왼쪽부터 곤신봉(1131m)~매봉(1173m)~소황병산(1329m)의 백두대간이다
장덕고개를 거쳐 신리천에 도착해서 바라본 삼형제봉(오른쪽)과 점점 높아지는 철갑령(왼쪽 끝에 있으나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음) 주능선
글/사진 김병훈 대표
주문진 삼형제봉 3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