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 고개 넘어, 깊고 긴 골짜기

전후치 넘어 부연동 내려가는 길목. 맞은편으로 오대산 두로봉에서 복룡산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능선이 흐른다. 고지에는 단풍이 한창인데 저지대는 푸른, 투톤 산악미가 입체감을 더해준다
옛날에도 은둔하는 ‘자연인’을 동경했나 보다. 조선중기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1690~1752)은 좋은 땅의 기준으로 ‘난을 피할 수 있는 곳’을 들고 있다. 평화로운 정착생활을 지향하는 농경민족의 특성상 재산과 인명을 기약할 수 없는 ‘난(亂)’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난’을 피하기 좋은 지형의 대표적인 곳이 우복동(牛腹洞)이다. 소의 뱃속처럼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들이 있어 외지인은 접근이 어렵고 정착민은 자급자족하며 오래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전국에는 이런 우복동 지역이 여러 곳 있는데 강릉 부연동(釜淵洞) 역시 극단적인 우복동이다.
오대산 두로봉(1423m)과 철마령(1012m) 사이에 패인 골짜기로 남쪽으로 접근하려면 험준한 전후치(690m)를 넘어야 하고, 북쪽은 바두재(475m)가 막고 있다. 양양남대천 상류에 해당하는 계곡은 바두재 아래에서 협곡을 이뤄 지금도 4km 정도 길이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과연 저 아득한 전후치를 넘어가면 어떤 풍광이 기다릴까.
진고개 가는 6번 국도에서 부연동 가는 59번 국도가 갈라진다. 길은 진입로부터 바로 가파른 업힐이다. 진고개쪽에서 본 모습으로 뒤편에 철마령(1012m)이 우뚝하다 
고갯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지만 대부분 15% 이상으로 경사가 대단하고 차량 2대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주문진에서 진고개(950m)를 오르는 6번 국도 변에 지금은 폐쇄된 오대산휴게소를 기점으로 잡는다. 연곡에서 진고개까지 기나긴 연곡천변은 펜션과 캠핑장이 줄을 이어 마땅한 주차공간을 찾기 어렵다. 오대산휴게소는 문 닫은 지 오래건만 그대로 방치되어 안쓰럽게 낡아간다.
여기서 하류 방면으로 1km 가면 전후치 고갯길(부연동길)이 시작된다. 희한하게도 부연동 고갯길은 어엿한 59번 국도다. 광양에서 양양까지 494km에 달하는 장대한 국도인데 부연동을 거쳐 가는 약 20km 구간은 왕복 2차로가 되지 않는 임도 수준의 길로 남아 있다. 전국의 국도를 통틀어 가장 험준하고 좁은 구간일 것이다. 그래도 국도라고 시멘트와 아스콘으로 포장이 되긴 했지만 경사가 극심하고 노폭이 좁아 차량 교행이 어렵다.
고갯길 업힐 3.6km, 고도차 475m이니 평균경사도는 13.2%이지만 군데군데 20% 가까운 급경사가 많다. 숲 사이로 간혹 진고개 방면 조망이 트이는데, 가파르게 올라가는 고갯길은 마치 하늘로 직상하는 듯하다. 진고개 좌우로 노인봉(1338m)과 동대산(1434m)이 곧추 솟아 고산준령의 위용이 더한다.
전후치 업힐 도중 바라본 진고개. 높이가 950m나 되고 직선으로 마주보여 마치 하늘로 직상하는 것만 같다. 진고개 오른쪽은 오대산 동대산(1434m) 
아무런 표시도 없는 전후치 정상. 고도가 높아 단풍이 들었고 가운데 멀리 진고개가 보인다
전후치 정상은 아무런 표식이 없고 이동통신 중계기 탑과 전봇대가 맞아준다. 일대는 낙엽송 군락지여서 늦가을에는 샛노랗게 물들 것이다.
고개를 넘자말자 부연동 내리막이다. 극심하게 구불대고 험준해 골짜기의 전모는 보이지 않고 두로봉에서 흘러내린 복룡산 능선만 저편으로 웅장하다. 고개 너머는 북사면이라 단풍이 한창이고 급경사 내리막은 금방 부연동까지 내려다준다. 부연동 상류는 해발 430m 정도이니 고갯마루와의 고도차는 260m밖에 되지 않아 돌아올 때 부담감을 크게 줄여준다.
부연동을 흐르는 남대천은 맑기 그지없고 집들은 띄엄띄엄 산촌으로 흩어져 있다. 부연동은 지형적으로 영남알프스 배내골과 흡사한데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아 지형적 입체감은 조금 떨어지고 길이도 짧다. 펜션과 캠핑장이 즐비한 것은 비슷하다.
경작된 부연동 골짜기는 남북 4.5km 정도이고 30가구 가량 상주한다. 주민들은 펜션과 캠핑장, 농장 등을 운영하며 겨울에는 강릉이나 속초 등 도시로 나가 지내는 가구도 여럿 된다.
길가로 보이는 경작지는 대부분 가시오가피 밭이다. 백숙에 단골로 들어가고 자양강장에 좋다는 가시오가피를 이렇게 대대적으로 재배하는 것은 처음 본다. 이 정도면 전국 굴지의 재배면적 아닐까 싶다.
부연동 내려가는 길. 완전히 꺾여도는 헤어핀 코너가 연속된다
부연동 초입. 계곡 같은 남대천을 끼고 마을과 경작지가 분포한다 
글씨가 흐릿해진 이정목과 강릉 표시를 새긴 돌이 정겹다. 왼쪽이 방금 지나온 전후치 방면이고 오른쪽은 제왕솔 가는 길이다

부연동 상류는 청정계곡으로 오대산 두로봉까지 거슬러 오른다
하류로 갈수록 남대천은 개울 정도로 넓어지고 '59번 국도'는 나란히 달린다
고개를 넘어 부연동에 들어서기까지 공사차량 외에 자동차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시즌이 지나 캠핑장과 펜션은 한산하고 주인 차량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다. 수해복구 현장의 인부 외에는 행인도 전무하다.
하류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도마뱀 머리처럼 길게 머리를 내민 산줄기를 넘어간다. 이 산줄기 머리쪽에 형성된 깊은 소(沼)가 가마소, 곧 부연(釜淵)이다. 4~5가구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 뒤쪽에 부연약수가 있으나 물이 탁해 마실 수는 없다. 약수터 주변은 수림이 울창하고 계류가 흘러 어둑한데 약수는 신기하게도 바위나 개울도 없는 둔덕에서 솟아나고 있다. 물이 탁하고 철분이 많은 것을 보면 토양층을 거쳐 흘러나오는 것 같지만 약수터 역할은 끝났다.
가마소는 약수터 맞은편으로 500m 정도 가야 한다. 능선과 마주한 물돌이 꼭지점은 수압이 정면으로 가해져 암벽이 깎여나가 수심이 깊은 곳이 많은데 가마소 역시 같은 원리로 생겨난 못이다. 소가 둥글넓적하고 깊어 마치 가마솥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 하면 부연(釜淵)이 된다. 솥 부(釜) 자는 부산(釜山)에 쓰여 눈에 익은데 부산 역시 솥을 뒤엎은 듯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현재의 범일동 증산으로 추정)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가마소 전에도 깊이 모를 소가 있어서 섬뜩한 공포감을 준다. 출입을 막는 줄이 처져 있어 금단의 영역임을 강조해 신비스럽기도 하다.
울창한 숲속 계곡 옆에 있는 부연약수. 건물로 보호하고 있으나 물이 탁해져 식수로는 부적합하다 
흙탕물에 가까운 부연약수. 붉은 기운은 철 성분 때문이다
부연동 이름이 유래한 가마소. 계곡 중에 깊고 둥글게 패인 못이다. 깊이 모를 심연과 어두운 동굴 같은, 인간의 감각이 미치지 않는 곳은 근원적인 공포의 대상이다
가마소를 지난 남대천은 더 이상 길이 없는 협곡으로 꺾여 들어가고 마을길(59번 국도)은 계속 북향해 바두재(475m)로 이어진다. 바두재를 넘어가도 양양의 오지인 어성전리여서 동해안이나 양양읍내까지는 한참을 나가야 한다.
바두재를 넘어가면 원점회귀가 어려워져 가마소를 끝으로 발길을 돌린다. 부연동을 벗어나기 전에 하나 더 볼 곳은 골짜기 남단에 있는 제왕솔이다. 국내 최대의 소나무라고 해서 ‘제왕솔’로 부르며, 수종은 금강송이라고도 하는 황장목(적송, 춘양목이라고도 함)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성황목으로 보호해 왔고, 옛날에는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호랑이솔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3.7m의 수직 거목이다. 잔가지가 거의 사라져 앙상하지만 거대한 기둥을 꽂아놓은 듯 위용이 대단하다. 나무도 환경이 잘 맞아야 오래 살 수 있을 테니 부연동은 생명을 키우는 땅이 맞는가 보다.
부연동 집들은 대부분 한 가구씩 흩어져 있다. 가시오가피 밭 속에 자리한 민가
길가에 지천으로 보이는 가시오가피. 부연동 최고의 특산물이다

수령 500년,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3.7m로 국내 최고의 소나무로 꼽히는 제왕솔. 최상층 가지는 꺾였지만 중단부 큰 가지는 성성하게 잎을 맺고 있다
벽면을 가득 메운 장작더미는 겨울이 임박했음을 말해준다
전후치를 넘으니 멀리 철갑령이 반겨준다. 180도 꺾이는 헤어핀코너가 바로 발밑이다
다시 전후치를 오른다. 원래는 임도를 타고 철갑령(1012m) 옆을 넘어 퇴곡리~소금강 입구로 갈 생각도 있었지만 해발 920m나 되는 철갑령 고갯길이 엄두가 나지 않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부연동에서 오르는 전후치는 고도차가 훨씬 줄어 그리 어렵지 않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연곡천까지 3.6km의 급경사 다운힐이 기다린다. 브레이크 과열이나 파열을 채 걱정할 틈도 없이 어느새 6번 국도에 합류했다. 지금도 이리 험하고 높은데 그 옛날 부연동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단절을 작정했음이 틀림없다. 길이 너무 험해 환란이 닥치지 않는 곳이라고도 굳게 믿었을 것이다. 지금은 자동차로 40분이면 양양이나 주문진 읍내로 나갈 수 있으니 단절과 은둔은 옛 말이 됐고 그냥 한거(閑居)로 봐야 할까.
글/사진 김병훈 대표
강릉 전후치~부연동 24km


까마득 고개 넘어, 깊고 긴 골짜기
전후치 넘어 부연동 내려가는 길목. 맞은편으로 오대산 두로봉에서 복룡산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능선이 흐른다. 고지에는 단풍이 한창인데 저지대는 푸른, 투톤 산악미가 입체감을 더해준다
옛날에도 은둔하는 ‘자연인’을 동경했나 보다. 조선중기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1690~1752)은 좋은 땅의 기준으로 ‘난을 피할 수 있는 곳’을 들고 있다. 평화로운 정착생활을 지향하는 농경민족의 특성상 재산과 인명을 기약할 수 없는 ‘난(亂)’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난’을 피하기 좋은 지형의 대표적인 곳이 우복동(牛腹洞)이다. 소의 뱃속처럼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들이 있어 외지인은 접근이 어렵고 정착민은 자급자족하며 오래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전국에는 이런 우복동 지역이 여러 곳 있는데 강릉 부연동(釜淵洞) 역시 극단적인 우복동이다.
오대산 두로봉(1423m)과 철마령(1012m) 사이에 패인 골짜기로 남쪽으로 접근하려면 험준한 전후치(690m)를 넘어야 하고, 북쪽은 바두재(475m)가 막고 있다. 양양남대천 상류에 해당하는 계곡은 바두재 아래에서 협곡을 이뤄 지금도 4km 정도 길이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과연 저 아득한 전후치를 넘어가면 어떤 풍광이 기다릴까.
진고개 가는 6번 국도에서 부연동 가는 59번 국도가 갈라진다. 길은 진입로부터 바로 가파른 업힐이다. 진고개쪽에서 본 모습으로 뒤편에 철마령(1012m)이 우뚝하다
고갯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지만 대부분 15% 이상으로 경사가 대단하고 차량 2대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주문진에서 진고개(950m)를 오르는 6번 국도 변에 지금은 폐쇄된 오대산휴게소를 기점으로 잡는다. 연곡에서 진고개까지 기나긴 연곡천변은 펜션과 캠핑장이 줄을 이어 마땅한 주차공간을 찾기 어렵다. 오대산휴게소는 문 닫은 지 오래건만 그대로 방치되어 안쓰럽게 낡아간다.
여기서 하류 방면으로 1km 가면 전후치 고갯길(부연동길)이 시작된다. 희한하게도 부연동 고갯길은 어엿한 59번 국도다. 광양에서 양양까지 494km에 달하는 장대한 국도인데 부연동을 거쳐 가는 약 20km 구간은 왕복 2차로가 되지 않는 임도 수준의 길로 남아 있다. 전국의 국도를 통틀어 가장 험준하고 좁은 구간일 것이다. 그래도 국도라고 시멘트와 아스콘으로 포장이 되긴 했지만 경사가 극심하고 노폭이 좁아 차량 교행이 어렵다.
고갯길 업힐 3.6km, 고도차 475m이니 평균경사도는 13.2%이지만 군데군데 20% 가까운 급경사가 많다. 숲 사이로 간혹 진고개 방면 조망이 트이는데, 가파르게 올라가는 고갯길은 마치 하늘로 직상하는 듯하다. 진고개 좌우로 노인봉(1338m)과 동대산(1434m)이 곧추 솟아 고산준령의 위용이 더한다.
전후치 업힐 도중 바라본 진고개. 높이가 950m나 되고 직선으로 마주보여 마치 하늘로 직상하는 것만 같다. 진고개 오른쪽은 오대산 동대산(1434m)
아무런 표시도 없는 전후치 정상. 고도가 높아 단풍이 들었고 가운데 멀리 진고개가 보인다
전후치 정상은 아무런 표식이 없고 이동통신 중계기 탑과 전봇대가 맞아준다. 일대는 낙엽송 군락지여서 늦가을에는 샛노랗게 물들 것이다.
고개를 넘자말자 부연동 내리막이다. 극심하게 구불대고 험준해 골짜기의 전모는 보이지 않고 두로봉에서 흘러내린 복룡산 능선만 저편으로 웅장하다. 고개 너머는 북사면이라 단풍이 한창이고 급경사 내리막은 금방 부연동까지 내려다준다. 부연동 상류는 해발 430m 정도이니 고갯마루와의 고도차는 260m밖에 되지 않아 돌아올 때 부담감을 크게 줄여준다.
부연동을 흐르는 남대천은 맑기 그지없고 집들은 띄엄띄엄 산촌으로 흩어져 있다. 부연동은 지형적으로 영남알프스 배내골과 흡사한데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아 지형적 입체감은 조금 떨어지고 길이도 짧다. 펜션과 캠핑장이 즐비한 것은 비슷하다.
경작된 부연동 골짜기는 남북 4.5km 정도이고 30가구 가량 상주한다. 주민들은 펜션과 캠핑장, 농장 등을 운영하며 겨울에는 강릉이나 속초 등 도시로 나가 지내는 가구도 여럿 된다.
길가로 보이는 경작지는 대부분 가시오가피 밭이다. 백숙에 단골로 들어가고 자양강장에 좋다는 가시오가피를 이렇게 대대적으로 재배하는 것은 처음 본다. 이 정도면 전국 굴지의 재배면적 아닐까 싶다.
부연동 내려가는 길. 완전히 꺾여도는 헤어핀 코너가 연속된다
부연동 초입. 계곡 같은 남대천을 끼고 마을과 경작지가 분포한다 
글씨가 흐릿해진 이정목과 강릉 표시를 새긴 돌이 정겹다. 왼쪽이 방금 지나온 전후치 방면이고 오른쪽은 제왕솔 가는 길이다
부연동 상류는 청정계곡으로 오대산 두로봉까지 거슬러 오른다
고개를 넘어 부연동에 들어서기까지 공사차량 외에 자동차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시즌이 지나 캠핑장과 펜션은 한산하고 주인 차량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다. 수해복구 현장의 인부 외에는 행인도 전무하다.
하류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도마뱀 머리처럼 길게 머리를 내민 산줄기를 넘어간다. 이 산줄기 머리쪽에 형성된 깊은 소(沼)가 가마소, 곧 부연(釜淵)이다. 4~5가구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 뒤쪽에 부연약수가 있으나 물이 탁해 마실 수는 없다. 약수터 주변은 수림이 울창하고 계류가 흘러 어둑한데 약수는 신기하게도 바위나 개울도 없는 둔덕에서 솟아나고 있다. 물이 탁하고 철분이 많은 것을 보면 토양층을 거쳐 흘러나오는 것 같지만 약수터 역할은 끝났다.
가마소는 약수터 맞은편으로 500m 정도 가야 한다. 능선과 마주한 물돌이 꼭지점은 수압이 정면으로 가해져 암벽이 깎여나가 수심이 깊은 곳이 많은데 가마소 역시 같은 원리로 생겨난 못이다. 소가 둥글넓적하고 깊어 마치 가마솥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 하면 부연(釜淵)이 된다. 솥 부(釜) 자는 부산(釜山)에 쓰여 눈에 익은데 부산 역시 솥을 뒤엎은 듯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현재의 범일동 증산으로 추정)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가마소 전에도 깊이 모를 소가 있어서 섬뜩한 공포감을 준다. 출입을 막는 줄이 처져 있어 금단의 영역임을 강조해 신비스럽기도 하다.
울창한 숲속 계곡 옆에 있는 부연약수. 건물로 보호하고 있으나 물이 탁해져 식수로는 부적합하다
흙탕물에 가까운 부연약수. 붉은 기운은 철 성분 때문이다
부연동 이름이 유래한 가마소. 계곡 중에 깊고 둥글게 패인 못이다. 깊이 모를 심연과 어두운 동굴 같은, 인간의 감각이 미치지 않는 곳은 근원적인 공포의 대상이다
가마소를 지난 남대천은 더 이상 길이 없는 협곡으로 꺾여 들어가고 마을길(59번 국도)은 계속 북향해 바두재(475m)로 이어진다. 바두재를 넘어가도 양양의 오지인 어성전리여서 동해안이나 양양읍내까지는 한참을 나가야 한다.
바두재를 넘어가면 원점회귀가 어려워져 가마소를 끝으로 발길을 돌린다. 부연동을 벗어나기 전에 하나 더 볼 곳은 골짜기 남단에 있는 제왕솔이다. 국내 최대의 소나무라고 해서 ‘제왕솔’로 부르며, 수종은 금강송이라고도 하는 황장목(적송, 춘양목이라고도 함)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성황목으로 보호해 왔고, 옛날에는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호랑이솔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3.7m의 수직 거목이다. 잔가지가 거의 사라져 앙상하지만 거대한 기둥을 꽂아놓은 듯 위용이 대단하다. 나무도 환경이 잘 맞아야 오래 살 수 있을 테니 부연동은 생명을 키우는 땅이 맞는가 보다.
부연동 집들은 대부분 한 가구씩 흩어져 있다. 가시오가피 밭 속에 자리한 민가
길가에 지천으로 보이는 가시오가피. 부연동 최고의 특산물이다
수령 500년,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3.7m로 국내 최고의 소나무로 꼽히는 제왕솔. 최상층 가지는 꺾였지만 중단부 큰 가지는 성성하게 잎을 맺고 있다
벽면을 가득 메운 장작더미는 겨울이 임박했음을 말해준다
전후치를 넘으니 멀리 철갑령이 반겨준다. 180도 꺾이는 헤어핀코너가 바로 발밑이다
다시 전후치를 오른다. 원래는 임도를 타고 철갑령(1012m) 옆을 넘어 퇴곡리~소금강 입구로 갈 생각도 있었지만 해발 920m나 되는 철갑령 고갯길이 엄두가 나지 않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부연동에서 오르는 전후치는 고도차가 훨씬 줄어 그리 어렵지 않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연곡천까지 3.6km의 급경사 다운힐이 기다린다. 브레이크 과열이나 파열을 채 걱정할 틈도 없이 어느새 6번 국도에 합류했다. 지금도 이리 험하고 높은데 그 옛날 부연동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단절을 작정했음이 틀림없다. 길이 너무 험해 환란이 닥치지 않는 곳이라고도 굳게 믿었을 것이다. 지금은 자동차로 40분이면 양양이나 주문진 읍내로 나갈 수 있으니 단절과 은둔은 옛 말이 됐고 그냥 한거(閑居)로 봐야 할까.
글/사진 김병훈 대표
강릉 전후치~부연동 2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