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에 거미줄 길, 아찔한 칼날 능선 라이딩
(2021년 11월)
와~!! 동해고속도로 동해휴게소 뒤편을 돌아 모퉁이를 돌자 입이 딱 벌어지는 경관이 펼쳐졌다. 헐벗은 산에는 미안하지만 얼기설기 흘러내리는 길들이 군침을 돌게 만든다
‘헐벗은’ 민둥산의 놀라운 매혹!
강릉 옥계면과 동해시 사이에 있는 망운산(338m, 밥봉)은 등산이나 관광 측면에서는 전혀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산의 입지와 ‘외모’는 아주 특별하다. 이 산에 주목하게 된 것도 특이한 외모 때문이다. 몇 년 전 동해고속도로를 지나다 처음 이 산을 마주하고,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다음에 반드시 자전거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망운산은 원래 신령사라는 고찰이 있어 신령산(神靈山)으로 불렸고, 접골에 좋다는 광물질인 산골(山骨)이 많이 났으며,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해 일대에서는 오랫동안 명승으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 망운산이 숲이 완전히 벗겨진 민둥산으로 돌변했다.
북쪽 천남리에서 올려다본 망운산 자락. 민둥산을 황토빛 임도가 그물처럼 감싸고 있다
2000년 4월, 동해안 일원에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산불이 났다. 고성에서 포항에 이르기까지 동해안 전체에 걸쳐 곳곳에 불이 나 9일간이나 이어졌고 서울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면적(약 240㎢)을 태웠다. 그때의 흔적은 지금도 동해안 곳곳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망운산이 완벽한 민둥산이 된 것도 그때의 산불 때문이다. 불에 탄 수목을 처리하기 위해 거미줄 같은 임도를 내면서 망운산은 숲 없이, 지면과 하늘이 곧장 맞닿는 공제선의 총합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의 힘으로 최고의 산악코스가 탄생한 것이다.
망상해수욕장의 기나긴 백사장을 내려다보며
정상 능선에서 동쪽 도직리 방면 조망. 실타래처럼 구비치는 길이 어서 오라 열렬히 손짓하고 있다
환상의 알몸, 엄청난 위용
“우와~!”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10년 전에 심은 묘목은 이제 겨우 30cm 남짓이라 산은 그야말로 민둥 초원이다. 숲이 없으니 봉우리와 능선은 하늘과 바로 맞닿고 창공을 배경으로 고혹적인 선율로 일렁인다.
탱탱하게 부푼 기슭을 따라 길은 얼기설기 나 있어 노면 상태가 어떤지, 서로 연결은 되었는지 산 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일단 북서쪽의 옥천사에서 진입해 보니 길이 도중에 끊어졌고 노면도 너무 거칠어 라이딩이 어려웠다. 다음 계곡인 개광사 방면은 길이 한층 좋지만 역시 골짜기 안쪽에서 단절되었다.
다시 북쪽으로 산을 돌아 동해고속도로와 인접한 ‘영동엔지니어링’ 옆으로 진입하니 이제야 번듯한 임도가 나온다. 북사면을 돌아가니 바다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옥계휴게소’가 바로 발밑이다. 한 구비를 더 돌면 장장 6km의 백사장이 짙푸른 동해에 맞서 물과 바위의 점이지대를 이룬다.
이제 정상 아래로 임도가 종횡무진한, 그림 같고 환상 같은 극진의 산악코스가 펼쳐진다. 고작 338m 높이로 이처럼 장황하고 아득한 느낌을 주는 것은 숲을 완전히 걷어낸 알몸의 육산이기 때문이다. 고도와 거리와 규모 모든 것이 과장된다.
정상 직하의 주능선. 숲이 사라지니 고도감이 엄청나고, 민둥 능선도 한껏 날을 세워 양쪽이 그냥 절벽으로 느껴진다
칼날능선 따라 아찔 라이딩
해외의 산악 라이딩 영상 중에는 숲이 아예 없고 사방이 탁 트인 능선을 따라 질주하는 모습이 간혹 나온다. 좌우로는 곧 절벽 같은 급사면이고 시선이든 몸이든 기댈 숲이 아예 없으니 고도감이 엄청나고 허공을 가르듯 속도감도 대단해서 볼 때마다 부러웠다. 그런데 지금 여기 망운산에서 오래 묵은 그 동경을 해원한다. 옆에서 보면 공제선을 따라 두 바퀴와 몸이 일체가 되어 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흘러내린다. 움직여도 정지 같고 정지 같아도 움직인다. 동즉생(動則生), 생즉동… 전신에 삶과 생명의 희열이 넘치는 것은 원초적인 힘인 중력에 내맡겨 몸도 바퀴도 원초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상 앞 전위봉에는 간이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있고 몇 사람이 이륙준비를 한다. 여기까지 라이딩으로 올라온 나를 보고 감탄하지만 완전한 허공을 나는 그들이 더 감탄스럽다.
바다를 향해 줄달음치는 능선 위로 하얀 길이 일렁인다. 다운힐과 업힐이 교차하고 아찔한 고도감이 자극하는, 스릴 만점의 능선길이다
능선길을 지나 되돌아본 정상부(오른쪽 능선위로 삐죽한 봉우리가 정상). 맞은편 봉우리에는 사륜구동 SUV로 차박하는 이들이 있다. 다운힐은 보기보다 경사가 더 급하다
이제 정상까지는 칼날 같은 산줄기. 좌우로 떨어지면 산 밑까지 데굴데굴 구를 것만 같은 공포감은 전율과 함께 생의 약동을 부추긴다. 지금껏 누벼온 전국의 숱한 산 길 중에서 여기가 단연 압권임을 감탄으로 감격으로 거푸 인정한다.
정상에 서니 실타래 같은 길은 생각보다 더 많고 사방을 뒤덮고 있다. 어느 길로 갈까 고민 되지만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날카로운 능선이 바로 눈을 사로잡는다. 해외 영상에서 흔히 보았던 그 칼날능선 라이딩을 여기서 완전히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만 말하자. 산악라이딩 측면에서 이 구간을 능가하는 곳은 국내에 없다. 인공적인 기물을 배치한 그런 코스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이뤄진, 어쩌면 산불마저 자연의 일부일 수 있으니 자연이 만들어놓은, 이 풍성한 육산의 질주는 농염한 애무이자 기염을 토하는 클라이맥스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강릉 망운산(동쪽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봄)


민둥산에 거미줄 길, 아찔한 칼날 능선 라이딩
(2021년 11월)
‘헐벗은’ 민둥산의 놀라운 매혹!
강릉 옥계면과 동해시 사이에 있는 망운산(338m, 밥봉)은 등산이나 관광 측면에서는 전혀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산의 입지와 ‘외모’는 아주 특별하다. 이 산에 주목하게 된 것도 특이한 외모 때문이다. 몇 년 전 동해고속도로를 지나다 처음 이 산을 마주하고,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다음에 반드시 자전거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망운산은 원래 신령사라는 고찰이 있어 신령산(神靈山)으로 불렸고, 접골에 좋다는 광물질인 산골(山骨)이 많이 났으며,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해 일대에서는 오랫동안 명승으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 망운산이 숲이 완전히 벗겨진 민둥산으로 돌변했다.
2000년 4월, 동해안 일원에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산불이 났다. 고성에서 포항에 이르기까지 동해안 전체에 걸쳐 곳곳에 불이 나 9일간이나 이어졌고 서울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면적(약 240㎢)을 태웠다. 그때의 흔적은 지금도 동해안 곳곳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망운산이 완벽한 민둥산이 된 것도 그때의 산불 때문이다. 불에 탄 수목을 처리하기 위해 거미줄 같은 임도를 내면서 망운산은 숲 없이, 지면과 하늘이 곧장 맞닿는 공제선의 총합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의 힘으로 최고의 산악코스가 탄생한 것이다.
환상의 알몸, 엄청난 위용
“우와~!”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10년 전에 심은 묘목은 이제 겨우 30cm 남짓이라 산은 그야말로 민둥 초원이다. 숲이 없으니 봉우리와 능선은 하늘과 바로 맞닿고 창공을 배경으로 고혹적인 선율로 일렁인다.
탱탱하게 부푼 기슭을 따라 길은 얼기설기 나 있어 노면 상태가 어떤지, 서로 연결은 되었는지 산 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일단 북서쪽의 옥천사에서 진입해 보니 길이 도중에 끊어졌고 노면도 너무 거칠어 라이딩이 어려웠다. 다음 계곡인 개광사 방면은 길이 한층 좋지만 역시 골짜기 안쪽에서 단절되었다.
다시 북쪽으로 산을 돌아 동해고속도로와 인접한 ‘영동엔지니어링’ 옆으로 진입하니 이제야 번듯한 임도가 나온다. 북사면을 돌아가니 바다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옥계휴게소’가 바로 발밑이다. 한 구비를 더 돌면 장장 6km의 백사장이 짙푸른 동해에 맞서 물과 바위의 점이지대를 이룬다.
이제 정상 아래로 임도가 종횡무진한, 그림 같고 환상 같은 극진의 산악코스가 펼쳐진다. 고작 338m 높이로 이처럼 장황하고 아득한 느낌을 주는 것은 숲을 완전히 걷어낸 알몸의 육산이기 때문이다. 고도와 거리와 규모 모든 것이 과장된다.
칼날능선 따라 아찔 라이딩
해외의 산악 라이딩 영상 중에는 숲이 아예 없고 사방이 탁 트인 능선을 따라 질주하는 모습이 간혹 나온다. 좌우로는 곧 절벽 같은 급사면이고 시선이든 몸이든 기댈 숲이 아예 없으니 고도감이 엄청나고 허공을 가르듯 속도감도 대단해서 볼 때마다 부러웠다. 그런데 지금 여기 망운산에서 오래 묵은 그 동경을 해원한다. 옆에서 보면 공제선을 따라 두 바퀴와 몸이 일체가 되어 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흘러내린다. 움직여도 정지 같고 정지 같아도 움직인다. 동즉생(動則生), 생즉동… 전신에 삶과 생명의 희열이 넘치는 것은 원초적인 힘인 중력에 내맡겨 몸도 바퀴도 원초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상 앞 전위봉에는 간이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있고 몇 사람이 이륙준비를 한다. 여기까지 라이딩으로 올라온 나를 보고 감탄하지만 완전한 허공을 나는 그들이 더 감탄스럽다.
이제 정상까지는 칼날 같은 산줄기. 좌우로 떨어지면 산 밑까지 데굴데굴 구를 것만 같은 공포감은 전율과 함께 생의 약동을 부추긴다. 지금껏 누벼온 전국의 숱한 산 길 중에서 여기가 단연 압권임을 감탄으로 감격으로 거푸 인정한다.
정상에 서니 실타래 같은 길은 생각보다 더 많고 사방을 뒤덮고 있다. 어느 길로 갈까 고민 되지만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날카로운 능선이 바로 눈을 사로잡는다. 해외 영상에서 흔히 보았던 그 칼날능선 라이딩을 여기서 완전히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만 말하자. 산악라이딩 측면에서 이 구간을 능가하는 곳은 국내에 없다. 인공적인 기물을 배치한 그런 코스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이뤄진, 어쩌면 산불마저 자연의 일부일 수 있으니 자연이 만들어놓은, 이 풍성한 육산의 질주는 농염한 애무이자 기염을 토하는 클라이맥스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강릉 망운산(동쪽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