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편백숲 산길, 500년 읍성 산책
화산봉(450m) 편백림 숲길. 인적이 드물어 한적하고 자전거 진입이 허용되어 고맙다
‘장성 축령산’이라지만 여기서는 ‘고창 축령산’으로 하련다. 축령산(621m)은 전국 최대의 편백숲으로 유명하고 숲 관리를 위한 임도가 잘 나 있어서 오래 전부터 산악라이딩 코스로 각광받았다. 필자는 2005년경 전남도 요청으로 코스를 개발하고 가이드북을 펴낸 ‘전남 무지개길 27선’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편백숲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어느 순간 자전거 출입이 금지되었다. 2009년 산림청에 의해 ‘치유의 숲’으로 선정되고 보행자가 폭증하면서 어쩔 수 없는 조치겠지만 두바퀴 입장에서는 코스 하나를 잃은 것 아닌가.
다행히 축령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창 쪽에도 편백림이 다수 있고 임도가 열려 있어 이제 우리에게 축령산은 당연히 ‘고창 축령산’이다. 게다가 고창은 방문산(640m)에 2014년 개장한 국내 최대 규모의 본격 MTB파크까지 갖추고 있는, 대단히 자전거 친화적인 고장이다.
고창의 상징, 모양성 북문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고창의 상징 중 하나는 읍내를 끼고 있는 고창읍성이다. 원형이 잘 보존되고 공학적 미학적으로도 뛰어나며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 지명인 ‘모량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매년 10월 성곽 일원에서 ‘모양성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모양성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모양성은 서산 해미읍성과 더불어 전국에 남은 읍성 중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크다. 읍성(邑城)은 관가와 마을을 둘러싼 평지성으로 산성과는 성격이 다르며, 고려와 조선에 걸쳐 주로 왜구와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되었다. 모양성은 1453년(조선 단종 원년)에 완공되었고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만5,858㎡(약 5만평)이다. 관아 등 22개의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성벽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고창에는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閏年) 윤달(閏月)에 부녀자들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돌을 머리에 이고 성벽을 도는 답성놀이(성밟기라고도 한다)를 한다. 이렇게 모은 돌은 유사시 투척 무기로 활용할 수 있어 처음에는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성 입구에는 조선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1812~1884)의 생가와 판소리박물관이 있다.
문을 보호하기 위해 둥그렇게 에워싼 옹성(甕城)으로 구축한 북문이 정문격으로, 석축성벽은 높이 4~6m 정도지만 자연구릉을 급사면으로 삭토한 토대 위에 축조해 실제 높이는 30m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는 공주 공산성을 비롯한 삼국시대 산성에서 흔히 보는 축성법이다. 급사면의 수목을 벌채해 성벽의 전체 위용을 드러낸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성곽은 축령산을 돌고 온 다음 천천히 돌아보자.
석축 성벽 아래 삭토한 급사면을 벌목해 한층 위용이 드러났다. 이를 포함하면 실제 성벽 높이는 30m에 달한다
모양성을 동쪽으로 우회해 노동저수지 방면으로 남하하면 길은 꾸준한 오르막이다. 모양성이 자리한 구릉지와 이어진 노동저수지는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다. 둑길과 호반 산책로도 멋지다.
노동저수지 남단 개울가에 취석정(醉石亭)이 고즈넉하다. 1545년 김경희(1515~1575)가 지었다. ‘취석’은 5세기 중국 동진시대의 자연주의 시인 도연명이 술에 취해 누웠다는 바위에서 따온 이름으로, 정자 주변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을 취석에 비유한 듯하다. 정면 측면 각 3칸에 가운데 1칸짜리 온돌방을 들여 숙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고인돌과 고목이 어우러져 음풍농월하기에는 최적이다. 정자 난간을 받치는 작은 기둥인 닭다리 모양의 계자난간(鷄子欄干)에는 태극과 팔괘를 새겨 만물에 대한 근원적 사색을 가미하고 있다.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관직에 나가지 못한 김경희가 울분을 삭이며 세상을 멀리하는 탈속의 마음으로 우주를 품은 구상이 얼핏 짐작이 간다.
취석정에서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무던한 골짜기 옆에 마을들이 흩어져 있고 이윽고 경사가 급해지더니 화산재(210m)로 올라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다.
호반과 호수 중간에 산책로가 나 있는 노동저수지
고인돌을 취석으로 삼은 취석정. 풍류적 운치가 대단하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화산재(210m)
화산재 인근에서 바라본 산아래 원경 편백림이 시작되는 화산삼거리(330m). 오른쪽으로 가면 '치유의 숲 제2치유센터'로 이어진다
제2치유센터는 잘 지어졌건만 인적이 없다
치유의 숲 안내도. 정작 중요한 산 이름이 빠져 여기서는 화산봉(450m)으로 부르기로 한다
화산재를 품은 산줄기는 축령산 주능선이 흘러내린 북봉에 해당하며 여기에도 편백림이 대단한데도 따로 산명이 없다. 여기서는 마을 이름을 따서 화산봉(化山峰, 450m)이라 하자. 화산봉 서사면에는 길이 1.5km, 폭 300~400m의 편백림이 펼쳐져 있고 숲 사이로는 임도가 이중으로 구불거린다. 장성은 편백림 초입에서 도보 외에는 일체의 탈것 진입을 막지만, 여기는 원동기를 부착하지 않은 탈것의 진입을 허용한다. 그런 탈것 중에 이런 산길을 달릴 수 있는 것은 자전거 밖에 없다.
화산봉 편백림은 수십 년은 묵은 듯하고 어린 나무도 적지 않다. 그래도 피톤치드가 풍성한 듯 급사면 업힐에도 호흡은 경쾌하고 피로는 축적될 기미가 없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치유센터’ 건물이 들어섰지만 인기척이 없다. 아니, 숲 전체에 아예 인적이 없다. 아마도 편백림을 찾는다면 장성으로 가지 굳이 고창으로는 오지 않는 모양이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백숲을 즐기고 싶다면 이제 장성이 아니라 고창으로 올 일이다.
정상 옆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고창읍내가 아득하고 선운산 방면 구릉지 들판이 장쾌하다. 평야지대에서 400m를 넘으니 고도감도 상당하다.
정상 부근 전망대 길목에 구절초가 만발했다전망대에서 바라본 임도와 편백림 그리고 고창읍내
일부 임도는 관리를 하지 않아 물골이 깊게 패인 구간이 있다
화산봉 북사면을 돌아 나오면 장성쪽 편백림 북쪽 초입이자 영화 배경지로 유명한 금곡마을로 이어지는 들독재(수량동고개, 315m)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잠시 거쳐 가는 장성 땅으로, 저 아래로 장성호를 에워싸고 있는 성미산(385m)과 용두산(467m)이 겹쳐 보인다.
들독재 남쪽은 다시 고창 땅으로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축령산 정상부가 웅장하다. 신기마을까지 신나게 내려갔다가 문수사를 향해 다시 업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수사 단풍나무숲과, 드물게 북사면에 자리한 고찰의 사연이 궁금하다.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때인 645년에 창건했다고 하며 절 입구에 수령 100~400년의 단풍나무 고목 500여 그루가 자생한다. 신라 자장율사가 절 뒤쪽 자장굴에서 기도를 하고 절을 지었다는 얘기도 전하지만 솔직히 전국의 사찰 창건설화는 믿기가 좀 어렵다. 주변 산세가 중국 청량산(淸凉山)과 비슷하다고 해서 청량산으로 이름 붙여 일주문에는 ‘청량산 문수사’ 현판이 걸려 있다. 옛지도에는 문수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지금은 축령산으로 정착되었다.
과연, 주차장에서 불이문까지 200m 남짓한 진입로는 단풍나무 고목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최상류 골짜기 지형이 아늑하게 기복해 그윽하다. 절터는 축령산 북사면이기는 하나, 북쪽으로 작은 능선을 끼고 남면(南面)하고 있고, 서쪽으로 틔어 음습한 느낌은 없다.
들독재(수량동고개)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북쪽 풍경. 왼쪽은 고창MTB파크가 있는 방문산(640m), 오른쪽 뒤는 고창에서 가장 높은 방장산(743m)
들독재의 '수상한' 조형물. 인근에 있는 수도처(세심원)에서 마음의 번뇌를 쓸어내라는 뜻으로 만든 것 같다 들독재의 우편함. 늦게 가는 편지는 세월의 감속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문수사 입구의 일주문에는 '청량산 문수사'로 적혀 있다. 축령산은 청량산, 문수산으로도 불린다. 일주문 뒤로 정상이 보인다어린 단풍나무가 줄지은 문수사 진입로. 상하좌우로 일렁이는 길도 아름답다문수사 주변의 단풍(안내판 사진)
원래는 문수사 주차장에서 산허리를 가르는 임도를 타려고 했으나 사유지를 이유로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도리 없이 산을 내려가 은사리에서 다시 오른다. 이번에도 길이 막혀 있으면 난감한데 임도가 만나는 가엽삼거리는 다행히 열려 있다. 왼쪽 문수사 방면으로는 ‘출구 없음’ 표시가 되어 있다. 이후 갈림길마다 아래 마을 이름을 딴 ‘00삼거리’ 지명을 붙여 놓은 이정표가 있어 유익했다. 코스는 계속 행해야 하므로 삼거리에서 지명을 딴 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안 되고 마지막 평지삼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왼쪽 길로 가야 한다.
가엽삼거리 오르는 길목에는 넓은 감밭이 펼쳐지고 저 아래로 고창담양고속도로와 고창읍내가 보인다. 조망이 트인 벌목지를 지나면 바로 숲속이다. 축령산 기슭을 벗어나 두루봉(442m)을 돌아가는 길은 해발 250~300m에 불과하지만 워낙 숲이 울창하고 조망이 막혀 심심산골의 격리감이 대단하다. 그나마 3~4km마다 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와 속세와 멀지 않음을 말해준다. 세속을 떠나고 싶다가도 막상 이런 무인지경 산속에서는 인적이 아쉬우니 현실적 인간사의 한계다. 두평삼거리에 이어 구암삼거리를 지나 구황산(500m) 자락으로 접어든다. 저 아래로 조산저수지와 고창담양고속도로 교량(고수교)이 보이고, 그 뒤로 고창읍내가 아득하다.
축령산 중턱 해발 340m에 자리한 문수사. 북사면이지만 뒤쪽으로 작은 산줄기에 기댄 남향 터를 구축해 밝은 분위기다
문수사 아래의 단풍나무 고목지대
가엽삼거리에서 돌아본 화산봉(왼쪽 가까운 산)과 방장산. 방장산 방면으로 들목재가 보인다
갈림길마다 가까운 마을 이름을 딴 삼거리와 다음 삼거리까지의 거리를 표기한 이정표가 있어 위치를 가늠하기 좋다
구암삼거리 직후에 바라본 구암마을과 조산저수지, 고창담양고속도로 고수교, 고창읍내(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대체로 울창한 숲속이지만 간혹 벌목지에서는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구황산 동사면의 용두삼거리는 해발 230m로 훌쩍 낮아지고 인근에 농장이 있어 하산이 끝난 것 같지만, 다시 북으로 주능선(300m)을 넘어야 한다. 고개 직후의 평지삼거리에서는 그만 하산해야 하니 이정표의 ‘무실마을’ 방면으로 직진하면 된다. 중간에 삼거리가 있는데 청계2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이 길로 하산해도 되지만 다운힐을 좀 더 즐기고 싶다면 직진해서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 소시랑봉(255m) 옆을 지나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마지막에는 조망이 트이면서 급사면 지그재그 다운힐이 나오고 들판에 내려서면 바로 무실마을이다.
산길만 근 30km를 달려서인지 들길은 소파처럼 안락하고 저절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게 된다. 고창의 평야는 완전한 평지가 아니라 30~50m의 낮은 언덕이 일렁이는 구릉지 들판이라 개방감과 입체감이 공존해 풍광이 특별하다.
용두삼거리 직후에 나오는 빽빽한 편백숲평지삼거리에서 조금만 가면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왼쪽 멀리 고창읍내가 보인다
남고창IC를 통과하면 고수천변에 기이한 부곡리 고인돌이 있다. 고창이야 고인돌로 유명하지만 이렇게 받침돌이 높고 덮개돌이 공중에 떠있는 탁자식은 드물다. 뿐만 아니라 묘역과 제단을 함께 갖춘,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형식이다. 이 고인돌의 주인공은 제사장을 겸한 지역의 수장으로 사후에까지 권위를 발휘한 특별한 인물로 추정된다. 개울가 바위 위에 터 잡아 사방이 훤하고, 남방식 고인돌 447기가 밀집한 고창고인돌공원에서 6km 가량 상류에 있으나 중간의 도산리에 탁자식 고인돌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모종의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
이제 읍내가 지척이다. 앞서 지나온 취석정을 거쳐 노동저수지 서편으로 복귀하려 했는데 공사중이라 길이 막혀 왔던 길을 다시 간다. 황혼이 지고 있건만 모양성에는 여전히 탐방객이 더러 있다. 천천히 성벽을 도는 사이 어둠이 내리고, 읍내에는 하나둘 불빛이 아롱거린다.
묘실과 제단(앞쪽의 바닥돌)이 함께 있는, 국내 유일의 부곡리 고인돌. 덮개돌에 비해 받침돌이 빈약해 보이는데도 2천년 이상을 버텨온 것이 신기하다
황혼이 내리는 모양성을 천천히 걷는다. 사진은 완벽한 옹성을 이룬 동문
모양성 내부에는 용수로 활용할 연못과 건물들이 있었다. 소실된 건물 중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tip
모양성 북문 근처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읍내 외에는 식당과 편의점이 없으므로 유의한다. 문수사 아래에는 사하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축령산~두루봉~구황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3km 내외 간격으로 하산로가 꾸준히 있어 체력이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마을로 내려갈 수 있고 어디서든 읍내까지는 8km 정도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고창 축령산 44km
울창한 편백숲 산길, 500년 읍성 산책
화산봉(450m) 편백림 숲길. 인적이 드물어 한적하고 자전거 진입이 허용되어 고맙다
‘장성 축령산’이라지만 여기서는 ‘고창 축령산’으로 하련다. 축령산(621m)은 전국 최대의 편백숲으로 유명하고 숲 관리를 위한 임도가 잘 나 있어서 오래 전부터 산악라이딩 코스로 각광받았다. 필자는 2005년경 전남도 요청으로 코스를 개발하고 가이드북을 펴낸 ‘전남 무지개길 27선’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편백숲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어느 순간 자전거 출입이 금지되었다. 2009년 산림청에 의해 ‘치유의 숲’으로 선정되고 보행자가 폭증하면서 어쩔 수 없는 조치겠지만 두바퀴 입장에서는 코스 하나를 잃은 것 아닌가.
다행히 축령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창 쪽에도 편백림이 다수 있고 임도가 열려 있어 이제 우리에게 축령산은 당연히 ‘고창 축령산’이다. 게다가 고창은 방문산(640m)에 2014년 개장한 국내 최대 규모의 본격 MTB파크까지 갖추고 있는, 대단히 자전거 친화적인 고장이다.
고창의 상징, 모양성 북문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고창의 상징 중 하나는 읍내를 끼고 있는 고창읍성이다. 원형이 잘 보존되고 공학적 미학적으로도 뛰어나며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 지명인 ‘모량부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매년 10월 성곽 일원에서 ‘모양성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모양성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모양성은 서산 해미읍성과 더불어 전국에 남은 읍성 중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크다. 읍성(邑城)은 관가와 마을을 둘러싼 평지성으로 산성과는 성격이 다르며, 고려와 조선에 걸쳐 주로 왜구와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되었다. 모양성은 1453년(조선 단종 원년)에 완공되었고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만5,858㎡(약 5만평)이다. 관아 등 22개의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성벽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고창에는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閏年) 윤달(閏月)에 부녀자들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돌을 머리에 이고 성벽을 도는 답성놀이(성밟기라고도 한다)를 한다. 이렇게 모은 돌은 유사시 투척 무기로 활용할 수 있어 처음에는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성 입구에는 조선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1812~1884)의 생가와 판소리박물관이 있다.
문을 보호하기 위해 둥그렇게 에워싼 옹성(甕城)으로 구축한 북문이 정문격으로, 석축성벽은 높이 4~6m 정도지만 자연구릉을 급사면으로 삭토한 토대 위에 축조해 실제 높이는 30m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는 공주 공산성을 비롯한 삼국시대 산성에서 흔히 보는 축성법이다. 급사면의 수목을 벌채해 성벽의 전체 위용을 드러낸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성곽은 축령산을 돌고 온 다음 천천히 돌아보자.
석축 성벽 아래 삭토한 급사면을 벌목해 한층 위용이 드러났다. 이를 포함하면 실제 성벽 높이는 30m에 달한다
모양성을 동쪽으로 우회해 노동저수지 방면으로 남하하면 길은 꾸준한 오르막이다. 모양성이 자리한 구릉지와 이어진 노동저수지는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다. 둑길과 호반 산책로도 멋지다.
노동저수지 남단 개울가에 취석정(醉石亭)이 고즈넉하다. 1545년 김경희(1515~1575)가 지었다. ‘취석’은 5세기 중국 동진시대의 자연주의 시인 도연명이 술에 취해 누웠다는 바위에서 따온 이름으로, 정자 주변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을 취석에 비유한 듯하다. 정면 측면 각 3칸에 가운데 1칸짜리 온돌방을 들여 숙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고인돌과 고목이 어우러져 음풍농월하기에는 최적이다. 정자 난간을 받치는 작은 기둥인 닭다리 모양의 계자난간(鷄子欄干)에는 태극과 팔괘를 새겨 만물에 대한 근원적 사색을 가미하고 있다.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관직에 나가지 못한 김경희가 울분을 삭이며 세상을 멀리하는 탈속의 마음으로 우주를 품은 구상이 얼핏 짐작이 간다.
취석정에서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무던한 골짜기 옆에 마을들이 흩어져 있고 이윽고 경사가 급해지더니 화산재(210m)로 올라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다.
호반과 호수 중간에 산책로가 나 있는 노동저수지
고인돌을 취석으로 삼은 취석정. 풍류적 운치가 대단하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화산재(210m)
화산재 인근에서 바라본 산아래 원경 편백림이 시작되는 화산삼거리(330m). 오른쪽으로 가면 '치유의 숲 제2치유센터'로 이어진다
제2치유센터는 잘 지어졌건만 인적이 없다
치유의 숲 안내도. 정작 중요한 산 이름이 빠져 여기서는 화산봉(450m)으로 부르기로 한다
화산재를 품은 산줄기는 축령산 주능선이 흘러내린 북봉에 해당하며 여기에도 편백림이 대단한데도 따로 산명이 없다. 여기서는 마을 이름을 따서 화산봉(化山峰, 450m)이라 하자. 화산봉 서사면에는 길이 1.5km, 폭 300~400m의 편백림이 펼쳐져 있고 숲 사이로는 임도가 이중으로 구불거린다. 장성은 편백림 초입에서 도보 외에는 일체의 탈것 진입을 막지만, 여기는 원동기를 부착하지 않은 탈것의 진입을 허용한다. 그런 탈것 중에 이런 산길을 달릴 수 있는 것은 자전거 밖에 없다.
화산봉 편백림은 수십 년은 묵은 듯하고 어린 나무도 적지 않다. 그래도 피톤치드가 풍성한 듯 급사면 업힐에도 호흡은 경쾌하고 피로는 축적될 기미가 없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치유센터’ 건물이 들어섰지만 인기척이 없다. 아니, 숲 전체에 아예 인적이 없다. 아마도 편백림을 찾는다면 장성으로 가지 굳이 고창으로는 오지 않는 모양이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백숲을 즐기고 싶다면 이제 장성이 아니라 고창으로 올 일이다.
정상 옆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고창읍내가 아득하고 선운산 방면 구릉지 들판이 장쾌하다. 평야지대에서 400m를 넘으니 고도감도 상당하다.
정상 부근 전망대 길목에 구절초가 만발했다전망대에서 바라본 임도와 편백림 그리고 고창읍내
일부 임도는 관리를 하지 않아 물골이 깊게 패인 구간이 있다
화산봉 북사면을 돌아 나오면 장성쪽 편백림 북쪽 초입이자 영화 배경지로 유명한 금곡마을로 이어지는 들독재(수량동고개, 315m)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잠시 거쳐 가는 장성 땅으로, 저 아래로 장성호를 에워싸고 있는 성미산(385m)과 용두산(467m)이 겹쳐 보인다.
들독재 남쪽은 다시 고창 땅으로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축령산 정상부가 웅장하다. 신기마을까지 신나게 내려갔다가 문수사를 향해 다시 업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수사 단풍나무숲과, 드물게 북사면에 자리한 고찰의 사연이 궁금하다.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때인 645년에 창건했다고 하며 절 입구에 수령 100~400년의 단풍나무 고목 500여 그루가 자생한다. 신라 자장율사가 절 뒤쪽 자장굴에서 기도를 하고 절을 지었다는 얘기도 전하지만 솔직히 전국의 사찰 창건설화는 믿기가 좀 어렵다. 주변 산세가 중국 청량산(淸凉山)과 비슷하다고 해서 청량산으로 이름 붙여 일주문에는 ‘청량산 문수사’ 현판이 걸려 있다. 옛지도에는 문수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지금은 축령산으로 정착되었다.
과연, 주차장에서 불이문까지 200m 남짓한 진입로는 단풍나무 고목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최상류 골짜기 지형이 아늑하게 기복해 그윽하다. 절터는 축령산 북사면이기는 하나, 북쪽으로 작은 능선을 끼고 남면(南面)하고 있고, 서쪽으로 틔어 음습한 느낌은 없다.
들독재(수량동고개)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북쪽 풍경. 왼쪽은 고창MTB파크가 있는 방문산(640m), 오른쪽 뒤는 고창에서 가장 높은 방장산(743m)
들독재의 '수상한' 조형물. 인근에 있는 수도처(세심원)에서 마음의 번뇌를 쓸어내라는 뜻으로 만든 것 같다 들독재의 우편함. 늦게 가는 편지는 세월의 감속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문수사 입구의 일주문에는 '청량산 문수사'로 적혀 있다. 축령산은 청량산, 문수산으로도 불린다. 일주문 뒤로 정상이 보인다어린 단풍나무가 줄지은 문수사 진입로. 상하좌우로 일렁이는 길도 아름답다문수사 주변의 단풍(안내판 사진)
원래는 문수사 주차장에서 산허리를 가르는 임도를 타려고 했으나 사유지를 이유로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도리 없이 산을 내려가 은사리에서 다시 오른다. 이번에도 길이 막혀 있으면 난감한데 임도가 만나는 가엽삼거리는 다행히 열려 있다. 왼쪽 문수사 방면으로는 ‘출구 없음’ 표시가 되어 있다. 이후 갈림길마다 아래 마을 이름을 딴 ‘00삼거리’ 지명을 붙여 놓은 이정표가 있어 유익했다. 코스는 계속 행해야 하므로 삼거리에서 지명을 딴 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안 되고 마지막 평지삼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왼쪽 길로 가야 한다.
가엽삼거리 오르는 길목에는 넓은 감밭이 펼쳐지고 저 아래로 고창담양고속도로와 고창읍내가 보인다. 조망이 트인 벌목지를 지나면 바로 숲속이다. 축령산 기슭을 벗어나 두루봉(442m)을 돌아가는 길은 해발 250~300m에 불과하지만 워낙 숲이 울창하고 조망이 막혀 심심산골의 격리감이 대단하다. 그나마 3~4km마다 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와 속세와 멀지 않음을 말해준다. 세속을 떠나고 싶다가도 막상 이런 무인지경 산속에서는 인적이 아쉬우니 현실적 인간사의 한계다. 두평삼거리에 이어 구암삼거리를 지나 구황산(500m) 자락으로 접어든다. 저 아래로 조산저수지와 고창담양고속도로 교량(고수교)이 보이고, 그 뒤로 고창읍내가 아득하다.
축령산 중턱 해발 340m에 자리한 문수사. 북사면이지만 뒤쪽으로 작은 산줄기에 기댄 남향 터를 구축해 밝은 분위기다
문수사 아래의 단풍나무 고목지대
가엽삼거리에서 돌아본 화산봉(왼쪽 가까운 산)과 방장산. 방장산 방면으로 들목재가 보인다
갈림길마다 가까운 마을 이름을 딴 삼거리와 다음 삼거리까지의 거리를 표기한 이정표가 있어 위치를 가늠하기 좋다
구암삼거리 직후에 바라본 구암마을과 조산저수지, 고창담양고속도로 고수교, 고창읍내(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대체로 울창한 숲속이지만 간혹 벌목지에서는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구황산 동사면의 용두삼거리는 해발 230m로 훌쩍 낮아지고 인근에 농장이 있어 하산이 끝난 것 같지만, 다시 북으로 주능선(300m)을 넘어야 한다. 고개 직후의 평지삼거리에서는 그만 하산해야 하니 이정표의 ‘무실마을’ 방면으로 직진하면 된다. 중간에 삼거리가 있는데 청계2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이 길로 하산해도 되지만 다운힐을 좀 더 즐기고 싶다면 직진해서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 소시랑봉(255m) 옆을 지나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마지막에는 조망이 트이면서 급사면 지그재그 다운힐이 나오고 들판에 내려서면 바로 무실마을이다.
산길만 근 30km를 달려서인지 들길은 소파처럼 안락하고 저절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게 된다. 고창의 평야는 완전한 평지가 아니라 30~50m의 낮은 언덕이 일렁이는 구릉지 들판이라 개방감과 입체감이 공존해 풍광이 특별하다.
용두삼거리 직후에 나오는 빽빽한 편백숲평지삼거리에서 조금만 가면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왼쪽 멀리 고창읍내가 보인다
남고창IC를 통과하면 고수천변에 기이한 부곡리 고인돌이 있다. 고창이야 고인돌로 유명하지만 이렇게 받침돌이 높고 덮개돌이 공중에 떠있는 탁자식은 드물다. 뿐만 아니라 묘역과 제단을 함께 갖춘,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형식이다. 이 고인돌의 주인공은 제사장을 겸한 지역의 수장으로 사후에까지 권위를 발휘한 특별한 인물로 추정된다. 개울가 바위 위에 터 잡아 사방이 훤하고, 남방식 고인돌 447기가 밀집한 고창고인돌공원에서 6km 가량 상류에 있으나 중간의 도산리에 탁자식 고인돌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모종의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
이제 읍내가 지척이다. 앞서 지나온 취석정을 거쳐 노동저수지 서편으로 복귀하려 했는데 공사중이라 길이 막혀 왔던 길을 다시 간다. 황혼이 지고 있건만 모양성에는 여전히 탐방객이 더러 있다. 천천히 성벽을 도는 사이 어둠이 내리고, 읍내에는 하나둘 불빛이 아롱거린다.
묘실과 제단(앞쪽의 바닥돌)이 함께 있는, 국내 유일의 부곡리 고인돌. 덮개돌에 비해 받침돌이 빈약해 보이는데도 2천년 이상을 버텨온 것이 신기하다
황혼이 내리는 모양성을 천천히 걷는다. 사진은 완벽한 옹성을 이룬 동문
모양성 내부에는 용수로 활용할 연못과 건물들이 있었다. 소실된 건물 중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tip
모양성 북문 근처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읍내 외에는 식당과 편의점이 없으므로 유의한다. 문수사 아래에는 사하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축령산~두루봉~구황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3km 내외 간격으로 하산로가 꾸준히 있어 체력이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마을로 내려갈 수 있고 어디서든 읍내까지는 8km 정도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고창 축령산 4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