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권완도 금당도

자생투어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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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 가라앉아 꼭대기만 남았구나

 

금당도 남단 댈초봉 전망대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모습. 바로 앞의 바위섬인 교암청풍을 필두로 비견도, 허우도, 형제도, 거금도가 일렬로 중첩되는 기경이 펼쳐진다  


이 특이한 섬을 지도에서 발견하고 나는 바로 매료되었다. 개코원숭이를 닮은 섬 형태부터 기이한데 섬 내부 산줄기는 온통 바위로 가득하다. 군산 선유도나 신안 비금도와 흡사한 지형으로 모든 산줄기에 바위가 드러나 암릉의 밀도가 압도적이고 해변에는 기암괴석의 해식애가 발달했다. 경관 측면에서 이만큼 매혹적인 섬이 드문데 덜 알려진 것은 지형 외에는 특별한 명소나 관광지가 없고 인근에 있는 완도, 청산도, 거금도 등의 유명세에 가렸기 때문일 것이다.

금당도는 득량만 입구, 거금도와 장흥 사이에 있다  

금당도(金塘島)는 완도에 속하지만 완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오히려 고흥 거금도와 가까워 사실상 고흥 생활권이다. 배편도 거금도 우두항이 제일 가까워 3.4km 밖에 되지 않는다.

당(塘)은 저수지나 둑을 뜻하는데 바위가 드러난 산줄기가 금빛 제방을 닮았다는 뜻 아닐까 싶다. 길이 7km, 폭 3km, 면적 13.7㎢의 적당한 크기에 9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래도 1986년 금일읍에서 분리되어 유인도 3, 무인도 14개를 포함해 면(面)이 되었고, 70~80년대만 해도 미역, 다시마, 톳 양식을 하며 5천명 정도가 사는 부자 섬이었다고 한다.

해무라도 끼면 이 기이한 바위섬은 마치 금강산 봉우리가 물에 잠겨 머리만 내민 듯 신비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완도군에서도 해금강에 비유하며 금당8경을 지정해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다. 금당8경은 병풍바위, 부채바위, 코끼리바위, 범바위, 꽃섬 용머리, 흔들바위, 교암청풍 등 주로 해안 바위여서 배를 타지 않으면 모두 보기 어렵다.

거금도 우두항에서 금당도를 오가는 카페리(차도선). 하루 4번 왕복하며 15분 걸린다  

가장 가까운 거금도 우두항에서 11시35분 배에 오른다. 우두항에서 금당도는 하루 4번 왕복 배편이 있으며, 금당도에서 나오는 막배는 오후 3시20분이다. 거금도를 일주하고 바로 가는 여정이라 3시간여 밖에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게다가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데다 대기도 희뿌옇다. 라이딩에 최악의 날씨지만 이 먼 곳까지 다시 오기 어려우니 일단 가보기로 한다.

배는 1층 바닥에 자동차를 싣고 2층에 객실이 있는 전형적인 ‘차도선’(카페리)이다. 10노트 정도로 천천히 움직여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금당도 율포항까지 15분이 걸린다.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바람까지 불어 상갑판에는 오르지 못한 채 객실 갑판을 서성이고 있는데, 갑자기 등이 허전하다. 이런 낭패가! 배낭을 우두항 매표소에 두고 왔다. 카메라와 장갑, 비상공구와 간식까지 들었는데 난감하게 되었다.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배낭은 매표소 직원이 챙겼다고 하지만 당장 장갑과 비상공구가 없으니 펑크나 고장이 나면 큰일이다.

율포항 도착 전에 바라본 금당도 동부 해안. 오른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금당산(178m)이고 해안은 온통 하얀 암반이 드러난 해식애다 

금당도가 다가서니 줄지은 해식애가 대단하다. 매혹적인 섬이 다 그렇듯이, 금당도 역시 자전거로 일주한 다음 내륙 산줄기를 걸어서 종주해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배를 타고 섬을 일주하며 해안 경관을 즐겨야 한다. 이렇게 보려면 이틀 이상을 잡아야 하는데 겨우 3시간을 잡고 왔으니 섬 보기에 미안하다. 대신, 다음에 올 기약을 필히 남겨둔다.

비가 부슬거리는 초미니 율포항에 내린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이런 날 자전거를 끌고 내린 나는 기이한 방문객이다. 포구 주변의 율포리 좁은 골목에 면사무소와 농협, 마트, 식당 등이 밀집해 있다. 율포리를 벗어나면 식당과 가게가 없어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할 생각으로 식당 몇 곳을 찾았는데 전부 만원이다. 섬에서 일하는 인부와 외국인 노동자로 가득이다. 가까스로 자리를 얻어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서 고무 코팅이 된 작업용 장갑을 사서 끼니 그나마 손 시림이 덜하다.

면사무소 옆으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섬에서 가장 큰 차우마을이 나오고 뒤로는 봉긋한 암봉인 공산(138m)이 멋지다. 암봉과 암릉은 사방에 가리는 것이 없이 고도감이 과장되고 조망이 탁 트여 산행하기에 특히 좋다. 다음에는 저 바위산 줄기를 꼭 걸어봐야겠다.

차우마을 뒤편으로 온통 바위로 이뤄진 공산(138m)이 오똑하다 

비가 심해져 길가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구름 사진을 보니 하필 이 지역에만 비구름이 걸려 있는데 거금도에 이어 나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나지막한 육동재를 넘으면 금당중학교와 초등학교가 있는 육동리다. 섬 중심지에서 떨어진 이곳에 학교가 자리한 것이 기이하지만 중학교까지 건재한 것이 반갑다.

산줄기에 둘러싸인 육동리는 섬 같지 않은 산간마을 분위기다. 겨울비가 추적거리니 길에는 행인이 없고 차도 다니지 않아 나그네 심사가 더 쓸쓸하다.

육동리를 벗어나 일주도로 중 가장 난코스인 개기재를 오른다. 일대는 바위산이 밀집해 있는데 낮은 구름으로 운무가 끼고 무인지경이라 심산의 풍모마저 느껴진다.

개기재는 겨우 110m 높이지만 섬이라 업힐 거리는 만만치 않다. 길 아래로 패인 골짜기(개골)와 주변 기암괴석은 작은 신선경이다. 개기재 정상은 금당산 줄기 종주코스여서 금당산, 삼랑산, 봉자산 이정표가 빗물에 말갛게 씻겨 있다. 등산으로 찾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비는 내리고 갈 길은 아득하고... 육동리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길도, 자전거도 빗물에 말갛게 씻겼고 인적은 끊겼다   

육동리의 어느 돌담집. 현대적 태양광 패널과 낡은 돌담이 동거 중이다

개기재를 내려서면 바다를 낀 가학리다. 마을에서 안산을 돌아나가면 장흥 노력항을 오가는 배가 다니는 가학선착장이다. 이곳은 섬의 북서단으로, 개코원숭이로 치면 코끝에 해당한다. 섬 내에는 아예 없던 차량 몇 대가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바다 건너 저편에 장흥의 명산인 천관산(723m)이 있을 텐데 낮은 구름과 흐린 대기로 노력항까지 5.4km에 불과한데도 앞바다는 망망대해 같다.

가학선착장에서는 금당도 서해안을 따라가는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6km 정도의 아름답고 한적한 바닷길인데 날씨가 좋다면 대단한 절경일 것이다. 진도 조도의 읍구해안도로(모래미로)에 필적할 만하다.

비 내리고 인적 없는 바닷길을 동그라미 두 개가 느릿느릿 달린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점일 테지만 바퀴 둘을 연결한 삼각 프레임, 그 위에 올라탄 인체까지 나는 꽤나 확장된 상태다. 앞바다에는 김과 전복 양식장이 엄청난 규모로 펼쳐져 있다. 바다를 텃밭처럼 가꾸는 기술과 사람들이 참으로 대단하다.

개기재 고갯길 옆에는 개골 골짜기와 암벽이 선경이다 

금당산~삼랑산~봉자산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를 넘어가는 개기재 정상

가학리로 들어서며. 맞은편 삼각봉은 안산(185m)으로 섬의 북서단에 해당한다

가학~온금포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황도와 질마도 등 무인도군과 광대한 양식장(미역, 다시마, 김, 전복 등)

바다와 산이 가깝고 인공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해안도로는 대단한 절경이다  

봉자산을 돌아 내륙의 삼산리로 북상한다. 산을 오르지는 못하지만 산세가 가장 아름다운 삼랑산(219m)을 보기 위해서다. 삼랑산은 조금 더 높은 무명봉이 있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금당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암릉과 암벽이 장관을 이루지만 역시 운무에 가려 전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 이번 여정의 클라이막스인 최남단의 댈추봉으로 향한다. 차우리의 작은 들판을 통과해 고개를 넘으면 지협(地峽)에 터잡은 세포리가 나온다. 세포리 마을 뒤 산길로 접어들면 댈추봉 초입의 장문재에 이른다. 장문재는 해발 60m 정도이고 댈추봉은 110m이다. 이 높이로도 조망은 탁 트여서, 눈앞에 줄지은 무인도 군도와 주변 암벽이 굉장한 절경이다. 무인지경 빗속이라 몽롱한 환상경처럼 느껴진다.

삼산리 들판에서 바라본 삼랑봉(219m). 서울 인왕산을 닮은, 육중한 바위산이다  차우리에서 세포마을로 넘어가는 당목재. 여러 개의 이정표가 어지럽다. 뒤로 보이는 첨봉은 봉자산(189m)  

반도로 뻗어 내린 댈추봉 남단에는 세포전망대가 있으나 거리가 1km나 되어 댈추봉 아래 간이전망대만 다녀오기로 한다. 자전거는 장문재에 두고 300m 정도 가면 댈추봉 동쪽, 해발 90m 위치에 작은 데크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가느다란 바위섬인 교암청풍과 그 뒤로 줄지은 비견도, 허우도, 거금도의 첩첩 섬 무리는 처음 보는 비경이다. 아마도 세포전망대에서는 남쪽의 신도, 충도, 평일도, 생일도가 한눈에 들어올 테니 이보다 더한 스펙터클을 보여줄 테지만, 역시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선경(仙境)은 심산뿐 아니라 이런 해상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댈추봉 초입의 장문재는 바닷가 절벽 위다. 길을 따라가면 해변까지 내려갈 수 있고 뒤쪽으로 봉자산이 살짝 보인다. 댈추봉 전망대는 여기에 자전거를 두고 300m 정도 걸어올라야 한다 댈추봉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동 방면. 왼쪽 끝이 세포마을로 해안선을 따라 트래킹 코스인 금당적벽길이 나 있다. 맞은편 산자락에 데크로가 보인다. 건너편 섬은 비견도, 그 뒤에 구름을 뒤집어 쓴 큰 섬은 거금도다    

세포전망대로 이어지는 능선길. 뒤쪽에 구름 걸린 섬은 충도 

율포항의 사자바위와 가마바위 안내문. 금당8경은 대부분 해식애 바위여서 유람선을 타야 잘 볼 수 있다. 정기 유람선은 없고 율포항에서 배를 빌려야 한다

어느새 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율포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3시20분이 막배여서 너무 빠른 것 같지만 겨울에는 이미 저녁 기운이 완연할 때이고, 이 배를 놓치면 섬에서 자야 한다. 내일은 무슨 약속이 있는 것 같은데... 서울 사는 건 왜 이리 매사가 빠듯한가. 떠나와도 돌아가기 바쁘고, 서울 일을 마음 한켠에서 지울 수 없으니. 이런 심사를 견딜 수 없다면 이제 서울 자체를 떠날 때가 가까웠나 보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tip

거금도 우두항에서 금당도 가는 배편과 문의처는 사진 참조(23년 12월 기준). 편도 요금은 4,100원이고 자전거 요금 2,000원 별도. 율포항에 식당과 가게가 모여 있어서 필요한 것은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 12시 전부터 시작되는 점심시간에는 섬사람들이 한꺼번에 식당에 모여들어 자리가 없으므로 유의한다.


완도 금당도 2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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