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팔랑이는 산야, 미스터리 고분들
방풍림으로 조성한 향교리 고목숲
함평의 존재감은 나비 축제로 일약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999년 첫회가 열리기 직전 마침 함평을 지난 적이 있는데, 나비를 테마로 하는 축제라… 독특하긴 하지만 어딘가 임팩트가 떨어져 성공할 수 있을까 미심쩍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비축제는 전형적인 농촌인 함평의 친환경 이미지와 맞아떨어졌고 사전에 설립한 곤충연구소가 전문성을 강화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매년 4월말~5월초에 걸쳐 개최되며 코로나 직전인 2018년에는 27만명이 찾았다. 2023년에는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10일 간 열린다. 2012년부터는 국비지원 없이 흑자를 내고 있으며 이런 축제는 전국 지방축제 중에 극히 드물다. 서울의 동 하나에 해당하는 인구 3만의 고장으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축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함평은 여전히 타지인에게 ‘위치 감각’부터 애매하다. 전남인지 전북인지, 바닷가인지 내륙인지, 가까운 도시는 어딘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냥 광주와 목포 사이로 기억하면 쉽다. 두 도시 사이는 나주가 유명하지만 함평은 바다쪽, 나주는 내륙쪽으로 정리하면 편하다. 그런데 함평과 나주는 고대사의 신비를 공유한다. 필자가 함평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비축제로 대성공을 거둔 함평은 온통 나비다. 농업 위주의 전원 풍경과 깨끗한 자연은 나비와 어울린다. 광대한 엑스포공원 뒤편으로 수산봉 나비화원이 이채롭다
함평천을 끼고 있는 함평읍내는 곳곳에 아파트가 솟아 있다. 군 전체 인구가 3만밖에 되지 않고 70%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한일고대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하고 첨예한 논쟁을 야기하는 유적 중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앞은 사각형, 뒤는 원분이 붙어 있는 대형 고분)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일본 고분시대(3~7세기) 고유의 묘제로 알려져 온 전방후원분이 영산강유역에서만 15기가 발견된 것이다. 그중 함평에는 세 기의 전방후원분이 있고 규모도 커서 주목된다.
함평은 서쪽으로 일종의 지중해인 함평만을 끼고 있어 영산강 수계와 함께 해상 루트도 열려 있어 고대에는 사통팔달이었을 것이다. 광대한 평야는 없으나 높은 산도 없어서 고만고만한 산과 들이 어우러져 시각적,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름은 ‘전체가 평야’(咸平)지만 조선 태종 때 함풍현과 모평현을 통합하며 한 자씩 따온 명칭일 뿐이다.
함평읍 외곽에 광대한 면적으로 조성된 엑스포공원을 기점으로 함평의 산야와 신비의 고분 그리고 지중해를 낀 해안선을 돌아본다.
읍내에서 마산리고분군으로 가는 길목의 월산리 고갯길. 마주보이는 산은 읍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고산봉(362m)
엑스포공원은 함평천과 접해 있고, 하천 좌우 둑에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함평천을 건너 동쪽 월산리의 구릉지를 넘어가면 동함평IC 인근에 마산리고분군이 있다. 주민들은 동그마한 야산이 표주박처럼 생겼다고 해서 표산(瓢山)이라고 불러 ‘표산고분군’이라고도 한다.
언덕 정상부에 대형 전방후원분이 있고 주위에 작은 원분이 모여 있으며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 중에서 이런 군집 형태는 유일하다. 나머지 전방후원분은 한 기가 독립적으로 있거나, 원분 배총(陪塚) 한 기 정도가 덧붙어 있는 정도다. 예외적으로 광주 월계동고분은 전방후원분 2기가 모여 있다.
수년 전 들렀을 때는 발굴 중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안내판의 발굴기간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발굴이 진행 중이다. 총 15기 중 전방후원분인 1호분과 원분 3기만 발굴되었고, 전방후원분은 분구 보호를 위해 푸른 장막을 씌워놓았다. 길이 46m, 높이 6.2m로 중간급 크기인데 분구 주위의 주구(분구를 보호하고 성역을 표시하는 도랑)까지 파놓아 한층 거대해 보인다. 발굴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도굴로 인해 유물이 제한적이고 매장시설은 석실 구조다. 시기는 6세기 초로 추정되어, 사비천도(538년)를 전후한 시기에 마한 영역인 이곳이 백제에 통합되는 과정에 등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왜계 전방후원분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미스터리다다.
발굴중인 마산리고분군(표산고분군). 왼쪽이 길이 46m, 높이 6.2m의 전방후원분, 오른쪽은 배총인 원분이다. 전방후원분을 중심으로 주변에 10여기의 원분이 모여 있는 군집 형태다
표산고분군을 나와 북으로 방향을 잡는다. 조금 가면 도로가에 멋진 고목 숲이 길게 늘어져 있다. 공식 명칭은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숲’이다 수종을 다 집어넣어 이토록 긴 이름을 붙인 이유가 뭘까. 350년 전 마을 앞을 가리는 방풍림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마을을 벗어나 들판으로 들어선다. 넓은 평야는 아니지만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농로는 직선들의 교차다. 시골 농로와 둑길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우선 길이 평탄해 힘이 들지 않고 사람과 차가 거의 없어 길을 전세 낼 수 있다.
함평천 둑길을 타고 북상하다 서쪽 금산리 방면으로 들판을 벗어나면 고속화된 23번 국도를 만난다. 금산교차로 옆 언덕에 또 하나의 거대한 고분이 있으니 ‘금산리방대형고분’이다. 주민들이 ‘노적봉’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분 앞에 서면 일단 규모에 놀란다. 사각형 바닥에 위쪽에는 다시 사각형 평탄지가 또 있는 방대형(方臺形) 고분으로, 최대길이 51m, 높이 8.9m로 전남지역 고분 중 가장 큰 편이다. 현재는 흙으로 덮여 있으나 원래는 분구 표면에 깬돌을 덮은 즙석분(葺石墳)으로 남한 최대 규모다. 근래의 발굴 결과, 지금의 외형과 달리 원래는 4~5단의 단층을 이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고구려 초기의 적석총과 한성 백제 시기 즙석분과 유사하다. 여기서는 의례용으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인 인물식륜(人物埴輪)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일본 고분시대의 대표적 유물이기도 해서 특히 주목되며, 4~5세기 일본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스에키(須惠器) 계통의 토기도 나왔고 시기는 5세기말~6세기초로 추정된다. 시기와 부장품 계통이 앞서 표산고분군과 유사하다.
함평천에는 곳곳에 저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읍내에서 북으로 뻗어나는 평야 중심부의 농로. 왼편으로 들판의 젓줄인 함평천도 함께 흐른다
주민들이 ‘노적봉’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대한 금산리방대형고분. 사각형 바닥에 위쪽에 다시 사각형 평탄지가 또 있어 방대형(方臺形)이라고 한다. 최대길이 51m, 높이 8.9m로 전남지역 고분 중 가장 크다
방대형고분에서 서쪽으로 800m 가면 서해안고속도로 바로 옆에 거대한 전방후원분이 또 있다. 죽암리장고분으로, 국내에서는 일본 용어인 전방후원분을 꺼려해 전통악기인 장고를 닮았다고 해서 ‘장고분’이라고 많이 쓴다.
죽암리고분은 앞서 본 표산고분보다 더 크다. 길이 70m, 높이 8m로 국내 전방후원분 중 해남 방산리장고봉고분(길이 76m, 높이 10m) 다음이다. 바로 옆으로 도로가 나면서 전방부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형태는 잘 남아 있다. 마침 이곳도 발굴이 시작되어 작업이 진행중이니 결과가 나오려면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금은 해안에서 2km 정도 들어와 있으나 20세기 이후 방조제를 세워 간척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로 아래 목교저수지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애써 바닷가에 자리한 입지와 전방부가 바다를 향한 점에서 해상루트와 각별한 관련이 있는 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
고대 일본 계통이 분명한 전방후원분은 이처럼 독립적으로 산재해 있고, 지역의 수장급 무덤인 옹관묘 중심지와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축조시기가 5세기말에서 6세기초까지 50년 정도로 한정되는 점에서 무덤 주인공은 지역에서 대대로 군림한 수장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시간 체재하다가 거대한 무덤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져버린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전형적인 전방후원분 형태의 죽암리장고분. 길이 70m, 높이 8m로 국내 전방후원분 중 두번째 크기다. 왼쪽이 전방부, 오른쪽이 매장시설이 있는 후원부이다
죽암리장고분은 발굴중이다. 전방부를 발굴하고 있는 모습
목교저수지를 돌아 남으로 내려가면 곧 해변이 나온다. 함평이 해안지방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해변에는 함평의 명물 중 하나인, 바닷물로 찜질을 하는 해수약찜 업체가 몇 곳 있고, 남으로는 주포까지 500m 남짓한 방조제가 뻗어난다. 오른쪽으로 광활한 갯벌이 드러난 바다는 해제반도 사이에 갇힌 함평만이다. 길이 16km, 폭 6km이니 상당히 큰 지중해다. 잔물결도 없이 유리면처럼 매끄러운 수면이 아득히 펼쳐지고, 멀리 만 입구를 가로막은 칠산대교와 칠산타워가 아련하다.
고급스런 한옥마을(대부분 펜션)이 들어선 주포에서 돌출한 곶(串)에 자리한 돌머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오색의 연석이 곁들여져 잿빛 갯벌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해학적인 이름의 돌머리해수욕장은 인근의 옛지명 ‘석두(石頭)’에서 유래한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바다로) 돌출한 머리’의 뜻인 듯하다. 이것이 한자로 석두를 거쳐 돌머리가 되지 않았을까. 시즌이 아닌데도 산책객이 더러 있다.
일제 때 축조된 주포방조제. 오른쪽 함평만 깊숙이 뻗어나간 반도 끝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있다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은 주포한옥마을. 대부분 펜션이며 고급스럽고 깨끗해서 격조마저 느껴진다
돌머리해수욕장 가는 해안길. 알록달록한 연석이 생동감을 더해준다
솔밭을 끼고 있는 돌머리해수욕장. 400m 정도의 백사장을 갖춘 소규모이며 비시즌이라 한산하다
돌머리해수욕장 남쪽으로 비포장 해안도로가 있지만 포장공사 구간과 뒤섞여 당분간 운치를 만끽하긴 어렵겠다. 보기 드문 해안 흙길이라 기대를 했건만 역시 시대의 풍요는 이런 길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제 내륙으로 길을 돌려 도로와 농로를 번갈아가며 함평천으로 나서 둑길에 오른다. 영산강 본류에서 멀지 않아 연계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다. 들에도 길에도 인적은 없고 햇살은 따사로우니 신록의 생기가 전신을 감싼다. 수산봉의 나비 화원과 함평2교의 나비 조형물이 보이면 읍내가 지척이다. 페달링은 한없이 가볍고 심신이 쾌적하니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려 나비처럼 날개짓을 하고 있다.
돌머리해수욕장 남쪽의 해안길. 건너편은 무안 해제반도구릉지와 접한 예쁜 해변이지만 일부 구간은 도로 공사 중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해안 구릉지의 보리밭이 싱그럽다흙길에 유채꽃이 피어나니 더욱 정겹다
귀로의 함평천 둑길. 영산강 자전거길과 연결되는 자저거도로가 잘 되어 있다
tip
함평읍내를 벗어나면 식당과 편의점이 드물다. 돌머리해변에서 자명천 수로길까지 해안도로는 확포장 공사중이어서 상황에 따라 길이 막힐 수 있는데, 이때는 811번 지방도를 타고 합평읍내로 곧장 가거나, 장교리 자명마을까지 우회하는 수밖에 없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함평일주 39km
나비 팔랑이는 산야, 미스터리 고분들
방풍림으로 조성한 향교리 고목숲
함평의 존재감은 나비 축제로 일약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999년 첫회가 열리기 직전 마침 함평을 지난 적이 있는데, 나비를 테마로 하는 축제라… 독특하긴 하지만 어딘가 임팩트가 떨어져 성공할 수 있을까 미심쩍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비축제는 전형적인 농촌인 함평의 친환경 이미지와 맞아떨어졌고 사전에 설립한 곤충연구소가 전문성을 강화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매년 4월말~5월초에 걸쳐 개최되며 코로나 직전인 2018년에는 27만명이 찾았다. 2023년에는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10일 간 열린다. 2012년부터는 국비지원 없이 흑자를 내고 있으며 이런 축제는 전국 지방축제 중에 극히 드물다. 서울의 동 하나에 해당하는 인구 3만의 고장으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축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함평은 여전히 타지인에게 ‘위치 감각’부터 애매하다. 전남인지 전북인지, 바닷가인지 내륙인지, 가까운 도시는 어딘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냥 광주와 목포 사이로 기억하면 쉽다. 두 도시 사이는 나주가 유명하지만 함평은 바다쪽, 나주는 내륙쪽으로 정리하면 편하다. 그런데 함평과 나주는 고대사의 신비를 공유한다. 필자가 함평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비축제로 대성공을 거둔 함평은 온통 나비다. 농업 위주의 전원 풍경과 깨끗한 자연은 나비와 어울린다. 광대한 엑스포공원 뒤편으로 수산봉 나비화원이 이채롭다
함평천을 끼고 있는 함평읍내는 곳곳에 아파트가 솟아 있다. 군 전체 인구가 3만밖에 되지 않고 70%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한일고대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하고 첨예한 논쟁을 야기하는 유적 중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앞은 사각형, 뒤는 원분이 붙어 있는 대형 고분)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일본 고분시대(3~7세기) 고유의 묘제로 알려져 온 전방후원분이 영산강유역에서만 15기가 발견된 것이다. 그중 함평에는 세 기의 전방후원분이 있고 규모도 커서 주목된다.
함평은 서쪽으로 일종의 지중해인 함평만을 끼고 있어 영산강 수계와 함께 해상 루트도 열려 있어 고대에는 사통팔달이었을 것이다. 광대한 평야는 없으나 높은 산도 없어서 고만고만한 산과 들이 어우러져 시각적,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름은 ‘전체가 평야’(咸平)지만 조선 태종 때 함풍현과 모평현을 통합하며 한 자씩 따온 명칭일 뿐이다.
함평읍 외곽에 광대한 면적으로 조성된 엑스포공원을 기점으로 함평의 산야와 신비의 고분 그리고 지중해를 낀 해안선을 돌아본다.
읍내에서 마산리고분군으로 가는 길목의 월산리 고갯길. 마주보이는 산은 읍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고산봉(362m)
엑스포공원은 함평천과 접해 있고, 하천 좌우 둑에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함평천을 건너 동쪽 월산리의 구릉지를 넘어가면 동함평IC 인근에 마산리고분군이 있다. 주민들은 동그마한 야산이 표주박처럼 생겼다고 해서 표산(瓢山)이라고 불러 ‘표산고분군’이라고도 한다.
언덕 정상부에 대형 전방후원분이 있고 주위에 작은 원분이 모여 있으며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 중에서 이런 군집 형태는 유일하다. 나머지 전방후원분은 한 기가 독립적으로 있거나, 원분 배총(陪塚) 한 기 정도가 덧붙어 있는 정도다. 예외적으로 광주 월계동고분은 전방후원분 2기가 모여 있다.
수년 전 들렀을 때는 발굴 중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안내판의 발굴기간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발굴이 진행 중이다. 총 15기 중 전방후원분인 1호분과 원분 3기만 발굴되었고, 전방후원분은 분구 보호를 위해 푸른 장막을 씌워놓았다. 길이 46m, 높이 6.2m로 중간급 크기인데 분구 주위의 주구(분구를 보호하고 성역을 표시하는 도랑)까지 파놓아 한층 거대해 보인다. 발굴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도굴로 인해 유물이 제한적이고 매장시설은 석실 구조다. 시기는 6세기 초로 추정되어, 사비천도(538년)를 전후한 시기에 마한 영역인 이곳이 백제에 통합되는 과정에 등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왜계 전방후원분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미스터리다다.
발굴중인 마산리고분군(표산고분군). 왼쪽이 길이 46m, 높이 6.2m의 전방후원분, 오른쪽은 배총인 원분이다. 전방후원분을 중심으로 주변에 10여기의 원분이 모여 있는 군집 형태다
표산고분군을 나와 북으로 방향을 잡는다. 조금 가면 도로가에 멋진 고목 숲이 길게 늘어져 있다. 공식 명칭은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숲’이다 수종을 다 집어넣어 이토록 긴 이름을 붙인 이유가 뭘까. 350년 전 마을 앞을 가리는 방풍림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마을을 벗어나 들판으로 들어선다. 넓은 평야는 아니지만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농로는 직선들의 교차다. 시골 농로와 둑길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우선 길이 평탄해 힘이 들지 않고 사람과 차가 거의 없어 길을 전세 낼 수 있다.
함평천 둑길을 타고 북상하다 서쪽 금산리 방면으로 들판을 벗어나면 고속화된 23번 국도를 만난다. 금산교차로 옆 언덕에 또 하나의 거대한 고분이 있으니 ‘금산리방대형고분’이다. 주민들이 ‘노적봉’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분 앞에 서면 일단 규모에 놀란다. 사각형 바닥에 위쪽에는 다시 사각형 평탄지가 또 있는 방대형(方臺形) 고분으로, 최대길이 51m, 높이 8.9m로 전남지역 고분 중 가장 큰 편이다. 현재는 흙으로 덮여 있으나 원래는 분구 표면에 깬돌을 덮은 즙석분(葺石墳)으로 남한 최대 규모다. 근래의 발굴 결과, 지금의 외형과 달리 원래는 4~5단의 단층을 이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고구려 초기의 적석총과 한성 백제 시기 즙석분과 유사하다. 여기서는 의례용으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인 인물식륜(人物埴輪)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일본 고분시대의 대표적 유물이기도 해서 특히 주목되며, 4~5세기 일본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스에키(須惠器) 계통의 토기도 나왔고 시기는 5세기말~6세기초로 추정된다. 시기와 부장품 계통이 앞서 표산고분군과 유사하다.
함평천에는 곳곳에 저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읍내에서 북으로 뻗어나는 평야 중심부의 농로. 왼편으로 들판의 젓줄인 함평천도 함께 흐른다
주민들이 ‘노적봉’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대한 금산리방대형고분. 사각형 바닥에 위쪽에 다시 사각형 평탄지가 또 있어 방대형(方臺形)이라고 한다. 최대길이 51m, 높이 8.9m로 전남지역 고분 중 가장 크다
방대형고분에서 서쪽으로 800m 가면 서해안고속도로 바로 옆에 거대한 전방후원분이 또 있다. 죽암리장고분으로, 국내에서는 일본 용어인 전방후원분을 꺼려해 전통악기인 장고를 닮았다고 해서 ‘장고분’이라고 많이 쓴다.
죽암리고분은 앞서 본 표산고분보다 더 크다. 길이 70m, 높이 8m로 국내 전방후원분 중 해남 방산리장고봉고분(길이 76m, 높이 10m) 다음이다. 바로 옆으로 도로가 나면서 전방부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형태는 잘 남아 있다. 마침 이곳도 발굴이 시작되어 작업이 진행중이니 결과가 나오려면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금은 해안에서 2km 정도 들어와 있으나 20세기 이후 방조제를 세워 간척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로 아래 목교저수지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애써 바닷가에 자리한 입지와 전방부가 바다를 향한 점에서 해상루트와 각별한 관련이 있는 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
고대 일본 계통이 분명한 전방후원분은 이처럼 독립적으로 산재해 있고, 지역의 수장급 무덤인 옹관묘 중심지와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축조시기가 5세기말에서 6세기초까지 50년 정도로 한정되는 점에서 무덤 주인공은 지역에서 대대로 군림한 수장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시간 체재하다가 거대한 무덤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져버린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전형적인 전방후원분 형태의 죽암리장고분. 길이 70m, 높이 8m로 국내 전방후원분 중 두번째 크기다. 왼쪽이 전방부, 오른쪽이 매장시설이 있는 후원부이다
죽암리장고분은 발굴중이다. 전방부를 발굴하고 있는 모습
목교저수지를 돌아 남으로 내려가면 곧 해변이 나온다. 함평이 해안지방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해변에는 함평의 명물 중 하나인, 바닷물로 찜질을 하는 해수약찜 업체가 몇 곳 있고, 남으로는 주포까지 500m 남짓한 방조제가 뻗어난다. 오른쪽으로 광활한 갯벌이 드러난 바다는 해제반도 사이에 갇힌 함평만이다. 길이 16km, 폭 6km이니 상당히 큰 지중해다. 잔물결도 없이 유리면처럼 매끄러운 수면이 아득히 펼쳐지고, 멀리 만 입구를 가로막은 칠산대교와 칠산타워가 아련하다.
고급스런 한옥마을(대부분 펜션)이 들어선 주포에서 돌출한 곶(串)에 자리한 돌머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오색의 연석이 곁들여져 잿빛 갯벌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해학적인 이름의 돌머리해수욕장은 인근의 옛지명 ‘석두(石頭)’에서 유래한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바다로) 돌출한 머리’의 뜻인 듯하다. 이것이 한자로 석두를 거쳐 돌머리가 되지 않았을까. 시즌이 아닌데도 산책객이 더러 있다.
일제 때 축조된 주포방조제. 오른쪽 함평만 깊숙이 뻗어나간 반도 끝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있다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은 주포한옥마을. 대부분 펜션이며 고급스럽고 깨끗해서 격조마저 느껴진다
돌머리해수욕장 가는 해안길. 알록달록한 연석이 생동감을 더해준다
솔밭을 끼고 있는 돌머리해수욕장. 400m 정도의 백사장을 갖춘 소규모이며 비시즌이라 한산하다
돌머리해수욕장 남쪽으로 비포장 해안도로가 있지만 포장공사 구간과 뒤섞여 당분간 운치를 만끽하긴 어렵겠다. 보기 드문 해안 흙길이라 기대를 했건만 역시 시대의 풍요는 이런 길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제 내륙으로 길을 돌려 도로와 농로를 번갈아가며 함평천으로 나서 둑길에 오른다. 영산강 본류에서 멀지 않아 연계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다. 들에도 길에도 인적은 없고 햇살은 따사로우니 신록의 생기가 전신을 감싼다. 수산봉의 나비 화원과 함평2교의 나비 조형물이 보이면 읍내가 지척이다. 페달링은 한없이 가볍고 심신이 쾌적하니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려 나비처럼 날개짓을 하고 있다.
돌머리해수욕장 남쪽의 해안길. 건너편은 무안 해제반도구릉지와 접한 예쁜 해변이지만 일부 구간은 도로 공사 중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해안 구릉지의 보리밭이 싱그럽다흙길에 유채꽃이 피어나니 더욱 정겹다
귀로의 함평천 둑길. 영산강 자전거길과 연결되는 자저거도로가 잘 되어 있다
tip
함평읍내를 벗어나면 식당과 편의점이 드물다. 돌머리해변에서 자명천 수로길까지 해안도로는 확포장 공사중이어서 상황에 따라 길이 막힐 수 있는데, 이때는 811번 지방도를 타고 합평읍내로 곧장 가거나, 장교리 자명마을까지 우회하는 수밖에 없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함평일주 39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