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권화순 별산(690m)

자생투어
20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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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무등산 바라기  별산 정상부에 자리한 화순풍력발전단지 제1호 풍력발전기에서 바라본 거대한 덩치의 무등산. 기둥 바로 뒤는 안양산(853m)이고 오목한 장불재 너머로 청심봉의 통신탑이 살짝 보인다  

 

무등(無等)은 ‘같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 <반야심경>에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라고 나오는 불교적 표현이다. ‘이것은 최고의 주문’이라는 뜻이니 무등산은 곧 최고의 산이라는 의미다. 저지대 평야에서 솟아오른 1187m 높이는 엄청난 비고로 위용이 대단하고, 당당히 어깨를 편 것 같은 단층 피라미드꼴 산체는 사방 어디서 봐도 비슷한 모습이라 알아보기도 쉽다. 흔히 '광주 무등산'이라고 하지만 가깝든 멀든 호남 남부지역 어디서나 무등산을 알아볼 수 있으니 단연 천연의 랜드마크다. 광주를 넘어 호남 남부 전역에서 숭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평야지대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항상 이런 지위를 갖는데, 나주평야 월출산(809m), 호남평야 모악산(791m), 논산평야 계룡산(845m), 대구분지 팔공산(1193m) 등이 다 그렇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무등산은 실로 육중한 육산(肉山)이다. 정상부의 서석대와 규봉암 주변에 바위가 드러나 있지만 대부분이 무던한 경사와 단아한 사면을 사방으로 펼치고 있다. 해발 700m 이상 고지대는 골짜기도 없이 민듯한 사면이 거대한 삼각뿔을 이뤄 아득한 고도감과 별천지의 동경심을 더해준다. 그래서 무등산은 오르는 것도 좋지만 바라보기도 좋은 산이다. 어차피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접근이 불가능하고, 임도는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라이딩 금지다.

무등산 남쪽의 화순 산간지대를 돌며 천상에 고고한 이 특별한 산을 감상해본다.

큰재 일원에 조성된 수만리생태숲공원과 뒤편 대동산 기슭의 목장. 생태숲공원은 단풍나무 숲이 대단하다   

출발지는 무등산 남릉에 해당하는 만연산(666m) 아래 큰재. 화순읍내에서 무등산으로 들어가는 높은 고개이니 ‘큰 재’가 맞다. 화순읍내가 해발 60m 정도여서 350m 고개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칼날처럼 뻗어나는 만연산과 대동산(602m) 사이 좁은 안부를 넘어가서 지형적 입체감과 극적인 경계선도 각별하다.

큰재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무등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백마능선과 낙타봉(930m)~안양산(853m) 능선이 거대한 장벽처럼 막아서고, 그 아래 분지를 이룬 수만리 일대가 훤하다. 고개 주변에는 수만리생태숲공원과 목장이 있어 방문객이 많다.

큰재에서 화순읍 방면으로 700m 내려가다 왼쪽 임도로 진입해 대동산 서쪽 기슭을 타고 간다. 고개를 이룬 마천쉼터를 지나면 다운힐이 시작되고 불당골을 거쳐 서성리로 내려선다. 서성리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축사가 있으나 모두 텅 빈 채 흉물로 남아 있다. 화순은 광주와 접하고 있어 대도시 근교의 살풍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화순읍은 읍 치고는 시가지가 상당히 크고 번화하지만 인구가 5만을 넘지 못해(약 4만) 시로 승격되지는 못 했다.

대동산 서쪽 고갯마루의 마천쉼터. 많이 다니지 않는 듯 안내판이 삐딱하게 내려앉은 채 방치되어 있다. 지금부터 한동안 다운힐이다

마천쉼터에서 내려오면 나오는 서성리의 대규모 축사단지.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서성저수지 옆에는 대단히 아름답고 기품 있는 환산정(環山亭)이 호반에 우뚝하다. 담장도 없이 홀로 선 쪽문 옆에는 500년 묵은 소나무가 용트림을 하고 살짝 높은 대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정자가 날듯이 앉아 있다. 1637년 백천(百泉) 류함(柳涵) 선생이 창건했고 여러 번 보수와 중건을 거쳤다. 처음에는 방 1칸의 소박한 초정(草亭)이었다. 선생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의기충천한 인물이었다.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다가 조정이 청군에 항복한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와 환산정을 짓고 은거한 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지행합일과 청렴을 실천한, 가장 모범적인 성리학자의 면모다.

환산정은 거의 섬처럼 호수 깊숙이 들어와 있으나 호수가 없던 당시에는 계곡가 언덕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맞은편 절벽을 바라보는, 음풍농월의 적지였을 것이다. 지금은 과잉 정보와 심려에 지친 현대인들이 곳곳에 앉아 ‘멍 때리는’ 명소가 되었으니 선생의 후학양성은 방법만 달리한 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환산정에서 무포리로 넘어가는 산길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다. 꽤 험한 고개(210m, 딱히 지명이 없어 ‘동림고개’라고 부르자)를 넘어가면 적막한 산간풍경이 가슴에 턱 와 닿는다. 밭가는 농부는 나그네에게 눈짓도 주지 않고 하얀 길은 상하로 굽이치며 숲속으로 아련히 사라진다. 저 숲을, 저 고개를 넘으면 또 무슨 풍경이 기다릴까 저절로 설렌다.

다시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무포리의 소담한 들판 뒤로 모후산(944m) 첨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을 피해 모후(母后)를 모시고 이곳까지 피난 온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는데, 어머니 품 같은 산이라는 의미도 있다. 조선말의 방랑시인 김삿갓(난고 김병연)이 모후산 아래에서 죽은 것도 평생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어머니 품을 그렸던 것일까.

서성저수지 중간에 떠 있는 것만 같은 환산정. 기둥 간격이 짧아 작은 건물인데도 정면 5칸을 이뤘다   

담장도 없는데 홀려 열려 있는 쪽문과 500년 묵은 소나무가 환산정의 백미다북쪽에서 바라본 환산정은 물 위에 뜬 섬이다. 맞은편 절벽까지 어우러져 선경을 이룬다 

이 적막하고 매혹적인 산길을 어쩔거나. 저 고개 너머에는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릴까 

물을 가득 담은 무포리 들판 뒤로 모후산(944m)이 고고하다 

이제 이번 여정의 클라이막스인 별산(690m)으로 접어든다. 정상부에는 화순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서 거대한 바람개비 8기가 서 있다. 진입로가 비포장이라 자동차 탐방객이 드물고 2015년 완공했으니 채 10년이 되지 않은 최신식이다.

별산은 옛지도에는 오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자라’를 뜻하는 오(鰲)와 별(鼈) 자가 혼동된 것 같다. 산세가 자라 등처럼 둔중하게 퍼져서 붙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발전단지 관리동 뒤를 돌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4호기로 직행한다. 4호기는 정상 바로 옆에 있고 작은 전망대도 있다. 바람이 별로 없는데도 웅웅대며 돌아가는 바람개비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타워가 80m, 날개 지름이 93m나 된다. 날개를 포함한 최고높이는 126.5m이니 가장 키 큰 나무인 용문사 은행나무(41m)의 3배다. 단 하나의 기둥으로 뻗어나 있어 실로 경이적인 공학이다.

전망대 뒤편으로 조금만 오르면 별산 정상이지만 작은 돌탑과 등산객이 붙여 놓은 표식뿐이다. 서쪽 무등산 방면은 숲에 가렸으나 나머지 세 방향은 조망이 탁 트인다. 바로 아래로 동복호와 화순적벽이 가깝고, 그 뒤로는 빼어난 백아산(810m) 줄기가 흐르며, 맨 뒤로는 지리산 반야봉(1732m)이 흐릿하다. 남쪽으로는 뾰족한 첨봉으로 솟은 용암산(544m) 뒤로 보성 존제산(712m)이 최후의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다. 맑은 날 덕이기는 하나, 전남 동남부가 거의 보이는 셈이다.

무등산을 제대로 보려면 서단의 1호기 쪽으로 가야 한다. 좌우로 안양산(853m)과 북산(778m)을 거느린 무등산 덩치는 실로 압권이다. 시커멓게 그늘진 절벽 아래 규봉암은 정면으로 마주 보이고 산 아래 이서면의 다랑이논은 물을 가득 담아 반짝인다. 과연 시야 내에서는 비할 바 없는 무등(無等)이다.

별산 업힐 도중의 탁 트인 조망. 발밑으로 마산리~무포리 골짜기가 아득히 흘러내린다. 왼쪽 맨뒤 아득한 산줄기는 보성 존제산(712m), 오른쪽 끝 오똑한 첨봉은 화순 용암산(544m)이다

별산 정상 직하에 있는 북향의 전망대. 오른쪽 뒤 높은 산줄기는 백아산(810m)

별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따로 없고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이 4기 있다 

별산에서 바라본 동복호와 화순적벽. 맨뒤로 보이는 높은 산은 지리산 반야봉(1732m)이다

별산 정상부의 풍력발전기. 기둥 높이 80m, 날개 지름 93m의 거대 규모다. 관리동 건물 오른쪽 뒤가 정상   

별산에서 하산해 갈두리로 북상하다 안양산 줄기를 넘는 둔병재(400m)를 오른다. 고갯마루 일원에 조성된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에서 잠시 편백숲을 산책하며 쉬어간다. 둔병재 남쪽의 편백림은 밀도가 대단해서 햇살이 거의 들지 않는다. 잠깐 산책으로도 농염한 피톤치드를 듬뿍 들이킨 듯 상쾌한 기분이다.

둔병재를 넘어가면 무등산 줄기에 에워싸인 완만한 분지인 수만리 일대가 펼쳐진다. 산기슭에는 목장과 경작지, 전원주택이 들어서서 무등산이 빚은 최고의 은둔지답다. 수만리에서 숲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출발지인 큰재다. 일주 29km 밖에 되지 않으나 큰 업힐이 여럿 있고 수만리생태숲공원과 별산, 편백림 등 시간을 두고 찬찬히 둘러볼 곳도 많아 시간을 충분히 잡아야 한다.

빽빽하게 밀생하는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의 편백숲. 산책로도 잘 나 있다   


tip

큰재에 넓은 무료주차장과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그 외에 코스 도중에는 무등산편백휴양림의 작은 매점 외에는 가게나 식당이 없어 물과 행동식을 적절히 준비해야 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화순 별산 2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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