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권보성 주월산~존제산

자생투어
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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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해(山野海) 특급조망, 라이딩 재미도 폭발

 

주월산(557m)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조망. 광활한 예당평야 뒤로 득량만과 고흥반도의 산들이 대자연의 3중주를 연주한다


남해안 서부에 간당간당 육지로 붙어 있는 고흥반도를 지탱하는 산줄기의 대장 격이 존제산(尊帝山, 712m)이다. 해안에서 가까운 700m급은 덩치와 높이가 대단해서 거산의 위용을 발하며, 고흥반도를 육지에 붙들어 매는 든든한 지주가 되고 있다. 산 북쪽에는 완벽한 침식분지를 안고 있는데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알려진 율어면(여기서는 ‘율어분지’라고 부르자)이다.

존제산 남쪽 호남정맥에 이어진 또 하나 특별한 산이 있으니 바로 주월산(557m)이다. 해안에 성큼 다가서서 예당평야(충청의 예당평야와 다름)와 득량만을 바라보는 특급 조망을 자랑하며 임도를 따라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이 특별하고 매혹적인 두 산을 차례로 오르는 130리 여정을 시작한다.

왼쪽 초함산 오른쪽 주월산 사이 골짜기를 따라 무남이재(340m) 방면으로 오른다 

출발지를 초암산 아래 겸백면사무소로 잡고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은, 체력이 고갈되는 귀로의 기점인 존제산에서 내내 다운힐이라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50가구나 될까, 면소재지 치고는 아주 작아서 가게를 겸한 식당이 단 하나 있을 뿐이다.

마을을 벗어나 잠시 보성강을 따라 남하하는데, 바다 쪽이니 당연히 하류로 가는 것 같지만, 기이하게도 상류 방면이다. 섬진강의 최대 지류인 보성강은 해변이 지척인 보성 일림산(668m)에서 발원해 바다가 아니라 내륙인 북쪽으로 흘러 곡성 압록에서 섬진강과 합류한다. 길이가 120km나 되어 영산강(115km)보다 더 길다. 유일하게 북쪽으로 흐르는 큰 강일 것이다.

면소재지 남쪽으로 나지막한 압해치를 넘으면 초암산(576m) 남쪽으로 접어들고 맞은편 방장산(536m) 기슭에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난다. 초암산은 정상부에 철쭉밭이 넓게 분포해 봄이면 화사한 꽃산으로 변한다. 보성녹차휴게소(순천방향)가 근처에 있는 고속도로를 따라 초암산과 주월산(557m) 사이 골짜기를 오른다. 휴게소에서 쉴 때는 무심히 지나쳤을 풍경인데 그 속으로 들어서니 화가가 대상이 된 듯 감회가 특별하다.

무남이재 서편에 조성된 윤제림은 무려 102만평에 달한다. 캠핑장과 산책로가 잘 나 있다  

골짜기를 한참 올라가면 윤제림(允濟林) 입구다. 윤제 정상환(1923~2005) 선생이 민둥산을 사들여 거대한 숲으로 일군 곳이다. 주월산과 초암산 일원에 자리한 윤제림은 편백나무, 삼나무, 구상나무, 전나무 등 침엽수가 빽빽한 숲을 이루며 면적은 337ha(102만평)에 이른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산책과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초암산~주월산 안부인 무남이재(340m)에서 본격적인 주월산 업힐을 시작한다. 정상까지 고도차가 200m 남짓이라 부담이 작고 시멘트 포장길도 잘 나 있다.

주월산(舟越山) 이름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배가 넘어간 산’이라니? 지명에 얽힌 유래는 다소 황당해서, 득량만 앞바다에 해일이 닥쳐 배가 산을 넘어갔다는 것이다. ‘무남이재’는 ‘물이 넘어간 고개’라는 뜻이고, 정상 남쪽에는 배가 걸렸다는 ‘배거리재’도 있다. 역사시대 이후 높이 500m 해일이 닥쳤을 리는 없고 남쪽 예당평야에 대홍수가 나 배가 산중턱에 걸린 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싶다.


무남이재에서 주월산 정상 가는 임도는 윤제림을 통과한다. 숲의 밀도와 수종의 다양성이 대단하다  

굳이 주월산 정상을 오르는 것은 해안평야 옆에 솟은 입지 덕분에 기막힌 조망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역시 기대는 헛되지 않았으니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탄성이 터졌다. 한쪽에는 잔디를 입힌 패러글라이딩장이 있고 정상 주위는 벌목을 해서 사방 조망이 탁 트이는데, 눈앞에 거칠 것이 없으니 고도감도 엄청나다.

남쪽으로는 광활한 예당평야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는 파란 득량만과 고흥반도의 산들이 야해산(野海山) 삼중의 파노라마를 이룬다. 북쪽에는 앞으로 가야할 존제산(712m)이 높은 키와 넓은 체격으로 시야를 가로 막고 섰다.

동쪽으로는 고흥반도 너머 순천만의 섬들이 점점이 떠 있고, 아득히 멀리는 하동 금오산(875m)~남해 망운산(786m)이 희미한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60km가 넘는 거리인데 청명한 가을날이라 ‘육안 망원경’은 성능이 극대화된다. 서쪽으로는 영암 월출산(809m)이 최후의 하늘금이니 동서로 110km에 이르는 광대한 시야다. 이 아름답고 다채로우며 정겨운 국토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상세한 전망안내도라도 설치해 놓으면 주월산의 매력이 한층 더할 텐데 조금 아쉽다.

주월산 정상에는 잔디밭 형태의 패러글라이딩장이 있다

윤제림에서 만든 주월산 정상석.  왼쪽 철탑이 보이는 방장산(533m) 뒤로 보성 장흥 어간의 산야가 펼쳐진다. 왼쪽 멀리 높은 산은 보성과 장흥 경계의 제암산(806m)주월산 남쪽에 펼쳐진 예당평야는 남해를 접한 해안평야 중 가장 넓고 비옥한 곳 중 하나다   

주월산은 비교적 쉽게 오른 대신, 장쾌한 다운힐은 동쪽의 대곡저수지까지 6km나 이어져 브레이크를 잡는 손이 아플 지경이다. 한동안 요철이 심한 3차원 입체 산속을 누비다 2차원 예당평야로 들어서 직선 농로를 두 팔 벌려 달리니 감각이 적응 못해 허둥댄다.

신월리에서는 2번 국도를 2.7km 가량 통과해야 한다. 갓길이 넉넉하고 통행량이 많지는 않으나 왕복 4차로여서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 때문에 빨리 벗어나고픈 구간이다. 고개를 넘자말자 존제산 남쪽 옥전리로 향한다. 초암산~존제산 안부인 느재(모암재, 420m))를 오르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으나 꾸준한 급경사여서 힘겹다. 짧은 해가 기우뚱한데 아직 산에 들어서지도 못했으니 조금 조바심이 인다.

천치저수지를 지나 꾸준히 올라가다 도왕골에서 임도로 진입한다. 경사가 급한 대신 금방 고도를 높여 300m를 돌파한다. 임도 최고지점이 550m이니 고도 측면에서는 한시름을 놓는다. 저편으로 골짜기 건너 초암산 줄기를 휘감는 임도가 멋지다.

주월산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존제산(712m). 초암산 줄기 너머로 군부대가 자리한 정상부가 선명하고, 앞으로 가야 할 임도 역시 잘 보인다. 주월산 정상에서는 바로 아래 보성CC 너머로 살짝 보이는 임도를 통해 하산하게 된다. 산중턱의 도로는 남해고속도로 

대홍수로 물이 고갯마루까지 차올랐다는 무남이재. 높이가 340m나 되는데 물이 넘쳤다니, 차라리 유쾌한 허풍이다

예당평야 외곽인 대곡리 한 농가 정원에 야자수가 푸르다. 주월산이 북풍을 막아주는 온화한 해안평야답다 

산에서 막 내려와서 예당평야를 가로지르는 직선로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맞은편은 맨왼쪽 병풍산(480m)에서 봉두산(42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수면이 해발 110m로 훌쩍 높아서 원경이 가라앉아 보이는 천치저수지

존제산 남사면을 돌아가는 구간은 벌목지가 많아 길 옆은 낭떠러지이고 조망이 탁 트인다. 주월산에서 충분히 감탄했건만 연속 탄성을 멈출 수 없다. 늦가을 짧은 해는 이미 사라져 서편의 산은 짙은 실루엣만 남았지만 동쪽은 잔광을 받아 굴곡 따라 음양이 대비되어 지면의 표정이 선명하다.

고흥은 반도, 남해는 섬이건만 여기서는 첩첩산중일 뿐 차이가 없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갇힌 내해(內海)이니 호수나 마찬가지다. 지독한 리아스식 해안에서 육지와 바다는 가장 길고 깊은 접점으로 교감하니 남해에서 가장 다정쿠나, 산이여 바다여.

코스의 최고점인 동릉을 돌아가면 바로 다운힐인 줄 알았는데, 아뿔싸 저편으로 통신탑이 선 670m봉 아래로 아직 등고선 길이 한참이다. 680m봉 정상에만 겨우 햇살이 걸렸으니 이제 곧 어두워질 것이다. 게다가 자전거 배터리는 조금 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직 출발지인 겸백면사무소까지는 20km나 남아 보통 낭패가 아닌데도 마음은 태연하다. ‘끌바’를 하더라도 저 680m봉만 돌아가면 출발지까지는 대부분 다운힐이니 걱정을 던다.

존제산 임도는 벌목지가 많아 조망이 잘 트인다. 동릉을 넘어가는 길이 허리를 가르고 있는데 앞서 주월산에서도 보였던 구간이다 

존제산 남사면에서 바라본 예당평야와 득량만 그리고 고흥반도. 득량만은 육지와 섬으로 둘러써야 거대한 호수 같다시멘트 포장 임도에 흔히 있는 철제 배수로에 놀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폭이 15cm 정도여서 직각으로 진입하면 바퀴가 저절로 넘어간다  

마침내 680m봉과 큰봉(572m) 사이 고개(540m)에 도착해 진짜 한숨을 돌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낙안읍성과 그 뒷산인 금전산(668m)이 가깝고 그 뒤로는 광양 백운산(1222m)이, 맨뒤로는 지리산 천왕봉(1915m)마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북쪽으로는 정상까지 라이딩으로 올랐던 순천 고동산(710m)~조계산(887m) 줄기가 근육질로 꿈틀 댄다. 북서쪽으로는 모후산(919m)과 무등산(1187m)까지 한 시야에 들어와 남도의 명산 대부분이 보이는 셈이다. 숨을 죽이며 국토의 장관을 바라보는 사이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어둠이 덮치기 시작한다. 주릿재에 내려서자 율어분지는 황혼의 끝자락을 겨우 붙잡고 있다. 그래도 뭔 걱정이랴, 길은 한가하고 내리막이니 어둠마저 정답구나.

존제산 동릉을 돌아가면 보이는 낙안읍성과 금전산(가운데 암봉, 668m). 금전산 뒤로 광양 백운산(1222m) 줄기가 장중하다  

존제산 680m봉 정상에만 겨우 햇살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 임도가 등고선으로 흐른다

동북릉을 지나니 북쪽으로 조계산(왼쪽, 887m)~고동산(710m) 줄기가 선명하다왼쪽 멀리 무등산(1187m)이 황혼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쪽으로는 망일봉(653m) 뒤로 모후산(918m)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존제산 다운힐. 해가 져가지만 내리막의 연속이니 걱정이 없다

주릿재(355m)에서 바라본 율어분지 

주릿재에 있는 태백산맥문학비와 팔각정율어분지에서 올려다본 존제산과 다랑이논 


tip

겸백면소재지에 작은 식당 겸 가게가 있고, 그 다음은 코스에서 조금 벗어난 조성면소재지가 다소 번화해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산을 두 개나 넘는 52km 장거리 코스여서 일정계획을 잘 짜야 한다. 존제산 정상부는 군부대가 있어 출입할 수 없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보성 주월산~존제산 5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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