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보는 대평야, 들에서 보는 ‘어머니 산’
호남평야 한가운데 벽골제 인근에서 바라본 '어머니 산' 모악산. 소실점으로 모아드는 직선로는 모악산 옆 구성산을 가리키고 있다
국내제일의 광야, 호남평야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동쪽으로는 높은 산줄기가 시야에 걸린다. 그 중 최고봉인 모악산(794m)은 헌칠한 높이로 솟아서 이름(母岳) 그대로 광야와 사람을 안아주는 ‘어머니 산’이다. 호남평야에 사는 사람들은 아득히 보이는 모악산을 올려다보며 저런 높은 산에는 특별한 존재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숭배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네팔과 인도 평지에서 히말라야를 신성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모악의 품에 안긴 거찰 금산사를 출발해 평야 한 가운데 자리한 벽골제를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호남평야의 핵심지대를 ‘김제평야’라고도 부를 정도로 김제는 평야의 고장이지만 뜻밖에도 모악산의 절반을 품고 있어 산악지대도 만만치 않다.
산에서 들을 바라보고, 다시 들에서 산을 바라보는 풍경과 관점이 대조, 대비되는 여정이 될 것이다.
금산사 미륵전 뒤로 모악산이 아득히 솟아 있다
모악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때인 서기 600년에 창건되었고 호남의 고찰 중 가장 거대한 규모 중 하나다. 정유재란 때 전소되기 전에는 무려 93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남북 270m, 동서 300m에 달하는 대지에 전각들이 띄엄띄엄 있을 정도로 영역이 방대하다. 모악산은 우복동 골짜기 합수점에 금산사를 위한 터를 일부러 마련해둔 것만 같다. 웅장한 3층 전각인 미륵전 뒤로 모악산이 까마득히 솟은 모습은 무한 평면의 호남평야에 우뚝한 돌출로 균형을 잡아주며 풍요와 안녕 그리고 영혼의 구심점이 되어준다. 미륵신앙의 본향이 된 것도 들에 사는 민초들의 희망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산사에서 대규모 ‘사하촌’인 용화동을 지나 금평저수지를 돌아나간다. 산 입구를 막고 있는 폭 500m, 길이 1km의 호수는 저 아래 세속과의 구분선이다. 가장 유연하고 연속적인 물이지만 육상의 존재에게는 공간적 단절선이 된다. 호수 주변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산책로가 잘 나 있는 금평저수지. 수면 높이가 해발 60m 정도 되어서 저편으로 평야의 산들이 잠겨 보인다
금평저수지 상류에는 청도저수지가 또 있다. 20년에 완공했으니 모든 것이 새것이다. 호수 주변으로 도로와 산책로가 나 있고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여유롭게 돌아보기 좋다. 일주 코스는 3km이며 최상류는 심산 협곡에 길도 끊어져 모악산에서 곧장 흘러내리는 계곡 같지만 실은 해발 150m 정도의 고원분지인 청도리가 위에 있다. 의상대사가 676년 창건했다는 귀신사(歸信寺)가 있는 곳이다.
청도저수지를 돌아 나오면 구성산(490m) 업힐이 시작된다. 주능선의 싸리재를 넘어야 하는데 높이가 355m나 되는 상당한 고지다. 길이 지나는 가신골은 완벽한 무인지경에 적막강산이다. 골짜기에 물이 흘러 여름에만 잠시 피서객이 찾는 모양이다.
고도가 높아져 뒤를 돌아보니 남쪽의 정읍 어간 산들이 모습을 보인다. 구성산과 삿갓봉(484m) 사이 안부인 싸리재에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북쪽으로 조망이 탁 트이는데, 선암리 분지가 발밑에 있고 그 너머로 전주와 익산 시가지, 호남평야 일부가 광대하게 펼쳐진다. 평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또 도시를 지탱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청명한 날씨에 고지에서 바라보는 데도 산줄기는 저 편으로 멀찍이 물러나 광야의 규모를 한층 실감하게 해준다.
20년 말에 완공되어 이제 막 물을 채운 듯 하고 시설물은 완전 새것이다. 일주 산책로가 잘 나 있다
청도저수지에서 바라본 모악산. 정상에는 통신탑이 다수 모여 있다. 산은 왕관으로 느낄까, 가시관으로 느낄까
청도저수지 호반길에 억새가 만발했고 하늘에는 비늘구름이 멋지다. 왼쪽 첨봉은 제비산(308m)
싸리재를 오르다 뒤돌아본 풍경. 원경의 산야는 정읍 어간이다
싸리재에서 구성산 북사면을 돌아가는 길은 장쾌한 다운힐과 업다운이 뒤섞여 라이딩 재미가 각별하다. 잠시 선암리로 내려왔다가 북사면에서 다시 임도로 진입해 능선을 넘으면 이번에는 서쪽으로 대평야가 시야를 채운다. 높직한 산길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 광야는 입체감이 살아나 시각적 감동이 더하다. 아래로 1번 국도와 호남고속도로가 나란하고, 광야의 끝에는 변산반도의 산들이 아스라한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이제 산을 내려와 광야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평야 외곽 구릉지는 으레 그렇듯 들사람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곳곳에 봉분이 나란하다. 잠깐의 구릉지대를 지나면 바로 대평원이다. 길은 직선이고 마을은 평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하얀 마시멜로만이 뒹군다.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봉남면소재지는 작은 마을인데 중학교가 생존(?)해 있다. 초등학교는 1.3km 떨어진 구릉지에 별도로 있는 것이 특이한데, 면소재지와 비슷한 크기의 도장마을을 배려해 중간 자리를 택한 것 같다.
마을 서편으로 아득한 직선로가 정서진하고 있다. 벽골제는 저 멀리 지평선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싸리재(355m) 정상. 평지에서는 상당히 높은 고도이고 고개 너머로는 전주와 익산 방면 조망이 탁 트인다 싸리재에서 바라본 북쪽 조망. 멀리 보이는 도시는 익산이다
싸리재를 내려가는 길은 조망과 고도감 좋은 멋진 코스다. 왼쪽 가까이 선암리 분지가 있고 그 너머로 전주시내가 보인다. 길 정면의 산은 상목산(460m)
전국을 다니며 국가지점번호를 많이 보았는데 이런 상세한 설명문은 처음 본다. 왼쪽 아래 가상의 기준점을 바탕으로 X, Y 좌표 방식을적용해 가나다라~를 조합했다. 기준점이 제주도 남서에 멀리 있는 것은 북한까지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사면에서는 뾰족한 첨봉으로 보이는 구성산 정상
구성산 서사면에서 바라본 호남평야. 가히 광활하다. 맨 뒤에 보이는 산은 왼쪽부터 변산반도 의상봉(509m), 석불산(290m), 계화산(245m). 그 뒤로 새만금이 펼쳐지며, 계화산은 1960년대 초만 해도 서해 중의 섬이었다
구성산 서쪽 바로 아래로 1번 국도가 지나고, 멀리 노령산맥의 입암산(626m)~방장산(743m) 줄기가 아득하다. 오른쪽 뒤 둥그스럼한 산은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정읍의 두승산(445m)
구성산을 내려서면 바로 대평원을 가르는 직선로가 펼쳐진다. 시선이 낮아지니 지평선이 아른거린다
새만금으로 들어가는 동진강 지류 원평천 둑길을 간다. 둔치에는 갈대밭이 누런빛으로 하늘거리고 물에는 철새가 노니는 평화경이다. 북쪽 멀리 보이는 도시는 김제시내다.
이윽고 저 편으로 벽골제의 ‘거북머리 전망대(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와 아마도 낮기로 치면 국내 3, 4위쯤 되는 신털미산(16m)이 보인다. 거북머리 전망대는 내가 지은 이름이고, 지평선축제 때 외에는 일반에 개방되지 않는다. 신털미산은 벽골제를 축조할 때 동원된 인부들이 일을 마치고 신발 흙을 털어냈다는 데서 유래한, 토속적인 이름이다.
벽골제는 10년 전만 해도 작은 전시관뿐이었는데 지금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종합 관광지로 변모했다. 하지만 만추의 평일 오후 벽골제는 스산하리만치 한산하다. 대나무로 만든 거대한 쌍용 조형물 옆으로 1500년 묵은 둑이 무던하게 남아 있다. 웬 들판 한 가운데 제방을 쌓았을까 궁금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남북으로 구릉지가 있어 3km 정도의 둑을 막으면 원평천의 물을 쉽게 채울 수 있는 위치다. 근래에는 바닷물을 막는 방조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고대 이후 수위가 점점 낮아지고 간척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마도 방조제 겸 저수지 둑을 겸하지 않았을까 싶다.
평야 가운데서 뒤돌아본 모악산(뒤)과 구성산
벽골제로 향하는 원평천. 둔치에는 갈대가 누렇게 피어났고 얕은 물에는 철새들이 노닌다원평천 둑길에서 바라본 김제시내. 산을 끼지 않은 완전 평지의 도시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들판 중의 작은 마을을 지나며. 들은 무한히 너르건만 마을에 빈 집이 적지 않고 한낮에도 사람을 보기 어렵다
높이 15m 총길이 55m의 거대한 쌍용 조형물과 벽골제 제방. 벽골제 둑은 400m 정도만 남아 있다
400여m만 남은 고대의 둑을 잠시 거닐며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앞서 출발한 모악산과 구성산이 광야 저편으로 고고하다. 역시 모악산은 이 광막한 대지에서 가장 높게 보이는 산이니 계룡산처럼 민간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자연스럽다. 금산사가 미래의 희망을 약속하는 미륵신앙의 본향이 된 것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방향을 돌려 모악을 향한 직선로에 들어섰다. 장장 10리에 달하는 곧은길에서 두바퀴는 바둑판의 작은 돌이다. 해는 점점 뉘엿해지지만 그나마 광야에서는 일몰이 가장 늦으니 마음이 급하지 않다.
원평천을 거쳐 감곡천 둑길을 따라 모악으로 접근하는데 호남고속도로를 지날 무렵 펑크가 났다. 방금 해가 져서 빠르게 어두워지는데도 느긋하게 앉아 휴식 겸 해서 튜브를 갈아 끼운다. 광야에서 느려지고 확대된 감성의 시공간은 묵직한 관성으로 나를 장악하고 있다.
벽골제 둑에서 바라본 모악산. 고고한 위용과 넓은 품이 느껴진다
들판 가운데 작은 쉼터가 그림 같다
아직 갈 길이 먼데 훌쩍 기운 태양에 그림자가 길다
tip
금산사 입구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고, 인근에 식당과 카페, 슈퍼가 다수 분포한다. 편의점은 조금 더 내려간 금산면소재지에 있다. 구성산 싸리재는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호남평야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산길이어서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김제 금산사~벽골제 59km
산에서 보는 대평야, 들에서 보는 ‘어머니 산’
호남평야 한가운데 벽골제 인근에서 바라본 '어머니 산' 모악산. 소실점으로 모아드는 직선로는 모악산 옆 구성산을 가리키고 있다
국내제일의 광야, 호남평야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동쪽으로는 높은 산줄기가 시야에 걸린다. 그 중 최고봉인 모악산(794m)은 헌칠한 높이로 솟아서 이름(母岳) 그대로 광야와 사람을 안아주는 ‘어머니 산’이다. 호남평야에 사는 사람들은 아득히 보이는 모악산을 올려다보며 저런 높은 산에는 특별한 존재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숭배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네팔과 인도 평지에서 히말라야를 신성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모악의 품에 안긴 거찰 금산사를 출발해 평야 한 가운데 자리한 벽골제를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호남평야의 핵심지대를 ‘김제평야’라고도 부를 정도로 김제는 평야의 고장이지만 뜻밖에도 모악산의 절반을 품고 있어 산악지대도 만만치 않다.
산에서 들을 바라보고, 다시 들에서 산을 바라보는 풍경과 관점이 대조, 대비되는 여정이 될 것이다.
금산사 미륵전 뒤로 모악산이 아득히 솟아 있다
모악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때인 서기 600년에 창건되었고 호남의 고찰 중 가장 거대한 규모 중 하나다. 정유재란 때 전소되기 전에는 무려 93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남북 270m, 동서 300m에 달하는 대지에 전각들이 띄엄띄엄 있을 정도로 영역이 방대하다. 모악산은 우복동 골짜기 합수점에 금산사를 위한 터를 일부러 마련해둔 것만 같다. 웅장한 3층 전각인 미륵전 뒤로 모악산이 까마득히 솟은 모습은 무한 평면의 호남평야에 우뚝한 돌출로 균형을 잡아주며 풍요와 안녕 그리고 영혼의 구심점이 되어준다. 미륵신앙의 본향이 된 것도 들에 사는 민초들의 희망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산사에서 대규모 ‘사하촌’인 용화동을 지나 금평저수지를 돌아나간다. 산 입구를 막고 있는 폭 500m, 길이 1km의 호수는 저 아래 세속과의 구분선이다. 가장 유연하고 연속적인 물이지만 육상의 존재에게는 공간적 단절선이 된다. 호수 주변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산책로가 잘 나 있는 금평저수지. 수면 높이가 해발 60m 정도 되어서 저편으로 평야의 산들이 잠겨 보인다
금평저수지 상류에는 청도저수지가 또 있다. 20년에 완공했으니 모든 것이 새것이다. 호수 주변으로 도로와 산책로가 나 있고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여유롭게 돌아보기 좋다. 일주 코스는 3km이며 최상류는 심산 협곡에 길도 끊어져 모악산에서 곧장 흘러내리는 계곡 같지만 실은 해발 150m 정도의 고원분지인 청도리가 위에 있다. 의상대사가 676년 창건했다는 귀신사(歸信寺)가 있는 곳이다.
청도저수지를 돌아 나오면 구성산(490m) 업힐이 시작된다. 주능선의 싸리재를 넘어야 하는데 높이가 355m나 되는 상당한 고지다. 길이 지나는 가신골은 완벽한 무인지경에 적막강산이다. 골짜기에 물이 흘러 여름에만 잠시 피서객이 찾는 모양이다.
고도가 높아져 뒤를 돌아보니 남쪽의 정읍 어간 산들이 모습을 보인다. 구성산과 삿갓봉(484m) 사이 안부인 싸리재에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북쪽으로 조망이 탁 트이는데, 선암리 분지가 발밑에 있고 그 너머로 전주와 익산 시가지, 호남평야 일부가 광대하게 펼쳐진다. 평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또 도시를 지탱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청명한 날씨에 고지에서 바라보는 데도 산줄기는 저 편으로 멀찍이 물러나 광야의 규모를 한층 실감하게 해준다.
20년 말에 완공되어 이제 막 물을 채운 듯 하고 시설물은 완전 새것이다. 일주 산책로가 잘 나 있다
청도저수지에서 바라본 모악산. 정상에는 통신탑이 다수 모여 있다. 산은 왕관으로 느낄까, 가시관으로 느낄까
청도저수지 호반길에 억새가 만발했고 하늘에는 비늘구름이 멋지다. 왼쪽 첨봉은 제비산(308m)
싸리재를 오르다 뒤돌아본 풍경. 원경의 산야는 정읍 어간이다
싸리재에서 구성산 북사면을 돌아가는 길은 장쾌한 다운힐과 업다운이 뒤섞여 라이딩 재미가 각별하다. 잠시 선암리로 내려왔다가 북사면에서 다시 임도로 진입해 능선을 넘으면 이번에는 서쪽으로 대평야가 시야를 채운다. 높직한 산길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 광야는 입체감이 살아나 시각적 감동이 더하다. 아래로 1번 국도와 호남고속도로가 나란하고, 광야의 끝에는 변산반도의 산들이 아스라한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이제 산을 내려와 광야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평야 외곽 구릉지는 으레 그렇듯 들사람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곳곳에 봉분이 나란하다. 잠깐의 구릉지대를 지나면 바로 대평원이다. 길은 직선이고 마을은 평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하얀 마시멜로만이 뒹군다.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봉남면소재지는 작은 마을인데 중학교가 생존(?)해 있다. 초등학교는 1.3km 떨어진 구릉지에 별도로 있는 것이 특이한데, 면소재지와 비슷한 크기의 도장마을을 배려해 중간 자리를 택한 것 같다.
마을 서편으로 아득한 직선로가 정서진하고 있다. 벽골제는 저 멀리 지평선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싸리재(355m) 정상. 평지에서는 상당히 높은 고도이고 고개 너머로는 전주와 익산 방면 조망이 탁 트인다 싸리재에서 바라본 북쪽 조망. 멀리 보이는 도시는 익산이다
싸리재를 내려가는 길은 조망과 고도감 좋은 멋진 코스다. 왼쪽 가까이 선암리 분지가 있고 그 너머로 전주시내가 보인다. 길 정면의 산은 상목산(460m)
전국을 다니며 국가지점번호를 많이 보았는데 이런 상세한 설명문은 처음 본다. 왼쪽 아래 가상의 기준점을 바탕으로 X, Y 좌표 방식을적용해 가나다라~를 조합했다. 기준점이 제주도 남서에 멀리 있는 것은 북한까지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사면에서는 뾰족한 첨봉으로 보이는 구성산 정상
구성산 서사면에서 바라본 호남평야. 가히 광활하다. 맨 뒤에 보이는 산은 왼쪽부터 변산반도 의상봉(509m), 석불산(290m), 계화산(245m). 그 뒤로 새만금이 펼쳐지며, 계화산은 1960년대 초만 해도 서해 중의 섬이었다
구성산 서쪽 바로 아래로 1번 국도가 지나고, 멀리 노령산맥의 입암산(626m)~방장산(743m) 줄기가 아득하다. 오른쪽 뒤 둥그스럼한 산은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정읍의 두승산(445m)
구성산을 내려서면 바로 대평원을 가르는 직선로가 펼쳐진다. 시선이 낮아지니 지평선이 아른거린다
새만금으로 들어가는 동진강 지류 원평천 둑길을 간다. 둔치에는 갈대밭이 누런빛으로 하늘거리고 물에는 철새가 노니는 평화경이다. 북쪽 멀리 보이는 도시는 김제시내다.
이윽고 저 편으로 벽골제의 ‘거북머리 전망대(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와 아마도 낮기로 치면 국내 3, 4위쯤 되는 신털미산(16m)이 보인다. 거북머리 전망대는 내가 지은 이름이고, 지평선축제 때 외에는 일반에 개방되지 않는다. 신털미산은 벽골제를 축조할 때 동원된 인부들이 일을 마치고 신발 흙을 털어냈다는 데서 유래한, 토속적인 이름이다.
벽골제는 10년 전만 해도 작은 전시관뿐이었는데 지금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종합 관광지로 변모했다. 하지만 만추의 평일 오후 벽골제는 스산하리만치 한산하다. 대나무로 만든 거대한 쌍용 조형물 옆으로 1500년 묵은 둑이 무던하게 남아 있다. 웬 들판 한 가운데 제방을 쌓았을까 궁금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남북으로 구릉지가 있어 3km 정도의 둑을 막으면 원평천의 물을 쉽게 채울 수 있는 위치다. 근래에는 바닷물을 막는 방조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고대 이후 수위가 점점 낮아지고 간척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마도 방조제 겸 저수지 둑을 겸하지 않았을까 싶다.
평야 가운데서 뒤돌아본 모악산(뒤)과 구성산
벽골제로 향하는 원평천. 둔치에는 갈대가 누렇게 피어났고 얕은 물에는 철새들이 노닌다원평천 둑길에서 바라본 김제시내. 산을 끼지 않은 완전 평지의 도시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들판 중의 작은 마을을 지나며. 들은 무한히 너르건만 마을에 빈 집이 적지 않고 한낮에도 사람을 보기 어렵다
높이 15m 총길이 55m의 거대한 쌍용 조형물과 벽골제 제방. 벽골제 둑은 400m 정도만 남아 있다
400여m만 남은 고대의 둑을 잠시 거닐며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앞서 출발한 모악산과 구성산이 광야 저편으로 고고하다. 역시 모악산은 이 광막한 대지에서 가장 높게 보이는 산이니 계룡산처럼 민간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자연스럽다. 금산사가 미래의 희망을 약속하는 미륵신앙의 본향이 된 것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방향을 돌려 모악을 향한 직선로에 들어섰다. 장장 10리에 달하는 곧은길에서 두바퀴는 바둑판의 작은 돌이다. 해는 점점 뉘엿해지지만 그나마 광야에서는 일몰이 가장 늦으니 마음이 급하지 않다.
원평천을 거쳐 감곡천 둑길을 따라 모악으로 접근하는데 호남고속도로를 지날 무렵 펑크가 났다. 방금 해가 져서 빠르게 어두워지는데도 느긋하게 앉아 휴식 겸 해서 튜브를 갈아 끼운다. 광야에서 느려지고 확대된 감성의 시공간은 묵직한 관성으로 나를 장악하고 있다.
벽골제 둑에서 바라본 모악산. 고고한 위용과 넓은 품이 느껴진다
들판 가운데 작은 쉼터가 그림 같다
아직 갈 길이 먼데 훌쩍 기운 태양에 그림자가 길다
tip
금산사 입구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고, 인근에 식당과 카페, 슈퍼가 다수 분포한다. 편의점은 조금 더 내려간 금산면소재지에 있다. 구성산 싸리재는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호남평야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산길이어서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김제 금산사~벽골제 59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