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권고흥 거금도

자생투어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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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화사한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

 

거금도 서쪽 끝 배천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득량만. 바다 건너로 장흥 천관산이 구름에 잠겨 있다 


간신히 섬을 면한 고흥반도는 멀고 외진 느낌을 준다. 우주선 발사기지인 나로도가 고흥반도 아래에 있음은 그만큼 주변 인구가 희박하고 바다 깊숙이 동떨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고흥반도 남단에는 꽤 큰 항구인 녹동항이 있다. 녹동항에서 소록도를 경유해 다시 거금대교를 건너면 이윽고 거금도로 들어선다. 거금도는 크기에 비해 상당히 높은 적대봉(592m)이 중심에 솟아 있고 산록이 험해 거칠고 위압적인 분위기다. 거금도(居金島)는 옛날 금맥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실제 금이 나지는 않으니 금처럼 아름답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같다.

2011년에 다리가 연결되어 이미 섬이 아니고, 도로는 말끔하게 포장되었으며 마을마다 세련되어 낙후된 느낌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어딘가 애틋한 낙도 분위기는 퇴색했지만 국내 10번째의 큰 섬(면적 64.8㎢)이자 적대봉이 가득 채운 지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일 동상과 그를 기리는 김일체육관. 오른쪽 아래는 김일의 장기인 박치기 모습  

섬 일주의 기점은 김일체육관으로 잡는다. 거금도는 1960~70년대 전국민의 오락 겸 희망이자 자존심이었던 프로레슬러 김일(金一, 1929~2006)의 고향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흑백TV 앞에서 손에 땀을 쥐고 김일 선수를 응원하고 그의 승리에 열광했다. 특히 숙명의 라이벌이던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혈전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일이 살던 생가는 조촐한 기념관으로 꾸며졌고 생가 뒤에는 김일체육관이 들어서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그가 성장기를 보낸 1920~30년대 거금도는 엄청난 오지였을 것이다. 식민지 외딴 섬 빈농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체격이 크고 힘이 세 한동안 씨름 선수로 활약했다. 더 큰 무대가 필요했던 그는 일본으로 밀항해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을 이끌던 역도산 문하에 들어가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역도산(1924~1963, 본명 김신락) 역시 함경도 출신의 재일교포여서 김일을 수제자로 총애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성기를 누린 그는 1994년 귀국해 서울에서 지내다 숨졌다.

생가 앞에는 '운암김일선생공적비'가 서 있고 배경에는 김일체육관과 용두봉이 겹친다   

김일은 고향 거금도를 결코 잊지 않았다. 김일이 활동할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김일을 좋아해 경기 후 자리를 같이 하곤 했는데, 소망이 뭐냐고 묻자 김일은 고향 거금도에 전기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덕분에 거금도에는 낙도지역으로는 가장 빨리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김일체육관 앞 동상 준공 기념비에도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94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6년 체육훈장 청룡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고 2018년에는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현창되었다. 묘지는 대전국립현충원에 있다. 생가 앞에는 과거 큰 공을 세운 고관대작이나 고승대덕처럼 거창한 공적비까지 서 있다. 운동선수로는 아마도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호가 운암(雲岩)인 것을 공적비에서 처음 알았다. 뒷산인 용두봉의 암봉을 그리워하며 붙인, 향수의 이름일 것이다. 

김일체육관에서 섬 서단인 배천마을을 거쳐 반시계 방향으로 섬을 일주하기로 한다. 전날 늦게까지 내린 비는 그쳤지만 먹구름은 적대봉 5부 능선 이상을 에워쌀 정도로 묵중해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날씨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운에 맞기고 여정을 시작한다.

섬 서쪽 끝 배천마을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진홍색 지붕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천마을. 오른쪽 뒤 언덕에 오르면 조망이 탁 트인다   

배천마을 뒤 언덕이 거금도의 서쪽 끝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막한 바다는 망망대해는 아니고 멀찍이 물러난 육지로 에워싸인 득량만이다. 바다 건너 장흥 정남진이 아득하고 그 뒤로는 육상에서 피어난 거대한 장미꽃, 천관산(723m)이 뿌리만 남긴 채 전신을 구름 속에 숨기고 있다. 남쪽에는 길쭉한 연홍도가 지척이고 그 뒤로는 기이한 암봉과 암릉, 암벽이 지천인 금당도가 기경이다. 금당도부터 그 서쪽의 섬들은 완도군에 속하지만 거금도가 더 가깝고 배편도 많아 사실상 고흥생활권이다. 오후에 금당도로 넘어갈 생각인데 시간적으로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천마을에서 나와 금당도행 배가 출항하는 우두항을 잠깐 들린다. 새벽에는 풍랑주의보로 연안여객선의 발이 묶였는데 다행히 주의보가 풀려 막 출항 준비 중이다.

우두항에서 언덕을 넘어 궁전마을을 지나 연소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구릉 위에 구비치는 외줄기 고갯길이 왠지 눈물겹게 정겹다. 솔밭을 낀 연소해수욕장은 300m 남짓 조촐한 백사장이다. 수중에 세워놓은 세 그루 나무가 풍경의 포인트가 되어 예술적인 감흥을 준다.

배천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연홍도(앞)와 금당도(뒤). 금당도는 해변과 내륙 모두 바위산이다  

궁전마을 뒤 구릉지 길이 정겹다. 뒤쪽으로 용두봉이 짙은 구름에 싸여 있다  

바다속 나무 세 그루가 이색적인 연소해수욕장  

해안도로는 갓길이 여유롭고 바다쪽 조망도 잘 트인다. 노면의 파란색 유도라인은 자전거길이 아니라 트레킹 코스인 ‘거금도 둘레길’ 표시다. 해변 언덕바지에는 마늘밭이 푸르고 먹구름과 적대봉 높은 자락을 제외하면 겨울 살풍경의 불침지대다.

바다 저편으로 잿빛 화강암을 드러낸 금당도 기암괴석이 내내 함께 하고 그 뒤로 충도와 평일도, 생일도 등등이 겹친다. 금당도 뒤 어느 산줄기는 거금도와 헷갈리는 고금도일 것이다. 고금도는 완도와 가까우니 장보고의 ‘고’자로, 거금도는 ‘김일이 살던 곳’으로 기억하면 좋다.

옥룡마을 뒤에서 바라본 풍경. 금당도의 기암괴석과 바위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적대봉 다음으로 높은 용두봉(419m)은 돌출한 암릉의 기세가 헌칠한데, 김일은 어릴 때부터 이 용두봉을 바라보며 억센 기운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용두봉 남쪽 기슭이 온통 태양광 발전기로 뒤덮여 있다. 지금껏 본 것 중에서도 굴지의 스케일이다. 김일이 안타까워했던 전기가 이제는 고향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으니 소망 성취가 차고 넘친달까.

옥룡마을에서 익금해변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옥룡전망대에서 쉬어간다. 난간 저편으로는 구름에 뭉개진 수평선이 아른거리는 망망대해다. 저 바다에 떠도는 조각 섬들은 어디일까. 무인도는 무명(無名)일 때 더 간절하다. 이름은 인간의 기준에서 붙여지는 문자이자 발음일 뿐 저 돌덩이, 흙덩이는 우리가 뭐라든 아무 관심이 없다. 이름을 붙일 때(부를 때) 비로소 ‘의미’도 생기지만 그 의미는 이름 이전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무명은 무명으로 두고 내 길을 가자꾸나.

잔 파도가 밀려드는 익금해수욕장

용두봉 남쪽 기슭을 가득 메운 태양광 발전소  

12월 중순인데 동백이 만발했다. 길바닥에는 뚝뚝 떨어져 뒹구는 꽃도 많다. 동백은 이렇게 낙화를 해도 형태와 빛깔을 오랫동안 보존해 마치 생명이 잔존하는 것만 같다. 이 겨울 남국의 해변에서 피어나는 동백은 고혹적이면서 가련해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길가에 도열한 사철 푸른 후박나무와 야자수 가로수에는 겨울을 막는 불침번이자 봄을 고대하는 희망이 어려 있다. 12월에 기대하는 봄이라니... 거금도에서는 시공간의 착각이 자연스럽구나.

금장해변 위쪽 골짜기에는 조선 초 말을 키운 목장성 흔적이 남아 있다. 1466년 축성했고 최대 364두의 말을 길렀다고 한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군마로 양성했을텐데 결국은 왜구의 침입으로 얼마 가지 않아 폐쇄되었고 지금은 허물어진 성벽만 남아 있다. 확인된 성벽의 길이가 4,652m에 달하니 상당한 규모다. 설명문에 적힌 절이도(節吏島)는 거금도의 옛 명칭이며, 섬 남북을 가로질러 쌓은 일종의 차단벽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적대봉과 용두봉 사이 계곡 전체를 목장으로 활용했던 것 같다.

12월에 동백이 활짝 피었다적대봉 기슭에 길게 남아 있는 목장성  사철 푸른 후박나무 가로수가 겨울을 잊게 만든다. 노면의 파란 선은 거금도 둘레길 안내선 

청년동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향의 망망대해. 앞쪽에 부아도가 홀로 외롭다  

오천항 언덕에서 바라본 섬들의 열병식. 왼쪽부터 소취도, 독도, 시산도

오천항은 면소재지 다음으로 큰 마을이다. 포구에는 김 양식 장비와 작업용 보트가 가득하다. 포구 옆 몽돌해변은 꽤 큰 몽돌로 가득한데 인근에 김이나 미역 가공공장이 많아 운치는 없다.

포구 한 켠에는 ‘국도 27호선 시점’ 기념비가 우뚝하다. 우리는 도로를 칭할 때 번호를 잘 활용하지 않는 편이라 27번 국도라면 홀수 번호에서 남북선이라는 정도만 유추할 뿐이다. 27번 국도는 거금도에서 군산까지 호남 내륙을 종단하며 전장 287.5km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은 대부분 77번 국도가 지나는데 77번은 고흥반도 해안선을 지나고 27번은 녹동항에서 거금도까지 들어온다. 인위적이지만 어떤 길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아주 먼 곳에 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국풍이 물씬한 야자수 가로수

소원동산에서 바라본 거금도 동쪽 해안선. 적대봉 자락이 바다를 향해 급전직하 하고 있다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해 오천항에서 청석마을 넘어가는 언덕(소원동산)에서 자전거와 여장을 정리한다. 바로 아래로 대취도, 소취도, 모녀도, 독도 등등 오천항 앞바다에 뜬 무인도들이 사열하듯 줄지어 있고, 북쪽으로는 청석마을~명천항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가파르다.

명천항에서 내륙으로 꺾어 월포고개를 넘으면 북쪽 해안으로 나서고, 앞바다는 고흥반도와의 사이에 자리한 일종의 해협이다. 비는 갈수록 거세지는데 저쪽으로 몽환경처럼 새하얀 거금대교가 이제 곧 도착한다며 응원해준다.

군산까지 이어지는 27번 국도 시점이 오천항이다 

김양식장 장비와 보트가 가득한 명천항. 방파제 중간의 바위산이 멋지다  북쪽 해안선으로 접어들면 장대한 거금대교가 반겨준다. 해변 언덕에는 마늘밭이 푸르다  


tip

김일체육관 앞에 무료 주차장이, 인근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김일체육관에서 3km 거리에 있는 우두항에서 금당도와 평일도 가는 배가 매일 4편 있어서 함께 돌아보면 좋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거금도 4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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