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노닐다 선경에 잠들다
코스 : 고산윤선도유적지(녹우당)~신흥리삼거리~구림사거리~금쇄동 입구~금쇄동~화산면삼거리~금풍교~어성교~녹우당
* 코스 길이 : 43.5km
* 코스 구성 : 도로, 임도
* 소요시간 : 4시간
* 난이도 : ★★★★
* 경관 : ★★★
(2021년)
금쇄동 산 중턱에 북향하고 있는 고산 윤선도의 묘. 그의 사당인 추원당과 후손들의 묘지가 마주 보인다
고산의 생가인 녹우당 담벼락과 사당 사이로 난 길목은 노송 가지가 드리워져 격조를 더해준다
해남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인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자취는 해남 곳곳에 진하게 남아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해남윤씨 종가인 녹우당(綠雨堂) 일원은 종가 사당과 유물관, 전시관 등이 조성되어 일종의 역사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만년에 은거했던 금쇄동은 녹우당에서 다소 떨어진 병풍산(313m)의 깊은 골짜기 안에 숨듯이 있다.
녹우당을 출발해 금쇄동의 고산 묘소까지 훑어보는 윤선도의 흔적 찾기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절경 속에서 은둔생활을 즐겼던 고산의 소요를 차분히 답습하는 길이기도 하다.
녹우당 초입의 백련지와 정자. 고산의 취향을 반영한 현실 속의 신선경이다
녹우당의 깊이
뒷산인 덕음산 중턱의 비자림에 바람이 불면 녹색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녹우당이라고 명명한 종가는 키 큰 고목 사이에 건물과 담벼락 자체가 역사가 되어 조용히 잠겨 있다. 녹우당과 고산의 사당, 해남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의 사당 사이의 골목길은 노송이 가지를 드리워 기품 있는 특별한 공간을 이룬다.
녹우당 일원을 돌아보고 고산이 은거하며 노닐다가 묻힌 금쇄동으로 향한다.
만안리에서 시작되는 금쇄동 길. 금쇄동(金鎖洞)은 '금으로 막은 골짜기'란 뜻이다
금쇄동으로 오르는 임도. 골짜기를 따라 점점 높고 깊은 산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깊고 깊은 금쇄동
녹우당을 나와 해남읍내와 대흥사를 연결하는 806번 도로를 잠시 따라간다. 구림리에서 화산방면으로 꺾어들면 통행량이 뚝 끊어지면서 한적한 산골로 접어든다. 도로명부터 ‘고산로’인데 만안리에서 농로를 거쳐 드디어 금쇄동 입구에 이른다. 만안리를 지나면 인가는 완전 단절이다.
‘금으로 막은 골짜기’라는 뜻의 금쇄동(金鎖洞)은 고산이 금쇄석궤(金鎖錫櫃, 금칠을 한 궤짝)를 얻는 꿈을 꾸고 며칠 후 이곳에서 꿈의 배경과 똑 같은 장소를 발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산세가 아주 특이해서 지형만으로도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확연하다. 산줄기에 완벽히 둘러싸인 골짜기는 마치 태극 문양처럼 휘돌고, 물줄기 안쪽 가장 깊은 산자락 정상의 옛 산성터가 윤선도가 은거하며 노닐던 금쇄동이다. 고산은 이곳에서 9년을 머물며 산중생활을 수필로 남긴 것이 국내최초의 산중수필인 <금쇄동기(金鎖洞記)>다. 고산은 금쇄동 곳곳에 그만의 지명을 붙였는데 어딘가 선풍이 감도는 하휴(下休), 중휴(中休), 상휴(上休), 쇄풍(灑風), 회심(會心) 등 22개나 된다. 금쇄동은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고산만의 원림이었던 것이다. 결국 고산은 금쇄동에 묻혔으니 산과 골짜기에는 고산의 흔적이 가득하고 지금도 골짜기 저편에서 슬쩍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이 현실적이다.
골짜기 중간쯤에 있는 고산의 사당인 추원당. 추원당 뒤편 언덕 위에는 고산 후손들의 무덤이 마치 고산에게 인사하듯 모여 있다
고산의 묘를 찾아
계곡길은 찾는 이가 없고 관리도 잘 하지 않는 듯 잡초가 우거져 있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고산의 사당인 추원당이 언덕 위에 높직하다. 이 건물 뒤편에는 고산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계곡이 끝날 무렵, 길은 본격적으로 경사가 심해진다. 금쇄동이 있는 산성터는 최고지점이 해발 260~300m 정도로 정상부에 형성된 작은 고원이다. 험로를 한동안 오르면 금쇄동 입구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고산의 묘소, 오른쪽은 금쇄동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 방면은 수풀에 완전히 묻혀 도저히 진입할 수 없어 고산의 묘소만 보고 가기로 한다. 금쇄동에는 고산이 조성한 연못과 회심당, 휘수정 같은 건물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돌보지 않아 퇴락했을 것이다.
고대의 폐산성 안에 조성된 금쇄동. 다양한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 있다. 사진은 용도를 알 수 없는 지름 18m의 원형공간으로, 가운데 둔덕을 중심으로 24개의 흙더미가 둘러싸고 있어 24절기를 나타낸 것은 아닌가 싶다
곳곳에 쌓여 있는 와편 더미는 한때 고산이 소요하던 산중 별세계의 면모를 상상하게 해준다
독특한 입지의 묘소
금쇄동에서 북서쪽으로 흘러내린 작은 능선 위 해발 200m 지점에 있는 고산의 묘는 드물게 북향인데다 추원당 뒤편의 후손들 묘지를 마주하고 있어 대단히 특이하다. 문인석과 무인석 1쌍만 있는 단출한 구성이지만 봉분이 상당히 우람하고 조망이 트여 금쇄동의 영원한 주인으로 터 잡은 느낌이다.
금쇄동을 돌아 나오면서 이처럼 완벽하게 닫힌 공간이 해남 같은 바닷가 평야지대에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 자못 신기하다. 고산의 안목에 재삼 탄복하게 된다.
고산의 무덤은 금쇄동 초입에서 산을 살짝 내려간 곳에 있다. 고산 묘소와 금쇄동 갈림길에서
들길, 하천길 따라
금쇄동을 나와 화산면소재지를 지나면 연정저수지 서쪽을 도는 화산-연정 임도로 들어선다. 850m의 짧은 거리지만 심심산골의 분위기가 물씬한 길이다.
임도를 나와 북향하면 금풍리에서 삼산천 둑길에 올라 동쪽으로 향한다. 삼산천은 한동안 폭이 100m 정도여서 개울이라기보다 강 스케일이다. 둑길 좌우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저 만치 물러난 산 아래에 마을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어 더없이 평화로운 전원풍경이다. 신흥리에서 앞서 지나온 806번 지방도와 합류하면 곧 해남통닭거리다. 여기서 연동저수지 앞 농로로 빠져 녹우당으로 복귀하면 코스는 끝난다.
이 코스는 고산으로 시작해 고산으로 마무리하는 진정한 윤선도 길이다. 금쇄동을 다녀오면 그의 호가 왜 ‘외로운 산’ 고산(孤山)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을 신선처럼 산수에 묻혀 고고하게 살았다. 그의 자취를 쫓는 것만으로도 삶의 교훈을 체득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화산-연정 간 연화제 임도. 1km 정도로 짧다
삼산천을 따라 가는 둑길. 넉넉한 전원풍경이 평화롭다. 오른쪽 산줄기 안쪽에 금쇄동이 있다
복귀 도중에 만나는 용두리고분. 전형적인 전방후원분으로 길이 41.3m, 높이 5.2m의 대규모다. 한일고대사의 비밀을 간직한 특이한 고분이다
주변명소
* 고산윤선도유적지 : 고산 윤선도의 종가(녹우당)와 사당, 유물관 등이 모여 있는 유적공원이다. 종가에는 지금도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유물관에는 고산의 서책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인근에는 땅끝순례문학관이 있어 고산의 문학정신을 후대에 계승하고 있다. 뒷산의 500년 년 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 용두리고분 : 코스가 지나는 도로변에 있으며, 전형적인 장고분(전방후원분)이다. 전방후원분은 고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고분형태로, 한반도에서는 영산강 유역과 해남 일대에서만 10여기가 발견되어 이 지역과 고대 왜의 밀접한 관계를 엿보게 한다. 길이 41.3m, 높이 5.2m 규모. 삼산면 창리 578.
추천식당
* 원조장수통닭 : 해남 명물의 하나인 닭코스요리 전문점이다. 다양한 닭요리가 코스로 나온다. 4인상 6만원. 코스중간의 해남통닭거리에 있다. 해남읍 고산로 295. 061-536-4410
* 전원각 : 코스가 지나는 화산면사무소 옆에 있는 중국집이다. 간단히 요기하기 편하다. 화산면 마명길 3. 061-533-8841
추천숙박
* 두륜산자락펜션 : 코스가 지나는 대흥사 입구 구림리에 있으며 널찍하고 정갈하다. 삼산면 고산로 783-9. 061-535-8080
* 태양옥 : 코스 인근의 대흥사 아래 구림리에 있는 한옥 펜션이다. 삼산면 고산로 755-6. 061-533-0009
tip
도로구간이 많은 편으로 고산윤도유적지에서 대흥사 근처까지는 차량통행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윤선도 묘소는 다소 험한 산길을 올라야 한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산성터에 금쇄동이 있다.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길이 수풀에 묻혀 진입이 쉽지 않다.
윤선도길 43.5km
자연에서 노닐다 선경에 잠들다
코스 : 고산윤선도유적지(녹우당)~신흥리삼거리~구림사거리~금쇄동 입구~금쇄동~화산면삼거리~금풍교~어성교~녹우당
* 코스 길이 : 43.5km
* 코스 구성 : 도로, 임도
* 소요시간 : 4시간
* 난이도 : ★★★★
* 경관 : ★★★
(2021년)
금쇄동 산 중턱에 북향하고 있는 고산 윤선도의 묘. 그의 사당인 추원당과 후손들의 묘지가 마주 보인다
고산의 생가인 녹우당 담벼락과 사당 사이로 난 길목은 노송 가지가 드리워져 격조를 더해준다
해남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인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자취는 해남 곳곳에 진하게 남아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해남윤씨 종가인 녹우당(綠雨堂) 일원은 종가 사당과 유물관, 전시관 등이 조성되어 일종의 역사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만년에 은거했던 금쇄동은 녹우당에서 다소 떨어진 병풍산(313m)의 깊은 골짜기 안에 숨듯이 있다.
녹우당을 출발해 금쇄동의 고산 묘소까지 훑어보는 윤선도의 흔적 찾기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절경 속에서 은둔생활을 즐겼던 고산의 소요를 차분히 답습하는 길이기도 하다.
녹우당 초입의 백련지와 정자. 고산의 취향을 반영한 현실 속의 신선경이다
녹우당의 깊이
뒷산인 덕음산 중턱의 비자림에 바람이 불면 녹색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녹우당이라고 명명한 종가는 키 큰 고목 사이에 건물과 담벼락 자체가 역사가 되어 조용히 잠겨 있다. 녹우당과 고산의 사당, 해남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의 사당 사이의 골목길은 노송이 가지를 드리워 기품 있는 특별한 공간을 이룬다.
녹우당 일원을 돌아보고 고산이 은거하며 노닐다가 묻힌 금쇄동으로 향한다.
만안리에서 시작되는 금쇄동 길. 금쇄동(金鎖洞)은 '금으로 막은 골짜기'란 뜻이다
금쇄동으로 오르는 임도. 골짜기를 따라 점점 높고 깊은 산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깊고 깊은 금쇄동
녹우당을 나와 해남읍내와 대흥사를 연결하는 806번 도로를 잠시 따라간다. 구림리에서 화산방면으로 꺾어들면 통행량이 뚝 끊어지면서 한적한 산골로 접어든다. 도로명부터 ‘고산로’인데 만안리에서 농로를 거쳐 드디어 금쇄동 입구에 이른다. 만안리를 지나면 인가는 완전 단절이다.
‘금으로 막은 골짜기’라는 뜻의 금쇄동(金鎖洞)은 고산이 금쇄석궤(金鎖錫櫃, 금칠을 한 궤짝)를 얻는 꿈을 꾸고 며칠 후 이곳에서 꿈의 배경과 똑 같은 장소를 발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산세가 아주 특이해서 지형만으로도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확연하다. 산줄기에 완벽히 둘러싸인 골짜기는 마치 태극 문양처럼 휘돌고, 물줄기 안쪽 가장 깊은 산자락 정상의 옛 산성터가 윤선도가 은거하며 노닐던 금쇄동이다. 고산은 이곳에서 9년을 머물며 산중생활을 수필로 남긴 것이 국내최초의 산중수필인 <금쇄동기(金鎖洞記)>다. 고산은 금쇄동 곳곳에 그만의 지명을 붙였는데 어딘가 선풍이 감도는 하휴(下休), 중휴(中休), 상휴(上休), 쇄풍(灑風), 회심(會心) 등 22개나 된다. 금쇄동은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고산만의 원림이었던 것이다. 결국 고산은 금쇄동에 묻혔으니 산과 골짜기에는 고산의 흔적이 가득하고 지금도 골짜기 저편에서 슬쩍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이 현실적이다.
골짜기 중간쯤에 있는 고산의 사당인 추원당. 추원당 뒤편 언덕 위에는 고산 후손들의 무덤이 마치 고산에게 인사하듯 모여 있다
고산의 묘를 찾아
계곡길은 찾는 이가 없고 관리도 잘 하지 않는 듯 잡초가 우거져 있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고산의 사당인 추원당이 언덕 위에 높직하다. 이 건물 뒤편에는 고산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계곡이 끝날 무렵, 길은 본격적으로 경사가 심해진다. 금쇄동이 있는 산성터는 최고지점이 해발 260~300m 정도로 정상부에 형성된 작은 고원이다. 험로를 한동안 오르면 금쇄동 입구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고산의 묘소, 오른쪽은 금쇄동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 방면은 수풀에 완전히 묻혀 도저히 진입할 수 없어 고산의 묘소만 보고 가기로 한다. 금쇄동에는 고산이 조성한 연못과 회심당, 휘수정 같은 건물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돌보지 않아 퇴락했을 것이다.
고대의 폐산성 안에 조성된 금쇄동. 다양한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 있다. 사진은 용도를 알 수 없는 지름 18m의 원형공간으로, 가운데 둔덕을 중심으로 24개의 흙더미가 둘러싸고 있어 24절기를 나타낸 것은 아닌가 싶다
곳곳에 쌓여 있는 와편 더미는 한때 고산이 소요하던 산중 별세계의 면모를 상상하게 해준다
독특한 입지의 묘소
금쇄동에서 북서쪽으로 흘러내린 작은 능선 위 해발 200m 지점에 있는 고산의 묘는 드물게 북향인데다 추원당 뒤편의 후손들 묘지를 마주하고 있어 대단히 특이하다. 문인석과 무인석 1쌍만 있는 단출한 구성이지만 봉분이 상당히 우람하고 조망이 트여 금쇄동의 영원한 주인으로 터 잡은 느낌이다.
금쇄동을 돌아 나오면서 이처럼 완벽하게 닫힌 공간이 해남 같은 바닷가 평야지대에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 자못 신기하다. 고산의 안목에 재삼 탄복하게 된다.
고산의 무덤은 금쇄동 초입에서 산을 살짝 내려간 곳에 있다. 고산 묘소와 금쇄동 갈림길에서
들길, 하천길 따라
금쇄동을 나와 화산면소재지를 지나면 연정저수지 서쪽을 도는 화산-연정 임도로 들어선다. 850m의 짧은 거리지만 심심산골의 분위기가 물씬한 길이다.
임도를 나와 북향하면 금풍리에서 삼산천 둑길에 올라 동쪽으로 향한다. 삼산천은 한동안 폭이 100m 정도여서 개울이라기보다 강 스케일이다. 둑길 좌우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저 만치 물러난 산 아래에 마을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어 더없이 평화로운 전원풍경이다. 신흥리에서 앞서 지나온 806번 지방도와 합류하면 곧 해남통닭거리다. 여기서 연동저수지 앞 농로로 빠져 녹우당으로 복귀하면 코스는 끝난다.
이 코스는 고산으로 시작해 고산으로 마무리하는 진정한 윤선도 길이다. 금쇄동을 다녀오면 그의 호가 왜 ‘외로운 산’ 고산(孤山)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을 신선처럼 산수에 묻혀 고고하게 살았다. 그의 자취를 쫓는 것만으로도 삶의 교훈을 체득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화산-연정 간 연화제 임도. 1km 정도로 짧다
삼산천을 따라 가는 둑길. 넉넉한 전원풍경이 평화롭다. 오른쪽 산줄기 안쪽에 금쇄동이 있다
복귀 도중에 만나는 용두리고분. 전형적인 전방후원분으로 길이 41.3m, 높이 5.2m의 대규모다. 한일고대사의 비밀을 간직한 특이한 고분이다
주변명소
* 고산윤선도유적지 : 고산 윤선도의 종가(녹우당)와 사당, 유물관 등이 모여 있는 유적공원이다. 종가에는 지금도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유물관에는 고산의 서책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인근에는 땅끝순례문학관이 있어 고산의 문학정신을 후대에 계승하고 있다. 뒷산의 500년 년 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 용두리고분 : 코스가 지나는 도로변에 있으며, 전형적인 장고분(전방후원분)이다. 전방후원분은 고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고분형태로, 한반도에서는 영산강 유역과 해남 일대에서만 10여기가 발견되어 이 지역과 고대 왜의 밀접한 관계를 엿보게 한다. 길이 41.3m, 높이 5.2m 규모. 삼산면 창리 578.
추천식당
* 원조장수통닭 : 해남 명물의 하나인 닭코스요리 전문점이다. 다양한 닭요리가 코스로 나온다. 4인상 6만원. 코스중간의 해남통닭거리에 있다. 해남읍 고산로 295. 061-536-4410
* 전원각 : 코스가 지나는 화산면사무소 옆에 있는 중국집이다. 간단히 요기하기 편하다. 화산면 마명길 3. 061-533-8841
추천숙박
* 두륜산자락펜션 : 코스가 지나는 대흥사 입구 구림리에 있으며 널찍하고 정갈하다. 삼산면 고산로 783-9. 061-535-8080
* 태양옥 : 코스 인근의 대흥사 아래 구림리에 있는 한옥 펜션이다. 삼산면 고산로 755-6. 061-533-0009
tip
도로구간이 많은 편으로 고산윤도유적지에서 대흥사 근처까지는 차량통행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윤선도 묘소는 다소 험한 산길을 올라야 한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산성터에 금쇄동이 있다.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길이 수풀에 묻혀 진입이 쉽지 않다.
윤선도길 43.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