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두웠다, 익숙한 곳의 재발견
영종도는 오래 전부터 마음이 울적할 때 찾곤 하던 나만의 쉼터였다. 원래는 각기 분리된 네 개의 섬이었던 것이 공항건설을 위한 간척으로 하나의 큰 섬이 되었고, 영종대교 건설 전에는 월미도~구읍뱃터 간 배편이 유일한 연결로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녔지만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니 그 사이 새로운 명소가 생겨났고 맛집과 비경도 숨어 있었다 (21년 6월)
글/사진 :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황혼의 선녀바위해변
마음이 우울해질 때나 일이 잘 안 풀려 복잡할 때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다. 영종도는 섬이라고는 하지만 육지와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있고 전철도 다닌다. 영종도로 가는 공항고속도로는 다른 고속도로와는 달리 막힌 적이 거의 없었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에 들어서 운전해 가는 것만으로도 쌓였던 스트레스가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영종도에 도착하면 곳곳에 멋진 해변이 많다. 물이 빠진 시간에 오면 넓은 갯벌을 볼 수 있어 좋고, 물이 찼을 때는 마치 큰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게 참 좋다. 잔물결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빤짝이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근심이 사라지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비행기 따라, 시선도 마음도
영종도에는 우리나라의 하늘관문인 인천공항이 있다. 큰 비행기가 바로 눈앞에서 굉음을 내며 뜨고 내린다. 급격한 각도를 그리면서 열심히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어느 샌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어느새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시고 난 후처럼 속이 뻥 뚫린다.
아주 힘들었을 때는 혼자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선녀바위해변에 와서 한참 있다 가기도 했다. 새우깡의 반은 내가 먹고 반은 갈매기에게 주다보면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생각도 안 난다. 머리 속에 꽈 차있던 고민이 사라지며 그 모든 게 하찮고 빈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영종도에 자주 찾아온다.
배 타고 가던 낙도의 상전벽해
지금은 영종도까지 고속도로와 전철이 연결되어 있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공항이 들어서기 전까지 영종도는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작은 섬이었다. 그러다 당시의 국제공항이던 김포공항이 포화상태가 되어 새로운 공항을 찾았고 마침내 이곳이 적지라고 판단해 1992년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간석지를 메우는 공사를 시작했다. 9년 후인 2001년 3월에 1차 공사를 완공해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그때 공항고속도로와 함께 영종대교라는 연륙교도 생겼다. 전철은 이때 개통한 것은 아니고 그보다 8년 후인 2009년에 완공되어 개통했다.
영종도는 단일 섬으로 보이지만 원래는 영종도,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이렇게 각각 다른 4개의 섬을 하나로 연결해서 이뤄졌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인천공항이 생긴 지가 올해로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문득 찾아가는 섬
오늘 문득 영종도에 가보고 싶어졌다. 영종도에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깊고 넓은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요즘은 팬데믹 때문에 공항이 아주 한산하다. 그러다보니 공항고속도로에도 차들이 많이 줄었다. 보통 때도 전혀 막히지 않는 길인데 지금은 여행객까지 더 줄어들었으니 도로는 쾌적하다 못해 썰렁할 정도다.
오늘은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 안 가봤던 곳을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해 처음 도착한 곳은 삼목항이다. 영종도는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계획도시이다 보니 어디든지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있다. 대부분 6~8차로의 큰길이라 막히는 곳이 전혀 없다. 공항고속도로 신불IC로 나오면 삼목항까지 가는 길도 또 하나의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려있다. 삼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명물이 있다. ‘붉은꽃아까시’다. 아까시꽃(아카시아가 아니고 아까시임)은 대부분 흰색이다. 나도 이전에 수목원에서 보기 전까지는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수목원에서 처음 붉은꽃아까시를 보았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치 검은색 백조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희귀종 붉은꽃아까시가 이곳 삼목항 가는 길가에 가로수처럼 한가득 피어 있다. 붉은꽃아까시는 돌연변이는 아니고 북아메리카 원산인 별도의 종이다. 흰색 꽃에 비해 향기는 약하지만 아주 은은한 게 특징이다. 꽃봉오리가 펼쳐지기 전에 따서 통째로 기름에 튀겨 먹으면 별미라고 한다. 이 꽃을 처음 보았을 때 하도 신기해 꽃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꽃들은 아주 빨간 것도 있고 부드러운 핑크색도 있었다. 핑크색 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아름답다. 마치 작은 작약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적막한 활주로
삼목항에서는 바다 건너 보이는 신도와 장봉도로 가는 페리가 운행한다. 여기서 배를 타고 10분만 가면 신도에 도착한다. 신도와 시도·모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어 차나 자전거로 둘러볼 수 있다. 삼목항에는 페리가 출발하는 선착장도 있고 작은 규모의 어항도 있다. 도착해보니 마침 페리가 한대는 들어오고 한대는 막 출항하고 있었다. 선착장을 뒤로하고 신도로 열심히 가고 있는 배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조금씩 조금씩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삼목항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인천공항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오성산 전망대다. 예전에 차를 타고 지나다보면 공항전망대라는 푯말이 있어 무슨 특별한 군사시설물인가 하고 궁금했다. 그곳을 오늘 처음으로 가본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에서 잠시 걸어 오르면 아담한 2층 규모의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안 대형 디스플레이에서는 인천공항에 대한 소개영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공항 쪽을 바라보면 공항의 전경이 막히는 것 없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정말 딱 좋은 위치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공항에는 비행기들이 가득했지만 마치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처럼 움직임이 조금도 없다. 팬데믹 때문에 여행이 거의 없어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공항이라고 하면 비행기가 줄을 지어 계속 뜨고 내리는 활기찬 모습을 생각했는데 이런 썰렁한 상황을 보니 마음이 안됐다. 그때 마침 적막을 뚫고 비행기 한대가 이륙했다. 어디로 가는 비행기일까? 너무 반가웠다. 활주로를 뒤로하고 열심히 날아오른다. 팬데믹이 하루 빨리 종식되고 여행길이 다시 열릴 때 이곳에 다시 와봐야겠다. 그때는 어떤 모습일까?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리겠지? 그런 활기찬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
왕산마리나의 이국풍
다음 목적지는 영종도에서도 특이한 곳인 왕산마리나다. 요트계류장이 있는 곳이다. 모양도 색깔도 다른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유럽의 고급휴양지 같은 분위기다. 이곳에 오면 보트나 요트를 탈 수 있고 자신 소유의 요트를 정박해 놓을 수 있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요금을 내고 탈 수 있는 요트투어도 있어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모처럼의 호사를 즐길 수도 있다. 필자도 부산항에서 요트를 한척 빌려서 투어를 한 적이 있는데 보통의 여객선이나 유람선과는 또 다른 느낌의 멋진 경험이었다. 요트 투어가 아주 비싸지는 않으니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왕산마리나는 요트 풍경도 좋지만 항구 입구에 아주 넓은 잔디밭이 특별하다. 이곳에 와서 요즘 유행하는 ‘차크닉’을 많이 한단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하다. 도로옆에는 빨간색, 분홍색의 해당화가 가득 피어 있다. 해당화길에는 바다쪽으로 몇 개의 나무벤치가 있다. 책 한권과 커피 한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훅~ 하고 날라 갈 것만 같다. 오늘도 사람들이 잔디밭위에서 음식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놀랍고 행복했던 점심
어느덧 점심때다. 오늘은 영종도 하늘도시 부근에 있는 ‘모리’라는 우동집을 찾았다. 모리(森)는 일본말로 숲이라는 의미다. 이집 메뉴는 몇 개 안된다. 주메뉴는 우동이고 밥은 카레가 유일하다. 우동메뉴에는 국물이 있는 우동과 국물 없는 붓카케우동이 있다. 붓카케우동은 조금 생소한데 차게 해서 먹으면 자루붓카케라 하고 따뜻하게 먹으면 가마붓카케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자루붓카케를 많이들 먹는데 국내에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도리텐우동을 시켜 보았다. 우동에 닭고기튀김이 함께 나오는 메뉴다. 그냥 흔한 우동맛이겠지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한 젓가락을 떠서 먹었다. 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맛이었다. 우동의 식감이 정말 최고였다. 일본 우동의 고향인 시코쿠섬의 다카마츠에서나 맛볼 수 있는 식감이었다. 일본표현에 의하면 ‘쯔루쯔루’다. 뭐랄까? 매끈매끈하면서도 부드럽고, 약간 쫄깃하면서도 연하고. 씹을 때 아주 적당한 강도에서 끊어지고 부숴지는 그런 식감이었다.
국물도 최고다. 게다가 닭고기튀김은 정말 경지에 올라선 듯한 맛이었다. 얇은 튀김옷 속에 재료의 맛과 감촉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지도 않다.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다. 이런 높은 수준의 음식을 먹어본 경험은 몇 번 안 된다. 대단하다. 신기해서 확인해보니 주인이 일본에 가서 직접 요리공부를 하고 왔단다. 생각지도 못한 맛집에 와서 이렇게 맛난 음식을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용궁사에 가면 소원을 빌어보자
이제 가까운 곳에 있는 용궁사를 찾았다. 백운산 기슭에 있는 용궁사는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철종 때 흥선대원군이 재건했다고 한다. 그래서 용궁사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편액이 걸려있다. 용궁사는 몇 채의 건물만 있는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지금은 새로운 건물도 짓고 축대도 만드는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입구에는 1300년이나 된 정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둥치는 중간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완전히 뚫려 있고 껍데기 부분만 얇게 남아있는데도 위쪽 가지에는 이파리들이 아주 무성하게 달려 있다. 참 신비롭다. 믿을 수 없는 나무의 생명력에는 감탄만 나올 뿐이다.
바로 뒤 언덕에는 소원바위라는 재미있는 곳이 있다. 널찍한 돌판 위에 손보다 조금 큰 돌덩이가 놓여 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돌을 돌판에 돌리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면 돌판에 돌이 자석처럼 달라붙는다고 한다. 붙지 않고 그냥 미끄러지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단다. 나도 해보았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원을 빌며 돌려 보았더니 어느 순간 철썩하고 붙는 느낌이 들었다. 소원이 이뤄진다니 기분은 좋았다. 사실 그 행위가 어떤 영험하거나 신비로운 경험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결국은 이루어진다는 극히 기본적인 진실일 것이다. 하여간에 용궁사에 가게 되면 재미로 한번씩 해보기를 권한다.
볼거리 가득한 영종진공원
용궁사에서 나와 영종진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여러 시설과 기념물이 있어 여기서만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곳이다. 입구에는 멋진 건물의 영종역사관이 있다. 영종도의 역사관이라… 어떤 역사일까? 호기심이 생겨 들어가 보았다. 원래는 입장료가 1천원인데 오늘은 무슨 기념일이라고 무료입장이란다. 1층에는 영종도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영종도의 예전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고 자연도라고 불렸단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지금의 남양에 있던 영종진이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이름이 자연스럽게 영종도로 되었다. 고려 때부터 중국 사신들이 우리나라에 올 때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서 하루를 숙박했다고 하니 당시에도 국제교류의 관문이었던 모양이다.
벽면에는 인천공항 공사 이전에 각기 다른 4개의 섬들의 위치를 표기해둔 지도가 있어 지금의 영종도가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공항 건설공사는 어떻게 진행됐는가를 그림과 도표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신석기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육지에 있는 다른 곳들은 수천년 동안 이렇게 저렇게 개발이 되면서 신석기유적들이 파묻히고 파괴되었겠지만 이곳은 외딴 섬이어서 원래 상태가 유지될 수 있었나 보다.
역사관을 나서면 태평루로 가는 오솔길이 있다. 나무로 만든 데크길이 숲속으로 잘 나 있으며 나무그늘에는 널찍한 평상이 놓여있어 여유롭게 쉴 수 있다. 깊은 산속 휴양림에나 있는 시설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른쪽 잔디밭에는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곳이 과거 김찬삼 교수의 여행박물관이 있던 자리란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당시에 <김찬삼의 세계일주>는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신문에 연재되기도 했고 책으로도 나왔다. 학교에 있던 책을 읽고 책속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크면 세계일주를 꼭 해야겠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고 교통수단도 불편할 때였는데 김찬삼 선생은 화물선을 타고 자전거를 이용해 3차례나 세계일주를 했다. 무려 160개국 1,000개 도시를 여행했고 그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당시에 김찬삼 교수라고 하면 정말 영웅이었다. 그 흔적을 여기서 볼 줄이야.
운요호사건의 현장
작은 언덕을 내려오면 꽤 큰 건물인 2층 규모의 태평루가 있다. 중국사신들이 묵은 객관인 경원정이 훗날 태평루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다시 재현해 놓은 것이다. 누각의 2층에 올라가 보았다. 바다 건너에 인천항이 한눈에 보인다. 멀리 인천대교가 바다위에 떠 있는 것처럼 살짝 보인다. 뒤쪽에는 운요호사건 당시 전몰한 35인의 위령비가 우뚝 서있다.
운요호사건은 1895년 포함외교를 하면서 조선을 집어삼키려던 일본이 운요호(雲揚號)를 보내 무력도발을 한 사건이다. 일본군은 강화도 초지진에서 심한 포격을 받자 일단 후퇴했다가 보복으로 이곳 영종도에 상륙해 전투를 벌인다. 보트로 일본군 22명이 상륙했을 때 조선병사는 400명이 넘었는데 무기의 차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때가 일본의 영토 침략 시작이었다. 이듬해 한일수호조약을 채결하면서 일본에게 서서히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 영종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언덕길을 내려오면 바로 구읍뱃터가 나온다. 이전에 영종대교가 없을 때는 인천 월미도에서 이곳 구읍뱃터까지 오가는 하루 12번의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생긴 지금도 페리는 계속 운행된다. 다리를 건너 차로 쉽게 올 수도 있지만 배를 타고 갈매기와 함께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자전거를 가지고 월미도에서 구읍뱃터로 와서 해변길을 따라 가면 영종도를 일주할 수 있다. 지금은 해변도로 공사를 다시 해서 자전거가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구읍뱃터에는 5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카페인 곳이 있다. 한집이 아니고 층마다 각기 다른 여러 개의 카페가 모여 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혼자 마시는 커피도 아주 맛있을 것 같다. 길가에는 횟집, 해물칼국수집, 이곳 명물이라는 새우튀김집 등 각종 맛집들이 음식거리를 이루고 있다.
나만의 그 바닷가
이제 선녀바위해변으로 간다. 영종도에는 좋은 해변들이 많다. 을왕리, 왕산, 마시안 해변등. 그러나 나는 선녀바위해변이 제일 좋다. 선녀바위해변에는 그 흔한 카페도 하나 없다. 그냥 아주 작은 규모의 모래사장과 어디선가 굴러 내려온 많은 바위들이 있을 뿐이다.
이곳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가족과 함께 올 때는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와서 모래사장에 앉아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쉬기도 한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야구글러브를 가지고 와서 물 빠진 해변에서 캐치볼을 하며 놀다가기도 했다. 특별한 날에는 커피를 정성스럽게 타서 특별한 바위 위에 올려놓고 옛날 생각을 하며 한참 있다가 간다. 가끔 혼자 올 때도 있다. 그때는 바위에 기대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못부르는 노래지만 못한다고 흉볼 사람이 없으니 소리 내어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이곳에 오면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나에게는 이곳이 모든 것을 툭툭 털고 가는 그런 곳이다.
이제 선녀바위해변에 해가 지고 있다. 선녀바위해변은 서쪽이 아니고 남쪽을 향하고 있어 해가 오른쪽 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온 김에 해넘이를 보려고 가까운 왕산마리나로 다시 갔다. 방파제에는 해넘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낮에 햇빛을 받아 빤짝이던 바다는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햇님은 아침에 보았던 붉은꽃아까시처럼 붉게 변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붉은색에서 시작해 붉은색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게 사람의 생애와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햇님은 바다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금세 어두워진다. 이제 집으로 출발이다. 음악을 틀었다. 마침 니니 로소(Nini Rosso)의 ‘밤하늘의 트럼펫’이 흘러나온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군시절 대학에서 풀룻을 전공하다 입대한 동기가 한명 있었다. 창고에 버려져 있던 트럼펫을 찾아내서는 한 일주일을 창고 안에서 혼자 연습을 했다. 그러다 어느날 취침점호가 끝나고 자려는데 그 녀석이 연병장에 트럼펫을 가지고 나가 바로 이곡을 불었다. 조용한 밤에 들리는 트럼펫소리가 너무 애절했다. 이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곡인데 이곡이 그렇게 가슴 사무칠 줄은 몰랐다. 음표 하나하나가 가슴속에 새겨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우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훌쩍훌쩍. 다음날 동기를 만났더니. 이 녀석이 빙그레 웃으며 “어젯밤에 너도 울었냐?” “당연하지. 임마.” 그러고 나서 그날 밤에는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로 시작하는 ‘Flee as a bird’라는 곡을 불어 다시 한 번 부대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렇게 한 10일 정도 특이한 경험을 하게 해주더니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신청해도 불어주지 않았다. 지금 조명이 색색으로 변하는 영종대교를 넘어오는데 마침 그 곡도 흘러나온다. 당시 기분과 오버랩되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수십 년이 휙 하고 지났다. 그 친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더 깊이 알게 된 그곳
오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있는 영종도를 찾아왔다. 내가 특별하고 좋아했던 영종도가 이렇게 이야기거리가 많은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 인천공항을 만들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섬. 영종도는 과거와 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바다가 있고 해변이 있고 갯벌이 있고 그리고 비행기가 있는 멋진 곳. 언제 와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 영종도를 자세히 알게 되니 더욱 좋아졌다.
지금은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혔지만 멀지않은 미래에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들은 다시 쉴 새 없이 뜨고 내리고 공항은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게 되겠지. 조용했던 영종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익숙한 곳의 재발견
영종도는 오래 전부터 마음이 울적할 때 찾곤 하던 나만의 쉼터였다. 원래는 각기 분리된 네 개의 섬이었던 것이 공항건설을 위한 간척으로 하나의 큰 섬이 되었고, 영종대교 건설 전에는 월미도~구읍뱃터 간 배편이 유일한 연결로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녔지만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니 그 사이 새로운 명소가 생겨났고 맛집과 비경도 숨어 있었다 (21년 6월)
글/사진 :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마음이 우울해질 때나 일이 잘 안 풀려 복잡할 때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다. 영종도는 섬이라고는 하지만 육지와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있고 전철도 다닌다. 영종도로 가는 공항고속도로는 다른 고속도로와는 달리 막힌 적이 거의 없었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에 들어서 운전해 가는 것만으로도 쌓였던 스트레스가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영종도에 도착하면 곳곳에 멋진 해변이 많다. 물이 빠진 시간에 오면 넓은 갯벌을 볼 수 있어 좋고, 물이 찼을 때는 마치 큰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게 참 좋다. 잔물결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빤짝이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근심이 사라지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비행기 따라, 시선도 마음도
영종도에는 우리나라의 하늘관문인 인천공항이 있다. 큰 비행기가 바로 눈앞에서 굉음을 내며 뜨고 내린다. 급격한 각도를 그리면서 열심히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어느 샌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어느새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시고 난 후처럼 속이 뻥 뚫린다.
아주 힘들었을 때는 혼자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선녀바위해변에 와서 한참 있다 가기도 했다. 새우깡의 반은 내가 먹고 반은 갈매기에게 주다보면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생각도 안 난다. 머리 속에 꽈 차있던 고민이 사라지며 그 모든 게 하찮고 빈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영종도에 자주 찾아온다.
배 타고 가던 낙도의 상전벽해
지금은 영종도까지 고속도로와 전철이 연결되어 있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공항이 들어서기 전까지 영종도는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작은 섬이었다. 그러다 당시의 국제공항이던 김포공항이 포화상태가 되어 새로운 공항을 찾았고 마침내 이곳이 적지라고 판단해 1992년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간석지를 메우는 공사를 시작했다. 9년 후인 2001년 3월에 1차 공사를 완공해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그때 공항고속도로와 함께 영종대교라는 연륙교도 생겼다. 전철은 이때 개통한 것은 아니고 그보다 8년 후인 2009년에 완공되어 개통했다.
영종도는 단일 섬으로 보이지만 원래는 영종도,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이렇게 각각 다른 4개의 섬을 하나로 연결해서 이뤄졌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인천공항이 생긴 지가 올해로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문득 찾아가는 섬
오늘 문득 영종도에 가보고 싶어졌다. 영종도에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깊고 넓은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요즘은 팬데믹 때문에 공항이 아주 한산하다. 그러다보니 공항고속도로에도 차들이 많이 줄었다. 보통 때도 전혀 막히지 않는 길인데 지금은 여행객까지 더 줄어들었으니 도로는 쾌적하다 못해 썰렁할 정도다.
오늘은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 안 가봤던 곳을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해 처음 도착한 곳은 삼목항이다. 영종도는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계획도시이다 보니 어디든지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있다. 대부분 6~8차로의 큰길이라 막히는 곳이 전혀 없다. 공항고속도로 신불IC로 나오면 삼목항까지 가는 길도 또 하나의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려있다. 삼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명물이 있다. ‘붉은꽃아까시’다. 아까시꽃(아카시아가 아니고 아까시임)은 대부분 흰색이다. 나도 이전에 수목원에서 보기 전까지는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수목원에서 처음 붉은꽃아까시를 보았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치 검은색 백조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희귀종 붉은꽃아까시가 이곳 삼목항 가는 길가에 가로수처럼 한가득 피어 있다. 붉은꽃아까시는 돌연변이는 아니고 북아메리카 원산인 별도의 종이다. 흰색 꽃에 비해 향기는 약하지만 아주 은은한 게 특징이다. 꽃봉오리가 펼쳐지기 전에 따서 통째로 기름에 튀겨 먹으면 별미라고 한다. 이 꽃을 처음 보았을 때 하도 신기해 꽃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꽃들은 아주 빨간 것도 있고 부드러운 핑크색도 있었다. 핑크색 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아름답다. 마치 작은 작약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적막한 활주로
삼목항에서는 바다 건너 보이는 신도와 장봉도로 가는 페리가 운행한다. 여기서 배를 타고 10분만 가면 신도에 도착한다. 신도와 시도·모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어 차나 자전거로 둘러볼 수 있다. 삼목항에는 페리가 출발하는 선착장도 있고 작은 규모의 어항도 있다. 도착해보니 마침 페리가 한대는 들어오고 한대는 막 출항하고 있었다. 선착장을 뒤로하고 신도로 열심히 가고 있는 배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조금씩 조금씩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삼목항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인천공항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오성산 전망대다. 예전에 차를 타고 지나다보면 공항전망대라는 푯말이 있어 무슨 특별한 군사시설물인가 하고 궁금했다. 그곳을 오늘 처음으로 가본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에서 잠시 걸어 오르면 아담한 2층 규모의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안 대형 디스플레이에서는 인천공항에 대한 소개영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공항 쪽을 바라보면 공항의 전경이 막히는 것 없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정말 딱 좋은 위치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공항에는 비행기들이 가득했지만 마치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처럼 움직임이 조금도 없다. 팬데믹 때문에 여행이 거의 없어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공항이라고 하면 비행기가 줄을 지어 계속 뜨고 내리는 활기찬 모습을 생각했는데 이런 썰렁한 상황을 보니 마음이 안됐다. 그때 마침 적막을 뚫고 비행기 한대가 이륙했다. 어디로 가는 비행기일까? 너무 반가웠다. 활주로를 뒤로하고 열심히 날아오른다. 팬데믹이 하루 빨리 종식되고 여행길이 다시 열릴 때 이곳에 다시 와봐야겠다. 그때는 어떤 모습일까?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리겠지? 그런 활기찬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
왕산마리나의 이국풍
다음 목적지는 영종도에서도 특이한 곳인 왕산마리나다. 요트계류장이 있는 곳이다. 모양도 색깔도 다른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유럽의 고급휴양지 같은 분위기다. 이곳에 오면 보트나 요트를 탈 수 있고 자신 소유의 요트를 정박해 놓을 수 있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요금을 내고 탈 수 있는 요트투어도 있어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모처럼의 호사를 즐길 수도 있다. 필자도 부산항에서 요트를 한척 빌려서 투어를 한 적이 있는데 보통의 여객선이나 유람선과는 또 다른 느낌의 멋진 경험이었다. 요트 투어가 아주 비싸지는 않으니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왕산마리나는 요트 풍경도 좋지만 항구 입구에 아주 넓은 잔디밭이 특별하다. 이곳에 와서 요즘 유행하는 ‘차크닉’을 많이 한단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하다. 도로옆에는 빨간색, 분홍색의 해당화가 가득 피어 있다. 해당화길에는 바다쪽으로 몇 개의 나무벤치가 있다. 책 한권과 커피 한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훅~ 하고 날라 갈 것만 같다. 오늘도 사람들이 잔디밭위에서 음식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놀랍고 행복했던 점심
어느덧 점심때다. 오늘은 영종도 하늘도시 부근에 있는 ‘모리’라는 우동집을 찾았다. 모리(森)는 일본말로 숲이라는 의미다. 이집 메뉴는 몇 개 안된다. 주메뉴는 우동이고 밥은 카레가 유일하다. 우동메뉴에는 국물이 있는 우동과 국물 없는 붓카케우동이 있다. 붓카케우동은 조금 생소한데 차게 해서 먹으면 자루붓카케라 하고 따뜻하게 먹으면 가마붓카케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자루붓카케를 많이들 먹는데 국내에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도리텐우동을 시켜 보았다. 우동에 닭고기튀김이 함께 나오는 메뉴다. 그냥 흔한 우동맛이겠지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한 젓가락을 떠서 먹었다. 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맛이었다. 우동의 식감이 정말 최고였다. 일본 우동의 고향인 시코쿠섬의 다카마츠에서나 맛볼 수 있는 식감이었다. 일본표현에 의하면 ‘쯔루쯔루’다. 뭐랄까? 매끈매끈하면서도 부드럽고, 약간 쫄깃하면서도 연하고. 씹을 때 아주 적당한 강도에서 끊어지고 부숴지는 그런 식감이었다.
국물도 최고다. 게다가 닭고기튀김은 정말 경지에 올라선 듯한 맛이었다. 얇은 튀김옷 속에 재료의 맛과 감촉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지도 않다.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다. 이런 높은 수준의 음식을 먹어본 경험은 몇 번 안 된다. 대단하다. 신기해서 확인해보니 주인이 일본에 가서 직접 요리공부를 하고 왔단다. 생각지도 못한 맛집에 와서 이렇게 맛난 음식을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용궁사에 가면 소원을 빌어보자
이제 가까운 곳에 있는 용궁사를 찾았다. 백운산 기슭에 있는 용궁사는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철종 때 흥선대원군이 재건했다고 한다. 그래서 용궁사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편액이 걸려있다. 용궁사는 몇 채의 건물만 있는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지금은 새로운 건물도 짓고 축대도 만드는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입구에는 1300년이나 된 정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둥치는 중간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완전히 뚫려 있고 껍데기 부분만 얇게 남아있는데도 위쪽 가지에는 이파리들이 아주 무성하게 달려 있다. 참 신비롭다. 믿을 수 없는 나무의 생명력에는 감탄만 나올 뿐이다.
바로 뒤 언덕에는 소원바위라는 재미있는 곳이 있다. 널찍한 돌판 위에 손보다 조금 큰 돌덩이가 놓여 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돌을 돌판에 돌리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면 돌판에 돌이 자석처럼 달라붙는다고 한다. 붙지 않고 그냥 미끄러지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단다. 나도 해보았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원을 빌며 돌려 보았더니 어느 순간 철썩하고 붙는 느낌이 들었다. 소원이 이뤄진다니 기분은 좋았다. 사실 그 행위가 어떤 영험하거나 신비로운 경험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결국은 이루어진다는 극히 기본적인 진실일 것이다. 하여간에 용궁사에 가게 되면 재미로 한번씩 해보기를 권한다.
볼거리 가득한 영종진공원
용궁사에서 나와 영종진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여러 시설과 기념물이 있어 여기서만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곳이다. 입구에는 멋진 건물의 영종역사관이 있다. 영종도의 역사관이라… 어떤 역사일까? 호기심이 생겨 들어가 보았다. 원래는 입장료가 1천원인데 오늘은 무슨 기념일이라고 무료입장이란다. 1층에는 영종도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영종도의 예전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고 자연도라고 불렸단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지금의 남양에 있던 영종진이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이름이 자연스럽게 영종도로 되었다. 고려 때부터 중국 사신들이 우리나라에 올 때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서 하루를 숙박했다고 하니 당시에도 국제교류의 관문이었던 모양이다.
벽면에는 인천공항 공사 이전에 각기 다른 4개의 섬들의 위치를 표기해둔 지도가 있어 지금의 영종도가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공항 건설공사는 어떻게 진행됐는가를 그림과 도표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신석기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육지에 있는 다른 곳들은 수천년 동안 이렇게 저렇게 개발이 되면서 신석기유적들이 파묻히고 파괴되었겠지만 이곳은 외딴 섬이어서 원래 상태가 유지될 수 있었나 보다.
역사관을 나서면 태평루로 가는 오솔길이 있다. 나무로 만든 데크길이 숲속으로 잘 나 있으며 나무그늘에는 널찍한 평상이 놓여있어 여유롭게 쉴 수 있다. 깊은 산속 휴양림에나 있는 시설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른쪽 잔디밭에는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곳이 과거 김찬삼 교수의 여행박물관이 있던 자리란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당시에 <김찬삼의 세계일주>는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신문에 연재되기도 했고 책으로도 나왔다. 학교에 있던 책을 읽고 책속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크면 세계일주를 꼭 해야겠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고 교통수단도 불편할 때였는데 김찬삼 선생은 화물선을 타고 자전거를 이용해 3차례나 세계일주를 했다. 무려 160개국 1,000개 도시를 여행했고 그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당시에 김찬삼 교수라고 하면 정말 영웅이었다. 그 흔적을 여기서 볼 줄이야.
운요호사건의 현장
작은 언덕을 내려오면 꽤 큰 건물인 2층 규모의 태평루가 있다. 중국사신들이 묵은 객관인 경원정이 훗날 태평루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다시 재현해 놓은 것이다. 누각의 2층에 올라가 보았다. 바다 건너에 인천항이 한눈에 보인다. 멀리 인천대교가 바다위에 떠 있는 것처럼 살짝 보인다. 뒤쪽에는 운요호사건 당시 전몰한 35인의 위령비가 우뚝 서있다.
운요호사건은 1895년 포함외교를 하면서 조선을 집어삼키려던 일본이 운요호(雲揚號)를 보내 무력도발을 한 사건이다. 일본군은 강화도 초지진에서 심한 포격을 받자 일단 후퇴했다가 보복으로 이곳 영종도에 상륙해 전투를 벌인다. 보트로 일본군 22명이 상륙했을 때 조선병사는 400명이 넘었는데 무기의 차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때가 일본의 영토 침략 시작이었다. 이듬해 한일수호조약을 채결하면서 일본에게 서서히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 영종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언덕길을 내려오면 바로 구읍뱃터가 나온다. 이전에 영종대교가 없을 때는 인천 월미도에서 이곳 구읍뱃터까지 오가는 하루 12번의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생긴 지금도 페리는 계속 운행된다. 다리를 건너 차로 쉽게 올 수도 있지만 배를 타고 갈매기와 함께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자전거를 가지고 월미도에서 구읍뱃터로 와서 해변길을 따라 가면 영종도를 일주할 수 있다. 지금은 해변도로 공사를 다시 해서 자전거가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구읍뱃터에는 5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카페인 곳이 있다. 한집이 아니고 층마다 각기 다른 여러 개의 카페가 모여 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혼자 마시는 커피도 아주 맛있을 것 같다. 길가에는 횟집, 해물칼국수집, 이곳 명물이라는 새우튀김집 등 각종 맛집들이 음식거리를 이루고 있다.
나만의 그 바닷가
이제 선녀바위해변으로 간다. 영종도에는 좋은 해변들이 많다. 을왕리, 왕산, 마시안 해변등. 그러나 나는 선녀바위해변이 제일 좋다. 선녀바위해변에는 그 흔한 카페도 하나 없다. 그냥 아주 작은 규모의 모래사장과 어디선가 굴러 내려온 많은 바위들이 있을 뿐이다.
이곳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가족과 함께 올 때는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와서 모래사장에 앉아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쉬기도 한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야구글러브를 가지고 와서 물 빠진 해변에서 캐치볼을 하며 놀다가기도 했다. 특별한 날에는 커피를 정성스럽게 타서 특별한 바위 위에 올려놓고 옛날 생각을 하며 한참 있다가 간다. 가끔 혼자 올 때도 있다. 그때는 바위에 기대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못부르는 노래지만 못한다고 흉볼 사람이 없으니 소리 내어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이곳에 오면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나에게는 이곳이 모든 것을 툭툭 털고 가는 그런 곳이다.
이제 선녀바위해변에 해가 지고 있다. 선녀바위해변은 서쪽이 아니고 남쪽을 향하고 있어 해가 오른쪽 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온 김에 해넘이를 보려고 가까운 왕산마리나로 다시 갔다. 방파제에는 해넘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낮에 햇빛을 받아 빤짝이던 바다는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햇님은 아침에 보았던 붉은꽃아까시처럼 붉게 변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붉은색에서 시작해 붉은색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게 사람의 생애와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햇님은 바다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금세 어두워진다. 이제 집으로 출발이다. 음악을 틀었다. 마침 니니 로소(Nini Rosso)의 ‘밤하늘의 트럼펫’이 흘러나온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군시절 대학에서 풀룻을 전공하다 입대한 동기가 한명 있었다. 창고에 버려져 있던 트럼펫을 찾아내서는 한 일주일을 창고 안에서 혼자 연습을 했다. 그러다 어느날 취침점호가 끝나고 자려는데 그 녀석이 연병장에 트럼펫을 가지고 나가 바로 이곡을 불었다. 조용한 밤에 들리는 트럼펫소리가 너무 애절했다. 이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곡인데 이곡이 그렇게 가슴 사무칠 줄은 몰랐다. 음표 하나하나가 가슴속에 새겨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우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훌쩍훌쩍. 다음날 동기를 만났더니. 이 녀석이 빙그레 웃으며 “어젯밤에 너도 울었냐?” “당연하지. 임마.” 그러고 나서 그날 밤에는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로 시작하는 ‘Flee as a bird’라는 곡을 불어 다시 한 번 부대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렇게 한 10일 정도 특이한 경험을 하게 해주더니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신청해도 불어주지 않았다. 지금 조명이 색색으로 변하는 영종대교를 넘어오는데 마침 그 곡도 흘러나온다. 당시 기분과 오버랩되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수십 년이 휙 하고 지났다. 그 친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더 깊이 알게 된 그곳
오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있는 영종도를 찾아왔다. 내가 특별하고 좋아했던 영종도가 이렇게 이야기거리가 많은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 인천공항을 만들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섬. 영종도는 과거와 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바다가 있고 해변이 있고 갯벌이 있고 그리고 비행기가 있는 멋진 곳. 언제 와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 영종도를 자세히 알게 되니 더욱 좋아졌다.
지금은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혔지만 멀지않은 미래에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들은 다시 쉴 새 없이 뜨고 내리고 공항은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게 되겠지. 조용했던 영종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