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여주 여강길 상류구간 일주 50km

자생투어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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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는 나루터의 애상, 산에서는 아찔 싱글 라이딩

여강길 하류구간은 산길이 많아 하류 구간과는 완전히 다르다. ‘끌바’와 ‘멜바’도 라이딩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싱글트랙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산악 라이딩 베테랑에게만 추천한다. 특히 소무산(249m) 구간은 싱글트랙 라이딩에 최적이다. 길이 험한 만큼 인적이 드물어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하기도 좋다

첫번째 숲길인 부라우나루터 인근의 싱글 구간. 마을에서 멀지 않은데도 심산의 분위기가 감돈다. 리본은 여강길 표시기 

 

상류구간은 출발하기 전에 작심이 필요하다. 힘든 산악구간이 많아 끌바 멜바를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그마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출발이다.

하류구간과 마찬가지로 신륵사에서 출발해 여주대교를 건너 영월루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영월루는 언덕 위에 우뚝하고, 그 아래에는 그리스군 참전비와 대한민국무공수훈자공적비가 나란하다. 국가든 개인이든 어려울 때 도와준 은혜는 잊어서는 안 된다.

강 건너로 신륵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강변절벽에 우뚝한 강월헌(江月軒)과 삼층석탑이 뚜렷하다. 강변 사찰은 극히 드문데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신륵사가 번창한 것은 세종 무덤이 인근으로 옮겨오면서 왕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뚝한 영월루와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을 형상화한 그리스군 참전기념비. 오른쪽에는 무공수훈자공적비도 있다 

강변에서 돌아본 여주 중심부. 왼쪽에 영월루가 있고 여주대교가 한강을 가로지른다. 오른쪽은 49층의 KCC스위첸아파트 

신륵사 강월헌 앞으로 수상스키가 물살을 가른다. 적막을 가르는 시청각적 공감각 이벤트다    


금은모래강변공원의 재발견

국토종주길을 따라가다 금은모래강변공원으로 들어선다. 강변 사빈에 자리 잡은 금은모래공원은 이름에서부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정취를 더해준다. 일제 시절 여주에는 금광이여럿 있었고 사금(砂金)도 많이 난데서 유래한 지명 같은데 지명만으로도 동심 어린 정겨움을 더해준다.

국토종주길만 가면 그냥 지나쳐 가는 구간이라 공원 내부를 제대로 본 것은 처음이다. 세 번 놀란 것이, 길이가 1km를 넘는 규모에, 너무나 다채로운 공간에, 그럼에도 찾는 이가 없는 한적함에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성긴 숲의 잔디마당, 야생초화원, 수변데크, 고궁과 움집 모형, 복원된 포석정과 선죽교, 조각공원까지 이렇게 다양하게 꾸며놓았는데 아무도 없다. 휴일에는 다르겠지만 인적 없는 만물공원은 박제된 세트장처럼 허망하게 낡아가고 있다.

금은모래강변공원의 은행나무 가로수길. 공원은 특별하고 다채로운 테마로 꾸며져 있다  

정밀하게 복원된 고궁 모형 뒤로 움집도 보인다  

이건 술잔을 띄워 풍류를 즐기던 유상곡수(流觴曲水)의 경주 포석정이고, 뒤는 경복궁 향원정?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가 피살당한 개성 선죽교도 잘 복원되어 있다 

강천보를 지나면 6.25 때 남한강 도하작전을 지휘하다 순직한 에드워드 무어 장군의 비석이 서 있다. 만리타국에서... 고마울 따름이다 


잊혀져가는 나루터  
국토종주길은 강천보를 건너가지만 여강길은 그대로 남하해 단현리에서 숲길로 들어선다. 강변에서 맛보는 간만의 싱글트랙 라이딩이다. 동네 바로 옆인데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인적이 없다는 뜻이다.
강변의 암반 옆에 부라우나루터가 있다. 단현리와 강 건너 가야리를 연결하던 나루터는 이제 작은 표지판 하나만 남기고 흔적도 없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이별과 만남, 절망과 희망의 교차가 있었을까. 지금이야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강물이지만 그 옛날에는 삶의 아득한 단절선이었을 것이다. 그리움과 고통과 증오도 저 강물을 넘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어디에 있더라도 손 기계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다.

바로 동네 옆인데 원시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숲길 

이정목과 표지기가 잘 되어 있어 길 찾기는 편하다


숲길을 버리고
라이딩과 ‘끌바’를 병행하면 그럭저럭 갈만 하지만 우만동에서 숲을 우회해 345번 지방도를 따라 흔암리선사유적으로 곧장 간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화덕자리와 탄화된 쌀, 조, 수수, 보리, 콩 등이 출토된 것을 보면 여주에서는 비옥한 땅을 일궈 일찍부터 농경이 시작된 모양이다. 주는 지금도 경기도 내륙에서는 드문 곡창지대로 여주 쌀의 명성이 높다.
흔암리선사유적을 지나면 여강길과 다시 만나 이번 코스에서 최난구간인 소무산(249m)으로 향한다. 여강길은 강변 옆길과 소무산 정상을 넘는 산길로 나뉘는데 이왕 산으로 들어선 길, 싱글 라이딩을 즐길 심산으로 정상 길을 택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계단과 급경사가 많아 고역을 각오해야 한다.

청동기시대 유적인 흔암리선사유적. 움집이 몇 동 복원되어 있다 


소무산 라이딩

정상에는 삼각점 안내문과 허술한 정상 표지판뿐이다. 이제부터는 고생 끝 낙원 시작이다. 능선을 따라 나 있는 싱글은 달리기에 그만이다. 숲은 짙되 나와 바퀴를 건드리지 않고, 돌과 나무뿌리는 성가시게 굴지 않는다. 인적 없는 틈에 허공을 장악한 거미줄만이 걸리적거릴 뿐. 주능선을 따라서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송전탑만이 길게 도열해 있다.

힘들여 소무산을 오른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남한강 최고의 절경 중 하나인 강천섬 뒷산이기 때문이다. 강천섬에 갈 때마다 강 건너편에, 높지는 않으나 북사면이라 더욱 험상궂게 느껴지는 산줄기가 눈에 띄었다. 저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강천섬은 또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막상 소무산에 올라서는 숲이 짙고 싱글 라이딩의 재미에 빠져 강천섬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소무산 싱글 코스는 3km 이상 이어지다가 도리 마을 남쪽으로 내려선다.

끌바와 라이딩을 반복하며 힘겹게 진행해 마침내 소무산(249m) 정상에 올랐다. 능선 위인데다 숲에 가려 조망이 트이는 정상 분위기는 아니다. 이제 도리 마을까지 멋진 싱글 코스가 펼쳐진다   

'군침'이 도는 숲길

두툼한 바퀴에 묵은 낙엽은 부서지고 녹색 이파리는 환호를 보내준다 

 

청미천 합수부

도리에서 잠시 강변으로 나섰다가 다시 중군이봉(224m) 북쪽 기슭을 지나는 숲길이 시작된다. 산 바로 밑으로 용인~이천 방면에서 흘러온 청미천이 질펀한 모래톱과 초미니 삼각주인 도리섬을 만들며 남한강에 합류하고 있다.

소무산처럼 주능선을 넘는 길보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이런 길이 라이딩 하기는 더 불편하다. 수시로 계단이 나오고 난감한 업다운이 교차하며 라이딩을 막는다. 마지막은 장안4리 북쪽 골짜기로 다운힐해서 청미천 둑길로 내려선다. 낮은 산이지만 숲이 짙고 인적이 없어 깊은 맛은 있다.

중군이봉 북쪽을 지나는 숲길. 작은 나무나리가 심심산골 오지 같다  


경기·충북·강원 삼도 경계

마치 개울 같은 청미천을 따라 한적한 둑길을 달린다. 청미천을 건너는 교량은 삼합교다. 청미천이 남한강과 만나는 곳이 삼합리인데 대개 강의 합수점에는 합강, 삼합, 삼랑 등의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여기서 삼합은 남한강, 섬강, 청미천 세 강일  수도 있고, 경기· 충북·강원 세도(道)일 수도 있다.
삼합리 뒷산을 넘는 산길을 우회해 한티고개(닭이머리고개)를 넘으면 충북 충주시 앙성면이다. 다시 남한강대교를 지나면 강원 원주시 부론면이니 순식간에 삼도를 밟았다.
부론은 한강이 내륙 교통의 간선국도 역할을 하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지방의 세곡(稅穀)을 운반하던 창고 겸 포구인 흥원창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어서 꽤나 흥청거렸을 것이다. 부론(富論)이란 지명도 부자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온갖 지역 사투리가 뒤섞여 말이 많다는 뜻이란다. 주막거리의 통시적 DNA는 사람에게도 슬쩍 전염되나 보다.     

중군이봉을 벗어나 청미천 둑길을 달린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한티고개(닭이머리고개)는 경기 여주와 충북 충주의 경계선이다

부론 쪽에서 바라본 섬강 합수부의 자산(246m). 여강길은 절벽 아래로 나 있지만 길이 험해 닷둔리로 우회한다 


닷둔리 해돋이산길
부론에서 북상해 원주 방면에서 흘러온 섬강을 건너면 다시 여주땅이다.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한 섬강교를 건너자말자 왼쪽 아래 소로로 진입하면 신선이 살아 불그스름한 구름이 낀다는 자산(紫山, 246m)과 아찔한 절벽인 예솔암을 지나는 섬강 합수 구간이다. 남한강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평 두물머리에 빗대어 남한강, 섬강, 청미천 세 하천이 모여드니 ‘세물머리’라는 별칭을 붙였다. 

경치는 좋은데 바위와 돌길이라 우회해서 닷둔리고개를 넘어 자산 서편의 닷둔리로 넘어간다. 닷둔리는 옛날, 흥원창을 다니던 배들이 닻을 내렸던 곳이라고 한다. 둔(屯)은 평평한 산기슭을 뜻하며, 오지의 대명사인 홍천 내린천 3둔(살둔, 월둔, 달둔)도 같은 의미다.
산과 강에 에워싸여 격리감이 각별한 닷둔리에서 강천섬까지는 망재산 숲길을 통과해야 한다. 1.2km 정도의 이 숲길은 라이딩 하기가 아까울 정도로 매력 있다. ‘해돋이산길’이라는 이름처럼 남사면이라 주위가 환하고, 강물은 바로 발밑에서 찰랑이며, 숲과 벤치는 예쁜 표정으로 발목을 잡는다.

섬강교에서 바라본 섬강 하류 풍경. 토사가 쌓여 넓은 사빈을 이뤘다 

닷둔리 해돋이산길. 남향이라 햇살이 잘 들고 강물이 가깝다. 강천섬을 내내 바라본다


가장 아름다운 하중도

강천섬으로 향한다. 여의도, 남이섬, 자라섬처럼 한강의 많은 하중도(河中島)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강천섬이다. 강변 모래톱이 떨어져나가 섬이 되었는데 폭 400~500m, 길이 1.8km의 큰 규모다. 언덕 하나 없는 평지는 하얀 흙길이 가르고 전국 어디서도 보기 힘든 너른 잔디밭과 황무지가 섞여 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가로수가 샛노랗게 물들고 바람결에 이파리가 흩날리는 몽환경의 무대가 된다.  하지만 많이 알려져서 휴일이나 색감 좋은 가을에는 인파가 몰린다. 고요와 한가가 장점인 곳에 인파가 몰리는 순간, 살풍경이 급습한다.  

굴암리에서 바라본 강촌섬. 뒤편에 철탑이 줄지은 산이 조금 전에 넘어온 소무산이다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황금빛 건물이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하다  


다시 신륵사에서

국토종주길을 따라가다 강천보 직전에서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을 스쳐간다. 으리으리한 건물과 광대한 공간은 종교적 신념과 열정이 아니면 이뤄내기 어렵다. 상당수의 거대 문화유산은 종교적 산물이다.
잠시 살아보고 싶은 이호리 강변언덕의 별장지대를 지나 금당천을 건너면 신륵사가 멀지 않다. 신륵사고개에서 마지막 숲길을 돌아 신륵사 일주문 앞에 도착하니 매표소와 관리인이 길을 막는다. 일주문 주련의 글귀를 보면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현실의 인간이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요구다.
“짧은 기간의 마음 수양이라도 천년의 보배요, 100년의 탐욕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여주 여강길 상류구간 일주 5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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