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먼 바다 속, 절대비경의 해상정원
덕적군도 서단에 외로이 뜬 굴업도는 특이한 사암질 지형과 독특한 해변, 둔중한 초원언덕으로 ‘한국의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선자령, 영남알프스와 함께 백패킹의 3대 성지로 알려질 만큼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에는 큰 마을이 번성했다가 1923년의 태풍에 모든 것이 쓸려가 버린 폐허의 흔적도 남아 있다. 덕적도를 거쳐 배를 두 번 타야하는 번거로움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놀라운 경관이 보상해준다
글/사진 이윤기 이사
억새능선을 넘어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이국적인 초원길. 소사나무숲이 이불처럼 덮여 있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심장이 강하게 요동친다. 벚꽃이 피는 시기를 지나 강산이 연두빛을 거쳐 초록으로 진하게 물들기 시작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심정이 강렬해진다. 호젓한 마을의 돌담길을 걸어 보고, 들판의 굽이진 오솔길을 따라 산길도 올라가고 싶다. 시야가 탁 트인 전망 좋은 곳에서 초록으로 물든 아름다운 대자연을 굽어보고 싶다.
혼자는 외롭다. 이젠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함께해야 즐겁다. 계절이 바뀌는 신록의 자연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섬여행을 떠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가 복잡하고 좀처럼 심란함을 추스르지 못할 땐 휴식이라는 핑계를 대고 나를 달래기 위해 떠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소사나무 숲길
자연이 잘 보존된 ‘한국의 갈라파고스’
굴업도는 인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작은 섬으로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힌다. 바람과 모래, 소금이 만들어낸 독특한 해안지형으로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며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독특한 코끼리바위가 유명하다. 최고봉은 덕물산(139m)이다. 섬 전체가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으로 전체적으로 여성스럽고 경관이 우수하며, 고운 모래의 아름다운 해변 3곳이 있다.
굴업도를 걷다보면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로 인해 마치 사막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굴업도의 또 하나의 비밀은 바닷길이 열려야 갈 수 있는 토끼섬이다. 토끼섬에서는 바다 염분이 만들어낸 국내 최대 규모의 해식와(海飾窪, 절벽 아래의 침식 굴)를 볼 수 있다.
섬에는 마을이 하나밖에 없다. 선착장에서 조그만 언덕 하나를 넘으면 큰말이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걸어가는데 곳곳에 노란 산국과 연보랏빛 해국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찻길보다 오솔길로 가면 조금 빨리 갈 수 있다.
굴업도(掘業島) 라는 특이한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원래는 물 위에 구부리고 떠 있는 오리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굴압도(屈鴨島)였다가 척박한 땅을 일구는 것이 주업이라는 뜻에서 굴업(掘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억새능선으로 올라서면 뒤편으로 큰말해변이 펼쳐지고, 해변 왼쪽에 대부분이 민박집인 큰말이 살짝 보인다
섬여행은 기다림의 미학
굴업도는 9천만년 전 중생대 말기에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섬이라고 한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마치 고대의 신전이 무너진 폐허 같은 느낌이 들고, 오직 자연의 법칙만 통하는 듯하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욕망들이 굴업도에 내리는 순간 신기루처럼 소멸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좋은 무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섬의 시간표대로 모든 걸 맡겨서 더 행복해지는 섬이다.
섬여행은 여전히 제약이 많다. 시간과 바닷길 모든 것이 맞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굴업도로 가려면 먼저 인천에서 2시간 거리인 덕적도로 가서 환승해야 하는데,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아 풍랑주의보가 내린 것이다. 풍랑(風浪)은 바람과 파도, 즉 바람의 세기와 파도의 높이를 말한다. 다시 말해 해상에서 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파도를 풍랑이라 한다. 바람에 따라 미세한 파도가 나타나다가 풍속이 12m/s 이상이 되면 보통 풍랑이라고 하는 파도가 된다. 국내 여객선 통제기준은 해상에서 풍속 12~14m/s 이상, 파고 2.5m 이상이면 연안의 모든 여객선은 운항이 금지된다. 그래서 섬으로 가는 길의 장벽은 바다 그 자체가 아니라 풍랑과 안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다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서 갇히면 나오기도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섬으로의 여행은 기다림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은 넉넉한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이 촉박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발만 동동 굴리게 될 뿐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섬여행이다.
환승지인 덕적도에서 나래호를 타고 1시간을 더 가서 굴업도에 접안한다. 선착장에 닿는 순간부터 설레는 풍경들. 고운 빛의 아득한 모래밭이 주는 포근함과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온갖 생명을 키워내는 굴업도에 호기심과 기대가 부풀어 올라온다.
해안에는 파도와 소금기가 깎아놓은 자연의 조각품들이 즐비하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도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굴업도는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극찬할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사방이 탁 트인 환상적인 억새 능선길
창공을 배경으로 초원 능선을 달리는 이 기분은 무한자유의 천상을 누비는 것만 같다
개머리언덕의 휴식. 뫼 산(山)자 모양의 선단여 뒤로 덕적군도의 섬들이 펼쳐진다
1일차 : 개머리언덕
민박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큰말에서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길은 2개의 코스가 있다. 마을 위 산 정상부에 있는 통신탑을 경유하거나, 아니면 마을 앞 큰말해변을 거쳐서 가는 길이다. 빨리 쉽게 가는 코스는 큰말해변을 통해야 한다. 큰말해변에서 개머리언덕 끝부분에 있는 낭개머리까지는 40~50분 소요된다.
큰말해변을 지나 가파른 숲길 언덕을 오르면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 억새능선을 보면 굴업도가 왜 만인의 사랑을 받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억새능선 정상부의 풍경은 사뭇 아름답다. 사방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남쪽 바다에 옹기종기 떠 있는 덕적군도의 여러 섬들이 한눈에 조망되는데, 특히 가까이에 보이는 뫼 산(山)자 형태의 선단여가 눈길을 끈다.
오솔길이 아스라이 이어지는 산 정상부에 소사나무 숲 군락지가 보인다. 바로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마지막 힘든 구간이다. 여기서 개머리언덕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두 갈래다. 바로 소사나무 숲으로 직진하거나, 우측의 오솔길을 길게 돌아 오르는 길인데 직진해서 가는 길이 빠르다.
억새 능선을 지나 개머리언덕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가파른 소사나무 숲을 통과해야 한다. 언제나 시작은 숨이 차고 까마득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소사나무 군락은 숲이 울창해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 이 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중부 이남의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추위에 강하고 음지보다 양지를 좋아하며 척박하고 건조한 곳에서 잘 자라는 특성이 있다. 굴업도의 명물인 수많은 사슴과 흑염소는 이 소사나무 숲에서 쉬면서 먹이활동을 하러 초원지대에 출현하기도 한다.
이 광경에 감탄사를 터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영락 없이 물에 잠긴 영남알프스다
굴업도는 백패킹의 3대 성지로 꼽히며 낭개머리는 그 중에서도 정점이다. 첫밤을 캠핑으로 보낸다
초원을 자유롭게 뛰노는 사슴 떼는 목가풍을 더해준다
달빛이 수평선에 걸려 교교히 빛나고 고갯배 불이 아롱거리는 캠프의 밤
사슴과 억새, 백패킹의 천국
소사나무 숲을 통과하면 바로 개머리 언덕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덕적군도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 조망된다. 덕적군도의 최고봉을 자랑하는 선갑도와 그 앞에 가도, 각흘도, 선단여가 선명하고 저 멀리 백아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이 아른거린다.
바다를 향해 사방으로 펼쳐진 개머리언덕에 오르면 바람부터 상쾌하다. 이 언덕에선 망설이고 주저할 것도 없다. 한 눈으로 조망해 보니 모두 발아래 풍경일 뿐이다.
개머리언덕 끝자락이 낭개머리다. 울긋불긋 화려한 백패커들의 텐트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붉은 노을을 넋 놓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끝없이 아늑한 개머리언덕의 능선은 사슴들의 천국이다.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마주치게 되는 사슴 무리는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도 인기척이 나면 고개를 들어 바라볼 뿐이다. 지극히 목가적인 이런 순간은 나와 사슴이 모든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 풍경으로 이어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달리면 달릴수록 함께한 지인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굴업도는 선자령, 영남알프스와 함께 우리나라 백패킹의 3대 성지로 일컬어진다. 앞서 두 곳과도 견줄 수 없는 곳이 굴업도인 것 같다. 바다와 산과 너른 초원이 확 펼쳐져 있고, 덕적군도의 여러 섬들이 조망되는, 그래서 바다의 정원 같은 아늑함이 있어 최고의 성지로 꼽고 싶다.
낭개머리가 바로 보이는 언덕의 중간쯤에 함께한 친구와 텐트를 치고 짙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굴업도의 첫날밤을 지새운다.
굴업도에서 가장 높은 덕물산 정상에서. 뒤편 백사장은 잘록한 형태의 목기미해변이고, 이윤기 이사 손가락 왼쪽 뒤편으로 개머리언덕이 보인다
한때 번창했던 시절을 보여주는 전봇대와 집터 등 마을 흔적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코끼리바위
덕물산에서 바라본 연평산(128m). 두 산은 마치 게눈처럼 비슷한 높이와 형태로 바다 깊숙이 돌출해 있다
2일차 : 목기미해변과 덕물산
다음날 짐을 꾸려 민박집에 맡겨두고 굴업도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한다. 원래 굴업도에서 2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풍랑주의보로 결항이 될 확률이 높아 오늘 일정을 마치고 덕적도로 나가는 배를 타야 한다.
큰말을 나와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목기미해변으로 굴업도의 동섬을 이루는 덕물산과 연평산이 있다.
선착장 인근의 우측 해변을 따라 가다보면 기묘하고 조금은 생뚱맞은 풍경을 접하게 된다. 인간의 목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길게 늘려놓은 듯한 목기미해변이다. 그런데 모래사장에는 오래된 듯한 전봇대가 줄지어 있다. 이 전봇대는 과거 굴업도가 번성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1923년 태풍이 덕적군도에 몰아치면서 주변 해역의 많은 어선들이 이곳에 대피했다고 한다. 목기미해변 앞뒤로 300여척의 배가 있었다고 하는데, 태풍에 의해 일시에 배들이 다 휩쓸려 갔다고 전해진다. 당시 태풍이 몰고 온 해일은 1200여명의 선원과 주민들을 삼키고 마을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으며 어장도 마을도 사라졌다고 한다.
1920년대 8월의 굴업도는 1천척의 어선들이 불을 밝히는 서해의 황금어장이었다고 한다. 선원을 포함한 상인 2천여명이 동섬의 마을로 몰려들어 인천항처럼 번성했다고 한다.
굴업도는 목기미해변을 경계로 동섬과 서섬으로 구분된다. 현재는 서섬이 본섬이지만, 과거에는 동섬이 본섬이었다. 순간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흔적으로 남게 마련이다. 장소가 기억하는 번성했던 그 순간을 천천히 상상해 본다. 목기미해변을 중심으로 동섬에는 주민과 선원들이 생활하는 큰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동섬에 오게 되면 양갈래로 연평산과 덕물산이 보인다. 두 산 아래 모래 언덕에서 과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시멘트 건물과 알 수 없는 기둥, 전봇대를 보면 어떤 고대의 신전이 무너진 폐허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 남겨진 삶의 조각들을 찾아 그 시절 삶들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접안 중인 나래호
1960년대까지도 굴업도를 비롯한 덕적군도는 민어 파시로 유명했다. 아마도 1923년에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갔어도 그 후로 다시 마을을 재건해 번창했으리라 생각된다. 언덕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면 많은 집터와 농사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언덕에 서서 묵묵히 마을 터를 내려다본다. 이미 폐허가 된 침묵 속에서 나의 추측과 상상 속에 번성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서로 정담을 나누고, 막걸리 들이키며 시끌벅적했던 난장판의 모습들이…. 모든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흔적은 유적이 되고, 때론 예술이 된다.
구 마을터에서 야트막한 능선을 넘으면 파도와 바람, 소금끼로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와 화산활동의 자취가 고스란히 기록된 해안을 만나게 된다. 바로 붉은모래해변이다. 백사장 전체가 붉은 색으로 덮여있는데, 철분이 많은 암석이 부서져서 그런 것이다. 해변 안쪽에는 바닷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저수지가 하나 있다.
구 마을터 능선에서 굴업도 최고봉인 덕물산 가는 길은 또 다른 굴업도의 풍경을 보여 준다. 아기자기한 몇 개의 고개를 넘는 능선길에는 곳곳에 농사를 지었던 밭들이 있는데, 아마도 땅콩을 키웠던 흔적으로 생각된다. 덕물산을 오르는 산길도 온통 소사나무 숲으로 등산로 주변은 사슴과 염소의 배설물로 가득해 어딜 밟고 올라야 할지 모를 정도다.
덕물산 정상부가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가팔라지고 뒤돌아볼 때마다 시야가 달라진다. 덕물산 정상을 알리는 돌무더기 이정표에서 주변을 돌아본다. 목기미해변과 연평산 그리고 굴업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개머리언덕 풍경도 이색적이지만 덕물산에서 보는 풍경도 다채롭다. 넓게 펼쳐진 바다에 잘록한 허리의 곡선미를 뽐내는 목기미해변과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은 진정 비경이다.
tip
굴업도 배편
덕적도에서 굴업도 가는 배편은 대부해운의 나래호(차도선)가 유일하다. 주중에는 매일 1회 운항하며, 주말과 성수기엔 매일 2회 운항한다. 5월 초 기준으로는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 감소로 인해 주말에는 1회 운항하고 있다.
나래호는 덕적도를 기점으로 덕적군도의 여러 섬을 돌아 나오는데, 짝수일과 홀수일에 따라 운항노선이 바뀐다. 굴업도의 최단 노선을 이용해 빠르게 들어갔다 나오려면 홀수일에 들어가서 짝수일에 나오면 된다.
굴업도 민박
굴업도 민박집은 7가구뿐이다. 이 숫자는 곧 굴업도의 전체 가옥이라 생각하면 된다. 굴업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캠핑도 하지만 민박을 이용하는 여행객도 많다. 그러므로 캠핑이 아닌 민박을 하려면 미리 배편과 민박을 예약해야 한다. 굴업도 선착장에 내리면 큰말까지는 1.3km의 짧은 거리다. 민박집에서는 트럭으로 손님을 실어 나른다. 섬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료로 트럭 뒤에 짐과 함께 사람을 태워 준다.
● 선박예약
배편예약 : http://island.haewoon.co.kr
고려고속훼리(코리아익스프레스) : www.kefship.com
대부해운(나래호) : www.daebuh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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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먼 바다 속, 절대비경의 해상정원
덕적군도 서단에 외로이 뜬 굴업도는 특이한 사암질 지형과 독특한 해변, 둔중한 초원언덕으로 ‘한국의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선자령, 영남알프스와 함께 백패킹의 3대 성지로 알려질 만큼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에는 큰 마을이 번성했다가 1923년의 태풍에 모든 것이 쓸려가 버린 폐허의 흔적도 남아 있다. 덕적도를 거쳐 배를 두 번 타야하는 번거로움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놀라운 경관이 보상해준다
글/사진 이윤기 이사
억새능선을 넘어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이국적인 초원길. 소사나무숲이 이불처럼 덮여 있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심장이 강하게 요동친다. 벚꽃이 피는 시기를 지나 강산이 연두빛을 거쳐 초록으로 진하게 물들기 시작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심정이 강렬해진다. 호젓한 마을의 돌담길을 걸어 보고, 들판의 굽이진 오솔길을 따라 산길도 올라가고 싶다. 시야가 탁 트인 전망 좋은 곳에서 초록으로 물든 아름다운 대자연을 굽어보고 싶다.
혼자는 외롭다. 이젠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함께해야 즐겁다. 계절이 바뀌는 신록의 자연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섬여행을 떠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가 복잡하고 좀처럼 심란함을 추스르지 못할 땐 휴식이라는 핑계를 대고 나를 달래기 위해 떠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소사나무 숲길
자연이 잘 보존된 ‘한국의 갈라파고스’
굴업도는 인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작은 섬으로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힌다. 바람과 모래, 소금이 만들어낸 독특한 해안지형으로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며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독특한 코끼리바위가 유명하다. 최고봉은 덕물산(139m)이다. 섬 전체가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으로 전체적으로 여성스럽고 경관이 우수하며, 고운 모래의 아름다운 해변 3곳이 있다.
굴업도를 걷다보면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로 인해 마치 사막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굴업도의 또 하나의 비밀은 바닷길이 열려야 갈 수 있는 토끼섬이다. 토끼섬에서는 바다 염분이 만들어낸 국내 최대 규모의 해식와(海飾窪, 절벽 아래의 침식 굴)를 볼 수 있다.
섬에는 마을이 하나밖에 없다. 선착장에서 조그만 언덕 하나를 넘으면 큰말이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걸어가는데 곳곳에 노란 산국과 연보랏빛 해국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찻길보다 오솔길로 가면 조금 빨리 갈 수 있다.
굴업도(掘業島) 라는 특이한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원래는 물 위에 구부리고 떠 있는 오리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굴압도(屈鴨島)였다가 척박한 땅을 일구는 것이 주업이라는 뜻에서 굴업(掘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억새능선으로 올라서면 뒤편으로 큰말해변이 펼쳐지고, 해변 왼쪽에 대부분이 민박집인 큰말이 살짝 보인다
섬여행은 기다림의 미학
굴업도는 9천만년 전 중생대 말기에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섬이라고 한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마치 고대의 신전이 무너진 폐허 같은 느낌이 들고, 오직 자연의 법칙만 통하는 듯하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욕망들이 굴업도에 내리는 순간 신기루처럼 소멸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좋은 무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섬의 시간표대로 모든 걸 맡겨서 더 행복해지는 섬이다.
섬여행은 여전히 제약이 많다. 시간과 바닷길 모든 것이 맞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굴업도로 가려면 먼저 인천에서 2시간 거리인 덕적도로 가서 환승해야 하는데,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아 풍랑주의보가 내린 것이다. 풍랑(風浪)은 바람과 파도, 즉 바람의 세기와 파도의 높이를 말한다. 다시 말해 해상에서 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파도를 풍랑이라 한다. 바람에 따라 미세한 파도가 나타나다가 풍속이 12m/s 이상이 되면 보통 풍랑이라고 하는 파도가 된다. 국내 여객선 통제기준은 해상에서 풍속 12~14m/s 이상, 파고 2.5m 이상이면 연안의 모든 여객선은 운항이 금지된다. 그래서 섬으로 가는 길의 장벽은 바다 그 자체가 아니라 풍랑과 안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다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서 갇히면 나오기도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섬으로의 여행은 기다림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은 넉넉한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이 촉박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발만 동동 굴리게 될 뿐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섬여행이다.
환승지인 덕적도에서 나래호를 타고 1시간을 더 가서 굴업도에 접안한다. 선착장에 닿는 순간부터 설레는 풍경들. 고운 빛의 아득한 모래밭이 주는 포근함과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온갖 생명을 키워내는 굴업도에 호기심과 기대가 부풀어 올라온다.
해안에는 파도와 소금기가 깎아놓은 자연의 조각품들이 즐비하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도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굴업도는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극찬할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사방이 탁 트인 환상적인 억새 능선길
창공을 배경으로 초원 능선을 달리는 이 기분은 무한자유의 천상을 누비는 것만 같다
개머리언덕의 휴식. 뫼 산(山)자 모양의 선단여 뒤로 덕적군도의 섬들이 펼쳐진다
1일차 : 개머리언덕
민박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큰말에서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길은 2개의 코스가 있다. 마을 위 산 정상부에 있는 통신탑을 경유하거나, 아니면 마을 앞 큰말해변을 거쳐서 가는 길이다. 빨리 쉽게 가는 코스는 큰말해변을 통해야 한다. 큰말해변에서 개머리언덕 끝부분에 있는 낭개머리까지는 40~50분 소요된다.
큰말해변을 지나 가파른 숲길 언덕을 오르면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 억새능선을 보면 굴업도가 왜 만인의 사랑을 받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억새능선 정상부의 풍경은 사뭇 아름답다. 사방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남쪽 바다에 옹기종기 떠 있는 덕적군도의 여러 섬들이 한눈에 조망되는데, 특히 가까이에 보이는 뫼 산(山)자 형태의 선단여가 눈길을 끈다.
오솔길이 아스라이 이어지는 산 정상부에 소사나무 숲 군락지가 보인다. 바로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마지막 힘든 구간이다. 여기서 개머리언덕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두 갈래다. 바로 소사나무 숲으로 직진하거나, 우측의 오솔길을 길게 돌아 오르는 길인데 직진해서 가는 길이 빠르다.
억새 능선을 지나 개머리언덕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가파른 소사나무 숲을 통과해야 한다. 언제나 시작은 숨이 차고 까마득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소사나무 군락은 숲이 울창해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 이 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중부 이남의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추위에 강하고 음지보다 양지를 좋아하며 척박하고 건조한 곳에서 잘 자라는 특성이 있다. 굴업도의 명물인 수많은 사슴과 흑염소는 이 소사나무 숲에서 쉬면서 먹이활동을 하러 초원지대에 출현하기도 한다.
이 광경에 감탄사를 터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영락 없이 물에 잠긴 영남알프스다
굴업도는 백패킹의 3대 성지로 꼽히며 낭개머리는 그 중에서도 정점이다. 첫밤을 캠핑으로 보낸다
초원을 자유롭게 뛰노는 사슴 떼는 목가풍을 더해준다
달빛이 수평선에 걸려 교교히 빛나고 고갯배 불이 아롱거리는 캠프의 밤
사슴과 억새, 백패킹의 천국
소사나무 숲을 통과하면 바로 개머리 언덕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덕적군도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 조망된다. 덕적군도의 최고봉을 자랑하는 선갑도와 그 앞에 가도, 각흘도, 선단여가 선명하고 저 멀리 백아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이 아른거린다.
바다를 향해 사방으로 펼쳐진 개머리언덕에 오르면 바람부터 상쾌하다. 이 언덕에선 망설이고 주저할 것도 없다. 한 눈으로 조망해 보니 모두 발아래 풍경일 뿐이다.
개머리언덕 끝자락이 낭개머리다. 울긋불긋 화려한 백패커들의 텐트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붉은 노을을 넋 놓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끝없이 아늑한 개머리언덕의 능선은 사슴들의 천국이다.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마주치게 되는 사슴 무리는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도 인기척이 나면 고개를 들어 바라볼 뿐이다. 지극히 목가적인 이런 순간은 나와 사슴이 모든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 풍경으로 이어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달리면 달릴수록 함께한 지인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굴업도는 선자령, 영남알프스와 함께 우리나라 백패킹의 3대 성지로 일컬어진다. 앞서 두 곳과도 견줄 수 없는 곳이 굴업도인 것 같다. 바다와 산과 너른 초원이 확 펼쳐져 있고, 덕적군도의 여러 섬들이 조망되는, 그래서 바다의 정원 같은 아늑함이 있어 최고의 성지로 꼽고 싶다.
낭개머리가 바로 보이는 언덕의 중간쯤에 함께한 친구와 텐트를 치고 짙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굴업도의 첫날밤을 지새운다.
굴업도에서 가장 높은 덕물산 정상에서. 뒤편 백사장은 잘록한 형태의 목기미해변이고, 이윤기 이사 손가락 왼쪽 뒤편으로 개머리언덕이 보인다
한때 번창했던 시절을 보여주는 전봇대와 집터 등 마을 흔적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코끼리바위
덕물산에서 바라본 연평산(128m). 두 산은 마치 게눈처럼 비슷한 높이와 형태로 바다 깊숙이 돌출해 있다
2일차 : 목기미해변과 덕물산
다음날 짐을 꾸려 민박집에 맡겨두고 굴업도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한다. 원래 굴업도에서 2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풍랑주의보로 결항이 될 확률이 높아 오늘 일정을 마치고 덕적도로 나가는 배를 타야 한다.
큰말을 나와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목기미해변으로 굴업도의 동섬을 이루는 덕물산과 연평산이 있다.
선착장 인근의 우측 해변을 따라 가다보면 기묘하고 조금은 생뚱맞은 풍경을 접하게 된다. 인간의 목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길게 늘려놓은 듯한 목기미해변이다. 그런데 모래사장에는 오래된 듯한 전봇대가 줄지어 있다. 이 전봇대는 과거 굴업도가 번성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1923년 태풍이 덕적군도에 몰아치면서 주변 해역의 많은 어선들이 이곳에 대피했다고 한다. 목기미해변 앞뒤로 300여척의 배가 있었다고 하는데, 태풍에 의해 일시에 배들이 다 휩쓸려 갔다고 전해진다. 당시 태풍이 몰고 온 해일은 1200여명의 선원과 주민들을 삼키고 마을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으며 어장도 마을도 사라졌다고 한다.
1920년대 8월의 굴업도는 1천척의 어선들이 불을 밝히는 서해의 황금어장이었다고 한다. 선원을 포함한 상인 2천여명이 동섬의 마을로 몰려들어 인천항처럼 번성했다고 한다.
굴업도는 목기미해변을 경계로 동섬과 서섬으로 구분된다. 현재는 서섬이 본섬이지만, 과거에는 동섬이 본섬이었다. 순간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흔적으로 남게 마련이다. 장소가 기억하는 번성했던 그 순간을 천천히 상상해 본다. 목기미해변을 중심으로 동섬에는 주민과 선원들이 생활하는 큰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동섬에 오게 되면 양갈래로 연평산과 덕물산이 보인다. 두 산 아래 모래 언덕에서 과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시멘트 건물과 알 수 없는 기둥, 전봇대를 보면 어떤 고대의 신전이 무너진 폐허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 남겨진 삶의 조각들을 찾아 그 시절 삶들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접안 중인 나래호
1960년대까지도 굴업도를 비롯한 덕적군도는 민어 파시로 유명했다. 아마도 1923년에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갔어도 그 후로 다시 마을을 재건해 번창했으리라 생각된다. 언덕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면 많은 집터와 농사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언덕에 서서 묵묵히 마을 터를 내려다본다. 이미 폐허가 된 침묵 속에서 나의 추측과 상상 속에 번성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서로 정담을 나누고, 막걸리 들이키며 시끌벅적했던 난장판의 모습들이…. 모든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흔적은 유적이 되고, 때론 예술이 된다.
구 마을터에서 야트막한 능선을 넘으면 파도와 바람, 소금끼로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와 화산활동의 자취가 고스란히 기록된 해안을 만나게 된다. 바로 붉은모래해변이다. 백사장 전체가 붉은 색으로 덮여있는데, 철분이 많은 암석이 부서져서 그런 것이다. 해변 안쪽에는 바닷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저수지가 하나 있다.
구 마을터 능선에서 굴업도 최고봉인 덕물산 가는 길은 또 다른 굴업도의 풍경을 보여 준다. 아기자기한 몇 개의 고개를 넘는 능선길에는 곳곳에 농사를 지었던 밭들이 있는데, 아마도 땅콩을 키웠던 흔적으로 생각된다. 덕물산을 오르는 산길도 온통 소사나무 숲으로 등산로 주변은 사슴과 염소의 배설물로 가득해 어딜 밟고 올라야 할지 모를 정도다.
덕물산 정상부가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가팔라지고 뒤돌아볼 때마다 시야가 달라진다. 덕물산 정상을 알리는 돌무더기 이정표에서 주변을 돌아본다. 목기미해변과 연평산 그리고 굴업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개머리언덕 풍경도 이색적이지만 덕물산에서 보는 풍경도 다채롭다. 넓게 펼쳐진 바다에 잘록한 허리의 곡선미를 뽐내는 목기미해변과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은 진정 비경이다.
tip
굴업도 배편
덕적도에서 굴업도 가는 배편은 대부해운의 나래호(차도선)가 유일하다. 주중에는 매일 1회 운항하며, 주말과 성수기엔 매일 2회 운항한다. 5월 초 기준으로는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 감소로 인해 주말에는 1회 운항하고 있다.
나래호는 덕적도를 기점으로 덕적군도의 여러 섬을 돌아 나오는데, 짝수일과 홀수일에 따라 운항노선이 바뀐다. 굴업도의 최단 노선을 이용해 빠르게 들어갔다 나오려면 홀수일에 들어가서 짝수일에 나오면 된다.
굴업도 민박
굴업도 민박집은 7가구뿐이다. 이 숫자는 곧 굴업도의 전체 가옥이라 생각하면 된다. 굴업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캠핑도 하지만 민박을 이용하는 여행객도 많다. 그러므로 캠핑이 아닌 민박을 하려면 미리 배편과 민박을 예약해야 한다. 굴업도 선착장에 내리면 큰말까지는 1.3km의 짧은 거리다. 민박집에서는 트럭으로 손님을 실어 나른다. 섬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료로 트럭 뒤에 짐과 함께 사람을 태워 준다.
● 선박예약
배편예약 : http://island.haewoon.co.kr
고려고속훼리(코리아익스프레스) : www.kefship.com
대부해운(나래호) : www.daebuh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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