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김포 삼산(三山) 일주

자생투어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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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 강변길 그리고 모담산-승마산-수안산

승마산 정상의 남서쪽 조망. 오른쪽 물줄기는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다. 정면의 살짝 낮은 봉우리에 하우즈OP가 있다. 왼쪽 멀리 영종도가 있으나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고 그 사이에 뜬 세어도(왼쪽)와 송어도만 보인다 

작별을 고하기 전 마지막 의식이랄까, 미련이랄까, 추억이랄까. 조금은 복잡한 심경으로 김포 일주에 나선다. 그래도 오랫동안 서울 강서구와 김포 일원이 근거지였는데 머지않아 불쑥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수구초심 비슷한 심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 20여 년 간 김포는 가장 급변한 지역이고, 대도시 근교 특유의 어수선한 분위기로 인해 라이딩으로 찾지 않은 지 오래다.

오늘은 신도시와 공단, 전원지대가 뒤섞인 김포 외곽에서 그나마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네 곳의 산을 오르기로 한다. 모두 임도 정도의 길이 나 있어 정상 부근까지 라이딩이 가능하다. 네 산을 도는 사이, 한강신도시와 김포평야, 한강 철책선길도 지나게 된다. 차례로 모담산(73m), 가현산(215m), 승마산(139m), 수안산(147m)이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다고 할지 모르지만, 해안 평야지대여서 육안과 다리로 느끼는 산체는 자못 풍채가 있다.

어느새 한강신도시에 둘러싸여버린 모담산 정상의 팔각정

모담산에서 바라본 일산대교와 일산신도시 

출발지는 한강변에 조성된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홍수 때 물을 담는 저류지를 겸하고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잘 꾸민데다 한강 철책선을 끼고 있는 특별한 입지가 매력 있지만, 지나치게 길고 복잡한 이름이 존재감을 떨어뜨린다. 그냥 김포생태공원이라고 해도 될 것을. 그래도 한강 자전거길과 연계되어 있어 서울에서도 자전거로 접근하기 좋다.

공원 주차장을 출발하면 모담산이 지척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들판 가운데 이름 없는 야산이었는데 이제는 한강신도시 중간에 자리해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워낙 저지대여서 73m 높이가 그대로 산체 크기여서 정상까지는 반짝 힘을 쏟아야 한다. 정상 직전에는 대규모 상수도 탱크가 있으며 그 옆으로 잠시 숲길을 돌아나가면 팔각정이 있는 정상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원경은 거의 보이지 않고 일산대교와 인근 고층 아파트만이 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하산해 다시 남으로 내려서면 한강신도시 중심부에 자리한 한강중앙공원 방면으로 이어진다. 시가지 구간이지만 보도에 자전거길이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한강신도시에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가현산(맞은편 철탑이 선 산) 가는 길이다. 개발이 진행중이긴 하나 공장과 택지가 뒤섞여 어수선한 분위기는 큰 변화가 없다 

시가지 남단에서 작은 산줄기를 넘어서면 갑자기 전원지대가 펼쳐진다. 가현산 가는 길은 세월이 가고 천지가 격변하는 속에서도 별 차이 없이 무질서하다. 곳곳에 공장과 주택이 뒤섞여 있으니 방법이 없다. 작은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한 딴판이다.

그런데 이런! 외곽에 홀로 솟아있는 산이었는데 어느새 시가지에 둘러싸이면서 임도에 ‘산악자전거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전을 위한 조치겠지만 임도도 도로인데 ‘출입을 삼가달라’는 자제 부탁도 아니고 아예 금지를 강제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보행자들 눈치 때문에라도 진입이 어렵겠다. 봄이면 주능선에 진달래가 만발하고 한강과 서해를 함께 볼 수 있는 조망터이지만 아쉽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 ‘김포 사산(四山) 일주‘로 구상했다가 결과적으로 ’삼산(三山)‘이 되고 말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자유롭게 다녔는데 산악자전거 출입금지 표지판이 떡 붙은 가현산 임도 입구. 시가지에 둘러싸여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도리가 없다  

한강신도시 양촌지구에서 학운리로 넘어가는 봉수대로에 별도의 자전거길이 널찍하게 나 있어서 놀랍고 반가웠다 

가현산 초입에서 북쪽으로 하산해 김포 남서단 해안의 승마산으로 향한다. 놀라보게 광대해진 양촌산업단지를 통과하는 것이 다소 번거롭지만 휴일이라 차량 통행이 적고 보도가 넉넉해서 무리가 없다. 양촌산업단지를 벗어나면 승마산 아래까지는 논이 가득한 평야지대다. 승마산 동쪽은 공장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서 도로 상태와 청결, 정리가 엉망이다. 산으로 진입하는 마지막에도 공장이 있어 자칫하면 길이 막힌 것으로 오해하기 쉬울 정도다. 공장에 진입하듯이 왼쪽으로 붙어 가면 임도 초입이 나온다. 이 길은 능선 상에 분포한 헬기장과 포대, 초소를 볼 때 산림관리용 임도가 아니라 군사용으로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 염하를 감제하기에 최적의 위치다. 조선시대에는 화포와 조총의 사정거리가 짧아 해안 언덕에 진지를 구축했다면, 현대에는 한발 떨어진 이곳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산길 입구에는 자동차 출입을 막기 위해 차단기가 아니라 노끈을 얼기설기 쳐놓았다. 나중에 보니 희한하게 생긴 8륜 구동차가 그 틈을 비집고 올라왔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 정도로 나온 사람들이 몇몇 보였지만 시내에서 멀어 찾는 이는 많지 않다.

길은 초반에 다소 가파르고 노면도 거친 대신 금방 고도를 올려 해발 107m의 주능선 삼거리에 올라선다. 저편으로 정상이 가깝다. 낮은 산은 역시 이런 접근성이 좋다.

승마산 가는 길의 약암리 들판길. 공장과 주택이 혼재하고, 도로는 대형차에 깔려 주저앉았다. 대도시 근교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승마산 입구의 무섭고 세련된(?) 차단기. 이 좁은 땅에 온갖 금지가 너무 많다   

주능선 삼거리에 올라섰다. 이제 정상은 지척이다. 최근에 설치한 이정표가 멋지다 

몇 년 전만 해도 임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정상에는 ‘乘馬亭(승마정)’ 현판을 단 번듯한 팔각정과 솟대, 정상석, 전망데크가 조성되어 있다. 낮은 산이지만 발밑으로는 염하가 흐르고 강화도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대벽리·학운리 들판 저편으로 수도권매립지도 아득하다. 주능선 남서단에 우뚝한 초소(하우즈OP)는 높이 120m로 정상보다 조금 낮으며, 350m 거리다. 도중에는 승마산을 상징하듯 말 석상이 갈기를 휘날리고 있다.

원래는 약초가 많이 나서 약산(藥山)이라 했고 대동여지도에도 약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지금도 약암리라는 지명이 전한다. 20세기 들어 승마산으로 정착되었는데 부드러운 산세가 안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을 타기 좋았기 때문일까.

하우즈OP에서는 염하가 바로 발아래로 내려다보여 전망이 다이내믹하다. 전망 안내판에는 인천 청라지구에서 강화도 진강산까지 표시되어 있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세어도와 강화도 길상산이 고작이니 시야가 6~7km에 불과하다.

승마산 정상. 승마정과 정상석, 전망대, 이정표까지 잘 갖춰져 있고, 나무도 베어내 사방 조망이 탁 트인다 

승마정에서 바라본 강화초지대교와 대명항. 해변의 139m 높이는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원래 약산이었는데 언제부터 승마산이 되었는지, 유래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주능선에는 말 조형물까지 서있다

예전의 군초소였던 하우즈OP. 이름의 유래는 미상이고 예쁜 색칠로 전망대로 거듭 났다. 왼쪽 뒤에 정상인 승마정이 보인다 

하우즈OP에서 남쪽 조망. 대벽리 학운리 들판이 광활하다 

올랐던 길 그대로 승마산을 내려와 상마리의 무질서한 공장지대를 통과해 수안산으로 간다. 수안산 역시 147m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삼국시대 수안산성과 봉수대가 남아 있어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아마도 산성을 쌓을 당시에는 수안산에 주력부대를 두면서 김포반도 남북부를 동시에 통제하고 승마산에는 초소를 세워 염하를 감시했을 것이다. 대벽리와 학운리 들판을 간척하기 전에는 바닷물이 산 아래까지 들어왔을 테니 수륙 양면의 요지다.

시골지역인데 용케도 살아남은 수남초등학교에서 산으로 올라붙는다. 전국을 다니다보면 시골지역의 초등학교는 대부분 폐교되고 마을에서는 아예 어린이를 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노부부나 독거노인이 지키던 허름한 집들도 이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폐가로 남아 마을 전체가 목불인견으로 퇴락하고 있다. 젊은층은 처음부터 없었고, 이제는 아이도, 노인도 사라져가는 시골지역의 침체는 인구감소와 더불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그 대안으로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들이 하나둘 터 잡아갈지도 모르겠다.

업힐 도중 산성을 다녀오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나니 괜스레 반갑고 소년 감흥이 되살아난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아이들의 명랑한 재잘거림인가.

수안산 오르는 길. 비포장에 경사까지 제법 있는 숲길이다 

산성 입구의 성벽 절개지. 문터인지는 알 수 없고 석축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성벽 형태는 역력하게 남아 있다 

갈수록 가팔라지기는 하지만 정상까지 임도가 있어 라이딩이 가능하다. 정상에는 ‘守安亭(수안정)’이라는 팔각정이 서 있고, 한쪽에는 봉수대를 형상화한 두 기의 돌탑과 정상비가 마주하고 있다. 정상부는 대체로 평탄하고, 외곽을 두른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지만 흔적은 역력하다. 성벽의 둘레는 685m이고 성내 면적은 약 5000평(약 15000㎡)이다. 안내문에는 면적을 약 1000㎡(약 300평)라고 했는데 터무니없는 오기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폐성되었던 듯하며, 봉수대는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고 남쪽의 검단 백석산을 거쳐 김포시내 장릉산으로 연결되었다. 선조들의 지혜와 피땀 어린 노역이 서려 있는 유산이지만 방치되는 바람에 일대는 공동묘지로 변했다.

대기가 맑으면 한강과 염하를 동시에 볼 수 있을텐데 지독한 중국발 미세먼지는 시야를 가리고 호흡을 불편하게 한다. 밝게 떠들던 아이들도 내려가고, 공동묘지가 된 폐성은 침묵에 잠겨 다시 천년의 숙면에 빠져든다.

수안산성 조감도. 둘레 685m의 소규모 성으로 성내면적은 약 5000평이다. 2단 석축이 특징이다

2단 석축의 흔적은 수목과 잡초에 묻혀 사라져가고 있다  

수안산 정상의 수안정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신도시 양촌지구

수안산 정상 봉수대 터에는 정상석과 돌탑을 세워놓았다 

수안산성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 대곶IC 부근의 율생리다. 톨게이트와 고속도로 본선 아래 굴다리를 통과해 김포평야 한가운데로 나선다. 지금부터는 직선화된 평야의 젖줄 봉성포천 둑길을 따라 북상하면 된다. 도중에 한강신도시 양촌지구를 우회해 김포대로(48번 국도)를 통과하면 강폭이 점점 넓어지고 이윽고 한강과 만난다. 한강변에서는 전류리포구~행주대교 간의 평화누리자전거길을 이용하면 출발지인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낮기는 해도 산을 셋 넘고 시내와 들길을 종횡하다보니 과다한 정보량에 심신에는 피로와 만족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미세먼지로 인해 막힌 조망 때문에 혹여, 다시 와야 하나 작은 고민을 남긴 채.

율생리에서 봉생포천 둑길을 따라 계속 북진하면 한강이 나온다. 산책객이 더러 있으며 작고 예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강폭이 넓어지면 이제 한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강최북단 전류리포구를 안고 있는 봉성산이 물길 저편으로 희미하다저류지를 활용한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옆에는 철책선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tip

모담산에서 가현산까지 한강신도시 구간을 지날 때는 가능하면 보도의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고 신호를 잘 지켜야 한다. 시내와 도로 구간에서는 눈에 잘 띄는 밝은 옷과 헬멧을 착용하고, 주간에도 후미등을 켜고 다닐 것을 권한다. 승마산과 수안산 주변에는 무질서한 공장지대로 평일보다는 휴일에 가야 차량통행이 적어 안전하다. 수안산을 내려와 봉성포천을 타고 한강으로 나가는 도중 양곡1교에서 길이 끊어지는데, 우회전 후 오니산교차로에서 길을 건너 우회하면 된다. 시가지 구간이 많아 식당과 편의점은 다수 분포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김포 삼산(三山) 일주 43.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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