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해병이 지키는 절대 비경
유람선에서 바라본 두무진의 장관. 최고높이 150m의 해안절벽이 3.5km나 이어지는 절대 비경이다
백령도는 비장하다. 지도를 펴놓고 백령도 위치를 보면 옹진반도의 서쪽에 훌쩍 올라가 황해남도 용연군에서 겨우 14km 떨어져 있는 반면, 인천에서는 뱃길로 220km나 된다. 이 입지 하나만으로 백령도는 외롭고 먼 섬에 앞서 비장하고 위험한 전초기지가 된다. 목포~제주, 목포~가거도, 동해~울릉도 항로가 150km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가정 먼 고도(孤島)다. 북측 입장에서 백령도는 허리춤을 겨눈 칼날처럼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백령도 남쪽에는 대청도, 소청도가 줄지어 작은 열도를 이루며 방어선이자 공격거점을 이룬다.
15년만의 백령도행이다. 이번 백령도~대청도 투어에는 본지 편집위원단(차백성, 조용연, 이홍희, 김태진)이 함께 했다. 이홍희 위원은 29대 해병대사령관 출신으로 백령도에서 대대장, 여단장을 거쳐 백령도 지리에 훤해 모든 투어 계획을 짜고 코스도 안내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최전방 군사지대여서 전파 수신이 여의치 않아 GPX 파일은 만들지 못했다. 지도만 참조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4시간 항해 끝에 도착한 백령도 용기포신항. 승선객과 마중객, 자동차가 뒤섞여 한동안 혼잡을 빚었다. 승선한 코리아프라이드 호는 최고 41노트(시속 76km)로 바다를 가르는 쾌속선으로 556명 정원에 1680톤 급이다
용기포신항 입구의 심청과 물범 조형물. 원래의 용기포항은 뒤편 산 너머에 있다
인천항을 출발한 코리아 프라이드호는 국내에서 건조한 최신 쾌속선으로 40노트(시속 약 75km) 내외로 물살을 갈라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 용기포신항에 도착했다. 바다 위에서 시속 70km 정도면 육상에서는 KTX급인데도 인천항에서 4시간이나 걸린다.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최단거리 직선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다 북상하는 ‘ㄴ’ 자 형태로 운항해 거리가 한층 멀어져 더욱 그렇다. 쾌속선은 속도가 빠른 대신 외부 갑판에 나갈 수 없고, 선실 창문은 바닷물이 튀어 선명하지 않아 다소 답답한 것이 단점이다.
평일인데도 객실은 거의 만원이다. 승객의 1/3 정도는 해병으로 휴가 복귀자도 있겠지만 새로 배치 받는 신병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해병대뿐 아니라 전군을 통틀어 가장 최전방이니 작대기 하나 단 이병들의 표정에는 긴장과 불안감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일상을 사는 주민과 떠들썩한 관광객들을 보면서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하고 점점 안도할 것이다.
항구를 벗어나면 길가에 해병 흑룡부대 조형물이 반겨줘 마음 든든하다
백령도 사람들은 흔히 “주민 반 군인 반”이라고 하는데 주민인구는 약 5천500명이다. 15년 전에는 4천500명이라고 했는데 도서지방으로는 극히 드물게 무려 1000명이 늘었다.
배가 닿는 선착장이 완전히 달라져 생소하다. 예전에는 사곶해변 동단에 접안했으나 용기원산 남쪽의 내만을 일부 매립하고 방파제를 축조해 상당히 큰 항구를 조성했다.
배가 닿은 용기포신항은 차량과 사람, 화물이 뒤섞여 한동안 북새통을 빚는다. 350~550명 정원의 쾌속선 세 대가 하루 세 번 왕복하는 데도 배가 붐비는 것을 보면 교통수요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륙 들판에 27년 개항 예정으로 공항이 추진 중으로 뒤늦긴 했지만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백령도 일원이 심청전의 배경이 된 것을 기념해 1999년 세워진 심청각. 내부에는 심청전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백령도는 면적 45.8㎢로 강화도에 이어진 교동도(46.9㎢)와 비슷하며 서울 여의도(2.9㎢)의 16배나 되는, 국내 8위의 상당히 큰 섬이다. 동서 13km, 남북 8km 크기이고 섬 외곽을 일주하면 37km 가량 된다. 백령(白翎)은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흰 깃털’이란 뜻이다.
‘최전방 중의 최전방’이라 용맹한 해병 흑룡부대가 지키고 있고 육군과 공군도 일부 주둔한다. 섬 외곽을 따라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나 최고봉 업죽산이 해발 184m에 불과하고 섬 외곽을 따라 100m 내외의 낮은 산줄기가 흩어져 있으며, 중앙에는 상당히 넓은 평야와 백령호가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백령도는 어부보다 농부다 더 많다고 하며, 섬 중앙의 평야와 백령호는 20세기 초만 해도 바다였으나 여러 번의 간척으로 지금과 같은 육지가 되었다.
백령도 중심마을은 면사무소가 자리한 진촌리다. 진촌리와 하늬해변 사이, 언덕바지에 자리한 펜션에 여장을 풀고 섬 북쪽 답사에 나선다. 심청각을 거쳐 북쪽 해안을 따라 두무진까지 갔다가 내륙의 북포리를 거쳐 복귀하는 약 30km의 여정이다.뱃머리에서 인당수로 뛰어드는 심청의 모습을 형상화한 심청상. 심청각 마당에 있으며 뒤쪽 담장 너머로 북녘 땅이 아스라이 보인다
고봉포구 앞바다의 사자바위. 왼쪽으로 방파제가 연결되어 바다 위에 우뚝하던 위용은 사라졌다
다른 섬처럼 백령도 역시 산이 많아 해안도로는 업다운의 연속이다. 포구 외에는 철책선이 쳐져 있어 해안에 접근할 수 없다
진촌리 북쪽 심청각이 첫 번째 목표다. 해발 100m 산꼭대기에 조성된 심청전 테마공원 겸 전망대다. 심청각이 이곳에 있는 것은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 해역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전남 곡성에 심청전의 원형설화가 전하지만 실화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래도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인당수로 뛰어드는 심청의 모습은 처연하다. 바로 북쪽으로는 서해로 돌출한 용연반도(그 끝이 장산곶)가 흐릿하다. 자세히 보이지 않아도 모든 생명력이 쇠잔해 있는 북녘의 산야는 늦여름 뙤약볕 아래 절망으로 널브러져 있다.
북측을 마주보는 백령도 해안은 삼엄한 방어선으로 구축되어 있다. 작은 포구가 몇 곳 있지만 해안은 철책과 장애물로 빈 틈이 없다. 섬 최고봉인 업죽산 줄기가 동서로 길게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루니, 공격은 어렵고 방어는 쉬운 천혜의 요새다.
길을 벗어나 일부러 들린 고봉포구 사자바위는 방파제가 연결되어 옛모습을 잃었는데 포구는 더 잔잔해졌으니 다행이랄까.
북측 해안도로는 철책선을 따라 한가롭다. 오른쪽 위로 백령기상대가 우뚝하다
두무진항에서 해상 유람선에 오른다. 두무진 해식애를 약 6km 돌아오며 50분 걸린다(요금 2만5천원)
두무진항을 벗어나면 곧 해식애의 대장관이 펼쳐진다. 초행이라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경관이 있었나 놀라게 된다
10억 년 동안 쌓인 퇴적암의 대향연에 말문이 막힐 뿐
천안함위령탑이 언덕 위에 하얗다. 젊은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무엇보다 망각을 경계하고 단죄의 결의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산이 높지 않다 해도 이 땅의 섬여행에서 안락을 기대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의 섬은 사실상 덜 가라앉은 산과 같아서 해안도로는 업다운의 반복이다. 그나마 백령도는 업다운의 고도차가 크지 않지만 해발 100m만 되어도 대단한 고개로 느껴지는 것이, 해수면에서 곧장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두무진 직전의 기상대고개(100m)를 넘어가면 바로 두무진이다.
두무진 해변에는 전국 최고의 해식애 군단이 펼쳐지며 백령도 관광의 백미를 이룬다. 포구에서 유람선을 타면 50분 정도 해상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요금 2만5천원). 해안 절벽은 최고 150m에 달해 익히 유명한 거제 해금강보다 훨씬 높고 웅장하다. 운이 좋으면 백령도 일원에 서식하는 물범을 볼 수 있고 2019년 국내에서 11번째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백령도의 지질학적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두무진(頭武津)은 해상에 옹립한 암벽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억 년 전에 쌓인 모래가 굳어져 사암이 된 후 높은 압력을 받아 변성암인 규암이 되었다. 10억 년 간의 퇴적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장구한 세월의 풍상을 직면한다. 1천살 노거수에도 경악하는 인생 100년은 현실의 항하사(恒河沙) 앞에 잠깐의 감탄에 이어 침묵과 탄식을 반복할 뿐이다.
해식애 남단에 이르면 저 멀리 천안함위령탑이 언덕 위에 하얗다. 젊은이들이 숨져간 앞바다는 더없이 잔잔하건만 우리의 분노는 어디서 들끓고 있을까.
두무진항에서 도보로 해식애 틈 사이로 내려갈 수 있다. 퇴적암의 단층선이 시간 따라 선명하다
해변에서 보면 두무진 이럼처럼 여러 개가 모여든 암괴가 마치 장군들이 모여 작전회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무진항은 예전에 비해 건물이 현대화되었다
최고경사도 17%로 가장 험한 연화리고개.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정면의 해안장벽 뒤 언덕에 천안함위령탑이 있다
두무진에서 연화리로 넘어가는 연화리고개(110m)는 가장 힘든 난관이다. 사격장을 통과하는 연봉대고개(120m)가 더 높고 비포장이기도 하지만 안전을 위해 이번 여정에서는 제외했다. 연화리고개 상부는 고갯마루 양쪽 모두 경사도가 17%에 이르러 장벽 같다.
고개를 넘어가면 연화리 해변에 장대한 해안 방어벽이 새로 생겼는데 적의 상륙에 대비한 시설이다.
이제 방향을 틀어 내륙으로 향하면 작은 마을들을 거쳐 섬 내에서 두 번째 큰 마을인 북포리다. 여단본부가 있어 오가는 사람과 차량이 적지 않고 편의점에는 일과를 마친 영외 거주 군인들로 붐빈다. 다들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에 당당한 근육질 체격이 믿음직하다. 진촌리에 들어서니 훌쩍 짧아진 해가 넘어가고 황혼이 어린다. 일행을 나눠 한 팀은 펜션에서 바비큐를 준비하고, 한 팀은 마트를 찾아 장을 본다. 진촌리에는 온갖 가게와 식당이 다 있어 밤거리가 자못 번화하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인천연안여객터미널 발 백령도 행 배편(소청도, 대청도 경유 총 4시간 소요)
* 하모니플라워호 : 07:50발 11:50도착
* 코리아프라이드호 : 08:30발 12:30도착
* 코리아프린세스호 : 12:30발 16:30도착
백령도발 인천행 배편
* 하모니플라워호 : 12:50발 16:50도착
* 코리아프라이드호 : 13:30발 17:30도착
* 코리아프린세스호 : 07:00발 11:00도착
※ 요금(편도) : 대인 71,700원, 경로 57,700원
※ 문의 : 인천항여객터미널 032-880-3400
인천항운항관리센터 032-880-4060
백령도여객선터미널 032-836-8005
백령도 투어 지도(북부 코스 29km, 남부 코스 37km)
* gpx 파일은 없습니다
무적 해병이 지키는 절대 비경
유람선에서 바라본 두무진의 장관. 최고높이 150m의 해안절벽이 3.5km나 이어지는 절대 비경이다
백령도는 비장하다. 지도를 펴놓고 백령도 위치를 보면 옹진반도의 서쪽에 훌쩍 올라가 황해남도 용연군에서 겨우 14km 떨어져 있는 반면, 인천에서는 뱃길로 220km나 된다. 이 입지 하나만으로 백령도는 외롭고 먼 섬에 앞서 비장하고 위험한 전초기지가 된다. 목포~제주, 목포~가거도, 동해~울릉도 항로가 150km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가정 먼 고도(孤島)다. 북측 입장에서 백령도는 허리춤을 겨눈 칼날처럼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백령도 남쪽에는 대청도, 소청도가 줄지어 작은 열도를 이루며 방어선이자 공격거점을 이룬다.
15년만의 백령도행이다. 이번 백령도~대청도 투어에는 본지 편집위원단(차백성, 조용연, 이홍희, 김태진)이 함께 했다. 이홍희 위원은 29대 해병대사령관 출신으로 백령도에서 대대장, 여단장을 거쳐 백령도 지리에 훤해 모든 투어 계획을 짜고 코스도 안내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최전방 군사지대여서 전파 수신이 여의치 않아 GPX 파일은 만들지 못했다. 지도만 참조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4시간 항해 끝에 도착한 백령도 용기포신항. 승선객과 마중객, 자동차가 뒤섞여 한동안 혼잡을 빚었다. 승선한 코리아프라이드 호는 최고 41노트(시속 76km)로 바다를 가르는 쾌속선으로 556명 정원에 1680톤 급이다
용기포신항 입구의 심청과 물범 조형물. 원래의 용기포항은 뒤편 산 너머에 있다
인천항을 출발한 코리아 프라이드호는 국내에서 건조한 최신 쾌속선으로 40노트(시속 약 75km) 내외로 물살을 갈라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 용기포신항에 도착했다. 바다 위에서 시속 70km 정도면 육상에서는 KTX급인데도 인천항에서 4시간이나 걸린다.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최단거리 직선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다 북상하는 ‘ㄴ’ 자 형태로 운항해 거리가 한층 멀어져 더욱 그렇다. 쾌속선은 속도가 빠른 대신 외부 갑판에 나갈 수 없고, 선실 창문은 바닷물이 튀어 선명하지 않아 다소 답답한 것이 단점이다.
평일인데도 객실은 거의 만원이다. 승객의 1/3 정도는 해병으로 휴가 복귀자도 있겠지만 새로 배치 받는 신병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해병대뿐 아니라 전군을 통틀어 가장 최전방이니 작대기 하나 단 이병들의 표정에는 긴장과 불안감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일상을 사는 주민과 떠들썩한 관광객들을 보면서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하고 점점 안도할 것이다.
항구를 벗어나면 길가에 해병 흑룡부대 조형물이 반겨줘 마음 든든하다
백령도 사람들은 흔히 “주민 반 군인 반”이라고 하는데 주민인구는 약 5천500명이다. 15년 전에는 4천500명이라고 했는데 도서지방으로는 극히 드물게 무려 1000명이 늘었다.
배가 닿는 선착장이 완전히 달라져 생소하다. 예전에는 사곶해변 동단에 접안했으나 용기원산 남쪽의 내만을 일부 매립하고 방파제를 축조해 상당히 큰 항구를 조성했다.
배가 닿은 용기포신항은 차량과 사람, 화물이 뒤섞여 한동안 북새통을 빚는다. 350~550명 정원의 쾌속선 세 대가 하루 세 번 왕복하는 데도 배가 붐비는 것을 보면 교통수요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륙 들판에 27년 개항 예정으로 공항이 추진 중으로 뒤늦긴 했지만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백령도 일원이 심청전의 배경이 된 것을 기념해 1999년 세워진 심청각. 내부에는 심청전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백령도는 면적 45.8㎢로 강화도에 이어진 교동도(46.9㎢)와 비슷하며 서울 여의도(2.9㎢)의 16배나 되는, 국내 8위의 상당히 큰 섬이다. 동서 13km, 남북 8km 크기이고 섬 외곽을 일주하면 37km 가량 된다. 백령(白翎)은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흰 깃털’이란 뜻이다.
‘최전방 중의 최전방’이라 용맹한 해병 흑룡부대가 지키고 있고 육군과 공군도 일부 주둔한다. 섬 외곽을 따라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나 최고봉 업죽산이 해발 184m에 불과하고 섬 외곽을 따라 100m 내외의 낮은 산줄기가 흩어져 있으며, 중앙에는 상당히 넓은 평야와 백령호가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백령도는 어부보다 농부다 더 많다고 하며, 섬 중앙의 평야와 백령호는 20세기 초만 해도 바다였으나 여러 번의 간척으로 지금과 같은 육지가 되었다.
백령도 중심마을은 면사무소가 자리한 진촌리다. 진촌리와 하늬해변 사이, 언덕바지에 자리한 펜션에 여장을 풀고 섬 북쪽 답사에 나선다. 심청각을 거쳐 북쪽 해안을 따라 두무진까지 갔다가 내륙의 북포리를 거쳐 복귀하는 약 30km의 여정이다.뱃머리에서 인당수로 뛰어드는 심청의 모습을 형상화한 심청상. 심청각 마당에 있으며 뒤쪽 담장 너머로 북녘 땅이 아스라이 보인다
고봉포구 앞바다의 사자바위. 왼쪽으로 방파제가 연결되어 바다 위에 우뚝하던 위용은 사라졌다
다른 섬처럼 백령도 역시 산이 많아 해안도로는 업다운의 연속이다. 포구 외에는 철책선이 쳐져 있어 해안에 접근할 수 없다
진촌리 북쪽 심청각이 첫 번째 목표다. 해발 100m 산꼭대기에 조성된 심청전 테마공원 겸 전망대다. 심청각이 이곳에 있는 것은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 해역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전남 곡성에 심청전의 원형설화가 전하지만 실화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래도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인당수로 뛰어드는 심청의 모습은 처연하다. 바로 북쪽으로는 서해로 돌출한 용연반도(그 끝이 장산곶)가 흐릿하다. 자세히 보이지 않아도 모든 생명력이 쇠잔해 있는 북녘의 산야는 늦여름 뙤약볕 아래 절망으로 널브러져 있다.
북측을 마주보는 백령도 해안은 삼엄한 방어선으로 구축되어 있다. 작은 포구가 몇 곳 있지만 해안은 철책과 장애물로 빈 틈이 없다. 섬 최고봉인 업죽산 줄기가 동서로 길게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루니, 공격은 어렵고 방어는 쉬운 천혜의 요새다.
길을 벗어나 일부러 들린 고봉포구 사자바위는 방파제가 연결되어 옛모습을 잃었는데 포구는 더 잔잔해졌으니 다행이랄까.
북측 해안도로는 철책선을 따라 한가롭다. 오른쪽 위로 백령기상대가 우뚝하다
두무진항에서 해상 유람선에 오른다. 두무진 해식애를 약 6km 돌아오며 50분 걸린다(요금 2만5천원)
두무진항을 벗어나면 곧 해식애의 대장관이 펼쳐진다. 초행이라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경관이 있었나 놀라게 된다
10억 년 동안 쌓인 퇴적암의 대향연에 말문이 막힐 뿐
천안함위령탑이 언덕 위에 하얗다. 젊은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무엇보다 망각을 경계하고 단죄의 결의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산이 높지 않다 해도 이 땅의 섬여행에서 안락을 기대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의 섬은 사실상 덜 가라앉은 산과 같아서 해안도로는 업다운의 반복이다. 그나마 백령도는 업다운의 고도차가 크지 않지만 해발 100m만 되어도 대단한 고개로 느껴지는 것이, 해수면에서 곧장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두무진 직전의 기상대고개(100m)를 넘어가면 바로 두무진이다.
두무진 해변에는 전국 최고의 해식애 군단이 펼쳐지며 백령도 관광의 백미를 이룬다. 포구에서 유람선을 타면 50분 정도 해상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요금 2만5천원). 해안 절벽은 최고 150m에 달해 익히 유명한 거제 해금강보다 훨씬 높고 웅장하다. 운이 좋으면 백령도 일원에 서식하는 물범을 볼 수 있고 2019년 국내에서 11번째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백령도의 지질학적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두무진(頭武津)은 해상에 옹립한 암벽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억 년 전에 쌓인 모래가 굳어져 사암이 된 후 높은 압력을 받아 변성암인 규암이 되었다. 10억 년 간의 퇴적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장구한 세월의 풍상을 직면한다. 1천살 노거수에도 경악하는 인생 100년은 현실의 항하사(恒河沙) 앞에 잠깐의 감탄에 이어 침묵과 탄식을 반복할 뿐이다.
해식애 남단에 이르면 저 멀리 천안함위령탑이 언덕 위에 하얗다. 젊은이들이 숨져간 앞바다는 더없이 잔잔하건만 우리의 분노는 어디서 들끓고 있을까.
두무진항에서 도보로 해식애 틈 사이로 내려갈 수 있다. 퇴적암의 단층선이 시간 따라 선명하다
해변에서 보면 두무진 이럼처럼 여러 개가 모여든 암괴가 마치 장군들이 모여 작전회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무진항은 예전에 비해 건물이 현대화되었다
최고경사도 17%로 가장 험한 연화리고개.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정면의 해안장벽 뒤 언덕에 천안함위령탑이 있다
두무진에서 연화리로 넘어가는 연화리고개(110m)는 가장 힘든 난관이다. 사격장을 통과하는 연봉대고개(120m)가 더 높고 비포장이기도 하지만 안전을 위해 이번 여정에서는 제외했다. 연화리고개 상부는 고갯마루 양쪽 모두 경사도가 17%에 이르러 장벽 같다.
고개를 넘어가면 연화리 해변에 장대한 해안 방어벽이 새로 생겼는데 적의 상륙에 대비한 시설이다.
이제 방향을 틀어 내륙으로 향하면 작은 마을들을 거쳐 섬 내에서 두 번째 큰 마을인 북포리다. 여단본부가 있어 오가는 사람과 차량이 적지 않고 편의점에는 일과를 마친 영외 거주 군인들로 붐빈다. 다들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에 당당한 근육질 체격이 믿음직하다. 진촌리에 들어서니 훌쩍 짧아진 해가 넘어가고 황혼이 어린다. 일행을 나눠 한 팀은 펜션에서 바비큐를 준비하고, 한 팀은 마트를 찾아 장을 본다. 진촌리에는 온갖 가게와 식당이 다 있어 밤거리가 자못 번화하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인천연안여객터미널 발 백령도 행 배편(소청도, 대청도 경유 총 4시간 소요)
* 하모니플라워호 : 07:50발 11:50도착
* 코리아프라이드호 : 08:30발 12:30도착
* 코리아프린세스호 : 12:30발 16:30도착
백령도발 인천행 배편
* 하모니플라워호 : 12:50발 16:50도착
* 코리아프라이드호 : 13:30발 17:30도착
* 코리아프린세스호 : 07:00발 11:00도착
※ 요금(편도) : 대인 71,700원, 경로 57,700원
※ 문의 : 인천항여객터미널 032-880-3400
인천항운항관리센터 032-880-4060
백령도여객선터미널 032-836-8005
백령도 투어 지도(북부 코스 29km, 남부 코스 37km)
* gpx 파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