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크게 한바퀴 25km
지척에서 보는 이착륙과 전원풍경
김포공항 활주로 서단에서 바라본 착륙장면. 지척에서 바라보는 비행기의 위용와 굉음, 장대한 활주로는 대단한 장관이다
김포공항 활주로를 크게 일주하는 길은 서울 지척의 전원풍경 산책이다. 김포평야의 한 모퉁이, 들판은 너르고 마치 해자처럼 활주로를 보호하는 듯한 수로에는 버들가지에 물이 오른다. 빌딩과 인파와 자동차에 지쳤지만 멀리 갈 수 없다면, 대신 ‘아주 멀리 떠나는’ 비행기라도 바라보며 도심 지척의 들판을 유유자적한다 (2021년 4월)
방화대교 남단의 쉼터. 햇빛을 피할 수 있고 평상까지 있어 쉼터 겸 집결지로 좋다. 바로 옆에 화장실과 편의점도 있다
활주로가 왜 저렇게 길어야 하는지는 비행기를 바로 옆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저 거대한 동체가 하늘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마치 멀리뛰기처럼 한동안의 도움닫기가 필요하다. 김포공항에는 2개의 활주로가 있고 그 중 긴 활주로는 길이가 3.8km에 달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가장 큰 보잉 747이 안전하게 뜨고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활주로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더 큰 면적이 필요하다. 실제로 울타리가 쳐진 김포공항 활주로의 총연장은 4.6km이고 폭은 약 800m이다.
활주로 외에 부대시설까지 포함한 공항의 총면적은 여의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광활하다. 공항은 이처럼 광대한 면적이 필요해서 시외곽에 건설되는데 한때 서울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근교이던 김포공항은 이제 시가지와 연결되어 서울의 서쪽 끝이 되었다. 이름이 김포공항이라 김포시에 속한 공항으로 아는 사람이 아직 있지만 원래 김포군 양서면에 속했다가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되었으니 오해할 만도 한다. 부산 김해공항도 비슷한 경우다.
시가지와 연결되었지만 활주로 외곽을 도는 길은 여전히 전원풍경과 접하는 이색지대다. 도시에 식상하고 지친 몸을 그나마 가깝고 쉽게 전원으로 위안할 수 있는 곳이다.
활주로와 수로를 사이에 두고 나 있는 비포장 둑길. 활주로 담장 저편으로 레이더 시설이 오똑한 개화산이 보인다
한강자전거도로에서 진입
김포공항을 크게 외곽으로 도는 길은 약 20km이지만 여기서는 한강자전거도로를 기점으로 소개하기 위해 25km 코스를 잡았다. 출발점은 그늘과 쉼터시설이 잘 되어 있는 방화대교 남단이다.
방화대교 남단에서 아라뱃길 쪽으로 2.6km 가면 작은 나무교량을 넘기 직전 왼쪽으로 시멘트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김포한강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복잡한 인터체인지 인근의 저습지를 지나면 개화산 아래 상사마을로 나오게 된다. 상사마을에서 김포공항 방면으로 나와 9호선 전철 차량기지를 우회하면 곧게 뻗은 동부간선수로 둑길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활주로 외곽길이 시작된다.
동부간선수로는 아라뱃길로 이어지는 굴포천과 인접하고 있지만 물길을 섞지 않으며, ‘00천’ 같은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은 인공수로이기 때문이다. 동부간선수로는 마치 해자처럼 김포공항을 에워싸고 있는데 홍수 때 활주로가 잠기는 것을 막는 방수로 역할도 한다.
활주로가 보인다
수로를 따라 내려가면 이윽고 활주로의 서단으로 접어든다. 김포공항 활주로는 동서 방향이 아니라 서북-동남 방향으로 살짝 틀어져 있는데 편의상 서단이라고 하자.
수로 옆 둑길에서 바로 활주로가 훤히 드러나고 십리에 달하는 완벽한 직선이 2열 종대를 이룬다.
비행기는 이착륙 할 때 양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맞바람을 안고 진행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편서풍지대여서 대체로 서풍이 부는데 이 날 따라 동풍이 불어 비행기는 우리 머리 위로 착륙했다. 때마침 아시아나기 한 대가 김포 하늘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다.
활주로 끝단이니 머리 위를 지나는 비행기의 최저고도는 겨우 100m 정도일까. 거대한 기체가 굉음을 내며 다가선다.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타봤어도 이렇게 보는 것은 드물고 특별한 일이다. 저 큰 쇳덩이가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비행기는 활주로 저편에서 착지하는 순간 잠깐 바퀴 마찰음과 먼지를 일으키고 기나긴 직선을 활주하며 속도를 줄여간다.
대단한 장관이라 한 대 더 보고 싶지만 다음 비행기가 오지 않는다. 한때는 몇 분에 한 대꼴로 다니던 비행기가 펜데믹의 여파로 국제선이 올스톱하면서 간극이 크게 벌어졌고 평일에는 더 심하다. 한동안 기다리다 포기하고 발길을 옮긴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비행기들이 활주로 저편 계류장에 가득 줄지어 있다.
1km 정도의 둑길 옆에는 논이 펼쳐져 전원 느낌이 물씬하다. 서울시내에서 지척의 거리여서 특별함이 더한다
대장들판
활주로 남안으로 접어들면 1km 남짓한 흙길이 나온다. 요즘은 일부러 찾으려 해도 보기 힘든 흙길이라 오히려 반갑기도 하지만 엉덩이는 불편을 각오해야 한다. 옆으로는 경지정리가 잘 된 평야가 펼쳐진다. 부천시 대장동에 속해 ‘대장들’로 불리는 곳이다. 그린벨트에 묶여 집들은 남루하고 길은 엉망이다.
한때 황량하게 방치되었던 공항 외곽의 부지는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활주로 지척에 공이 비상할 수 있는 골프장이 있는 것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장난감 드론조차 날리지 못하는 공항인근이지만 그나마 수익성이 좋은 것이 골프장이니 이해가 가기는 한다만.
들판 한 가운데 작은 구릉지에 남은 대장마을은 70년대 농촌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00가구가 넘는 상당히 큰 마을이고 여전히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는데 서울 지척에 이런 농촌 마을이 남은 것은 기적 같다. 이처럼 클래식한 마을이 남은 것은, 알고 보면 주민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린벨트의 개발제한정책 때문이다. 집들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데 고급차가 많이 서 있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대장마을 옆 12-1번 버스 종점 옆에 있는 ‘종점슈퍼’. 라면을 맛나게 끓여낸다
종점슈퍼
대장마을 동쪽 수로 옆에는 12-1번 부천 시내버스의 종점이다. 버스 종점은 마치 길이 끝나는 막다른 곳 같은 정서적 단절지대다. 숱한 만남과 이별도 종점에서 이뤄졌을 테니 감정의 울림이 그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후줄근한 버스 종점 옆에는 어김 없이 종점슈퍼가 있다. 간판명도 아예 ‘종점슈퍼’다. 이제는 보기 힘든 구멍가게가 여기 아직도 살아 있다. 종점슈퍼는 수로를 세느강 삼아 실내와 야외 테라스 공간까지 갖추었지만 지나는 차량들에 먼지가 뽀얗고 슬레이트집은 낡아서 누추하다. 토종닭이나 아구찜도 있지만 이 집의 독보적인 메뉴는 단연 라면이다. 라면이야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누가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맛과 질이 천양지차인 것이 곧 라면이다. 널따란 전골에 끓여내는 이 집 라면은 입맛이 기대하는 전통의 라면 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끓이는 동안 면발을 계속 공기 중에 노출시켜 다 먹을 때까지 쫄깃함을 유지하는 것도 신기하다. 일행은 면을 다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서 완전히 해치운다. 맛이 있고 분위기가 좋으니 품격은 제쳐놓고 후루룩 목 넘기기가 바쁘다.
종점슈퍼의 라면. 누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것이 라면이다. 넓은 전골냄비에 끓여내 면발이 끝까지 쫄깃하다
사라질 들판
종점슈퍼에서 부천시내의 북단인 오정동으로 향한다. 아파트와 도시가 바로 저쪽까지 가득 차 있는데 언제까지 한가로운(?) 농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땅이 없어 외곽으로 확장 중인 수도권에서 대장들판은 눈독의 대상이다. 결국 시류를 버티지 못하고 대장들판의 남쪽은 택지로 개발될 모양이다. 김포공항도 시가지에 포위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정대로에서 활주로 동단을 거쳐 마곡신도시를 관통하면 다시 한강자전거거로도로 나서게 된다. 도중에 서울식물원을 지나치지만 자전거 출입금지여서 우회해야 한다. 이처럼 거대한 공원에 자전거도로가 없고 자전거가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것은 시대착오적 처사다. 때문에 자전거와 킥보드로 뛰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고 기껏해야 주변에 있는 기업체와 아파트단지 사람들의 산책로 정도로 활용된다.
광활한 활주로와 비행기 이착륙 장면을 지척에서 보고, 드넓은 들판과 70년대 전원풍경에 종점슈퍼의 라면까지 맛보면서 그새 ‘촌놈’이 되었나. 세련되고 젊은이가 넘치는 최신의 마곡지구 신도시에서 한동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런 어색함마저 참 반갑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동쪽에서 바라본 활주로. 계류장에 비행기들이 가득 멈춰 있다. 풍향에 따라 근접 이착륙 장면을 볼 수 있다(비행기는 맞바람을 안고 이착륙한다)
tip
활주로 외곽길은 흙길도 있고 노면이 불규칙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많으므로 MTB를 추천한다. 코스는 김포공항을 외곽으로 크게 돈다고 생각하면 되고 거리는 25km이다. 마곡신도시에는 인도에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어 시가지 통과도 부담 없다. 방화동이나 가양동에서 한강 자전거도로로 이어지는 토끼굴이 있다. 식사는 종점슈퍼(부천시 대장로118번길7, 032-671-7970), 팽오리농장(종점슈퍼 바로옆, 032-678-5196) 추천.
* 아래 gpx 파일은 신방화역 출발 기준임
김포공항 크게 한바퀴 25km
지척에서 보는 이착륙과 전원풍경
김포공항 활주로 서단에서 바라본 착륙장면. 지척에서 바라보는 비행기의 위용와 굉음, 장대한 활주로는 대단한 장관이다
김포공항 활주로를 크게 일주하는 길은 서울 지척의 전원풍경 산책이다. 김포평야의 한 모퉁이, 들판은 너르고 마치 해자처럼 활주로를 보호하는 듯한 수로에는 버들가지에 물이 오른다. 빌딩과 인파와 자동차에 지쳤지만 멀리 갈 수 없다면, 대신 ‘아주 멀리 떠나는’ 비행기라도 바라보며 도심 지척의 들판을 유유자적한다 (2021년 4월)
방화대교 남단의 쉼터. 햇빛을 피할 수 있고 평상까지 있어 쉼터 겸 집결지로 좋다. 바로 옆에 화장실과 편의점도 있다
활주로가 왜 저렇게 길어야 하는지는 비행기를 바로 옆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저 거대한 동체가 하늘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마치 멀리뛰기처럼 한동안의 도움닫기가 필요하다. 김포공항에는 2개의 활주로가 있고 그 중 긴 활주로는 길이가 3.8km에 달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가장 큰 보잉 747이 안전하게 뜨고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활주로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더 큰 면적이 필요하다. 실제로 울타리가 쳐진 김포공항 활주로의 총연장은 4.6km이고 폭은 약 800m이다.
활주로 외에 부대시설까지 포함한 공항의 총면적은 여의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광활하다. 공항은 이처럼 광대한 면적이 필요해서 시외곽에 건설되는데 한때 서울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근교이던 김포공항은 이제 시가지와 연결되어 서울의 서쪽 끝이 되었다. 이름이 김포공항이라 김포시에 속한 공항으로 아는 사람이 아직 있지만 원래 김포군 양서면에 속했다가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되었으니 오해할 만도 한다. 부산 김해공항도 비슷한 경우다.
시가지와 연결되었지만 활주로 외곽을 도는 길은 여전히 전원풍경과 접하는 이색지대다. 도시에 식상하고 지친 몸을 그나마 가깝고 쉽게 전원으로 위안할 수 있는 곳이다.
활주로와 수로를 사이에 두고 나 있는 비포장 둑길. 활주로 담장 저편으로 레이더 시설이 오똑한 개화산이 보인다
한강자전거도로에서 진입
김포공항을 크게 외곽으로 도는 길은 약 20km이지만 여기서는 한강자전거도로를 기점으로 소개하기 위해 25km 코스를 잡았다. 출발점은 그늘과 쉼터시설이 잘 되어 있는 방화대교 남단이다.
방화대교 남단에서 아라뱃길 쪽으로 2.6km 가면 작은 나무교량을 넘기 직전 왼쪽으로 시멘트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김포한강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복잡한 인터체인지 인근의 저습지를 지나면 개화산 아래 상사마을로 나오게 된다. 상사마을에서 김포공항 방면으로 나와 9호선 전철 차량기지를 우회하면 곧게 뻗은 동부간선수로 둑길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활주로 외곽길이 시작된다.
동부간선수로는 아라뱃길로 이어지는 굴포천과 인접하고 있지만 물길을 섞지 않으며, ‘00천’ 같은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은 인공수로이기 때문이다. 동부간선수로는 마치 해자처럼 김포공항을 에워싸고 있는데 홍수 때 활주로가 잠기는 것을 막는 방수로 역할도 한다.
활주로가 보인다
수로를 따라 내려가면 이윽고 활주로의 서단으로 접어든다. 김포공항 활주로는 동서 방향이 아니라 서북-동남 방향으로 살짝 틀어져 있는데 편의상 서단이라고 하자.
수로 옆 둑길에서 바로 활주로가 훤히 드러나고 십리에 달하는 완벽한 직선이 2열 종대를 이룬다.
비행기는 이착륙 할 때 양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맞바람을 안고 진행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편서풍지대여서 대체로 서풍이 부는데 이 날 따라 동풍이 불어 비행기는 우리 머리 위로 착륙했다. 때마침 아시아나기 한 대가 김포 하늘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다.
활주로 끝단이니 머리 위를 지나는 비행기의 최저고도는 겨우 100m 정도일까. 거대한 기체가 굉음을 내며 다가선다.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타봤어도 이렇게 보는 것은 드물고 특별한 일이다. 저 큰 쇳덩이가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비행기는 활주로 저편에서 착지하는 순간 잠깐 바퀴 마찰음과 먼지를 일으키고 기나긴 직선을 활주하며 속도를 줄여간다.
대단한 장관이라 한 대 더 보고 싶지만 다음 비행기가 오지 않는다. 한때는 몇 분에 한 대꼴로 다니던 비행기가 펜데믹의 여파로 국제선이 올스톱하면서 간극이 크게 벌어졌고 평일에는 더 심하다. 한동안 기다리다 포기하고 발길을 옮긴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비행기들이 활주로 저편 계류장에 가득 줄지어 있다.
1km 정도의 둑길 옆에는 논이 펼쳐져 전원 느낌이 물씬하다. 서울시내에서 지척의 거리여서 특별함이 더한다
대장들판
활주로 남안으로 접어들면 1km 남짓한 흙길이 나온다. 요즘은 일부러 찾으려 해도 보기 힘든 흙길이라 오히려 반갑기도 하지만 엉덩이는 불편을 각오해야 한다. 옆으로는 경지정리가 잘 된 평야가 펼쳐진다. 부천시 대장동에 속해 ‘대장들’로 불리는 곳이다. 그린벨트에 묶여 집들은 남루하고 길은 엉망이다.
한때 황량하게 방치되었던 공항 외곽의 부지는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활주로 지척에 공이 비상할 수 있는 골프장이 있는 것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장난감 드론조차 날리지 못하는 공항인근이지만 그나마 수익성이 좋은 것이 골프장이니 이해가 가기는 한다만.
들판 한 가운데 작은 구릉지에 남은 대장마을은 70년대 농촌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00가구가 넘는 상당히 큰 마을이고 여전히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는데 서울 지척에 이런 농촌 마을이 남은 것은 기적 같다. 이처럼 클래식한 마을이 남은 것은, 알고 보면 주민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린벨트의 개발제한정책 때문이다. 집들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데 고급차가 많이 서 있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대장마을 옆 12-1번 버스 종점 옆에 있는 ‘종점슈퍼’. 라면을 맛나게 끓여낸다
종점슈퍼
대장마을 동쪽 수로 옆에는 12-1번 부천 시내버스의 종점이다. 버스 종점은 마치 길이 끝나는 막다른 곳 같은 정서적 단절지대다. 숱한 만남과 이별도 종점에서 이뤄졌을 테니 감정의 울림이 그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후줄근한 버스 종점 옆에는 어김 없이 종점슈퍼가 있다. 간판명도 아예 ‘종점슈퍼’다. 이제는 보기 힘든 구멍가게가 여기 아직도 살아 있다. 종점슈퍼는 수로를 세느강 삼아 실내와 야외 테라스 공간까지 갖추었지만 지나는 차량들에 먼지가 뽀얗고 슬레이트집은 낡아서 누추하다. 토종닭이나 아구찜도 있지만 이 집의 독보적인 메뉴는 단연 라면이다. 라면이야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누가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맛과 질이 천양지차인 것이 곧 라면이다. 널따란 전골에 끓여내는 이 집 라면은 입맛이 기대하는 전통의 라면 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끓이는 동안 면발을 계속 공기 중에 노출시켜 다 먹을 때까지 쫄깃함을 유지하는 것도 신기하다. 일행은 면을 다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서 완전히 해치운다. 맛이 있고 분위기가 좋으니 품격은 제쳐놓고 후루룩 목 넘기기가 바쁘다.
종점슈퍼의 라면. 누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것이 라면이다. 넓은 전골냄비에 끓여내 면발이 끝까지 쫄깃하다
사라질 들판
종점슈퍼에서 부천시내의 북단인 오정동으로 향한다. 아파트와 도시가 바로 저쪽까지 가득 차 있는데 언제까지 한가로운(?) 농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땅이 없어 외곽으로 확장 중인 수도권에서 대장들판은 눈독의 대상이다. 결국 시류를 버티지 못하고 대장들판의 남쪽은 택지로 개발될 모양이다. 김포공항도 시가지에 포위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정대로에서 활주로 동단을 거쳐 마곡신도시를 관통하면 다시 한강자전거거로도로 나서게 된다. 도중에 서울식물원을 지나치지만 자전거 출입금지여서 우회해야 한다. 이처럼 거대한 공원에 자전거도로가 없고 자전거가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것은 시대착오적 처사다. 때문에 자전거와 킥보드로 뛰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고 기껏해야 주변에 있는 기업체와 아파트단지 사람들의 산책로 정도로 활용된다.
광활한 활주로와 비행기 이착륙 장면을 지척에서 보고, 드넓은 들판과 70년대 전원풍경에 종점슈퍼의 라면까지 맛보면서 그새 ‘촌놈’이 되었나. 세련되고 젊은이가 넘치는 최신의 마곡지구 신도시에서 한동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런 어색함마저 참 반갑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동쪽에서 바라본 활주로. 계류장에 비행기들이 가득 멈춰 있다. 풍향에 따라 근접 이착륙 장면을 볼 수 있다(비행기는 맞바람을 안고 이착륙한다)
tip
활주로 외곽길은 흙길도 있고 노면이 불규칙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많으므로 MTB를 추천한다. 코스는 김포공항을 외곽으로 크게 돈다고 생각하면 되고 거리는 25km이다. 마곡신도시에는 인도에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어 시가지 통과도 부담 없다. 방화동이나 가양동에서 한강 자전거도로로 이어지는 토끼굴이 있다. 식사는 종점슈퍼(부천시 대장로118번길7, 032-671-7970), 팽오리농장(종점슈퍼 바로옆, 032-678-5196) 추천.
* 아래 gpx 파일은 신방화역 출발 기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