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산신령이 된 김유신 장군

자생투어
20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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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10월 22일 열린 화부산사 추향대제. 김해김씨 가락종친회에서 매년 음력 5월 5일과 10월 22일 대제를 지낸다 

 

강릉에는 크게 지내는 제향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전국최대 규모의 강릉향교에서 봄가을로 열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을 기린다. 또 하나는 화부산사(花浮山祠)에서 봄가을로 거행되는 제례다. 화부산사 대제(大祭)의 대상은 뜻밖에도 김유신(595~673) 장군이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화부산사 추향대제를 보면서, 강릉사람들이 지금껏 김유신을 극진히 기리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김해김씨 종친회가 주관하지만 강릉시장을 위시해 지역유지가 대거 참석했고 비가 오는 날씨에도 관람 온 일반 시민도 적지 않았다. 석전대제에 버금갈 정도로 엄숙하고 복잡한 제례 절차와 규모도 놀라웠다. 화부산사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고 지금의 건물은 1884년 중건되었다. 

그렇다면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과 강릉은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 강릉은 삼국이 쟁패하던 최전선이 아니었고 김유신은 진천에서 출생하고 청소년기 이후는 경주에서 성장했으니 지연(地緣)도 없다.

화부산사 전경.  원래는 남쪽으로 500m 거리의 화부산(68m) 아래에 있었으나 1936년 철도 부설로 인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고개는 단연 대관령일 것이다. 해안지대에서 출발해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갯길의 입체성과 규모는 실로 웅장하다. ‘관동지방’, ‘영동지방’ 할 때의 관(關)과 영(嶺)은 모두 대관령을 뜻하며, 그만큼 이 높고 험한 고개는 지방을 나누는 관문이기도 했다.

원래의 대관령은 현 대관령(832m)보다 북쪽으로 1.2km 떨어진 곳(KT대관령중계소 옆)을 지났고 높이도 해발 950m로 더 높았다. 대관령 옛길 정상부에는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과 성황당이 있는데(국사성황당), 산신각에 모셔진 인물은 김유신 장군이다. 바로 옆 성황당은 강릉 출신의 신라말 고승 범일국사(810~889)를 모시고 있다. 전국최대의 지역축제로 알려진 강릉 단오제는 바로 여기, 대관령 산신각과 국사성황당에서 시작된다.

대관령옛길 정상부에 있는 산신각은 김유신을 모시고 있다   

7세기 중엽, 한반도 북동부에는 유목과 농경을 겸하는 말갈족(여진족의 전신)이 일부 거주했는데, 고구려 영역에 속했으나 통제를 벗어나 활동하곤 했다. 이들이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당시 신라의 변경이던 강릉(아슬라주)을 공격하기에 이른다(문무왕 4년, 664). 이에 강릉으로 출정한 김유신은 화부산 아래에 진을 치고 말갈족을 물리쳐 강릉을 안정시켰다.

그런데 이때 김유신은 만년인 69세였다. 그해 초에는 연로를 이유로 문무왕에게 퇴직을 청했으나 문무왕은 아직 고구려가 건재한 시절이어서 신라군의 정신적 구심점이던 김유신의 퇴직을 허락하지 않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궤장(几杖, 지팡이)을 하사했다. 그러다 말갈족이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자 김유신은 강릉으로 원정길에 나선 것이다.

문무왕은 김유신의 조카이기도 해서(문무왕 어머니는 김유신의 동생인 문희) 노령인 김유신의 강릉 출정을 만류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유신은 이제 막 백제 부흥군을 평정하고 다음으로 고구려와의 일전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에서 할 일 많은 제장들을 대신해 강릉 출정을 자청한 것으로 보인다.

위패를 봉안한 제당에는 소머리를 얹은 제상이 마련되었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제례는 예정대로 엄숙히 진행되었다  


백발에 흰 수염이 성성한 김유신이 강릉으로 출진해 주민들을 괴롭히던 말갈족을 단숨에 퇴치하자 주민들은 그를 수호신으로 떠받들었다. 마치 신선 같은 면모로 주민들을 구해냈으니 기댈 데 없던 주민들이 그를 신격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보가 제한되고 미신이 횡행하던 옛날에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터무니없이 과장되는 일이 흔했다. 19세기말 최근세의 동학운동 당시에도 백성들은 전봉준을 신출귀몰한 초능력자로 알았는데 핍박받고 무력한 백성들은 자신들의 소망을 영웅적 인물에게 투사해 전지전능화 했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강릉과 서울을 잇는 교통로인 대관령의 산신령으로도 모셔졌다. 도적과 짐승이 들끓고 지형도 험한 큰 고개를 넘는 것은 대단히 모험이어서 옛사람들은 수호신의 가호를 빌었던 것이다. 고개마다 있는 성황당 역시 그런 목적이 컸다.

강릉 주변에 분포하는 작은 성곽들은 김유신 출정 즈음에 말갈족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구를 이끌고 동분서주하며 강릉 방어에 힘쓴 김유신은 그렇게 지역 수호신으로 추앙되었고 대관령 산신령이 되어 1300년 간 강릉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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