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왕곡마을 추억 산책

자생투어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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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살았던 풍경… 부모는 탄식 자녀는 하품

 

아득한 그 시절의 풍경이 이렇게 남아 있어 주니 고마울 뿐

 

“아빠 어릴 때만 해도 이런 마을이 많았다. 한편 반갑고, 한편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아득하네.”

전통가옥이 그대로 보존되고 사람도 살고 있는 고성 왕곡마을을 거닐며 나는 아득한 추억 겸 회한에 잠겨들었다. 하지만 딸은 또 그런 얘기 하느냐는 표정으로 심드렁하다. 딸과는 겨우 30년 차이인데 나는 조선시대 민속촌 같은 마을을 실제로 경험했고, 딸은 아파트와 대도시 경험뿐이니 참으로 천양지차다.

50대 중반 이상으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왕곡마을 풍경이 친근하면서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신산했던 그 시절을 추억 혹은 악몽으로 떠올릴 것이다. 50대에 설마 이런 경험을 했을까 싶겠지만 방학 때마다 들린 나의 외가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 때에야 전기가 들어왔고 말 그대로 마을 전체가 초가삼간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전통마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추억의 배경처럼 하나하나 돌아보게 된다.

마을은 가장 높은 오음산에 기대 있고 5개 봉우리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오음산 자락, 완만한 경사면에 가옥이 분포한다

당시 외가는 할아버지 방이 따로 있고 나머지 방에서 할머니와 나머지 식구가 지냈다. 촛불을 아낀다고 호롱불을 켰고 그마저 아깝다고 해 지고 저녁을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자리에 들었다. 취사와 난방은 장작 아궁이로 겸했고 방바닥은 기름종이, 벽은 오래된 신문지를 발랐다. 재래식 화장실은 본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밤에는 혼자 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마을 우물이 멀어 집 뒤 샘물에서 세수와 양치를 해결했다.

특히 여름밤에는 숲이 무성한 앞산에서 “우우우~~” 하며 늑대가 울어댔다. 할아버지는 표범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냉장고도 없이 어떻게 음식을 준비하고 보관했을지 그 고초가 가슴 아프다. 읍내 장날이면 십리 길을 훠이훠이 걸어 없는 돈에도 나를 위해 과자를 사 오신 두 분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장날에 따라간 적도 있지만 집에 있을 때는 뒷동산에 올라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거의 조선시대 생활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지만 왕곡 같은 전통마을에서 자세히 설명해주면 수긍은 한다. 아이들에게 전통마을은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진, 역사의 장면이거나 관광용 세트장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초가지붕과 감나무는 전형적인 옛날 집 모습이다개울 따라 마을 큰 길이 나 있고 집들은 띄엄띄엄 분포해 공간적 여유가 있다 

고성 왕곡(旺谷) 마을은 백두대간 마산봉(1052m)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바다를 앞두고 준봉을 이룬 오음산(282m) 자락에 안겨 있다. 오음산을 중심으로 5개의 봉우리가 감싸고 있어 일대는 오봉리라고 하며, 동쪽에는 둘레 6.5km로 상당히 넓은 석호(潟湖)인 송지호가 바다와의 사이에 자리해 동해가 지척임에도 외진 산골 분위기다. 풍수지리와 택지에 식견이 있는 사람이 터를 잡은 것이 분명하다.

마을소개에 따르면 14세기말,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며 개성 두문동에 은거한 72현 중 한 사람인 함부열이 간성에 낙향, 은거한 것이 시작이다.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해 대대로 양근 함씨 후손들이 모여 살았다.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잘 보존되어 2000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오음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중심으로 마을을 관통하는 큰길이 나 있고 이 길 주변으로 약 50가구가 분포한다. 건물은 기와집이 20여채, 초가가 30여채다. 마을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예전의 농촌이나 여타 전통마을과 달리 집과 집이 떨어져 공간이 넉넉하며, 양지 바른 남향이라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송지호에서 자전거나 도보로 접근하면 현대문명을 등지고 마치 200년 전 과거로 들어서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

추위를 대비해 가축우리까지 부엌에 덧붙인 관북지방 특유의 ㄱ자형 겹집 구조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낮은 높이와 투박한 돌담은 마냥 정겹다  

주민들이 실제 살고 있는 생활공간이지만 관광객들이 몰려드니 마치 일부러 꾸민 세트장 같기도 하다. 관광객이 집안을 기웃거려도 싫은 내색 없이 반겨주는 인정이 고맙다.

집들은 특이하게도 입구 쪽에 대문과 담장이 없는 대신 작은 텃밭을 가옥 간에 둬서 자연스런 경계를 이룬다. 이 때문에 공간감이 여유로운데, 이런 마당 구조는 바람과 눈이 많은 기후 특성을 감안해 햇볕을 잘 받고 적설로 인한 고립을 막기 위함이다. 건물 기단이 높은 것도 적설에 갇히지 않기 위한 방편이다.

부엌에 가축우리가 붙어 있는 ㄱ자 평면 형태는 추운 관북지방(함경도)의 겹집 구조와 같다. 특이한 것은 집집마다 모양이 다른 항아리 모양의 굴뚝이다. 진흙과 기와를 번갈아 쌓아올린 다음 맨 위에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은 불길이 초가에 옮겨 붙지 않게 방지하고 열기를 집 내부로 다시 보내기 위한 것이다.불꽃이 초가지붕에 옮겨붙지 않게 막고 열기를 내부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항아리 굴뚝 

서정을 품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마을을 돌며 기와집과 초가를 살펴보는 동안 나는 슬며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여기와 비슷한 환경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아름답고 정겨운 추억도 많았지만 당시의 가난과 결핍이 현실의 풍요와 대비되면서 감개무량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그 시절은 이제 뇌리 깊숙한 기억으로만 남았을 뿐 실제 공간과 사람은 찾을 길이 없다. 그렇게 외부의 존재와 실상은 시공간 속으로 흩어져간다.

어느 한 집에서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오른다. 이즈음 바깥에서 뛰놀고 있으면 어머니나 할머니는 저녁 먹으라며 나를 부르곤 했다. 산골 외가에서 지낼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군불을 때면 키 작은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아 집 주변을 몽롱하게 감쌌고 코에는 매캐한 탄 내음이 아련하게 스며들었다. 그때의 탄 내음은 지금도 생생하건만 그 집과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제 찾을 길이 없다. 연기가 오르는 굴뚝을 나는 한동안 바라만 보았다.

자전거나 도보로 송지호를 돌아 왕곡마을로 진입하면 더욱 극적이다  

왕곡마을은 속초시내에서 북쪽으로 18km 거리에 있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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