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절정-정자(1) 강릉 활래정

자생투어
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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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넘치는구나, 아취와 격조

 

두 개의 건물을 ㄱ자로 연결한 구조다. 왼쪽은 온돌방을 넣었고 오른쪽은 연못 위에 떠 있는 누마루 형식이다. 앞쪽은 연못 내 인공섬을 연결하는 다리 

아주 자연스럽게 가만히, 슬며시 녹아들어 그냥 하나의 ‘모습’이 됐다. 경관이 수승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 저 안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인 것은 물론이고, 바깥에서 바라보는 그 자체도 은근히 아름답고 때로는 작고 귀엽다. 바로 정자(亭子)다.

중국에 원류를 두고 있으나 정자가 극적으로 빛을 발하고 건물이 아니라 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조선시대다. 친중사대와 지독한 문약, 임진 병자 양난을 겪으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상무(尙武)의 기풍을 상실해간 시대지만 몇 가지 건질만한 것 중의 하나는 선비가 곧 시인이자 문장가이면서 자연 속에서 소요하며 음풍농월을 즐긴, 고품격 풍류(風流) 정신이다. 이 풍류 정신이 실물로 구현되고 또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정자다. 누정(樓亭)이라고 해서 누각과 정자를 한데 묶어 부르기도 하며 명칭이 혼용되기도 하는데, 누각은 대체로 규모가 크고 관립(官立)인 반면 정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개인이나 가문에서 만든 사적(私的) 공간이다.

꽃이 피고 연잎이 푸르른 여름날의 활래정 

 

필자는 삼국시대를 상징하는 최고의 유산으로 산성(山城)을 꼽고 있고, 이를 소개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인 정자도 살펴보기로 한다. 과연, 그 작은 공간에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 첫 번째 여정은 강릉의 대표적 고가인 선교장(船橋莊) 내 활래정(活來亭)에서 시작한다.

활래정은 조선조 선비들이 성인으로 추앙하며 지극히 흠모했던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朱熹, 1130~1200)의 사상과 이상을 현실에 구현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정자의 이름(活來)도 주자가 쓴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책을 보다 떠오른 생각)’에서 따왔다. 그런데 이 관서유감은 단순한 시가 아니라 주자가 성리학에서 주창한 자연철학 혹은 인식론으로서의 도학(道學)적 본질을 담고 있어 이퇴계를 비롯한 조선 성리학자들이 크게 주목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성리학은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찾는 길이라고 해서 도학(道學) 혹은 심학(心學)이라고도 했다. 활래정과 성리학, 조선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관서유감 시를 먼저 살펴보자.

 

半畝方塘一鑑開(반무방당일감개) 작고 네모난 연못이 거울처럼 펼쳐지니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네

問渠那得淸如許(문거나득청여허) 묻노니 물은 어찌 이토록 맑은가

爲有原頭活水來(위유원두활수래)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원류가 있기 때문이지

 

昨夜江邊春水生(작야강변춘수생) 어젯밤 강가에 봄 물이 불어나니

艨衝巨艦一毛輕(몽충거함일모경) 몽충 거함도 터럭처럼 가볍네 *몽충 : 충돌용 전함

向來枉費推移力(향래왕비추이력) 지금껏 밀고 옮기는 힘을 부질없이 썼는데

今日流中自在行(금일류중자재행) 오늘은 물결 속에 자유로이 움직이네

 

활래정의 ‘활래’는 첫 수 4구의 ‘위유원두활수래’에서 따왔고 네모난 연못을 끼고 있는 구조는 시의 배경과 일치한다. 1816년(순조 16) 정자를 건립한 이후(李垕)는 주희를 지극히 흠모했고, 투철한 성리학자로서 주희의 가르침을 현실에 구현해내려고 했던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주희가 말년에 무이산(武夷山)에 은거하며 절경의 계곡에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고 명명하고 유유자적한 것을 따라 각자 산자수명한 골짜기를 골라 ‘00구곡’이라 부르며 음풍농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 내용은 얼핏 보면 연못과 강물 풍경을 묘사한 것 같지만 제목을 보면 풍경이 아니라 ‘책을 보다가 느낀 점’이라고 했으니 상상과 사색의 세계를 은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첫 수의 연못은 마음의 바탕이고 그 위에 배회하는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는 온갖 상념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물이 다시 맑아지는 것은 청정 원류가 흘러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맑은 물의 원류가 무엇이냐를 두고 후학들은 논란을 거듭했다. 그것은 학문적 성찰과 수양일 수도 있고 만물을 인식하는 주체의 백지상태 원형일 수도 있다.

하늘에서 본 활래정. 팔작지붕 두 개를 연결하는 특별한 구조와 사각형 연못이 선명하다 

'대궐 밖 조선 제일 큰 집'이라는 선교장.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고, 100칸이 넘는 규모, 관리 상태와 구성 면에서 전국 최고의 고택이라고 할 만하다 


2수는 그 무대가 연못에서 강물로 바뀐다. 거함도 터럭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것은 물이 불어서인데, 지적 축적이나 수양을 통해 내면을 키우면 세상사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 같다. 이 시는 주희의 오도송(悟道頌)처럼 느껴진다. 선승(禪僧)이 깨달음의 순간을 시로 표현한 것이 오도송인데, 불교적 깨달음이 지식의 축적이나 이성적 사색의 결과라기보다 어딘가 신비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면, 합리적 이성(理性)을 바탕으로 사고의 심연을 확장해간 주희는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와 객체인 우주 만물을 2원적으로 구분하다 지식의 축적과 사색의 심화를 거쳐 주객일치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이는 불교적 세계관인 원융(圓融)이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비슷하지만 외계와의 연계를 그대로 두면서 관찰과 성찰로 이뤄낸 점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경험론적이다. 때문에 후학들이 수긍하며 받아들이기에도 부담이 덜했을 것이고 이를 자연과의 합일로 이해해 정자와 원림(園林)을 꾸며 음풍농월을 즐기는 풍류 역시 그 한 방편이 되었을 것이다.

활래정은 주희의 시 '관서유감'에서 영감을 받아 성리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오른쪽 위에 월하문이 앙증맞다 

활래정은 고작 5칸짜리 작은 건물이지만 성리학적 세계관을 구현하고 있어 이를 알고 다시 보면 어마어마한 무게감과 거대함으로 다가온다. 성리학자를 겸한 조선 사대부나 선비가 세운 정자들 중에 작은 연못이나 강물을 끼고 있는 입지는 주희의 ‘관서유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견상 화려하기는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 소박하기는 예천 고은정, 운치는 경주 독락당 계정, 호방하기는 울진 망양정, 그윽하기는 담양 소쇄원 광풍각, 단아하기는 순창 귀래정, 탈속적 선풍(仙風)은 거창 건계정을 꼽고 싶다. 그렇다면 활래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귀족적이면서 사색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활래정을 품은 고택 선교장(船橋莊)은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1703~1781)이 강릉으로 옮겨와 터를 잡았다. 집앞이 바로 경포호여서 배로 다리를 만들어 선교장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지금의 경포호는 선교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나 원래는 호수가 집 앞에까지 이를 정도로 훨씬 더 넓었다고 한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시인 묵객이 줄을 이어 찾아들자 꾸준히 증축을 거듭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고 ‘대궐 밖 조선 제일 큰 집’으로 알려졌다. 지금 남은 건물도 100칸을 훌쩍 넘고 전국에 남은 고택 중 가장 잘 보존되고 넓어 1967년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었고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도 선정되었다. 이는 실로 과장이 아니다.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온돌방. 뒤쪽 누마루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빈틈 없이 마무리한 우물마루와 우물천장, 사방으로 열리는 문을 배치해 밝고 경쾌한 누마루  


활래정은 평면 구조부터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주 기묘한 구성이다. 평면도가 복잡하기는 수원 방화수류정이 압권이지만 활래정은 ‘ㄱ’자 형태로 팔작지붕 건물 두 채를 연결한 형태다. 기둥 사이 칸이 널찍한 두 칸짜리 건물은 못 안에 돌출해 있어 6개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다. 이런 누마루 마치 정자가 허공에 뜬 듯 날렵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활래정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앙증맞은 난간을 세운 툇마루가 정자 전체를 두르고 있어 누군가 버선발로 서서 연밭을 구경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강릉을 대표하는 명문가의 정자답게 활래정은 은근슬쩍 화려함도 갖추고 있다. 멋을 부린 겹처마는 묵직한 무게감을 주고 윗처마는 사각 서까래, 아래는 둥근 서까래를 배치해 대조의 멋을 냈다. 알 듯 말 듯 살포시 올라간 추녀마루는 수줍은 처녀의 춤 선 같다.

정자를 빙 두르고 있는 툇마루와 낮은 난간은 풍경과의 접점을 심화, 확대시켜 준다. 살포시 날개를 편 처마선, 사각과 원기둥 서까래가 엇갈린 겹처마는 건물의 격조를 고양한다    

무엇보다 활래정은 이름처럼 펄펄 살아 있고 생동한다. 사람이 사는 고택인 선교장에 딸려 있어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들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고 관리를 하더라도 생기 없는 세트장으로 전락한다. 전국에 남은 약 500곳의 정자 대부분이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외딴 공간으로 방치되어 있어 생기가 돌지 않는데, 활래정이 각별한 것은 그 점부터 다르다.

3칸짜리 방은 온돌을 넣어 겨울에도 지낼 수 있고 장식장도 갖춰져 있으며, 바닥은 장판이 잘 발라져 방금까지 주인장이 거처한 듯 생활의 여운이 역력하다. 미닫이 문 양쪽은 문인화를 그린 병풍을 더해 귀족적인 기품도 묻어난다. 별도의 건물로 지어진 바로 옆 누마루는 연못에 떠 있는 구조여서 우물마루와 우물천장으로 마감하고 사방으로 문을 배치해 햇살이 잘 들고 경쾌하다. 목재의 마무리가 정밀 가공한 듯 빈 틈 없이 이어져 고급스런 품격을 더해준다.

활래정은 주인장에게도 좋고, 우연히 찾아든 나그네에게도 별격이었을 것이다.

활래정 입구처럼 만든 작은 월하문은 풍류의 격조를 극대화 해준다. 글을 다듬는다는 '퇴고(推敲)'의 유래가 된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싯귀 두 구를 주련에 달았다.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 새는 못 옆 나무에 잠들고,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밀치네. 어느 달 밝은 밤, 저 문을 살포시 밀어보고 싶다     

 

처마에 걸린 여러 편액 중 우당거사(羽堂居士)의 시를 소개한다.

 

題活來亭(제활래정) 

활래정에 붙여

 

鏡浦東遊客(경포동유객) 경포대 동쪽길 나그네

溪亭又暫過(계정우잠과) 개울가 정자 잠시 들리니

松堪秋士讀(송감추사독) 솔바람은 가을 선비 마음을 읽고

荷爲海仙歌(하위해선가) 연꽃은 바다신선 노래 부르네

霞月緣情得(하월연정득) 노을에 뜬 달은 정이 깊은데

禽魚盡意多(금어진의다) 새와 물고기도 뜻이 많구나

駿節流眄久(준절류면구) 계절은 빨라 훔쳐본지 오래

飜愧軟塵珂(번괴연진가) 외려 부드러운 흙과 돌이 부럽네

(필자 역)

 

 

나도 짧은 시로 화답한다.

 

冬過 活來亭(동과 활래정) 

겨울 활래정을 지나며

 

淵凍荷葉枯(연동하엽고) 못은 얼고 연잎은 시들었는데

亭丁盛夏杰(정정성하걸) 정자는 여름인 듯 걸출하네

昏推月下門(혼퇴월하문) 해질녘 월하문 들어서니

無主風與月(무주풍여월) 주인은 없고 바람과 달뿐

 

글/사진 김병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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