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절정-정자(3) 강릉 해운정(海雲亭)

자생투어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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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소박한데, 참으로 고아(高雅)하네

 

작은 대문을 들어서면 3단 석축 위에 노송을 거느리고 우뚝한 정자에 괄목상대하게 된다 

풍류문화가 걸출한 강릉에서 대표적인 정자 두 곳을 꼽으라면 활래정(活來亭)과 해운정(海雲亭)을 들 수 있다. 활래정이 귀족적이고 화려하다면 해운정은 소탈하고 격식이 없다. 서로 500m 거리이니 공간적으로 가깝고 경포호를 낀 입지도 흡사하다. 지금의 경포호는 개간과 간척으로 크게 줄어들었고 원래는 활래정과 해운정 앞까지 호숫물이 넘실댔다고 한다.

해운정은 1530년(중종 25) 심언광(沈彦光, 1487~1540. 호는 漁村)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어 강릉에서는 오죽헌(15세기 중엽 건립)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이다. 500년 된 정자는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다. 나지막한 구릉을 배경으로 삼층으로 쌓은 단 위에 남향으로 터 잡아 경포호를 위시한 경관을 바라보기 좋은 입지다.

경포호가 줄어들어 지금은 정자에서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남단의 건물이 해운정, 북쪽의 호수가 경포호 그 너머는 동해작은 언덕에 기대선 정자가 미니어처처럼 귀엽고 헌칠하다. 정자 왼쪽 ㅁ자 한옥은 17세기 건립된 수리골고택, 오른쪽 작은 집은 강릉 출신 시인 심연수(1918~1945)의 생가터

남단의 건물이 해운정, 오른쪽 구릉지 중간에 선교장과 활래정이 있다. 왼쪽의 호수는 경포호와 분리된 경포생태저류지이고, 호수 위쪽 멀리 산줄기가 잘록한 곳이 대관령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소나무 한 그루가 기대 선 정자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해 고상한 기품에 더해 선풍(仙風)마저 자아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범한 규모에 팔작지붕을 얹었고 서쪽에는 두칸짜리 온돌방을 넣었다. 우물마루로 마무리한 널찍한 대청마루, 장식성을 배제한 홑처마는 소박미와 절제미를 담았다. 사방으로 툇마루를 둘렀고 대청마루의 4첩 문은 접어서 걸쇠에 걸어 활짝 열 수 있다.

이 단아하고 소박한 정자의 가치는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재확인하게 된다. 대들보와 천장 곳곳에는 이곳을 방문한 명사들의 편액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이렇게 많은 편액이 걸린 정자는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그만큼 정자의 역사가 오래되고 입지와 건축미가 탁월하다는 증거다. 정자로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건축되어 이후 다른 정자 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작은 온돌방과 넓은 대청마루를 더한 구조는 사철 이용할 수 있는 별당 겸 음풍농월을 즐길 수 있는 정자로 최적이다. 필자 개인의 정자를 짓는다고 해도 이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자로는 드물게 1963년 보물 제183호로 지정되었고 솟을대문 옆 행랑채에는 관리인이 상주하며 CCTV와 소방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정자는 3단의 석축 위에 올라앉아 높직하다. 홑처마와 장식 없는 공포, 낮고 좁은 툇마루 등 매우 소박한 모습이다

툇마루는 질박하기 그지 없고 섬돌도 살짝만 다듬었다
정자 뒤편은 판문을 달았고 툇마루가 뒤쪽까지 나 있다. 낮은 굴뚝 옆에는 아궁이가 있다

현판은 명필로 꼽히는 우암 송시열이 썼고 기둥에 걸린 주련은 18세기 문인 권진응의 글이다

대들보 위의 '해운정'은 우암이 쓴 원본이다. 온돌방에는 '서쪽을 바라본다'는 망서당(望西堂)이란 별호가 붙었다 

왼쪽 海雲小亭(해운소정)은 중종 32년(1537년)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오희맹이 썼고, 오른쪽의 鏡湖漁村(경호어촌)은 같은 명나라 사신 공용경의 글씨다. 천장에는 문사들이 남긴 편액들이 가득하다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편액들은 해운정의 깊은 내력과 특별한 가치를 말해준다. 보수 흔적을 보여주는 서까래가 모여든 작은 눈썹천장의 결구가 튼실하다 

외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실내도 구경할 수 있도록 대청마루 입구에 실내화를 준비해 놓았다. 겨울이라 대청마루 문을 닫아놓아 실내는 어둑하다. 대들보는 원래 그대로인 듯 500년 세월이 느껴지고 서까래는 다시 이은 듯 세월의 때가 덜 묻었다.

사방에 가득 걸린 편액이 실로 압권으로 이 작은 정자가 얼마나 오래 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아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수준 높은 한문에 흘림체가 많으니 현대인에게는 고대의 암호로만 남은 것이 안타깝다. 시간이 갈수록 저 명문들은 더 잊혀지고 방치될텐데 이런 문화적 역사적 단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족한 실력이지만 무리해서라도 몇 편을 해석하고 화답시를 짓는 것은 나름의 작은 사명감이다.

온돌방은 근래까지 사용한 듯 벽지와 장판이 현대적이고 가운데 미닫이문을 달아 1칸 씩 나눠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방에서 하룻밤 기거한다면 어떤 꿈을 꾸게 될까.

2칸짜리 온돌방은 중간에 미닫이문을 둬서 나눠 쓸 수 있도록 했다. 방은 근래까지 사용한 듯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범상치 않은 현판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썼다. 진품은 보존을 위해 정자 안쪽 천장에 높직이 걸려 있고 외부의 현판은 복제품이다. 우암은 조선의 선비들이 지극히 존경해서 주자에 빗대어 송자(宋子)라고 경칭할 정도로 대학자이자 문신, 정치가, 서예가로 두루 알려졌다.

실내에 들어서면 기세 좋은 필체의 두 현판이 단연 눈길을 끈다. 오른쪽의 鏡湖漁村(경호어촌)은 중종 32년(1537년)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공용경이 썼고, 왼쪽 海雲小亭(해운소정)은 같은 명나라 사신 오희맹의 글씨다. 두 사람은 심언광의 자랑에 직접 강릉까지 와서 해운정을 보고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편액 중에는 조선 최고의 학자 중 한 사람인 율곡 이이의 글이 보인다. 율곡은 외가인 강릉에서 나고 자랐으니 강릉 사람이라도 해도 될 것이고, 강릉의 명소인 해운정을 즐겨 찾았을 것이다. 율곡의 시를 보자.

율곡 이이의 시와 글씨 

 

題 沈漁村園亭(제 심어촌원정) 어촌 심언광 정자에 부쳐

 

勝地逢杯酒(승지봉배주) 절경 속에 한 잔 술 마주하니

斯遊也不嫌(사유야불혐) 이렇게 노니는 것도 좋구나

那知千里外(나지천리외) 어떻게 천리 밖에서

得値二難兼(득치이난겸) 겸하기 어려운 두 가지를 얻을 줄 알았을까

 

海色初收霧(해색초수무) 바다 빛은 이윽고 안개를 걷어내고

松風不受炎(송품불수염) 솔바람은 더위를 막아주니

何須韓吏部(하수한리부) 어찌 한리부(사람을 지칭한 듯)는

茗梡捧纖纖(명완봉섬섬) 술잔을 조심조심 받들지 않으리

* 겸하기 어려운 두 가지는 멋진 정자와 한 잔 술을 뜻하는 듯

 

정자 바깥 기둥에 붙은 주련(柱聯)은 18세기 문인 권진응(權震應, 1711~1775)의 글이다.


世業家傳忠孝在(세업가전충효재) 대대로 가업을 전하니 충효가 건재하고

地靈基鎭海山雄(지령기진해산웅) 터전에는 영기 어리고 바다와 산도 웅장한데

板留尤栗千年蹟(판류우율천년적) 편액에 남은 우암과 율곡의 흔적 천년을 가겠네

扇動龔吳萬里風(선동공오만리풍) 부채를 펴면 공용경과 오희맹의 뜻, 만리밖 바람으로 불어오는 듯

 

편액 중에 이성모(李聖模)라는 선비가 남긴 글이 눈에 띈다

 

歷訪海雲亭追寄 主人自寓感懷也(역방해운정추기 주인자우감회야)

해운정 방문기에 부쳐 - 주인이 거처하니 감회가 있네

 

天使題扁尤老文(천사제편우로문) 하늘이 시킨 듯한 우암의 글씨

漁村一曲至今聞(어촌일곡지금문) 어촌의 노래는 지금껏 들리고

人間更有尊周地(인간갱유존주지) 사람들은 새삼 주변 땅 보존하니

落照傷心倚海雲(낙조상심의해운) 석양에 쓸쓸한 마음 해운정에 기대 보내

* 어촌(漁村)은 정자를 지은 심언광의 호(號)로 그를 지칭함

 

필자의 감회다.

  

仰對 海雲亭(앙대 해운정) 해운정을 올려 보며

 

上亭不見海雲過(상정불견해운과) 정자에 올라도 더이상 바다 구름 보이지 않고

漁村桑變陸中街(어촌상변육중가) 어촌은 상전벽해 내륙 거리 되었네

質朴狹陋更高雅(질박협류갱고아) 소박하고 좁아도 더욱 높은 아취

名文偉跡傳天下(명문위적전천하) 뛰어난 글씨와 위인의 흔적 세상에 전하리


글/사진 김병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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