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절정–정자(6) 예천 고은정(古隱亭)

자생투어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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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듯 없는 듯, 가장 작고 질박한 정자 

 

들판가 낮은 언덕 아래 극도로 절제되고 소박한 모습으로 있는 고은정 


지극한 하심(下心)이다. 누구나 다 드러내고 자랑하고 위세하고 싶기 마련인데 이 초미니 정자는 거꾸로 질박과 누추, 작음과 결핍으로 존재감을 극력 지워내고 있다.


주변 풍경도 참으로 보잘것없고 평범하다. 작은 개울에 딸린 들판은 좁아터졌고 낡은 마을은 빈티가 흐른다. 정자를 지을 당시에는 더욱 빈한했을 테니 이 집안은 가난한 주민들을 배려해 극히 작고 소탈한 정자를 세웠던 것 같다. 거리감과 격의가 없으니 들에서 일하던 농민들도 마음 편하게 들어와 쉬었을 것이다. 이 정자는 예천 고은정(古隱亭)이다.

장식은 아예 없고 너무 작아 서너명 둘러 앉으면 가득 찰 것만 같다. 추녀 끝을 막은 기와는 빗물이 내부로 들이치지 않게 해주는 용도다

현판은 고풍스러우나 기름 먹인 목재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본 풍경은 지극히 평범한 전원이다. 오른쪽에 물이 마른 세심지(洗心池)와 박용학을 추모하는 유모비(孺慕碑)가 보인다 

예천은 봉화, 영주를 거쳐온 낙동강 상류 지천인 내성천 유역을 이루며 백두대간과 학가산(870m) 사이에 낮은 구릉지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고은정은 내성천 지류인 석관천과 가까우나 천변은 아니고 간실마을 뒤 작은 구릉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특이한 경관도, 특별한 기품이나 그윽한 분위기도 없는, 지독하게 작고 무던한 정자다.

정면 2칸 측면 1칸이나 전체적으로 1칸 정도의 크기다. 짙은 고동색으로 칠해 장식성이 전혀 없으며 그나마 팔작지붕과 겹처마 정도가 조금 신경 쓴 모습이다.

단출한 규모에 비해 대들보가 든든하다. 다수 걸려 있는 편액은 고은정의 특별한 유래와 위상을 말해준다 

정자 옆 바위에는  ‘古隱洞天(고은동천)’이 새겨져 있어 일대의 경관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정자는 고은(古隱) 박용학(朴容學, 1869~1948)이 1920년대에 지었고 정자명도 그의 호에서 따왔다. 古隱은 ‘옛것을 좋아하고 은둔을 즐긴다’는 호고낙은(好古樂隱)에서 따왔다. 근대의 인물이지만 전통을 숭상하고 노장(老莊)에도 심취한 도학자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의 진심은 정자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조선 개국공신으로 세도와 가문이 당당했던 박은(朴訔)의 후예지만 가난한 선비의 삶을 살았고, 조상을 섬기고 형제들의 어려움을 앞장서서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그의 아들 박세경(朴世徑)이 부친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1952년에 중건한 것으로, 원래는 더 작고 투박했을 것이다.

'고은동천'이라고 하지만 주변 풍광은 지극히 평범하다. 왼쪽으로 석관천이 흐르고 있다고은정 바로 옆 탑마을에 있는 신라말 3층석탑. 완성도가 뛰어나 격 높은 절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마을의 유래가 대단히 오래 되었음도 알 수 있다

정자는 작으나 그래도 못과 숲을 갖춘 원림(園林)의 축소판을 꿈꾼 듯 정자 앞에는 작은 연못인 세심지(洗心池)를 조성했고 연못 중간에는 큰 바위가 섬을 이룬다. 바위 위에는 박세경이 아버지 박용학을 추모하는 유모비(孺慕碑)와 낮은 향나무가 아담하고 못가에도 향나무와 소나무가 한그루씩 무심하다. 다만 물이 흘러올 곳도, 빠져나갈 곳도 없어 못은 덩그러니 말라 있으니 큰비가 내려야만 못의 자태를 드러낼 것 같다.

여기서 석관천 상류 방면으로 1km만 가면 계곡 경관이 빼어나 임진왜란의 명재상 서애 유성룡이 노닐었다는 수락대(水落臺)가 번듯한 정자의 위용을 발하고 있다. 박용학이나 박세경은 서애를 존경하는 마음과 겸양의 뜻을 담아 고은정을 드러나지 않게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수락대 일원의 계곡을 ‘수락동천(水落洞天)’으로 존칭하며 바위에 새긴 것을 따라 고은정 인근 바위에 ‘古隱洞天(고은동천)’을 새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연못 가운데에서 바라본 고은정. 정자도 비석도 소박하기 그지 없다  

정자 바로 옆 탑마을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신라 말의 3층 석탑이 남아 있어 마을의 내력이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말해준다.

정자를 지은 부자(父子)는 떠나고 없어도 마을 주민들은 살뜰하게 관리하는 듯 주위는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범상(凡常)은 모나지 않으니 누구나 친근할 수 있고 덕분에 잘 유지될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하심의 존재감으로 고은정은 오래도록 그대로 남을 것 같다.

박용학의 아들 박세경이 쓴 칠언율시(왼쪽). 최초의 편액 시를 따라 똑 같은 운자를 쓴 노력과 존경심이 엿보인다 

 

정자 내 편액 중 박세경이 쓴 시를 소개한다.

 

徑來世事百千難(경래세사백천난) 지나고 보니 세상사 참으로 어려운데

但願從今永保安(단원종금영보안) 오직 바라는 것은 지금부터 오래도록 지키고 편안한 것

樵峀歸程橫短笛(초수귀정횡단적) 산에서 나무하고 오는 길 피리 부니

漁汀斜日荷長竿(어정사일하장간) 물가에 어린 낙조 긴 낚싯대에 걸렸네

 

誠追先祖存香火(성추선조존향화) 성심껏 선조 위해 향불 지키니

惠及窮隣濟餘寒(혜급궁린제여한) 그 은혜 어려운 이웃에 미치고 추위 없애네

小子微忱成此屋(소자미침성차옥) 소자 정성이 부족해 이 정자 지었으나

多年那得會儒冠(다년나득회유관) 어찌 하면 오래도록 선비들 모여들까

(필자 역)

 

필자의 찬시.

 

古隱亭 感憶(고은정 감억)

 

非山亦非野(비산역비야) 산도 들도 아닌 곳

無景亦無人(무경역무인) 경치도 사람도 없구나

小亭無小事(소정무소사) 작은 정자 아무 일도 없으니

過客無相親(과객무상친) 나그네 정 붙일 길 없네

 

글/사진 김병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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