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절정–정자(8) 예천 초간정(草澗亭)

자생투어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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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숨은 별유천지

 

계류 옆 바위에 담장 없이 그대로 올라선 초간정. 눈 녹은 물이 탁하지만 멋진 풍치는 그대로다 

수목이 우거진 여름날의 초간정  

희한한 협곡이다. 마치 일부러 땅을 파낸 듯 평지보다 7~8m 낮은 곳에 개울이 흐른다. 차별침식으로 생겨난 자연지형이지만 낙동강은 유속이 느리고 토사가 쌓여 오히려 수위가 주변 평지보다 높은 천정천(天井川)이 많은데 미국의 그랜드캐년 축소판 같은 협곡이 여기 예천 금곡천 일부에도 형성되어 있을 줄이야.

이 ‘지하 협곡’은 길이가 300m밖에 되지 않으나 물이 꺾이는 곡류 암반에 작은 정자가 서 있으니 바로 초간정(草澗亭)이다. 정자 주변에는 그윽한 운치의 솔밭까지 우거져 그야말로 지하에 꾸며진 신비의 원림(園林) 같다. 평지 아래 기이한 지형을 온통 장악하듯 물가 절벽에 선 초간정을 처음 본다면 의외성과 미감에 감탄사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

초간정 앞을 흐르는 금곡천은 주변 평지보다 7~8m나 낮아 작은 협곡을 이룬다. 옆의 928번 지방도와 나란한 협곡은 300m 정도 된다

상류쪽에서 바라본 초간정. 암반과 고목이 어울려 그윽한 문인화를 빚어낸다

초간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말년을 보내고자 1582년(선조 15) 원림(園林, 정원 숲)을 조성하면서 건립했으며 처음 이름은 초간정사(草澗精舍)였다. 정사(精舍)는 조용히 은둔하며 수양과 독서를 위주로 하는 주거개념의 건물로 잠깐 머물며 풍류를 즐기는 정자와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거주성을 높인 정자에 정사 이름을 붙인 곳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 있다. 권문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정자는 1592년 불탔다가 1626년 권문해의 아들 죽소(竹所) 권별(權鼈)이 다시 건립했으나 1636년 또 불타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은 1740년(영조 16) 권문해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인 권봉의(權鳳儀)가 원래의 터에서 서쪽으로 조금 옮겨 지었는데 원림의 배치도 이때 완성되었다. 1870년(고종 7) 마지막으로 고쳐 지었으니 정자의 실제 내력은 300년 정도 되는 셈이다.동쪽에 난 대문으로 들어서면 '초간정사' 현판이 걸려 있고 2칸짜리 방이 먼저 와닿아 평범한 주거용 건물 같다

암반 위에 석축 기단을 쌓아 정자를 올렸다. 기가 막힌 입지다 

계류에 발을 담그듯 암반 끝에 담장 없이 선 모습은 이런 형태로 압권을 이루는 경주 독락당 계정(溪亭)과 흡사하다. 초간정은 계정보다 더 아담하고 소박해서 선풍(仙風)어린 고졸미는 더 나아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렸다. 남쪽에는 2칸짜리 온돌방을 넣었고 나머지는 앞뒤가 트인 대청마루이며, 사방에는 정자에 흔한 닭다리 모양의 계자난간(鷄子欄干)과 좁은 툇마루를 둘렀다. 정자 옆 건물은 한옥체험 공간으로 활용되어 정자 역시 깔끔하고 잘 관리되어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본 계류와 솔밭. 거칠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아기자기하고 부드러운 풍광으로 상류쪽은 계곡의 고저차가 크지 않다  잘 관리된 방은 당장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대들보와 서까래. 맞은편의 '초간정중수기' 편액은 낡고 훼손되어 알아보기 어렵다 

현판이 여러 개인 것이 흥미로운데, 출입구가 있는 동쪽은 ‘초간정사(草澗精舍)’, 개울과 송림을 마주 보는 서쪽은 ‘초간정(草澗亭)’, 개울에 면한 북쪽은 ‘석조헌(夕釣軒)’이 걸려 있다. 이들 명칭은 정자의 방향마다 분위기와 의미가 달라지는 다면적인 느낌을 잘 담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니 주거가 가능한 정사가 되고, 개울과 송림을 마주하니 이는 절경 속의 정자이며, 발밑에 물이 흐르는 북면은 저녁나절에도 편안히 낚시하기 좋다는 뜻이니 숨어살며 소일하는 은자(隱者)의 거처답다. 그중 ‘草澗精舍’는 권문해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문인이자 도학자로 알려진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이 썼다고 전해진다.

북쪽 처마에는 '저녁에 낚시한다'는, 격조 높은 ‘석조헌(夕釣軒)’ 현판이 걸려 있다 

개울 건너로 보이는 원림

정자에 오르면 먼저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심신을 씻어주고, 난간 끝은 직하의 절벽이라 단절의 긴장감이 어려 있다. 굴곡을 그대로 살려 자연미 농염한 대들보, 질서정연한 서까래와 우물천장의 대조는 정자는 물론 주인장의 자연합일 성향을 잘 보여준다.

천장에 걸린 중수기는 매우 낡고 글씨도 중간중간 훼손되어 알아보기 어렵다. 편액은 조선후기 문신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칠언율시 ‘초간정 술회(草澗亭 述懷)’ 한 수만 걸려 있다. 권상일은 예천에서 가까운 상주 사람이라 같은 문중이자 존경하던 권문해의 흔적을 찾아 이곳을 찾은 모양이다. 권상일 역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조용히 은둔하며 지낸 모습이 권문일과 비슷하다.

유일하게 걸려 있는 청대 권상일의 '초간정 술회' 편액

 

草澗亭 述懷(초간정 술회)

 

草澗淸淸不染塵(초간청청불염진) 초간선생 맑고 맑아 세속에 물들지 않으니

昔賢遺馥及萬人(석현유복급만인) 옛 현자 남은 향기 만인에 미치네

避心欲謝千鍾祿(피심욕사천종록) 은둔할 마음은 큰 녹봉 사양하고

小屋初成萬曆春(소옥초성만력춘) 작은 집 갓 지으니 때는 만력 봄이라

 

筆下陽秋根義理(필하양추근의리) 붓으로 시비 가림은 의리에 근본을 두고

案頭經傳著精神(안두경전저정신) 책상머리 경전은 정신을 일깨우네

我來盥手披遺券(아래관수피유권) 내 여기 와서 손 씻고 옛 책을 펴니

盈溢巾箱政不貪(영일건상정불탐) 두건상자 흘러넘쳐도 정사는 탐하지 않으리

* 萬曆 : 명나라 신종(1573~1620) 만력제(萬曆帝)의 연호.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줘 조선 사대부들이 숭앙하는 인물이 되었다

* 筆下陽秋 ; 엄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역사 편찬의 자세인 춘추필법(春秋筆法)을 말함

(필자 역)

 

필자의 찬시.

 

草澗亭 初春(초간정 초춘)

 

掘江深壑有別天(굴강심학유별천) 파낸 듯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별세계

古松森森溪岸軒(고송삼삼계안헌) 노송 우거진 개울가 언덕에는 집 한 칸

水流風過忘時急(수류풍과망시급) 물소리 바람소리에 시간 감을 잊으니

座案夢待遊與仙(좌안몽대유여선) 가만히 앉아 선인과 노닐기를 기다리네

글/사진 김병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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