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무릉도원이구나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주천강을 바라보며 강변 언덕에 높직이 자리한 요선정. 절벽 높이는 40m 정도 
폐사된 암자터에 자리해 훼손된 석탑과 마애불이 정자와 함께 있는 기묘한 풍광이다

마애불 뒤편 암벽에서 바라본 주천강 상류 방면. 소나무 고목이 그윽한 운치를 발한다
가히 별세계다. 지역은 무릉도원면이요, 발아래 흐르는 강물은 술이 샘솟아 흐르는 주천(酒泉)이니 신선놀음으로 이만한 곳이 있을까. 주천강 강변에 우뚝한 언덕에 올라선 정자의 이름도 신선을 맞이한다는 요선정(邀僊亭)이다.
치악산(1288m)과 백덕산(1350m) 사이 깊고 깊은 산간협곡에 자리한 무릉도원면은 교통이 사통팔달한 지금도 신비의 별세계를 뜻하는 무릉도원 이름에 걸맞다. 원래는 수주면(水周面)이었으나 2016년 무릉리와 도원리에서 이름을 따와 무릉도원면이 되었다. 현실 속 무릉도원의 핵심은 단연 5대 적멸보궁에 드는 법흥사일 것이다. 백덕산과 연이은 사자산(1180m) 깊은 골짜기 끝에 터 잡아 공간적인 격리감이 지금도 대단하다. 이 법흥사로 이어지는 주천강변 언덕 위에 요선정이 있다. 원래는 법흥사에 딸린 암자가 있었다고 하며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이 기막힌 자리를 선비들에게 내준 것 같다.
절벽 위 기막힌 자리에 있는 요선정
요선정 상공에서 바라본 주천강 상류 방면. 물길은 치악산으로 이어진다

요선정 하류 방면.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지독한 사행천을 이루면서 서강으로 합류한다
요선정의 입지와 외견은 고색창연하고 깊은 이야기를 담은 것 같지만 실은 근래인 1915년에 세워져 이제 갓 100년을 넘었다. 인근 무릉리의 계모임인 요선계가 정자를 건립했고, 숙종이 직접 지은 어제시(御製詩)를 보관중이던 주천면소재지의 청허루가 훼손되어 이를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숙종이 직접 시를 지어 내릴 정도로 영월을 특별하게 대한 것은 억울하게 쫓겨나 영월로 유배 와서 죽은 단종 때문이다. 단종은 6대, 숙종은 19대로 세대 차가 200년 이상 나고 숙종은 단종을 몰아낸 세조의 직계 후손이지만 공자와 주공을 받드는 성리학적 가치관이 근본인 조선왕조에서 세조의 반정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자신이 왕이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는 세조 이후 왕들의 정통성과도 연결되어 왕실의 권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였다. 이렇게 해서 숙종은 1681년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승격한 데 이어 1698년에는 단종으로 복위하고 단종의 부인은 정순왕후 시호를 내렸다. 단종의 무덤도 장릉(莊陵)으로 명명해 왕릉으로 승격시켰다. 다만 이런 일련의 조치가 세조의 잘못을 용인하는 결과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숙종은 단종의 하야와 죽음은 이를 강요한 신하들의 잘못이지 세조의 잘못이 아니라는 명분도 내세웠다.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천 변에 있던 청허루와 빙허루를 소재로 쓴 시를 보자. 주천은 단종이 영월 청령포로 유배 갈 때 지나간 길목이다.
숙종 어제시 편액. 오른쪽 4행부터 7행까지가 숙종의 시다
聞設雙樓在酒泉(문설쌍루재주천) 듣자니 주천에는 두 개의 누가 있다던데
幾逕葺理尙能全(기경즙리상능전) 얼마나 수리를 많이 했기에 지금껏 온전한가
峨峨石壁靑雲接(아아석벽청운접) 아득한 바위절벽 푸른 구름 접하고
洋洋澄江碧水連(양양징강벽수련) 도도하고 맑은 강은 푸른 물이 이어지네
山鳥好禽鳴樹上(산조호금명수상) 산새와 예쁜 새는 나무 위에서 우짖고
野花春草映階前(야화춘초영계전) 야생화와 들꽃은 계단 앞에 비치네
携登宮醞呼兒酌(휴등궁온호아작) 술 들고 올라 아이 불러 따르게 하니
醉倚欄干白日眠(취의난간백일면) 취한 채 난간에 기대 낮잠에 드네
(필자 역)
성인을 흠모한다는 뜻의 모성헌 현판도 함께 걸려 있다. 여기서 성인은 숙종을 가리키는 듯하다 
1915년 건립되어 편액은 몇 개 걸려 있지 않다
요선정 아래 주천강 강변에는 동그랗게 파인 바위인 돌개바람구멍이 신기하다
요선정 자리는 통일신라 때 철감국사 도윤과 징효대사가 흥녕선원(법흥사의 전신)을 세우고 자주 와서 포교를 했다고 하며, 지금도 당시의 마애불과 석탑이 남아 있어 암자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폐사되지 않았나 싶다.
요선정이 자리한 강변 언덕은 해발 300m 정도로 다른 산줄기와는 완전히 분리된 독립봉이다. 주변 저지대가 이미 해발 270m나 되어 실제 높이는 40m 남짓이지만 주천강 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뤄 일대에서는 헌칠한 고도감으로 우뚝 솟아 있다. 정자는 정면 측면 각 2칸의 작은 규모여서 어딘가 애처로움을 더한다.
언덕 아래에는 근래에 지은 듯한 미래암이 있고, 강변에는 급류가 바위를 둥글게 깎아 만들어낸 기이한 암반이 분포하며 바위에 움푹움푹 생긴 형태를 돌개바람구멍이라고 한다.
아차, 술 한 병 들고 오는 걸 깜빡했다. 숙종도 이런 경치에는 술 생각을 금치 못했는데….
필자의 찬시.
偶過 邀僊亭(우과 요선정) 우연히 요선정을 지나며
江曰酒泉必酒仙(강왈주천필주선) 강 이름 술샘이니 필시 주선 있으리
廢庵深處奇巖偃(폐암심처기암언) 옛 절터 깊은 곳에 기이한 바위 삐딱한데
仙人一去何必待(선인일거하필대) 떠나간 선인 기다려 무엇하리
獨酌自樂何有繁(독작자락하유번) 혼자 마시며 즐기니 뭔 번거로움 있으리
글/사진 김병훈 대표
과연 무릉도원이구나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주천강을 바라보며 강변 언덕에 높직이 자리한 요선정. 절벽 높이는 40m 정도
폐사된 암자터에 자리해 훼손된 석탑과 마애불이 정자와 함께 있는 기묘한 풍광이다
마애불 뒤편 암벽에서 바라본 주천강 상류 방면. 소나무 고목이 그윽한 운치를 발한다
가히 별세계다. 지역은 무릉도원면이요, 발아래 흐르는 강물은 술이 샘솟아 흐르는 주천(酒泉)이니 신선놀음으로 이만한 곳이 있을까. 주천강 강변에 우뚝한 언덕에 올라선 정자의 이름도 신선을 맞이한다는 요선정(邀僊亭)이다.
치악산(1288m)과 백덕산(1350m) 사이 깊고 깊은 산간협곡에 자리한 무릉도원면은 교통이 사통팔달한 지금도 신비의 별세계를 뜻하는 무릉도원 이름에 걸맞다. 원래는 수주면(水周面)이었으나 2016년 무릉리와 도원리에서 이름을 따와 무릉도원면이 되었다. 현실 속 무릉도원의 핵심은 단연 5대 적멸보궁에 드는 법흥사일 것이다. 백덕산과 연이은 사자산(1180m) 깊은 골짜기 끝에 터 잡아 공간적인 격리감이 지금도 대단하다. 이 법흥사로 이어지는 주천강변 언덕 위에 요선정이 있다. 원래는 법흥사에 딸린 암자가 있었다고 하며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이 기막힌 자리를 선비들에게 내준 것 같다.
절벽 위 기막힌 자리에 있는 요선정
요선정 상공에서 바라본 주천강 상류 방면. 물길은 치악산으로 이어진다
요선정 하류 방면. 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지독한 사행천을 이루면서 서강으로 합류한다
요선정의 입지와 외견은 고색창연하고 깊은 이야기를 담은 것 같지만 실은 근래인 1915년에 세워져 이제 갓 100년을 넘었다. 인근 무릉리의 계모임인 요선계가 정자를 건립했고, 숙종이 직접 지은 어제시(御製詩)를 보관중이던 주천면소재지의 청허루가 훼손되어 이를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숙종이 직접 시를 지어 내릴 정도로 영월을 특별하게 대한 것은 억울하게 쫓겨나 영월로 유배 와서 죽은 단종 때문이다. 단종은 6대, 숙종은 19대로 세대 차가 200년 이상 나고 숙종은 단종을 몰아낸 세조의 직계 후손이지만 공자와 주공을 받드는 성리학적 가치관이 근본인 조선왕조에서 세조의 반정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자신이 왕이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는 세조 이후 왕들의 정통성과도 연결되어 왕실의 권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였다. 이렇게 해서 숙종은 1681년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승격한 데 이어 1698년에는 단종으로 복위하고 단종의 부인은 정순왕후 시호를 내렸다. 단종의 무덤도 장릉(莊陵)으로 명명해 왕릉으로 승격시켰다. 다만 이런 일련의 조치가 세조의 잘못을 용인하는 결과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숙종은 단종의 하야와 죽음은 이를 강요한 신하들의 잘못이지 세조의 잘못이 아니라는 명분도 내세웠다.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천 변에 있던 청허루와 빙허루를 소재로 쓴 시를 보자. 주천은 단종이 영월 청령포로 유배 갈 때 지나간 길목이다.
숙종 어제시 편액. 오른쪽 4행부터 7행까지가 숙종의 시다
聞設雙樓在酒泉(문설쌍루재주천) 듣자니 주천에는 두 개의 누가 있다던데
幾逕葺理尙能全(기경즙리상능전) 얼마나 수리를 많이 했기에 지금껏 온전한가
峨峨石壁靑雲接(아아석벽청운접) 아득한 바위절벽 푸른 구름 접하고
洋洋澄江碧水連(양양징강벽수련) 도도하고 맑은 강은 푸른 물이 이어지네
山鳥好禽鳴樹上(산조호금명수상) 산새와 예쁜 새는 나무 위에서 우짖고
野花春草映階前(야화춘초영계전) 야생화와 들꽃은 계단 앞에 비치네
携登宮醞呼兒酌(휴등궁온호아작) 술 들고 올라 아이 불러 따르게 하니
醉倚欄干白日眠(취의난간백일면) 취한 채 난간에 기대 낮잠에 드네
(필자 역)
성인을 흠모한다는 뜻의 모성헌 현판도 함께 걸려 있다. 여기서 성인은 숙종을 가리키는 듯하다
1915년 건립되어 편액은 몇 개 걸려 있지 않다
요선정 아래 주천강 강변에는 동그랗게 파인 바위인 돌개바람구멍이 신기하다
요선정 자리는 통일신라 때 철감국사 도윤과 징효대사가 흥녕선원(법흥사의 전신)을 세우고 자주 와서 포교를 했다고 하며, 지금도 당시의 마애불과 석탑이 남아 있어 암자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폐사되지 않았나 싶다.
요선정이 자리한 강변 언덕은 해발 300m 정도로 다른 산줄기와는 완전히 분리된 독립봉이다. 주변 저지대가 이미 해발 270m나 되어 실제 높이는 40m 남짓이지만 주천강 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뤄 일대에서는 헌칠한 고도감으로 우뚝 솟아 있다. 정자는 정면 측면 각 2칸의 작은 규모여서 어딘가 애처로움을 더한다.
언덕 아래에는 근래에 지은 듯한 미래암이 있고, 강변에는 급류가 바위를 둥글게 깎아 만들어낸 기이한 암반이 분포하며 바위에 움푹움푹 생긴 형태를 돌개바람구멍이라고 한다.
아차, 술 한 병 들고 오는 걸 깜빡했다. 숙종도 이런 경치에는 술 생각을 금치 못했는데….
필자의 찬시.
偶過 邀僊亭(우과 요선정) 우연히 요선정을 지나며
江曰酒泉必酒仙(강왈주천필주선) 강 이름 술샘이니 필시 주선 있으리
廢庵深處奇巖偃(폐암심처기암언) 옛 절터 깊은 곳에 기이한 바위 삐딱한데
仙人一去何必待(선인일거하필대) 떠나간 선인 기다려 무엇하리
獨酌自樂何有繁(독작자락하유번) 혼자 마시며 즐기니 뭔 번거로움 있으리
글/사진 김병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