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만보(1)

자생투어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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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소장품, 아쉬운 디테일

 

건물 길이만 400m에 달하는 거대한 국립중앙박물관. 가운데 통로광장에서는 남산이 액자의 풍경화처럼 보인다 


‘이 방대한 유물을 겨우 1~2시간에 훑고 지났단 말인가.’

서울 남산 남쪽, 용산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수요일과 토요일 밤 9시까지 개장하는데 어느 수요일 밤, 관람객이 거의 없는 전시관에서 나는 탄식을 거듭했다. 그동안 여러 번 다녀갔건만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여서 대충 둘러보는 데 그쳤고 혼자서 찬찬히 돌아보다 보니 3시간 동안 선사·고대관도 다 보지 못했다. 내내 서서 봐야 하기에 발과 다리가 아프고 집중력이 떨어져 3시간 정도가 한계였다. 이 날을 계기로 틈이 날 때마다, 특히 야간개장에 맞춰 4번을 연속 다녀왔지만 60% 밖에 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두 번은 더 가야할 것 같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직업 상 지역 박물관도 찾곤 하지만 대개는 시간에 쫓겨 대충 돌아보고 나오기 십상이어서 이번을 계기로 크게 반성하고 있다.

 

박물관 관람은 독서, 여행과 더불어 지적 자산의 충족과 획득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글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유물을 직접 만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유물 유적의 변천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인류가 개척해온 문명사를 한 장소에서 안락하고 총체적으로, 그것도 실물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박물관 중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대 규모, 최고 권위를 자랑하며, 현재의 건물은 2005년 개관했다. 야외정원을 포함한 대지면적이 29만5천㎡(약 9만평)에 달하고, 길이 400m, 높이 43m, 연면적 13만8천㎡(약 4만2천평)에 이르는 거대한 건물에는 유물 15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상설 전시 유물만 1만 점에 달해 세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러니 4번에 걸쳐 10시간 이상 관람했어도 60%밖에 못 본 것은 당연하다. 물론 대충 훑으면서 주요 유물만 돌면 1시간에도 끝낼 수 있고 박물관 안내서에도 ‘추천동선’으로 안내하고 있으나 그렇게 해서 박물관을 제대로 봤다고는 할 수 없다.

시간 제약 없이 느리게 자세히 관람하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발견하고 기존 지식을 확장하는, 풍족하고 여유로운 시간이었지만 작은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특히 상상 이상으로 많은 외국인 관람객 숫자에 놀랐는데, 이들에게는 한국의 과거와 뿌리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해서 사소하지만 개선되었으면 하는 디테일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 편부터는, 잘 알려진 유물 말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유물 - 마이픽을 소개한다.


- 진입로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로 방문할 경우 박물관 주차장 입구 표지판이 너무 작아 길을 놓칠 뻔 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공간인 만큼 더 크고 잘 보이는 표지판으로 바꾸고, 도보 관람용 입구 역시 조형물은 있으나 박물관을 알리는 표지판이 부족하다.


- 본관 입구 안내판 훼손

본관과 정원 사이 광장에 있는 안내판은 햇빛에 그을려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

 

- 본관 내부 생수대 관리

본관 내부에는 층마다 생수대가 몇 군데 설치되어 있는데 관리 상태가 청결하지 않은 편이다. 접이식 종이컵은 박스 위쪽이 흉하게 뜯겨진 채이고, 여분의 박스가 질서 없이 놓여 있다.

 

- 구석기시대와 인류 출현의 간극

구석기시대 입구 설명문에는,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플라이스토세 중기(약 78~13만 년 전)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내부에 ‘인류의 진화와 한반도’ 해설문에는 “약 440만 년 전 아프리카에는 아르디피테쿠스 등과 같이 초보적인 두발 걷기를 하는 인류가 살고 있었다. 이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 다양한 옛 인류가 등장하고 사라지면서 지금과 같은 현행 인류(약 6~5만 년 전)의 모습으로 진화하였다. 한반도에서는 현재까지 호모 사피엔스 이전 단계의 옛 인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의문을 낳는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 단계의 인류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구석기시대는 78만년 전까지 거슬러 오른다면,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인류는 누구란 말인가.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 일제강점기 표현 / 미군정기 누락

시대구분에서 ‘일제강점기’의 ‘강점’ 표현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중년 이후라면 ‘일제시대’ ‘일정기’로 배웠고, 가치중립적이어야 할 고고학, 역사학 영역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일제강점기’로 쓰고 있지만 학문적 표현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또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사이 3년 간 ‘미군정기’가 누락되어 있다.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이 3년간의 공백이 무슨 시기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 원랑선사 탑비 / 경천사 십층석탑 높이 누락

본관 복도에는 원랑선사 탑비(보물)와 경천사 십층석탑(국보)이 나란히 서 있다. 정밀한 조각과 비례, 웅장미가 일품인 걸작이다. 하지만 설명문에 매우 중요한 제원인 높이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할 수 없이 휴대폰으로 따로 검색을 해서 알아봤다. 원랑선사 탑비 3.95m, 경천사 십층석탑 13.5m로 같은 종류에서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

 


- 유물의 시기보다 발굴 시기가 중요?

구석기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를 아우르는 ‘선사·고대관’은 유물의 제작시기가 빠진 대신 발굴시기만을 적시한 유물이 적지 않다. 발굴시기는 전문 학자 외에는 별로 의미가 없고 유물의 제작시기가 중요한데 이것이 누락되어 궁금증을 남긴다. ‘4~5세기’ 등 수 세기에 걸친 막연한 기간이라도 표시를 해주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 칼과 창 등 길이 표시 없음

‘선사·고대관’에는 칼과 창 등의 유물이 적지 않은데 대부분 길이와 폭 등 기본적인 제원 표시가 누락되어 있다. 크기가 중요한 유물인 만큼 기본적인 제원은 꼭 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화왕산성 출토 칼의 검(劍)/도(刀) 혼용 표시

창녕 화왕산성 출토 제사 유물 중에 엄청난 장도가 전시되어 있어 놀랐다. 최근에 국보로 지정된 이순신 장군의 장검에 필적하는 크기다. 이순신 장군 장검은 길이가 2m에 육박하고 무게는 4.3kg에 달해(일반 장검은 길이 1m, 무게 1kg 내외) 실전용으로 보기 어려웠는데, 비슷한 크기의 장검이 제사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들 장검은 역시 위세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길이 표시가 누락되어 있고, 칼날 하단 좌우에 검(劍)과 도(刀) 표기가 엇갈려 있어 혼동을 준다. 검은 양쪽에 날이 있는 칼이고 도는 한쪽에만 날이 있는 칼이다. 하나의 칼에 검과 도가 섞인 것인지, 오류인지 알 수가 없다(녹이 슬어 육안으로는 확인 불가).


- 고대 무덤양식 한글전용

고대의 무덤양식을 ‘돌무지무덤’(적석분, 積石墳), ‘돌덧널무덤’(적석목곽분, 積石木槨墳) 등 한글로만 표기해 한자식 표기로 배웠던 세대는 이해가 쉽지 않다. 한자명칭을 병기하고, 무덤형식을 구분할 수 있는 일목요연한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 남북국시대와 통일신라

중년 이상이라면 ‘남북국시대’라는 명칭이 어색할 것이다. 역사에서 배운 적이 없지만 언제부턴가 통일신라시대가 남북국시대로 바뀌었는데, 통일신라시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고구려를 계승하며 존속한 발해를 감안한 명칭이다. 하지만 발해는 기록과 유물이 많지 않고 끝까지 신라와 교류하지 않아 우리 역사에서는 약간 어정쩡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통일신라 유물의 설명란에 ‘남북국시대(통일신라)’로 표기한 점이다. 통일신라의 유물이니 반대로 ‘통일신라(남북국시대)’가 되어야 한다. 백제의 출토품을 ‘삼국시대(백제)’라고 표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 신라 토기 분류

경주가 근 1천년 간 신라의 수도로 유지되고 또 왕조교체에도 크게 파괴되지 않아 최근세의 조선을 제외하면 신라의 유적 유물이 가장 많다. 신라관에는 시대와 형태 순으로 수백 개의 토기를 6단 6칸으로 모아 놓았는데 설명이 간략해서 어떤 토기가 어떻게 변화 발전한 것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반면 가야토기는 연맹체별로 구분하고 특징을 소개해 알아보기 쉬웠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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