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백암산 케이블카

자생투어
2023-09-10
조회수 214

'비목'의 무대, 최전방 1178m 고지를 단숨에

백암산을 오르는 케이블카. 선로 길이 2.12km, 상하 승강장 고도차 750m의 거대한 스케일이다

잘 알려진 가곡 ‘비목(碑木)’을 읊조릴 때마다 슬픔과 안타까움, 분노의 복합 감정을 금할 수 없다. 이름 없는 무명용사의 무덤, 그나마 작은 비목이 서 있어 누군가의 주검이 묻혀 있음을 말해줄 뿐인 그 실제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감흥의 강도가 다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비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 한명희 시, 장일남 작곡

* 초연(硝煙) : 화약 연기    * 초동(樵童) : 나무하는 아이

* 궁노루 : 사향노루과에 속하며, 뿔이 없고 위턱 송곳니가 입 밖으로 나와 있음

백암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케이블카. 정상 너머는 남방한계선이 지척이다  

비목은 사실 사전 상에도 없는 말이다. 돌로 만드는 비석(碑石) 대신에 나무로 비를 세웠으니 비목인데, 돌과 달리 세월 따라 썩고 말라 비틀어져 사라져버릴 시한부 존재다. 전장에서 급한 대로 전우의 시체를 묻고 비목을 세우고 철모를 걸었으리라.

알려져 있듯이 가곡 ‘비목’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작사를 한 한명희 씨가 화천 백암산에서 군복무 중 우연히 비목을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에 시를 지은 것이 1967년이고, 여기에 작곡가 장일남 씨가 곡을 붙여 1969년 발표했다. 이 비목을 테마로 한 공원이 ‘평화의 댐’에 조성되어 있으나 원래의 무대는 댐에서 한참 북쪽, 최전방에 자리한 백암산(1178m)이다.

비목 아래 누운 무명용사도 20대 젊은이였고 작시한 한명희 씨도 발견 당시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추억을 애달파하는 심사를 처절하게 공감한다. 언제 생명이 스러질지 모르는 전장에서 고향과 추억만큼 간절하게 그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일상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20대 절정의 청춘에 나라를 지키다 희생한 그 무명용사와 모든 선열에게 우리는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케이블카 조감도(구글어스). 백암산 남사면에 선로가 나 있고, 맑은 날에는 북측의 임남댐(금강산댐)과 금강산 비로봉, 채하봉이 잘 보인다

‘비목’의 현장 백암산에 케이블카가 생겼다. 민통선에서 한참 북쪽에 있고 DMZ 남방한계선에 접한 최전방인데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정말 놀랐다. 허가와 건설 과정이 대단히 복잡한 이 일을 해낸 모든 당국에 감사할 따름이다. DMZ를 따라 각 사단에서 운영하는 전망대는 10여 곳 있으나 고도가 낮고 여러 이유로 통제되는 경우가 많으며, 차량이나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해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케이블카는 올라가는 도중에 주변 경관을 볼 수 있고 험한 길을 가지 않아도 누구나 편하게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어 관광유발 효과가 매우 크다.

백암산 케이블카는 22년 10월 개장했다. 길이는 2.12km이고 백암산 정상 직전까지 올라간다.

민통선을 통과해서 최전방 고지까지 가는 여정이라 수속이 다소 복잡해, 셔틀버스 탑승을 포함한 총 관람시간이 3시간이나 된다.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여정이 될 것이다. 특히 대기가 맑고 산정에 구름이 끼지 않은 날은 북한의 금강산과 금강산댐(임남댐) 그리고 설악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평화의댐 북쪽 북한강을 건너는 안동철교. 추후 이 길을 통해서도 평화의댐으로 갈 수 있을 전망이다

집결지는 화천읍 외곽에 있는 화천체육관이다. ‘백암산 케이블카’ 홈페이지에서 최소 3일 전에 신청을 하고 현장에서 매표하면 된다. 사전 신청 없이 현장 매표도 가능하지만 예약 인원이 넘칠 경우 다음 회차로 넘어갈 수 있다. 케이블카는 하루 4회만 운행한다. 매표 전에 스마트폰의 사진 기능이 정지되는 ‘국방모바일보안’ 앱을 깔아야 한다. 이는 민통선 내부 군 시설을 지나가기 때문인데, 백암산 정상에 도착하면 앱을 삭제하고 촬영이 가능하다.

화천체육관에서 케이블카 하부승강장까지는 무려 30km나 되고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셔틀버스로 50분 정도 걸린다. 민통선을 지나면 1차로 정도로 좁아져 군용차량 소통을 위해 셔틀버스를 도입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총소요시간이 3시간이 걸리는데 요금 1만9000원은 너무 저렴하게 느껴진다. 같이 탄 사람들도 이 정도 여정이면 5만원은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입을 모았다.

백암산 정상 표지석. 기념사진 포인트다. 뒤쪽 벽에는 임남댐 사진이다

셔틀버스 이동 과정 자체가 작은 여행이다. 화천읍내를 벗어나 파로호를 굽어보는 일산(해산, 1190m)을 지나 한묵령(530m)을 넘으면 민가가 완전히 끊어지고 무인지경의 원시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길은 구절양장으로 굽이치면서 평화의댐으로 막힌 북한강 방면으로 내려가다 마침내 민통선 초소를 통과한다. 역시 삼엄한 최전방이라 헌병 간부가 승차해 보안 앱을 깔았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건장한 젊은이가 이런 심심산골에서 근무한다는 게 정말 대견스럽다.

북한강을 건너는 안동철교가 바로 옆으로 보인다. 해산령을 넘지 않고 안동철교를 건너 평화의 댐으로 갈 수 있는데, 몇 번 열린 적이 있으나 현재는 일반인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가이드는 이 도로 개방을 협의 중이라고 하니 머지않아 다시 열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저편으로 백암산과 케이블카가 슬쩍 보이기 시작하지만 워낙 좁은 길이고 극심하게 구불거려 아직도 한참을 가야 한다. 이런 길에서 대형버스를 운전하는 여성 기사분이 대단하다.

백암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내부에서 북한 방면을 볼 수 있으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육군 제7사단 칠성부대가 관장하는 백암산 일대는 6.25 당시 격전지였다. 지금도 이렇게 멀고 험한 오지인데 당시는 얼마나 외지고 궁벽한 산지였을까. 걷기도 힘든 험산에 적탄은 물론, 보급과 추위, 더위와 싸우며 고생했을 국군에 감사와 안타까움이 겹친다. 이렇게 안락하고 안전하게 찾아온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케이블카는 8인승 정도의 작은 캐빈 수십대가 연속으로 다니는 곤돌라가 아니라 46인승 대형 캐빈 2대가 교대로 운행하는 방식이다. 상하부 승강장의 고도차가 750m나 되어 국내 케이블카 중 4위다(가리왕산, 덕유산, 금오산 순).

케이블카는 백암산 남사면에 가설되어 고도가 높아지면 남쪽의 산하가 펼쳐진다. 가까이는 일산이 둔중하고, 저 멀리 구름을 붙잡고 있는 설악산(1708m)과 가리봉(1519m)이 아득하다. 66km나 떨어진 설악산을 볼 수 있는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부승강장에 도착하면 정상에 세워진 백암산 케이블카 전망대까지 50m 정도 걸어가야 한다. 주위는 온통 철망으로 막혀 있고 사진촬영은 금지된다. 전망대 앞마당에서 보안 앱을 삭제하고 정해진 구역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 카메라를 높이 들거나 남북 어느 쪽이든 담장 너머 풍경을 찍으려면 헌병의 고함소리가 터진다. 워낙 중요한 최전방 고지이니 어쩔 수 없는 규제로 이해한다.

하산 중에 바라본 적근산(뒤, 1071m). 오른쪽 능선 위에 비목의 무대가 된 백암OP가 있다

백암산 전망대에 들어서면 북한측이 훤히 보인다. 우리에게는 수공 위협으로 평화의 댐을 건설하게 만든 금강산댐(임남댐)과 호수가 멀지 않고, 그 뒤 수많은 산줄기 너머로 보이는 두 고봉은, 금강산 비로봉(1638m)과 채하봉(1588m)이다. 직선으로 53km이니 설악산보다 가깝다. 금강과 설악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니 한편 반갑고 한편 가슴 아프다. 언제나 저 북녘의 산하를 마음대로 달려볼 건가.

가까운 북쪽으로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따라 수많은 초소가 도열해 있고 초소를 연결하는 도로가 녹색 수림 위에 하얀 생채기를 내며 구불거린다. 저 초소마다 창창한 젊은이들이 일상의 즐거움을 희생하고 밤을 새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까운 대지다. 휴전선 250km에 남북으로 각각 2km의 DMZ가 있으니 총면적이 1000㎢에 달한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땅에 서울(605㎢)의 1.7배나 되는 광대한 면적이 국토의 허리를 자르는 단절선이 되고 있다. 70년 이상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자연이 보존되었다지만 살벌한 지뢰지대이기도 하니, 통일이 된다고 해도 처리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인간의 비합리성을 여기서 절감한다.

정상 직하에 있는 상부 승강장

안내사진에 소개된 임남댐(금강산댐). 백암산에서 16km 거리다

남쪽의 수리봉(1057m) 너머로 중부내륙 최고봉인 화악산(1468m.,오른쪽)과 응봉(1436m) 쌍봉이 구름 위로 솟아 있다

가까운 동쪽으로는 거대한 철탑이 선 북측의 어은산(1277m)이 둔중하고, 서쪽으로는 강추위로 악명 높은 최전방 고산인 적근산(1071m)과 대성산(1175m)이 원근으로 겹쳐 보인다. 남서쪽으로는 중부지대 최고봉인 화악산(1468m)과 응봉(1436m)이 구름을 이고 아스라하다.
정상 바로 서쪽 주능선 위에 있는 백암OP가 ‘비목’의 무대라고 해설사가 설명해준다. 가사에서는 ‘깊은 계곡 양지녘’이라고 했으니 OP 북쪽으로 흐르는 능선 아래 어디쯤일까.

여기서는 개인행동이 허용되지 않고 동선도 제한된다. 가이드가 내려갈 시간이라고 하면 줄지어 따라가야 한다. 조금은 불편하고 부자유스럽지만 평소에 볼 수 없는 산악 경관과 DMZ의 살풍경을 실감할 수 있는, 정말 특별한 케이블카 여행이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 케이블카 이용시간 : 09:30/10:00/13:00/13:30 (20분 전까지 화천체육관 집결)

* 요금 : 대인 1만9000원, 소인 1만4000원

* 매주 월요일 정기 휴일. 기상 악화 시 또는 군 작전 시 휴업하므로 사전 확인 필요

* 신분증 필참. 문의 033-440-2708 또는 홈페이지(‘백암산 케이블카’ 검색)

 

 

 

 


0 0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6로 21, 508호

고객센터 : 010-7667-6726(문자전용)

EMAIL : bicycle_life@naver.com

업무시간 : 10:00 ~ 16:00| 점심시간 : 12:30 ~ 13:30 

(토/일/공휴일 휴무)

사업자등록번호 : 851-41-00134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2017-서울강서-0690호

대표자 : 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