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자전거 보급을 이끈 명작, 하이휠 자전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앞바퀴를 50인치(약 130cm)까지 키우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이 빈 림을 사용했다. 휠 강성을 유지하기 위한 교차식 스포크도 도입되었다. 사진은 1888년 독일에서 제작된 모델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총집약해 놓은 ‘박물관’은 한 국가나 사회의 특정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국내에는 각 분야별로 박물관이 수없이 존재하지만 자전거 박물관은 대단히 빈약하다.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상주 자전거박물관은 전시 내용이 빈약하고 클래식 모델은 대부분 복제품이며, 지방의 외진 곳에 자리해 찾는 이도 많지 않다. 수도권에는 부천시자전거문화센터에 소규모의 자전거 전시관이 있으나 클래식 모델은 모두 복제품이다. 당시 사람들의 손때와 기술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오리지널 모델이 아니라면 박물관의 취지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박물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으나 서울 용산역 맞은편 LS용산타워에는 오리지널 클래식 모델 20여대가 전시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자전거 매니아로 알려진 LS그룹 구자열 전 회장(현 LS그룹 이사회 의장)의 개인 소장품이다. 구 의장은 이들 소장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자전거박물관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잠정적으로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리지널 모델의 상태와 시대별 구비가 훌륭해 웬만한 해외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소장품은 LS용산타워 1, 2층 로비와 복도에 전시되어 있으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유리 상자 내부에 보존되고 있어 햇빛과 주변의 비침으로 인해 자세한 관람이 어렵고, 촬영 사진 역시 반사로 인해 선명치 않음을 양해 바란다. 당시대의 오리지널 모델로 유럽 현지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전시품을 일부 소개한다.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Draisine, 1817년 독일)
독일의 칼 폰 드라이스 남작이 1817년 발명한 자전거로, 최초의 자전거로 인정받는다. 프랑스에서는 1790년 ‘셀레리페르’라는 두바퀴 탈 것이 등장했지만 단순히 두 바퀴를 일직선으로 연결한 정도여서 조향장치를 갖춘 드라이지네를 최초의 자전거로 본다. 아래쪽 안장에 앉아 팔꿈치를 위쪽 받침대에 대고 핸들바를 조작하는 방식이다. 두 발로 땅을 박차서 움직이며, 생각보다 빠르고 편리해서 꽤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는 드라이지네를 바탕으로 다양한 개선과 개발이 이뤄지며 자전거가 발전해 나간다. 전시품은 약간의 개선이 이뤄진 모델로 안장과 핸들바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볼렌쉴레거 드라이지네(Wollenschläger Draisine, 1820년 독일)
독일의 볼렌쉴레거가 제작한 드라이지네로, 말로 추정되는 동물 형태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사각형 핸들바는 위는 물론 좌우로도 잡을 수 있다. 안장이나 핸들바 높이 조절 장치는 없으며, 안장은 목재 프레임 위에 쿠션을 가미한 가죽을 걸쳐 놓은 모양이다.
미쇼 벨로시페드(Michaux Velocipede, 1865년 프랑스)
프랑스의 대장장이 피에르 미쇼는 1860년 드라이지네 앞바퀴에 페달을 단 자전거 ‘벨로시페드’를 개발했다. 벨로시페드는 미쇼가 1868년 회사를 설립하고 대량생산을 시작하면서 역사상 최초로 양산된 자전거로 기록되었다. 페달 덕분에 발을 떼기는 했지만 나무에 쇠를 덧씌운 바퀴는 충격흡수가 전혀 되지 않았고, 당시 노면 사정도 나빠서 뼈를 흔들 정도로 흔들린다고 해서 영국에서는 ‘본쉐이커(bone shaker)’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었다. 전시품은 아동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안장 부위의 철판을 길게 휘도록 장치해서 약간의 충격흡수 효과를 노렸고, 앞바퀴는 직접 압착식, 뒷바퀴는 케이블로 작동하는 브레이크를 단 것이 주목된다.
서스펜션 벨로시페드(Suspension Velocipede, 1869년 프랑스)
악명 높은 벨로시페드의 승차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충격흡수용 서스펜션 장치를 단 모델이다. 앞 서스펜션은 지금도 트럭 등에 사용되는 판스프링 방식이고, 긴 철판 위에 자리한 안장 역시 약간의 서스펜션 기능을 발휘한다. 이처럼 드라이지네부터 하나씩 단점을 극복하며 조금씩 개선, 발전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하이휠 자전거(Ordinary, 1888년 독일)
1871년 벨로시페드를 이용한 최초의 자전거 경기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보다 빠른 속도를 추구하게 된다.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James Starley)는 벨로시페드를 기본으로 하되 페달이 달린 앞바퀴만 크게 만든 자전거를 발명한다. 바퀴가 크면 속도도 빨라지는 원리에 착안한 것이다. 앞바퀴가 커진 대신 무게를 줄이고 승차가 쉽도록 뒷바퀴는 작아졌는데, 큰 바퀴를 사용해 ‘빅 휠(Big wheel)’ 혹은 ‘하이휠’, 보편적인 형태라는 뜻의 ‘오디너리(Ordinary)’라고 불렸다. 크기가 다른 당시의 동전에 빗대어 페니파딩(Penny-farthing)이라고도 한다.
오디너리는 가는 철선으로 된 스포크를 이용해 바퀴를 만들고 통고무 타이어를 끼워 승차감이 향상되었다. 전체 무게는 20kg 정도로 가벼워 경주용 모델은 시속 40km 이상의 고속으로 달릴 수 있어서 지금의 자전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앞바퀴 지름이 최대 1.5m에 달한 오디너리는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덕분에 자전거 경기도 순식간에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오디너리는 빠르고 승차감도 좋은 데다 디자인도 멋져 지금까지도 클래식 자전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클레멩 세이프티(Clement Safety, 1889년 프랑스)
하이휠 자전거는 앞바퀴가 너무 크고, 안장이 앞바퀴 바로 위에 있어서 승하차가 불편하며, 장애물에 걸릴 경우 앞으로 고꾸라질 위험성이 높았다. 이런 결점을 해결한 것이 세이프티(Safety)로, 이름부터 아예 ‘안전’이다.
1874년 영국의 해리 로손은 앞뒤 바퀴의 크기를 같게 하고 앞바퀴에 페달을 다는 대신, 두 바퀴 중간에 설치한 크랭크의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뒷바퀴를 구동시키는 세이프티를 개발한다. ‘안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안장에 오르내리기 쉽고 달리기도 수월하며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자전거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세이프티는 지금도 사용되는 다이아몬드 형상의 마름모꼴 프레임을 도입해 현대적인 자전거의 원형이 되었다. 이후의 모든 자전거는 세이프티를 기초로 소재와 부품, 구조가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이프티가 사실상 현대적 자전거의 시초인 셈이다.
전시품은 1889년 프랑스 자전거 업체 ‘클레멩’이 제작한 세이프티로, 현대적인 체인 구동과 공기타이어, 스포크 휠, 서스펜션 안장은 물론 앞뒤 바퀴에도 판스프링 타입의 서스펜션 장치를 추가한 혁신적인 모델이다. 승차감의 혁신을 가져온 공기타이어는 1887년 영국의 던롭이 처음 개발했다.
럿지 로타리 트라이시클(Rudge Rotary, 1885년 영국)
자전거의 대유행기였던 19세기말은 하이휠 자전거, 세이프티와 더불어 세 바퀴의 트라이시클도 많이 등장했다.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럿지 로타리 모델은 하이휠 자전거의 2배 가격이었으나 인기가 높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최초의 트라이시클로 기록된다. 페달 구동으로 왼쪽의 큰 휠을 돌리고, 오른쪽 두 휠은 조향용이다. 오른쪽 두 바퀴는 서로 연결되어 길쭉하게 나온 조향 손잡이를 돌리면 기어 장치를 통해 앞뒤 바퀴가 함께 꺾여 조향을 쉽게 해준다. 속도와 조향성을 동시에 구현한 멋진 구조다.
소형 트라이시클(Youth Tricycle, 1889년 국가미상)
19세기말 자전거는 많이 보급되었지만 성인용 사이즈 한 가지뿐인데다 배우기도 쉽지 않아서 청소년과 여성을 위한 소형 세발자전거(트라이시클)가 유행했다. 외관이 아름답고 타기 쉬워 특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촉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자전거가 ‘여성해방’의 선도자임은 국내에는 덜 알려져 있다. 앞뒤 모두 상당히 큰 바퀴를 달았지만 뒷바퀴에는 디퍼렌셜(차동장치)이 적용되지 않아 코너링은 불편했을 것이다.
십자형 프레임 세이프티(Safety with cross frame, 1889년 국가미상)
처음 개발된 세이프티는 지금도 쓰이는 전형적인 다이아몬드꼴 프레임이었으나 전시품처럼 다운튜브를 생략한 십자형 프레임 등 다양한 형태가 시도되었다. 아래쪽에 있는 가는 철선은 프레임 강성 유지를 위해 다운튜브 대신 설치한 것이다. 변속기와 프리휠만 없을 뿐, 이즈음의 자전거는 지금의 모델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자전거 그대로 거리를 달려도 별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세이프티의 진화, 반탐(Bantam, 1893년 영국)
하이휠 자전거의 단점을 개선한 세이프티가 등장했지만 이미 하이휠 자전거에 익숙한 사람들은 세이프티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영국에서 하이휠 자전거와 세이프티의 중간 형태인 ‘반탐’이 등장했다. 프레임은 하이휠 자전거와 유사하지만 세이프티처럼 앞뒤 바퀴 크기가 같다. 대신 앞바퀴 허브에 2단 기어를 내장해 하이휠 자전거에 맞먹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드롭 핸들바와 브레이크 레버, 그립은 현대 자전거에 매우 근접해 있고, 내장 변속기는 혁신적이다.
팔 힘도 페달링 보조, 발레르 자전거(Valère, 1895년 프랑스)
혁신적인 발명가인 프랑스의 발레르가 개발한 자전거로, 핸들바를 움직여 페달링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주행 중 가만히 있는 팔이 아까웠던 발레르는 좌우 핸들바와 크랭크암을 구동 링키지로 연결해 핸들바를 상하로 움직이면 크랭크 암의 움직임을 도와주도록 했다. 팔 힘까지 구동력에 보태는 구상은 그럴 듯한데, 달리는 내내 핸들바가 상하로 움직이게 되니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싶다. 상체를 포함한 전신 운동용으로 생각한다면 멋진 구조이기도 하겠다. 얇은 철판을 나선형으로 가공한 프레임 덕분에 무게를 크게 줄였다.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더슬리 페더슨(Dursley Pederen, 1901년 영국)
네덜란드인 미카엘 페더슨은 당시 자전거 산업의 중심지였던 영국 코벤트리 지방으로 건너가 독특한 디자인의 자전거를 선보였다. 지금도 같은 디자인의 모델이 생산되고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중 하나로 꼽힌다. 치마를 입고도 승하차가 쉬운 스완넥 프레임과 해먹 형태의 안장, 현대적인 브레이크 레버와 벨, 램프 방식 헤드라이트가 인상적이다. 뒤쪽에는 내연기관 엔진을 부착해 오토바이처럼 탈 수도 있었다. 초기 오토바이는 이처럼 자전거에 엔진을 단 형태로 시작되었다.
군용 자전거 m/42(1930년 스웨덴)
자전거는 1차 세계대전부터 군용으로 활용되었다. 전시품은 스웨덴의 군용 자전거 중 가장 유명한 모델로 1950년까지 생산되었다. 뒷바퀴는 페달을 뒤로 돌리면 작동하는 코스터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고 앞바퀴는 드럼 브레이크다. 앞바퀴에는 헤드램프와 직결되는 발전기를 달았고 짐 수납용 패니어와 소총 케이스도 갖추었다. 지금의 자전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구조와 패키징을 보여준다.
BSA 트랙 경주용 자전거(1940년 영국)
영국의 군수회사인 BSA가 미국 수출용으로 제작한 경주용 모델이다. 프레임은 크롬몰리로 제작했지만 동으로 도금했고 포크는 크롬으로 도금해 화려함을 살렸다. 러그를 활용한 프레임 구조와 안장 레일 고정 방식, 시트포스트 조절 장치 등 지금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을 만큼 트랙 바이크의 기본을 잘 갖추고 있다. 스템을 길게 설계해 핸들바 위치를 전후로 바꿀 수 있게 한 것이 눈에 띈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19세기말 자전거 보급을 이끈 명작, 하이휠 자전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앞바퀴를 50인치(약 130cm)까지 키우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이 빈 림을 사용했다. 휠 강성을 유지하기 위한 교차식 스포크도 도입되었다. 사진은 1888년 독일에서 제작된 모델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총집약해 놓은 ‘박물관’은 한 국가나 사회의 특정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국내에는 각 분야별로 박물관이 수없이 존재하지만 자전거 박물관은 대단히 빈약하다.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상주 자전거박물관은 전시 내용이 빈약하고 클래식 모델은 대부분 복제품이며, 지방의 외진 곳에 자리해 찾는 이도 많지 않다. 수도권에는 부천시자전거문화센터에 소규모의 자전거 전시관이 있으나 클래식 모델은 모두 복제품이다. 당시 사람들의 손때와 기술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오리지널 모델이 아니라면 박물관의 취지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박물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으나 서울 용산역 맞은편 LS용산타워에는 오리지널 클래식 모델 20여대가 전시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자전거 매니아로 알려진 LS그룹 구자열 전 회장(현 LS그룹 이사회 의장)의 개인 소장품이다. 구 의장은 이들 소장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자전거박물관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잠정적으로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리지널 모델의 상태와 시대별 구비가 훌륭해 웬만한 해외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소장품은 LS용산타워 1, 2층 로비와 복도에 전시되어 있으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유리 상자 내부에 보존되고 있어 햇빛과 주변의 비침으로 인해 자세한 관람이 어렵고, 촬영 사진 역시 반사로 인해 선명치 않음을 양해 바란다. 당시대의 오리지널 모델로 유럽 현지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전시품을 일부 소개한다.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Draisine, 1817년 독일)
독일의 칼 폰 드라이스 남작이 1817년 발명한 자전거로, 최초의 자전거로 인정받는다. 프랑스에서는 1790년 ‘셀레리페르’라는 두바퀴 탈 것이 등장했지만 단순히 두 바퀴를 일직선으로 연결한 정도여서 조향장치를 갖춘 드라이지네를 최초의 자전거로 본다. 아래쪽 안장에 앉아 팔꿈치를 위쪽 받침대에 대고 핸들바를 조작하는 방식이다. 두 발로 땅을 박차서 움직이며, 생각보다 빠르고 편리해서 꽤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는 드라이지네를 바탕으로 다양한 개선과 개발이 이뤄지며 자전거가 발전해 나간다. 전시품은 약간의 개선이 이뤄진 모델로 안장과 핸들바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볼렌쉴레거 드라이지네(Wollenschläger Draisine, 1820년 독일)
독일의 볼렌쉴레거가 제작한 드라이지네로, 말로 추정되는 동물 형태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사각형 핸들바는 위는 물론 좌우로도 잡을 수 있다. 안장이나 핸들바 높이 조절 장치는 없으며, 안장은 목재 프레임 위에 쿠션을 가미한 가죽을 걸쳐 놓은 모양이다.
미쇼 벨로시페드(Michaux Velocipede, 1865년 프랑스)
프랑스의 대장장이 피에르 미쇼는 1860년 드라이지네 앞바퀴에 페달을 단 자전거 ‘벨로시페드’를 개발했다. 벨로시페드는 미쇼가 1868년 회사를 설립하고 대량생산을 시작하면서 역사상 최초로 양산된 자전거로 기록되었다. 페달 덕분에 발을 떼기는 했지만 나무에 쇠를 덧씌운 바퀴는 충격흡수가 전혀 되지 않았고, 당시 노면 사정도 나빠서 뼈를 흔들 정도로 흔들린다고 해서 영국에서는 ‘본쉐이커(bone shaker)’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었다. 전시품은 아동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안장 부위의 철판을 길게 휘도록 장치해서 약간의 충격흡수 효과를 노렸고, 앞바퀴는 직접 압착식, 뒷바퀴는 케이블로 작동하는 브레이크를 단 것이 주목된다.
서스펜션 벨로시페드(Suspension Velocipede, 1869년 프랑스)
악명 높은 벨로시페드의 승차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충격흡수용 서스펜션 장치를 단 모델이다. 앞 서스펜션은 지금도 트럭 등에 사용되는 판스프링 방식이고, 긴 철판 위에 자리한 안장 역시 약간의 서스펜션 기능을 발휘한다. 이처럼 드라이지네부터 하나씩 단점을 극복하며 조금씩 개선, 발전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하이휠 자전거(Ordinary, 1888년 독일)
1871년 벨로시페드를 이용한 최초의 자전거 경기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보다 빠른 속도를 추구하게 된다.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James Starley)는 벨로시페드를 기본으로 하되 페달이 달린 앞바퀴만 크게 만든 자전거를 발명한다. 바퀴가 크면 속도도 빨라지는 원리에 착안한 것이다. 앞바퀴가 커진 대신 무게를 줄이고 승차가 쉽도록 뒷바퀴는 작아졌는데, 큰 바퀴를 사용해 ‘빅 휠(Big wheel)’ 혹은 ‘하이휠’, 보편적인 형태라는 뜻의 ‘오디너리(Ordinary)’라고 불렸다. 크기가 다른 당시의 동전에 빗대어 페니파딩(Penny-farthing)이라고도 한다.
오디너리는 가는 철선으로 된 스포크를 이용해 바퀴를 만들고 통고무 타이어를 끼워 승차감이 향상되었다. 전체 무게는 20kg 정도로 가벼워 경주용 모델은 시속 40km 이상의 고속으로 달릴 수 있어서 지금의 자전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앞바퀴 지름이 최대 1.5m에 달한 오디너리는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덕분에 자전거 경기도 순식간에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오디너리는 빠르고 승차감도 좋은 데다 디자인도 멋져 지금까지도 클래식 자전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클레멩 세이프티(Clement Safety, 1889년 프랑스)
하이휠 자전거는 앞바퀴가 너무 크고, 안장이 앞바퀴 바로 위에 있어서 승하차가 불편하며, 장애물에 걸릴 경우 앞으로 고꾸라질 위험성이 높았다. 이런 결점을 해결한 것이 세이프티(Safety)로, 이름부터 아예 ‘안전’이다.
1874년 영국의 해리 로손은 앞뒤 바퀴의 크기를 같게 하고 앞바퀴에 페달을 다는 대신, 두 바퀴 중간에 설치한 크랭크의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뒷바퀴를 구동시키는 세이프티를 개발한다. ‘안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안장에 오르내리기 쉽고 달리기도 수월하며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자전거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세이프티는 지금도 사용되는 다이아몬드 형상의 마름모꼴 프레임을 도입해 현대적인 자전거의 원형이 되었다. 이후의 모든 자전거는 세이프티를 기초로 소재와 부품, 구조가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이프티가 사실상 현대적 자전거의 시초인 셈이다.
전시품은 1889년 프랑스 자전거 업체 ‘클레멩’이 제작한 세이프티로, 현대적인 체인 구동과 공기타이어, 스포크 휠, 서스펜션 안장은 물론 앞뒤 바퀴에도 판스프링 타입의 서스펜션 장치를 추가한 혁신적인 모델이다. 승차감의 혁신을 가져온 공기타이어는 1887년 영국의 던롭이 처음 개발했다.
럿지 로타리 트라이시클(Rudge Rotary, 1885년 영국)
자전거의 대유행기였던 19세기말은 하이휠 자전거, 세이프티와 더불어 세 바퀴의 트라이시클도 많이 등장했다.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럿지 로타리 모델은 하이휠 자전거의 2배 가격이었으나 인기가 높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최초의 트라이시클로 기록된다. 페달 구동으로 왼쪽의 큰 휠을 돌리고, 오른쪽 두 휠은 조향용이다. 오른쪽 두 바퀴는 서로 연결되어 길쭉하게 나온 조향 손잡이를 돌리면 기어 장치를 통해 앞뒤 바퀴가 함께 꺾여 조향을 쉽게 해준다. 속도와 조향성을 동시에 구현한 멋진 구조다.
소형 트라이시클(Youth Tricycle, 1889년 국가미상)
19세기말 자전거는 많이 보급되었지만 성인용 사이즈 한 가지뿐인데다 배우기도 쉽지 않아서 청소년과 여성을 위한 소형 세발자전거(트라이시클)가 유행했다. 외관이 아름답고 타기 쉬워 특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촉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자전거가 ‘여성해방’의 선도자임은 국내에는 덜 알려져 있다. 앞뒤 모두 상당히 큰 바퀴를 달았지만 뒷바퀴에는 디퍼렌셜(차동장치)이 적용되지 않아 코너링은 불편했을 것이다.
십자형 프레임 세이프티(Safety with cross frame, 1889년 국가미상)
처음 개발된 세이프티는 지금도 쓰이는 전형적인 다이아몬드꼴 프레임이었으나 전시품처럼 다운튜브를 생략한 십자형 프레임 등 다양한 형태가 시도되었다. 아래쪽에 있는 가는 철선은 프레임 강성 유지를 위해 다운튜브 대신 설치한 것이다. 변속기와 프리휠만 없을 뿐, 이즈음의 자전거는 지금의 모델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자전거 그대로 거리를 달려도 별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세이프티의 진화, 반탐(Bantam, 1893년 영국)
하이휠 자전거의 단점을 개선한 세이프티가 등장했지만 이미 하이휠 자전거에 익숙한 사람들은 세이프티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영국에서 하이휠 자전거와 세이프티의 중간 형태인 ‘반탐’이 등장했다. 프레임은 하이휠 자전거와 유사하지만 세이프티처럼 앞뒤 바퀴 크기가 같다. 대신 앞바퀴 허브에 2단 기어를 내장해 하이휠 자전거에 맞먹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드롭 핸들바와 브레이크 레버, 그립은 현대 자전거에 매우 근접해 있고, 내장 변속기는 혁신적이다.
팔 힘도 페달링 보조, 발레르 자전거(Valère, 1895년 프랑스)
혁신적인 발명가인 프랑스의 발레르가 개발한 자전거로, 핸들바를 움직여 페달링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주행 중 가만히 있는 팔이 아까웠던 발레르는 좌우 핸들바와 크랭크암을 구동 링키지로 연결해 핸들바를 상하로 움직이면 크랭크 암의 움직임을 도와주도록 했다. 팔 힘까지 구동력에 보태는 구상은 그럴 듯한데, 달리는 내내 핸들바가 상하로 움직이게 되니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싶다. 상체를 포함한 전신 운동용으로 생각한다면 멋진 구조이기도 하겠다. 얇은 철판을 나선형으로 가공한 프레임 덕분에 무게를 크게 줄였다.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더슬리 페더슨(Dursley Pederen, 1901년 영국)
네덜란드인 미카엘 페더슨은 당시 자전거 산업의 중심지였던 영국 코벤트리 지방으로 건너가 독특한 디자인의 자전거를 선보였다. 지금도 같은 디자인의 모델이 생산되고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중 하나로 꼽힌다. 치마를 입고도 승하차가 쉬운 스완넥 프레임과 해먹 형태의 안장, 현대적인 브레이크 레버와 벨, 램프 방식 헤드라이트가 인상적이다. 뒤쪽에는 내연기관 엔진을 부착해 오토바이처럼 탈 수도 있었다. 초기 오토바이는 이처럼 자전거에 엔진을 단 형태로 시작되었다.
군용 자전거 m/42(1930년 스웨덴)
자전거는 1차 세계대전부터 군용으로 활용되었다. 전시품은 스웨덴의 군용 자전거 중 가장 유명한 모델로 1950년까지 생산되었다. 뒷바퀴는 페달을 뒤로 돌리면 작동하는 코스터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고 앞바퀴는 드럼 브레이크다. 앞바퀴에는 헤드램프와 직결되는 발전기를 달았고 짐 수납용 패니어와 소총 케이스도 갖추었다. 지금의 자전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구조와 패키징을 보여준다.
BSA 트랙 경주용 자전거(1940년 영국)
영국의 군수회사인 BSA가 미국 수출용으로 제작한 경주용 모델이다. 프레임은 크롬몰리로 제작했지만 동으로 도금했고 포크는 크롬으로 도금해 화려함을 살렸다. 러그를 활용한 프레임 구조와 안장 레일 고정 방식, 시트포스트 조절 장치 등 지금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을 만큼 트랙 바이크의 기본을 잘 갖추고 있다. 스템을 길게 설계해 핸들바 위치를 전후로 바꿀 수 있게 한 것이 눈에 띈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