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의 활력은 어디서 오나
많은 어선이 정박해 있고 또 오가는 주문진항. 읍이지만 5km에 달하는 시가지와 1만6천의 인구를 자랑하는 동해안 굴지의 어업기지다
시장에, 특히 재래시장에 가면 이상하게 힘이 솟는다. 그중에서도 활기가 넘치는 어시장에서는 특별한 활력을 얻는다. 자갈치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은 바로 자체적인 활기는 물론 찾는 이에게도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어시장은 일반 시장과 조금 다르다. 거래되는 어산물은 인간이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채취하거나 만들어낸 것이다. 내륙 인에게 바다는 낭만과 서정의 매혹이지만 어부와 선원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동시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공포의 심연이다. 원래 바다는 인류에게 근원적인 공포 중 하나였다. 시야가 미치지 않는 수평선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미지의 공포… 그래서 대항해시대 이전, 서양 중세지도에도 바다 끝에는 거대한 절벽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수평적인 미지뿐 아니라 수직적으로도 심연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괴물이 사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다 괴수와 인어의 전설은 그렇게 생겨났다. 어촌마다 샤머니즘과 미신이 많이 잔존하는 것은 이런 공포의 여파다. 어시장은 그런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안도감, 성취감이 뒤섞여 떠들썩한 생기와 생계가 교차한다.
주문진좌판풍물시장. 온갖 어산물이 다 있고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문진은 내게 제2의 자갈치 같은 곳이다. 포항과 강릉 사이 동해안에서 가장 번성하고 왁자하며 생기발랄한 포구일 것이다. 삶의 생기가 그립다면, 낙담과 절망으로 기운이 쇠락했다면 활발한 어시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재기능력을 받아오게 된다.
어시장이 특별하긴 하지만, 시장 자체는 인류문명이 발전한 원동력 중 하나다. 시장경제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놀라운 통찰로 밝혀냈듯이, 나라는 물론 개인의 부(富)는 단순한 생산확대가 아니라 거래를 통해 축적된다. 거래의 원리는 비교우위다. A는 농사를 짓고 B는 고기를 잡는다고 할 때 A는 필요한 고기를 자신의 농산물을 주고 얻고, B는 고기를 주고 쌀을 얻는 식이다. 이런 거래가 반복되면 나의 생산물이나 능력이 원가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아 저절로 부가 누적된다.
주문진 방파제 초입의 회센터. 지역명을 내걸어 전국의 관광객이 고향 집을 찾게 만든다
이같은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개인의 노동력 역시 마찬가지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과정에서 정해지는데 이게 인위적으로 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처럼 양배추가 흉작이면 값이 올라가듯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가격이 형성된다. 아담 스미스는 이 과정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작용이라고 표현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의 힘과 저력, 신비를 상징한다. 소련이 인류 최초로 공산혁명에 성공하고 시장 대신 계획경제를 시행하면서, 경제 엘리트들은 각종 물건을 얼마나 생산하고 가격을 어떻게 정할지 ‘보이지 않는 손’을 대신하려다 골머리를 앓게 된다. 얼핏 쉬울 것 같지만 인간의 활동과 삶에는 무수한 조건이 간여하기에 어떤 슈퍼 컴퓨터도 이를 계산할 수 없거늘 한낮 인간의 두뇌로 이런 작업을 시도한 것이 공산주의 실패의 근본적 이유다. 모든 공산 국가들이 결국 시장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경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극단적 폐쇄체제인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주민들 간의 ‘장마당’이 그나마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의 본질은 ‘개인의 이기심’이다. 각 개인(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하는 행동이 결국은 서로 간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이다. 우리가 먹는 생선과 커피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생산자, 유통업자들이 각자 돈을 벌려고 한 행동 덕분에 우리는 먼 곳에서 난 이런 진미를 집에서 편안히 맛볼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 곧, 사유재산과 자유가 제한되면 빈곤해지는 이유도 여기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문진 곳곳에서 명태와 오징어가 말라간다. 건어물 가게가 대단히 많기도 하다
주문진은 강릉에 속한 읍이지만 인구가 1만6천을 넘고 시가지가 5km에 달해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1955년 강릉이 시로 승격하고 명주군이 분리된 이후 1995년 강릉으로 재통합될 때까지 주문진은 명주군의 중심지였으며 1970년에는 인구가 3만5천을 넘었다. 주문진(注文津)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원래 ‘주문을’이라고 했다가 포구가 생기면서 주문진이 되었다는데 순 우리말을 음차한 것 같다.
해안을 따라 동해안 자전거길이 지나며, 남쪽으로 진입하면 영진해변이 장대하게 뻗어난다. 영진해변까지는 연곡면에 속하고, 넓은 솔밭을 지나 모래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사제 즈음부터 주문진이다. 방사제 한 곳은 특히 관광객이 많이 모여 있는데 드라마 ‘도깨비’에서 남녀 주인공이 바닷가에서 마주선 촬영지로 유명해서다. 외국인 관광객도 있는 것을 보면 드라마 한류를 실감한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방파제가 아니라 백사장 유실을 막기 위해 만든 방사제로 바다속 길이는 40m 정도다
'도깨비'의 명장면. 관광객은 이 모습을 따라 사진 찍기에 바쁘다
신리천을 건너면 본격적인 주문진항이다. 원래의 주문진항은 북쪽의 오목한 부분인데 장대한 방파제를 쌓아 항구를 크게 확장했다. 접안할 수 있는 부두만 1.8km에 달하니 어항으로는 대단한 규모다.
부두를 접한 해안로에는 건어물과 대게 가게가 즐비하고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상당하다. 부두방면으로 붙어 걷노라니 ‘관광유람선’ 표지판이 눈에 띈다. 강릉에도 없는 유람선이 여기 있다니 반갑다. 해안 경관은 항상 그렇지만 육지에서 보는 것과 바다에서 보는 것이 판이해서 반드시 둘을 함께 즐겨야 한다. 유람선은 길이 70m, 846톤급으로 699명을 태우니 자못 큼직하다. 주문진항을 출발해 경포대 옆 사근진해변을 돌아오며 운항시간은 80분이다. 선상 쇼가 펼쳐지고 야간에는 불꽃놀이도 곁들인다니 흥미롭겠다. 요금은 주간 2만원, 야간 3만5천원으로 조금 비싸지만 다음에 타러 와야겠다.
주문진에서 경포대 근처를 오가는 유람선
초대형 주차장 건물과 넓은 노지 주차장 모두 만원이다. 부두는 배 한 척당 작은 창고를 배정받아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잔잔한 내만인데도 정박한 어선은 계속 울렁거려 바다의 힘을 말해준다. 오래 전 군함을 타고 경험한 끔찍한 배멀미는 트라우마가 되어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보게 되었다.
주문진좌판풍물시장이라... 길이 100m 정도 되는 가건물에 2개의 통로를 두고 수산물 좌판이 도열해 있는데 손님도 많아 어시장 특유의 활기가 왁자하다. 손님이 적으면 그냥 구경만 하며 지나치기가 좀 미안할텐데 다행이다. 비릿한 바다내음, 펄떡이는 생선, 드러누운 대게와 홍게, 호객소리, 흥정소리, 흘러넘치는 물소리...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동시에 바다 생물들은 생사가 오가는 절체절명의 현장이다. 산 오징어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아줌마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아직 철이 아니니 당연히 없지요. 5월 중순은 되어야 해요.”하며 퉁명스레 답한다.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그냥 어시장 특유의 억척스러움을 묻힌 퉁명스러움이다. 좌판마다 붙은 가격표는 생각보다 저렴해서 돌아올 때 냉동이라도 한 더미 사야겠다.
크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부두
좌판시장 옆에는 건어물 가게가 즐비한데 이렇게 많은 건어물 가게는 처음 본다. 한 블록 더 가면 이번에는 좌판시장과 비슷한 규모의 ‘주문진 어민 수산시장’이 또 있다. 낮고 허술한 가건물이지만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도로변에는 대게집과 횟집이 줄을 잇고 길가에는 대게 익히는 찜통에서 김이 쉭쉭거린다.
부둣가의 장대한 공판장은 새벽녘 만선으로 돌아온 배가 수확물을 늘어놓고 경매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텐데, 언젠가 새벽에 한번 들러야겠다.
부둣가에 펼쳐진 어시장과 건어물가게, 식당 등은 길이 800m, 폭 100m에 걸쳐 있고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북적이니 자갈치 부럽지 않다.
주문진방파제 중간에서 바라본 해안선 풍경. 배 뒤편으로 경포대 일원의 호텔 건물들이 희미하다
항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방파제로 진입한다. 초입에 줄을 지은 회센터에서 시작해 총길이 1km에 달하는 장대한 방파제다. 군데군데 낚시꾼이 터 잡고 있고 자전거나 산책으로 오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 어느새 햇살이 뜨거워져 이마와 등에 땀이 맺힌다.
저쪽으로 경포대와 안목해변까지 이어진 20km 해안선이 거의 일직선으로 아득하다. 포구와 마을, 강줄기로 조금씩 단절되기는 하나 대부분 백사장으로 연결되어 있는, 국내최장의 백사장 지대이기도 하다.
방파제를 돌아 나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강릉바우길’ 표지기를 따라 주문진등대 가는 길이다. 가파른 언덕바지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 사이로 용케도 길이 나 있다. 자전거 통행도 어려운 좁은 길 옆으로 대문도 없는 집과 방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름은 그럴 듯한 ‘새뜰마을’인데 빈 집이 더러 있고 대부분은 노인만 사는 듯하다. 바다 조망이 좋긴 하지만 걷기도 힘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계를 꾸리고 있을지 안쓰럽다.
빨간 등대가 1km에 달하는 주문진방파제의 끝지점이다. 뒤쪽의 노란 등대와 작은 빨간 등대 사이는 보조 방파제다
주문진등대는 1918년 강원도 최초로 세워졌다. 주문진이 부산~원산 간 항로의 중간기항지가 되고 어업 전진기지로 성장하면서 등대가 설치된 것이다. 높이 10m, 직경 3m이며 벽돌식 구조는 건축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이 전망대를 겸한 공원으로 꾸며져 주문진의 명소가 되었다.
오래 전 남해안 낙도의 어느 등대에 들렀다가 젊은 등대지기를 만난 적이 있다. 교대 근무를 한다지만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증과 걱정이 앞섰다. 외롭지 않느냐는 물음에 잘 생긴 외모에 건장한 체격의 젊은 등대지기는 “외로우면 이 일 못 합니다”하고 잘라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에 비해 여기 등대지기는 자동차로 출퇴근하니 등대지기 생활도 극과 극인가 보다.
주문진등대 가는 언덕배기 골목길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한 주문진등대
등대에서 바라본 망망대해. 근해는 짙은 에메랄드빛이다
주문진등대를 내려가 동해안자전거길을 따라 조금 북상하면 소돌항이다. 해변에는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유명하다. 파도와 바람에 기이한 형태로 침식, 풍화된 암초인데 예전에는 징그러운 모습이라 해골바위라고 불렀단다. 아직도 사람들이 찾는 걸 보면 ‘아들 선호’가 있는 건가. 결혼을 않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잘 낳지 않는 세태에 딸 아들 구별이 무슨 소용일까. 아들바위가 있는 마을 이름이 ‘소돌’인데 마을이 소를 닮아서 그렇다지만 내가 보기에 아들바위가 소머리를 닮아서 생긴 지명 같다.
아들바위를 지나 모퉁이를 돌면 주문진 북단인 소돌해변이다. 여기서도 북쪽의 양양 남애리까지 장장 5.4km의 백사장이 뻗어나는데 소돌해변을 시작으로 주문진, 지경리, 원포, 남애1리 해변이 중간중간 포진하고 있다.
출발지인 도깨비촬영지에서 5km 이상 걸어왔는데도 시가지가 이어져 있으니 주문진은 과연 큰 포구다. 돌아가는 길은 시티버스를 이용한다. city가 아니라 ‘sea tea bus’로, 주문진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 해안을 따라 운행하는 빨간색 미니버스다. 자동차 없이 해안 위주로 강릉 관광을 즐길 때 편리하고 지역 특성을 담은 이름과 색깔도 유쾌하다. 한 외국인 여성 여행자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손을 들었는데 운전기사는 기꺼이 차를 멈추고 태워주었다. 여자는 “감사합니다”하고 또렷한 한국말로 답했다.
소돌항의 명물 아들바위. 뿔 두 개가 난 것을 보니 소바위(소돌)가 더 어울린다
주문진 북단에 자리한 소돌해변
돌아갈 때는 시티(SEA TEA) 버스를 이용한다. 주문진해변~안목해변 간 바닷길만 운행해 관광용으로 편리하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어시장의 활력은 어디서 오나
많은 어선이 정박해 있고 또 오가는 주문진항. 읍이지만 5km에 달하는 시가지와 1만6천의 인구를 자랑하는 동해안 굴지의 어업기지다
시장에, 특히 재래시장에 가면 이상하게 힘이 솟는다. 그중에서도 활기가 넘치는 어시장에서는 특별한 활력을 얻는다. 자갈치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은 바로 자체적인 활기는 물론 찾는 이에게도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어시장은 일반 시장과 조금 다르다. 거래되는 어산물은 인간이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채취하거나 만들어낸 것이다. 내륙 인에게 바다는 낭만과 서정의 매혹이지만 어부와 선원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동시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공포의 심연이다. 원래 바다는 인류에게 근원적인 공포 중 하나였다. 시야가 미치지 않는 수평선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미지의 공포… 그래서 대항해시대 이전, 서양 중세지도에도 바다 끝에는 거대한 절벽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수평적인 미지뿐 아니라 수직적으로도 심연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괴물이 사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다 괴수와 인어의 전설은 그렇게 생겨났다. 어촌마다 샤머니즘과 미신이 많이 잔존하는 것은 이런 공포의 여파다. 어시장은 그런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안도감, 성취감이 뒤섞여 떠들썩한 생기와 생계가 교차한다.
주문진좌판풍물시장. 온갖 어산물이 다 있고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문진은 내게 제2의 자갈치 같은 곳이다. 포항과 강릉 사이 동해안에서 가장 번성하고 왁자하며 생기발랄한 포구일 것이다. 삶의 생기가 그립다면, 낙담과 절망으로 기운이 쇠락했다면 활발한 어시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재기능력을 받아오게 된다.
어시장이 특별하긴 하지만, 시장 자체는 인류문명이 발전한 원동력 중 하나다. 시장경제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놀라운 통찰로 밝혀냈듯이, 나라는 물론 개인의 부(富)는 단순한 생산확대가 아니라 거래를 통해 축적된다. 거래의 원리는 비교우위다. A는 농사를 짓고 B는 고기를 잡는다고 할 때 A는 필요한 고기를 자신의 농산물을 주고 얻고, B는 고기를 주고 쌀을 얻는 식이다. 이런 거래가 반복되면 나의 생산물이나 능력이 원가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아 저절로 부가 누적된다.
주문진 방파제 초입의 회센터. 지역명을 내걸어 전국의 관광객이 고향 집을 찾게 만든다
이같은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개인의 노동력 역시 마찬가지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과정에서 정해지는데 이게 인위적으로 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처럼 양배추가 흉작이면 값이 올라가듯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가격이 형성된다. 아담 스미스는 이 과정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작용이라고 표현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의 힘과 저력, 신비를 상징한다. 소련이 인류 최초로 공산혁명에 성공하고 시장 대신 계획경제를 시행하면서, 경제 엘리트들은 각종 물건을 얼마나 생산하고 가격을 어떻게 정할지 ‘보이지 않는 손’을 대신하려다 골머리를 앓게 된다. 얼핏 쉬울 것 같지만 인간의 활동과 삶에는 무수한 조건이 간여하기에 어떤 슈퍼 컴퓨터도 이를 계산할 수 없거늘 한낮 인간의 두뇌로 이런 작업을 시도한 것이 공산주의 실패의 근본적 이유다. 모든 공산 국가들이 결국 시장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경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극단적 폐쇄체제인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주민들 간의 ‘장마당’이 그나마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의 본질은 ‘개인의 이기심’이다. 각 개인(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하는 행동이 결국은 서로 간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이다. 우리가 먹는 생선과 커피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생산자, 유통업자들이 각자 돈을 벌려고 한 행동 덕분에 우리는 먼 곳에서 난 이런 진미를 집에서 편안히 맛볼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 곧, 사유재산과 자유가 제한되면 빈곤해지는 이유도 여기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문진 곳곳에서 명태와 오징어가 말라간다. 건어물 가게가 대단히 많기도 하다
주문진은 강릉에 속한 읍이지만 인구가 1만6천을 넘고 시가지가 5km에 달해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1955년 강릉이 시로 승격하고 명주군이 분리된 이후 1995년 강릉으로 재통합될 때까지 주문진은 명주군의 중심지였으며 1970년에는 인구가 3만5천을 넘었다. 주문진(注文津)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원래 ‘주문을’이라고 했다가 포구가 생기면서 주문진이 되었다는데 순 우리말을 음차한 것 같다.
해안을 따라 동해안 자전거길이 지나며, 남쪽으로 진입하면 영진해변이 장대하게 뻗어난다. 영진해변까지는 연곡면에 속하고, 넓은 솔밭을 지나 모래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사제 즈음부터 주문진이다. 방사제 한 곳은 특히 관광객이 많이 모여 있는데 드라마 ‘도깨비’에서 남녀 주인공이 바닷가에서 마주선 촬영지로 유명해서다. 외국인 관광객도 있는 것을 보면 드라마 한류를 실감한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방파제가 아니라 백사장 유실을 막기 위해 만든 방사제로 바다속 길이는 40m 정도다
'도깨비'의 명장면. 관광객은 이 모습을 따라 사진 찍기에 바쁘다
신리천을 건너면 본격적인 주문진항이다. 원래의 주문진항은 북쪽의 오목한 부분인데 장대한 방파제를 쌓아 항구를 크게 확장했다. 접안할 수 있는 부두만 1.8km에 달하니 어항으로는 대단한 규모다.
부두를 접한 해안로에는 건어물과 대게 가게가 즐비하고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상당하다. 부두방면으로 붙어 걷노라니 ‘관광유람선’ 표지판이 눈에 띈다. 강릉에도 없는 유람선이 여기 있다니 반갑다. 해안 경관은 항상 그렇지만 육지에서 보는 것과 바다에서 보는 것이 판이해서 반드시 둘을 함께 즐겨야 한다. 유람선은 길이 70m, 846톤급으로 699명을 태우니 자못 큼직하다. 주문진항을 출발해 경포대 옆 사근진해변을 돌아오며 운항시간은 80분이다. 선상 쇼가 펼쳐지고 야간에는 불꽃놀이도 곁들인다니 흥미롭겠다. 요금은 주간 2만원, 야간 3만5천원으로 조금 비싸지만 다음에 타러 와야겠다.
주문진에서 경포대 근처를 오가는 유람선
초대형 주차장 건물과 넓은 노지 주차장 모두 만원이다. 부두는 배 한 척당 작은 창고를 배정받아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잔잔한 내만인데도 정박한 어선은 계속 울렁거려 바다의 힘을 말해준다. 오래 전 군함을 타고 경험한 끔찍한 배멀미는 트라우마가 되어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보게 되었다.
주문진좌판풍물시장이라... 길이 100m 정도 되는 가건물에 2개의 통로를 두고 수산물 좌판이 도열해 있는데 손님도 많아 어시장 특유의 활기가 왁자하다. 손님이 적으면 그냥 구경만 하며 지나치기가 좀 미안할텐데 다행이다. 비릿한 바다내음, 펄떡이는 생선, 드러누운 대게와 홍게, 호객소리, 흥정소리, 흘러넘치는 물소리...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동시에 바다 생물들은 생사가 오가는 절체절명의 현장이다. 산 오징어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아줌마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아직 철이 아니니 당연히 없지요. 5월 중순은 되어야 해요.”하며 퉁명스레 답한다.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그냥 어시장 특유의 억척스러움을 묻힌 퉁명스러움이다. 좌판마다 붙은 가격표는 생각보다 저렴해서 돌아올 때 냉동이라도 한 더미 사야겠다.
크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부두
좌판시장 옆에는 건어물 가게가 즐비한데 이렇게 많은 건어물 가게는 처음 본다. 한 블록 더 가면 이번에는 좌판시장과 비슷한 규모의 ‘주문진 어민 수산시장’이 또 있다. 낮고 허술한 가건물이지만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도로변에는 대게집과 횟집이 줄을 잇고 길가에는 대게 익히는 찜통에서 김이 쉭쉭거린다.
부둣가의 장대한 공판장은 새벽녘 만선으로 돌아온 배가 수확물을 늘어놓고 경매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텐데, 언젠가 새벽에 한번 들러야겠다.
부둣가에 펼쳐진 어시장과 건어물가게, 식당 등은 길이 800m, 폭 100m에 걸쳐 있고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북적이니 자갈치 부럽지 않다.
주문진방파제 중간에서 바라본 해안선 풍경. 배 뒤편으로 경포대 일원의 호텔 건물들이 희미하다
항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방파제로 진입한다. 초입에 줄을 지은 회센터에서 시작해 총길이 1km에 달하는 장대한 방파제다. 군데군데 낚시꾼이 터 잡고 있고 자전거나 산책으로 오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 어느새 햇살이 뜨거워져 이마와 등에 땀이 맺힌다.
저쪽으로 경포대와 안목해변까지 이어진 20km 해안선이 거의 일직선으로 아득하다. 포구와 마을, 강줄기로 조금씩 단절되기는 하나 대부분 백사장으로 연결되어 있는, 국내최장의 백사장 지대이기도 하다.
방파제를 돌아 나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강릉바우길’ 표지기를 따라 주문진등대 가는 길이다. 가파른 언덕바지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 사이로 용케도 길이 나 있다. 자전거 통행도 어려운 좁은 길 옆으로 대문도 없는 집과 방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름은 그럴 듯한 ‘새뜰마을’인데 빈 집이 더러 있고 대부분은 노인만 사는 듯하다. 바다 조망이 좋긴 하지만 걷기도 힘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계를 꾸리고 있을지 안쓰럽다.
빨간 등대가 1km에 달하는 주문진방파제의 끝지점이다. 뒤쪽의 노란 등대와 작은 빨간 등대 사이는 보조 방파제다
주문진등대는 1918년 강원도 최초로 세워졌다. 주문진이 부산~원산 간 항로의 중간기항지가 되고 어업 전진기지로 성장하면서 등대가 설치된 것이다. 높이 10m, 직경 3m이며 벽돌식 구조는 건축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이 전망대를 겸한 공원으로 꾸며져 주문진의 명소가 되었다.
오래 전 남해안 낙도의 어느 등대에 들렀다가 젊은 등대지기를 만난 적이 있다. 교대 근무를 한다지만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증과 걱정이 앞섰다. 외롭지 않느냐는 물음에 잘 생긴 외모에 건장한 체격의 젊은 등대지기는 “외로우면 이 일 못 합니다”하고 잘라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에 비해 여기 등대지기는 자동차로 출퇴근하니 등대지기 생활도 극과 극인가 보다.
주문진등대 가는 언덕배기 골목길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한 주문진등대
등대에서 바라본 망망대해. 근해는 짙은 에메랄드빛이다
주문진등대를 내려가 동해안자전거길을 따라 조금 북상하면 소돌항이다. 해변에는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유명하다. 파도와 바람에 기이한 형태로 침식, 풍화된 암초인데 예전에는 징그러운 모습이라 해골바위라고 불렀단다. 아직도 사람들이 찾는 걸 보면 ‘아들 선호’가 있는 건가. 결혼을 않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잘 낳지 않는 세태에 딸 아들 구별이 무슨 소용일까. 아들바위가 있는 마을 이름이 ‘소돌’인데 마을이 소를 닮아서 그렇다지만 내가 보기에 아들바위가 소머리를 닮아서 생긴 지명 같다.
아들바위를 지나 모퉁이를 돌면 주문진 북단인 소돌해변이다. 여기서도 북쪽의 양양 남애리까지 장장 5.4km의 백사장이 뻗어나는데 소돌해변을 시작으로 주문진, 지경리, 원포, 남애1리 해변이 중간중간 포진하고 있다.
출발지인 도깨비촬영지에서 5km 이상 걸어왔는데도 시가지가 이어져 있으니 주문진은 과연 큰 포구다. 돌아가는 길은 시티버스를 이용한다. city가 아니라 ‘sea tea bus’로, 주문진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 해안을 따라 운행하는 빨간색 미니버스다. 자동차 없이 해안 위주로 강릉 관광을 즐길 때 편리하고 지역 특성을 담은 이름과 색깔도 유쾌하다. 한 외국인 여성 여행자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손을 들었는데 운전기사는 기꺼이 차를 멈추고 태워주었다. 여자는 “감사합니다”하고 또렷한 한국말로 답했다.
소돌항의 명물 아들바위. 뿔 두 개가 난 것을 보니 소바위(소돌)가 더 어울린다
주문진 북단에 자리한 소돌해변
돌아갈 때는 시티(SEA TEA) 버스를 이용한다. 주문진해변~안목해변 간 바닷길만 운행해 관광용으로 편리하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