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에는 물이 가득, 어느새 모내기가 끝났네
어릴 때 간식으로 뽑아먹던 피끼(삘기)가 둘길에 하얗게 피어났다. 이제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풀이 되어 바람에 흔들린다
아득히 높은 백두대간 산협 저 어디선가 발원한 작은 물길은 50리를 흘러 동해로 흘러들고 주민들은 ‘모래내’라 부른다. 산골짜기에서 실려온 토사가 중하류에서 모래로 퇴적되어 붙은 이름이다. 사실 전국적으로 ‘모래내’는 보통명사처럼 흔한 지명이다.
모래가 쌓이고 잔잔한 물이 흐르는 모래내는 아이들이 들어가도 걱정되지 않을 정도로 얕고 때로는 저습지 분위기다. 하지만 산간에 폭우라도 내리면 이 얌전한 모래내도 거센 흙탕물이 모든 것을 휩쓸어갈 듯 분탕질치기도 한다. 그래서 개울가 둑을 쌓았다. 낮고 푸근한 둑에는 간혹 쉼터와 벤치가 있는 조붓한 길이 나 났다.
모래내 둑길. 간혹 벤치도 있는 정겨운 길이다
모래내 둑길을 따라 상류로 향한다. 목적지는 딱히 없다. 봄이 무르익는 이 시간, 봄의 정경 속으로 잠시 스며들고 싶을 뿐.
들판은 한 달 전만 해도 밭작물로 가득했는데 어느새 물이 가득 찬 논으로 변했다. 모내기까지 마친 곳도 적지 않다. 가장 바쁜 농번기인데 들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모내기철이면 온가족은 물론 이웃의 힘까지 빌려 함께 줄을 지어 모를 내고, 고단함을 잊으려 노래도 불러 들판이 떠들썩했다면 지금은 쥐도 새도 모르게 기계로 모를 내버리니 들판은 연중 무인지경 같다.
모래내가 흐르는 들판은 물이 가득하다. 아직 남은 작물은 대부분 감자다. 왼쪽 도로 옆이 모래내이고 맨 뒤로 오대산 줄기를 포함한 백두대간이 아득하다
어느새 모내기가 끝나 있네. 지금은 물에 잠길듯 작고 가녀린 모지만 몇 달안에 1m를 훌쩍 넘는 벼로 자랄 것이다
둑길에는 피끼(삘기)가 하얗게 피어났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뽑아먹던 간식이었는데 지금은 무관심 속에 그냥 들풀이 되어 바람에 흩날린다.
얕은 수중보에 물이 넘쳐흐른다. 물이 이렇게 지천이니 귀하고 고마운 줄 모르지만 가장 소중하고 근원적인 자원은 바로 물이다. 물이 없다면 당장 농사가 안 되고 농사가 안 되면 우리는 굶어야 한다. 저 하늘 위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과 허여멀건 대기에 가득한 공기 그리고 투명한 액체로 흐르는 물은 뭇 생명의 근원이다. 햇빛과 공기는 사실상 무한하다고 할 수 있지만 물은 산과 숲이 있어야 하는 조건부 자원이다.
수중보에도 물이 넘쳐 흐른다. 개구리 한마리가 보를 장악하듯 앉아 있는 모습이, 문득 당랑거철 같은 당당함으로 느껴진다고속도로 다리가 너무 높아 먼 산 풍경이 다리 아래로 보인다
감자꽃이 하얗게 피었다. 강원도답게 넓은 밭은 대부분 감자밭으로 모를 낸 논과 감자밭이 이웃한 모습은 이색적이다. 봄이면 전국의 둑길을 화사하게 수놓는 금계국도 노랗게 만개했다.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기약 없이 낡아간다. 1957년 개교해 1996년 폐교했으니 겨우 39년을 버텼다. 모교를 잃은 졸업생은 옛모습을 간직한 ‘문방구 카페’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을까. ‘문방구 카페’는 손님보다는 추억 그 자체를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폐교의 작은 거울이 되고 있다.감자밭이 지천이고 꽃이 탐스럽게 피어났다
늦은 봄 전국의 시골길을 장식하는 금계국은 두바퀴 여정의 동반자다
폐교된 초등학교 앞에 살아 남은 '1957년 학교 앞 문방구' 카페. 학교는 1957년 개교해 1996년 폐교됐지만 졸업생에게는 그나마 추억의 실마리가 남았다
다른 곳과 달리 마을의 집들이 번듯하고 세련된 것은 부농을 일군다는 뜻이다. 풍경은 결국 인간적인 것이되, 인간이 거주하는 집이 아름다울 때 한층 빛이 나는 법이다. 스위스와 알프스 경관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도 아름답지만 거기 기대 사는 사람들, 특히 마을과 집이 깨끗하고 아름답기에 경치가 더욱 살아난다.
뜻밖에 ‘자전거 쉴터’ 카페가 있다. 내리는 커피가 1천원이다. 주인장은 다른 일을 보고 손님은 알아서 커피를 내리고 계산도 알아서 하면 된다. 이렇게 여유롭고 인심 좋은 카페를 본 적이 없다. ‘쉼터’가 아니라 읽는 이의 의지와 미래를 나타내는 ‘쉴터’ 이름도 참 좋다. 가는 자전거 붙잡지 않고 오는 자전거 막지 않는다는 방임형 자세에서 어떤 달관을 읽는다. 바로 다음날 나는 근처의 산악 임도를 찾았다가 나뿐 아니라 자전거도 ‘쉴터’를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코스를 바꿔 다시 들렀다. 시원한 커피와 아삭한 비스킷을 음미하는 10분의 휴식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뜻밖에 만난 '자전거 쉴터'. 커피 1잔 1천원에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편히 쉬어가기 좋다. 자전거가 먼저 나서 쉬어가자 조른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들에는 물이 가득, 어느새 모내기가 끝났네
어릴 때 간식으로 뽑아먹던 피끼(삘기)가 둘길에 하얗게 피어났다. 이제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풀이 되어 바람에 흔들린다
아득히 높은 백두대간 산협 저 어디선가 발원한 작은 물길은 50리를 흘러 동해로 흘러들고 주민들은 ‘모래내’라 부른다. 산골짜기에서 실려온 토사가 중하류에서 모래로 퇴적되어 붙은 이름이다. 사실 전국적으로 ‘모래내’는 보통명사처럼 흔한 지명이다.
모래가 쌓이고 잔잔한 물이 흐르는 모래내는 아이들이 들어가도 걱정되지 않을 정도로 얕고 때로는 저습지 분위기다. 하지만 산간에 폭우라도 내리면 이 얌전한 모래내도 거센 흙탕물이 모든 것을 휩쓸어갈 듯 분탕질치기도 한다. 그래서 개울가 둑을 쌓았다. 낮고 푸근한 둑에는 간혹 쉼터와 벤치가 있는 조붓한 길이 나 났다.
모래내 둑길. 간혹 벤치도 있는 정겨운 길이다
모래내 둑길을 따라 상류로 향한다. 목적지는 딱히 없다. 봄이 무르익는 이 시간, 봄의 정경 속으로 잠시 스며들고 싶을 뿐.
들판은 한 달 전만 해도 밭작물로 가득했는데 어느새 물이 가득 찬 논으로 변했다. 모내기까지 마친 곳도 적지 않다. 가장 바쁜 농번기인데 들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모내기철이면 온가족은 물론 이웃의 힘까지 빌려 함께 줄을 지어 모를 내고, 고단함을 잊으려 노래도 불러 들판이 떠들썩했다면 지금은 쥐도 새도 모르게 기계로 모를 내버리니 들판은 연중 무인지경 같다.
모래내가 흐르는 들판은 물이 가득하다. 아직 남은 작물은 대부분 감자다. 왼쪽 도로 옆이 모래내이고 맨 뒤로 오대산 줄기를 포함한 백두대간이 아득하다
어느새 모내기가 끝나 있네. 지금은 물에 잠길듯 작고 가녀린 모지만 몇 달안에 1m를 훌쩍 넘는 벼로 자랄 것이다
둑길에는 피끼(삘기)가 하얗게 피어났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뽑아먹던 간식이었는데 지금은 무관심 속에 그냥 들풀이 되어 바람에 흩날린다.
얕은 수중보에 물이 넘쳐흐른다. 물이 이렇게 지천이니 귀하고 고마운 줄 모르지만 가장 소중하고 근원적인 자원은 바로 물이다. 물이 없다면 당장 농사가 안 되고 농사가 안 되면 우리는 굶어야 한다. 저 하늘 위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과 허여멀건 대기에 가득한 공기 그리고 투명한 액체로 흐르는 물은 뭇 생명의 근원이다. 햇빛과 공기는 사실상 무한하다고 할 수 있지만 물은 산과 숲이 있어야 하는 조건부 자원이다.
수중보에도 물이 넘쳐 흐른다. 개구리 한마리가 보를 장악하듯 앉아 있는 모습이, 문득 당랑거철 같은 당당함으로 느껴진다고속도로 다리가 너무 높아 먼 산 풍경이 다리 아래로 보인다
감자꽃이 하얗게 피었다. 강원도답게 넓은 밭은 대부분 감자밭으로 모를 낸 논과 감자밭이 이웃한 모습은 이색적이다. 봄이면 전국의 둑길을 화사하게 수놓는 금계국도 노랗게 만개했다.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기약 없이 낡아간다. 1957년 개교해 1996년 폐교했으니 겨우 39년을 버텼다. 모교를 잃은 졸업생은 옛모습을 간직한 ‘문방구 카페’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을까. ‘문방구 카페’는 손님보다는 추억 그 자체를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폐교의 작은 거울이 되고 있다.감자밭이 지천이고 꽃이 탐스럽게 피어났다
늦은 봄 전국의 시골길을 장식하는 금계국은 두바퀴 여정의 동반자다
폐교된 초등학교 앞에 살아 남은 '1957년 학교 앞 문방구' 카페. 학교는 1957년 개교해 1996년 폐교됐지만 졸업생에게는 그나마 추억의 실마리가 남았다
다른 곳과 달리 마을의 집들이 번듯하고 세련된 것은 부농을 일군다는 뜻이다. 풍경은 결국 인간적인 것이되, 인간이 거주하는 집이 아름다울 때 한층 빛이 나는 법이다. 스위스와 알프스 경관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도 아름답지만 거기 기대 사는 사람들, 특히 마을과 집이 깨끗하고 아름답기에 경치가 더욱 살아난다.
뜻밖에 ‘자전거 쉴터’ 카페가 있다. 내리는 커피가 1천원이다. 주인장은 다른 일을 보고 손님은 알아서 커피를 내리고 계산도 알아서 하면 된다. 이렇게 여유롭고 인심 좋은 카페를 본 적이 없다. ‘쉼터’가 아니라 읽는 이의 의지와 미래를 나타내는 ‘쉴터’ 이름도 참 좋다. 가는 자전거 붙잡지 않고 오는 자전거 막지 않는다는 방임형 자세에서 어떤 달관을 읽는다. 바로 다음날 나는 근처의 산악 임도를 찾았다가 나뿐 아니라 자전거도 ‘쉴터’를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코스를 바꿔 다시 들렀다. 시원한 커피와 아삭한 비스킷을 음미하는 10분의 휴식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뜻밖에 만난 '자전거 쉴터'. 커피 1잔 1천원에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편히 쉬어가기 좋다. 자전거가 먼저 나서 쉬어가자 조른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