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천국, 돌리네 130개가 밀집한 고개
깊이 4m, 지름 15m 정도의 돌리네가 완만한 기슭에 패여 있다. 바닥이 평평한 이런 곳은 밭으로 개간한 곳이 많지만 이곳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강원 동남부와 충북·경북 북부 지역은 석회암 지대로 석회암동굴이 많다. 석회암은 물에 녹는 성질이 있어 지표면이나 틈을 따라 빗물이나 지하수가 스며들어 땅속의 석회암을 녹이면 동굴이 형성되거나 땅이 꺼져 내리는 싱크홀(sinkhole)이 생긴다. 마치 분화구처럼 둥글게 움푹 패인 싱크홀을 돌리네(doline)라고 한다. 석회암동굴은 국내에 흔해서 개인적으로는 돌리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데, 제주도의 기생화산(오름)처럼 지표면이 내려앉은 분화구 형태의 특이한 지형은 지구가 빚어낸 짓궂은 장난 같기도 한다.
백복령 카르스트지대 안내문. 돌리네와 싱크홀, 우발라, 석회동굴 등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을 설명하고 있다
백복령에 분포하는 돌리네군. 130개가 밀집해 있다
이런 돌리네가 자연 상태 그대로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백복령 서쪽 고갯길 일대다. 백복령은 백두대간의 준봉인 두타산(1353m)~청옥산(1404m) 연봉 북쪽을 넘는 고개로 정선과 동해를 연결하는 42번 국도가 지난다. 백두대간의 높은 고개 중 하나로 높이는 780m에 이르며 해안에서 곧장 시작되어 대관령처럼 육안으로 느껴지는 고갯길 스케일은 대단하다. 백복령 카르스트 지형은 고갯마루 서쪽 해발 700~800m 일대에 분포하고 천연기념물 제4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소규모의 싱크홀
돌리네는 단양, 제천, 정선, 평창, 문경 등에도 많이 있으나 백복령(정선군 임계면에 속함)이 특별한 것은 좁은 지역에 130개나 모여 있는데다 밭으로 개간되는 등 인위적인 가공 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 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은 밭으로 개간된 경우가 많다.
‘백복령 카르스트지대’ 입구에는 주차장과 함께 향토식당이 모여 있다. 소로를 따라 500m 정도 걸어가면 카르스트지대가 시작된다. 수목이 울창한 때는 자세히 보아야 지형을 알아볼 수 있다. 작은 싱크홀(바닥이 갑자기 꺼져 내린 지형. 돌리네 같은 함몰지형을 통칭하기도 함)이 길가에 보이고, 전망데크가 설치된 곳에는 거대한 돌리네가 뻥 뚫려 있다.
일대에서 가장 큰 돌리네. 나무와 잡초로 인해 사진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우나 깊이 15m, 지름 50m 정도의 대규모로 분화구를 닮았다. 가운데 나무 뒤쪽이 돌리네 바닥이다
수풀이 무성한 거대 돌리네는 깊이가 15m나 되고 지름은 50m 정도다. 대개 초원을 이룬 제주 오름과 달리 수림이 울창하여 고생대적 원시풍이 물씬하다.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공룡이 나오고 익룡이 날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초원을 이룬 제주 오름이 탁 트인 조망과 우아한 산체로 낭만과 서정적인 분위기라면, 여기 돌리네는 인적 없는 깊은 숲속에서 묘한 신비감과 격리감이 감돈다.
산비탈에 비스듬히 패인 돌리네
불규칙한 타원형의 돌리네. 카르스트 지대가 아니면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지형이다
얼핏 보면 수풀 때문에 알아보기 어려우나 자세히 살피면 수많은 돌리네를 확인할 수 있다. 깊이 2~3m, 지름 15m 정도 되는 것이 가장 흔하다. 돌리네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지금 발밑 지하는 온통 석회암으로 가득하다는 뜻으로, 근처의 자병산(776m)에 대규모 석회암 광산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노천 채굴로 인해 백두대간 지척에서 하나의 산이 사라져가는 모습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덕분에 튼튼한 건물과 교량을 만들기도 하니 문명의 역설이다.
크게 자란 고사리가 고생대적 원시미를 더해준다지름이 좁고 깊게 패인 돌리네. 마치 개미지옥처럼 빠지면 나오기 어렵겠다
돌리네 지대 바로 옆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 등산 리본이 많이 달려 있다
백복령에서 내려다본 동해안 옥계 방면. 산불로 인해 민둥산이 된 밥봉(323m)이 저 아래로 보인다
돌리네가 있는 고갯길은 ‘백가지 복령(한약재)’이란 의미의 백복령(百茯嶺)이라고 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복을 바란다’는 뜻의 백복령(白福嶺)이라 되어 있고, ‘택리지’에는 ‘하얀 봉황’이란 뜻의 백봉령(白鳳嶺)이다. 정선과 삼척을 잇는 이런 큰 고개는 그 옛날 무사히 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니 복을 빌거나 봉황이 보호해주기를 기원했음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돌리네가 개간되지 않은 것은 워낙 심심산골이고 큰 고개여서 화전민조차 살기 어려웠던 때문 같다. 덕분에 돌리네는 앞으로도 장구한 시간 아주 천천히 바닥이 꺼져 내려갈 것이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싱크홀 천국, 돌리네 130개가 밀집한 고개
깊이 4m, 지름 15m 정도의 돌리네가 완만한 기슭에 패여 있다. 바닥이 평평한 이런 곳은 밭으로 개간한 곳이 많지만 이곳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강원 동남부와 충북·경북 북부 지역은 석회암 지대로 석회암동굴이 많다. 석회암은 물에 녹는 성질이 있어 지표면이나 틈을 따라 빗물이나 지하수가 스며들어 땅속의 석회암을 녹이면 동굴이 형성되거나 땅이 꺼져 내리는 싱크홀(sinkhole)이 생긴다. 마치 분화구처럼 둥글게 움푹 패인 싱크홀을 돌리네(doline)라고 한다. 석회암동굴은 국내에 흔해서 개인적으로는 돌리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데, 제주도의 기생화산(오름)처럼 지표면이 내려앉은 분화구 형태의 특이한 지형은 지구가 빚어낸 짓궂은 장난 같기도 한다.
백복령 카르스트지대 안내문. 돌리네와 싱크홀, 우발라, 석회동굴 등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을 설명하고 있다
백복령에 분포하는 돌리네군. 130개가 밀집해 있다
이런 돌리네가 자연 상태 그대로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백복령 서쪽 고갯길 일대다. 백복령은 백두대간의 준봉인 두타산(1353m)~청옥산(1404m) 연봉 북쪽을 넘는 고개로 정선과 동해를 연결하는 42번 국도가 지난다. 백두대간의 높은 고개 중 하나로 높이는 780m에 이르며 해안에서 곧장 시작되어 대관령처럼 육안으로 느껴지는 고갯길 스케일은 대단하다. 백복령 카르스트 지형은 고갯마루 서쪽 해발 700~800m 일대에 분포하고 천연기념물 제4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소규모의 싱크홀
돌리네는 단양, 제천, 정선, 평창, 문경 등에도 많이 있으나 백복령(정선군 임계면에 속함)이 특별한 것은 좁은 지역에 130개나 모여 있는데다 밭으로 개간되는 등 인위적인 가공 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 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은 밭으로 개간된 경우가 많다.
‘백복령 카르스트지대’ 입구에는 주차장과 함께 향토식당이 모여 있다. 소로를 따라 500m 정도 걸어가면 카르스트지대가 시작된다. 수목이 울창한 때는 자세히 보아야 지형을 알아볼 수 있다. 작은 싱크홀(바닥이 갑자기 꺼져 내린 지형. 돌리네 같은 함몰지형을 통칭하기도 함)이 길가에 보이고, 전망데크가 설치된 곳에는 거대한 돌리네가 뻥 뚫려 있다.
일대에서 가장 큰 돌리네. 나무와 잡초로 인해 사진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우나 깊이 15m, 지름 50m 정도의 대규모로 분화구를 닮았다. 가운데 나무 뒤쪽이 돌리네 바닥이다
수풀이 무성한 거대 돌리네는 깊이가 15m나 되고 지름은 50m 정도다. 대개 초원을 이룬 제주 오름과 달리 수림이 울창하여 고생대적 원시풍이 물씬하다.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공룡이 나오고 익룡이 날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초원을 이룬 제주 오름이 탁 트인 조망과 우아한 산체로 낭만과 서정적인 분위기라면, 여기 돌리네는 인적 없는 깊은 숲속에서 묘한 신비감과 격리감이 감돈다.
산비탈에 비스듬히 패인 돌리네
불규칙한 타원형의 돌리네. 카르스트 지대가 아니면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지형이다
얼핏 보면 수풀 때문에 알아보기 어려우나 자세히 살피면 수많은 돌리네를 확인할 수 있다. 깊이 2~3m, 지름 15m 정도 되는 것이 가장 흔하다. 돌리네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지금 발밑 지하는 온통 석회암으로 가득하다는 뜻으로, 근처의 자병산(776m)에 대규모 석회암 광산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노천 채굴로 인해 백두대간 지척에서 하나의 산이 사라져가는 모습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덕분에 튼튼한 건물과 교량을 만들기도 하니 문명의 역설이다.
크게 자란 고사리가 고생대적 원시미를 더해준다지름이 좁고 깊게 패인 돌리네. 마치 개미지옥처럼 빠지면 나오기 어렵겠다
돌리네 지대 바로 옆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 등산 리본이 많이 달려 있다
백복령에서 내려다본 동해안 옥계 방면. 산불로 인해 민둥산이 된 밥봉(323m)이 저 아래로 보인다
돌리네가 있는 고갯길은 ‘백가지 복령(한약재)’이란 의미의 백복령(百茯嶺)이라고 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복을 바란다’는 뜻의 백복령(白福嶺)이라 되어 있고, ‘택리지’에는 ‘하얀 봉황’이란 뜻의 백봉령(白鳳嶺)이다. 정선과 삼척을 잇는 이런 큰 고개는 그 옛날 무사히 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니 복을 빌거나 봉황이 보호해주기를 기원했음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돌리네가 개간되지 않은 것은 워낙 심심산골이고 큰 고개여서 화전민조차 살기 어려웠던 때문 같다. 덕분에 돌리네는 앞으로도 장구한 시간 아주 천천히 바닥이 꺼져 내려갈 것이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