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산으로 가봐야지
임도 초입의 목재 더미 앞에서. 목재 규모가 엄청나지만 벌목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대의 삼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웅장하다
오늘은 저 산으로 가봐야겠다.
장기요양 중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풀 죽어 지낼 수는 없다. 다리에는 근육과 힘이 빠졌어도 먼 산을 바라보는 마음과 눈만은 설렘과 기대로 생동한다. 저기 보이는 산은 그냥 무의미한 ‘먼 산’이 아니다. 해발 1100m가 넘는 백두대간이고 산기슭에는 산림 관리를 위한 임도가 수없이 나 있으니 최고의 산악라이딩 갤랜데다.
컨디션을 감안해 미루고 미루다 주저에 주저를 거듭하다 어느 맑은 날 아침, 오랫동안 멈춰 있던 eMTB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산행은 아니고 초입만이라도 돌면서 산악라이딩의 감을 살리고 체력 회복의 전기를 만들고 싶었다.
사기막 임도는 백두대간 동쪽 기슭을 돌아나가며 장장 29km에 달한다. 임도 왼쪽 백두대간 서편의 고원은 대관령 삼양목장이다
산 아래 마지막 마을은 옛날 자기를 굽던 곳이라고 해서 ‘사기막’이라고 한다. 마지막 민가를 벗어나면 골짜기가 시작되고 계곡 초입에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 골짜기 입구에 이런 저수지를 만든 것은 아주 합리적이어서 산 아래 마을이나 농지의 용수로 활용하기에 최적이다. 거대한 산기슭을 가득 뒤덮은 빽빽한 숲은 엄청난 물 저장고이기도 해서 계류는 연중 철철 흘러넘친다. 그냥 두면 계류는 바다로 들어가 소금물이 되고 마니 어떻게든 도중에 활용해야 한다.
사기막저수지 상류를 지나면 산협이 본격화된다. 반듯한 흙길, 싱그러운 숲이 반갑다
저수지를 지나면 임도 차단기가 나오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그리웠던 흙길이다.
거친 노면을 따라 유연하게 꿀렁이는 서스펜션, 물골과 잔돌을 타고 넘는 초광폭 머드 타이어, 나약해진 하체를 보완해주는 윙윙 대는 모터 소리와 날아갈 듯 가벼운 페달링…. 얼마나 그리웠던 감각들인가. 반가움보다 고마움이 앞선 것은 허한 심신 상태를 말해준다. 오랜만의 산악라이딩인데 자전거는 마치 어제 탄 듯 뜻대로 움직여주니 더욱 고맙다.
산에는 아무도 없다. 차단기로 막혔으니 자동차는 올 수 없고, 등산객은 걷기에 지루한 이 길을 찾을 이유가 없다. 안내도를 보니 ‘사기막 임도’는 장장 29km에 달한다. 오늘은 완주는 언감생심, 초입 분위기만 보고 돌아가련다.
거산의 면모를 보여주는 계곡미. 수량이 풍부하고 뒹구는 바윗돌이 큼직하며 계곡 폭이 넓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구비를 돌 때마다 고도가 높아가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 계곡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뒹굴어 산세의 위용을 웅변한다. 능선과 기슭에 바위 하나 드러나지 않은 둔중한 육산은 빽빽한 삼림이 원시미를 발하고 있다.
사기막에서 5km 정도 들어간, 해발 280m 지점에 갑자기 넓은 공터가 펼쳐지는데 ‘산림항공기훈련장’과 목재 저장소를 겸한 공간이다. 벌목한 목재가 엄청난 것을 보면, 이 산이 품고 있는 산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목재가 많은데 산기슭에는 벌목지 표시 하나 없다. 저 쪽으로 이 골짜기의 주봉인 매봉(1173m)이 날카롭게 솟아 있다. 자, 오늘은 여기가 반환점이다.
반환점에서 바라본 매봉(1173m). 계곡은 구비치기는 하나 매봉을 향해 거의 직선으로 패여 있다
하산길의 사기막저수지. 길가에 금계국이 활짝 피었다
하산길에는 입구 표지판에 금강역사상을 배치한 특이한 사찰(용연사)이 있어 잠시 들렀다 가기로 한다. 진입로 경사가 상당하지만 어시스트를 높여 부담 없이 오른다.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높이가 대단하다. 뜰에 조선중기 석탑이 남은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처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6.25 때 불탔다가 1953년 중창해 지금의 규모를 갖추었다. 작은 계곡을 낀 남동향 터는 환하고 높아서 명랑한 분위기다. 절 입구에는 삽살개 두 마리가 지키고 섰는데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깔끔한 템플스테이로 알려져 있다니 하룻밤 묵어가도 좋겠다. 절 위쪽에 나 있는 순환임도 역시 다음 기회로 미룬다. 여기서 말하는 ‘다음 기회’는 가능성 없는 막역한 연기가 아니라 추후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실질적 자유의 확장을 뜻하니 기대와 설렘은 그대로 온존한다.
산을 벗어나며 자기 확신에 홀로 반갑다. 다음은 난이도를 더 높여볼까.
정밀한 금강역사상이 서 있는 용연사 입구 표지석. 노상이지만 금강문(인왕문)을 대신하는 셈이다
조선중기의 석탑이 서 있는 용연사. 근래에 중창되어 고졸미는 없으나 터가 환하고 명랑한 분위기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이제, 슬슬 산으로 가봐야지
임도 초입의 목재 더미 앞에서. 목재 규모가 엄청나지만 벌목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대의 삼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웅장하다
오늘은 저 산으로 가봐야겠다.
장기요양 중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풀 죽어 지낼 수는 없다. 다리에는 근육과 힘이 빠졌어도 먼 산을 바라보는 마음과 눈만은 설렘과 기대로 생동한다. 저기 보이는 산은 그냥 무의미한 ‘먼 산’이 아니다. 해발 1100m가 넘는 백두대간이고 산기슭에는 산림 관리를 위한 임도가 수없이 나 있으니 최고의 산악라이딩 갤랜데다.
컨디션을 감안해 미루고 미루다 주저에 주저를 거듭하다 어느 맑은 날 아침, 오랫동안 멈춰 있던 eMTB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산행은 아니고 초입만이라도 돌면서 산악라이딩의 감을 살리고 체력 회복의 전기를 만들고 싶었다.
사기막 임도는 백두대간 동쪽 기슭을 돌아나가며 장장 29km에 달한다. 임도 왼쪽 백두대간 서편의 고원은 대관령 삼양목장이다
산 아래 마지막 마을은 옛날 자기를 굽던 곳이라고 해서 ‘사기막’이라고 한다. 마지막 민가를 벗어나면 골짜기가 시작되고 계곡 초입에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 골짜기 입구에 이런 저수지를 만든 것은 아주 합리적이어서 산 아래 마을이나 농지의 용수로 활용하기에 최적이다. 거대한 산기슭을 가득 뒤덮은 빽빽한 숲은 엄청난 물 저장고이기도 해서 계류는 연중 철철 흘러넘친다. 그냥 두면 계류는 바다로 들어가 소금물이 되고 마니 어떻게든 도중에 활용해야 한다.
사기막저수지 상류를 지나면 산협이 본격화된다. 반듯한 흙길, 싱그러운 숲이 반갑다
저수지를 지나면 임도 차단기가 나오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그리웠던 흙길이다.
거친 노면을 따라 유연하게 꿀렁이는 서스펜션, 물골과 잔돌을 타고 넘는 초광폭 머드 타이어, 나약해진 하체를 보완해주는 윙윙 대는 모터 소리와 날아갈 듯 가벼운 페달링…. 얼마나 그리웠던 감각들인가. 반가움보다 고마움이 앞선 것은 허한 심신 상태를 말해준다. 오랜만의 산악라이딩인데 자전거는 마치 어제 탄 듯 뜻대로 움직여주니 더욱 고맙다.
산에는 아무도 없다. 차단기로 막혔으니 자동차는 올 수 없고, 등산객은 걷기에 지루한 이 길을 찾을 이유가 없다. 안내도를 보니 ‘사기막 임도’는 장장 29km에 달한다. 오늘은 완주는 언감생심, 초입 분위기만 보고 돌아가련다.
거산의 면모를 보여주는 계곡미. 수량이 풍부하고 뒹구는 바윗돌이 큼직하며 계곡 폭이 넓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구비를 돌 때마다 고도가 높아가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 계곡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뒹굴어 산세의 위용을 웅변한다. 능선과 기슭에 바위 하나 드러나지 않은 둔중한 육산은 빽빽한 삼림이 원시미를 발하고 있다.
사기막에서 5km 정도 들어간, 해발 280m 지점에 갑자기 넓은 공터가 펼쳐지는데 ‘산림항공기훈련장’과 목재 저장소를 겸한 공간이다. 벌목한 목재가 엄청난 것을 보면, 이 산이 품고 있는 산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목재가 많은데 산기슭에는 벌목지 표시 하나 없다. 저 쪽으로 이 골짜기의 주봉인 매봉(1173m)이 날카롭게 솟아 있다. 자, 오늘은 여기가 반환점이다.
반환점에서 바라본 매봉(1173m). 계곡은 구비치기는 하나 매봉을 향해 거의 직선으로 패여 있다
하산길의 사기막저수지. 길가에 금계국이 활짝 피었다
하산길에는 입구 표지판에 금강역사상을 배치한 특이한 사찰(용연사)이 있어 잠시 들렀다 가기로 한다. 진입로 경사가 상당하지만 어시스트를 높여 부담 없이 오른다.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높이가 대단하다. 뜰에 조선중기 석탑이 남은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처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6.25 때 불탔다가 1953년 중창해 지금의 규모를 갖추었다. 작은 계곡을 낀 남동향 터는 환하고 높아서 명랑한 분위기다. 절 입구에는 삽살개 두 마리가 지키고 섰는데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깔끔한 템플스테이로 알려져 있다니 하룻밤 묵어가도 좋겠다. 절 위쪽에 나 있는 순환임도 역시 다음 기회로 미룬다. 여기서 말하는 ‘다음 기회’는 가능성 없는 막역한 연기가 아니라 추후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실질적 자유의 확장을 뜻하니 기대와 설렘은 그대로 온존한다.
산을 벗어나며 자기 확신에 홀로 반갑다. 다음은 난이도를 더 높여볼까.
정밀한 금강역사상이 서 있는 용연사 입구 표지석. 노상이지만 금강문(인왕문)을 대신하는 셈이다
조선중기의 석탑이 서 있는 용연사. 근래에 중창되어 고졸미는 없으나 터가 환하고 명랑한 분위기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