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00m 이상 폭포가 곳곳에
두타산 최고 절경이라는 베틀바위(왼쪽 끝) 근처에서 쏟아지는 베틀폭포. 비 온 후에만 볼 수 있으며 총 길이가 120m에 달한다. 사진 중간 바위 위에 베틀바위 전망대가 있다
가만 두면 무한평면을 추구하기에 가장 평화롭고 아늑한 물…. 그러나 가끔은 야누스의 돌변한 모습을 보인다. 땅을 집어삼길 듯 쏟아지는 폭우, 거함마저 침몰시킬 것만 같은 파도는 가히 공포스럽다.
기상변화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물이 야누스의 이면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 바로 폭포다. 얌전하던 물이 광분하며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비산하며 폭주하는 모습은 감각적인 장관이면서 정서적 영감을 준다. 폭포는 사람이 살기 힘든 험준한 지형에 있기 마련이어서 세속과 동떨어진 탈속감을 주고 때로는 신비감마저 발산한다. 그래서 도교적 이상향을 화폭에 담는 산수화는 폭포를 넣어 격리감을 더하고, 서양에서도 SF영화나 괴물이 사는 배경에는 거대한 폭포가 떨어진다.
삼화사 앞 무릉계곡. 큰 비 내린 후라 물이 폭류하면서 굉음이 산 전체를 울린다
산수화의 한 장르에 도인(道人)이 가만히 폭포를 바라보는 관폭도(觀瀑圖)가 있다. 왜 도인은 폭포를 오르거나, 혹은 도력을 이용해 날아 넘거나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걸까. ‘폭포 바라보기’가 어떤 이유에서 도교적 선풍을 과장하는 걸까.
오래전 중국 시안(西安)을 여행하다 기념품가게에 걸려 있는 관폭도 한 점에 눈이 가서 구입해 오랫동안 내 서재에 걸려 있었다. 칼을 찬 도인이 홀로 바위에 올라서서 기다란 족자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폭포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달리 설명은 없으나 첫눈에 이백(당나라 때의 시인)이 여산폭포를 바라보는 풍경으로 직감했다. ‘관폭’이 왜 선풍(仙風)과 연결되는지 나는 이 그림으로 이해했다.
집어삼킬 듯한 굉음과 기세로 급전직하 폭류하는 폭포수는 무심히 앉은 산이 낼름거리는 혀 같이 공포스럽지만 그 앞에 외로운 단독자가 되어 1:1로 마주 선 도인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차분한 표정이다. 자연의 위압, 혹은 극단의 미감 앞에서도 부동의 심상으로 마주하는 존재…. 여기서 발휘되는 용기와 관용, 달관은 속인의 범접을 저만큼 뛰어넘어 있으니 신비감과 선풍은 자연히 발현된다.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 개인과 주관을 재발견한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주의와도 맥이 닿는다. 두렵고 불안하더라도 1:1의 직면으로서만 우리는 진상을 볼 수 있고, 그 다음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두타산~청옥산 등산 안내도. 여기서는 지도의 현위치(삼화사)에서 관음암~하늘문~쌍폭포~용추폭포~학소대~삼화사 코스를 답사했다. 거리 약 8km이며 소요시간은 4시간 이상 잡는 것이 좋다 무릉계곡에서 관음암 가는 길이 갈라진다. 초반 1km 정도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관음암 가는 길에 내려다본 무릉계곡. 저 멀리 두타산~청옥산 주능선은 구름에 가렸다. 계곡 좌우로 급경사를 이룬 사면에서 장대한 폭포들이 쏟아진다. 왼쪽 위에 산성12폭포가 살짝 보인다
오늘도 폭포를 보러 간다. 지난번에는 설악산 토왕골로 갔다면 오늘은 두타산 무릉계곡이다. 설악산은 국내에서 폭포가 가장 많고 규모도 큰 산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대비해 ‘설악산 일만이천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반도 최고의 길이 320m 토왕성폭포를 비롯해 100m가 넘는 거폭이 여럿 있다. 이 설악산에 비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산이 있으니 바로 두타산이다. 설악산(1708m)보다는 조금 낮으나 두타산(1353m)~청옥산(1404m) 연봉과 무릉계곡은 설악산과 천불동계곡 관계와 흡사하다. 오히려 조선시대까지는 설악산보다 두타산의 명성과 위상이 더 높았던 것 같다. 무릉계곡 반석에 새겨진 수많은 유람객들의 이름이 이를 말해준다.
두타산~청옥산은 겨우 3km 떨어져 있는 연봉으로 하나의 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청옥산 북쪽2km 지점에는 고적대(1357m)가 있어 실은 3연봉으로 봐야 한다. 가장 높은 청옥산을 중심으로 두타산과 고적대는 부속 봉우리로 볼 수 있는데 두타산의 지명도가 높아 통칭 ‘두타산’으로 불린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창건된 삼화사. 왕건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후삼국통일을 이루자 세 나라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로 삼화사(三和寺)라고 했다
두타산에 걸린 폭포는 일단 높이가 어마어마하지만 수량이 부족해 비 온 후라야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먼저, 폭포의 규모를 표현하는 높이와 길이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높이는 말 그대로 물이 떨어지는 수직의 낙차(落差)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수직보다는 약간 비스듬한 폭포(臥瀑)가 많아 낙차로 규모를 표현하기가 애매한 곳이 많다. 토왕성폭포의 경우 수직 높이는 250m 정도인데 길이는 320m나 되는 것도 중단이 와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수직폭은 높이를, 와폭이나 수직폭+와폭의 복합 형태는 길이로 표현하겠다.
모처럼 많은 비가 내린 날 두타산으로 향했다. 비가 그친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릉계곡 초입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빗줄기가 강해 한동안을 기다렸다. 기상 레이더 영상을 보니 두타산 일원에만 오는 비여서 금방 지나갈 듯했다. 그렇다면 비가 그친 직후이니 가장 웅장하고 멋진 폭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30분 정도 기다리자 비는 멈추었고 깊은 협곡은 낮은 구름에 잠식되어 약간의 공포감을 담아 신비로운 분위기에 감싸여 있었다.
삼화사 배경을 이루는 100m 그림폭포
상가들이 밀집한 사하촌을 거쳐 삼화사로 접어들면 절 뒤편 높은 곳에서 마치 SF영화나 상상의 산수화처럼 거대한 절벽을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나타난다. 바로 그림폭포다. 폭포 위쪽에 중대사지가 있어 중대폭포, 혹은 삼화사 위쪽이라고 해서 상폭으로도 불린다. 접근이 어려워 목측이긴 하지만 폭포 높이는 약 100m, 길이는 150m를 넘는다. 삼화사에서 500여m 거리인데 접근하는 길이 없다. 계곡을 따라가는 비공식 루트는 있는 듯하지만 오늘은 멀리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폭포 상류 계곡이 500~600m로 매우 짧아서 비가 내린 후 아니면 마른 건폭(乾瀑)일 때가 많다. 저런 엄청난 장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은 삼화사를 거쳐 무릉계곡 북쪽에 있는 관음암~신선바위~하늘문을 경유해 용추폭포까지 갔다가 무릉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삼화사에서 무릉계곡 남쪽의 베틀바위 코스로 갔다가 다시 무릉계곡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무릉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 사면에서 폭포가 흘러내려 두 코스를 다 가봐야 ‘거폭동(巨瀑洞)’ 장관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두 코스를 하루에 연계할 수도 있으나 여유로운 감상과 체력, 시간을 감안하면 한 코스도 벅차다. 베틀바위 코스는 연초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바라본 그림폭포, 학소대, 관음폭포의 웅장함을 잊지 못해 오늘 비를 기다려 건너편 관음암 길을 다시 오른다.
삼화사 뒤에서 하얀 물줄기를 드리우고 있는 그림폭포. 총높이는 100m를 넘는다무릉계곡 건너편 베틀바위 쪽에서 바라본 그림폭포. 수량이 적을 때의 모습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 베틀폭포
삼화사를 조금 지난 곳에서 관음암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진다. 평이한 무릉계곡길을 걷다가 갑자기 오르막이 1km나 이어져 힘겹지만 산중을 울리는 물소리에 마음은 설렌다. 수량이 급팽창한 무릉계곡 전체가 마치 길게 드러누운 폭포가 되어 분기탱천 울부짖고 있다.
조망이 전혀 트이지 않다가 마침내 돌출바위가 나타났다. 바위에 오르는 순간 계곡 건너편 베틀바위 옆으로 걸린 장대한 폭포에 입이 떡 벌어진다. 베틀바위 바로 우측에서 비스듬히 하얀 물줄기를 드리운 폭포는 길이가 120m는 되어 보인다. 다만 이 폭포 역시 그림폭포처럼 상류계곡이 짧아서 평소에는 거의 건폭 수준이다. 게다가 베틀바위 코스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따로 이름조차 없어 여기서는 ‘베틀폭포’로 부르기로 한다. 비 온 후에만 나타나는 절대 비경이다.기묘한 형태의 고사목 뒤로 베틀폭포가 길게 흐르고 있다
관음암 가는 길
전망바위에서 관음암 가는 도중에 작은 철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 상하로도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데 이곳은 저 아래 무릉계곡 합류 직전에 그윽한 정취를 풍기는 학소대 상류다. 도교에서 신성시하는 학이 산다는 학소대이지만 실제는 폭포다. 학소대 골짜기 전체가 거대한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리니, 6~7개의 폭포가 줄지어 있어 설악산 오련폭포처럼 ‘육련폭포’ 또는 ‘칠련폭포’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마침내 길이 평탄해지더니 절벽 위 기막힌 위치에 관음암이 자리 잡고 있다. 폭포 옆에 터 잡은 암자나 정자는 도교적 풍광인 ‘관폭도’의 불교적 혹은 유교적 구현이기도 하다. 고려 태조 때 창건되었다니 역사가 1100년에 달하지만 지금의 건물은 6.25 이후 중건한 것이다. 정작 암자 위 아래로 상하 관음폭포가 있지만 눈으로 보이지는 않고 물소리만이 암자를 감싸고 있다. 작은 암자는 사방에 문을 열어 놓은 채 스님도 보살도 없이 텅 비었고 그 공허를 물소리가 채워주고 있다.
관음암은 해발 445m이니 베틀바위 전망대(460m)와 거의 같은 높이다. 암자 맞은편으로는 두타산성이 있던 골짜기가 보이지만 베틀폭포나 산성12폭포는 시야 밖이다. 암자 옆으로 흐르는 계류는 바로 앞 절벽을 떨어지며 관음폭포를 이루지만 접근로가 없어 볼 수는 없다.관음암 가는 도중 학소대 상류 폭포골을 건넌다
관음폭포 위에 자리한 관음암. 탑 뒤로 계곡이 흐르며 상하 관음폭포에서 울리는 물소리가 암자를 뒤덮고 있다
경이적인 조망, 신선바위
관음암을 지나면 길은 거의 등고선을 따라 간다. 자연 토굴을 지나 얼마 가지 않으면 신선바위가 길가에 돌출해 있다. 신선이 앉아 무릉계곡의 절경을 구경했다는 신선바위는 아마도 무릉계곡은 물론 두타산 전체를 통틀어 조망이 압권일 것이다. 바위 끝은 구멍이 파인 오묘한 모양인데 아래쪽 남근바위와 조화를 이뤄 자식을 점지해주는 소원바위로 알려져 있다. 바위에서 마주보는 풍광은 일품의 진경산수화이면서 괴수가 출몰하는 SF의 무대처럼도 느껴지는 장관이다.
정면으로는 두타산성에서 흘러내리는 산성12폭포가 기경이고 저 멀리는 운무에 휩싸인 박달계곡~무릉계곡 상류가 웅장하다. 박달계곡과 마천루협곡이 무릉계곡으로 합수하는 곳에 있는 쌍폭은 수량이 얼마나 많은지 숲에 가렸는데도 굵은 물줄기가 하얗게 보일 정도다. 발밑은 아찔한 절벽인데 무릉계곡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폭포들의 물소리가 산 전체를 삼킬 듯이 울린다. 지금 두타산은 폭포 그 자체다. 신선이 여기 앉은 것이 아니라 여기 앉으면 신선이 되어서 신선바위다. 가히 압도적인 경관이다.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산성12폭포(왼쪽)와 무릉계곡. 오른쪽 아래에 쌍폭포의 일부가 보인다
산성12폭포
삼국시대에 주로 축조된 우리나라 산성(山城)은 전국적으로 1500곳을 넘을 정도로 대단히 많다. 형태로 볼 때 산꼭대기를 감싼 테뫼식, 능선과 골짜기를 한데 아우르는 포곡식(抱谷式)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규모가 클수록 물이 많이 필요해서 포곡식인 경우가 많다. 산성은 축조 공역을 최소화하면서 방어능력은 유지할 수 있도록 자연 암벽이나 암릉을 최대한 성벽으로 활용하는데, 이 때문에 성 내의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水口)는 폭포를 이루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완주 위봉산성(위봉폭포)과 무주 적상산성(천일폭포)이다. 그리고 여기, 두타산성도 성 내의 모든 물이 모여서 산성12폭포로 쏟아진다. 이름 그대로 12단으로 떨어져 내리며 총높이는 약 120m이다. 너무 길고 단수가 많아 한눈에 다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나마 신선바위 일대가 최고의 조망처다.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산성12폭포. 무릉계곡 건너편이지만 12단 전체가 다 보이지는 않는다신선바위와 하늘문 사이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산성12폭포. 화면에는 4단 정도만 드러나 있다베틀바위 코스에서 비스듬히 바라본 산성12폭포
물보라 속 쌍폭포와 용추폭포
신선바위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려면 하늘문을 거쳐야 한다. 지리산 통천문 등 전국의 산에 있는 하늘문은 바위 아래에 자연적으로 뚫린 통로 형태다. 그런데 하늘문 아래로 이어지는 철계단 앞에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경사가 심한 계단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곧추 선 계단은 길기도 해서 300단을 넘는다. 올라는 와도 내려가기는 힘든, 정말 가공할 계단이다.
널찍한 무릉계곡길에 들어서니 등산객이나 가벼운 차림의 관광객이 더러 보인다. 방금 지나온 관음암 코스는 암자를 포함해서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한 무인지경이라 극히 대조된다.
신선바위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있는 하늘문.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300개 철계단의 경사가 아찔하다
쌍폭포를 두타산 최고의 폭포 혹은 경관으로 알거나, 동해시 역시 두타산 홍보에서 쌍폭포를 앞세우는 바람에 무릉반석~삼화사를 거쳐 쌍폭포만 보고 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탐방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물이 많지 않을 때 쌍폭포는 높이가 낮고 빈약해 실망하게 된다. 박달계곡에서 내려온 왼쪽 폭포는 높이 14m, 마천루협곡에서 흘러온 오른쪽 폭포는 12m에 불과하다. 하지만 양 계곡에서 모여든 물이 폭류하는 지금은 좀 다르다. 큰 댐이 수문을 연 것처럼 양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속도와 양이 엄청나서 안개 같은 물보라로 주위가 뿌옇고 귀는 멍하다. 그동안 쌍폭포를 여러 번 보았지만 이런 장관은 처음이다.
쌍폭포에서 오른쪽 마천루협곡으로 100m 거리에서 용추폭포가 떨어진다. 용추폭포 일대는 ‘마천루협곡’이라는 험상궂은 이름에 걸맞게 까마득한 암벽이 좌우로 밀착해 있고 그 사이로 틈이 뚫려 기적 같이 폭포가 쏟아진다. 용추폭포는 3단으로 이뤄지는데 처음 보이는 것은 하단으로 높이는 12m이다. 하단 왼쪽을 돌아 올라가면 중단과 상단 전망대가 나온다. 중단은 높이 8m 밖에 되지 않으나 기묘하게 생긴 관통수로와 깊고 넓은 소(沼)가 인상적이다. 상단은 하단 뒤쪽으로 살짝 물러나 있으며 높이는 4m로 낮다. 전체적으로 폭포는 높지 않으나 주변 암벽이 주는 위압감과 분위기가 원시적인 야생성을 섬뜩하게 드러낸다.
어마어마한 수량이 몰아치는 쌍폭포. 높이는 왼쪽이 14m, 오른쪽 12m로 높지 않으나 항상 수량이 많은 편이다. 지금은 수량이 급팽창해 폭발적으로 떨어져 뿌연 물보라가 일어나고 있다
높이 50m 정도의 수직절벽이 에워싼 용추폭포 하단. 중단과 상단은 왼쪽으로 돌아올라가야 보인다. 하단 높이는 12m
깊은 소와 바위틈을 파들어간 물줄기가 신비감을 주는 용추폭포 중단. 상단은 바위틈 뒤쪽으로 살짝 보인다. 중단 높이 8m, 상단은 4m
아, 관음폭포
용추폭포에서 발길을 돌려 무릉계곡을 따라 하산에 나선다. 길은 넓고 완만하지만 돌투성이라 안락하지는 않고 숲과 협곡에 막혀 조망도 없다. 대신 무릉계곡의 거센 물소리만이 사위를 감싸고 있다. 쌍폭포에서 1km 가량 내려가 계곡을 건너면 관음폭포 안내문이 나온다. 50m 거리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100여m 오르막을 올라야 하고 지친 몸이라 쉽지 않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거세지는 물소리는 거폭의 위용과 매혹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 고개를 다 꺾어도 폭포의 전모를 볼 수가 없다. 수량이 많아 폭포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고 폭포 바로 아래인데도 방향이 다른 여러 단으로 흩어진 폭포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최상단은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쏟아져 내리고 관음암 바로 아래여서 폭포의 총높이는 약 150m 길이는 180m 정도 될 것 같다. 관음암 위쪽에는 상관음폭포가 따로 있어서 전체를 더하면 금강산 최장의 12폭포와도 견줄 만하다.
관음폭포의 전모를 보려면 무릉계곡 반대편 베틀바위 쪽으로 가야한다. 이런 장관을 방치하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길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고 자세하게 소개하는 안내문도 없다. 하단 남쪽 언덕에 전망대라도 만들면 좋을 것이다.
폭포 아래에서도 전모가 보이지 않는 관음폭포. 여러 단으로 떨어지며 총높이가 150m에 달하지만 일부만 볼 수 있다
베틀바위 쪽에서 바라본 관음폭포(왼쪽)와 학소대 폭포(오른쪽). 두 폭포골을 품은 봉우리는 느루봉(1142m)이고, 왼쪽 뒤 첨봉은 갈미봉(1260m)이다
학소대
관음폭포에서 300여m 내려가면 학소대 폭포가 바로 길가에서 쏟아져 내린다. 물이 많아 폭포수는 길마저 뒤덮고 있는데 폭포가 아니라 ‘학소대(鶴巢臺)’라는 이름이 붙어 그냥 전망대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도교적 선풍(仙風)이 감도는 학소대 절벽 중간에는 학 조형물까지 설치해놓아 그윽한 운치를 더해준다. 계곡 입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단폭포는 높이 25m 정도다.
학소대 골짜기도 관음폭포와 비슷해서 여러 개의 폭포가 상류에서부터 띄엄띄엄 이어져 골짜기 전체가 장대한 폭포를 이룬다. 총높이 230m, 길이 450m에 달하는 폭포골이다. 물이 적을 때는 졸졸 흘러 박진감이 떨어지지만 물이 많을 때는 대단한 장관으로 돌변한다. 이 역시 무릉계곡 건너편 베틀바위 쪽에서 봐야 전모가 드러난다. 능선 하나를 두고 좌우 골짜기 하류에 걸린 관음폭포와 학소대는 쌍둥이 꼴이다. 느루봉(1142m) 직하에서 시작되는 상류 골짜기 규모가 비슷한데다 유역면적도 꽤 넓어서 두 폭포 모두 물이 마르는 일은 드물다.
학소대에서 두타산 폭포 기행은 일단 끝난다. 그림폭포 근경과 박달폭포는 다음 언젠가, 큰 비 그친 후에 다시 와야겠다.왼쪽 바위에 학 조형물이 있는 학소대. 폭포는 비스듬한 와폭으로 높이 25m, 길이 50m 정도이며 위쪽으로 여러 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길이 100m 이상 폭포가 곳곳에
두타산 최고 절경이라는 베틀바위(왼쪽 끝) 근처에서 쏟아지는 베틀폭포. 비 온 후에만 볼 수 있으며 총 길이가 120m에 달한다. 사진 중간 바위 위에 베틀바위 전망대가 있다
가만 두면 무한평면을 추구하기에 가장 평화롭고 아늑한 물…. 그러나 가끔은 야누스의 돌변한 모습을 보인다. 땅을 집어삼길 듯 쏟아지는 폭우, 거함마저 침몰시킬 것만 같은 파도는 가히 공포스럽다.
기상변화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물이 야누스의 이면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 바로 폭포다. 얌전하던 물이 광분하며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비산하며 폭주하는 모습은 감각적인 장관이면서 정서적 영감을 준다. 폭포는 사람이 살기 힘든 험준한 지형에 있기 마련이어서 세속과 동떨어진 탈속감을 주고 때로는 신비감마저 발산한다. 그래서 도교적 이상향을 화폭에 담는 산수화는 폭포를 넣어 격리감을 더하고, 서양에서도 SF영화나 괴물이 사는 배경에는 거대한 폭포가 떨어진다.
삼화사 앞 무릉계곡. 큰 비 내린 후라 물이 폭류하면서 굉음이 산 전체를 울린다
산수화의 한 장르에 도인(道人)이 가만히 폭포를 바라보는 관폭도(觀瀑圖)가 있다. 왜 도인은 폭포를 오르거나, 혹은 도력을 이용해 날아 넘거나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걸까. ‘폭포 바라보기’가 어떤 이유에서 도교적 선풍을 과장하는 걸까.
오래전 중국 시안(西安)을 여행하다 기념품가게에 걸려 있는 관폭도 한 점에 눈이 가서 구입해 오랫동안 내 서재에 걸려 있었다. 칼을 찬 도인이 홀로 바위에 올라서서 기다란 족자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폭포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달리 설명은 없으나 첫눈에 이백(당나라 때의 시인)이 여산폭포를 바라보는 풍경으로 직감했다. ‘관폭’이 왜 선풍(仙風)과 연결되는지 나는 이 그림으로 이해했다.
집어삼킬 듯한 굉음과 기세로 급전직하 폭류하는 폭포수는 무심히 앉은 산이 낼름거리는 혀 같이 공포스럽지만 그 앞에 외로운 단독자가 되어 1:1로 마주 선 도인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차분한 표정이다. 자연의 위압, 혹은 극단의 미감 앞에서도 부동의 심상으로 마주하는 존재…. 여기서 발휘되는 용기와 관용, 달관은 속인의 범접을 저만큼 뛰어넘어 있으니 신비감과 선풍은 자연히 발현된다.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 개인과 주관을 재발견한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주의와도 맥이 닿는다. 두렵고 불안하더라도 1:1의 직면으로서만 우리는 진상을 볼 수 있고, 그 다음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두타산~청옥산 등산 안내도. 여기서는 지도의 현위치(삼화사)에서 관음암~하늘문~쌍폭포~용추폭포~학소대~삼화사 코스를 답사했다. 거리 약 8km이며 소요시간은 4시간 이상 잡는 것이 좋다 무릉계곡에서 관음암 가는 길이 갈라진다. 초반 1km 정도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관음암 가는 길에 내려다본 무릉계곡. 저 멀리 두타산~청옥산 주능선은 구름에 가렸다. 계곡 좌우로 급경사를 이룬 사면에서 장대한 폭포들이 쏟아진다. 왼쪽 위에 산성12폭포가 살짝 보인다
오늘도 폭포를 보러 간다. 지난번에는 설악산 토왕골로 갔다면 오늘은 두타산 무릉계곡이다. 설악산은 국내에서 폭포가 가장 많고 규모도 큰 산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대비해 ‘설악산 일만이천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반도 최고의 길이 320m 토왕성폭포를 비롯해 100m가 넘는 거폭이 여럿 있다. 이 설악산에 비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산이 있으니 바로 두타산이다. 설악산(1708m)보다는 조금 낮으나 두타산(1353m)~청옥산(1404m) 연봉과 무릉계곡은 설악산과 천불동계곡 관계와 흡사하다. 오히려 조선시대까지는 설악산보다 두타산의 명성과 위상이 더 높았던 것 같다. 무릉계곡 반석에 새겨진 수많은 유람객들의 이름이 이를 말해준다.
두타산~청옥산은 겨우 3km 떨어져 있는 연봉으로 하나의 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청옥산 북쪽2km 지점에는 고적대(1357m)가 있어 실은 3연봉으로 봐야 한다. 가장 높은 청옥산을 중심으로 두타산과 고적대는 부속 봉우리로 볼 수 있는데 두타산의 지명도가 높아 통칭 ‘두타산’으로 불린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창건된 삼화사. 왕건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후삼국통일을 이루자 세 나라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로 삼화사(三和寺)라고 했다
두타산에 걸린 폭포는 일단 높이가 어마어마하지만 수량이 부족해 비 온 후라야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먼저, 폭포의 규모를 표현하는 높이와 길이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높이는 말 그대로 물이 떨어지는 수직의 낙차(落差)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수직보다는 약간 비스듬한 폭포(臥瀑)가 많아 낙차로 규모를 표현하기가 애매한 곳이 많다. 토왕성폭포의 경우 수직 높이는 250m 정도인데 길이는 320m나 되는 것도 중단이 와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수직폭은 높이를, 와폭이나 수직폭+와폭의 복합 형태는 길이로 표현하겠다.
모처럼 많은 비가 내린 날 두타산으로 향했다. 비가 그친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릉계곡 초입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빗줄기가 강해 한동안을 기다렸다. 기상 레이더 영상을 보니 두타산 일원에만 오는 비여서 금방 지나갈 듯했다. 그렇다면 비가 그친 직후이니 가장 웅장하고 멋진 폭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30분 정도 기다리자 비는 멈추었고 깊은 협곡은 낮은 구름에 잠식되어 약간의 공포감을 담아 신비로운 분위기에 감싸여 있었다.
삼화사 배경을 이루는 100m 그림폭포
상가들이 밀집한 사하촌을 거쳐 삼화사로 접어들면 절 뒤편 높은 곳에서 마치 SF영화나 상상의 산수화처럼 거대한 절벽을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나타난다. 바로 그림폭포다. 폭포 위쪽에 중대사지가 있어 중대폭포, 혹은 삼화사 위쪽이라고 해서 상폭으로도 불린다. 접근이 어려워 목측이긴 하지만 폭포 높이는 약 100m, 길이는 150m를 넘는다. 삼화사에서 500여m 거리인데 접근하는 길이 없다. 계곡을 따라가는 비공식 루트는 있는 듯하지만 오늘은 멀리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폭포 상류 계곡이 500~600m로 매우 짧아서 비가 내린 후 아니면 마른 건폭(乾瀑)일 때가 많다. 저런 엄청난 장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은 삼화사를 거쳐 무릉계곡 북쪽에 있는 관음암~신선바위~하늘문을 경유해 용추폭포까지 갔다가 무릉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삼화사에서 무릉계곡 남쪽의 베틀바위 코스로 갔다가 다시 무릉계곡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무릉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 사면에서 폭포가 흘러내려 두 코스를 다 가봐야 ‘거폭동(巨瀑洞)’ 장관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두 코스를 하루에 연계할 수도 있으나 여유로운 감상과 체력, 시간을 감안하면 한 코스도 벅차다. 베틀바위 코스는 연초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바라본 그림폭포, 학소대, 관음폭포의 웅장함을 잊지 못해 오늘 비를 기다려 건너편 관음암 길을 다시 오른다.
삼화사 뒤에서 하얀 물줄기를 드리우고 있는 그림폭포. 총높이는 100m를 넘는다무릉계곡 건너편 베틀바위 쪽에서 바라본 그림폭포. 수량이 적을 때의 모습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 베틀폭포
삼화사를 조금 지난 곳에서 관음암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진다. 평이한 무릉계곡길을 걷다가 갑자기 오르막이 1km나 이어져 힘겹지만 산중을 울리는 물소리에 마음은 설렌다. 수량이 급팽창한 무릉계곡 전체가 마치 길게 드러누운 폭포가 되어 분기탱천 울부짖고 있다.
조망이 전혀 트이지 않다가 마침내 돌출바위가 나타났다. 바위에 오르는 순간 계곡 건너편 베틀바위 옆으로 걸린 장대한 폭포에 입이 떡 벌어진다. 베틀바위 바로 우측에서 비스듬히 하얀 물줄기를 드리운 폭포는 길이가 120m는 되어 보인다. 다만 이 폭포 역시 그림폭포처럼 상류계곡이 짧아서 평소에는 거의 건폭 수준이다. 게다가 베틀바위 코스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따로 이름조차 없어 여기서는 ‘베틀폭포’로 부르기로 한다. 비 온 후에만 나타나는 절대 비경이다.기묘한 형태의 고사목 뒤로 베틀폭포가 길게 흐르고 있다
관음암 가는 길
전망바위에서 관음암 가는 도중에 작은 철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 상하로도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데 이곳은 저 아래 무릉계곡 합류 직전에 그윽한 정취를 풍기는 학소대 상류다. 도교에서 신성시하는 학이 산다는 학소대이지만 실제는 폭포다. 학소대 골짜기 전체가 거대한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리니, 6~7개의 폭포가 줄지어 있어 설악산 오련폭포처럼 ‘육련폭포’ 또는 ‘칠련폭포’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마침내 길이 평탄해지더니 절벽 위 기막힌 위치에 관음암이 자리 잡고 있다. 폭포 옆에 터 잡은 암자나 정자는 도교적 풍광인 ‘관폭도’의 불교적 혹은 유교적 구현이기도 하다. 고려 태조 때 창건되었다니 역사가 1100년에 달하지만 지금의 건물은 6.25 이후 중건한 것이다. 정작 암자 위 아래로 상하 관음폭포가 있지만 눈으로 보이지는 않고 물소리만이 암자를 감싸고 있다. 작은 암자는 사방에 문을 열어 놓은 채 스님도 보살도 없이 텅 비었고 그 공허를 물소리가 채워주고 있다.
관음암은 해발 445m이니 베틀바위 전망대(460m)와 거의 같은 높이다. 암자 맞은편으로는 두타산성이 있던 골짜기가 보이지만 베틀폭포나 산성12폭포는 시야 밖이다. 암자 옆으로 흐르는 계류는 바로 앞 절벽을 떨어지며 관음폭포를 이루지만 접근로가 없어 볼 수는 없다.관음암 가는 도중 학소대 상류 폭포골을 건넌다
관음폭포 위에 자리한 관음암. 탑 뒤로 계곡이 흐르며 상하 관음폭포에서 울리는 물소리가 암자를 뒤덮고 있다
경이적인 조망, 신선바위
관음암을 지나면 길은 거의 등고선을 따라 간다. 자연 토굴을 지나 얼마 가지 않으면 신선바위가 길가에 돌출해 있다. 신선이 앉아 무릉계곡의 절경을 구경했다는 신선바위는 아마도 무릉계곡은 물론 두타산 전체를 통틀어 조망이 압권일 것이다. 바위 끝은 구멍이 파인 오묘한 모양인데 아래쪽 남근바위와 조화를 이뤄 자식을 점지해주는 소원바위로 알려져 있다. 바위에서 마주보는 풍광은 일품의 진경산수화이면서 괴수가 출몰하는 SF의 무대처럼도 느껴지는 장관이다.
정면으로는 두타산성에서 흘러내리는 산성12폭포가 기경이고 저 멀리는 운무에 휩싸인 박달계곡~무릉계곡 상류가 웅장하다. 박달계곡과 마천루협곡이 무릉계곡으로 합수하는 곳에 있는 쌍폭은 수량이 얼마나 많은지 숲에 가렸는데도 굵은 물줄기가 하얗게 보일 정도다. 발밑은 아찔한 절벽인데 무릉계곡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폭포들의 물소리가 산 전체를 삼킬 듯이 울린다. 지금 두타산은 폭포 그 자체다. 신선이 여기 앉은 것이 아니라 여기 앉으면 신선이 되어서 신선바위다. 가히 압도적인 경관이다.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산성12폭포(왼쪽)와 무릉계곡. 오른쪽 아래에 쌍폭포의 일부가 보인다
산성12폭포
삼국시대에 주로 축조된 우리나라 산성(山城)은 전국적으로 1500곳을 넘을 정도로 대단히 많다. 형태로 볼 때 산꼭대기를 감싼 테뫼식, 능선과 골짜기를 한데 아우르는 포곡식(抱谷式)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규모가 클수록 물이 많이 필요해서 포곡식인 경우가 많다. 산성은 축조 공역을 최소화하면서 방어능력은 유지할 수 있도록 자연 암벽이나 암릉을 최대한 성벽으로 활용하는데, 이 때문에 성 내의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水口)는 폭포를 이루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완주 위봉산성(위봉폭포)과 무주 적상산성(천일폭포)이다. 그리고 여기, 두타산성도 성 내의 모든 물이 모여서 산성12폭포로 쏟아진다. 이름 그대로 12단으로 떨어져 내리며 총높이는 약 120m이다. 너무 길고 단수가 많아 한눈에 다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나마 신선바위 일대가 최고의 조망처다.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산성12폭포. 무릉계곡 건너편이지만 12단 전체가 다 보이지는 않는다신선바위와 하늘문 사이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산성12폭포. 화면에는 4단 정도만 드러나 있다베틀바위 코스에서 비스듬히 바라본 산성12폭포
물보라 속 쌍폭포와 용추폭포
신선바위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려면 하늘문을 거쳐야 한다. 지리산 통천문 등 전국의 산에 있는 하늘문은 바위 아래에 자연적으로 뚫린 통로 형태다. 그런데 하늘문 아래로 이어지는 철계단 앞에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경사가 심한 계단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곧추 선 계단은 길기도 해서 300단을 넘는다. 올라는 와도 내려가기는 힘든, 정말 가공할 계단이다.
널찍한 무릉계곡길에 들어서니 등산객이나 가벼운 차림의 관광객이 더러 보인다. 방금 지나온 관음암 코스는 암자를 포함해서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한 무인지경이라 극히 대조된다.
신선바위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있는 하늘문.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300개 철계단의 경사가 아찔하다
쌍폭포를 두타산 최고의 폭포 혹은 경관으로 알거나, 동해시 역시 두타산 홍보에서 쌍폭포를 앞세우는 바람에 무릉반석~삼화사를 거쳐 쌍폭포만 보고 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탐방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물이 많지 않을 때 쌍폭포는 높이가 낮고 빈약해 실망하게 된다. 박달계곡에서 내려온 왼쪽 폭포는 높이 14m, 마천루협곡에서 흘러온 오른쪽 폭포는 12m에 불과하다. 하지만 양 계곡에서 모여든 물이 폭류하는 지금은 좀 다르다. 큰 댐이 수문을 연 것처럼 양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속도와 양이 엄청나서 안개 같은 물보라로 주위가 뿌옇고 귀는 멍하다. 그동안 쌍폭포를 여러 번 보았지만 이런 장관은 처음이다.
쌍폭포에서 오른쪽 마천루협곡으로 100m 거리에서 용추폭포가 떨어진다. 용추폭포 일대는 ‘마천루협곡’이라는 험상궂은 이름에 걸맞게 까마득한 암벽이 좌우로 밀착해 있고 그 사이로 틈이 뚫려 기적 같이 폭포가 쏟아진다. 용추폭포는 3단으로 이뤄지는데 처음 보이는 것은 하단으로 높이는 12m이다. 하단 왼쪽을 돌아 올라가면 중단과 상단 전망대가 나온다. 중단은 높이 8m 밖에 되지 않으나 기묘하게 생긴 관통수로와 깊고 넓은 소(沼)가 인상적이다. 상단은 하단 뒤쪽으로 살짝 물러나 있으며 높이는 4m로 낮다. 전체적으로 폭포는 높지 않으나 주변 암벽이 주는 위압감과 분위기가 원시적인 야생성을 섬뜩하게 드러낸다.
어마어마한 수량이 몰아치는 쌍폭포. 높이는 왼쪽이 14m, 오른쪽 12m로 높지 않으나 항상 수량이 많은 편이다. 지금은 수량이 급팽창해 폭발적으로 떨어져 뿌연 물보라가 일어나고 있다
높이 50m 정도의 수직절벽이 에워싼 용추폭포 하단. 중단과 상단은 왼쪽으로 돌아올라가야 보인다. 하단 높이는 12m
깊은 소와 바위틈을 파들어간 물줄기가 신비감을 주는 용추폭포 중단. 상단은 바위틈 뒤쪽으로 살짝 보인다. 중단 높이 8m, 상단은 4m
아, 관음폭포
용추폭포에서 발길을 돌려 무릉계곡을 따라 하산에 나선다. 길은 넓고 완만하지만 돌투성이라 안락하지는 않고 숲과 협곡에 막혀 조망도 없다. 대신 무릉계곡의 거센 물소리만이 사위를 감싸고 있다. 쌍폭포에서 1km 가량 내려가 계곡을 건너면 관음폭포 안내문이 나온다. 50m 거리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100여m 오르막을 올라야 하고 지친 몸이라 쉽지 않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거세지는 물소리는 거폭의 위용과 매혹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 고개를 다 꺾어도 폭포의 전모를 볼 수가 없다. 수량이 많아 폭포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고 폭포 바로 아래인데도 방향이 다른 여러 단으로 흩어진 폭포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최상단은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쏟아져 내리고 관음암 바로 아래여서 폭포의 총높이는 약 150m 길이는 180m 정도 될 것 같다. 관음암 위쪽에는 상관음폭포가 따로 있어서 전체를 더하면 금강산 최장의 12폭포와도 견줄 만하다.
관음폭포의 전모를 보려면 무릉계곡 반대편 베틀바위 쪽으로 가야한다. 이런 장관을 방치하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길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고 자세하게 소개하는 안내문도 없다. 하단 남쪽 언덕에 전망대라도 만들면 좋을 것이다.
폭포 아래에서도 전모가 보이지 않는 관음폭포. 여러 단으로 떨어지며 총높이가 150m에 달하지만 일부만 볼 수 있다
베틀바위 쪽에서 바라본 관음폭포(왼쪽)와 학소대 폭포(오른쪽). 두 폭포골을 품은 봉우리는 느루봉(1142m)이고, 왼쪽 뒤 첨봉은 갈미봉(1260m)이다
학소대
관음폭포에서 300여m 내려가면 학소대 폭포가 바로 길가에서 쏟아져 내린다. 물이 많아 폭포수는 길마저 뒤덮고 있는데 폭포가 아니라 ‘학소대(鶴巢臺)’라는 이름이 붙어 그냥 전망대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도교적 선풍(仙風)이 감도는 학소대 절벽 중간에는 학 조형물까지 설치해놓아 그윽한 운치를 더해준다. 계곡 입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단폭포는 높이 25m 정도다.
학소대 골짜기도 관음폭포와 비슷해서 여러 개의 폭포가 상류에서부터 띄엄띄엄 이어져 골짜기 전체가 장대한 폭포를 이룬다. 총높이 230m, 길이 450m에 달하는 폭포골이다. 물이 적을 때는 졸졸 흘러 박진감이 떨어지지만 물이 많을 때는 대단한 장관으로 돌변한다. 이 역시 무릉계곡 건너편 베틀바위 쪽에서 봐야 전모가 드러난다. 능선 하나를 두고 좌우 골짜기 하류에 걸린 관음폭포와 학소대는 쌍둥이 꼴이다. 느루봉(1142m) 직하에서 시작되는 상류 골짜기 규모가 비슷한데다 유역면적도 꽤 넓어서 두 폭포 모두 물이 마르는 일은 드물다.
학소대에서 두타산 폭포 기행은 일단 끝난다. 그림폭포 근경과 박달폭포는 다음 언젠가, 큰 비 그친 후에 다시 와야겠다.왼쪽 바위에 학 조형물이 있는 학소대. 폭포는 비스듬한 와폭으로 높이 25m, 길이 50m 정도이며 위쪽으로 여러 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