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고성(固城) 연화산~천왕산

자생투어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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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m급 심산유곡, 1300년 고찰이 터 잡은 까닭은  

 

느재고개에서 옥천사로 이어지는 숲길. 울창한 고목은 연화산의 비범함을 말해준다 

얼마 전 최북단의 고성(高城) 성인대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남쪽으로 500km 떨어진 고성(固城)으로 간다. 연화산도립공원이 목표다. 연화산(528m)은 그리 높지도 특별하지도 않은데 왜 국립공원 다음 가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500m급 산 도립공원으로는 청양 칠갑산(561m)과 영광 불갑산(516m)이 떠오른다. 산은 높지 않으나 품이 넓고 고찰을 안고 있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연화산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연화산 남쪽에는 고성의 진산으로 여겨지는 천왕산(583m)이 우뚝하다. 고성 주변에는 벽방산(650m)과 거류산(572m) 같은 알려진 산이 있지만 고성 사람들은 더 멀리 있는 이 천왕산을 진산으로 여긴다. 그 이유도 궁금해서 연화산~천왕산을 함께 돌아보기로 한다.

송계마을 이씨고가 입구. 솟을대문 앞에 작은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느재고개까지는 뜻밖에 번듯한 아스팔트 길이 나 있다 

연화산과 천왕산 사이로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지나고 고성공룡나라휴게소도 있다. 고속도로 바로 남쪽 언덕바지에 자리한 송계마을을 출발지로 잡는다. 마을회관 앞에 주차공간이 있고 고택 몇 채가 남은 마을의 내력도 각별하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울창한 대밭을 배경으로 이씨고가가 고풍스럽다. 조선후기 권세 있는 양반가의 전형적인 형태로 솟을대문 앞에 작은 돌다리가 놓은 것이 이채롭다. 황토와 돌로 쌓은 담장은 장구한 세월에도 불구하고 튼실하게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고택은 비어 있지만 마을은 빈 집이 적은 걸 보니 이 오랜 마을은 그럭저럭 유지가 되는 모양이다. 마을회관도 근래에 지어 번듯하다.

마을을 벗어나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오르막이 본격화된다. 통행량이 거의 없는데 2차로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고 시루봉(541m)과 혼돈산(499m) 사이 안부(360m)를 넘어서면 잠시 숲길 내리막이 나온다. 여기 남쪽에도 가을은 물씬해서 길에는 낙엽이 뒹굴고 무성했던 가지는 점차 앙상해지고 있다.

연화산 정상인 연화봉과 연화1봉 사이 안부에 있는 느재고개(310m). 아스팔트 길은 여기서 갑자기 끝난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옥천사가 있다  

아스팔트 도로는 느재고개(310m)에서 끝이 난다. 느재고개는 정상인 연화봉(528m)과 연화1봉(489m) 사이에 있으며 오른쪽 시멘트길을 따라 울창한 숲을 내려가면 옥천사로 이어진다. 옥천사는 연화산의 명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고찰로 산내에 청련암, 백련암, 연대암, 적멸보궁 같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1350년에 달한다. 이름은 대웅전 왼쪽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옥천(玉泉)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완전 소실되었다가 1639년(인조 17년) 다시 지었다.

절 입구에는 정면 7칸, 측면 3칸의 장대한 자방루(滋芳樓, 보물 제2204호)가 시선을 압도한다. 옥천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거처해 앞마당은 승병들의 훈련장이었다면 자방루는 호국사찰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어딘가 절에 어울리지 않는 상무(尙武)의 기풍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웅전과 자방루 사이 내정은 좁은 편이나 아담한 당우들이 오밀조밀 밀집해 아늑하다. 마침 대웅전이 보수공사중이라 옥천 샘을 확인하지 못했다.

정면 7칸의 장대한 자방루. 뒤쪽에 건물로 둘러싸인 내정이 있고 위쪽에 대웅전이 있어 전통사찰보다는 향교나 서원의 배치구조와 비슷하다  

널찍한 자방루 내부. 임진왜란 당시 호국사찰답게 어딘가 상무의 기풍이 느껴진다

옥천사에서 다시 느재고개를 거쳐 연화산 남록에 자리한 절명보궁으로 향한다. 연화산~시루봉 안부인 월곡재(410m)를 넘으면 왼쪽 산록에 적멸보궁이 아늑하다. 전각은 1996년 조성되어 오래되지 않았고 석가모니 쇄신사리(碎身舍利)를 모시고 있다. 전국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이 알려져 있는데 그밖에도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이 적지 않다. 진신사리의 도입 과정이 석연치 않아 진위 여부를 알 수 없고 그 숫자조차 너무 많으니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스스로 평범한 인간임을 밝혔고 마지막에는 보통사람처럼 병을 앓다 죽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가르침은 인생의 고뇌와 고통을 넘어서는 궁극의 방안으로서 지금도 유효하니,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자신을 신격화한 거대 불상과 탑, 건물을 본다면 석가모니는 “내 가르침은 그게 아니다”며 탄식할 것이다.

극락보궁(極樂寶宮) 현판이 달린 본전은 시루봉을 마주보면서 저 아래 인간세도 바라본다. 당항만의 한 귀퉁이와 구절산(565m) 위로 구름이 둥실하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 연화봉 남쪽 기슭에 있다  

적멸보궁 앞뜰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당항만 뒤로 구절산이 둔중하고, 오른쪽으로는 거류산이 오똑하다 

월곡재에서 옷을 여미고 긴 다운힐을 대비한다. 평지까지는 3.5km이고 아스팔트 도로까지 있어 쾌속으로 질주하니 업힐 때 흘린 땀은 삽시간에 마르고 가을 기운이 서늘하게 침범한다.

다시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해 잘 보존된 갈천서원과 좁은 들판을 지나 계곡길로 들어서면 갈천저수지가 나타난다. 둑을 건너 천왕산을 올랐다가 반대편 길로 내려올 것이다.

학남산(551m)과 천왕산(583m) 사이를 넘는 대치(큰고개, 440m) 고개는 길가로 왕벚나무가 줄을 지어 봄에는 굉장한 벚꽃길이 될 것이다. 이 길은 고개 너머까지 이어져 ‘십리벚꽃길’로 이미 이름이 높다.

대치를 살짝 넘어간 곳에서 오른쪽으로 천왕산 임도가 시작된다. 노면이 좋고 경사가 심하지 않아 스쿠터로 다니는 주민도 있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트이는 조망을 즐기며 이윽고 천왕산 정상 직전이자 코스 최고지점(505m)에 닿았다. 여기서 정상까지 200m는 자전거를 두고 걸어가야 한다. 6, 7분이면 정상에 도착하지만 생각보다 조망이 대단하지 않아 실망이다.

건물이 잘 보존된 갈천서원

갈천저수지 뒤로 천왕산(오른쪽)이 자못 웅장하다대치고갯길은 벚나무고목이 즐비해 봄이면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룰듯

천왕산 임도에서 바라본 백운산(484m)과 천비룡사

노면이 좋은 천왕산 임도천왕산 정상 바로 아래에 도착했다. 여기서 정상까지 200m는 걸어가야 한다

정상석 뒷면에는 지리산 천왕봉처럼 ‘固城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하다’라고 새겨져 있다(천왕봉에는 ‘한국인의 기상’으로 표기). 고성 사람들이 이 산을 진산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대동여지도에는 무량산(無量山)으로 되어 있고 대치(大峙)가 ‘천왕점(天王岾)’인 것으로 봐서는 고개와 산 이름이 뒤바뀐 듯하다. 현재의 무량산(545m)은 근거가 애매하며, 바로 옆의 철마산(417m)은 정상부에 돌출바위가 있어 대동여지도의 불암산(佛岩山)으로 보인다.

천왕산에서 시작된 산줄기는 남쪽으로 대곡산(531m)~철마산을 거쳐 고성읍내 옆으로 이어지고, 고대부터 고성을 상징하는 송학동고분군도 이 산줄기의 여파에 닿아 있으니 천왕산은 고성의 진산으로 적절하다.

정상에서는 고성읍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고성만과 멀리 통영의 산과 섬들도 아련하다. 남해는 바다보다 섬 면적이 더 넓은 듯 수많은 섬산들이 운무 위 봉우리처럼 첩첩하다. 사량도 지리산과 남해도 금산이 멀지 않다. 북으로는 함안의 진산이라고 할 수 있는 여항산(770m)과 서북산(739m), 창원 경계의 광려산(723m)~대산(726m)이 최후의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천왕산 정상에는 작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고, 정상석 뒤에는 태양열발전기와 기상관측장비가 있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을 본따 만든 듯. 천왕산이 고성의 진산임을 말해준다고성읍내와 벽방산, 고성만이 훤하게 보인다

남쪽으로는 사량도(왼쪽 원경)와 남해(오른쪽 맨뒤)가 조망된다. 가운데 쌍봉을 이룬 봉우리는 좌이산(416m)

산줄기가 첩첩한 북동쪽 조망. 맨뒤 왼쪽부터 함안 여항산~서북산, 창원 광려산~대산 능선  

화리재에서 양화리로 이어지는 임도. 이번 코스는 화리재에서 반대편 종생마을로 내려간다  

가을이 깊은데도 정상에는 날벌레가 많아 오래 머물기가 어렵다. 이제 종생마을까지 5km 다운힐이 기다린다. 대곡산 사이 안부인 화리재(390m)까지 순식간에 내려서서 잠시 숨을 돌린다. 화리재는 십자로를 이루며 평상이 마련되어 있고 ‘갈천임도 자전거길’ 안내판이 붙어 있다. 반갑기는 한데, 루트화가 되지 않아 단순 안내에 그친다. 다만, ‘자전거 코스’를 알리는 이런 안내판이라도 있으면 보행자를 만나더라도 덜 미안하기는 하다.

마을에 내려서기 전, 어느 집에선가 자전거를 본 개가 요란하게 짖는다. 홀로 뚝뚝 떨어져 있는 강원도의 산촌(散村)을 보다가 다닥다닥 붙은 마을길을 지나니 한편 정겹고 오순도순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부자유스런 느낌이 든다.

갈천저수지를 내려서면 저 앞으로 연화산 시루봉이 우뚝하다. 인상적이긴 한데, 왜 도립공원인지는 여전히 애매하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사거리를 이룬 화리재 쉼터. 오른쪽에 '갈천임도 자전거길' 안내판이 있다    

종생마을 직전의 대밭  

종생마을에서 돌아본 천왕산. 오른쪽 잘록한 곳이 화리재다 


고성 연화산~천왕산 3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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