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에는 아련한 바닷길, 산은 장쾌 조망
난간석이 7가지 무지개빛으로 칠해진 '무지개빛 해안도로'. 물이 빠진 갯벌 저편으로 사천대교가 만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천만은 남해안에서 강진만 다음으로 좁고 긴 내만이다. 만의 서쪽은 구릉지와 산악지대지만 동쪽은 평야가 펼쳐져 완전히 대조된다. 게다가 평야 뒤쪽에는 남해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와룡산(801m)이 웅장하게 솟아 있어 지형적 입체감이 특별하고, 비교적 단조로운 해안선을 따라서는 아름다운 해변길이 뻗어 있다.
해안도로 남단에는 남해와 다도해 조망이 탁월한 각산(408m)이 있고 사천바다케이블카가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정상 바로 옆까지 임도가 나 있어 자전거로도 오를 수 있으니 이제 바다와 산, 다도해 조망을 아우르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한다.
사천만 해안에 자리한 선진리성. 고려시대 토성 위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이다. 성벽 일부가 복원되어 있으나 다소 축소된 형태다
출발지는 사천만 중간쯤에 자리한 선진리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성한 왜성이지만 원래 고려시대에 조창을 방어하기 위한 토성이 있었다. 1592년 인근 앞바다에서 벌어진 사천해전에서 이순신 함대가 왜선 13척을 격파하는 승리를 거뒀지만, 1597년에는 조명연합군이 왜군에 대패한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심부 성벽만 일부 축소 복원되어 있으나 원래는 둘레 1.8km 정도의 거성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순천에서 울산까지 해안을 따라 33곳의 왜성을 쌓고 만약의 경우 일본 본토로 후퇴할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본래 일본의 성은 백제 산성에서 유래했지만 중세 전국시대를 겪으며 축성술이 발달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구조가 특징이다. 이 때문에 조명연합군은 대군으로도 왜성을 거의 함락하지 못했다.
왜성은 해안 구릉을 활용해 복잡한 구조로 축성해 방어는 쉬운 대신, 공격하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1597년 전투에서는 3만의 조명연합군이 성 아래 운집해 공격을 준비했으나 자체 오발사고로 화약고가 폭발하는 틈을 이용해 역습한 왜군에 대패하고 말았다. 성 동쪽에는 당시 숨진 조명연합군 시신을 묻은 조명군총이 전한다. 지금의 왜성은 벚꽃이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성벽 상당수가 복원되어 중세 일본성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선진리성(사천왜성)의 조감도. 지휘부가 있던 석축성벽 부분만 표시한 것으로, 외곽에는 토성을 쌓아 주둔군 부지를 에워싸도록 했다. 1번이 성에서 가장 높고 최고 지도자가 거주한 천수각 터. 3번 문으로 진입하려면 성벽에 에워싸인 긴 통로를 지나야 하고 성문 주변은 방어에 유리한 누대와 성벽이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옹성의 기능을 극대화 한 구조다
이순신 함대가 선진리성 일대에서 왜선 13척을 격파한 사천해전 개요도
선진리성을 공격하려다 왜군의 역습으로 대패한 조명연합군의 희생자 묘(조명군총)
선진리성을 북으로 돌아 해안으로 나선다. 성곽 서쪽은 해안절벽을 이뤄 자연 성벽이 되어주고 바다를 끼고 있어 여차 하면 퇴로를 열기도 쉽다. 자연지형을 절묘하게 활용한 축성과 입지 선택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100년 동안 치열한 내전을 겪으며 ‘전쟁귀신’이 된 이런 왜군에게 장기간 평화를 구가해온 조선과 명나라 군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신식 무기인 조총까지 겸비했으니 이들을 상대하는 조명연합군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래도 끝까지 대적하며 일진일퇴를 거듭했고 결국에는 이 땅에서 쫓아낸 용기와 결기는 대단하다. 수많은 희생자를 한데 묻어 하나의 봉분만 남은 조명군총 앞에 머리를 숙인다.
400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투는 이제 역사가 되었고, 성곽 바로 옆 선진항은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선진항 즈음의 사천만은 폭이 1.2km 정도로 넓은 편은 아니어서 고요한 호수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선진항 남쪽 종포 일원에는 새로운 공단이 조성중이다. 사천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는 항공산업의 요람이어서 관련 업종이 많이 모여들고 있다.
선진리성 북쪽 해안에는 해변공원이 조성되었다
구릉과 구비치는 해안선이 아름다운 종포 해안로
구릉을 따라 부드럽게 만곡하는 종포 해안을 돌아나가면 당간마당 쉼터까지 직선로가 뻗어나고 저편으로 사천만을 횡단하는 길이 2,145m의 사천대교가 장대하다. 당간마당부터는 길가 난간석을 7가지 무지개빛으로 칠해놓은 ‘무지개빛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무지개빛 해안도로는 무룡마을까지 4.7km나 이어진다. 노변 보행로가 넓어 자전거도로로 충분해서 편안하게 풍광을 감상하며 달릴 수 있다. 해안길이 예뻐서 늦가을인데도 해안 곳곳에는 캠핑이나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사천대교를 지나면 와룡산의 위용이 한층 가까워지고, 각산도 훌쩍 다가선다. 사천만 저편에는 남해안 최고봉인 하동 금오산(875m)이 마주본다.
종포마을에서 당간마당 쉼터까지 이어지는 직선로. 왼쪽이 와룡산(801m), 오른쪽 멀리가 목적지인 각산(408m)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다랑논과 사천시청 그리고 와룡산. 와룡산은 남해안 전체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거북선이 처음 출전했다는 사천해전 기념 조형물
사천만을 건너는 사천대교(2,145m). 만 건너편은 사천 서포면이다. 사천만 좌우 전체가 사천에 속한다
잔잔한 풍경에 발랄함을 더해주는 무지개빛 난간석. 장장 4.7km나 이어진다
사천만 갯벌은 자갈마당이다. 만 저편으로 남해안 최고봉인 하동 금오산(875m)이 희미하다
송포농공단지에서 해안도로는 사실상 끝나고 송천마을에서 도로(해안관광로)를 타고 남하한다. 전망 좋은 해변 언덕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섰고 광포항에는 고급 요트가 즐비하다. 실로 풍요와 평화의 정경이다.
영복마을을 지나 고갯마루 즈음에서 ‘사천시누리원’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각산 업힐이 시작된다. 누리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자연장지’는 손바닥만 한 석비로 이 세상을 다녀간 최후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금껏 본 묘원 중에 가장 합리적이면서 품위 있고 또 경관이 아름답다. 이마저 30년 한도이니 물질적 존재로서의 영원한 안식은 이제 없다. 분자를 거쳐 원자로까지 분해된 다음에야 우주 전체가 묘원이고 새로운 존재의 씨앗인데 무슨 터가 필요하리.
해안관광로 언덕에서 바라본 사천만과 사천대교
각산 초입에서 그동안 지나온 해안선을 돌아본다. 근접한 포구는 광포항
편안한 전망대 쉼터 같은 사천누리원 자연장지. 손바닥만한 오석이 비명(碑銘)이다. 사천만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누리원을 통과해 계속 가면 임도는 각산 줄기를 따라 꾸준히 고도를 높여간다. 저 아래로 사천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와룡산도 허리춤 시선으로 다가선다. 누리원에서 5.5km 가면 이윽고 정상능선의 송신탑(팔각정)에 이른다. 이곳이 해발 390m이니 정상 턱밑이다. 팔각정 뒤로는 좁은 등산로인데 170m만 가면 산불감시초소와 전망대(405m)가 나온다. 3m 더 높은 정상은 여기서 서쪽으로 400m 거리에 있다. 봉수대가 있는 정상은 사천바다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명소가 되었다. 봉수대 정상은 케이블카를 이용해 따로 가보기를 권하며, 여기서는 이곳 전망대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다. 산 이름에 뿔(角)이 들어간 것은 산체가 엎드린 용을 닮았고 정상은 그 뿔에 해당한 데서 유래했다. 실제로 산체는 용이 크게 허리를 굽힌 듯, 말굽모양을 이룬다.
가끔씩 조망이 트이고 노면도 좋은 각산 임도.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각산 허리춤에서 바라본 와룡산과 남양동 일원. 오른쪽 첨봉은 천왕봉(625m)
봉수대 전망대도 조망이 대단하지만 동쪽이 조금 가리는데, 이곳 전망대는 서쪽이 일부 가리는 대신 동남쪽이 훤히 트여 삼천포항과 남해, 다도해 조망이 일품이다. 발밑으로는 바다를 건너는 케이블카가 콩알만 하고 그 뒤로 창선도와 남해도의 산들이 중첩된다. 삼천포항은 신구 두 항구로 분리되었고 화력발전소 굴뚝 뒤로는 사량도가 흐릿하다.
일몰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어린 소년이 혼자 전망대에서 망원경을 보고 있다. “이 시간에 여길 혼자 오다니 용감하구나”하고 감탄했더니 소년은 자전거로 나타난 내가 놀라운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각산 전망대 동남쪽 조망. 삼천포항 뒤로 삼천포화력발전소, 사량도가 펼쳐진다
전망대 남쪽으로는 창선도로 이어지는 삼천포대교-초양대교-늑도대교-창선대교가 차례로 보이고, 각산 봉수대에서 초양도를 오가는 케이블카가 점처럼 바다 위에 떠 있다. 맨 뒷산은 창선도 최고봉인 대방산(468m)
북으로는 와룡산이 전모를 드러냈다
해질녘에 혼자 산을 오른, 용감한 소년이 막 하산하고 있다
5.5km 업힐은 신나는 다운힐 구간으로 돌변한다. 조망이 트여 고도감도 좋다
하산 도중 해는 사천만 수면으로 훌쩍 다가섰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가 황홀하다
각산을 내려오는 도중 만추의 짧은 해가 멀리 서산에 기운다. 다운힐은 10분이면 족하고, 산 아래 남양동부터는 편안한 자전거도로를 타고 복귀하니 걱정이 없다. 사천시는 시 남북을 종단하는, 시외버스터미널~봉남동 간 20km에 달하는 자전거도로를 조성해 놓았다. 놀랍게도 기존 둑길이나 농로를 적당히 활용한 것이 아니라 1990년에 폐선된 삼천포선 철도를 기본으로 내륙쪽 와룡산 자락 바로 아래를 지나는 자전거길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길은 거의 직선이고 기복도 별로 없다. 신벽동 지석묘를 지날 즈음 사천만 저편으로 해가 넘어간다.
자전거길은 이용자가 별로 없는 듯, 사용감보다는 세월감이 더 크다. 앞뒤로 불을 켜고 텅 빈 들길을 달리는데 저 앞으로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린다. 저녁식사를 마친 마을 노인들이 함께 산책을 나선 듯 남자는 앞서고 여자는 뒤를 따르며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그러고 보니 지나온 시골마을에서도 빈 집을 본 적이 없다. 산과 바다는 물론 공업과 농업, 도시와 농촌 그리고 노소(老少)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
옛 삼천포선 철길을 활용한 자전거도로
신벽동 지석묘. 받침돌이 낮은 바둑판식 고인돌로 주변에도 다수가 발견되어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사천만 일몰. 해가 지는데 저 조각구름은 오늘 밤 어디서 자려고
이미 해는 졌는데 잠시 쉬어간들 어떠리
tip
코스 중간중간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각산이 처음이라면 라이딩과 별도로 사천바다케이블카를 추천한다. 삼천포대교 중간지점인 초양도에서 바다를 건너 각산 봉수대 아래까지 장장 2.43km를 이어져 바다와 산악 경관 모두 일품이다. 송신탑에서 산불감시초소와 전망대가 있는 동봉까지 170m는 길이 험해 도보를 권장하며, 전망대에서 봉수대는 400m 거리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사천 시투스카이 40km
해안에는 아련한 바닷길, 산은 장쾌 조망
난간석이 7가지 무지개빛으로 칠해진 '무지개빛 해안도로'. 물이 빠진 갯벌 저편으로 사천대교가 만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천만은 남해안에서 강진만 다음으로 좁고 긴 내만이다. 만의 서쪽은 구릉지와 산악지대지만 동쪽은 평야가 펼쳐져 완전히 대조된다. 게다가 평야 뒤쪽에는 남해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와룡산(801m)이 웅장하게 솟아 있어 지형적 입체감이 특별하고, 비교적 단조로운 해안선을 따라서는 아름다운 해변길이 뻗어 있다.
해안도로 남단에는 남해와 다도해 조망이 탁월한 각산(408m)이 있고 사천바다케이블카가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정상 바로 옆까지 임도가 나 있어 자전거로도 오를 수 있으니 이제 바다와 산, 다도해 조망을 아우르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한다.
사천만 해안에 자리한 선진리성. 고려시대 토성 위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이다. 성벽 일부가 복원되어 있으나 다소 축소된 형태다
출발지는 사천만 중간쯤에 자리한 선진리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성한 왜성이지만 원래 고려시대에 조창을 방어하기 위한 토성이 있었다. 1592년 인근 앞바다에서 벌어진 사천해전에서 이순신 함대가 왜선 13척을 격파하는 승리를 거뒀지만, 1597년에는 조명연합군이 왜군에 대패한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심부 성벽만 일부 축소 복원되어 있으나 원래는 둘레 1.8km 정도의 거성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순천에서 울산까지 해안을 따라 33곳의 왜성을 쌓고 만약의 경우 일본 본토로 후퇴할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본래 일본의 성은 백제 산성에서 유래했지만 중세 전국시대를 겪으며 축성술이 발달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구조가 특징이다. 이 때문에 조명연합군은 대군으로도 왜성을 거의 함락하지 못했다.
왜성은 해안 구릉을 활용해 복잡한 구조로 축성해 방어는 쉬운 대신, 공격하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1597년 전투에서는 3만의 조명연합군이 성 아래 운집해 공격을 준비했으나 자체 오발사고로 화약고가 폭발하는 틈을 이용해 역습한 왜군에 대패하고 말았다. 성 동쪽에는 당시 숨진 조명연합군 시신을 묻은 조명군총이 전한다. 지금의 왜성은 벚꽃이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성벽 상당수가 복원되어 중세 일본성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선진리성(사천왜성)의 조감도. 지휘부가 있던 석축성벽 부분만 표시한 것으로, 외곽에는 토성을 쌓아 주둔군 부지를 에워싸도록 했다. 1번이 성에서 가장 높고 최고 지도자가 거주한 천수각 터. 3번 문으로 진입하려면 성벽에 에워싸인 긴 통로를 지나야 하고 성문 주변은 방어에 유리한 누대와 성벽이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옹성의 기능을 극대화 한 구조다
이순신 함대가 선진리성 일대에서 왜선 13척을 격파한 사천해전 개요도
선진리성을 공격하려다 왜군의 역습으로 대패한 조명연합군의 희생자 묘(조명군총)
선진리성을 북으로 돌아 해안으로 나선다. 성곽 서쪽은 해안절벽을 이뤄 자연 성벽이 되어주고 바다를 끼고 있어 여차 하면 퇴로를 열기도 쉽다. 자연지형을 절묘하게 활용한 축성과 입지 선택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100년 동안 치열한 내전을 겪으며 ‘전쟁귀신’이 된 이런 왜군에게 장기간 평화를 구가해온 조선과 명나라 군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신식 무기인 조총까지 겸비했으니 이들을 상대하는 조명연합군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래도 끝까지 대적하며 일진일퇴를 거듭했고 결국에는 이 땅에서 쫓아낸 용기와 결기는 대단하다. 수많은 희생자를 한데 묻어 하나의 봉분만 남은 조명군총 앞에 머리를 숙인다.
400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투는 이제 역사가 되었고, 성곽 바로 옆 선진항은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선진항 즈음의 사천만은 폭이 1.2km 정도로 넓은 편은 아니어서 고요한 호수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선진항 남쪽 종포 일원에는 새로운 공단이 조성중이다. 사천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는 항공산업의 요람이어서 관련 업종이 많이 모여들고 있다.
선진리성 북쪽 해안에는 해변공원이 조성되었다
구릉과 구비치는 해안선이 아름다운 종포 해안로
구릉을 따라 부드럽게 만곡하는 종포 해안을 돌아나가면 당간마당 쉼터까지 직선로가 뻗어나고 저편으로 사천만을 횡단하는 길이 2,145m의 사천대교가 장대하다. 당간마당부터는 길가 난간석을 7가지 무지개빛으로 칠해놓은 ‘무지개빛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무지개빛 해안도로는 무룡마을까지 4.7km나 이어진다. 노변 보행로가 넓어 자전거도로로 충분해서 편안하게 풍광을 감상하며 달릴 수 있다. 해안길이 예뻐서 늦가을인데도 해안 곳곳에는 캠핑이나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사천대교를 지나면 와룡산의 위용이 한층 가까워지고, 각산도 훌쩍 다가선다. 사천만 저편에는 남해안 최고봉인 하동 금오산(875m)이 마주본다.
종포마을에서 당간마당 쉼터까지 이어지는 직선로. 왼쪽이 와룡산(801m), 오른쪽 멀리가 목적지인 각산(408m)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다랑논과 사천시청 그리고 와룡산. 와룡산은 남해안 전체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거북선이 처음 출전했다는 사천해전 기념 조형물
사천만을 건너는 사천대교(2,145m). 만 건너편은 사천 서포면이다. 사천만 좌우 전체가 사천에 속한다
잔잔한 풍경에 발랄함을 더해주는 무지개빛 난간석. 장장 4.7km나 이어진다
사천만 갯벌은 자갈마당이다. 만 저편으로 남해안 최고봉인 하동 금오산(875m)이 희미하다
송포농공단지에서 해안도로는 사실상 끝나고 송천마을에서 도로(해안관광로)를 타고 남하한다. 전망 좋은 해변 언덕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섰고 광포항에는 고급 요트가 즐비하다. 실로 풍요와 평화의 정경이다.
영복마을을 지나 고갯마루 즈음에서 ‘사천시누리원’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각산 업힐이 시작된다. 누리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자연장지’는 손바닥만 한 석비로 이 세상을 다녀간 최후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금껏 본 묘원 중에 가장 합리적이면서 품위 있고 또 경관이 아름답다. 이마저 30년 한도이니 물질적 존재로서의 영원한 안식은 이제 없다. 분자를 거쳐 원자로까지 분해된 다음에야 우주 전체가 묘원이고 새로운 존재의 씨앗인데 무슨 터가 필요하리.
해안관광로 언덕에서 바라본 사천만과 사천대교
각산 초입에서 그동안 지나온 해안선을 돌아본다. 근접한 포구는 광포항
편안한 전망대 쉼터 같은 사천누리원 자연장지. 손바닥만한 오석이 비명(碑銘)이다. 사천만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누리원을 통과해 계속 가면 임도는 각산 줄기를 따라 꾸준히 고도를 높여간다. 저 아래로 사천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와룡산도 허리춤 시선으로 다가선다. 누리원에서 5.5km 가면 이윽고 정상능선의 송신탑(팔각정)에 이른다. 이곳이 해발 390m이니 정상 턱밑이다. 팔각정 뒤로는 좁은 등산로인데 170m만 가면 산불감시초소와 전망대(405m)가 나온다. 3m 더 높은 정상은 여기서 서쪽으로 400m 거리에 있다. 봉수대가 있는 정상은 사천바다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명소가 되었다. 봉수대 정상은 케이블카를 이용해 따로 가보기를 권하며, 여기서는 이곳 전망대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다. 산 이름에 뿔(角)이 들어간 것은 산체가 엎드린 용을 닮았고 정상은 그 뿔에 해당한 데서 유래했다. 실제로 산체는 용이 크게 허리를 굽힌 듯, 말굽모양을 이룬다.
가끔씩 조망이 트이고 노면도 좋은 각산 임도.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각산 허리춤에서 바라본 와룡산과 남양동 일원. 오른쪽 첨봉은 천왕봉(625m)
봉수대 전망대도 조망이 대단하지만 동쪽이 조금 가리는데, 이곳 전망대는 서쪽이 일부 가리는 대신 동남쪽이 훤히 트여 삼천포항과 남해, 다도해 조망이 일품이다. 발밑으로는 바다를 건너는 케이블카가 콩알만 하고 그 뒤로 창선도와 남해도의 산들이 중첩된다. 삼천포항은 신구 두 항구로 분리되었고 화력발전소 굴뚝 뒤로는 사량도가 흐릿하다.
일몰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어린 소년이 혼자 전망대에서 망원경을 보고 있다. “이 시간에 여길 혼자 오다니 용감하구나”하고 감탄했더니 소년은 자전거로 나타난 내가 놀라운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각산 전망대 동남쪽 조망. 삼천포항 뒤로 삼천포화력발전소, 사량도가 펼쳐진다
전망대 남쪽으로는 창선도로 이어지는 삼천포대교-초양대교-늑도대교-창선대교가 차례로 보이고, 각산 봉수대에서 초양도를 오가는 케이블카가 점처럼 바다 위에 떠 있다. 맨 뒷산은 창선도 최고봉인 대방산(468m)
북으로는 와룡산이 전모를 드러냈다
해질녘에 혼자 산을 오른, 용감한 소년이 막 하산하고 있다
5.5km 업힐은 신나는 다운힐 구간으로 돌변한다. 조망이 트여 고도감도 좋다
하산 도중 해는 사천만 수면으로 훌쩍 다가섰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가 황홀하다
각산을 내려오는 도중 만추의 짧은 해가 멀리 서산에 기운다. 다운힐은 10분이면 족하고, 산 아래 남양동부터는 편안한 자전거도로를 타고 복귀하니 걱정이 없다. 사천시는 시 남북을 종단하는, 시외버스터미널~봉남동 간 20km에 달하는 자전거도로를 조성해 놓았다. 놀랍게도 기존 둑길이나 농로를 적당히 활용한 것이 아니라 1990년에 폐선된 삼천포선 철도를 기본으로 내륙쪽 와룡산 자락 바로 아래를 지나는 자전거길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길은 거의 직선이고 기복도 별로 없다. 신벽동 지석묘를 지날 즈음 사천만 저편으로 해가 넘어간다.
자전거길은 이용자가 별로 없는 듯, 사용감보다는 세월감이 더 크다. 앞뒤로 불을 켜고 텅 빈 들길을 달리는데 저 앞으로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린다. 저녁식사를 마친 마을 노인들이 함께 산책을 나선 듯 남자는 앞서고 여자는 뒤를 따르며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그러고 보니 지나온 시골마을에서도 빈 집을 본 적이 없다. 산과 바다는 물론 공업과 농업, 도시와 농촌 그리고 노소(老少)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
옛 삼천포선 철길을 활용한 자전거도로
신벽동 지석묘. 받침돌이 낮은 바둑판식 고인돌로 주변에도 다수가 발견되어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사천만 일몰. 해가 지는데 저 조각구름은 오늘 밤 어디서 자려고
이미 해는 졌는데 잠시 쉬어간들 어떠리
tip
코스 중간중간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각산이 처음이라면 라이딩과 별도로 사천바다케이블카를 추천한다. 삼천포대교 중간지점인 초양도에서 바다를 건너 각산 봉수대 아래까지 장장 2.43km를 이어져 바다와 산악 경관 모두 일품이다. 송신탑에서 산불감시초소와 전망대가 있는 동봉까지 170m는 길이 험해 도보를 권장하며, 전망대에서 봉수대는 400m 거리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사천 시투스카이 4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