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넘고 물 따라 160리
황혼녘의 텅 빈 청도천 자전거길. 맞은편 장대한 고가로는 중앙고속도로 단산대교다
청도(淸道)는 지독한 산간지방이다. 대구가 지척이고 부산, 창원이 멀지 않으나 동쪽으로는 영남알프스가, 서쪽은 비슬산(1084m)이 가로막은 첩첩산중이라 지역 존재감이 크지 않다. 비슬산은 절반이 청도 땅이지만 흔히 ‘대구 비슬산’이고, 영남알프스는 최고봉인 가지산(1241m)을 비롯해 운문산(1188m), 문복산(1014m) 역시 절반이 청도에 속해도 접두어를 울주나 밀양에 내주고 있다. 이유는 역시 인구와 지역적 존재감이다.
청도 면적은 693.8㎢로 서울(605㎢)보다 15%나 크고, 동서 길이는 50km에 달한다. 그런데 이 넓은 땅에 인구는 4만1천명으로 대도시의 2개 동(洞) 수준이니 사실상 인구 희박지대다. 그 인구조차 청도읍~화양읍~풍각면에 이르는 평야지대에 집중해 있다. 그런 점에서 청도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청도천을 건너는 징검다리 저편에 높이 15m로 국내 최대의 정월대보름 달집이 세워졌다. 마침 정월대보름 당일이고 축제도 열리고 있었다
청도천 둔치에서 정월대보름 축제가 열린 날, 전국 최대라는 높이 15m의 거대한 달집을 뒤로 하고 읍내를 벗어나 남쪽 산악지대로 향했다. 점심이 지난 시간이고 한참 먼 길이라 월출에 맞춰 달집태우기를 시작할 때까지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앙초등학교 맞은편에서 산으로 접어든다. 언덕 위에 자리한 대형 카페를 지나면 인적은 뚝 끊어지고 잿빛 콘크리트길이 능선을 타고 오른다. 읍내가 해발 60m 저지대여서 고도감이 상당하다. 간간이 조망이 트이면 청도읍내와 화양들판이 훤하고 주변에는 하얗게 눈을 인 비슬산과 남산(852m)이 설산의 위용을 드러낸다. 여기 산악지대는 최고봉이 720m나 되는데도 산 이름이 없는 것은 찾는 이가 드물고 등산로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건태재를 오르며 뒤돌아본 청도읍. 멀리 비슬산(1084m)이 흰 눈을 이고 있다
해발 530m까지 올라가는, 상당히 높고 긴 고개다. 시멘트로 포장되었고 인적은 거의 없다
고갯마루인 해발 530m 지점에 쓰레기 소각장인 환경관리센터가 숨듯이 있다. 읍내에서 가깝지만 인적 없는 고지여서 이곳을 택한 모양이다. 근처에는 추모공원도 있는데, 극심한 ‘님비’ 때문에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입지다.
사람을 포함해 존재의 최후를 우리는 가까이서 보며 살기를 꺼린다. 어린 시절, 시골집 바로 앞에 무덤이 있었고 마을 입구에는 쓰레기장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참으로 깨끗하고 정리가 된 반면 언젠가는 닥쳐올 최후의 각성을 잊고 지낸다.
추모공원에서 건태재(송원리 고개)까지는 급경사 다운힐이다. 건태재는 해발 410m나 되는데도 일반 지도에는 이름이 없고 이정표도 없다. 건태재에서 밀양강 지류인 동창천 변 지전리까지는 길이 5.5km의 장대한 내리막이다. 겨울 끝 흐린 날씨와 매서운 골바람 때문에 쾌속을 즐기지는 못했다.
환경관리센터에서 건태재 가는 도중의 급경사 다운힐. 저 아래로 청도천과 비슬산이 보인다 삼거리를 이룬 건태재(410m) 정상. 왼쪽은 읍내, 오른쪽은 밀양 방면이다
동창천은 운문댐에서 흘러온 물길로 조금 더 하류로 내려가면 밀양과의 경계를 이룬다. 지전리 서쪽에 가파르게 솟은 봉우리는 오례산성을 품은 오례산(626m)이다. 오례산성은 험준한 산악지형을 활용한 둘레 4.6km의 거성으로, 동창천 건너편으로 육화산성과 마주하고 있다. 동창천을 감제하듯 대규모 산성이 양면에 자리한 것은 이 골짜기가 경주로 이어지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부산과 김해에서는 양산을 거쳐로 경주로 이어지지만, 창원과 밀양에서는 이 골짜기를 통해 동창천을 따라 북상하면 경주 외곽 건천으로 곧장 이어진다. 삼국시대 초기, 남해안 일원에 잔존하던 소국들과 가야 제국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신라의 방어시설로 보인다.
건태재를 넘어가면 운문댐에서 흘러온 동창천이다. 사진은 상류 방면으로 육화산(674m) 정상부에 잔설이 보인다
동창천변의 텐트 한 동. 자동차가 옆에 있으니 외롭지 않다. 뒤쪽은 삼국시대의 거성인 오례산성을 품고 있는 오례산(626m)이다
동창천을 건너 밀양으로 접어들어 다시 산길을 오른다. 운문산에서 길게 흘러내린 산줄기인 용암봉(685m) 북쪽 능선을 넘어 오치마을 가는 길이다. 오치마을은 해발 400m에 자리한 산중고원으로 현대의 은둔객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길가는 온통 사과밭이다. 밀양 동북부는 기온차가 큰 골짜기 지형으로 당도가 높은 ‘얼음골 사과’로 유명하다.
마지막 새마마을까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지만 이후는 갑자기 경사가 심해지면서 좁은 임도 수준으로 바뀐다. 가장 고지대에 자리한 작은 마을은 기척으로 보아 이미 사람이 살지 않은 지 꽤 된 것 같다.
수면에 닿을 정도로 낮게 내려앉은 동창천 잠수교. 물과 길이 가장 친근하게 만나는 곳이다
첫 번째 무명의 고갯마루(여기서는 새마고개로 부른다)는 해발 460m나 된다. 이런 저지대에서는 상당히 높은 고지로 바로 아래에 고원지대가 숨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치고개로 가는 도중 오치마을 일원이 얼핏 보인다.
오치고개(440m)는 커다란 소나무 고목이 장승처럼 반겨준다. 고개를 잠시 내려가니 갑자기 완만한 고원지대가 펼쳐지는데 온통 사과밭이고 그 사이에 작은 마을이 안겨 있다. 사과가 여무는 맑은 가을날이었으면 그림 같은 풍광일 것이다. 오치(烏峙)는 고개 옆 산봉우리 모양이 까마귀가 앉은 모습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까마귀고개’다.
사과밭이 이리 많다는 것은 부촌이지 은둔자의 마을은 아니라는 뜻이다. 과연 10여호에 불과한 마을은 기업형 사과농장이 대부분이다. 사과밭은 해발 450m까지 개간되어 있고, 분지는 남북 1.4km, 동서 500m 정도 크기다. 마을 바로 옆에는 저수지(오치소류지)가 있어 산중마을의 별결을 더한다.
새마고개 오르는 길목의 사과밭과 아늑한 신지마을 고갯길 아래 가장 높은 새마마을. 길은 뒤쪽 산줄기를 넘어간다
고갯길에서 뒤돌아본 새마마을. 중첩한 산구비 저편으로 화악산(932m)이 하얀 눈을 이고 있다
해발 460m의 새마고개. 저지대에서 시작되는 고갯길이라 상당히 높다새마고개의 산악회 리본이 반갑다. 무명이지만 영남알프스 외곽이라 능선 종주객은 가끔 있는 모양이다
기품 있는 노송이 맞아주는 오치고개(440m). 앞서 새마고개보다 통행량이 많다
오치마을은 고원 사방으로 급사면을 이뤄 옛날에는 접근이 힘든 천혜의 은둔지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달성서씨가 은둔을 위해 찾아들었다가 지금은 사과로 부농을 일구었으니 쾌적한 산촌이다.
고원을 통과해 남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은 급경사여서 산중고원이 더욱 신통스러운데, 저전마을까지 꼬불길 다운힐이 3km나 된다. 저전마을 앞은 고속도로 같은 24번 국도가 지나고 그 옆으로는 운문산~가지산~천황산 계곡수가 모여든 동천이 청정하다. 폭 100m 정도의 큰 개울인데도 큼직한 바윗돌이 뒹굴고 흐르는 물이 맑아 계곡수 그대로다. 이제부터는 동천을 따라 밀양 방면으로 남하한다.
오치고개 직하에서 바라본 오치마을과 고원지대. 해발 400m에 자리한 기이한 산중고원으로 마을 주변은 온통 사과밭이다
오치고개 북쪽에서 영남알프스의 준봉 중 하나인 천황산(1189m)이 멀지 않다. 정상부가 새하얀 눈을 뒤덮은 채 구름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고원은 저수지를 기준으로 상하 2단으로 이뤄진다. 하단부의 드넓은 사과밭. 왼쪽 뒤로 영남알프스 외곽 봉우리 중 하나인 정각산(860m)이 보인다
동천 좌우로는 영남알프스의 외곽 산줄기가 웅장하다. 동천 옆 둑길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24번 국도가 정겹다. 지난 수십년 간 저 길을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얼마나 많이 지나다녔는지 모른다. 영남알프스 준봉 사이를 지나는 밀양~언양 간 45km의 이 길을 나는 ‘알펜가도(Alpen 街道)’라고 이름붙였다. 이 길을 자전거로 지나니 감회가 특별하고 눈에 익은 풍광이 새롭다.
하류로 조금 더 내려간 동천은 표충사 방면에서 흘러온 단장천과 합류한다. 단장천은 지역명 단장면(丹場面)에서 유래했지만 왠지 애끓는 ‘단장(斷腸)’으로 느껴지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다. 합수점 근처에는 금곡마을이 있는데 표충사와 얼음골 방면 길이 나뉘는 삼거리다.
운문산~가지산~천황산 계곡수가 모여든 동천. 폭 100m 정도의 큰 개울인데도 큼직한 바윗돌이 뒹굴고 물이 맑아 계곡수 그대로다
오래 전, 오토바이를 타고 사자평 가는 길에 금곡삼거리의 작은 가게에서 쉬어갈 때였다. 젊은 비구니가 혼자 가게를 찾았는데 외모가 아름답고 언행도 우아해서 저절로 눈길이 갔다. 무슨 사연으로 가장 덜 아름답게 보이는 삭발에 잿빛 가사를 입었을까 궁금했다. 문득 말이라도 걸고 싶다가 비구니라는 것을 깨닫고 애써 자제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사자평 억새고원에서는 표충사에서 석남사로 넘어가는 한 무리의 비구니를 다시 조우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물었더니 비구니 도량인 석남사에서 행자 수련을 마치면 걸어서 표충사를 다녀오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아름답고 젊은 비구니가 많아 금곡삼거리에 이어 마음이 처연했다. 비구니들 입장에서는 그 높고 험준한 산을 오토바이로 넘는 나와 친구가 자유로움을 넘어 다소 불량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지금 사자평 길은 걸어서도 넘기 힘든 험로로 바뀌었다.
아득히 높은, 함양울산고속도로의 장대한 교량(단장천1교)을 통과하면 들판이 넓어진다
개울이 넓어지면서 덩달아 들판도 커져간다. 하늘을 가르는, 함양울산고속도로의 장대한 교량(단장천1교)을 통과하면 갑자기 넓은 벌판이 확 펼쳐지고 밀양시내가 지척으로 다가선다. 밀양의 명승지 중 하나인 기회송림은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유료 관람으로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단장천이 끝나고 낙동강 지류인 밀양강을 따라 북상이다.
다행히도 강변 둑길을 따라 자전거길이 지정되어 있지만 해가 기울어가니 추위가 엄습한다. 상동면소재지는 강변길이 끊어져 25번 국도를 타고 마을을 통과해야 한다. 북쪽으로 밀양강을 건너는 옛 상동교는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는데 가보니 다리가 사라지고 없어 잠시 아연했다. 폭우로 유실된 듯, 바로 옆에 새로운 교량이 나 있다.
다리를 건너 유호리를 지나면 다시 청도 땅이다. 유호리에서 동창천과 청도천이 합류하며 밀양강은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청도천으로 이름이 바뀐다.
표충사 계곡수를 더한 단장천 변에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여기서는 밀양시내가 멀지 않다 단장천 건너편으로 보이는 칠탄서원. 마치 암자처럼 고립된 강변 절벽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 산기슭에 진입로가 있다
기회송림 남단. 왼쪽으로 밀양시내가 살짝 보인다기회송림은 보존을 위해 유료관람으로 바뀌었다
본격적인 하천의 면모를 보여주는 밀양강으로 접어들었다. 홍수에 쓸려간 잠수교(상동면 금산리)
밀양강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강쪽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들판은 잦아들고 좌우에서 산이 바짝 다가서는 협곡이 본격화된다. 중앙고속도로(대구-부산) 청도천1교 아래 뜬금없는 시조(時調)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인근 유호리가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와 이영도 남매의 고향인 것이 유래다. 다양한 시비가 모여 있는 시조공원은 청도레일바이크의 반환점이기도 하다. 레일바이크는 청도천을 따라 왕복 5km를 오가며 자전거공원과 캠핑장을 겸비하고 있다. 경부선 폐철로를 이용한 레일은 크게 만곡하는 청도천을 따라 휘돌아나간다. 저쪽으로 산중턱 높이 올라앉은 대운암 불빛이 흐릿하다. 원래는 조망 좋은 대운암을 올라볼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늦어져 생략하고 가는 길이다.
레일바이크를 돌아나가면 오른쪽으로 청도새마을휴게소가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는 반갑지만 외부에서는 금단의 공간으로 동떨어져 있다. 강 건너 산중턱에는 ‘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 글씨가 커다랗다.
한적한 청도천변에 자리한 시조공원. 인근 유호리가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와 이영도 남매의 고향이다왼쪽으로는 청도레일바이크 레일이 달리고, 오른쪽 산중턱에는 대운암 불빛이 희미하다
바로 저곳 신도리는 농어촌근대화의 기폭제가 된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마을이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은 수해복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부산으로 가던 중 신도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을 개량, 보수하는 모습을 보고 열차를 세워 현장을 살펴보면서 감명과 함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듬해 1970년 4월, 신도마을을 모범으로 삼아 새마을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마을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마을 간 경쟁이 붙으면서 새마을운동은 저절로 확산되어 단시간에 전국 농어촌의 면모가 일신되었다. 당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기억에도 한 순간에 초가집이 사라지고 길이 포장되며, 상수도가 들어와 환경과 생활이 크게 바뀐 것을 기억한다.
레일바이크 이후에는 천변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어둠이 두렵지 않다. 이제 읍내가 멀지 않은데 협곡 사이로 짙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흐린 날씨에 달은 뜨지 않았건만 달집태우기가 시작된 모양이다.
청도 신도리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다
중앙고속도로 고가로 아래를 지나는 청도천 자전거길
읍내에 도착하니 정월대보름 달집이 한창 타오르고 있다
tip
청도읍내를 벗어나 건태재~오치고개를 넘어 단장천에 이를 때까지는 식당이나 편의점이 없다. 단장천 이후에는 청도읍까지 중간중간 큰 마을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청도레일바이크에서 청도천을 건너는 무지개다리는 라이딩이 금지되어 있어 내려서 끌고 지나거나 우회해야 한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청도~밀양 65km
고개 넘고 물 따라 160리
황혼녘의 텅 빈 청도천 자전거길. 맞은편 장대한 고가로는 중앙고속도로 단산대교다
청도(淸道)는 지독한 산간지방이다. 대구가 지척이고 부산, 창원이 멀지 않으나 동쪽으로는 영남알프스가, 서쪽은 비슬산(1084m)이 가로막은 첩첩산중이라 지역 존재감이 크지 않다. 비슬산은 절반이 청도 땅이지만 흔히 ‘대구 비슬산’이고, 영남알프스는 최고봉인 가지산(1241m)을 비롯해 운문산(1188m), 문복산(1014m) 역시 절반이 청도에 속해도 접두어를 울주나 밀양에 내주고 있다. 이유는 역시 인구와 지역적 존재감이다.
청도 면적은 693.8㎢로 서울(605㎢)보다 15%나 크고, 동서 길이는 50km에 달한다. 그런데 이 넓은 땅에 인구는 4만1천명으로 대도시의 2개 동(洞) 수준이니 사실상 인구 희박지대다. 그 인구조차 청도읍~화양읍~풍각면에 이르는 평야지대에 집중해 있다. 그런 점에서 청도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청도천을 건너는 징검다리 저편에 높이 15m로 국내 최대의 정월대보름 달집이 세워졌다. 마침 정월대보름 당일이고 축제도 열리고 있었다
청도천 둔치에서 정월대보름 축제가 열린 날, 전국 최대라는 높이 15m의 거대한 달집을 뒤로 하고 읍내를 벗어나 남쪽 산악지대로 향했다. 점심이 지난 시간이고 한참 먼 길이라 월출에 맞춰 달집태우기를 시작할 때까지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앙초등학교 맞은편에서 산으로 접어든다. 언덕 위에 자리한 대형 카페를 지나면 인적은 뚝 끊어지고 잿빛 콘크리트길이 능선을 타고 오른다. 읍내가 해발 60m 저지대여서 고도감이 상당하다. 간간이 조망이 트이면 청도읍내와 화양들판이 훤하고 주변에는 하얗게 눈을 인 비슬산과 남산(852m)이 설산의 위용을 드러낸다. 여기 산악지대는 최고봉이 720m나 되는데도 산 이름이 없는 것은 찾는 이가 드물고 등산로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건태재를 오르며 뒤돌아본 청도읍. 멀리 비슬산(1084m)이 흰 눈을 이고 있다
해발 530m까지 올라가는, 상당히 높고 긴 고개다. 시멘트로 포장되었고 인적은 거의 없다
고갯마루인 해발 530m 지점에 쓰레기 소각장인 환경관리센터가 숨듯이 있다. 읍내에서 가깝지만 인적 없는 고지여서 이곳을 택한 모양이다. 근처에는 추모공원도 있는데, 극심한 ‘님비’ 때문에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입지다.
사람을 포함해 존재의 최후를 우리는 가까이서 보며 살기를 꺼린다. 어린 시절, 시골집 바로 앞에 무덤이 있었고 마을 입구에는 쓰레기장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참으로 깨끗하고 정리가 된 반면 언젠가는 닥쳐올 최후의 각성을 잊고 지낸다.
추모공원에서 건태재(송원리 고개)까지는 급경사 다운힐이다. 건태재는 해발 410m나 되는데도 일반 지도에는 이름이 없고 이정표도 없다. 건태재에서 밀양강 지류인 동창천 변 지전리까지는 길이 5.5km의 장대한 내리막이다. 겨울 끝 흐린 날씨와 매서운 골바람 때문에 쾌속을 즐기지는 못했다.
환경관리센터에서 건태재 가는 도중의 급경사 다운힐. 저 아래로 청도천과 비슬산이 보인다 삼거리를 이룬 건태재(410m) 정상. 왼쪽은 읍내, 오른쪽은 밀양 방면이다
동창천은 운문댐에서 흘러온 물길로 조금 더 하류로 내려가면 밀양과의 경계를 이룬다. 지전리 서쪽에 가파르게 솟은 봉우리는 오례산성을 품은 오례산(626m)이다. 오례산성은 험준한 산악지형을 활용한 둘레 4.6km의 거성으로, 동창천 건너편으로 육화산성과 마주하고 있다. 동창천을 감제하듯 대규모 산성이 양면에 자리한 것은 이 골짜기가 경주로 이어지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부산과 김해에서는 양산을 거쳐로 경주로 이어지지만, 창원과 밀양에서는 이 골짜기를 통해 동창천을 따라 북상하면 경주 외곽 건천으로 곧장 이어진다. 삼국시대 초기, 남해안 일원에 잔존하던 소국들과 가야 제국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신라의 방어시설로 보인다.
건태재를 넘어가면 운문댐에서 흘러온 동창천이다. 사진은 상류 방면으로 육화산(674m) 정상부에 잔설이 보인다
동창천변의 텐트 한 동. 자동차가 옆에 있으니 외롭지 않다. 뒤쪽은 삼국시대의 거성인 오례산성을 품고 있는 오례산(626m)이다
동창천을 건너 밀양으로 접어들어 다시 산길을 오른다. 운문산에서 길게 흘러내린 산줄기인 용암봉(685m) 북쪽 능선을 넘어 오치마을 가는 길이다. 오치마을은 해발 400m에 자리한 산중고원으로 현대의 은둔객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길가는 온통 사과밭이다. 밀양 동북부는 기온차가 큰 골짜기 지형으로 당도가 높은 ‘얼음골 사과’로 유명하다.
마지막 새마마을까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지만 이후는 갑자기 경사가 심해지면서 좁은 임도 수준으로 바뀐다. 가장 고지대에 자리한 작은 마을은 기척으로 보아 이미 사람이 살지 않은 지 꽤 된 것 같다.
수면에 닿을 정도로 낮게 내려앉은 동창천 잠수교. 물과 길이 가장 친근하게 만나는 곳이다
첫 번째 무명의 고갯마루(여기서는 새마고개로 부른다)는 해발 460m나 된다. 이런 저지대에서는 상당히 높은 고지로 바로 아래에 고원지대가 숨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치고개로 가는 도중 오치마을 일원이 얼핏 보인다.
오치고개(440m)는 커다란 소나무 고목이 장승처럼 반겨준다. 고개를 잠시 내려가니 갑자기 완만한 고원지대가 펼쳐지는데 온통 사과밭이고 그 사이에 작은 마을이 안겨 있다. 사과가 여무는 맑은 가을날이었으면 그림 같은 풍광일 것이다. 오치(烏峙)는 고개 옆 산봉우리 모양이 까마귀가 앉은 모습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까마귀고개’다.
사과밭이 이리 많다는 것은 부촌이지 은둔자의 마을은 아니라는 뜻이다. 과연 10여호에 불과한 마을은 기업형 사과농장이 대부분이다. 사과밭은 해발 450m까지 개간되어 있고, 분지는 남북 1.4km, 동서 500m 정도 크기다. 마을 바로 옆에는 저수지(오치소류지)가 있어 산중마을의 별결을 더한다.
새마고개 오르는 길목의 사과밭과 아늑한 신지마을 고갯길 아래 가장 높은 새마마을. 길은 뒤쪽 산줄기를 넘어간다
고갯길에서 뒤돌아본 새마마을. 중첩한 산구비 저편으로 화악산(932m)이 하얀 눈을 이고 있다
해발 460m의 새마고개. 저지대에서 시작되는 고갯길이라 상당히 높다새마고개의 산악회 리본이 반갑다. 무명이지만 영남알프스 외곽이라 능선 종주객은 가끔 있는 모양이다
기품 있는 노송이 맞아주는 오치고개(440m). 앞서 새마고개보다 통행량이 많다
오치마을은 고원 사방으로 급사면을 이뤄 옛날에는 접근이 힘든 천혜의 은둔지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달성서씨가 은둔을 위해 찾아들었다가 지금은 사과로 부농을 일구었으니 쾌적한 산촌이다.
고원을 통과해 남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은 급경사여서 산중고원이 더욱 신통스러운데, 저전마을까지 꼬불길 다운힐이 3km나 된다. 저전마을 앞은 고속도로 같은 24번 국도가 지나고 그 옆으로는 운문산~가지산~천황산 계곡수가 모여든 동천이 청정하다. 폭 100m 정도의 큰 개울인데도 큼직한 바윗돌이 뒹굴고 흐르는 물이 맑아 계곡수 그대로다. 이제부터는 동천을 따라 밀양 방면으로 남하한다.
오치고개 직하에서 바라본 오치마을과 고원지대. 해발 400m에 자리한 기이한 산중고원으로 마을 주변은 온통 사과밭이다
오치고개 북쪽에서 영남알프스의 준봉 중 하나인 천황산(1189m)이 멀지 않다. 정상부가 새하얀 눈을 뒤덮은 채 구름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고원은 저수지를 기준으로 상하 2단으로 이뤄진다. 하단부의 드넓은 사과밭. 왼쪽 뒤로 영남알프스 외곽 봉우리 중 하나인 정각산(860m)이 보인다
동천 좌우로는 영남알프스의 외곽 산줄기가 웅장하다. 동천 옆 둑길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24번 국도가 정겹다. 지난 수십년 간 저 길을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얼마나 많이 지나다녔는지 모른다. 영남알프스 준봉 사이를 지나는 밀양~언양 간 45km의 이 길을 나는 ‘알펜가도(Alpen 街道)’라고 이름붙였다. 이 길을 자전거로 지나니 감회가 특별하고 눈에 익은 풍광이 새롭다.
하류로 조금 더 내려간 동천은 표충사 방면에서 흘러온 단장천과 합류한다. 단장천은 지역명 단장면(丹場面)에서 유래했지만 왠지 애끓는 ‘단장(斷腸)’으로 느껴지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다. 합수점 근처에는 금곡마을이 있는데 표충사와 얼음골 방면 길이 나뉘는 삼거리다.
운문산~가지산~천황산 계곡수가 모여든 동천. 폭 100m 정도의 큰 개울인데도 큼직한 바윗돌이 뒹굴고 물이 맑아 계곡수 그대로다
오래 전, 오토바이를 타고 사자평 가는 길에 금곡삼거리의 작은 가게에서 쉬어갈 때였다. 젊은 비구니가 혼자 가게를 찾았는데 외모가 아름답고 언행도 우아해서 저절로 눈길이 갔다. 무슨 사연으로 가장 덜 아름답게 보이는 삭발에 잿빛 가사를 입었을까 궁금했다. 문득 말이라도 걸고 싶다가 비구니라는 것을 깨닫고 애써 자제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사자평 억새고원에서는 표충사에서 석남사로 넘어가는 한 무리의 비구니를 다시 조우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물었더니 비구니 도량인 석남사에서 행자 수련을 마치면 걸어서 표충사를 다녀오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아름답고 젊은 비구니가 많아 금곡삼거리에 이어 마음이 처연했다. 비구니들 입장에서는 그 높고 험준한 산을 오토바이로 넘는 나와 친구가 자유로움을 넘어 다소 불량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지금 사자평 길은 걸어서도 넘기 힘든 험로로 바뀌었다.
아득히 높은, 함양울산고속도로의 장대한 교량(단장천1교)을 통과하면 들판이 넓어진다
개울이 넓어지면서 덩달아 들판도 커져간다. 하늘을 가르는, 함양울산고속도로의 장대한 교량(단장천1교)을 통과하면 갑자기 넓은 벌판이 확 펼쳐지고 밀양시내가 지척으로 다가선다. 밀양의 명승지 중 하나인 기회송림은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유료 관람으로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단장천이 끝나고 낙동강 지류인 밀양강을 따라 북상이다.
다행히도 강변 둑길을 따라 자전거길이 지정되어 있지만 해가 기울어가니 추위가 엄습한다. 상동면소재지는 강변길이 끊어져 25번 국도를 타고 마을을 통과해야 한다. 북쪽으로 밀양강을 건너는 옛 상동교는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는데 가보니 다리가 사라지고 없어 잠시 아연했다. 폭우로 유실된 듯, 바로 옆에 새로운 교량이 나 있다.
다리를 건너 유호리를 지나면 다시 청도 땅이다. 유호리에서 동창천과 청도천이 합류하며 밀양강은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청도천으로 이름이 바뀐다.
표충사 계곡수를 더한 단장천 변에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여기서는 밀양시내가 멀지 않다 단장천 건너편으로 보이는 칠탄서원. 마치 암자처럼 고립된 강변 절벽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 산기슭에 진입로가 있다
기회송림 남단. 왼쪽으로 밀양시내가 살짝 보인다기회송림은 보존을 위해 유료관람으로 바뀌었다
본격적인 하천의 면모를 보여주는 밀양강으로 접어들었다. 홍수에 쓸려간 잠수교(상동면 금산리)
밀양강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강쪽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들판은 잦아들고 좌우에서 산이 바짝 다가서는 협곡이 본격화된다. 중앙고속도로(대구-부산) 청도천1교 아래 뜬금없는 시조(時調)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인근 유호리가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와 이영도 남매의 고향인 것이 유래다. 다양한 시비가 모여 있는 시조공원은 청도레일바이크의 반환점이기도 하다. 레일바이크는 청도천을 따라 왕복 5km를 오가며 자전거공원과 캠핑장을 겸비하고 있다. 경부선 폐철로를 이용한 레일은 크게 만곡하는 청도천을 따라 휘돌아나간다. 저쪽으로 산중턱 높이 올라앉은 대운암 불빛이 흐릿하다. 원래는 조망 좋은 대운암을 올라볼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늦어져 생략하고 가는 길이다.
레일바이크를 돌아나가면 오른쪽으로 청도새마을휴게소가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는 반갑지만 외부에서는 금단의 공간으로 동떨어져 있다. 강 건너 산중턱에는 ‘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 글씨가 커다랗다.
한적한 청도천변에 자리한 시조공원. 인근 유호리가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와 이영도 남매의 고향이다왼쪽으로는 청도레일바이크 레일이 달리고, 오른쪽 산중턱에는 대운암 불빛이 희미하다
바로 저곳 신도리는 농어촌근대화의 기폭제가 된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마을이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은 수해복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부산으로 가던 중 신도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을 개량, 보수하는 모습을 보고 열차를 세워 현장을 살펴보면서 감명과 함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듬해 1970년 4월, 신도마을을 모범으로 삼아 새마을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마을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마을 간 경쟁이 붙으면서 새마을운동은 저절로 확산되어 단시간에 전국 농어촌의 면모가 일신되었다. 당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기억에도 한 순간에 초가집이 사라지고 길이 포장되며, 상수도가 들어와 환경과 생활이 크게 바뀐 것을 기억한다.
레일바이크 이후에는 천변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어둠이 두렵지 않다. 이제 읍내가 멀지 않은데 협곡 사이로 짙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흐린 날씨에 달은 뜨지 않았건만 달집태우기가 시작된 모양이다.
청도 신도리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다
중앙고속도로 고가로 아래를 지나는 청도천 자전거길
읍내에 도착하니 정월대보름 달집이 한창 타오르고 있다
tip
청도읍내를 벗어나 건태재~오치고개를 넘어 단장천에 이를 때까지는 식당이나 편의점이 없다. 단장천 이후에는 청도읍까지 중간중간 큰 마을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청도레일바이크에서 청도천을 건너는 무지개다리는 라이딩이 금지되어 있어 내려서 끌고 지나거나 우회해야 한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청도~밀양 6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