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to Sky! 비경의 해안에서 산꼭대기 고성(古城)까지
야자수 잎사귀가 살랑이고 멀리 거제도 산들이 손짓하는 산달도 해안도로
거제도는 오른쪽이 조금 부족한 십자가 형태다. 서쪽 반도는 빼어난 암봉인 산방산(507m)을 필두로 산줄기가 해안 따라 둥그렇게 말려 있어 안쪽에는 상당히 깊은 골짜기가 숨어 있다.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이 산줄기 서단의 봉우리에는 삼국시대 산성인 둔덕기성이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다.
거제도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산록을 감아 도는 임도가 잘 나 있어 산줄기 전체를 일주할 수 있다. 도중에는 2018년 연륙교가 놓여 거제도와 이어진 산달도를 먼저 돌아볼 것이다. 그야말로 해수면에서 산정까지 ‘sea to sky’ 클래식이다.
양식장 관리용 보트가 즐비한 어구항. 한산도 여객선이 운항하며, 넓은 주차장이 있어 출발지로 좋다
해안선 곳곳에는 굴양식에 필요한 조가비가 더미로 쌓여 있다
출발지는 한산도행 배가 출항하는 어구항. 하루에 한산도 여행까지 겸할 수 있는 좋은 거점이다. 작은 포구는 양식장을 오가는 보트만 즐비하고 큰 배는 한산도를 오가는 여객선뿐이다. 오후 1시 배로 한산도로 들어갈 예정인데 늦어지면 2시배를 타야할지도 모른다.
해안도로를 따라 남안을 돌아가는 길목은 주민들 생계와 일상의 공간이다. 이윽고 외딴 바닷가에 우뚝한 산달연륙교를 건너간다. 길이 620m의 아름다운 사장교로 차도만큼 넓은 보행로가 반갑다. 길이 2.8km, 폭 1km 정도에 인구는 수백명에 불과한 작은 섬을 위해 이런 거창한 교량을 가설한 국력이 새삼 자랑스럽다.
관광지나 명소가 없는, 순수 주민들의 공간인 산달도는 낙도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뜻밖의 매력이 넘친다. 인적 없는 해안길은 해수면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듯 한없이 낮고 소박하다. 보는 이도 없건만 마을 벽에는 화사한 그림을 그려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평지는 아예 없는 산봉우리 섬이지만 개발의 몸살을 앓는 거제도와는 한발 거리를 두고 평온한 자족을 누리는 것만 같다. 아무 볼거리도, 사람도 없는데 지루할 틈 없이 일주 8km가 금방이다.
아름다운 사장교인 산달연륙교. 길이 620m의 대교가 작은 섬을 위해 가설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강해진 국력의 산물이다
산달도 집들의 담벼락에는 화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달도를 나와서는 한동안 1018번 지방도를 타고 해안길을 달려 외간리에서 간덕천 농로로 진입한다. 간덕천이 흐르는 평야는 거제도에서 가장 넓은 들판으로 동쪽으로는 계룡산(572m)이 거친 등뼈를 드러내고 있다.
농로가 끝나면 옥산리에서 범상치 않은 고갯길이 시작된다. 아스팔트길이지만 극심한 경사도와 고도차의 옥산치(285m)가 벽처럼 턱 가로막고 섰다. 앞으로 산악구간이 많아 배터리를 아껴야 하니 eMTB로도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힘겹게 정상에 올라섰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바로 백암산(495m) 임도가 시작된다. 저 아래 산간분지인 상둔리는 옛날 같으면 거제도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오지였을 것이다. 백암산 임도는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지만 대체로 다운힐이라 옥산치 업힐의 고역을 쾌속으로 보상해준다.
급경사에 고도차까지 큰 옥산치(285m) 고갯길. 오른쪽 전봇대 뒤로 거제도 진산인 계룡산(572m) 주능선이 날카롭다
백암산(495m) 서쪽 자락을 구비치는 임도. 대체로 다운힐이라 라이딩 재미가 좋은 구간이다
다시 도로를 만나 개금치(275m) 정상에서 임도로 진입하면 이번에는 명등산(418m) 자락이다. 명등산 임도는 중간중간 숲이 성긴 조림지가 있어 조망이 트이고 구비치는 길도 가장 멋지다. 개금치에서 800m 들어간 지점에는 급사면을 따라 역 S자로 구비치는 구간이 있는데 성긴 숲을 끼고 있어 시각적 역동성이 대단하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라이더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눴다. 혼자 산악을 타는 사람을 만나기는 매우 드물어서 더 반가웠다. 울산에서 왔다는 그는 낚시와 라이딩을 즐기려고 거제도에 왔다고 했다. 오늘 계룡산까지 넘는다는데 최신형 풀서스펜션 eMTB에 보조배터리까지 달고 있어 무난해 보인다.
명등산 남쪽 기슭을 돌아 둔덕기성을 안고 있는 우두봉(434m) 북사면으로 넘어간다. 아무래도 북사면이라 춥고 어둑한데, 고성 방면으로 바다가 보이고 오량성이 있는 오량리도 바로 아래로 가까워 외진 느낌은 덜하다.
뾰족한 암봉을 이룬 산방산(507m)과 백암산 사이 협곡에 자리한 상둔리. 옛날에는 대단한 오지였을 것이다
명등산(418m) 동쪽, S자 구비길. 맞은편에서 울산 출신의 싱글 라이더가 오고 있다
성긴 조림숲 사이로 급사면 헤어핀을 그리는 멋진 길. 길게 흐르는 둔덕면 골짜기 멀리 바다가 살짝 보인다
이제 마지막 업힐을 올라서면 우두봉 서쪽 해발 330m 봉우리 정상에 자리 잡은 둔덕기성이다. 높직한 급사면에 복원된 성벽은 매우 웅장하고 내부도 우물과 건물터 등이 일부 복원되거나 잘 보존되어 있다. 둘레 526m, 최고높이는 4.85m로 7세기 신라시대에 처음 쌓았고 조선시대 초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큰 성은 아니지만 거제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인 견내량을 바로 옆으로 내려다보고, 남쪽으로는 한산도 방면도 훤히 드러나는 전략적 요충지다. 신라 문무왕 때 거제도에 처음 설치된 상군(裳郡)과 경덕왕 때의 거제군을 총괄하는 치소성(治所城)으로 추정된다.
둔덕기(屯德岐)의 지명 유래는 고려 중기의 의종(毅宗, 1127~1173, 재위 1146~1170)과 관련이 있다. 왕권 강화를 위해 절치부심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도락으로 소일하던 의종은 1170년 정중부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으로 인해 왕위에서 쫓겨나 거제도로 유배를 왔다. 당시 의종이 머물렀던 곳이 둔덕기성으로 추정되며, 호위군이 들판에 둔전(屯田, 군량 충당용 토지)을 둔 데서 지명이 유래한 것 같다(둔전이 있는 언덕이란 뜻인 듯). 고려시대 한때 거제도는 기성현(岐城縣)이라고 불렸는데 둔덕기의 기(岐)는 여기서 온 듯하다. 둔덕기성은 의종의 유배 일화 때문에 폐위된 왕이 머물던 성이라고 해서 ‘폐왕성(廢王城)’이라고도 한다.
최고 높이 4.85m의 웅장한 둔덕기성 성벽에 기대서서
성벽 위에서 둔덕면 방면 조망. 성벽은 잘 복원되어 있다
성 남쪽에는 우물과 공터가 있다. 오른쪽 아래로 통영 미륵도 사이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 허물어진 여장(女墻, 성벽 위에 설치하는 요철 형태의 벽) 너머로 육지와 거제도 사이의 해협인 견내량이 내려다보인다
성 가장 높은 곳에는 제단의 흔적이 있고, 남쪽에는 꽤 넓은 평지와 원형 우물이 있다. 개경에서 이 먼 곳까지 유배 온 의종은 저 성벽에 의지해 견내량과 육지의 첩첩한 산들을 보며 얼마나 환궁을 고대했을까. 마침내 유배 3년 만에 문신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내걸고 경주에서 거병했고 의종도 경주로 나갔지만 거병이 실패하자 진압군으로 내려온 이의민에게 의종은 살해당하고 만다. 천민 출신의 이의민을 발탁해준 이가 의종이었는데, 이의민은 술 몇 잔을 준 다음 의종을 때려 죽였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포악함이 오래 갈 수는 없는 법. 의종 척살 23년 후 이의민도 최충헌에 죽고 멸족까지 당했다.
산을 내려와 되돌아본 둔덕기성. 해발 330m 봉우리 정상에 있다 둔덕가족생활체육공원을 돌아가는 해안길은 봄이면 벚꽃길로 화사할 것이다. 잔잔한 바다도, 물결 모양 난간도 예쁘다
둔덕기성에서 산 아래 거림리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라 순식간이다. 둔덕면소재지의 편의점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둔덕가족생활체육공원 옆으로 해안을 끼고 돌면 출발지인 어구항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한산도행 배는 1시간 늦춰야겠다. 한산도에서 마음도, 페달링도 급하게 됐지만 해안에서 둔덕기성 꼭대기까지, 시투스카이(sea to sky)의 여운과 의종의 애사(哀史)가 미련을 남긴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코스 후반의 둔덕면소재지에만 식당과 편의점이 있어서 식사나 식수 대책을 잘 세워야 한다. 둔덕기성은 차량으로 찾는 사람이 더러 있어서 거림리로 다운힐 할 때 주의한다.
거제 산달도~둔덕기성 46km
Sea to Sky! 비경의 해안에서 산꼭대기 고성(古城)까지
야자수 잎사귀가 살랑이고 멀리 거제도 산들이 손짓하는 산달도 해안도로
거제도는 오른쪽이 조금 부족한 십자가 형태다. 서쪽 반도는 빼어난 암봉인 산방산(507m)을 필두로 산줄기가 해안 따라 둥그렇게 말려 있어 안쪽에는 상당히 깊은 골짜기가 숨어 있다.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이 산줄기 서단의 봉우리에는 삼국시대 산성인 둔덕기성이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다.
거제도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산록을 감아 도는 임도가 잘 나 있어 산줄기 전체를 일주할 수 있다. 도중에는 2018년 연륙교가 놓여 거제도와 이어진 산달도를 먼저 돌아볼 것이다. 그야말로 해수면에서 산정까지 ‘sea to sky’ 클래식이다.
양식장 관리용 보트가 즐비한 어구항. 한산도 여객선이 운항하며, 넓은 주차장이 있어 출발지로 좋다
해안선 곳곳에는 굴양식에 필요한 조가비가 더미로 쌓여 있다
출발지는 한산도행 배가 출항하는 어구항. 하루에 한산도 여행까지 겸할 수 있는 좋은 거점이다. 작은 포구는 양식장을 오가는 보트만 즐비하고 큰 배는 한산도를 오가는 여객선뿐이다. 오후 1시 배로 한산도로 들어갈 예정인데 늦어지면 2시배를 타야할지도 모른다.
해안도로를 따라 남안을 돌아가는 길목은 주민들 생계와 일상의 공간이다. 이윽고 외딴 바닷가에 우뚝한 산달연륙교를 건너간다. 길이 620m의 아름다운 사장교로 차도만큼 넓은 보행로가 반갑다. 길이 2.8km, 폭 1km 정도에 인구는 수백명에 불과한 작은 섬을 위해 이런 거창한 교량을 가설한 국력이 새삼 자랑스럽다.
관광지나 명소가 없는, 순수 주민들의 공간인 산달도는 낙도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뜻밖의 매력이 넘친다. 인적 없는 해안길은 해수면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듯 한없이 낮고 소박하다. 보는 이도 없건만 마을 벽에는 화사한 그림을 그려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평지는 아예 없는 산봉우리 섬이지만 개발의 몸살을 앓는 거제도와는 한발 거리를 두고 평온한 자족을 누리는 것만 같다. 아무 볼거리도, 사람도 없는데 지루할 틈 없이 일주 8km가 금방이다.
아름다운 사장교인 산달연륙교. 길이 620m의 대교가 작은 섬을 위해 가설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강해진 국력의 산물이다
산달도 집들의 담벼락에는 화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달도를 나와서는 한동안 1018번 지방도를 타고 해안길을 달려 외간리에서 간덕천 농로로 진입한다. 간덕천이 흐르는 평야는 거제도에서 가장 넓은 들판으로 동쪽으로는 계룡산(572m)이 거친 등뼈를 드러내고 있다.
농로가 끝나면 옥산리에서 범상치 않은 고갯길이 시작된다. 아스팔트길이지만 극심한 경사도와 고도차의 옥산치(285m)가 벽처럼 턱 가로막고 섰다. 앞으로 산악구간이 많아 배터리를 아껴야 하니 eMTB로도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힘겹게 정상에 올라섰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바로 백암산(495m) 임도가 시작된다. 저 아래 산간분지인 상둔리는 옛날 같으면 거제도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오지였을 것이다. 백암산 임도는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지만 대체로 다운힐이라 옥산치 업힐의 고역을 쾌속으로 보상해준다.
급경사에 고도차까지 큰 옥산치(285m) 고갯길. 오른쪽 전봇대 뒤로 거제도 진산인 계룡산(572m) 주능선이 날카롭다
백암산(495m) 서쪽 자락을 구비치는 임도. 대체로 다운힐이라 라이딩 재미가 좋은 구간이다
다시 도로를 만나 개금치(275m) 정상에서 임도로 진입하면 이번에는 명등산(418m) 자락이다. 명등산 임도는 중간중간 숲이 성긴 조림지가 있어 조망이 트이고 구비치는 길도 가장 멋지다. 개금치에서 800m 들어간 지점에는 급사면을 따라 역 S자로 구비치는 구간이 있는데 성긴 숲을 끼고 있어 시각적 역동성이 대단하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라이더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눴다. 혼자 산악을 타는 사람을 만나기는 매우 드물어서 더 반가웠다. 울산에서 왔다는 그는 낚시와 라이딩을 즐기려고 거제도에 왔다고 했다. 오늘 계룡산까지 넘는다는데 최신형 풀서스펜션 eMTB에 보조배터리까지 달고 있어 무난해 보인다.
명등산 남쪽 기슭을 돌아 둔덕기성을 안고 있는 우두봉(434m) 북사면으로 넘어간다. 아무래도 북사면이라 춥고 어둑한데, 고성 방면으로 바다가 보이고 오량성이 있는 오량리도 바로 아래로 가까워 외진 느낌은 덜하다.
뾰족한 암봉을 이룬 산방산(507m)과 백암산 사이 협곡에 자리한 상둔리. 옛날에는 대단한 오지였을 것이다
명등산(418m) 동쪽, S자 구비길. 맞은편에서 울산 출신의 싱글 라이더가 오고 있다
성긴 조림숲 사이로 급사면 헤어핀을 그리는 멋진 길. 길게 흐르는 둔덕면 골짜기 멀리 바다가 살짝 보인다
이제 마지막 업힐을 올라서면 우두봉 서쪽 해발 330m 봉우리 정상에 자리 잡은 둔덕기성이다. 높직한 급사면에 복원된 성벽은 매우 웅장하고 내부도 우물과 건물터 등이 일부 복원되거나 잘 보존되어 있다. 둘레 526m, 최고높이는 4.85m로 7세기 신라시대에 처음 쌓았고 조선시대 초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큰 성은 아니지만 거제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인 견내량을 바로 옆으로 내려다보고, 남쪽으로는 한산도 방면도 훤히 드러나는 전략적 요충지다. 신라 문무왕 때 거제도에 처음 설치된 상군(裳郡)과 경덕왕 때의 거제군을 총괄하는 치소성(治所城)으로 추정된다.
둔덕기(屯德岐)의 지명 유래는 고려 중기의 의종(毅宗, 1127~1173, 재위 1146~1170)과 관련이 있다. 왕권 강화를 위해 절치부심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도락으로 소일하던 의종은 1170년 정중부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으로 인해 왕위에서 쫓겨나 거제도로 유배를 왔다. 당시 의종이 머물렀던 곳이 둔덕기성으로 추정되며, 호위군이 들판에 둔전(屯田, 군량 충당용 토지)을 둔 데서 지명이 유래한 것 같다(둔전이 있는 언덕이란 뜻인 듯). 고려시대 한때 거제도는 기성현(岐城縣)이라고 불렸는데 둔덕기의 기(岐)는 여기서 온 듯하다. 둔덕기성은 의종의 유배 일화 때문에 폐위된 왕이 머물던 성이라고 해서 ‘폐왕성(廢王城)’이라고도 한다.
최고 높이 4.85m의 웅장한 둔덕기성 성벽에 기대서서
성벽 위에서 둔덕면 방면 조망. 성벽은 잘 복원되어 있다
성 남쪽에는 우물과 공터가 있다. 오른쪽 아래로 통영 미륵도 사이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 허물어진 여장(女墻, 성벽 위에 설치하는 요철 형태의 벽) 너머로 육지와 거제도 사이의 해협인 견내량이 내려다보인다
성 가장 높은 곳에는 제단의 흔적이 있고, 남쪽에는 꽤 넓은 평지와 원형 우물이 있다. 개경에서 이 먼 곳까지 유배 온 의종은 저 성벽에 의지해 견내량과 육지의 첩첩한 산들을 보며 얼마나 환궁을 고대했을까. 마침내 유배 3년 만에 문신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내걸고 경주에서 거병했고 의종도 경주로 나갔지만 거병이 실패하자 진압군으로 내려온 이의민에게 의종은 살해당하고 만다. 천민 출신의 이의민을 발탁해준 이가 의종이었는데, 이의민은 술 몇 잔을 준 다음 의종을 때려 죽였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포악함이 오래 갈 수는 없는 법. 의종 척살 23년 후 이의민도 최충헌에 죽고 멸족까지 당했다.
산을 내려와 되돌아본 둔덕기성. 해발 330m 봉우리 정상에 있다 둔덕가족생활체육공원을 돌아가는 해안길은 봄이면 벚꽃길로 화사할 것이다. 잔잔한 바다도, 물결 모양 난간도 예쁘다
둔덕기성에서 산 아래 거림리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라 순식간이다. 둔덕면소재지의 편의점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둔덕가족생활체육공원 옆으로 해안을 끼고 돌면 출발지인 어구항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한산도행 배는 1시간 늦춰야겠다. 한산도에서 마음도, 페달링도 급하게 됐지만 해안에서 둔덕기성 꼭대기까지, 시투스카이(sea to sky)의 여운과 의종의 애사(哀史)가 미련을 남긴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코스 후반의 둔덕면소재지에만 식당과 편의점이 있어서 식사나 식수 대책을 잘 세워야 한다. 둔덕기성은 차량으로 찾는 사람이 더러 있어서 거림리로 다운힐 할 때 주의한다.
거제 산달도~둔덕기성 46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