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야, 영일만아!
아득히 포스코 구조물과 포항시가 보이는 영일만 해안 길. 호미반도 동쪽과 달리 절벽지대여서 업다운이 심하고 포구가 드물다
이 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반도는 단연 호미반도다. 조선시대는 장기현(長鬐縣)에 속해 근래까지 장기반도라고 불렀다가 1980년대 이후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하면서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호미(虎尾)가 정식명칭으로 자리 잡아 2010년에는 아예 ‘호미곶면’까지 생겼다(원래는 대보면).
반도에 딸린 또 다른 반도… 어쩌면 바다와 가장 깊이 만나는 육지일 것이다. 호미반도 서쪽에는 영일만이 파고들어 인구 50만의 동해안 제일도시와 거대 제철소를 품고 있고, 반도 끝단에는 호미곶이 해맞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반도에서 또 흥미로운 것은 내부의 산악지대다. 겨우 214m의 공개산을 필두로 넓고 깊은 산지가 펼쳐져 있다. 이 산줄기 전체가 곧 호미반도를 이루며, 완만한 능선 따라 많은 임도가 나 있어서 산악 일주도 가능하다.
구룡포는 1926년 일제가 건설한 항구여서 일본인 가옥 거리가 관광지화 되어 남아있다
구룡포를 내려다보는 충혼각 옆에 비상하는 9마리의 용이 '구룡포'를 상징한다
여정의 기점은 호미반도 관광 거점인 구룡포항으로 잡는다. 1923년 일제가 항구를 만들면서 일본인이 다수 거주해 지금도 일본인 가옥 거리가 남아 있다. 현재는 동해안 굴지의 어업전진기지로 수많은 오징어잡이 배가 정박한 모습은 장관이다. 찾는 이가 많아 포구에는 언제나 활기가 돈다.
일본인 가옥 거리 뒤편 언덕에 자리한 충혼각에 올라 항구를 내려다보며 여정을 시작한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지명의 유래에 걸맞게 비상하는 9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다. 충혼탑을 오르는 계단에는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앉아 사진을 부탁하는데 알고 보니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 촬영지란다.
457m에 걸쳐 있는 아기자기한 일본인 가옥 거리는 카페만이 즐비하다. 일본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뜻밖이고, 그 포용성과 실용성이 반갑기도 하다.
읍내를 벗어나자 구룡포해수욕장 백사장에 밀려드는 파도가 대단하다. 지금부터는 동해안 자전거길 표지만 따라가면 되어서 길 찾기는 편하다. 하지만 포항 이북 구간에 있는 파란 실선은 없고 갈림길마다 안내판이나 바닥 표시가 되어 있는 정도다.
충혼각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 오징어잡이배를 위시해 정박해 있는 어선들이 대단히 많다
대양의 파도가 겹주름을 지으며 끝없이 밀려드는 구룡포해수욕장. 깊은 수심과 태평양의 광대함이 빚어내는 파도는 박력 넘친다
읍내에서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929번 지방도가 4차로로 확장, 직선화되면서 해안 따라 구불거리는 옛길은 거의 자전거 차지다. 하지만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이 길은 외견상 그리 아름답거나 깔끔하지 않다. 오래된 집들은 속절없이 낡아가고, 뒷골목은 지저분하다. 속초에서 포항까지의 동해안은 전체가 관광지화 되어 대체로 정리가 되어 있고 세련되었다면 구룡포~호미곶 사이는 주민들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 생활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물 맑고 파도 밀려드는 동해안을 내륙 사람들은 동경하지만 주민들에게는 그냥 삶의 터전일 수도 있음을 새삼 절감한다. 구룡포에서 호미곶으로 곧장 이어지는 고속화도로가 생겨 더욱 그럴 것이다.
이윽고 저 멀리 호미곶의 상징이 된 ‘상생의 손’과 등대가 보인다. 지금껏 한산하던 해안선은 호미곶에서 갑작스런 인파로 왁자하다. 겨울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대단하다. 이것만으로도 ‘호미곶’의 성공은 자명하다.
곶(串)은 바다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반도의 끝단을 말하며, 현재의 호미곶은 호미반도의 최북단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이라 곶의 정의와는 조금 다르다. 대동여지도에는 반도 최북단을 동을배곶(冬乙背串)이라 표기하고 있다. 20세기 초 지도에는 최북단이 장기갑(長䰇岬)으로 되어있고 현재의 호미곶 자리는 동을배곶등대 표시만 있다. 현 호미곶은 반도의 끝단은 아니지만 등대가 있어서 상징적인 위치가 되었다.
구룡포 주상절리 해변. 규모는 작으나 이 일대도 오래 전에는 화산이 활동했음을 말해준다
호미곶 '상생의 손' 앞에서 제대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한다. 이 겨울 평일에도
진짜 최북단의 곶은 호미곶항을 지나 조금 더 북상해야 한다. 최북단 곶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해안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을 뿐이다. 실은 이곳을 기념해야 하는데….
작은 반도지만 북단은 역시 바람이, 파도가 다르다. 거세게 불어닥치는 겨울 북서풍을 온몸으로 맞는다. 영일만으로 접어들기 직전, 바닷가에는 제주 용두암을 닮은 독수리바위가 우뚝하다. 독수리바위 전망대 옆에는 작은 기념비가 있는데 1907년 일본 수산강습소 실습선 카이오마루(快應丸) 호가 호미곶 앞바다에 좌초되어 교사 1명, 학생 3명이 사망하자 수산강습소 졸업생들이 1926년에 세운 비석이다. 이 조난사고가 계기가 되어 항해 안전을 위해 호미곶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이 비석을 보존한 포항시의 관용에 감동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바다에서 인간은 가장 외롭고 위태롭고, 등대는 뱃사람에게 생명의 빛이다.
호미반도 최북단의 진짜 곶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용도불명의 컨테이너만 놓여 있다
영일만 초입에 있는 독수리바위. 어딘가 제주도 용두암을 닮았다. 뒤쪽 왼편으로 최근에 조성한 영일만항이 보인다
바다 저편으로 다른 해안선이 보이니 이제 영일만이다. 폭 10km 정도의 만 절반 이상은 이미 시가지와 포스코가 차지하고 있다. 한참 멀리서도 포스코의 거대 구조물이 선명하고, 포항 북단에 새로 조성한 영일만항에는 대형 화물선이 오간다.
호미반도 동쪽 해안은 약간의 완경사 평지가 있다면 서안은 절벽지대가 많아 마을이나 경작지가 드물다.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의 경동지괴(傾動地塊) 지형인데 호미반도는 반대로 ‘동저서고’다. 때문에 영일만 해안선은 조금 살풍경하다.
기이하게도 의자는 비어 있을 때 아름답다. 틀 지을 수 없는 풍경 속에 만든 억지 테두리도 비었을 때는 그냥 풍경의 일부로 녹아든다. 무한 가능성,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업다운이 연속되고 포구가 드문 영일만 구만리 해안도로
대동배리를 지나 학달비재(100m) 정상에서 임도로 진입한다. 호미반도에서 즐기는 산악라이딩 시작이다. 산이 높지 않으니 길은 완만하고 오프로드 노면도 매우 좋다. 금방 주능선에 올라약간의 업다운을 거치며 우물재산(180m) 아래 사거리에 닿는다. 왼쪽은 호미곶, 직진은 반도 허리춤인 강사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회전 하면 거의 능선을 타고 구룡포 방면으로 남하하게 된다. 200m급 산세가 이렇게 넓고 깊은 곳은 달리 없을 것이다. 숲이 짙고 능선에 가려 지척에 있는 바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첩첩산중이다. 간간이 걷는 사람이 보일 뿐, 인적도 없다.
무인지경이지만 넓고 환해서 명랑한 느낌을 주는 호미반도 내륙 임도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우물재산 임도사거리. 산행객도 많이 찾는지 등산리본이 가지 하나를 채운다. 등산리본 방면은 호미곶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200m급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첩첩산중에서 간만에 바다가 보이니 반갑다
공개산(214m) 남쪽을 돌아나가면 다운힐 무드로 변하지만 얕은 업다운은 연속된다. 전망도 없으니 그냥 라이딩에 탐닉한다. 얼마나 많은 구비를 돌고 업다운을 반복했을까. 이윽고 상정리에 접어들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지만 다시 산으로 올라붙어 150m까지 올라갔다가 작은 공단 앞으로 내려선다. 아직 고도가 90m를 넘어 구룡포까지는 거의 다운힐이라 부담 없는 페달링이다. 호미곶온천랜드를 지나 4차로의 31번 국도를 잠시 타야 하지만 잠깐인 1.2km만 가면 구룡포 방면으로 벗어나고, 갓길도 있어 무리는 없다.
다시 들어선 읍내는 지금까지의 한가와는 다르게 벌써 자동차와 사람들로 웅성인다. 도로변에 즐비한 식당에서는 대게 삶는 냄새와 물회의 풍미가 진하게 감돌고 있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구룡포읍내와 호미곶 일원에 식당, 편의점이 있다. 해안 다라 펜션과 캠핑장은 다수 분포한다. 내륙 임도는 노면이 좋고 경사가 심하지 않아 초보자도 도전해 볼만하다.
포항 호미반도 일주 42.5km
동해야, 영일만아!
아득히 포스코 구조물과 포항시가 보이는 영일만 해안 길. 호미반도 동쪽과 달리 절벽지대여서 업다운이 심하고 포구가 드물다
이 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반도는 단연 호미반도다. 조선시대는 장기현(長鬐縣)에 속해 근래까지 장기반도라고 불렀다가 1980년대 이후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하면서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호미(虎尾)가 정식명칭으로 자리 잡아 2010년에는 아예 ‘호미곶면’까지 생겼다(원래는 대보면).
반도에 딸린 또 다른 반도… 어쩌면 바다와 가장 깊이 만나는 육지일 것이다. 호미반도 서쪽에는 영일만이 파고들어 인구 50만의 동해안 제일도시와 거대 제철소를 품고 있고, 반도 끝단에는 호미곶이 해맞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반도에서 또 흥미로운 것은 내부의 산악지대다. 겨우 214m의 공개산을 필두로 넓고 깊은 산지가 펼쳐져 있다. 이 산줄기 전체가 곧 호미반도를 이루며, 완만한 능선 따라 많은 임도가 나 있어서 산악 일주도 가능하다.
구룡포는 1926년 일제가 건설한 항구여서 일본인 가옥 거리가 관광지화 되어 남아있다
구룡포를 내려다보는 충혼각 옆에 비상하는 9마리의 용이 '구룡포'를 상징한다
여정의 기점은 호미반도 관광 거점인 구룡포항으로 잡는다. 1923년 일제가 항구를 만들면서 일본인이 다수 거주해 지금도 일본인 가옥 거리가 남아 있다. 현재는 동해안 굴지의 어업전진기지로 수많은 오징어잡이 배가 정박한 모습은 장관이다. 찾는 이가 많아 포구에는 언제나 활기가 돈다.
일본인 가옥 거리 뒤편 언덕에 자리한 충혼각에 올라 항구를 내려다보며 여정을 시작한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지명의 유래에 걸맞게 비상하는 9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다. 충혼탑을 오르는 계단에는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앉아 사진을 부탁하는데 알고 보니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 촬영지란다.
457m에 걸쳐 있는 아기자기한 일본인 가옥 거리는 카페만이 즐비하다. 일본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뜻밖이고, 그 포용성과 실용성이 반갑기도 하다.
읍내를 벗어나자 구룡포해수욕장 백사장에 밀려드는 파도가 대단하다. 지금부터는 동해안 자전거길 표지만 따라가면 되어서 길 찾기는 편하다. 하지만 포항 이북 구간에 있는 파란 실선은 없고 갈림길마다 안내판이나 바닥 표시가 되어 있는 정도다.
충혼각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 오징어잡이배를 위시해 정박해 있는 어선들이 대단히 많다
대양의 파도가 겹주름을 지으며 끝없이 밀려드는 구룡포해수욕장. 깊은 수심과 태평양의 광대함이 빚어내는 파도는 박력 넘친다
읍내에서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929번 지방도가 4차로로 확장, 직선화되면서 해안 따라 구불거리는 옛길은 거의 자전거 차지다. 하지만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이 길은 외견상 그리 아름답거나 깔끔하지 않다. 오래된 집들은 속절없이 낡아가고, 뒷골목은 지저분하다. 속초에서 포항까지의 동해안은 전체가 관광지화 되어 대체로 정리가 되어 있고 세련되었다면 구룡포~호미곶 사이는 주민들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 생활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물 맑고 파도 밀려드는 동해안을 내륙 사람들은 동경하지만 주민들에게는 그냥 삶의 터전일 수도 있음을 새삼 절감한다. 구룡포에서 호미곶으로 곧장 이어지는 고속화도로가 생겨 더욱 그럴 것이다.
이윽고 저 멀리 호미곶의 상징이 된 ‘상생의 손’과 등대가 보인다. 지금껏 한산하던 해안선은 호미곶에서 갑작스런 인파로 왁자하다. 겨울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대단하다. 이것만으로도 ‘호미곶’의 성공은 자명하다.
곶(串)은 바다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반도의 끝단을 말하며, 현재의 호미곶은 호미반도의 최북단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이라 곶의 정의와는 조금 다르다. 대동여지도에는 반도 최북단을 동을배곶(冬乙背串)이라 표기하고 있다. 20세기 초 지도에는 최북단이 장기갑(長䰇岬)으로 되어있고 현재의 호미곶 자리는 동을배곶등대 표시만 있다. 현 호미곶은 반도의 끝단은 아니지만 등대가 있어서 상징적인 위치가 되었다.
구룡포 주상절리 해변. 규모는 작으나 이 일대도 오래 전에는 화산이 활동했음을 말해준다
호미곶 '상생의 손' 앞에서 제대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한다. 이 겨울 평일에도
진짜 최북단의 곶은 호미곶항을 지나 조금 더 북상해야 한다. 최북단 곶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해안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을 뿐이다. 실은 이곳을 기념해야 하는데….
작은 반도지만 북단은 역시 바람이, 파도가 다르다. 거세게 불어닥치는 겨울 북서풍을 온몸으로 맞는다. 영일만으로 접어들기 직전, 바닷가에는 제주 용두암을 닮은 독수리바위가 우뚝하다. 독수리바위 전망대 옆에는 작은 기념비가 있는데 1907년 일본 수산강습소 실습선 카이오마루(快應丸) 호가 호미곶 앞바다에 좌초되어 교사 1명, 학생 3명이 사망하자 수산강습소 졸업생들이 1926년에 세운 비석이다. 이 조난사고가 계기가 되어 항해 안전을 위해 호미곶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이 비석을 보존한 포항시의 관용에 감동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바다에서 인간은 가장 외롭고 위태롭고, 등대는 뱃사람에게 생명의 빛이다.
호미반도 최북단의 진짜 곶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용도불명의 컨테이너만 놓여 있다
영일만 초입에 있는 독수리바위. 어딘가 제주도 용두암을 닮았다. 뒤쪽 왼편으로 최근에 조성한 영일만항이 보인다
바다 저편으로 다른 해안선이 보이니 이제 영일만이다. 폭 10km 정도의 만 절반 이상은 이미 시가지와 포스코가 차지하고 있다. 한참 멀리서도 포스코의 거대 구조물이 선명하고, 포항 북단에 새로 조성한 영일만항에는 대형 화물선이 오간다.
호미반도 동쪽 해안은 약간의 완경사 평지가 있다면 서안은 절벽지대가 많아 마을이나 경작지가 드물다.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의 경동지괴(傾動地塊) 지형인데 호미반도는 반대로 ‘동저서고’다. 때문에 영일만 해안선은 조금 살풍경하다.
기이하게도 의자는 비어 있을 때 아름답다. 틀 지을 수 없는 풍경 속에 만든 억지 테두리도 비었을 때는 그냥 풍경의 일부로 녹아든다. 무한 가능성,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업다운이 연속되고 포구가 드문 영일만 구만리 해안도로
대동배리를 지나 학달비재(100m) 정상에서 임도로 진입한다. 호미반도에서 즐기는 산악라이딩 시작이다. 산이 높지 않으니 길은 완만하고 오프로드 노면도 매우 좋다. 금방 주능선에 올라약간의 업다운을 거치며 우물재산(180m) 아래 사거리에 닿는다. 왼쪽은 호미곶, 직진은 반도 허리춤인 강사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회전 하면 거의 능선을 타고 구룡포 방면으로 남하하게 된다. 200m급 산세가 이렇게 넓고 깊은 곳은 달리 없을 것이다. 숲이 짙고 능선에 가려 지척에 있는 바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첩첩산중이다. 간간이 걷는 사람이 보일 뿐, 인적도 없다.
무인지경이지만 넓고 환해서 명랑한 느낌을 주는 호미반도 내륙 임도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우물재산 임도사거리. 산행객도 많이 찾는지 등산리본이 가지 하나를 채운다. 등산리본 방면은 호미곶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200m급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첩첩산중에서 간만에 바다가 보이니 반갑다
공개산(214m) 남쪽을 돌아나가면 다운힐 무드로 변하지만 얕은 업다운은 연속된다. 전망도 없으니 그냥 라이딩에 탐닉한다. 얼마나 많은 구비를 돌고 업다운을 반복했을까. 이윽고 상정리에 접어들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지만 다시 산으로 올라붙어 150m까지 올라갔다가 작은 공단 앞으로 내려선다. 아직 고도가 90m를 넘어 구룡포까지는 거의 다운힐이라 부담 없는 페달링이다. 호미곶온천랜드를 지나 4차로의 31번 국도를 잠시 타야 하지만 잠깐인 1.2km만 가면 구룡포 방면으로 벗어나고, 갓길도 있어 무리는 없다.
다시 들어선 읍내는 지금까지의 한가와는 다르게 벌써 자동차와 사람들로 웅성인다. 도로변에 즐비한 식당에서는 대게 삶는 냄새와 물회의 풍미가 진하게 감돌고 있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구룡포읍내와 호미곶 일원에 식당, 편의점이 있다. 해안 다라 펜션과 캠핑장은 다수 분포한다. 내륙 임도는 노면이 좋고 경사가 심하지 않아 초보자도 도전해 볼만하다.
포항 호미반도 일주 42.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