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한 독수리산 아래 번화한 면소재지
영축산 남사면 해발 400m 지점에 자리한 법화사. 발 아래로 구계리 골짜기가 펼쳐지고 종암산~함박산 능선이 정면으로 보인다. 오른쪽 아래 작은 탑은 고려시대 제작된 다층석탑으로 지붕돌 등 일부만 남은 모습이다
창녕의 명산인 화왕산(757m) 남쪽에는 또 하나의 바위산이 솟아 있으니 바로 영축산(681m)이다. ‘밀양 영취산’ 편에서 불교풍 명칭인 영취산(靈鷲山, 영축산으로도 읽힘)이 전국에 여럿 있다고 했는데 이곳 영축산도 그 중 하나다.
창녕 영축산이라 하지 않고 영산 영축산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영산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창녕군에 속하지만 이는 1914년 통합 이후의 일이고 1380년 고려시대 이후 영산은 별도의 군 혹은 현(縣)이었다. 이 때문에 영산의 자부심과 독립적인 존재감은 지금도 여전하다.
현재의 영산 마을 규모도 대단해서 인구가 5,900명에 이른다. 의령 부림면의 규모와 번화함에 놀랐지만 그보다 두 배나 되는 인구다. 실제로 영산면소재지에 들어서면 흔한 읍 분위기다. 번듯한 규모의 초중고가 건재하고, 아파트와 마트, 병원, 모텔 등도 거리에 즐비하다. 재래시장도 있지만 상당한 규모로 열리는 오일장은 인근지역에서 유명하다.
영산면 뒤쪽에 우뚝 솟은 영축산. 왼쪽이 독수리를 닮은 신선봉(631m)이고 정상은 가운데 뒤편에 있으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영산(靈山)이라는 지역명은 바로 뒤에 솟은 영축산에서 유래했으며, 멀리서 보는 영축산은 흔히 독수리에 비유하는 그대로, 날카로운 암봉과 급준한 사면, 암릉이 연속된 능선이 독수리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높고 유명한 영취산은 양산 통도사 뒷산(1081m)이라고 한다면, 영산 영축산은 날카롭고 기세등등한 독수리와 가장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저지대에서 치솟아 600m급산임에도 웅장미가 남다르고 말발굽처럼 오목하게 안쪽으로 넓은 터를 숨긴, 일종의 우복동(牛腹洞, 소의 뱃속처럼 좁은 입구 안쪽에 넓은 터가 있는 골짜기) 지형이기도 해서 각별한 존재감을 준다.
면사무소 인근 영산천에는 1780년 축조된 돌다리 만년교(萬年橋)가 있다. 길이 13.5m의 작은 무지개다리인데 ‘만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말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남쪽의 도천면이나 동쪽 부곡면으로 가자면 반드시 지나야 할 길목이라 240년 이상 숱한 사람과 사연들이 건너다녔고 급류와 홍수를 수없이 겪었겠지만 지금도 건재하다. 바로 옆에 남산호국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주차장이 있어 이곳을 출발지로 잡는다.
영산천을 따라 상류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에 함박산공원이 나오고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는 함박산약수터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에 발견되어 가장 오래된 약수터로 꼽히며, 속병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전국의 유명한 약수터 7곳을 조사했더니 함박산약수터 수질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약수터 위쪽으로 함박산(501m) 정상에서 시작된 급사면의 마른계곡이 있어 지하로 스며든 물이 많이 걸러진 때문이 아닌가 싶다.
1780년 축조된 만년교. 영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다. 뒤쪽은 남산호국공원
함박산약수터. 좌우 두개의 수구가 있으나 지금은 오른쪽만 물이 나오고 있다. 전국 유명약수터 중 수질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함박산약수터 아래에는 석빙고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겨울에 얼음을 떼서 보관했다가 여름에 사용하는 석빙고는 모두 조선시대에 만들어졌고 경상도에만 남아 있다. 석빙고 얼음은 일반 백성은 쓰지 못하고 양반과 관에서만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단순한 구조로 겨울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한 것이 믿기지 않지만 얼음을 가득 쌓아놓으면 자체적인 냉기로 냉장이 된 것 같다. 배수를 위한 경사진 바닥과 단열효과가 큰 돌벽, 가느다란 환기구멍 등 나름대로 냉장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웃한 창녕읍에도 석빙고가 남아 있어 주목된다.
마을을 북쪽으로 벗어나면 영축산 기슭이다. 곧추 선 신선봉(631m)은 영락없는 독수리 모습이다. 남서향을 해서 환한 신선봉 기슭에는 예쁜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산자락 초입에 있는 신씨고가(辛氏古家)와 영산향교를 돌아본다. 두 군데로 나뉘어 있는 신씨고가는 영산 신씨의 고택으로 여성공간인 안채, 남자가 기거하는 사랑채를 중심으로 각종 건물이 잘 남아 있다. 19세기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뒤로는 신선봉을 올려다보고 아래로는 마을을 굽어보는 입지다. 신씨고가 바로 뒤에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인 영산향교가 있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이 향교 뒤쪽 별개의 공간에 자리한 것이 특이한데, 대성전 앞마당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고만고만한 낮은 산들이 구릉처럼 펼쳐지고, 남쪽 발밑으로 보이는 마을에는 아늑함과 활기가 공존한다.
석빙고 뒤로 영축산 신선봉이 우뚝하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높직이 자리한 신씨고가의 안채. 잡초를 제거하지 않아 방치된 느낌이다
신씨고가의 긴 담벼락
영산향교 대성전 앞에서 내려다본 향교(바로 아래) 건물과 영산면소재지
이제 영축산이 빚어낸 우복동 골짜기로 향한다. 구계저수지(하부)에서 골짜기는 가장 좁아져 폭 90m 정도다. 상류에 넓은 대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입지다. 고대에는 피난과 은둔에 좋은 지형으로, 신선봉 정상에 남아 있는 영축산성의 보급지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상하부 구계저수지 사이에 구계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며 조각기법이 조악하고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보기에 민망하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가까스로 관통해온 증거이기도 하다.
상부 구계저수지는 고지대 산중에 고요하고, 저수지를 지난 상류에는 완만한 경사지에 수많은 다락논과 밭, 마을이 산재하는 산중 별세계가 펼쳐진다. 은둔은 아니고 그렇다고 세속도 아닌, 적당한 거리감이 좋은 터전이다.
영축산에는 산허리를 훌쩍 넘는 고도에 두 절이 있다. 정상 북쪽에 있는 충효사는 해발 510m나 되고, 남쪽의 법화사는 400m다. 지금 향하는 법화사는 정상 남쪽에 도열한 세 암봉(최고봉 635m)을 배경으로 삼아 우뚝한 고지대에 있어 극심한 업힐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절에 도착하는 순간, 발 아래 펼쳐진 풍광에 빠른 심박은 금방 가라앉고 전신을 적신 땀은 쉬이 마른다. 남향이라 밝으면서 전후 조망도 좋은 위치다.
구계리 석조여래상. 대형광배가 특징으로 심하게 훼손된 모습이다
산중호수의 고요함이 감도는 구계저수지(상부). 저수지 뒤편으로 종암산(547m) 줄기가 오똑한 모습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극심한 경사의 법화사 업힐. 1단 기어로도 여러번 쉬어 올라야 했다
법화사 아래 해발 290m 지점에 있는 외촌저수지. 너무나 짙푸르러 신비롭기까지 하다
대단한 폭염인데 장년의 스님 혼자 마당에 나와 흙을 나르고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울력을 하고 있다. 스님도 나의 출현에 놀란 모습이다. 내가 인사를 하자 목례로 답을 해주지만 말은 없다. 구릿빛 얼굴은 무표정으로 묵묵히 작업을 하면서도 마치 명상 중인 듯 엄숙하고 단아하다.
대웅전 앞에 서면 구계리 골짜기 전체가 눈에 들고, 종암산(547m)에서 함박산(510m)에 이르는 남부 산줄기의 봉우리들이 톱날처럼 삐죽삐죽하다. 낮은 안부 틈으로는 먼 산도 드러난다. 법화사 뒤쪽 암봉 해발 550m 지점에는 초미니 전각인 관음전이 올려다 보여 신선경의 운치마저 더해준다.
법화사의 입지에 거듭 감탄한다. 원래는 영축산 일원에 보림사에 딸린 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며, 법화사는 그 중 하나로 최근에 중건되어 유일하게 남았다. 그만큼 좋은 터라는 뜻이기도 하다. 보림사 터는 구계리 상류에 남아 있다.
절 마당 바위 위에는 고려초기의 다층석탑 잔존물인 지붕돌과 몸돌 등이 남아 있다. 원래는 9층의 헌칠한 석탑으로 추정된다.
법화사를 내려와 다락논밭이 즐비한 산기슭 마을들을 지나 골짜기 상류로 향한다. 터가 높고 밝은데다 조망이 탁 트여 오지의 느낌이 없고 개방감이 앞선다. 덕분에 시골마을치고 빈 집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법화사 앞마당. 건너편으로 종남산~함박산 줄기가 줄달음 친다
세 암봉을 배경으로 삼아 선경을 이루는 법화사
구계리에서 올려다본 법화사(산중턱 수풀 없는 부분). 암봉이 병풍처럼 두른 멋진 풍광이다. 영축산 정상은 맨 오른쪽 암봉 뒤에 있다
이윽고 마을이 끝나고 길은 산협으로 접어드니 인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콘크리트 포장과 흙길이 번갈아 나타나며, 통행이 드물어서인지 원시적인 적막과 풀내음, 벌레 울음소리만이 가득하다. 해발 400m 보름고개에서 길은 능선과 접한 후 북상을 거듭하고 영축산 봉우리 중 가장 뾰족하고 인상적인 병봉(674m)을 스쳐간다. 길은 해발 590m까지 올라갔다가 다운힐로 바뀐다. 다운힐은 화왕산~관룡산을 바라보며 북사면을 내려가 옥천저수지에 닿는다.
이제부터 평지 초입인 달촌마을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을 이뤄 쾌속으로 달리기 좋은 1080번 지방도를 따라 간다. 달촌마을에서 작은 언덕을 올라 명리 공단과 함양울산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영산면소재지로 접어든다. 분위기 좋은 연지못을 돌아나가면 출발지인 만년교다.
한 바퀴 돌고 오니 영축산이 얼마나 독특하고 아름다운 산인지, 그 아래 터 잡고 있는 영산은 또 얼마나 특별한 고장인지 괄목상대하게 된다.
보름고개 오르는 길. 저 아래로 영산면소재지와 신선봉이 보인다주능선 등산로와 만나는 보름고개(해발 400m)
보름고개 근처에서 내려다본 구계리. 맞은편 맨우측 함박산 뒤로 창녕들이 펼쳐진다
뾰족한 병봉(674m)을 지나면 구계리를 벗어나 북사면으로 접어든다북사면으로 다운힐 도중 바라본 화왕산(왼쪽, 757m)과 관룡산(가운데, 754m)
북쪽에서 올려다본 영축산 정상. 역시 독수리를 닮았다
수면은 초록이고, 하늘은 파란 연지
tip
영산도서관 아래나 만년교 주변 도로에 주차가 가능하다. 함박산약수터는 매우 가파른 업힐을 올라야 하고, 주민들이 장시간 물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물맛을 보면 된다.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된다면 법화사 관음전도 올라보길 권한다. 영산면소재지에 식당과 편의점, 숙박업소가 있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창녕 영산 영축산 일주 28km
영험한 독수리산 아래 번화한 면소재지
영축산 남사면 해발 400m 지점에 자리한 법화사. 발 아래로 구계리 골짜기가 펼쳐지고 종암산~함박산 능선이 정면으로 보인다. 오른쪽 아래 작은 탑은 고려시대 제작된 다층석탑으로 지붕돌 등 일부만 남은 모습이다
창녕의 명산인 화왕산(757m) 남쪽에는 또 하나의 바위산이 솟아 있으니 바로 영축산(681m)이다. ‘밀양 영취산’ 편에서 불교풍 명칭인 영취산(靈鷲山, 영축산으로도 읽힘)이 전국에 여럿 있다고 했는데 이곳 영축산도 그 중 하나다.
창녕 영축산이라 하지 않고 영산 영축산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영산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창녕군에 속하지만 이는 1914년 통합 이후의 일이고 1380년 고려시대 이후 영산은 별도의 군 혹은 현(縣)이었다. 이 때문에 영산의 자부심과 독립적인 존재감은 지금도 여전하다.
현재의 영산 마을 규모도 대단해서 인구가 5,900명에 이른다. 의령 부림면의 규모와 번화함에 놀랐지만 그보다 두 배나 되는 인구다. 실제로 영산면소재지에 들어서면 흔한 읍 분위기다. 번듯한 규모의 초중고가 건재하고, 아파트와 마트, 병원, 모텔 등도 거리에 즐비하다. 재래시장도 있지만 상당한 규모로 열리는 오일장은 인근지역에서 유명하다.
영산면 뒤쪽에 우뚝 솟은 영축산. 왼쪽이 독수리를 닮은 신선봉(631m)이고 정상은 가운데 뒤편에 있으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영산(靈山)이라는 지역명은 바로 뒤에 솟은 영축산에서 유래했으며, 멀리서 보는 영축산은 흔히 독수리에 비유하는 그대로, 날카로운 암봉과 급준한 사면, 암릉이 연속된 능선이 독수리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높고 유명한 영취산은 양산 통도사 뒷산(1081m)이라고 한다면, 영산 영축산은 날카롭고 기세등등한 독수리와 가장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저지대에서 치솟아 600m급산임에도 웅장미가 남다르고 말발굽처럼 오목하게 안쪽으로 넓은 터를 숨긴, 일종의 우복동(牛腹洞, 소의 뱃속처럼 좁은 입구 안쪽에 넓은 터가 있는 골짜기) 지형이기도 해서 각별한 존재감을 준다.
면사무소 인근 영산천에는 1780년 축조된 돌다리 만년교(萬年橋)가 있다. 길이 13.5m의 작은 무지개다리인데 ‘만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말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남쪽의 도천면이나 동쪽 부곡면으로 가자면 반드시 지나야 할 길목이라 240년 이상 숱한 사람과 사연들이 건너다녔고 급류와 홍수를 수없이 겪었겠지만 지금도 건재하다. 바로 옆에 남산호국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주차장이 있어 이곳을 출발지로 잡는다.
영산천을 따라 상류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에 함박산공원이 나오고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는 함박산약수터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에 발견되어 가장 오래된 약수터로 꼽히며, 속병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전국의 유명한 약수터 7곳을 조사했더니 함박산약수터 수질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약수터 위쪽으로 함박산(501m) 정상에서 시작된 급사면의 마른계곡이 있어 지하로 스며든 물이 많이 걸러진 때문이 아닌가 싶다.
1780년 축조된 만년교. 영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다. 뒤쪽은 남산호국공원
함박산약수터. 좌우 두개의 수구가 있으나 지금은 오른쪽만 물이 나오고 있다. 전국 유명약수터 중 수질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함박산약수터 아래에는 석빙고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겨울에 얼음을 떼서 보관했다가 여름에 사용하는 석빙고는 모두 조선시대에 만들어졌고 경상도에만 남아 있다. 석빙고 얼음은 일반 백성은 쓰지 못하고 양반과 관에서만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단순한 구조로 겨울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한 것이 믿기지 않지만 얼음을 가득 쌓아놓으면 자체적인 냉기로 냉장이 된 것 같다. 배수를 위한 경사진 바닥과 단열효과가 큰 돌벽, 가느다란 환기구멍 등 나름대로 냉장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웃한 창녕읍에도 석빙고가 남아 있어 주목된다.
마을을 북쪽으로 벗어나면 영축산 기슭이다. 곧추 선 신선봉(631m)은 영락없는 독수리 모습이다. 남서향을 해서 환한 신선봉 기슭에는 예쁜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산자락 초입에 있는 신씨고가(辛氏古家)와 영산향교를 돌아본다. 두 군데로 나뉘어 있는 신씨고가는 영산 신씨의 고택으로 여성공간인 안채, 남자가 기거하는 사랑채를 중심으로 각종 건물이 잘 남아 있다. 19세기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뒤로는 신선봉을 올려다보고 아래로는 마을을 굽어보는 입지다. 신씨고가 바로 뒤에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인 영산향교가 있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이 향교 뒤쪽 별개의 공간에 자리한 것이 특이한데, 대성전 앞마당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고만고만한 낮은 산들이 구릉처럼 펼쳐지고, 남쪽 발밑으로 보이는 마을에는 아늑함과 활기가 공존한다.
석빙고 뒤로 영축산 신선봉이 우뚝하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높직이 자리한 신씨고가의 안채. 잡초를 제거하지 않아 방치된 느낌이다
신씨고가의 긴 담벼락
영산향교 대성전 앞에서 내려다본 향교(바로 아래) 건물과 영산면소재지
이제 영축산이 빚어낸 우복동 골짜기로 향한다. 구계저수지(하부)에서 골짜기는 가장 좁아져 폭 90m 정도다. 상류에 넓은 대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입지다. 고대에는 피난과 은둔에 좋은 지형으로, 신선봉 정상에 남아 있는 영축산성의 보급지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상하부 구계저수지 사이에 구계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며 조각기법이 조악하고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보기에 민망하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가까스로 관통해온 증거이기도 하다.
상부 구계저수지는 고지대 산중에 고요하고, 저수지를 지난 상류에는 완만한 경사지에 수많은 다락논과 밭, 마을이 산재하는 산중 별세계가 펼쳐진다. 은둔은 아니고 그렇다고 세속도 아닌, 적당한 거리감이 좋은 터전이다.
영축산에는 산허리를 훌쩍 넘는 고도에 두 절이 있다. 정상 북쪽에 있는 충효사는 해발 510m나 되고, 남쪽의 법화사는 400m다. 지금 향하는 법화사는 정상 남쪽에 도열한 세 암봉(최고봉 635m)을 배경으로 삼아 우뚝한 고지대에 있어 극심한 업힐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절에 도착하는 순간, 발 아래 펼쳐진 풍광에 빠른 심박은 금방 가라앉고 전신을 적신 땀은 쉬이 마른다. 남향이라 밝으면서 전후 조망도 좋은 위치다.
구계리 석조여래상. 대형광배가 특징으로 심하게 훼손된 모습이다
산중호수의 고요함이 감도는 구계저수지(상부). 저수지 뒤편으로 종암산(547m) 줄기가 오똑한 모습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극심한 경사의 법화사 업힐. 1단 기어로도 여러번 쉬어 올라야 했다
법화사 아래 해발 290m 지점에 있는 외촌저수지. 너무나 짙푸르러 신비롭기까지 하다
대단한 폭염인데 장년의 스님 혼자 마당에 나와 흙을 나르고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울력을 하고 있다. 스님도 나의 출현에 놀란 모습이다. 내가 인사를 하자 목례로 답을 해주지만 말은 없다. 구릿빛 얼굴은 무표정으로 묵묵히 작업을 하면서도 마치 명상 중인 듯 엄숙하고 단아하다.
대웅전 앞에 서면 구계리 골짜기 전체가 눈에 들고, 종암산(547m)에서 함박산(510m)에 이르는 남부 산줄기의 봉우리들이 톱날처럼 삐죽삐죽하다. 낮은 안부 틈으로는 먼 산도 드러난다. 법화사 뒤쪽 암봉 해발 550m 지점에는 초미니 전각인 관음전이 올려다 보여 신선경의 운치마저 더해준다.
법화사의 입지에 거듭 감탄한다. 원래는 영축산 일원에 보림사에 딸린 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며, 법화사는 그 중 하나로 최근에 중건되어 유일하게 남았다. 그만큼 좋은 터라는 뜻이기도 하다. 보림사 터는 구계리 상류에 남아 있다.
절 마당 바위 위에는 고려초기의 다층석탑 잔존물인 지붕돌과 몸돌 등이 남아 있다. 원래는 9층의 헌칠한 석탑으로 추정된다.
법화사를 내려와 다락논밭이 즐비한 산기슭 마을들을 지나 골짜기 상류로 향한다. 터가 높고 밝은데다 조망이 탁 트여 오지의 느낌이 없고 개방감이 앞선다. 덕분에 시골마을치고 빈 집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법화사 앞마당. 건너편으로 종남산~함박산 줄기가 줄달음 친다
세 암봉을 배경으로 삼아 선경을 이루는 법화사
구계리에서 올려다본 법화사(산중턱 수풀 없는 부분). 암봉이 병풍처럼 두른 멋진 풍광이다. 영축산 정상은 맨 오른쪽 암봉 뒤에 있다
이윽고 마을이 끝나고 길은 산협으로 접어드니 인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콘크리트 포장과 흙길이 번갈아 나타나며, 통행이 드물어서인지 원시적인 적막과 풀내음, 벌레 울음소리만이 가득하다. 해발 400m 보름고개에서 길은 능선과 접한 후 북상을 거듭하고 영축산 봉우리 중 가장 뾰족하고 인상적인 병봉(674m)을 스쳐간다. 길은 해발 590m까지 올라갔다가 다운힐로 바뀐다. 다운힐은 화왕산~관룡산을 바라보며 북사면을 내려가 옥천저수지에 닿는다.
이제부터 평지 초입인 달촌마을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을 이뤄 쾌속으로 달리기 좋은 1080번 지방도를 따라 간다. 달촌마을에서 작은 언덕을 올라 명리 공단과 함양울산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영산면소재지로 접어든다. 분위기 좋은 연지못을 돌아나가면 출발지인 만년교다.
한 바퀴 돌고 오니 영축산이 얼마나 독특하고 아름다운 산인지, 그 아래 터 잡고 있는 영산은 또 얼마나 특별한 고장인지 괄목상대하게 된다.
보름고개 오르는 길. 저 아래로 영산면소재지와 신선봉이 보인다주능선 등산로와 만나는 보름고개(해발 400m)
보름고개 근처에서 내려다본 구계리. 맞은편 맨우측 함박산 뒤로 창녕들이 펼쳐진다
뾰족한 병봉(674m)을 지나면 구계리를 벗어나 북사면으로 접어든다북사면으로 다운힐 도중 바라본 화왕산(왼쪽, 757m)과 관룡산(가운데, 754m)
북쪽에서 올려다본 영축산 정상. 역시 독수리를 닮았다
수면은 초록이고, 하늘은 파란 연지
tip
영산도서관 아래나 만년교 주변 도로에 주차가 가능하다. 함박산약수터는 매우 가파른 업힐을 올라야 하고, 주민들이 장시간 물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물맛을 보면 된다.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된다면 법화사 관음전도 올라보길 권한다. 영산면소재지에 식당과 편의점, 숙박업소가 있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창녕 영산 영축산 일주 2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