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계곡 모여든 청정 물길 따라
단성면 강누리 즈음의 강변 길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경호강 풍광. 자전거길은 왼쪽 시멘트길을 지난다. 경호강은 물이 그득해 대하 분위기다. 맞은편으로 전원주택단지를 품은 수리봉(593m)이 구름을 붙잡고 있고 그 뒤로 웅석봉(1099m) 주능선이 아득하다
낙동강에서 경호강은 한강의 동강(東江) 같은 존재로, 가장 맑고 아름다운 강줄기로 꼽힌다. 낙동강 제1지류인 남강의 상류로, 지리산 북단을 흘러온 임천이 남덕유산에서 흘러온 남강 본류와 합류하는 산청군 어서리에서 진주 진양호에 이르는 80리(32km) 물길의 별칭이다. 경호강(鏡湖江)은 거울에 비친 호수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지리산 북사면의 청정계곡수를 모아 흐르기에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며 암석지대를 관류해 거대한 계곡을 방불케 한다.
얼추 말해서, 지리산 남쪽에 섬진강이 있다면 북쪽에는 경호강이 있다고 대비할 수 있다. 물론 섬진강은 훨씬 길고 큰 강이라 대하의 면모를 보이는 반면 경호강은 내내 급류로 굽이치고 강바닥과 주위는 바위와 돌 천지다.
산청군은 경호강의 경관을 곁에서 볼 수 있도록 ‘경호강 100리 자전거길’을 조성 중이다(원래는 23년 완공 예정). 코스는 상류의 금서면 주상마을에서 진양호 초입 대관교까지 46km로, 기존 둑길과 농로, 도로를 최대한 활용하고 일부 구간에는 자전거길을 신설하기도 했다(보행자 겸용).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기존 도로를 많이 활용하고 있어 지금도 라이딩은 가능하다. 남단의 대관교에서는 진주시에서 조성 중인 진양호 순환 자전거길(50km)과도 연결된다.
성철스님 생가에는 겁외사가 들어섰다. 동상 뒤쪽 건물은 복원된 생가
남북으로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은 출발지로 복귀하려면 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왕복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인간의 시야는 120도 정도로 제한적이어서 초행 같이라면 오갈 때 보는 풍경과 분위기가 다르고, 지형지물에 대한 이해도 더 깊게 해줘 왕복여정도 지루하지 않다.
진양호 순환 자전거길을 일부 포함하는 것을 감안해 남쪽 단성면의 성철스님(1912~1993) 생가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열반한 지 이제 겨우 30년 된 20세기 현대인이지만 성철스님은 옛날의 고승처럼 전설화되었다. 본명이 이영주(李英柱)였던 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했고 해방 후에는 대처승 등 왜색에 물든 불교를 바로잡는 선풍운동에 앞장섰다. 이후에는 파계사 성전암에서 8년간 ‘장좌불와(長座不臥,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동구불출(洞口不出, 절을 벗어나지 않음)’의 극단적 수행으로 진정한 수도승의 면모를 보였다. 스님이 1981년 조계종 종정이 되어 내린 법어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는 마치 세상을 향한 화두처럼 충격파를 던졌다. 이후에도 은거와 수행 생활을 지속하며 불전에 삼천배를 해야 만날 수 있었던 거대한 문턱과 거리감은 베일 속 신비감을 더했다.
성철스님의 생가터는 겁외사(劫外寺)로 조성되어 있다. 절 마당에는 스님의 동상이 서 있고 맨 안쪽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바로 뒤를 지나가 다소 시끄럽고 뒤쪽 산줄기와 단절되어 보이지만 원래는 검무봉(284m) 줄기가 북동으로 빙 돌아서 흘러내리는 끝지점이다. 풍수지리를 감안해 애써 고른 입지여서 상당히 유력한 집안이 아니었나 싶다.
겁외사 맞은편에 조성된 성철스님기념관에는 마치 석굴암 본존불처럼 스님 상이 모셔져 있지만 생전에 사용하던 집기 등은 볼 수 없다. 허공에 흩어졌으나 마음속에 각인된 언행 말고는 남긴 것이 없으니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했음을 반증한다. 겁외사 서쪽 경호강 강변에 조성된 생태숲은 ‘성철공원’으로 명명되었다.
성철스님 생가 앞에 조성된 생태숲은 '성철공원'으로 명명되었다. 이곳 주차장을 기점으로 잡으면 편하다
먼저 산청읍을 향해 북향이다. 경호강을 건너는 묵곡교 한켠에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고 도로명은 ‘성철로’다. 경호강 서안 둑길을 따라 북상한다. 진양호를 눈앞에 둔 경호강은 폭 300m 정도로 큰 강 분위기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성면소재지와 신안면소재지가 마주하고 있다. 신안면 쪽으로는 강변 따라 절벽을 이룬 적벽산(166m)이 기다랗고 산 아래에는 낙석을 피하기 위해 지붕을 씌운 피암터널(700m)이 이색적이다. 피암터널 위에는 높이 50m 정도의 인공폭포가 쏟아진다. 다만 인공폭포는 도중에 수평의 돌출선이 여럿 부각되어 자연미가 없는 것이 아쉽다. 적벽산은 조선후기의 성리학자 송시열이 중국 적벽에 비유해 ‘적벽(赤壁)’이라 쓴 각석이 남은 데서 유래했다.
강줄기가 서쪽으로 꺾어드니 경호강변 최고의 웅자인 웅석봉(1099m) 남쪽 줄기에 솟은 수리봉(593m)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리봉 중턱은 대규모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서 있다. 산청읍은 웅석봉 북쪽에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길에는 ‘경호강자전거길’이라는 표식이 없고 간혹 자전거 모양 표시가 있을 뿐이며, 농로와 일반도로에서는 그 표시마저 사라진다.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조성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강누리의 작은 배수펌프장 아래에서 길은 강변으로 바짝 내려가 붙는다. 초입에 나붙은 ‘익사다발지역’ 표시가 섬뜩하다. 휘어져 도는 물길의 안쪽이라 거친 물살에 절벽을 이루면서 수심이 깊고 길가에는 난간도 없어 스릴감은 좋다.
성철공원 서쪽 묵곡교에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강줄기의 공식명칭은 남강이되 다리 상류는 경호강, 하류는 진양호로 구분할 수 있다
건너편으로 신안면소재지가 보이는 둑길. 자전거길 표시는 따로 없다
강 건너 적벽산에서 쏟아지는 인공폭포는 높이가 50m에 달한다. 그 아래쪽으로 낙석을 피하기 위해 지붕을 씌우고 돔 창을 낸 피암터널(700m)이 이채롭다
방목리로 접어들면 새 도로를 내면서 버려진 옛도로를 자전거길로 활용한 구간이 나온다. 강 건너 저편으로 둔철산(823m)이 이름처럼 둔중하다. 경호강은 크게 보아 서쪽은 왕산(926m)~웅석봉 줄기가, 동쪽은 정수산(830m)~둔철산 줄기가 마주하고 있다.
강변을 따르던 길은 통영대전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해 고속도로와 근접해서 북상한다. 이 일대의 수리봉 기슭에는 전원주택 단지가 매우 많은데 지리산 끝자락으로 산수가 좋으면서 교통도 편해서인 듯하다.
길은 고속도로 산청휴게소 뒤를 지나간다. 고속도로휴게소를 외부에서 지나칠 때는 낯설고 특이한 것이, ‘고속으로 질주하다 고속으로 볼일을 보고’ 스쳐가는 곳의 뒤안길이기 때문이다. 휴게소 근무자들이 출근하는 작은 통로, 그들이 차를 세워둔 어설픈 주차장에는 내가 누리는 여정의 설렘이 아니라 일상의 고단함이 묻어 있다.
이제 산비탈을 수평으로 지나는 마을길이다. 수산, 송강마을을 지나면 경사도 26%의 급사면이 앞을 막는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지만 산악자전거 동호인이라면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정도다. 다만 초보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어 내려서 끌기를 권한다.
이제 강은 훌쩍 줄어들어 폭은 50~60m 정도이고 장구한 세월 물길에 시달린 바위가 크고 작은 강돌로 흩어져 뒹군다. 어천마을에 이르면 왼쪽으로 구름에 머리를 숨긴 웅석산이 쏟아질 듯 가파르다.방목리의 옛도로 구간. 오른쪽 위에 새 길이 생기면서 구도로를 자전거길로 활용하고 있지만 바닥이 지저분하다방목리 데크로에서 바라본 둔철산(823m). 경호강을 사이에 두고 웅석봉과 마주하고 있다
강돌이 가득한 급류지대. 강이라기보다 거대한 계곡 같다
산청휴게소 뒤를 지나면 한동안 통영대전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산청까지 12km가 남았다는 이정표 뒤로 둔철산이 솟았다 간혹 자전거길 이정목이 서 있다
자전거길 이정목과 바닥표시가 함께 있다. 표시가 없는 곳이 더 많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26%의 아찔한 내리막. 초보자는 끌고 가기를 추천한다
통영대전고속도로 경호강5교 아래를 지나는 자전거길. 헌칠한 교각과 급류가 박력있다
어천교를 건너면 강변으로 새로 낸 자전거길이 나 있다. 마침 고속도로 다리 아래로 둔철산에서 흘러내린 작은 계곡이 합수하는데, 노부부의 단골 피서지인 듯 돗자리와 캠핑의자를 들고 익숙하게 자리를 잡는다.
곳곳에 하얀 포말을 튕기며 급류하는 경호강은 래프팅의 명소답다.
성심교 다리를 건너 다시 서안으로 가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성심원이다. 한센병 환자 수용을 위해 1959년 처음 생겼고 지금은 중증장애인의 쉼터이자 주민들의 경로당으로도 이용된다. 오랫동안 경호강과 웅석봉에 갇힌 금단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활짝 개방된 휴양지 분위기다. 세상이 좋은 쪽으로 발전한 단적인 증거다.
가축폐수처리장이 강변에 숨듯이 있다. 기계시설이 잘 갖춰진 것을 보니 충분히 정화해서 방류할 것이다. 현실의 강은 자연의 청정수만이 아니라 인간이 내놓는 오탁수(汚濁水)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길가에는 지리산둘레길 표지판이 보인다. 수철리~어천계곡 간 6코스 구간으로 산청읍내까지 길이 겹쳐 둘레길 이정표를 길 찾기에 참고하면 편하다.
과수원과 민가가 흩어져 있는 구릉지를 지나 계속 업힐하면 이윽고 바람재 정상이다. 해발 140m밖에 되지 않지만 경호강 자전거길에서 가장 높고 힘든 난관이다. 이제 웅석봉 정상은 눈앞에 솟아 있지만 여전히 짙은 구름 속이다.
바람재를 내려가면 산청읍이 보이고 읍내 북쪽에 솟은 왕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상당히 올라온 것 같은데 22km밖에 되지 않고 경호1교 즈음의 고도는 100m 정도다. 출발지인 성철공원이 40m였으니 22km 동안 겨우 60m 상승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곳곳에 급류로 분기탱천하니 기이하다.
어천마을에서 바라본 웅석봉(오른쪽). 여전히 구름이 얼굴을 가린다어천교를 건너 동안으로 건너가면 산뜻한 자전거길이 나 있다
자전거길 안내판에는 경호강 자전거길 표시가 따로 없어 아직 통일적인 정비가 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어천마을에서 산청읍내까지는 지리산둘레길 6코스와 겹친다.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길잡이로 삼으면 편하다
경호강길에서 가장 높고 힘든 바람재(140m) 정상. 아스팔트 도로가 잠시 등장한다 산청읍으로 접어들면 뾰족한 필봉산(858m)이 우뚝하다. 구형왕릉이 있는 왕산(926m)은 필봉산 바로 뒤에 있다
경호강 자전거길은 산청읍을 지나 금서면 주상리까지 18km 더 이어지지만 노선이 정리되지 않았고 남쪽으로 진양호 방면도 돌아와야 해서 경호1교에서 되돌아가기로 한다. 왔던 길이지만 정면으로 바라보니 풍경이 새롭고 앞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철공원 출발 직후 건넜던 묵곡교에서 서쪽으로 20번 국도 아래를 지나 경호강 서안으로 접어든다. 일반 공도여서 갓길에 자전거길 표시를 해두었는데 교행공간이 되지 않고 한쪽에만 있어서 억지스럽다.
묵곡교 이남은 이미 경호강이 아니라 진양호다. 강폭은 점점 넓어져 산청-진주 경계의 대관교를 지나면 500m를 넘어간다.
대평리 둑길 안쪽은 온통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로 가득하고, 관리하지 않은 둑길에는 잡초가 팔다리를 훑는다. 둑길을 빙 돌아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에 이르면 물길은 폭 1km를 훌쩍 넘어 호수의 진면목이 시작된다. 진양호 순환 자전거길이 겹치는 이곳이 오늘의 남쪽 반환점이다.
산청읍내 경호강을 건너는 경호1교를 반환점으로 삼는다. 경호강 자전거길은 상류 방면의 금서면 주상리까지 18km 더 이어진다읍내에서 바라본 웅석봉(왼쪽 첨봉). 읍내 방면으로 산록의 경사가 극심해 거의 절벽을 이룬다. 웅석봉(熊石峰)은 정상에서 곰이 돌을 굴러내리면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로 급경사란 뜻을 담고 있다
묵곡교에서 남쪽으로 접어들어 소남리 둑길에 이르면 강보다는 완연한 호수 분위기다. 자전거길이 잘 나 있지만 잡초가 잠식하고 있다 진주 대평리 둑길은 중앙선도 없고 잡초의 침범이 더욱 심하다. 관리를 하지 않고 통행량도 많지 않다는 뜻이다
대평리 둑길 안쪽은 온통 딸기재배 비닐하우스로 가득하다
박물관에서 보듯 이곳에는 국내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기원전 11~4세기경) 유적이 발견되었다. 발굴면적만 181만여㎡(약 55만평)에 달했고 청동기시대 약 1천년 동안 조성된 400여동의 집터, 100여기의 무덤, 2,586기의 유구, 3만3천㎡(1만평)의 밭이 확인되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구덩이로 마을을 두른 환호(環濠)를 갖춘 구역도 4만4천㎡(약 1만3천평)로 청동기시대에는 전국최대 도시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야외 전시장을 포함한 박물관 구역은 2만7천㎡(약 8,300평)에 불과해 유적 대부분은 수몰되거나 멸실되고 말았다.
일본 규슈 사가현에 있는 요시노가리유적은 대평리보다 시기는 늦지만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3세기까지 야요이(彌生)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복원과 보존 중인 공원구역이 73.7헥타르(약 22만3천평)나 되어 종합대학교 부지와 맞먹는다. 출토유물로 보아 한반도 도래인이 주축이 된 것으로 보이는 선사유적이 이처럼 거대한 규모로 보존된 것이 감탄스럽고 부러웠다. 대평리는 요시노가리보다 시기가 더 오래고 규모도 못지 않지만 지금은 옹색한 박물관만 남았으니 아쉽기 그지없다.
박물관 내부는 잘 정리되어 있으나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역사에 소홀한 세태를 말해준다. 돌아오는 길, 다리와 마음이 무거운 것은 꼭 폭염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평리 호반에 자리한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국내최대의 청동기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박물관 야외에 복원된 움집. 청동기시대 초기는 단체생활을 한 듯 집의 규모가 매우 크다. 부부 중심의 가족 문화는 상당히 늦은 시기에 정착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tip
성철공원 초입에 무료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단성면소재지를 벗어나면 산청읍내까지 식당이나 편의점이 없어 간식과 식수를 충분히 챙긴다. 강누리의 배수장 아래 절벽길은 물이 불었을 때는 위험하므로 내륙쪽 도로로 우회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산청 경호강길 65km
지리산 계곡 모여든 청정 물길 따라
단성면 강누리 즈음의 강변 길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경호강 풍광. 자전거길은 왼쪽 시멘트길을 지난다. 경호강은 물이 그득해 대하 분위기다. 맞은편으로 전원주택단지를 품은 수리봉(593m)이 구름을 붙잡고 있고 그 뒤로 웅석봉(1099m) 주능선이 아득하다
낙동강에서 경호강은 한강의 동강(東江) 같은 존재로, 가장 맑고 아름다운 강줄기로 꼽힌다. 낙동강 제1지류인 남강의 상류로, 지리산 북단을 흘러온 임천이 남덕유산에서 흘러온 남강 본류와 합류하는 산청군 어서리에서 진주 진양호에 이르는 80리(32km) 물길의 별칭이다. 경호강(鏡湖江)은 거울에 비친 호수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지리산 북사면의 청정계곡수를 모아 흐르기에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며 암석지대를 관류해 거대한 계곡을 방불케 한다.
얼추 말해서, 지리산 남쪽에 섬진강이 있다면 북쪽에는 경호강이 있다고 대비할 수 있다. 물론 섬진강은 훨씬 길고 큰 강이라 대하의 면모를 보이는 반면 경호강은 내내 급류로 굽이치고 강바닥과 주위는 바위와 돌 천지다.
산청군은 경호강의 경관을 곁에서 볼 수 있도록 ‘경호강 100리 자전거길’을 조성 중이다(원래는 23년 완공 예정). 코스는 상류의 금서면 주상마을에서 진양호 초입 대관교까지 46km로, 기존 둑길과 농로, 도로를 최대한 활용하고 일부 구간에는 자전거길을 신설하기도 했다(보행자 겸용).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기존 도로를 많이 활용하고 있어 지금도 라이딩은 가능하다. 남단의 대관교에서는 진주시에서 조성 중인 진양호 순환 자전거길(50km)과도 연결된다.
성철스님 생가에는 겁외사가 들어섰다. 동상 뒤쪽 건물은 복원된 생가
남북으로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은 출발지로 복귀하려면 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왕복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인간의 시야는 120도 정도로 제한적이어서 초행 같이라면 오갈 때 보는 풍경과 분위기가 다르고, 지형지물에 대한 이해도 더 깊게 해줘 왕복여정도 지루하지 않다.
진양호 순환 자전거길을 일부 포함하는 것을 감안해 남쪽 단성면의 성철스님(1912~1993) 생가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열반한 지 이제 겨우 30년 된 20세기 현대인이지만 성철스님은 옛날의 고승처럼 전설화되었다. 본명이 이영주(李英柱)였던 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했고 해방 후에는 대처승 등 왜색에 물든 불교를 바로잡는 선풍운동에 앞장섰다. 이후에는 파계사 성전암에서 8년간 ‘장좌불와(長座不臥,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동구불출(洞口不出, 절을 벗어나지 않음)’의 극단적 수행으로 진정한 수도승의 면모를 보였다. 스님이 1981년 조계종 종정이 되어 내린 법어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는 마치 세상을 향한 화두처럼 충격파를 던졌다. 이후에도 은거와 수행 생활을 지속하며 불전에 삼천배를 해야 만날 수 있었던 거대한 문턱과 거리감은 베일 속 신비감을 더했다.
성철스님의 생가터는 겁외사(劫外寺)로 조성되어 있다. 절 마당에는 스님의 동상이 서 있고 맨 안쪽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바로 뒤를 지나가 다소 시끄럽고 뒤쪽 산줄기와 단절되어 보이지만 원래는 검무봉(284m) 줄기가 북동으로 빙 돌아서 흘러내리는 끝지점이다. 풍수지리를 감안해 애써 고른 입지여서 상당히 유력한 집안이 아니었나 싶다.
겁외사 맞은편에 조성된 성철스님기념관에는 마치 석굴암 본존불처럼 스님 상이 모셔져 있지만 생전에 사용하던 집기 등은 볼 수 없다. 허공에 흩어졌으나 마음속에 각인된 언행 말고는 남긴 것이 없으니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했음을 반증한다. 겁외사 서쪽 경호강 강변에 조성된 생태숲은 ‘성철공원’으로 명명되었다.
성철스님 생가 앞에 조성된 생태숲은 '성철공원'으로 명명되었다. 이곳 주차장을 기점으로 잡으면 편하다
먼저 산청읍을 향해 북향이다. 경호강을 건너는 묵곡교 한켠에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고 도로명은 ‘성철로’다. 경호강 서안 둑길을 따라 북상한다. 진양호를 눈앞에 둔 경호강은 폭 300m 정도로 큰 강 분위기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성면소재지와 신안면소재지가 마주하고 있다. 신안면 쪽으로는 강변 따라 절벽을 이룬 적벽산(166m)이 기다랗고 산 아래에는 낙석을 피하기 위해 지붕을 씌운 피암터널(700m)이 이색적이다. 피암터널 위에는 높이 50m 정도의 인공폭포가 쏟아진다. 다만 인공폭포는 도중에 수평의 돌출선이 여럿 부각되어 자연미가 없는 것이 아쉽다. 적벽산은 조선후기의 성리학자 송시열이 중국 적벽에 비유해 ‘적벽(赤壁)’이라 쓴 각석이 남은 데서 유래했다.
강줄기가 서쪽으로 꺾어드니 경호강변 최고의 웅자인 웅석봉(1099m) 남쪽 줄기에 솟은 수리봉(593m)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리봉 중턱은 대규모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서 있다. 산청읍은 웅석봉 북쪽에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길에는 ‘경호강자전거길’이라는 표식이 없고 간혹 자전거 모양 표시가 있을 뿐이며, 농로와 일반도로에서는 그 표시마저 사라진다.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조성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강누리의 작은 배수펌프장 아래에서 길은 강변으로 바짝 내려가 붙는다. 초입에 나붙은 ‘익사다발지역’ 표시가 섬뜩하다. 휘어져 도는 물길의 안쪽이라 거친 물살에 절벽을 이루면서 수심이 깊고 길가에는 난간도 없어 스릴감은 좋다.
성철공원 서쪽 묵곡교에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강줄기의 공식명칭은 남강이되 다리 상류는 경호강, 하류는 진양호로 구분할 수 있다
건너편으로 신안면소재지가 보이는 둑길. 자전거길 표시는 따로 없다
강 건너 적벽산에서 쏟아지는 인공폭포는 높이가 50m에 달한다. 그 아래쪽으로 낙석을 피하기 위해 지붕을 씌우고 돔 창을 낸 피암터널(700m)이 이채롭다
방목리로 접어들면 새 도로를 내면서 버려진 옛도로를 자전거길로 활용한 구간이 나온다. 강 건너 저편으로 둔철산(823m)이 이름처럼 둔중하다. 경호강은 크게 보아 서쪽은 왕산(926m)~웅석봉 줄기가, 동쪽은 정수산(830m)~둔철산 줄기가 마주하고 있다.
강변을 따르던 길은 통영대전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해 고속도로와 근접해서 북상한다. 이 일대의 수리봉 기슭에는 전원주택 단지가 매우 많은데 지리산 끝자락으로 산수가 좋으면서 교통도 편해서인 듯하다.
길은 고속도로 산청휴게소 뒤를 지나간다. 고속도로휴게소를 외부에서 지나칠 때는 낯설고 특이한 것이, ‘고속으로 질주하다 고속으로 볼일을 보고’ 스쳐가는 곳의 뒤안길이기 때문이다. 휴게소 근무자들이 출근하는 작은 통로, 그들이 차를 세워둔 어설픈 주차장에는 내가 누리는 여정의 설렘이 아니라 일상의 고단함이 묻어 있다.
이제 산비탈을 수평으로 지나는 마을길이다. 수산, 송강마을을 지나면 경사도 26%의 급사면이 앞을 막는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지만 산악자전거 동호인이라면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정도다. 다만 초보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어 내려서 끌기를 권한다.
이제 강은 훌쩍 줄어들어 폭은 50~60m 정도이고 장구한 세월 물길에 시달린 바위가 크고 작은 강돌로 흩어져 뒹군다. 어천마을에 이르면 왼쪽으로 구름에 머리를 숨긴 웅석산이 쏟아질 듯 가파르다.방목리의 옛도로 구간. 오른쪽 위에 새 길이 생기면서 구도로를 자전거길로 활용하고 있지만 바닥이 지저분하다방목리 데크로에서 바라본 둔철산(823m). 경호강을 사이에 두고 웅석봉과 마주하고 있다
강돌이 가득한 급류지대. 강이라기보다 거대한 계곡 같다
산청휴게소 뒤를 지나면 한동안 통영대전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산청까지 12km가 남았다는 이정표 뒤로 둔철산이 솟았다 간혹 자전거길 이정목이 서 있다
자전거길 이정목과 바닥표시가 함께 있다. 표시가 없는 곳이 더 많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26%의 아찔한 내리막. 초보자는 끌고 가기를 추천한다
통영대전고속도로 경호강5교 아래를 지나는 자전거길. 헌칠한 교각과 급류가 박력있다
어천교를 건너면 강변으로 새로 낸 자전거길이 나 있다. 마침 고속도로 다리 아래로 둔철산에서 흘러내린 작은 계곡이 합수하는데, 노부부의 단골 피서지인 듯 돗자리와 캠핑의자를 들고 익숙하게 자리를 잡는다.
곳곳에 하얀 포말을 튕기며 급류하는 경호강은 래프팅의 명소답다.
성심교 다리를 건너 다시 서안으로 가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성심원이다. 한센병 환자 수용을 위해 1959년 처음 생겼고 지금은 중증장애인의 쉼터이자 주민들의 경로당으로도 이용된다. 오랫동안 경호강과 웅석봉에 갇힌 금단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활짝 개방된 휴양지 분위기다. 세상이 좋은 쪽으로 발전한 단적인 증거다.
가축폐수처리장이 강변에 숨듯이 있다. 기계시설이 잘 갖춰진 것을 보니 충분히 정화해서 방류할 것이다. 현실의 강은 자연의 청정수만이 아니라 인간이 내놓는 오탁수(汚濁水)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길가에는 지리산둘레길 표지판이 보인다. 수철리~어천계곡 간 6코스 구간으로 산청읍내까지 길이 겹쳐 둘레길 이정표를 길 찾기에 참고하면 편하다.
과수원과 민가가 흩어져 있는 구릉지를 지나 계속 업힐하면 이윽고 바람재 정상이다. 해발 140m밖에 되지 않지만 경호강 자전거길에서 가장 높고 힘든 난관이다. 이제 웅석봉 정상은 눈앞에 솟아 있지만 여전히 짙은 구름 속이다.
바람재를 내려가면 산청읍이 보이고 읍내 북쪽에 솟은 왕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상당히 올라온 것 같은데 22km밖에 되지 않고 경호1교 즈음의 고도는 100m 정도다. 출발지인 성철공원이 40m였으니 22km 동안 겨우 60m 상승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곳곳에 급류로 분기탱천하니 기이하다.
어천마을에서 바라본 웅석봉(오른쪽). 여전히 구름이 얼굴을 가린다어천교를 건너 동안으로 건너가면 산뜻한 자전거길이 나 있다
자전거길 안내판에는 경호강 자전거길 표시가 따로 없어 아직 통일적인 정비가 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어천마을에서 산청읍내까지는 지리산둘레길 6코스와 겹친다.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길잡이로 삼으면 편하다
경호강길에서 가장 높고 힘든 바람재(140m) 정상. 아스팔트 도로가 잠시 등장한다 산청읍으로 접어들면 뾰족한 필봉산(858m)이 우뚝하다. 구형왕릉이 있는 왕산(926m)은 필봉산 바로 뒤에 있다
경호강 자전거길은 산청읍을 지나 금서면 주상리까지 18km 더 이어지지만 노선이 정리되지 않았고 남쪽으로 진양호 방면도 돌아와야 해서 경호1교에서 되돌아가기로 한다. 왔던 길이지만 정면으로 바라보니 풍경이 새롭고 앞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철공원 출발 직후 건넜던 묵곡교에서 서쪽으로 20번 국도 아래를 지나 경호강 서안으로 접어든다. 일반 공도여서 갓길에 자전거길 표시를 해두었는데 교행공간이 되지 않고 한쪽에만 있어서 억지스럽다.
묵곡교 이남은 이미 경호강이 아니라 진양호다. 강폭은 점점 넓어져 산청-진주 경계의 대관교를 지나면 500m를 넘어간다.
대평리 둑길 안쪽은 온통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로 가득하고, 관리하지 않은 둑길에는 잡초가 팔다리를 훑는다. 둑길을 빙 돌아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에 이르면 물길은 폭 1km를 훌쩍 넘어 호수의 진면목이 시작된다. 진양호 순환 자전거길이 겹치는 이곳이 오늘의 남쪽 반환점이다.
산청읍내 경호강을 건너는 경호1교를 반환점으로 삼는다. 경호강 자전거길은 상류 방면의 금서면 주상리까지 18km 더 이어진다읍내에서 바라본 웅석봉(왼쪽 첨봉). 읍내 방면으로 산록의 경사가 극심해 거의 절벽을 이룬다. 웅석봉(熊石峰)은 정상에서 곰이 돌을 굴러내리면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로 급경사란 뜻을 담고 있다
묵곡교에서 남쪽으로 접어들어 소남리 둑길에 이르면 강보다는 완연한 호수 분위기다. 자전거길이 잘 나 있지만 잡초가 잠식하고 있다 진주 대평리 둑길은 중앙선도 없고 잡초의 침범이 더욱 심하다. 관리를 하지 않고 통행량도 많지 않다는 뜻이다
대평리 둑길 안쪽은 온통 딸기재배 비닐하우스로 가득하다
박물관에서 보듯 이곳에는 국내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기원전 11~4세기경) 유적이 발견되었다. 발굴면적만 181만여㎡(약 55만평)에 달했고 청동기시대 약 1천년 동안 조성된 400여동의 집터, 100여기의 무덤, 2,586기의 유구, 3만3천㎡(1만평)의 밭이 확인되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구덩이로 마을을 두른 환호(環濠)를 갖춘 구역도 4만4천㎡(약 1만3천평)로 청동기시대에는 전국최대 도시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야외 전시장을 포함한 박물관 구역은 2만7천㎡(약 8,300평)에 불과해 유적 대부분은 수몰되거나 멸실되고 말았다.
일본 규슈 사가현에 있는 요시노가리유적은 대평리보다 시기는 늦지만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3세기까지 야요이(彌生)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복원과 보존 중인 공원구역이 73.7헥타르(약 22만3천평)나 되어 종합대학교 부지와 맞먹는다. 출토유물로 보아 한반도 도래인이 주축이 된 것으로 보이는 선사유적이 이처럼 거대한 규모로 보존된 것이 감탄스럽고 부러웠다. 대평리는 요시노가리보다 시기가 더 오래고 규모도 못지 않지만 지금은 옹색한 박물관만 남았으니 아쉽기 그지없다.
박물관 내부는 잘 정리되어 있으나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역사에 소홀한 세태를 말해준다. 돌아오는 길, 다리와 마음이 무거운 것은 꼭 폭염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평리 호반에 자리한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국내최대의 청동기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박물관 야외에 복원된 움집. 청동기시대 초기는 단체생활을 한 듯 집의 규모가 매우 크다. 부부 중심의 가족 문화는 상당히 늦은 시기에 정착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tip
성철공원 초입에 무료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단성면소재지를 벗어나면 산청읍내까지 식당이나 편의점이 없어 간식과 식수를 충분히 챙긴다. 강누리의 배수장 아래 절벽길은 물이 불었을 때는 위험하므로 내륙쪽 도로로 우회한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산청 경호강길 6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