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해변에서 파군산 꼭대기까지
전망대가 있는 동대산 정상. 완만한 능선 위라 돌출 봉의 느낌은 없지만 울산 시내와 영남알프스를 조망할 수 있다
저 길고 곧은 산줄기를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한 지가 벌써 수십 년, 이제 결행할 때가 왔다. 경주 동쪽 토함산에서 울산 방어진까지 이어진 산줄기는 경주-울산 간 구조곡의 동벽을 이루며 장장 40km나 이어진다. 신라 때는 바다로 들어오는 왜적을 막는 자연 방벽이었고 지금도 산줄기 동쪽은 인구가 희박하고 원자력발전소가 터 잡은, 이색 지대다. 등산인들은 이 산줄기를 ‘삼태지맥’이라 부른다. 울산시 북구는 이 산줄기의 7개 봉우리를 특정해서 ‘일곱만디’라는 명칭을 붙이고 전망대와 이정표를 정비해 놓았다(‘만디’는 꼭대기라는 뜻의 지역 사투리).
토함산에서 방어진까지 능선을 따라 목장과 임도가 얼기설기 이어져 한때는 라이딩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토함산(745m)과 삼태봉(630m) 사이에 골프장이 두 곳 들어서서 길이 단절되어 버렸다. 그래서 코스는 삼태봉과 파군산(526m) 사이 안부인 기령(旗嶺, 495m)에서 방어진 직전의 무룡산(451m)까지로 잡는다. 무룡산 이남 방어진까지도 산길이 있기는 하지만 시내와 너무 가깝고 등산객이 많아 불편하다. 두 지점의 중간쯤인 정자해변에서 출발하면 그야말로 해발 0m에서 하늘에 이르는 시투스카이(sea to sky) 여정이 된다.울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정자해변(강동몽돌해수욕장)
대안마을을 지나 신명천 상류로 가는 길. 현재 위치는 우복동 내부에 해당하며, 왼쪽 철탑 뒤가 파군산 정상능선이다
정자해변은 초고층 아파트를 비롯해 신도시 조성이 한창이다. 산을 등지고 바다를 접한 천혜의 환경과 울산시내까지 직통 도로가 뚫리면서 근교 주거지로 각광받는 것 같다. 예전에는 정자해변이라고 통칭했지만 지금은 몽돌이 많은 특징을 따서 강동몽돌해수욕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해변에는 동해안자전거길이 나 있는데,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시작되는 자전거길은 실질적으로 방어진에서 종료되므로 거의 최남단이라고 할 수 있다. 방어진~해운대 간은 시가지와 공단이 많아 사실상 자전거길이 단절된다.
잠시 동해안자전거길을 타고 북상하다 신명교를 건너 좌회전하면 신명천 상류 방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신명천은 이번 코스 중 최고봉인 파군산에서 발원하니 실질적인 파군산 업힐의 시작이다.
이런 긴 골짜기는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우복동(牛腹洞) 지형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니나 다를까, 대안3교를 지나자 짧은 협곡이 있고 협곡을 통과하면 꽤 넓은 평지가 잠시 펼쳐진다. 예나 지금이나 세속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기에 좋은 입지다.
신흥사 가는 협곡길은 경사가 대단하고 골짜기 규모도 크다
우복동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고 골짜기는 500m급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이 많은 협곡이 나온다. 신흥사는 파군산 북쪽 해발 240m 비탈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근처 고지대에는 염불암과 낙서암이 숨듯이 더 있다. 신흥사는 635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호국사찰로 나당전쟁과 임진왜란 때 승군의 거점이 되었다. 동해안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이라 신라 때부터 호국사찰로 중시된 모양이다. 북향의 협곡은 전술적으로 유리한 지형이어서 적요한 수도도량의 묵중함과 함께 날 선 무기(武氣)가 함께 감돈다.
뒷산인 파군산(破軍山) 이름은 ‘적군을 깨뜨렸다’는 뜻이다. 하지면 여기서 적은 왜적이 아닌데, 신라 제10대 내해왕 17년인 서기 212년 골포, 칠포, 고포 3국(창원 일원) 사람들이 갈화성(울산)을 공격해와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며 격파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포상팔국의 난(209~212)’으로 알려진 사건으로, 남해안의 8개 소국이 연합해 금관국(김해)과 안라국(함안)을 공격하자 신라가 금관국과 안라국을 지원해 평정했다.
500m급 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물이 많고 깊은 신흥사 계곡
신라 이후 왜적을 막는 보루가 된 호국사찰 신흥사. 동해안에서 경주 가는 길목에 있다
신흥사를 지나면 이제 기령(495m) 고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윽고 주능선에 올라서면 파군산~동대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시점(455m)이 왼쪽으로 나온다. 일단은 그대로 직진해 200m 가면 넓은 도로가 나오면서 깃발이 펄럭이는 ‘기박산성 의병역사공원’이다. 기령 정상은 조금 더 위에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신라는 722년에 구조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12km의 관문성(關門城)을 쌓았고, 관문성 동단에는 기박산성(旗朴山城)을 축성해 방어 거점으로 삼았다. 기박산성은 조선 전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지역에서 거병한 의병이 집결해 왜군을 공격하는 기지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은 주위에 깃발을 꽂았다고 해서 ‘기배기(깃발을 박다?)’ 혹은 기령(旗嶺)으로 불리고, 작은 전시실을 포함한 역사공원도 조성되었다. 하지만 실제 기박산성은 역사공원에서 북쪽으로 800m 더 가야 한다. 이제 길을 돌려 파군산 정상으로 향한다.
주능선에 오르면 파군산~동대산~무룡고개 방면 임도 시점이 나온다. 잠시 기령을 다녀온 후 저 길을 갈 것이다
기박산성 의병역사공원. 임진왜란 때 의병이 모여 5방위에 깃발을 꽂았다고 해서 ‘기배기(깃발을 박다?)’ 혹은 기령(旗嶺)으로 불리며, 공원 상단에 깃발 조형물이 있다. 왼쪽 숲으로 들어가면 작은 습지가 나오고, 기박산성은 800m 북쪽에 있다
역사공원 자료관에 전시 된 사진. 왼쪽은 구조곡을 가로지르는 12km의 장성(관문성)을 표시하고 있다. 장성 동단의 '산성'이 기박산성이다. 오른쪽은 1920년에 촬영된 기박산성 모습. 지금은 숲에 뒤덮여 성벽을 알아보기 어렵다
기령에서 남서쪽 조망. 울산 북구 시가지가 저 아래로 보인다. 왼쪽 둔중한 능선이 파군산 정상부다
만족을 참기 어려우니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 파군산에서 동대산을 거쳐 무룡고개로 이어지는 14km 산길은, 역시 기대한 대로 편안하고 아름답고 장쾌했다. 해발 400~500m를 오르내려도 대도시 지척에다 중간중간 하산로가 있어 불안감을 불식해주고, 가끔씩 트이는 시원한 조망과 적절히 자리한 전망대와 쉼터, 그리고 친절한 이정표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등산객이 꽤 있는데도 자전거 출입을 막지 않은 개방감도 반가웠다. 대신 등산객이 놀라지 않도록 지날 때는 인사를 하고 속도를 줄이는 매너를 잘 지켜야 한다.
임도는 자전거로 쾌주하기가 아까울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길가에는 틈틈이 시비(詩碑)가 서 있어 마음을 차분하게 그리고 사색적으로 만들어 주고 잘 다져지고 깔끔한 노면은 피로를 박탈한다. 파군산 정상은 바로 길옆에 있는데다 조망이 막힌 평평한 숲속이라 조금 실망이다. 그래도 파군산만 오르면 이후에는 업다운이 섞여 있기는 해도 대체로 다운힐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간혹 시야가 트이면 서쪽으로는 울산 북부 시가지와 아득히 영남알프스가, 동쪽으로는 토함산 석굴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산자락과 동해가 어우러진 파노라마가 반겨준다.
임도는 노면이 좋고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진입후 처음 만나는 지명인 신흥재. 산줄기가 긴 만큼 중간중간 동서를 연결하는 고갯길이 나 있다. 하지만 설치 당시 정확한 고도를 몰라서인지 안내석마다 동대산 높이(444m, 지금은 447m로 수정)가 표기되어 있다. 신흥재의 실제 높이는 465m
평지 숲에 자리한 파군산 정상. 조망이 전혀 트이지 않아 답답하다. 코스의 최고점이라 이후에는 대체로 다운힐이다
이 산줄기에서 가장 유명한 동대산(447m) 정상은 널찍한 잔디밭과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시내 쪽으로 난 전망대에서는 한참 확장되고 있는 북구 시가지와 울산공항, 국수봉(603m)~치술령(765m) 능선이 훤하고, 맨 뒤로는 영남알프스 준봉들이 아스라하다.
으슥하지만 불안하지 않고, 안락하지만 스릴 있는 산길은 라이딩의 재미를 더해준다. 라이딩에 몰입해 두 바퀴와 더불어 한껏 신명난 춤을 추노라니 어느새 통신탑이 선 무룡산(451m)이 눈앞이다. 무룡산 서쪽 기슭으로 본격적인 하산길이 시작되고, 가파른 남사면을 거쳐 임도 입구 정자로 내려선다. 임도 입구는 옛 31번 국도지만 지금은 고개 아래 터널로 곧장 길이 나면서 한적한 관광도로로 남았다.
동대산 정상 조망. 멀리 국수봉(603m)~치술령(765m) 능선이 선명하고, 맨 뒤로 영남알프스 스카이라인이 아스라하다
맑은 날 촬영한 전망 안내도. 지명 표시가 모두 정확하며, 간월산 뒤로 재약산과 천황산도 보인다
동대산 동쪽 전망대. 넓게 퍼져내린 산줄기 너머로 수평선이 아득하다
무룡산 직전의 예쁜 쉼터. 산줄기와 수평선이 농담을 달리하며 원근을 장식한다
마지막에는 무룡산을 왼쪽으로 끼고 하산길이 시작된다. 틈틈이 울산 시내가 훤하다
고갯길에는 반갑게도 동해안자전거길 표지판 파란 실선이 반갑다. 이후 출발지인 정자해변까지는 이 안내선만 따라가면 된다. 무룡고개(가운데고개, 195m)를 신나게 다운힐하면 신전마을과 들판이 나오면서 정자천 둑길을 따라간다. 뒤를 돌아보면 무룡산에서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무던하면서도 깊다.
어느새 정자항의 바닷가, 바로 해수면이다. 스카이투시(sky to sea), 궁극의 하산은 이렇게 끝났다.
임도를 내려오면 무룡고개길이 시작된다. 옛 31번 국도로 동해안자전거길이 나 있다
무룡고개를 넘어서는 동해안자전거길을 나타내는 파란 실선을 따라가면 된다
정자천에서 뒤돌아본 '삼태지맥'. 왼쪽 통신탑이 선 봉우리가 무룡산(451m)이고 동대산은 맨 오른쪽 뒤에 있다산꼭대기에서 다시 해수면까지 내려왔다
tip
정자해변과 정자항 일대에 식당과 편의점, 숙박업체가 다수 있다. 코스를 더 늘리고 싶다면 무룡고개 정상에서 양떼목장~마골산을 거쳐 주전항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이 경우 11km 정도 연장된다. 다만, 이 길은 상대적으로 차량과 등산객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울산 동대산 시투스카이 34km
정자해변에서 파군산 꼭대기까지
전망대가 있는 동대산 정상. 완만한 능선 위라 돌출 봉의 느낌은 없지만 울산 시내와 영남알프스를 조망할 수 있다
저 길고 곧은 산줄기를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한 지가 벌써 수십 년, 이제 결행할 때가 왔다. 경주 동쪽 토함산에서 울산 방어진까지 이어진 산줄기는 경주-울산 간 구조곡의 동벽을 이루며 장장 40km나 이어진다. 신라 때는 바다로 들어오는 왜적을 막는 자연 방벽이었고 지금도 산줄기 동쪽은 인구가 희박하고 원자력발전소가 터 잡은, 이색 지대다. 등산인들은 이 산줄기를 ‘삼태지맥’이라 부른다. 울산시 북구는 이 산줄기의 7개 봉우리를 특정해서 ‘일곱만디’라는 명칭을 붙이고 전망대와 이정표를 정비해 놓았다(‘만디’는 꼭대기라는 뜻의 지역 사투리).
토함산에서 방어진까지 능선을 따라 목장과 임도가 얼기설기 이어져 한때는 라이딩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토함산(745m)과 삼태봉(630m) 사이에 골프장이 두 곳 들어서서 길이 단절되어 버렸다. 그래서 코스는 삼태봉과 파군산(526m) 사이 안부인 기령(旗嶺, 495m)에서 방어진 직전의 무룡산(451m)까지로 잡는다. 무룡산 이남 방어진까지도 산길이 있기는 하지만 시내와 너무 가깝고 등산객이 많아 불편하다. 두 지점의 중간쯤인 정자해변에서 출발하면 그야말로 해발 0m에서 하늘에 이르는 시투스카이(sea to sky) 여정이 된다.울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정자해변(강동몽돌해수욕장)
대안마을을 지나 신명천 상류로 가는 길. 현재 위치는 우복동 내부에 해당하며, 왼쪽 철탑 뒤가 파군산 정상능선이다
정자해변은 초고층 아파트를 비롯해 신도시 조성이 한창이다. 산을 등지고 바다를 접한 천혜의 환경과 울산시내까지 직통 도로가 뚫리면서 근교 주거지로 각광받는 것 같다. 예전에는 정자해변이라고 통칭했지만 지금은 몽돌이 많은 특징을 따서 강동몽돌해수욕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해변에는 동해안자전거길이 나 있는데,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시작되는 자전거길은 실질적으로 방어진에서 종료되므로 거의 최남단이라고 할 수 있다. 방어진~해운대 간은 시가지와 공단이 많아 사실상 자전거길이 단절된다.
잠시 동해안자전거길을 타고 북상하다 신명교를 건너 좌회전하면 신명천 상류 방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신명천은 이번 코스 중 최고봉인 파군산에서 발원하니 실질적인 파군산 업힐의 시작이다.
이런 긴 골짜기는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우복동(牛腹洞) 지형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니나 다를까, 대안3교를 지나자 짧은 협곡이 있고 협곡을 통과하면 꽤 넓은 평지가 잠시 펼쳐진다. 예나 지금이나 세속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기에 좋은 입지다.
신흥사 가는 협곡길은 경사가 대단하고 골짜기 규모도 크다
우복동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고 골짜기는 500m급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이 많은 협곡이 나온다. 신흥사는 파군산 북쪽 해발 240m 비탈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근처 고지대에는 염불암과 낙서암이 숨듯이 더 있다. 신흥사는 635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호국사찰로 나당전쟁과 임진왜란 때 승군의 거점이 되었다. 동해안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이라 신라 때부터 호국사찰로 중시된 모양이다. 북향의 협곡은 전술적으로 유리한 지형이어서 적요한 수도도량의 묵중함과 함께 날 선 무기(武氣)가 함께 감돈다.
뒷산인 파군산(破軍山) 이름은 ‘적군을 깨뜨렸다’는 뜻이다. 하지면 여기서 적은 왜적이 아닌데, 신라 제10대 내해왕 17년인 서기 212년 골포, 칠포, 고포 3국(창원 일원) 사람들이 갈화성(울산)을 공격해와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며 격파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포상팔국의 난(209~212)’으로 알려진 사건으로, 남해안의 8개 소국이 연합해 금관국(김해)과 안라국(함안)을 공격하자 신라가 금관국과 안라국을 지원해 평정했다.
500m급 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물이 많고 깊은 신흥사 계곡
신라 이후 왜적을 막는 보루가 된 호국사찰 신흥사. 동해안에서 경주 가는 길목에 있다
신흥사를 지나면 이제 기령(495m) 고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윽고 주능선에 올라서면 파군산~동대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시점(455m)이 왼쪽으로 나온다. 일단은 그대로 직진해 200m 가면 넓은 도로가 나오면서 깃발이 펄럭이는 ‘기박산성 의병역사공원’이다. 기령 정상은 조금 더 위에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신라는 722년에 구조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12km의 관문성(關門城)을 쌓았고, 관문성 동단에는 기박산성(旗朴山城)을 축성해 방어 거점으로 삼았다. 기박산성은 조선 전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지역에서 거병한 의병이 집결해 왜군을 공격하는 기지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은 주위에 깃발을 꽂았다고 해서 ‘기배기(깃발을 박다?)’ 혹은 기령(旗嶺)으로 불리고, 작은 전시실을 포함한 역사공원도 조성되었다. 하지만 실제 기박산성은 역사공원에서 북쪽으로 800m 더 가야 한다. 이제 길을 돌려 파군산 정상으로 향한다.
주능선에 오르면 파군산~동대산~무룡고개 방면 임도 시점이 나온다. 잠시 기령을 다녀온 후 저 길을 갈 것이다
기박산성 의병역사공원. 임진왜란 때 의병이 모여 5방위에 깃발을 꽂았다고 해서 ‘기배기(깃발을 박다?)’ 혹은 기령(旗嶺)으로 불리며, 공원 상단에 깃발 조형물이 있다. 왼쪽 숲으로 들어가면 작은 습지가 나오고, 기박산성은 800m 북쪽에 있다
역사공원 자료관에 전시 된 사진. 왼쪽은 구조곡을 가로지르는 12km의 장성(관문성)을 표시하고 있다. 장성 동단의 '산성'이 기박산성이다. 오른쪽은 1920년에 촬영된 기박산성 모습. 지금은 숲에 뒤덮여 성벽을 알아보기 어렵다
기령에서 남서쪽 조망. 울산 북구 시가지가 저 아래로 보인다. 왼쪽 둔중한 능선이 파군산 정상부다
만족을 참기 어려우니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 파군산에서 동대산을 거쳐 무룡고개로 이어지는 14km 산길은, 역시 기대한 대로 편안하고 아름답고 장쾌했다. 해발 400~500m를 오르내려도 대도시 지척에다 중간중간 하산로가 있어 불안감을 불식해주고, 가끔씩 트이는 시원한 조망과 적절히 자리한 전망대와 쉼터, 그리고 친절한 이정표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등산객이 꽤 있는데도 자전거 출입을 막지 않은 개방감도 반가웠다. 대신 등산객이 놀라지 않도록 지날 때는 인사를 하고 속도를 줄이는 매너를 잘 지켜야 한다.
임도는 자전거로 쾌주하기가 아까울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길가에는 틈틈이 시비(詩碑)가 서 있어 마음을 차분하게 그리고 사색적으로 만들어 주고 잘 다져지고 깔끔한 노면은 피로를 박탈한다. 파군산 정상은 바로 길옆에 있는데다 조망이 막힌 평평한 숲속이라 조금 실망이다. 그래도 파군산만 오르면 이후에는 업다운이 섞여 있기는 해도 대체로 다운힐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간혹 시야가 트이면 서쪽으로는 울산 북부 시가지와 아득히 영남알프스가, 동쪽으로는 토함산 석굴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산자락과 동해가 어우러진 파노라마가 반겨준다.
임도는 노면이 좋고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진입후 처음 만나는 지명인 신흥재. 산줄기가 긴 만큼 중간중간 동서를 연결하는 고갯길이 나 있다. 하지만 설치 당시 정확한 고도를 몰라서인지 안내석마다 동대산 높이(444m, 지금은 447m로 수정)가 표기되어 있다. 신흥재의 실제 높이는 465m
평지 숲에 자리한 파군산 정상. 조망이 전혀 트이지 않아 답답하다. 코스의 최고점이라 이후에는 대체로 다운힐이다
이 산줄기에서 가장 유명한 동대산(447m) 정상은 널찍한 잔디밭과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시내 쪽으로 난 전망대에서는 한참 확장되고 있는 북구 시가지와 울산공항, 국수봉(603m)~치술령(765m) 능선이 훤하고, 맨 뒤로는 영남알프스 준봉들이 아스라하다.
으슥하지만 불안하지 않고, 안락하지만 스릴 있는 산길은 라이딩의 재미를 더해준다. 라이딩에 몰입해 두 바퀴와 더불어 한껏 신명난 춤을 추노라니 어느새 통신탑이 선 무룡산(451m)이 눈앞이다. 무룡산 서쪽 기슭으로 본격적인 하산길이 시작되고, 가파른 남사면을 거쳐 임도 입구 정자로 내려선다. 임도 입구는 옛 31번 국도지만 지금은 고개 아래 터널로 곧장 길이 나면서 한적한 관광도로로 남았다.
동대산 정상 조망. 멀리 국수봉(603m)~치술령(765m) 능선이 선명하고, 맨 뒤로 영남알프스 스카이라인이 아스라하다
맑은 날 촬영한 전망 안내도. 지명 표시가 모두 정확하며, 간월산 뒤로 재약산과 천황산도 보인다
동대산 동쪽 전망대. 넓게 퍼져내린 산줄기 너머로 수평선이 아득하다
무룡산 직전의 예쁜 쉼터. 산줄기와 수평선이 농담을 달리하며 원근을 장식한다
마지막에는 무룡산을 왼쪽으로 끼고 하산길이 시작된다. 틈틈이 울산 시내가 훤하다
고갯길에는 반갑게도 동해안자전거길 표지판 파란 실선이 반갑다. 이후 출발지인 정자해변까지는 이 안내선만 따라가면 된다. 무룡고개(가운데고개, 195m)를 신나게 다운힐하면 신전마을과 들판이 나오면서 정자천 둑길을 따라간다. 뒤를 돌아보면 무룡산에서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무던하면서도 깊다.
어느새 정자항의 바닷가, 바로 해수면이다. 스카이투시(sky to sea), 궁극의 하산은 이렇게 끝났다.
임도를 내려오면 무룡고개길이 시작된다. 옛 31번 국도로 동해안자전거길이 나 있다
무룡고개를 넘어서는 동해안자전거길을 나타내는 파란 실선을 따라가면 된다
정자천에서 뒤돌아본 '삼태지맥'. 왼쪽 통신탑이 선 봉우리가 무룡산(451m)이고 동대산은 맨 오른쪽 뒤에 있다산꼭대기에서 다시 해수면까지 내려왔다
tip
정자해변과 정자항 일대에 식당과 편의점, 숙박업체가 다수 있다. 코스를 더 늘리고 싶다면 무룡고개 정상에서 양떼목장~마골산을 거쳐 주전항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이 경우 11km 정도 연장된다. 다만, 이 길은 상대적으로 차량과 등산객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울산 동대산 시투스카이 3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