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고성 문수암

자생투어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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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복지(福地), 깨달음도 가까운가

 

약사전 옥상에서 바라본 문수암. 무이산 정상 직하 절벽에 위태롭게 기대 있다. 암자 아래 격자 구조물은 주차장이고, 암자로 오르는 지그재그 길이 선명하다 

 

“천하가 작구나.”

공자는 태산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볼 때 드는 느낌은 이렇게 세상이 별것 아니구나 싶은 조소풍 환멸이거나, 반대로 감당할 수 없는 광막한 대지에 초라한 자아를 실감하는 자아축소의 무력감이다.

천하가 작다고 한 공자는 전자의 경우일 것이다. 덕을 갖춘 왕을 찾아 세상을 주유하다 산을 올랐으니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탄식하는 감상을 곁들여 천하가 작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전망이 탁 트인 고지에 자리 잡은 암자는 무슨 의미를 강요하는 걸까. 세상을 우습게 보라는 건가, 아니면 세상에 대비한 자아의 초라를 절감하라는 건가.

 

규모가 작고 오지에 자리한 암자(庵子)는 수도승이 머무는 구도처의 의미가 크다. 고승이 수도한 토굴(土窟)이 암자로 발전한 곳이 많아서 암자 터는 각별한 입지가 특징이다. 대체로 높고 험한 곳에, 그냥 보아도 기운이 느껴지는 큰 바위에 의지해 조망 좋은 터가 많은 것은 이런 곳이 수도에 좋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조소하든, 위축된 자아를 경험하든 세계와 자아의 실상을 과장하거나 오해하는 것으로 실상과는 거리가 있다. 석가모니가 남긴 깨달음의 원리, 12연기는 자아와 세상이 확고하게 존재한다는 믿음의 기반을 허무는 데서 시작하니, 존재와 자아를 과장 또는 축소하게 하는 입지는 ‘자극’의 측면에서 수도에 유익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전망 좋은 암자에 끌린다.

상리면소재지에서 무이산 북쪽을 지나는 한가로운 농로. 오른쪽 뒤 봉우리가 무이산이다   

고성 문수암은 전국을 통틀어 전망이 압권이다. 남해를 향해 트인 산꼭대기 직전, 암벽에 위태롭게 자리해서 허공의 고도감이 헌칠하고 아래로는 사바세상을 넘어 대륙의 경계를 이루는 해안선과 망망한 바다, 그 위에 점처럼 떠있는 섬들이 2차원으로 펼친 지구본이 되어 지질시대를 웅변한다.

하지만 암자가 없었다면 그냥 평범한 산봉우리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 인간(人間)을 초월하려는 사람의 의지가 이 절벽에 응결되면서 모든 것은 일변했다.

문수암을 안은 무이산(546m)과 주변을 일주하며 이 산야해(山野海)의 이중성을 찾아본다.

문수암 오르는 길은 10% 경사도의 업힐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문수암을 필두로 농염하게 감도는 불국토의 향기와 달리 무이산(武夷山) 이름은 유교풍이다. 중국 복건성에 있는 무이산(717m)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1130~1200)가 노년에 은거했던 산으로 중국 10대 명산에 들며, 199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및 세계문화유산으로 동시 등재되었다. 불교와 도교가 흥하기도 했으나 주희(주자)의 존재감으로 인해 유교적 명산이자 성지가 되었고, 무이산의 풍광을 읊은 주희의 ‘무이구곡가’는 후대 유학자들이 동경하는 시가 되어 이를 본 딴 ‘00구곡가(예, 이율곡의 고산구곡가)’의 시를 숱하게 낳으며 주희에 대한 숭모의 마음을 표현했다. 국내의 많은 지명이 그렇듯, 이 무이산은 유교적 유래가 짐작된다. 산 이름은 주로 산승(山僧)들이 붙여서 불교적인 것이 많은데, 무이산은 드물게 보는 유교풍이다.

문수암 주차장에서 바라본 약사전과 자란만 그리고 좌이산(416m, 오른쪽 뒤 쌍봉)

무이산 북쪽 상리면사무소를 기점으로 잡은 것은 외지에서 접근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사천~고성 간 33번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다. 평지에 자리한 면소재지는 시골답지 않게 도로가 정비되고 거리가 깨끗하지만 역시 인적은 드물다.

33번 국도 아래를 지나 상동천을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남으로는 무이산이, 북으로는 오두산(421m) 줄기가 협공하는 계곡 지형인데, 무선리에서 남쪽으로 접어들면 문수암 가는 길이다. 경사도 10% 내외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고도를 높여가 이윽고 수태산-무이산 사이 안부고개(420m)에 도착한다. 보현식당이 있는 안부고개는 4거리를 이루며, 오른쪽은 문수암, 직진은 학동치 임도, 왼쪽은 약사전과 보현사 가는 길이다.

길이 잘 닦여서인지 문수암 주차장에는 관광객 차량이 더러 있다. 급사면에 기둥을 받쳐 새로 주차장을 조성한 것을 보니 내방객이 많이 늘어난 모양이다.

문수암에서 바라본 동쪽 조망. 멀리 고성읍내와 그 뒤로 뾰족한 거류산(572m)과 오른쪽으로는 벽방산(650m)이 나란하다. 앞 왼쪽 가까운 산은 무량산(545m)  

암자는 무이산 남쪽 절벽을 따라 해발 450~500m 선에 분포한다. 이렇게 협소하고 위태로운 암벽에 6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으니 암자 치고는 큰 편이다. 주차장에서도 조망이 탁월한데, 마침 화창한 날씨여서 사방 경관이 시원하다.

암자는 계단을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관람 순서여서 가쁜 호흡을 동반한다. 오를수록 세상은 더 멀리, 더 아래로 드러나고 가장 높은 곳에는 산신각이 바위틈에 숨듯이 있다. 경내 돌출바위에는 작은 석불과 함께 근래의 고승인 청담스님(1902~1972) 사리탑이 허공에 뜬 듯 천상천하 입지다. 암자는 신라 성덕왕 5년(70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고졸미가 없는 것은 1970년대 태풍 사라호 이후 재건했기 때문이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세인들의 소원을 적은 오색등이 빼곡한 난간이 되어 자란만을 바라본다. 사람들의 소원이라야 건강, 합격, 사업 등등 몇 가지로 수렴한다. 수없이 달려 있으나 단 몇 가지로 분류되는 소원등에서 인생의, 욕망의 단순함을 본다. 이기적이지만 본질적이기에 이 단순한 욕망의 소용돌이조차 평생 벗어날 수가 없다.

남쪽으로는 수태산 줄기가 마치 팔을 들어올린 도포자락처럼 앞을 살짝 가렸으나 약사전의 대불이 거대한 실루엣으로 공제선을 재구성한다. 약사전이 없었다면 평이한 능선이었을 텐데, 인간적 화룡점정으로 비현실적 경관이 되었다.

청담스님 사리탑 주위에는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그 아래 요사채는 마치 허공에 뜬 듯 아득히 자란만을 바라본다  

대웅전 앞에 난간을 이루며 잔뜩 걸려 있는 오색의 소원등. 색깔은 발랄하지만 내용은 삶의 신산한 무게를 담고 있다  

돌출 암벽 위에 자리한 청담스님 사리탑과 석불. 문수암에서도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문수암에서 약사전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금방이다. 해발 400m에 자리한 약사전은 건물이나 불상의 완성도는 격이 떨어져 멀리서 보는 감동이 차라리 낫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높이 13m의 약사여래대불은 거대하지만 일부러 가분수로 조성한 것인지 비례가 맞지 않은 것도 아쉽다. 약사전은 보현사에 딸린 전각이다.

약사전 3층 옥상의 조망은 오히려 문수암을 능가한다. 왼쪽으로 수태산 자락에 안긴 보현사와 문수암이 한눈에 들어오고, 자란만과 고성 외곽의 거류산~벽방산까지 사방이 훤하다.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은 대웅전에서 석가모니를 좌우로 모신 협시보살로 흔히 볼 수 있으며, 사찰 주변 봉우리도 ‘보현봉-문수봉’처럼 쌍으로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대승불교에서 도입된 대중교화의 상징적 존재다. 문수암이 있으니 당연히 보현암도 있어야겠는데 규모가 커서 보현사가 된 듯하다.

수태산 암벽 아래 터 잡은 보현사도 입지가 특별하지만 문수암 정도로 각별하지는 않고 높이도 해발 330m 정도로 낮다.

높이 13m의 약사전 약사여래대불. 금빛 찬란하지만 신체 비례가 맞지 않아 장중한 위용이 덜하다  

약사전 옥상에서 바라본 보현사와 수태산(575m)

약사전에서 문수암 방향으로 되돌아가다가 보현식당옆 안부고개에서 임도로 진입한다. 북사면이라 어둑하고 체감기온이 낮지만 1월 중순임에도 얼음이나 잔설은 보이지 않는다. 조망이 열리지 않아 500m급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고도감과 울창한 수림이 압권이다.

수태산 서릉을 넘는 수대재(수태재의 와전인 듯) 일대는 갑자기 넓은 벌목지가 펼쳐지고, 서쪽 멀리 사천의 진산인 와룡산(801m)이 모습을 드러낸다. 임도는 등고선을 타고 능선과 골짜기를 오가며 극심하게 구불거려 직선거리 2km 남짓한 안부고개~학동치 간이 6km로 늘어나 한참이 걸린다.

학동치에는 고개 건너 임도를 연결하는 생태터널 같은 육교가 놓여 있다. 임도에서는 처음 보는 구조인데, 등산객들의 주차장이 되고 있다.

학동치에서 대곡저수지까지 8km는 대체로 다운힐이지만 중반까지는 업다운이 적지 않다. 바다와 마을이 바로 아래로 보이건만 숲이 짙고 인적이 없어 심산의 적막감이 농후하다.


수태산 북쪽을 돌아가는 임도. 대부분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다  임도에서 바라본 약사전과 약사여래대불 

나무가 밀생해 조망이 트이지 않고 적막감이 감도는 숲길자란만이 간간이 내려다보인다. 가장 가까운 섬이 자란도  

나중에 맞은편에서 넘어오게 될 학동치 

대곡저수지를 내려와 좌이산을 돌아나간다. 좌이산 남쪽에서 이윽고 바다를 만나면 동화마을 뒤편에 소을비포성지가 있다.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 초기에 주로 쌓은 수군 기지의 하나로 성종 22년(1491)에 축성한 것으로 전한다. 바닷가 구릉지를 활용한 성은 둘레 330m로 작은 규모다. 문지 3곳, 외부로 돌출한 치성,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성벽과 북문은 복원이 되었으나 높이를 너무 낮춰 실감이 떨어진다. 일부 구간만이라도 실제 높이대로 쌓았다면 규모감이 살아날 텐데 아쉽다. 북벽과 서벽은 자연절벽을 최대한 활용해 방어력을 높였을 텐데 이 역시 복원에 반영되지 않았다. 실상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이런 성벽으로 어떻게 적군을 막을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소을비포성지에서 임포항까지는 좌이산 동쪽을 지나는 자란만 해안길이다. 가까이는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고 멀리는 사량도와 미륵도 같은 큰 섬과 길게 뻗어 내린 반도가 가로막아 아늑한 호수 같다. 자란만의 이름이 유래한 자란도가 저쪽에 하트 모양으로 앙증맞다. 붉은 난초가 자생해 자란도(紫蘭島)가 되었다고 한다.

대곡저수지가 나오면 이제 산은 다 내려왔다. 이제 도로를 따라 맞은편 좌이산을 한바퀴 돌게 된다무지개빛 난간석이 예쁜 동화마을 진입 해안도로

바닷가 구릉지에 자리한 소을비포성지. 성벽이 낮게 복원되어 실제 규모감이 떨어진다 

건물터는 주춧돌과 윤곽만이 남았다. 맞은편 서문지는 옹성을 복원해 놓았으나 역시 성벽이 너무 낮다  좌이산 동쪽의 자란만과 해안선. 왼쪽 뒤로 무이산이 보인다

임포항 직전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하일면소재지를 통과하면 학암치가 저쪽으로 보인다. 고갯길 초입에 있는 학동마을을 잠시 돌아본다. 집 담장을 주변에 있는 납작한 점판암으로 쌓아 돌담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골목에는 돌담이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고 한옥과 현대적인 가옥이 뒤섞여 묘한 정겨움을 준다. 다만, 골목에 뛰노는 아이들이 없는 것이 이 마을뿐 아니라 이 땅 시골이 안은 절체절명의 문제를 말해주고 있다.

높이가 290m밖에 되지 않으나 바닷가에서 시작하니 학동치 업힐은 까마득하다. 산기슭을 휘감으며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길이 훤히 보이니 시각적으로도 힘겹다. 하지만 고개만 오르면 출발지인 상리면소재지까지는 십리 다운힐이라 미지막 힘을 내본다.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현재의 고역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

깔끔하면서도 정겨운 학동마을 돌담길  

저 위로 오목한 학동치 오르는 길목. 고개만 넘으면 상리면소재지까지 십리 다운힐이 기다린다

상리면소재지에는 꽤 넓은 연꽃공원이 있지만 겨울에는 휑하다


tip

코스에는 문수암 직전 안부고개의 보현식당뿐이고, 면소재지에는 소규모 하나로마트가 있다. 일반 도로 구간이 다소 많지만 통행량은 적은 편이다.

글/사진 김병훈 대표


고성 문수암 4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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